대사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5
헨리 제임스 지음, 정소영 옮김 / 민음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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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헨리 제임스를 처음 읽은 건, 우습게도 벤자민 브리튼의 쉽지 않은 오페라 <나사의 회전>을 들으면서 도대체 이게 어떤 스토리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 원작을 찾게 된 내력을 갖고 있다. 원작을 읽으면서 작품 속에 정말로 유령이 등장한다는 걸 알고는 이런, 이 양반이 쓴 책 좀 읽어봐야겠다, 싶어 계속 찾았다. 그리하여 <여인의 초상>, <데이지 밀러>, <아메리칸>, <워싱턴 스퀘어>까지 읽고 이젠 제임스 그만 읽겠다, 작정을 한다. 그러다 다 늦게 읽은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 속에서 최고의 영국 소설가 네 명을 고르는데 제인 오스틴, 조지프 콘래드, 조지 엘리엇과 더불어 헨리 제임스를 꼽는 바람에 마음을 바꿔 오늘에 이르렀다가 민음사 세계문학시리즈에서 <대사들>을 출간하자마자 구입해 읽게 됐다.
  역자 정소영은 작품해설에서 <대사들>을 포함한 “후기의 삼부작과 단편 소설들은 매우 난해해 일반 독자는 물론이고 문학 전공자들도 친숙하게 다가가기 어렵다. 그럼에도 삼부작이 제임스의 주요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난해함이 제임스 미학의 정점을 이루기 때문이다.”라고 밝힌다. 위 역자의 인용문 가운데 붉은 색을 칠한 지시대명사 ‘그’를 한 번 빼고 읽어보시라. 뜻이 하나도 훼손되지 않고 오히려 더 잘 읽힌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신지. 역자는 본인이 원고를 썼으니 잘 이해가 되지 않을지 모른다. 독자가 <대사들> 속에서 7만 5천 8백 92번 나오는(신뢰수준 95%, 오차범위 +/- 3.9%) 지시대명사 ‘그’와 인칭대명사 ‘그' ‘그녀’의 홍수에 휩쓸려 익사할 즈음이 되면 책을 다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이것도 책이 난해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요인 가운데 하나인 건 분명하다는 것도.

 

  역자가 어떤 의미에서 <대사들>이 난해하다고 했는지, 책을 다 읽고 30분쯤 지난 독자가 설명해보자.
  주인공 이름이 루이스 램버트 스트레더. ‘루이스 램버트’를 이 책의 지리적 무대인 프랑스 말로 발음하면 ‘루이 랑베르’다. 그렇다. 오노레 드 발자크의 인생극 가운데 <나귀가죽>과 더불어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발자크 책 중에서 가장 읽기 힘든 ‘발자크의 철학연구’ 작품이라고 일컬어지는 <루이 랑베르>의 주인공이다. 결혼 전야에 갑자기 새파란 면도칼을 들고 아랫도리를 훌렁 까더니 평생 거꾸로 매달려 고생스럽게 흔들거리기만 했던 신체 일부를 싹둑 잘라버리겠다고 앙탈을 부리다 기겁한 삼촌에 의하여 저지당한 문제아. <대사들>의 루이스 램버트는 루이 랑베르와 달리 긍정적이고, 사리판단 잘 하고, 정의파인 신사다. 여기서 내가 드러내고 싶은 사람은 루이 랑베르가 아니라 그를 만들어 낸 오노레 드 발자크.
  내 경우에 국한해서 벌어지는 일인지 모르겠는데, 발자크를 읽기 위해서는 거의 무한정 쏟아지는 묘사, 가구가 됐든, 건물이 됐든, 사람의 외모가 됐든, 사람이 생각하는 바가 됐든 간에 아주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묘사에 간혹 질리고는 한다. 근데, 헨리 제임스의 다른 책의 경우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대사들>을 읽으면서 저절로 무한 묘사의 달인 발자크가 머리에 떠올려졌으며, 급기야 <대사들>에 관해서 말하자면 헨리 제임스가 발자크의 귀싸대기를 올려붙일 수준이라는 걸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거의 대부분 특정인과 특정인을 둘러싼 관계자들의 대화 속에서 서로 머리를 굴리는 것, 그러면서 행동으로 비쳐 보이는 극도로 미세한 것까지 모두, 모두, 모두,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독자의 뇌 속을 헝클어트리는데, 이게 한 번의 번역을 거쳐, 평소에 지시대명사와 인칭대명사를 자주 쓰지 않은 우리말 특성을 감안하지 않고 원문에 충실한 번역으로 말미암아 75,892 번의 ‘그’까지 섞여버리면, 지금 헨리 제임스가 묘사하고 있는 의식, 생각, 짐작, 또는 이런 것들과 비슷한 일이 과연 누구의 대뇌에서 벌어지고 있는 화학작용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여기에 또, 등장인물들의 대화 가운데서 직접적인 메시지 전달을 찾아보기 힘들다. 출연진 거의 대부분이 미국의 부르주아 또는 세미 부르주아 신사 숙녀, 유럽의 백작 가문 사모님과 영애라서 그런지 자신의 속마음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듯하다. 그들만의 대화법도 겉멋은 잔뜩 들었으나 알고 보면 속이 하나도 없는 허례로 그득하고, 염화시중의 미소처럼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이심전심이 되어야만 뜻을 알 수 있는 대화를 그들은 진짜 기가 막히게 풀어나간다. 인간 사이에 말이 왜 존재하는가. 이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A를 말하고 싶은데 그걸 A로 말하면 마치 격이 떨어질 거 같아서 A′로 표현해야 했던 19세기말, 20세기 초 벨 에포크 시대의 유럽 신사숙녀들의 노고에 새삼 마음이 경건해진다. 그들의 대화를 21세기의 한국 독자들도 공유해야 하는 아주 가벼운 문제가 있을 뿐.
  그리하여 만일 두 권짜리 장편소설 <대사들>에서 등장인물들의 의식이나 생각 등에 대한 묘사를 최소화하는 요즘 소설처럼 다시 쓴다면 원고지 천오백 매 정도의 짧은 장편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시라. 바로 이 지루하고, 골치 아프고,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는 장황한 묘사가 <대사들>을 헨리 제임스의 노작勞作으로 만드는 계제가 되는 것이고, 이렇게 쓰든 저렇게 쓰든, 작품을 만드는 건 독자가 아니라 작가의 권리니까.

 

  벨 에포크 시대의 미국. 도시 노동자 80퍼센트 이상의 고혈을 짜서 만들어낸 이윤은 자본가 가문의 자제들을 일하지 않는 자, 일할 필요가 없는 자로 만들어놓았고, 태생적으로 유럽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던 그들 가운데 일부분은 구대륙으로 흘러들어 청춘을 소비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매사추세츠 울렛 지방의 품목을 밝히지 않는 거대 생산 공장을 운영하는 뉴섬 가문의 적장자 채드윅 뉴섬도 이들 부류 가운데 한 명으로 현재 파리에 거주하고 있다. 채드윅, ‘채드’로 말하자면 부잣집 외동아드님답게 세상 버르장머리 없게 성장해 성격이 속칭 개판이었던 젊은이로, 유럽 각지를 떠돌며 젊음을 소비하다가(소비? 소비라니? 이 얼마나 바람직하고 질투를 유발하는 젊음이란 말인가!) 소위 예술을 공부합네, 하고 현재는 파리에 거주하고 있었다. 강건하고 올곧은 성격이지만 아들에겐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하기엔 문제가 있는, 그래도 이 정도면 어디서 빠지지 않는 엄마 뉴섬 부인이 생각하기에, 채드가 돌아오지 않는 건 분명히 파리에서 모종의 아가씨와 미친 연애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낸다. 그리하여 즉시 돌아와 가업을 잇든지, 아니면 호적에서 지워버릴 테니까 알아서 하라고, 말로는 그렇지만 즉각 돌아오라는 명령을 내리고, 이의 수행을 위해 우리의 선량하고, 지극히 상식이 통하고, 포용력 있고, 정의로우며 합리적인 우리의 주인공 루이 랑베르, 아니, 루이스 램버트 스트레더 씨를 아들에게 대사로 보내게 된다.
  그래서 제목이 대사들ambassadors이 된다. 나는, 책 표지도 그렇고 제목도 그래서, 일단 헨리 제임스니까 유럽의 모처, 궁정, 청와대, 의사당에서 벌어지는 외교전을 그리지 않았을까 싶었다가, 이 사실을 알고 조금, 아주 조금 김이 샜음을 고백한다.
  램버트 스트레더 역시 괜히 몇 달씩 걸리는 먼 길을 떠나는 게 아니라, 울렛의 영주라고 해도 별로 손색이 없는 과부 뉴섬 부인과의 오래된 교류도 있고 해서, 유럽으로 가 성공적으로 집나간 탕아를 데려오기만 하면 다음날로 곧바로 뉴섬 부인에게 청혼을 해, 지금이 55세니까, 앞으로 15년가량의 여생을 편히 놀고먹으려 하는 꿍꿍이가 있긴 있었다. 스트레더도 역시 많은 재산이 있었지만 불운의 별은 과거에 벌였던 일곱 번의 사업마다 하는 족족 개골창에 빠뜨려 버려 이제 남은 거라곤 생의 마지막 날까지 그저 근근이 먹고 살기에 아주 약간의 부족함만 있을 정도. 스트레더 씨는 혼자 먼 길을 떠나기에 조금 적적한 면이 있으니 코네티컷 밀로스 출신의 변호사이자 자신이 가장 믿는 친구로 현재 멜버른에서 머물고 있는 웨이마시와 리버풀 항구 근처의 작은 도시 체스터에서 만나기로 한다. 여기서 우연히 만난 역시 밀로스 출신의 서른다섯 정도의 현명한 노처녀 마리아 고스트리 양. 게다가 파리 마르뵈프 구역의 작은 중이층 집에서 살고 있다. 스트레더는 작품이 끝날 때까지 고스트리 양과의 우정을 맺게 되는데, 우연히 만난 이 현명한 여성의 덕을 얼마나 많이 보는지, 난 하마터면 뉴섬 부인 대신 고스트리 양하고 결혼할 줄 알았다니까 글쎄.

 

  여기서 잠깐. 헨리 제임스는 미국 태생이지만 나이 들어 영국으로 귀화한다. 내가 읽어본 그의 작품 속에도 미국과 유럽의 여러 장면이 나오고, 주된 장면은 거의 전부 유럽이다. 독자는 헨리 제임스가 젊은 시절부터 단단히 유럽동경이란 질병을 앓고 있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고, 실제로도 몇 작품 속에서 미국인이란 돈으로 승부를 거는 경우가 많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 이렇게 양분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소설 속에서 그나마 상식이 통하고 총기가 제대로 작동하는 인물들의 그룹은 모두 유럽을 동경한다. 실제로 문장 속에, 의인화한 유럽이 등장인물에 이야기를 전달했다, 아니다 라는 말도 나온다. 그래 유럽이라 하는 오래된 건물, 조각품들과 아름다운 경치 같은 건 모든 부드럽고 우아하고 불가결하고 곡선적인 것들을 대표하는 반면, 아메리카는 상대적으로(실제로도 그렇지만) 딱딱하고 천박하고 금전적이고 직선적인 것을 상징한다. 근데 우리의 주인공 스트레더 씨가 유럽에서 어쨌든 잘 지내고 있는 채드를 아메리카로 데려오는 일을 하게 됐는데, 우여곡절이 없을 수가 없는 거였다. 처음부터.
  그런데 진짜 파리에 가서 채드를 만나보니까, 예전의 천방지축 방탕한 채드가 아니라 어느새 세련된 몸가짐과 말씨, 행동거지가 완비한 신사로 변해 있었던 거였다. 왜냐고? 왜긴 왜인가, 위 문단에서 이야기했듯 유럽물을 제대로 먹어서 그렇지. 그리고 프랑스 아버지와 영국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해 백작한테 시집가서 딸 하나를 낳은 마리 비오네 백작부인 가족과 친해진 결과라고 봐야 한다. 백작부인은 눈오네 자작의 친형인 비오네 백작과 결혼해 세상에서 비교할 수 없을 진짜로 아름다운 딸 잔 비오네를 낳았지만, 유럽의 귀족가문 전통상 이혼하지 못하는 쇼윈도우 부부로, 천 킬로미터 이상을 떨어져 살고 있다. 잔 비오네, 열다섯 살의 날개만 없는 천사를 만난 우리의 주인공이자 뉴섬 부인의 대사인 램버트 스트레더는, 채드의 변신이 근본적으로 사랑에서 비롯했다고 결론을 내리는데, 근데 누구를 향한 사랑인지 그게 좀 헛갈리는 상태에 이른다.
  그래 진짜로 스트레더 씨가 뉴섬 부인의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다고 울렛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을 때, 파리에 두 번째 대사가 도착한다. 파리에서 곧바로 할 일 없이 된 스트레더 씨는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야 하며, 채드는 가업을 잇기 위해 아메리카로 가야 할까, 아니면 사랑을 위해, 아직 누가 사랑인지 말하지 않았지만, 하여튼 사랑을 위해 파리에 뭉개고 있어야 할까.

 

  하여튼 소설은 제목에 비해 너무 작은 스코프 안에 갇혀 있다. 아무리 잘 봐주어도 로맨스 소설. 더 좋은 마음으로 보면 심리소설. 좀 과도하게 심리탐구를 해서 그렇지만. 따라서 진도도 잘 나가지 않는데 책도 두 권이라 결코 만만하지 않다. 당신이 만약 인내심이 좀 부족하다면, 인내심 함양 차원에서 한 번 대차게 도전해보시는 것도 바람직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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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5-07 14: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 근데 일단, 그 번역자의 문장을 그 편집자는 잡아내지도 않고 그 책을 그냥 출판했다는 겁니까? 그 말도 안되는 행위를 그 민음사에서 또..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5-07 14:17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ㅋ 웃겨서 미쵸요!

잠자냥 2021-05-07 14:2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니, 그 지루하기 짝이 없고 그 난해하기 짝이 없는 <루이 랑베르>의 그 루이 랑베르가 여기에 또 나온답굽쇼? 게다가 그 헨리 제임스가 그 발자크 귀싸대기를 올려치는 수준이라니, 저는 이 작품 대차게 패스하렵니다. 감사합니다. 그 폴스타프 님께 땡스 투

Falstaff 2021-05-07 14:27   좋아요 4 | URL
이 책은 헨리 제임스가 의도적으로 사람들의 의식을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대화를 애매하게 만들기로 작정을 한 듯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당연히 대화를 비롯한 행동에 확실한 타당성이 있다고 볼 수 없어서 독자는 트랩이 어디 묻혀 있는지 뻔히 알면서도 그냥 당해야 하는 거 같았습니다.
헨리 제임스가 늙어가면서 점점 악당이 된 거 같아요!
ㅋㅋㅋㅋ 그 발자크의 그 귀싸대기 하나는 확실하게 올렸습니다!!

새파랑 2021-05-07 15: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이 핵심이네요 ㅎㅎ 전 인내심이 많아서 미도전^^

Falstaff 2021-05-07 16:09   좋아요 2 | URL
ㅋㅋㅋ 좋습니다!
저는 소위 난해한 거보다 스케일이 작아서 별로였습니다.

coolcat329 2021-05-07 18: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저는 표지 명화보고 국가 간 외교를 다룬 역사 소설이겠구나...생각했는데, 집 떠난 아들 데려오는 임무맡은 대사라뇨 ㅋㅋㅋ

Falstaff 2021-05-07 20:40   좋아요 3 | URL
아, 제 말이 그거 아닙니까!!! ㅋㅋㅋ
 
올리버 트위스트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9
찰스 디킨스 지음, 유수아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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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소년 소설로도 읽어보지 않고, 영화나 만화 등에 숱하게 소개가 되는 바람에 마치 읽어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읽어본 줄 알았다. 작년에 우연한 기회에 그렇지 않다고 확정을 해서, 이미 찰스 디킨스는 그만 읽기로 작정을 했음에도, 좋다, 예외다, 이거 딱 하나만 더 읽고 진짜로 디킨스는 끝이다, 라며 주문을 했고 읽었다.
  그런데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읽은 직후 마음속으로 이걸로 디킨스 졸업장을 받았다, 해놓고도 <황폐한 집>을 읽은 전적이 있다. 그러고는 에잇 석사과정 마쳤다고 생각하자 했는데, 또 넉 달도 견디지 못하고 <어려운 시절>을 읽었으니, 그건 박사과정이었다고 하나? 그럼 <올리버 트위스트>는 포스트 닥이냐? 말도 안 되는 헛소리 한 번 해봤다.
  이게 디킨스 파워가 아닌가 싶다. 읽으면서는 우습지만 재미나고, 읽고 나선 뻔한 이야기 가지고 킬링 타임 한 번 잘 했다, 더 이상은 아니다, 해놓고, 시간이 지나 인터넷서핑 하다가 안 읽어본 디킨스 나오면 또 사정없이 궁금해지는 거. 이게 디킨스 파워고 구닥다리 영국소설의 매력인 거 같다. 진짜라니까. (19세기도 아니고 18세기 작품이지만)필딩의 <업둥이 톰 존스>나 로렌스 스턴의 <신사 트리스트럼 샌디의 인생과 생각이야기> 같은 게 은근히 독자를 끄는 힘이 있다. 특히 로렌스 스턴은 진짜, 지금 읽어도 포스트 모던이라니까. 그러나 아무리 ‘은근히 끄는 힘’이 있어도 <크리스마스 캐럴>은 안 읽는다. 읽지 않겠다. 일단은.
  <올리버 트위스트>의 스토리야 뭐 다들 아시겠지. 나는 안 읽었으면서도 읽은 줄 알았던 소년 소설을 경험해보신 분이 많겠고, 영화 보신 분도 많을 테니까.
  디킨스를 비롯한 19세기 초중반까지 쓰인 영국소설을 읽으면서 21세기를 사는 현대인의 감성에 공감을 준다거나, 삶의 현실을 투사한다거나, 감각적인 아름다움을 기대하기란 난망한 일. 그저 스토리 하나를 따라가면서 그걸 즐기는 수준 정도만 기대하면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다.
  애초 이 책, 출판사 ‘현대지성’에서 출간한 <올리버 트위스트>를 선택한 이유도, 거의 유일하게 한 권으로 만든 완역본이라서 그랬다. 다른 출판사들은 두 권짜리가 많다. 스토리 중심의 책이라 역자의 구별성이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이란 잔머리를 굴렸다는 말씀인데 오랜만에 성공한 거 같다.
  찰스 디킨스 가운데 제일 재미있다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한 권짜리니까 후회는 없으실 듯. 선택은 알아서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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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5-04 09:2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만일 안 읽었는데, 읽은 것 같은 착각을 주는 작품 목록이 있다면 디킨스 작품이 수두룩 실릴 거예요. 저에게도 그렇다는 ㅋㅋㅋㅋ 그것도 디킨스의 힘일 것 같습니다.

Falstaff 2021-05-04 09:31   좋아요 5 | URL
맞아요, <크리스마스 캐럴>도 틀림없이 안 읽었을 겁니다. 영화와 만화로는 무지하게 여러번 봤지만요. 그건 읽지 않겠다!!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ㅋㅋㅋㅋ

coolcat329 2021-05-04 11: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는다면 이 책으로 읽겠습니다. 한 권이라 좋네요.~

Falstaff 2021-05-04 11:10   좋아요 3 | URL
그리고 재미있어서 후다다닥 읽게 된답니다. ㅋㅋㅋㅋ

율별엠제이 2021-05-05 05: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막대한 유산>도 휘리릭 읽힙니다.. 디킨스의 매력입니다.

Falstaff 2021-05-05 13:20   좋아요 0 | URL
옙. 다행스럽게 그건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초딩 2021-05-06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습니다! ㅎㅎㅎ
시원한 하루 되세요~
언제나 통쾌한 Falstaff 님~

Falstaff 2021-05-06 12:12   좋아요 0 | URL
ㅎㅎㅎ 고맙습니다.
 
세로토닌
미셸 우엘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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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으로 쪼개지는 작고 하얀 타원형 알약, 캅토릭스.

  초창기에 보급된 항우울제 5-HT1 ’세로플렉스‘나 ’프로작‘은 혈액 내 세로토닌의 비율을 증가시키는 작용을 했으나, 2017년 캅톤 D-L이라는 새로운 세대의 항우울제는 위장 점막에서 생생된 세로토닌의 세포외 유출을 촉진시키는 작용을 했으며 약의 이름을 캅토릭스라고 했다. 이 약의 달갑지 않은 부작용으로는 구토와 리비도 상실 및 성기능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즉 복용자 전부가 구토와 성기능 장애, 한 발 더 나가서 리비도 상실을 경험하는 건 아니라는 뜻.

  그러나 <세로토닌>의 주인공 플로랑클로드 라브루스트는 당년 46세로 우울증 증세가 있어 15mg짜리 캅토릭스를 한 번에 반년 치 처방을 받아 매일 복용하고 있는데 구토는 없지만 아쉽게도 리비도 상실과 발기부전 증세를 피할 수는 없었다. 여태 우엘벡을 읽어온 독자라면, 우엘벡의 작품 속 남자 주인공이 발기부전은 뭐 다른 약물의 도움을 받으면 해소될 수 있으니 그렇다고 쳐도 리비도까지 상실했다는 것은 도무지 믿지 못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 리비도가 빠진 우엘벡을 뭐 하러 읽느냐, 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크게 걱정하지 마시라. 리비도가 충만하지 않아도 플로랑클로드는 만 46세로 할 만큼 했을뿐더러, (할 만큼 한) 지난 세월을 회고할 수 있는 지력이 있으며, 무엇보다 현재의 여인, 소설이 시작하고 얼마 안 있어 그녀로부터 도망해버리기는 하지만 가히 님포매니악Nymphomaniac 수준에 달하는 일본인 애인 유주가 등장해 당신의 기대를 충족시키는데 부족함이 크지는 않을 테니까.

  우리가 프랑스, 하면 예술과 패션, 사상 등의 소프트웨어에 집중해서 그렇지 프랑스는 세계 2위의 농산물 수출국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와 전 세계적으로 유전자 변형 농업이나 특히 기업형 대규모 농업이라는 추세에는 적절하게 맞춰나가는 것 같지 않다. 이번에 <세로토닌>을 읽으며 알게 된 거다. 땅이 좁은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어마어마하게 크겠지만 상대적으로 기계화되지 못한 프랑스 농업은 세계각지에서 저렴하게 밀려 들어오는 농산물과의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고, 국내 대형 유통기업마저 농민들에게 수입농산물과의 가격 차이를 좁히라는 요구하고 있는 처지다. 신자유주의는 농업이라고 예외를 두는 법이 없어 농민들은 힘겨운 구조조정을 요구받고 있다고, 우엘벡은 주장한다.

  그리하여 작가는 주인공 플로랑클로드 라브루스트를 대학에서 농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농산부에 고용되어 유럽 행정부와 가끔은 더 넓은 범위의 무역협상 테이블의 교섭위원에게 제시할 보고서와 평가서를 작성하며 주로 프랑스 농업의 위치를 규정하고 지지, 소개하는 일을 한다고 설정했다. 위촉직이라서 공무원 연봉을 훌쩍 넘는 고액의 보수를 받아 부족하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으며 지금도 예금통장엔 칠십만 유로가 넘는 잔고를 확보하고 있다. 소설은 이 중년 사내의 예금 잔고가 이십만 유로 수준으로 떨어질 때까지, 일 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15mg에서 20mg의 단위의 캅토릭스로 갈아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첫 장면은 스페인 알메이라의 340번 국도 옆 주유소. ’나‘는 메르세데스 G350 사륜구동차에 경유를 채우고 제로 칼로리 콜라를 홀짝거리고 있었는데 폭스바겐 비틀이 다가오더니 짧은 치마와 핫 팬티를 입은 두 스페인 아가씨가 차에서 내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역시 우엘벡답게 완벽하게 동그란 엉덩이를 가진 탱크 톱 차림의 아가씨들. 이들에게 타이어 공기압을 보충해주고, 보충방법을 일러준 다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떠난다. 그러나 이들의 끈팬티와 몇 장의 옷만 든 것 같은 작은 짐꾸러미를 포함해 아가씨들의 동그란 엉덩이에 대한 인상은 앞으로도 근 이백 쪽 이상 가끔이긴 하지만 계속 등장할 예정이다. 젊음과 성, 몸과 관련해서. 2주간 휴가를 받아 스페인에서 지내기로 하고, 비행기로 도착하는 애인 유주를 마중 나가는 길에 잠깐 만난 아가씨들.

  유주는 애초에 함께 살지 말았어야 했지만 너무 오랫동안 삶을 주체적으로 결정하지 못해왔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어영부영 동거하게 된 여자. 일본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지금은 파리의 일본문화원에서 일하고 있는데, ’나‘가 경험한 유주의 프로젝트는 만화 전시회와 일본 포르노의 새로운 경향에 대한 박람회밖엔 없다. 모르긴 해도 부모의 알선으로 다른 곳도 아닌 프랑스에서 별정직 공무원 자리를 얻은 것 같다. ’나‘하고는 스무 살 차이가 나서 지금 26세. 유주를 비난해야 할 점은 무척 많은데, 가장 비난해야 할 건 난교파티에 출입한다는 것. 베튄 강변로의 대 저택에서 백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모여 주로 남자 둘에 여자 하나꼴로 여기저기에서 막 관계를 하고, 대체로 보면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어리고 지위도 낮은 듯했다.

  ’나‘가 결정적으로 유주와의 관계를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이 든 건, 유주의 이메일을 볼 기회가 생겨 발견한 동영상 때문이었다. 첫 번째 동영상엔 유주와 열다섯 명의 사내들이 등장해 온갖 방법의 포르노를 실사하고 있었고, 두 번째 영상엔……, 이건 드러워서 내 손으로 자판을 누르지 못하겠다. 궁금하면 읽어보시든지. 하여튼 우엘벡, 미친놈이다, 미친놈. ’나‘가 도저히 참지 못하겠던 것은 첫 번째 동영상을 찍은 장소가 바로 ’나‘의 집 안방이었다는 점과 두 번째 동영상 자체였다. 그리하여 역겨워서 더 이상 보지 못하고 40킬로그램 밖에 나가지 않는 유주를 납작 들고 아파트 창문 밖으로 집어 던져 버릴까, 하다가 유주의 성적 기교의 탁월함 때문인지 하여튼 오늘에 이르렀던 것. ’나‘가 분명히 정상이 아닌 것이, 그러면서 뭐하러 스페인까지 둘이 함께 가기로 하고, 두 주의 휴가를 한 주로 줄이다가, 그것도 중도에 더 빨리 그 먼 길을 운전해 돌아오느냐는 말이지. 하여튼 ’나‘는 그렇게 했다, 파리 15구 토템 타워 30층의 커다란 방 두 개짜리 아파트에 도착한 후, 유주와 헤어지기 위하여, 라기보다, 지병처럼 달고 다니는 우울증이 도져서 그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울증에 영향을 준 건 당연히 유주의 문란한 성생활 때문이겠지만 그렇게 생긴 틈으로 ’나‘의 영원한 연인 카미유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를 잡는다. ’나‘는 유주로부터 도망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발적 실종“을 택한다. 실제로 프랑스에선 매년 만이천 명이 가족을 등진 채 사회에서 사라져버린다고 한다. 유주가 가족은 아니니까 양심의 가책도 받을 필요가 없는 ’나‘는 농산부에 가서 아르헨티나로 직장을 옮긴다는 거짓 핑계로 사표를 내고, 거래은행을 바꾸고, 두 주 후에 아파트 월세 계약을 종료시킨 다음, 파리에서 찾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흡연 가능한 메르퀴르 호텔의 니오르 마랭푸아트뱅 지점으로 거처를 옮긴다.

  자발적 실종. 자유는 주체성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상부에서 하달된 수칙에 대한 하급자의 반감이나 일종의 불복종, 또는 2차 세계대전 직후에 등장한 다양한 실존주의적 연극에서 이미 묘사된 개인의 도덕심에 대한 반항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나‘의 자발적 실종의 변명.

  이리하여 ’나‘ 플로랑클로드는 현상의 사회에서 이탈해 과거로, 주로 과거의 여인들로 퇴행해버리고, 급기야 아무 남자하고 맺은 관계로 낳은 아들 하나를 키우며 사는 ’나‘의 베아트리체, 수의사 카미유를 관찰하기에 이른다.

  ’나‘는 작품 전체에서, 한 번도 쉬지 않고 사람 사이를 공고하게 만드는 건 몸이라고, 섹스가 없으면 혼인관계는 물론이고 어떠한 남녀, 또는 동성간의 사랑이 계속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반면에 이와 정반대의 중년 남자, 발기부전은 물론이거니와 리비도까지 상실한 남자를 등장시켜 가슴 속의 유일한 연인을 찾게 만든다. 이들 사이엔 죽음이란 깊은 단절이 있는 셈이다. 만일 20mg 단위의 캅토릭스 복용을 통해 세로토닌을 유지하기를 포기하기만 하면 먼저 리비도가 환원이 되고 이어서 발기부전 증세도 없어지겠지만 눈에 띄게 깊어가는 우울증 증세로 어느 날 권총으로 머리통을 날려버리거나 고층 아파트의 창문에서 몸을 던질지 모를 일이다. 사랑을 위해서는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하고, 목숨을 위해선 리비도 망실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나‘ 플로랑클로드. 이 진퇴양난의 까마득한 벼랑 위에 선 남자의 이야기.




● 잘 살기(well being)와 행복감을 유발하는 물질인 세로토닌이 위장 점막에서 생성된다는 점을 명심하자. 역시 잘 먹는 게 최고다. 먹다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고, 58년 개띠 미국 가수이자 영화배우 마돈나는 맛있는 거 먹는 게 섹스보다 좋다고 했다. 당신은 왜 일을 하는가. 다 먹자고 하는 일. 오늘 점심은 봉평장터 가서 돼지 석갈비에 반주 한 병 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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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5-01 11: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세로토닌이 이런 내용이군요. 식욕은 성욕에 비례한다고 어디선가 주워들었습니다.ㅋㅋ쩝🙄

Falstaff 2021-05-01 13:07   좋아요 3 | URL
크.... 먹고, 마시고 왔습니다.
이제 절 기다리는 건, 그렇습니다, 즐거운 낮잠!
배부르게 먹고 배 두드리고 있으면 그게 장땡이지 누가 임금인지 무슨 상관인고, 함포고복에 격앙가가 넘칩니다. 인생은 유토피아, 라고 생각하고 살아야지요 뭐, 할 수 읎잖아요. ㅋㅋㅋㅋ 근데 배부르면 딴 생각 안 나던데... 혹시 그거 유언비어 아닐까요?

청아 2021-05-01 13:11   좋아요 3 | URL
주워들은 거라 근거없을 가능성이 큽니다ㅋㅋㅋㅋ
마돈나의 말 때문에 생각나 투척했어요ㅋㅋ😆

Falstaff 2021-05-01 13:15   좋아요 3 | URL
아, 순서가.... ㅎㅎㅎ
식욕은 성욕과 비례한다.... 맞는 말 같습니다. (저절로 배고파지잖아요!)
성욕은 식욕과 비례한다.... 아닌 거 같네요. ㅋㅋㅋㅋㅋ

새파랑 2021-05-01 11: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미셸 우엘벡 인터뷰가 인상적이어서 읽어보고 싶었는데 ㅎ 이미 이 책이 보관함에 있네요 ㅋ리뷰 보니 읽어보고 싶네요^^

Falstaff 2021-05-01 13:10   좋아요 4 | URL
전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특히 페미니즘 입장에 서신 분들에겐 더 그렇습니다.

syo 2021-05-01 17: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대충 다 까먹었는데 그것만 기억나요.
‘나‘는 정말이지 ‘학문‘에 큰 뜻을 둔 사람이었다는 거.

Falstaff 2021-05-01 19:35   좋아요 1 | URL
ㅋㅎㅎㅎ
여러분, 사이오 님의 중의법에 넘어가지 마세요. ㅋㅋㅋㅋ
근데 ‘나‘가 ‘학문‘에 몰두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 걸로... 아는데요.
마지막 애인 유주가 그쪽 전문이고요. ㅋㅋㅋㅋ

coolcat329 2021-05-01 18: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재밌겠다 생각했는데..오..중간부터 내용이 굉장하네요. 작가가 센거 같아요 ㅎㅎ
그래도 폴스타프님 리뷰는 너무나 재밌게 읽었습니다.

봉평장터 서울에 맛집인가하고 검색해봤는데 ㅋㅋ 혹시 천안이신가요?

Falstaff 2021-05-01 21:57   좋아요 2 | URL
이 양반의 매력이었다가 하도 비슷한 걸 우려먹어서 별로 감응이 안 오는 게 바로 그겁니다. 세미 포르노. 포르노가 특성상 날이 갈수록 좀 더 쇼킹한 걸 내놔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고 어디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세로토닌>에선 조금 너무 나간 듯 합니다.
우엘벡은 이 책의 성애 장면도 주로 여자가 남자에게 기교를 선물하는(자기들이 좋아서든 말 그대로 서비스 차원이든 간에) 것만 자주 출몰하지 거꾸로인 경우는 한 번도 없습니다. 주인공 ‘나‘가 가슴속 연인 카미유를 제외하고 여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오직 하나, 그거 뿐입니다. 이젠 우엘벡을 그만 읽어야겠어요.
저녁 먹으면서 또 한 병 깠더니 지금 주정인지 댓글인지 잘 모르겠군요. ㅋㅋㅋ

그리고 봉평장터 가지 마세요. 이젠 맛대가리 하나 없는 그저 그런 밥집이 돼버렸더군요.

coolcat329 2021-05-01 20:30   좋아요 2 | URL
우엘벡은 <소립자>만 들어봤는데, 폴스타프님 덕분에 작가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맛보게 되었습니다. 알콜이 들어간 글이 저는 더욱 좋습니다. 😊사실 저도 지금 알콜을 맛있게 마시고 댓글을~~즐거운 주말 되셔요~~

붕붕툐툐 2021-05-01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하하! 맛있는 거 먹는게 최고죠~ 암요, 암요~~!!^^

Falstaff 2021-05-01 21:44   좋아요 1 | URL
그럼요, 그럼요. ㅋㅋㅋ
 
2년 8개월 28일 밤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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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성인을 대상으로 한 우화. 근래에 읽어본 가운데 작가와 독자의 합이 이것만큼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는 작품은 없는 거 같다. 책을 읽고 나서 마음에 들거나 들지 않거나의 차이가 상당히 클 듯하지만, 만일 별점을 준다면, 살만 루슈디의 스리슬쩍 넘어가는 만연체 글 솜씨가 기본으로 별 세 개는 먹고 들어가는 바람에 다섯 개를 주느냐, 세 개를 주느냐의 갈림길에 서지는 않을까 싶다.
  나는 딱 한 가지 이유, 살만 루슈디가 쓴 새 책이 나왔다는 신간 알림을 받아 2020년 12월 30일에 초판 발행한 책을 보관함에 넣어두었다가 2021년 2월 2일에 주문해 사서, 2021년 4월 27일에 읽기 시작해 다음날 다 읽었다. 읽기 위해 책을 꺼내고서야 2년 8개월 28일이 며칠이나 되는지 계산해봤더니 1,001.333…일 이었다. 그러면 <천일야화>. 잔혹 엽기의 페르시아 샤리알 왕과 자진해서 결혼한 셰헤라자데가 여동생 두냐자데와 왕을 관객으로 두고 1,001 밤 동안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서 목숨을 구하는 전설. 프랑스 사람 앙투안 갈랑이 페르시아의 전설을 취하고 거기다가 원본엔 있지도 않은 알라딘의 요술 램프 등 몇 가지 이야기를 스스로 창작해 덧붙인 작품.
  셰헤라자데 왕비와 왕비 동생 두냐자데는, 존 바스가 자신이 쓴 <키메라>를 통해 주장한 바에 의하면, 천하의 폭군 샤리알 왕에게 옛 이야기를 해주고 밤이 깊으면 왕은 왕비와 잠자리에 들어 은은한 촛불을 켜놓은 상태로 방사를 치렀고, 두냐자데는 같은 방의 작은 침대 위에서 이들의 몸짓과 소리를 라이브로 구경할 수밖에 없었으며, 스스로도 달큰한 광경에 몸이 달아 어쩔 줄 몰랐다고 하는데, 클라이맥스는, 2년 8개월 28일째 밤에, 역시 방사를 치루고 나서 잠에 떨어진 거구의 건장한 왕에게 두 자매가 다가가서 페르시아의 반월도를 꺼내들어, 스윽, 왕의 목을, 참수했단다.
  존 바스가 이렇게 주장하고 어느새 43년이 흐른 2019년, 살만 루슈디는 바스보다 훨씬 거대한 우화를 꺼내 현대인에게 일침을 가하게 된다. 루슈디의 천일 하고도 하루 더는 <천일야화>와 별로 상관이 없다. 그것보다는 이이를 세계적인 스타덤에 오르게 만든 <악마의 시>, 해수면 만 미터 상공에서 공중 폭파된 비행기에서 떨어졌으나 살아남은 두 남자. 생존한 대신 한 명은 머리통에서 거대한 광배가 빛나기 시작하고 다른 한 명은 이마에 뿔이 돋고 발굽이 생겼으며 무지막지한 남근이 달렸다는 이야기와 연결되지는 않을까. 즉, 인간계와 마계가 있었는데 서기력 1195년, 아주 오랜만에 두 세계 사이에 틈이 생겨 인간계로 넘어와 당대 최고의 철학자 이븐루시드와 사랑을 맺어 천일 하고도 하루 동안 세 번 수태를 하고 일곱 쌍둥이, 열하나 쌍둥이, 열아홉 쌍둥이를 출산한 열여섯 살 가량의 외모를 가진 번개공주, 이 공주의 이름이 셰헤라자데의 동생 두냐자데와 비슷한 ‘두니아’와 비슷한 거 말고는 <천일야화>와 그리 잘 연결되는 건 없다.
  페리스탄이라고 들어 보셨나? ‘스탄’이라고 하니까 당연히 나라, 지역, 아니면 한 세계를 칭한다. 어떤 종족들이 사느냐 하면, 마족魔族. 마족의 남성은 진jinn, 여성은 진니아jinnia 또는 지니리jiniri라고 한다. 옛 이야기에서는 악마, 타락천사 루시퍼, 즉 아침의 아들을 마족의 우두머리로 오인하는데, 사실은 우리 인간세계와 베일 한 장 차이로 분리된 자기들의 세계 페리스탄이란 이름의 마계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대개 괴팍하고 변덕스럽고 음탕하며 매우 빠를 속도로 이동할 수 있고, 심지어 변신도 가능하다. 물론 부도덕한 마족도 많지만 이 막강한 존재들 가운데 일부는 선과 악, 바른 길과 그른 길의 차이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벼락을 마음대로 부리는 마족의 위대한 공주였던 어느 여마신은 위에서 말했듯이 마계와 인간계(하계) 사이의 베일 같은 간극이 살짝 벌려졌던 1195년, 세비야의 재판관이며, 고향 코르도바의 칼리프였던 아부 유수프야쿠브의 주치의이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인간 이성의 열렬한 숭배자였던 철학자 이븐루시드를 사랑해 그와의 사이에 수많은 딸, 아들을 생산했다. 아랍계 스페인 전역에서 역병처럼 퍼지며 날로 막강한 세력을 펼치던 광신도 베르베르 족에게 쫓겨나 유대인이라고 밝히지 못하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던 저 촌 구석 루세나로 귀양을 가 근본도 모르는 소녀와의 사이에 수십 명의 자손을 두게 된 나이든 철학자 이븐루시드는 숱한 아이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물려주지 않아 전부 사생아로 만들어버리고 귀양살이 2년 8개월 28일 만에 사면이 되자마자 다시 이베리아의 알함브라 궁으로 떠나버리고 만다.
  철학자는 일말의 양심이 남아 있어 하계에 내려와 자신을 사랑해 수많은 아이들을 낳은 신계의 위대한 공주 두니아에게 양육비를 보내주긴 했으나, 철학자에게 사업을 물려받아 항아리 장사를 계속 한 두니아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아이들은 사막의 자갈들처럼 번성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귓불이 거의 없다는 거. 그리고 3백년의 세월이 흘러 페르난도 왕과 이사벨라 여왕이 무어족을 이베리아 반도에서 축출하고, 유대인들마저 스페인에서 추방해버렸을 때 유대인이라고 말할 수 없었던 유대인들도 몽땅 추방되었는데, 하필이면 같은 동네인 루세나에서 살았던 이유 때문에, 그게 아니라도 저 선대의 아버지 이븐루시드 역시 무어인이었으니까 모든 두니아들도 카디스와 팔로스데모게르에서 배를 타거나, 도보로 피레네 산맥을 넘거나, 마족의 혈통답게 양탄자나 커다란 항아리를 타고 날아서 세상 방방곡곡으로 흩어진다.

 

  여기까지가 모두 열 개의 장 가운데 첫 번째 장 “이븐루시드의 후손”을 요약한 것이다.
  물론 진짜 중요한 건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다. 지금부터 할 테니 주목하시라.
  이븐루시드는 칼라프의 수석주치의였다가, 베르베르 족에 의하여 축출을 당한 전력이 있다. 베르베르 족은 이성은 필요 없고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 믿는 광신도적 성향을 가졌다. 이들에게 종교적 신념을 심어준 인물은 이미 죽어 백골이 진토가 된, 정통 이슬람 신학에 신비주의 사상을 접목시킨, 현재는 이란 동북부의 옛 도시이며 시아파의 성지로 알려진 ‘투스’의 철학자 가잘리였다. 가잘리는 아리스토텔레스 등 그리스 철학자들과 신플라톤주의를 지지했던 이븐시나와 왈파라비를 비판했는데, 이븐시나와 왈파라비의 맥을 이은 후배가 바로 이븐루시드였던 것. 이러면 첫 번째  대결구도가 완성된다. 가잘리와 이븐루시드. 신비주의(원리주의)와 인간의 이성.
  하나 더. 가잘리가 살아생전 우연히 푸른색의 작은 유리병을 하나 주웠다. 가잘리야 말할 것도 없이 당대 최고의 신비주의자였으니 이 푸른색 병의 정체를 몰랐을 리가 없다. 마족에도 백마족과 흑마족이 있는데, 푸른 병 속에 유폐되어 있던 건 흑마족의 우두머리 급 지도자인 마왕 주무루드. 가잘리는 병을 손에 쥔 채 주무루드에게 자신의 요구조건을 이야기한다. 유럽 민화에 숱하게 나오는 세 가지 소원을 들어달라는 것. 그러나 언제 자신이 소원을 이야기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가잘리가 원할 때라고 확정, 맹세한 후에 주무루드를 병에서 해방시켜준다. 그리고 세월은 거침없이 흘러 가잘리는 백골로 돌아가고, 이븐루시드 역시 먼지만 남은 천 년 동안. 주무루드는 당연히 가잘리가 죽었으니 세 가지 소원은 날 샌 걸로 알고 마음 편하게 살아왔는데, 천 년이 흘러 신계와 하계에 다시 웜홀이 생겼을 때, 난데없이 가잘리의 영혼이 등장해 주무르드의 귓가에 소원을 속삭인다.
  “세상에 두려움을 심어주시오. 두려움은 곧 하느님의 메아리라고 할 수 있겠소. 메아리를 들을 때마다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자비를 애원하겠지.”
  주무루드가 대답한다.
  “하느님은 내 소관이 아니니까 모르겠고, 네 소원을 기꺼이 들어주겠다. 다만 조건이 있다. 두려움을 심어주기 위해 여러 가지를 해야 하니까 이 일이 끝나면 세 가지 소원을 다 들어준 걸로 하자.”
  “그럽시다.”
  이렇게 해서 주무루드를 위시한 흑마계의 네 위대한 마신들이 하계로 내려와 깽판을 치기 시작한다. 하계에는 백마계의 위대한 번개공주 두니아와 이븐루시드의 자손들이 깔려 있던 차. 사랑 많고 정 많은 정의의 번개공주 두니아가 다른 보통의 인간도 아니고 자기 새끼들이 주무루드, 어렸을 땐 어울려 사방치기, 다방구, 땅따먹기 했던 동무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꼴을 보고만 있을 수 있겠나 어디. 그리하여 인간계에선 흑마계 대표(들)과 백마계 대표와 그녀의 자손들이 한 판 승부를 펼치니 이를 루슈디는 ‘이계전쟁’이라고 일컫는다.
  21세기 어느 날, 이계전쟁은 끝난다. 당연히 착한 우리 편인 백마계가 이긴다는 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겠다. 그리고 또다시 천 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 인간들은 깊은 사색에 잠긴다.
  여기서 어떤 사색인지는 말할 수 없다. 에필로그까지 따라가야 살만 루슈디 정도 돼야 제시할 수 있는 의문문을 읽을 수 있으니까. 이 재미있는 책을 그저 이계전쟁으로 국한해 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루슈디의 질문을 가장한 주장에 적극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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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4-29 11: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호라... 독자와의 합이 중요한 책이군요.

저는 살만 루슈디가 쓴 새 책이 나왔다는 신간 알림을 받아 2020년 12월 30일에 초판 발행한 책을 보관함에 넣어두었다가 2021년 1월 21일에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2021년 3월 4일에 다시 보관함으로 옮겼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다시 장바구니에 돌아올 수 있을 것인가!

Falstaff 2021-04-29 11:40   좋아요 1 | URL
옙. 루슈디의 동화적 (그러나 어린이 ‘동‘자 대신 옥편엔 없지만 성인 ‘동‘자로 읽어야 마땅합니다. ㅋㅋ) 상상력이 만화처럼 펼쳐지는 게 분명히 몇 몇 독자에겐 불편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ㅋㅋㅋㅋ 도서관 가세요. 이런 거 함부로 낚시했다가 코피 터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1-04-29 15: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신나게 재밌게, 한 판 굿처럼(?) 읽었어요. 독자가 원하면 원하는 대로 억만겁 (이때 중국을 뛰어넘는 인도의 뻥을 확인하고 말이죠)의 시공간을 펼치고 또 접고 하면서 사색과 철학도 하는거고요. 그런데 그런다고 루슈디 작가는 눈썹 하나 까딱할 것 같진 않지만요.
뭣보다도 번역이 좋았어요.

근데, 루슈디 동화책은 두 권짜리로 따로 있습니다. ^^

Falstaff 2021-04-29 15:57   좋아요 1 | URL
그죠, 그죠! 무척 재밌습니다. 이게 합이 맞아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ㅋㅋㅋㅋ
루슈디 동화 가운데 저는 걍 하룬과 이야기바다 하나만 읽었습죠. 동화인지 소설인지 매우 헷갈렸지만 전 걍 소설로 치부했던 기억이 나네요.

잠자냥 2021-04-29 16:53   좋아요 1 | URL
번역이 김진준이군요. 이 사람 번역 좋아하는 분들이 많네요.
 
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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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한 소설. 잘 읽히고, 읽는 사람에 따라 감정에 이입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심지어 눈물까지 콸콸 쏟을 수도 있으며, 간혹, 세상 산다는 게 뭔지, 한숨 한 번 토할 것 같기도 하고, 아 드런 세상 하긴 다 그렇게 살다 가는 거지 뭐, 하며 검은 비닐 봉지 하나 주머니에 구겨 넣고 GS 편의점에 소주 사러 갈 수도 있겠다. 봉지 한 장에 이십 원이래, 하면서.
  1891년 미주리 주 중부의 분빌 마을 근처 작은 농가에서 태어난 윌리엄 스토너는 여섯 살 때 암소의 젖을 짜기 시작하고(그럼 황소의 젖을 짜겠는가), 이후 차차 돼지 먹이 주는 일, 달걀 가져오는 일을 했다. 나이가 차 무려 8마일, 12.9킬로미터 떨어진 초등학교를 다니느라 만 여섯 살 때부터 왕복 25.8킬로미터를 걸어야 했으니(아 물론 크리스마스 방학, 부활절 방학과 여름방학 때는 빼고), 다른 건 몰라도 아이한테 살 붙을 시간은 없었을 거 같다. 물론 학교에 다닌다고 해서 농사일에 열외를 시켜줄 수 없던 살림이라 열일곱 살이 되자 벌써 이 외동아드님은 어깨가 구부정한 체형의 비쩍 마른 사내가 됐단다. 애초에 공부를 시키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타지까지 보내 유학을 시킬 재력이 없었음에도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어서, 아침에 출발하면 저녁 때 도착할 수 있는 미주리 주의 컬럼비아에 있는 미주리 대학교에 농과대학이 생겼다는 말을 들은 아버지 스토너 씨가 심사숙고 끝에 윌리엄을 4년제 농과대학에 보내겠다는 크고 용감한 계획을 세운다.
  그리하여 다른 학생들보다 조금 많은 나이인 열아홉 살에 농과대학에 입학한 빌은 2학년이 되어 필수과목인 영문학개론 시간에 영문과 학과장인 아처 슬론 교수에게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배우면서 비록 학점은 형편없지만 국어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이후 그는 농과대 커리큘럼 대신 철학, 고대역사 기초 강의, 영문학 전공과목 두 개를 선택해 자연스럽게 전과轉科 과정을 밟는다. 이후 빌은 공부에 몰두하게 되고, 4학년에 올라가자 2년 전 자신에게 형편없는 학점을 부여했던 아처 슬론 교수는 그에게 영문학 석사과정을 권유한다. 그리고 곧바로 박사과정. 교수는 빌 스토너에게 말한다. 자네는 교육자가 될 사람일세. 자네는 (학문과)사랑에 빠졌어.
  이리하여 우리의 키 크고 거친 손을 가진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는 박사과정과 동시에 유급 강사를 하면서 인생의 마지막 장까지 마주리 대학 영문과에서 전임강사에 이어 종신교수라는 평생 직업을 갖게 된다.
  윌리엄 스토너 교수의 연보를 다시 보자. 1891년생. 1910년 미주리 대학 입학, 1914년 6월 문학사. 1915년 봄 석사과정 종료, <캔터베리 이야기>의 작시법에 관한 논문. 1918년 박사.
  반면에 세계사는 1914년 8월 1차 세계대전 발발, 1917년 4월 6일 미국의 대 독일 선전포고. 윌리엄의 평생 친구 데이비드 매스터스와 고든 핀치는 군대 입대하고 매스터스는 프랑스로 건너가 첫 전투였던 1918년 샤토 티에리에서 전사해버린다. 1918년에 죽었는데도 스토너와 평생 친구라고? 그렇다. 날 믿어라. 그는 유령이 되어서라도 스토너를 결코 떠나지 않는다. 아니, 스토너가 보내주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는 참전하는 대신 인적 없는 교정에서 연구와 교육을 잇는 것에 전력을 다하는 쪽을 선택한다.
  그가 1956년에 마지막 숨을 거둔다는 것이 작품의 제일 앞 장면에 서술되어 있다. 이후 그의 태생부터 시간 순으로 스토너 교수의 평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가상 인물에 대한 전기 비슷하게 생각하면 딱 맞다.
  내가 생각하는 문제는, 작가 존 윌리엄스가 스토너 교수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렌즈를 끼고 관찰했다는 점.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농사일을 하고, 대학에 진학해서도 숙식의 대가로 어머니의 사촌뻘인 짐 푸트의 농장에서 노동을 하며 빈 시간에야 공부를 할 수 있는 처지였으며, 처음 영문학 수업을 들으면서도 아처 슬론 교수에게 비웃음을 사고, 자신과 비교할 수 없는 대도시 세인트루이스의 작은 은행의 은행장 딸을 연모하여 사랑하는 줄 착각한 상태에서 결혼해 평생을 희생하고, 직장에서도 학자적 양심으로 적을 만들어 그 적에 의하여 평생 고초를 겪는 인물.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독자는 저절로 빌 스토너에게 전적으로 동정의 눈길을 보내게 된다. 여기에 작가의 유려하고 달달하면서도 쓸쓸한 문장의 힘까지 보태지면, 독자는 그야말로 흐물흐물, 무릎 뼈가 녹아난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스토너의 적이랄 수 있는 완전한 악당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착한 우리 편과 나쁜 너희 편이란 이분법을 극도로 강조하기 위해 작가 존 윌리엄스가 만든 악당들은 스토너 교수의 바로 옆에 있는 자들로 구성했다. 자기한테 배우는 학생, 동료이자 나중엔 상급자가 되는 교수, 그리고 가장 치명적인, 아내. 독자는 이들로부터 나쁜 성향 말고는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지독한 악당들이라서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 오직 하나, 스토너의 인생을 망치기 위해 존재하는 자들이다.
  반면에 독자가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대학에 진학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농학에서 영문학과로 전과를 해, 학과장의 눈에 들어 그의 암묵적 동의를 받아 1차 세계대전 참전을 거부해서 생명을 걸지 않는 건 물론이고 그 시간에 학문을 넓혔으며, 어쨌든 결과적으로 젊은 나이에 종신교수라는 명예를 틀어쥐게 된다. 그래서 나중에 도래한 블랙 먼데이, 대공황이 미국 전역을 내리덮었을 때 하늘처럼 높았던 실업률에도 궁핍함이라는 건 전혀 모르는 상태로 안정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대도시 은행장 딸과 결혼하는데 성공을 해, 비록 대공황이 한창일 때 장인이 권총자살을 해버리긴 하지만 그래도 장모가 세상을 뜨기만 하면 남은 재산은, 이런 것까지 말하는 건 좀 야박하니 생략하자. 세상에 윌리엄 스토너 선생만큼 우울하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나. 다 거기가 거기고, 엄앵란 말마따나 201호나 202호나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권고하노니, 그저 작가가 쓴 대로 따라가면서 읽기만 하자. 그렇게만 한다면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에 눈시울이 매캐해져 소금물 한 방울이 뺨을 적실 수도 있을 테니. 그러나 입은 비뚤어져도 피리는 똑바로 불겠다. <스토너>는, 내가 이 장르를 무시하는 게 아니고 말이 그렇다는 건데, 이거 혹시 뽕짝 아냐? 하여튼 나는 그렇게 읽었다. 읽으면서는 무지하게 재미있어 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끝.



  암만해도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 책에서 스토너 교수를 곤경에 빠뜨리는, 개전의 정이 도무지 안 보이는 악당 두 명이 등장하니, 한 명은 정원이 가득 찬 스토너 교수의 대학원 세미나에 수강을 허락해달라고 부득불 졸라대 겨우 허락을 받고는 첫 수업 부터 지각을 하고, 수업태도도 좋지 않을뿐더러 공부도 하지 않는 찰스 워커. 또 한 명은 찰스 워커의 지도교수로, 그로 하여금 스토너 교수의 세미나에 등록을 하라고 권유한 동료교수 로멕스.

  수강을 끝내고 면접 고사를 치루는 자리에서 스토너 교수는 찰스 워커가 수강과목인 중세와 르네상스 영어에 아무런 지식이 없는 깡통임을 밝히고, 곧 학과장이 될 로멕스가 패스를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불합격 처리를 주장한다. 로멕스와 워커에게는 공통점이 있으니 교언영색하는 재주. 로멕스는 강의교수였던 스토너의 의견이 어떻게 부당한지를 분명하게는 밝히지 않지만 기어이 워커로 하여금 내년에 다시 대학원 과정을 수강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동시에, 스토너한테는 스토너가 학교를 그만 둘 때까지 갖은 악랄한 방법으로 괴롭힌다.

  그러나 독자는 알고 있다. 학과장 로멕스가 찰스 워커를 편애하고 스토너에게 가장 강한 수준의 '직장내 괴롭힘'을 가하는 이유가 찰스 워커가 자신과 같은 장애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가끔 극도의 공격성을 보이는데 로멕스와 찰스 워커가 그 대표적인 경우라는 것도.

  물론 책은 1960년대에 처음 출판했다. 그땐 미국에서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모든 편견은 사라져야 한다. 젠더, 피부색, 성의 선택, 빈부, 종교, 그리고 장애여부 등등. 1960년대 당시엔 어땠는지는 다음으로 치자. 그러나 이 책을 읽는 21세기에, 비록 작품의 메인 스트림은 자신의 감성과 취향에 맞았을지라도, 독자 가운데 몇 명은 스토너가 은근하게 '병ㅇ ㅇ갑하는' 장면을 연출한 것은 지적하고 넘어가야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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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1-04-28 09:4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봉투 오십원입니다;;;; (주머니와 가방에 검은 봉지 스페어로 갖고 다닙니다) 전 이 소설을 꽤 재미있게 읽었어요. 재미...라니까 눈물 겨운 타인의 인생에 예의 없는 태도지만요. 그런데 전 이 사람을 위해서 눈물 대신 욕 바가지를 쏟아냈습니다. 간결한 문장이 쉽지만 슴슴하니 좋았습니다. 영어로도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참, 전 소주보단 맥주에요. (봉투 오십원)

Falstaff 2021-04-28 09:50   좋아요 2 | URL
아, 오십 원입니까? 가시는 곳이 GS 맞나요? ㅋㅋㅋㅋ
저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다 읽고나니 쓸데없는 잡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유부만두 2021-04-28 09:57   좋아요 1 | URL
아니, 그럼 그 숱한 차액 삼십원 들은 다 ....ㅜ ㅜ

비슷한듯 다른듯 고고한 상아탑의 남자를 그린 (이번엔 공대) 소설 <기시마 선생의 조용한 세계/ 모리 히로시>를 추천합니다. 이 남자(들)도 꽤 쩜쩜쩜 입니다.

얄라알라 2021-04-28 12:18   좋아요 1 | URL
저는 봉투가 100원 아니었나? 아, 다음엔 제대로 봐야겠다 하면서 읽었는데 50원인가요^^? 제가 잘 가는 매장에서는 친환경 봉투라 그런지 100원이던데, 매장 마다 다른가봐요^^ Falstaff님 고품격 리뷰 읽고 봉투값 댓글 남겨서 민망하네요

Falstaff 2021-04-28 12:20   좋아요 1 | URL
ㅋㅋㅋ 봉투값 댓글도 재미 있습니다!!!

잠자냥 2021-04-28 10: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봉투 요즘 CU는 100원입니다.... ㅋㅋㅋㅋ 그래서 저는 에코백을 메고 가서 맥주와 소주를 쓸어담아 옵니다. ㅋㅋㅋㅋㅋ

저도 심정적으로 힘겹던 시절에 이 작품을 읽어서 울면서(?) 소주 사러 갔습니다. ㅋㅋㅋㅋㅋㅋ
마지막에 덧붙이신 이야기도 공감합니다.

Falstaff 2021-04-28 12:20   좋아요 1 | URL
앗, 100원이요?
사실, 저 사는 아파트 상가 CU는 평수가 넓지 않아서 그런지 돈을 받지 않아요. ㅋㅋㅋ 근데 아는 척하고 써본 겁니다.

잠자냥 2021-04-28 11:44   좋아요 1 | URL
예, 무슨 친환경 썩는 비닐이라고 100원 받더라고요. 봉투가 부들부들 좀 다른 재질이긴 해요.

Falstaff 2021-04-28 12:21   좋아요 1 | URL
이런, 비닐 봉지 하나가 소줏병 값하고 같다고요? 아이고, 근수 차이가 을맨대 ㅋㅋ

2021-04-28 1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28 1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28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1-04-28 11: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처음인가?) 제가 읽은 책이여서 반갑네요^^ 전 스토너의 굴곡진 인생에 공감하면서 읽었는데 리뷰보니 또 그런것만은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역시 날카로우십니다~!!

Falstaff 2021-04-28 11:14   좋아요 2 | URL
ㅎㅎㅎ 그냥 제 독후감, 책 읽은 다음에 느낀 점을 쓴 겁니다.
다양한 데 좋잖아요. ㅋㅋㅋㅋ

다락방 2021-04-28 11:4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주 재미있게 읽고 여운까지 강하게 남았었는데, 폴스타프 님의 마지막 의견에 대해서는 역시 그런 생각을 더러 했더랬습니다. 굳이 왜 그 악역을 장애인에게 주었어야 했을까, 라면서, 그런데 왜 장애인이라면 안되는걸까, 하고 제 안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더랬어요.

Falstaff 2021-04-28 12:38   좋아요 4 | URL
문제는, 미주리 대학이라는 극히 한정된 공간 안에 딱 두 명의 악당이 있었는데, 그게 다 장애인이라는 거였습니다.
장애인도 악당이 될 수 있고, 그게 당연하다면 그렇게 안 만드는 것이 오히려 차별이겠습니다만, 이 책에선 좁은 사회라는 조건 때문에 여차하면 장애인은 악당이란 공식이 생길 수도 있을 거 같았거든요. 게다가 장애 부분을 필요보다 좀 짓궂게 쓴 점도 있고요.
또 여성의 경우도 순종(빌 스토너의 엄마와 딸), 희생(연인), 집 안의 적(아내), 속물(장모), 가난과 무지(외숙모), 부잣집 백치 딸(고든 핀치의 아내) 등, 단 한 명의 긍정적 캐릭터나 투사가 없습니다.
이런 것들이 읽는 내내 불편하더랍니다.
오직 한 명, 스토너의 작품 속 문학적 성취를 위해 모든 등장인물들이 사역하는 대표적인 작품 아닌가 싶었어요. 죽음의 순간까지도요.

잠자냥 2021-04-28 12:40   좋아요 3 | URL
폴스타프 님 말씀처럼 <스토너>에서 가장 불편하고 답답한 지점은 바로 그 여성 캐릭터 다루는 방식인데요. 전 이 작가 다른 책 <오직 밤뿐인>까지 읽고 나니 작가 자체가 좀 그런 사람 아닌가 싶더라고요. 그래서 이 두 작품 읽고 나서는 더 안 읽고 싶어지더랍니다...... 그래봤자 국내 번역본은 <아우구스투스> 하나 남았지만요.

Falstaff 2021-04-28 12:46   좋아요 2 | URL
알라딘엔 페미니즘 책 좋아하시는 분이 많으셔서 여성에 관한 시각은 살짝 빼고 이야기 했었는데 걍 처음부터 나불댈 걸 그랬나 봅니다. ㅎㅎ
저도 위에서 답글 쓴 두 가지, 장애인과 여성에 관한 이상한 시각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끝날 때까지도 해소가 되지 않았습지요. 1960년대 시각으로 봐도 뒤쳐지는 관점이 아닌가 했습니다. 흑인도 스토너의 아버지가 부리는 ˝충성스런 하인˝ 한 명만 등장하고, 학생 가운데는 흑인이 아예 없어요. 4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좋은데 50년대 중순에도 여전했습니다.
물론 미주리가 미국에서도 보수적인 곳이긴 하지만 그래도 좀 껄끄러웠어요.

얄라알라 2021-04-28 12: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렇게 ˝학문과 사랑에 빠져서˝ 학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사람들, 대표적으로 스토너 박사 한국에서는 어떤 분들일까? 상상하며 리뷰 읽었답니다.

Falstaff 2021-04-28 12:25   좋아요 2 | URL
아이고, 제 모교에도 몇 분 계셨는데, 전 학교를 통틀어 고집불통이라 소문이 난 선생들이었습니다. 한 번은 학생들 공부 안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나봅니다.
너네들, 이렇게 공부하다 전부 낙제한다.
아이들은 뭐 또 뻔한 소린가보다, 해서 그냥 그대로. 학자로 이름은 높았는데 이 분은 교수법, 정확하게 발음이 문제였습니다. 외국어가 아니라 외계어로 말하는 거 같았거든요.
근데, 학기가 끝나고 보니까, 정말로, A 서너 명, 복학생들은 전부 D, 나머지는 몽땅 F, 권총이 아니라 기관총 맞았다는 거 아닙니까.
이 양반 같은 과 선배 교수는 전공필수를 복학생 4학년 2학기에 F를 줘서 당당하게 붙은 교보에 입사도 하지 못하고 일 년을 놀아야 했던 같은 학번 친구도 있었습니다. 아, 그놈의 학교는 지옥이었어요, 지옥.

coolcat329 2021-04-28 13: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직 스토너에만 집중해서 읽다보니 주변 인물들에 대해 별 생각없이 지나쳤네요. 지금 보니 충분히 폴스타프님 생각에 공감이 갑니다.

Falstaff 2021-04-28 13:32   좋아요 2 | URL
내가 읽은 게 제일 중요하지요 저도 재미나게 읽었어요. ^^
다 읽고 이런 느낌이다, 라는 것이지요. ㅋㅋㅋㅋ

mini74 2021-04-28 17: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댓글이 갑자기 산으로 ㅎㅎ곧 있음 쓰레기봉투값도 오른답니다 ㅎㅎ 전 이 소설 가슴아프게 봤어요 ㅎ

Falstaff 2021-04-28 21:06   좋아요 1 | URL
아 무조건 본인이 읽은 감정이 제일이라니까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