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스트리트 대산세계문학총서 195
싱클레어 루이스 지음, 이미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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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클레어 루이스는 우리나라에서 그리 인기를 누리지 못하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이다. 그가 1930년에 노벨문학상을 받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작품이 1925년에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지명되었으나 문학상 제도에 대한 불만 때문에 수상을 거부했던 <에로스미스>와 1922년작 <배빗>, 그리고 20년작 <메인 스트리트>를 꼽는다고 한다. <배빗>은 2111년부터 열린책들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169번으로, 이전에는 아마도 같은 회사의 “미스터 노Mr. Know” 시리즈로 번역 출판되어 우리 독자들에게도 친숙한 작품이었을 것이다. <에로스미스>와 <메인 스트리트>는 글쎄 올해 2025년에 한 방에 두 작품이 다 시중에 나왔지 뭐야. <에로스미스>는 직업이 의과학자라서 <의사 과학자 에로우스미스>라는 제목으로 776페이지, 두 권의 책으로 만들었고, 주로 의학, 약학, 질병 등에 관련한 책들만 전문적으로 내는 군자출판사(교재)라는 곳에서 냈다. <메인 스트리트>는 문학과지성사가 대산세계문학총서 195번으로 출간한 798쪽 분량의 벽돌책이다. 이 두 작품, 세 권의 책을 동네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해서 <메인 스트리트>가 먼저 도착해 읽었고, 일주일 정도 지나면 <에로스미스>도 들어왔다 할 거 같다. 지난 달엔 스타니스타프 렘과 로버트 그레이브스를 팠다면 이번 달엔 아무래도 싱클레어 루이스를 파는 달인가 보다.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일이 곧잘 생긴다. 이번에도 루이스의 책이 또 나온 거 있나 싶어서 검색해봤더니 두 작품이 눈에 들어왔고, 평소에 루이스는 안 보이면 몰라도 눈에 띄기만 하면 읽어조지는 작가 가운데 한 명이라, 게다가 이제는 내돈내산도 아님에 망설일 필요도 전혀 없으니 당장 희망도서 신청해버렸다.


  싱클레어 루이스의 책이 나오는 족족 찾아 읽는다지만, 루이스를 선택할 때마다 작품에 크게 공감하거나 작가의 성향이 나와 맞아서 이번엔 어떤 스토리일까, 궁금해하고 그러는 건 아니다. 심지어 제임스 A. 미치너는 그의 작품 <소설>을 통해 과대포장된 미국 작가 네 명을 뽑는데 제일 먼전 입에 올리는 작가가 싱클레어 루이스다. 뒤를 이어 펄 벅,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리고 존 스타인벡. 제임스 미치너 역시 한 명의 소설가일 뿐이라서, 굳이 미국 출신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네 명을 딱 골라서 과대평가되었다, 반드시 평가절하되어야 한다, 이렇게 발언하는 것도 좀 웃기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우리의 유일한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은 반드시 평가절하되어야 하는 작가라고 주장하면, 누가 주장할 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전 국민에게 딱밤 한 대씩 맞아 자칫하면 한 많은 세상 절명하셔야 할 걸? 반면에 진정한 서사를 품은 네 명의 미국인 작가로 허먼 멜빌, 스티븐 크레인, 이디스 워튼, 윌리엄 포크너를 꼽았다. 허먼 멜빌하고 윌리엄 포크너는 당연히 평생 까방권을 가진 작가들이지만 크레인과 워튼이 헤밍웨이와 스타인벡을 깔고 앉을 수 있다고? 이런 건 그냥 재미로 읽는 게 몸과 마음이 축나지 않는다, 흥분하지 말자.

  나오는 족족 찾아 읽지만 그때마다 크게 기대는 하지 않는 작가 싱클레어 루이스. 여태까지 몇 권이나 읽었나? 별로 되지 않는다. 여태 네 권. 뚜렷하게 스토리를 연상할 수 있는 작품도 없다. 희미하게 그 책이 이러저러한 내용이었지 아마? 이런 정도의 작가. 대공황을 이겨낸 루스벨트 대통령의 뒤를 이은 민주당 모 대통령이 30년대 당시 유럽 일부국가처럼 강력한 전체주의적 성향을 드러나 전 국민을 감시, 통제한다는 <있을 수 없는 일이야>가 탁, 생각나는데 그것도 작품 때문이 아니라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종사자 가운데 한 명이 이 소설을 기반으로 드라마를 만들었으니 그게 우리 눈에도 익숙한 외계인 침공을 다룬 드라마 <V>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거 있잖아. 산 쥐를 잡아 꼬랑지를 들고 거꾸로 삼키는 아름다운 외계인 아가씨 다이아나.


  서론이 길었다. 스토리 소개하자.

  매사추세츠주 출신으로 박식하고 장난을 좋아하며 매사에 친절한 밀퍼드 씨는 법학을 공부해 대학 졸업 이후 미네소타주 맨카토/맨케이토Mankato에서 내내 판사로 재직했던 양반이다. 때는 19세기 말 벨에포크 시대. 세기말적 분위기라고는 1도 없었던 건실한 판사 선생은 어쩐 일인지 결혼 상대가 얼른 나타나지 않아 연식이 꽤 된 상태에서 혼인을 하고 딸 둘을 낳았다. 두 딸 가운데 두번째 아이 이름이 소설 <메인 스트리트>의 주인공 캐럴. 애칭 캐리. 캐럴이 아홉 살 되었을 때 먼저 어머니가 세상을 접었고, 열한 살 때 아버지가 판사직에서 사임하고 맨케이토에서 미니애폴리스로 이사했는데 이로부터 2년 후에 아버지마저 엄마를 따라 아이들을 등졌다. 그러니까 우리의 캐럴은 열세 살에 고아가 되었다. 이제 캐럴에게 남은 유일한 혈육은 오직 한 명인 언니. 작품이 끝날 때까지 이름도 한 번 나오지 않는 언니는 그로부터 얼마 후 미니애폴리스하고 딱 붙어 있는 대도시이자 미니애폴리스와 함께 트윈시티라고 불리는 세인트폴에 사는 안경사와 결혼해버렸다. 매력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언니는 아버지가 남긴 거의 모든 돈을 휘리릭 날려 버렸는데, 모텔비를 포함한 데이트 비용으로 쓰거나, 결혼비용으로 쓰거나 한 것도 아니고 어떻게 풀방구리에 새앙쥐 드나들듯이 아버지 통장에서 조금씩 빼 쓰다보니까 홀랑 다 써버리고 말았던 거다. 그러니 자매 간에 정이 있겠어? 남이 아니지만 남보다 못한 언니. 이걸 보고 뭐라 그래? 맞다. “웬수.” 웬수는 작품이 끝날 때까지 다시는 종이 위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도 캐럴 밀퍼드는 미니애폴리스 끝자락에서 건전한 종교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인 블로젯 칼리지를 졸업할 수 있었다. 독실한 종교학교를 다닌 많은 학생들이 그러하듯 캐럴은 이후 기독교에 아주 냉담한 거리를 두었는데 그렇다고 반종교적 성격까지 띈 것은 아니다. 자기가 필요하면 매주는 아니더라도 침례교회도 가고, 장로교회도 가고, 가톨릭 교외엔 안 가고 뭐 그렇다. 물론 그것도 나중 일이다. 학교 졸업할 즈음엔 교회 꼴도 보지 않았다.


  캐럴은 태어날 때부터 영웅숭배자였다. 그러다보니 스스로도 절대로 정체된 삶을 살지 않을 것이라고 수시로 자기 최면을 걸었다. 사람을 잘 믿는 성향이라서 작품을 따라가면 어떻게 줄줄이 그렇게도 사람들한테 물을 먹는지 그것도 팔자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 정도. 그런데 때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도 전인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여성참정권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다가 체포된 여성이 실형을 받기도 하던 때였는데, 잘 교육받았다고 보이는 젊은 여성이 ‘정체된 삶’을 살지 않겠다고 하는 건, 사회를 위하여 이바지하고 자신의 발전을 계속 도모하겠다는 이야기이다. 생산직과 서비스직을 제외하고 여성이 직업을 갖는 건 속념상 두 개의 선택지만 있던 시절이었다. 타이피스트와 속기사.

  캐럴 밀퍼드 양은 블로젯 칼리지에 다닐 당시 영문과 교수가 조언해주는 대로 시카고 대학에서 도서관학을 공부한 후 그곳에서 1년 동안 도서관 일을 습득했다. 시카고는 뉴욕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세계적으로 고급 문화가 밀집해 있는 문화도시이기도 하다. 이때 캐럴은 연주회, 미술관, 연극, 고전무용 등을 섭렵하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좋을 거 같지? 촌 동네에서 살 팔자면 나중에 그게 다 너무 그리운 추억이 될 뿐인 걸 그땐 모르지. 하여간 1년 후 다시 트윈시티로 돌아와 세인트폴의 공공도서관에 일자리를 얻는다. 일이 불만스럽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재미있는 것도 아니었다. 도서관에서 일한다고 해서 그게 사람들의 삶에 별로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같은 도시에 살지만 자매가 만나는 꼴을 한 번도 보지 못하는데, 언니의 친구 마버리 부인이 저녁식사에 초대한다. 마버리 씨는 보험회사의 순회 영업사원, 쉬운 말로 보험 외판원이다. 20세기 초에 보험외판원은 아서 밀러의 작품 속 윌리 로먼 씨와 달리 괜찮은 직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캐럴은 이들 부부가 세인트폴의 문학과 예술의 대변자 정도로 여겼으니까.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들 부부의 파티에 서른예닐곱 살 먹은 것 같은 키 크고, 체격 좋은 외지인인 외과의사 윌 캐니컷 박사가 와 있었던 거였다. 고퍼 프레리 카운티 일대에서 대단한 의사라는 명망을 즐기고 있는, 책을 다 읽은 내가 보기에도 당시엔 최상급의 남편감이었다. 보건복지부 의견은 다음으로 하고, 법무부 쪽으로 말하자면 한 번도 ‘총각’이 아니었던 적이 없기도 하다.

  캐럴과 윌이 띠동갑 혹은 조금 더 터울이 있지만, 당시엔 이건 터울도 아니다. 그래서 둘은? 1년 후에 결혼한다. 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거나 비슷하듯이, 당시에 캐럴은 일에 조금 지친 상태였으며, 앞날의 성공이나 기꺼이 함께하고 싶은 남자도 나타나지 않은 시점이었거든. 이럴 때 결혼 많이 한다. 파티에서 처음 만난 날, 윌은 캐럴에게 자기 고향(결혼하면 둘이 가서 살아야 할 곳)의 사진을 보여주었고, 이미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던 캐럴은 사진을 보는 눈에도 뭔가 필터가 끼어 있는 것을 몰랐으며, 아무리 초라하더라도 자기가 그곳에 가서 사람들을 깨우쳐 더 나은 삶의 환경 속에서 문화적 풍요로움을 누리게 만들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약 3천 명쯤 되는 주민이 사는 미네소타의 광활한 밀 초원지대의 중심지. 정말로 중심지. 양 옆으로 단층, 2층, 가끔 3층짜리 목조, 석조 건물이 서 있고,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메인 스트리트를 벗어나자마자 사방팔방을 둘러봐도 평원지대, 혹은 눈 쌓인 광막한 벌판인 곳.

  호기심 어린 시민들의 열화와 같은 환영 속에 열차에서 내린 캐럴과 윌 캐니컷 부부. 윌은 신속하게 의사 업무에 복귀하고, 캐럴도, 시골 사람 모두 캐리를 상세하게 관찰하고 있다는 것을 천천히 알아차리면서 고퍼 프레리 카운티에 도착하기도 전에 생각해둔 개선 프로젝트를 모색한다. 캐럴의 선한 개선의지가 지극히 보수적이고, 종교적이며, 완고한 애국주의적인 작은 도시에서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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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폭스트롯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8
무스잉 지음, 강영희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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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무스잉. 한자어로 목시영穆時英. 《상하이 폭스트롯》이 단편집인데, 열강들의 중국 조차지가 득시글했던 상하이를 무대로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 청춘들이 세상이야 뒤집어지거나 말거나 댄스홀, 카바레 등지를 휩쓸면서 춤과 젊음을 즐기는 작품이 많아서, 하여간 무대가 20세기 초중반이니까 이렇게 생각했던 걸 용서해준다면, 작가가 여성인 줄 알았다. 이름에 꽃부리 영英자를 쓴 것이 그리 단정하는 데 크게 영향을 주기도 했고. 외갓집에 여동생이 일곱이 있으니 순서대로 선영, 은영, 수영, 혜영, x영, 신영, 지영, 아이고, 다섯 번째는 기억나지 않는데, 하여간 딸들한테 마지막에 돌림자로 영英자를 썼다. 이런 내력 때문에 무스잉을 여성인 줄 알았으니 웃기지? 사는 게 다 그렇지. 뭐든 자기 형편을 기준으로 생각해버리는 거. 설마 세상에 나만 그런 거, 아니지?

  무스잉은 1912년 중국 저장성에서 은행가이자 금 투자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스잉의 아버지 무징팅은, 위키피디아 기록에는 아들과 성씨가 다른 무武 씨로 썼는데, 친아버지 맞다. 그러니까 아버지도 무穆씨가 맞을 듯하다. 세상의 위키피디아도 타이포 에러는 생기나 보다. 주목할 것은, 작품집 《상하이 폭스트롯》에서도 나오는 바, 1932년에 동아시아를 휩쓴 대형 사건이 있었으니 관동대지진. 당시 천하 진재를 바로 앞두고 무스잉의 아버지 모징팅 선생이 금을 대량 사들였던 모양인데, 일본의 천재지변 때문에 하루 아침에 금값이 6백분의 1 수준으로 곤두박질 쳐버렸단다. 거시경제 측면에서 이해가 될 듯하기도 하고 아닐 것 같기도 한 상황인데, 이런 거 따지기 전에 하여간 무스잉 집안은 마른 하늘에 번개를 맞아 하루 아침에 쪽박을 차게 된 거다. 책에 실린 <나이트클럽의 다섯 사람>에서 “황금왕 후쥔이”라는 등장인물이 있어 하루아침에 자산이 6백분의 1로 줄어들어 마지막으로 애인이자 왕년의 은막 스타 황다이첸과 함께 상하이의 최고급 나이트클럽에서 최후의 만찬과 댄스파티를 즐기고 자신의 관자놀이에 권총을 발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무스잉의 아버지 무징팅은 관동대지진 1년 후인 1933년에 죽었지만 어떤 형태로도 자살은 아니고 쫄딱 망한 후유증으로 탈진과 우울증을 겪다가 숟가락 놨단다. 이것도 위키피디아에서 따 왔다.


  1920년대부터 중국의 문단 역시 세계 사상계의 주류에 맞추어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이 팽배했다. 그렇단다. 내가 뭐 아나. 검색하다 보니 2017년에 고려대에서 있었던 심포지움 내용이 눈에 들어와서 냅다 인용한 것뿐이다. 독후감 하나 쓰려고 별것을 다 검색한다. 이렇게 한 문예사조가 팽배할 때, 작가가 그건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양식만 고수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도 봤다. 1980년대 중반, 연도로 보면 1985년 이전의 시부터 시작해, 이후로 전 문예장르가 일제히 리얼리즘 참여문학으로 기울었다. 이때 함부로 서정시나 모더니즘 문학을 거론하면 입 떼기가 무섭게 발언의 장에서 물러나야 했을 정도였다. 그럼 모더니즘 계열, 당시 표현대로 문지파들은 전부 사망했느냐고? 아니지. 일종의 지하에서 끈질기게 흐름을 이어갔지. 하지 말라고 해서 그게 안 하게 되는 것이 아니니까.

  무스잉이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했던 193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작품집 《상하이 폭스트롯》를 읽어보고 그리 짐작했다. 작품집의 표제 《상하이 폭스트롯》와 어울리지 않는 작품 <팔이 잘린 사람>은 아들 하나를 키우는 단란한 가정의 가장(남편)이 벽돌 공장의 기술자가 아닌, 단순 생산직으로 일하다가 숱하게 많은 노동자의 팔, 다리, 목, 그리고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심지어 허리까지 한 순간에 싹둑 절단해버리는 절삭기에 한 손을 잃어버리고, 회사로부터 보상금 30위안을 받고 해고당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무스잉은 애초에 서양문학에 경도되었다가 당시 일본에서 유행해 중국으로 유입된 ‘신감각파’에 뜻을 둔 작가로 <팔이 잘린 사람>이라는 작품을 (뭘 알고 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읽기로는) 무지하게 한심한 수준으로 쓰고 (염치도 없지!) 작품을 팔았다. 아무리 단편이라도 초장에 다른 것도 아니고 ‘꿈’을 빙자해 복선을 와다다닥 쏟아버리면 그게 ‘현대’ 소설이야? 같은 기계가 거의 일정한 간격을 두고 같은 사고를 내는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행동이 1도 없는 것이 어째 사회주의 리얼리즘, 쉽게 말해 소설 같지도 않은 고리키의 <어머니>나 오스트롭스키의 <강철은…>에 비할 수 있느냐는 말이지. 무슨 말이냐고? 소설 같지도 않은 소설보다 못하다는 얘기지 뭐. 아이 씨. 너무 과하게 썼다. 반성한다. 그래도 취소하고 싶지는 않다. 출판사와 역자에게 미안하지만.


  그리하여 무스잉, 이이의 본류는 1930년대에 돈과 시류와 정치와 외세의 침략과, 마오와 장의 투쟁과는 전혀 관계없이 노동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부르주아 자제들, 이 가운데서도 서양, 그리고 일본의 신문물에 흠뻑 취해 신세대 연애와 폭스트롯을 선봉으로 하는 댄디즘 신봉자들의 풍속도만 그려도 충분했을 듯하다. 누구나 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혁명에 대한 봉사로 문학을 구상할 때였다. 그래도 그런 가운데 천생 부르주아의, 그것도 적수공권에서 시작해 대부분 중국인들의 로망인 거부가 되는 것도 아니고, 아빠 물총 잘 맞아 날 때부터 부잣집 아가씨, 도련님으로 태어나 사타구니에 터럭이 돋고 처음엔 은근히 시작해 조금 지나 노골적으로 남녀상열지사에 관심이 쏟아질 무렵에 대도시 상하이, 베이펑(北平: 베이징 이전 이름)에서 나이트클럽, 카바레를 섭렵하며 연애활동에 매진하는 모습도 누군가는 기록해야 하지 않겠나? 아니라고? 나는 그리 생각하는데?

 차라리 무스잉은 그쪽 방면으로만 몰두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자기 홈 그라운드 장르가 그쪽이면, 그쪽에서만 열라 글을 써도,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아닐지언정 그나마 세계문학에서 이름을 알릴 기회가 있으면 “중국 신감각파의 스타”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

  그러나 비극이 탄생하는 것도 이 지점이다. “신감각파”라는 것이 유럽의 모더니즘이 일본을 거쳐 일본 작가들 특유의 아리삼삼한, 미안하다 이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 어쨌든 아리삼삼한 경항을 본뜬 것이라 당시 문학은 물론이고 살벌한 정치와 사상으로 양분된 중국 영토에서 무스잉은 잠시 홍콩으로 몸을 피했다가 다시 상하이로 돌아와 “신감각파”의 나라 일본과 친한 친일신문 “중화신문”의 문예 부록지 편집을 하다가 반대파에 의하여 암살당해 죽었으니 1940년, 그의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뭐 그렇다는 거다. 현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당연히 부일 친일파였던 이이의 작품이 읽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중국의 친일파 작품이라고 굳이 멀리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뭐 돈과 시간을 내서 읽을 필요까지 있을까? 나는 이 책을 도서관의 신간 입고 탁자 위에서 발견해 읽었다. 무지하게 조심하면서 이야기하자면, 출판사 휴머니스트에서 출간하는 세계문학 시리즈는 거의 대부분 1960년대 이전에 죽은 작가들의 작품이다. 지적재산권에서 자유롭게 출판할 수 있는 작가들. 근데 말씀인뎁쇼, 그리 오랜 작가들의 작품인데 왜 이제야 처음으로 책을 냈을까요? 곰곰이 생각해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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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2025-08-12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빠 물총 잘 맞았다니. 금수저였단 말을 아빠 물총으로 표현하신 것에 이마 한번 탁 치고 갑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암살을 너무 일찍 당했네요. 스물 여덟이라니.
왜 이제야 처음으로 액을 냈을까요. 흠....... 별로 재미가 없나요?????

Falstaff 2025-08-12 16:37   좋아요 1 | URL
길기만 하고 지루한 독후감을 다 읽으셨군요! 고맙습니다. ㅋㅋㅋ
좀 외설적인 표현이라 벌써 쓰고 싶었지만 꾹꾹 눌렀다가 여기서도 뒤쪽에서 슬쩍 흘렸는데요...
앙드레 말로의 <인간 조건>을 보면 이 양반 젊어서 암살 당하는 건 정말 시간 문제였던 거 같아요. 인간 조건 읽어보셨겠지만 혹시 아니면 진심으로 추천합니다. ^^

케이 2025-08-12 1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위 댓글에 오타가. 액이 아니라 책으로 써야하는데. 팔스타프님 독후감 재밌어요. 절대 지루하지 않아요.ㅋㅋ 말씀하신 책 아직 못 읽었는데 지금 읽는 책 다음 책으로 꼭 읽어보겠습니다. 건강하세요!

감은빛 2025-08-17 1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맨 마지막 문장이 가장 인상적이네요. 글 하나 쓰려고 많은 정보를 찾아보시는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복잡한 이야기를 본인만의 입담으로 술술 풀어놓는 솜씨 역시 탁월하시네요.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Falstaff 2025-08-17 16:08   좋아요 0 | URL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마거릿 대처 암살 사건
힐러리 맨틀 지음, 박산호 옮김 / 민음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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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프 홀>과 <시체를 끌어내라>로 남들은 살아생전 한 번 받기도 힘든 부커상을 2009년과 2012년, 3년 터울로 두 번이나 받은 작가, 라는 걸 나는 두 작품을 읽을 때야 알았다. 그리고 뭐 남의 나라 발정한 왕의 허리하학적 이야기, 원래는 가톨릭에 충성했던 영국 국왕이 이혼하고 싶어서 종교개혁을 단행했다는 것도 그리 아름답지 않아 별 관심도 없던 터여서 별로 재미있게 읽지도 않았다. 그래, 그래. 설마 오직 이혼 문제 하나 때문에 종교개혁을 하지는 않았겠지. 내가 아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이리 말하는 것이니 그냥 그렇거니 해 주시라.

  정말 20세기를 산 사람인지, 아니면 누백년 동안 죽지 못하는 삶을 이어온 연금술사 혹은 악마인지 정체가 아리송한 플러드라는 야매, 가라 신부神父 이야기인 <플러드>까지, 내가 읽은 힐러리 맨틀은 하여간 조금은 중세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터, 도서관 개가실을 거닐다가 맨틀 여사가 난데없이 마거릿 대처 수상이자 남작부인의 암살 사건에 대한 소설을 쓴 책을 발견했으니 어찌 혹하지 않을 수 있었겠느냐는 말이지. 올해 탄생 백년을 맞는 마거릿 대처 남작부인이 아마 늙어 죽었을 걸? 그럼에도 “암살 사건”이라고 했으니까 틀림없이 암살 ‘미수’ 사건에 관한 픽션이겠지? 이렇게 감을 잡았다. 우스운 것이 한 국가, 그것도 20세기 말에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과 더불어 신자유주의의 극점을 찍은 영국 총리의 암살 사건을 소설화한 책이니까 당연히 장편소설이겠지, 했지만, 단편집이었다는 거. 힐러리 맨틀의 단편소설집이 딱 두 권 있는데, 《마거릿 대처 암살 사건》은 2014년에 출간한 두 번째 책이다. 말미에 책에 실린 작품이 언제, 어느 매체에 발표한 것인지 밝혔지만 표제 작품은 예외다.


  돌아보니 영국 작가가 쓴 소설책도 꽤나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보니까, 숱한 영국 소설가 가운데 마거릿 대처 전 수상을 좋게 묘사한 사람이 1도 없었다. 1975년부터 1990년까지 15년 동안, 20세기 들어 가장 오래 영국 총리를 해먹은 인물이기도 하고 최초의 여성 영국 총리이기도 한 대처 남작부인이라면 다른 건 모르겠고 대중적 인기가 대단했으리라 싶은데, 보수당 출신이어서 그런지 작가들한테는 1급 비추였던 모양이다. 하기는 내가 아는 보수 지지 작가라고는 오노레 드 발자크와 <파운틴 헤드>를 쓴 애인 랜드밖에 없기는 하다. 뭐 대개 그렇지. 진보주의자로 불리고 싶지만 사는 건 부르주아로 살고 싶은 게 요즘 인지상정이니까. 대강 이런 사람들을 일컬어, 스스로도 그렇게 불리기 바라고 자신을 그렇게 정의하기도 했던 바, “강남 좌파”라고 하는 거 아니겠나. 인생 목표가 강남 건물주인 "자칭" 진보주의자들.

  단편 <마거릿 대처 암살 사건>은 1984년 런던 남쪽에 있는 도시 브라이튼의 그랜드 호텔에서 IRA에 의해 저질러진 폭탄 테러를 말하는 건 아니다. 아예 정확한 제목도 <마거릿 대처 암살 사건: 1983년 8월 6일>이니까 실제 암살 미수 사건이 생기기 1년 2개월 전이다. 작 중에서 대처 수상은 가벼운 안과 시술 차 런던 시내의 병원에 갔고, 시술을 마치고 나올 때, 의사와 간호사, 기타 관계자가 도열한 가운데 한 명씩 악수를 나누며 병원문을 나설 것이고, 이때 병원 현관이 잘 보이는 민간 아파트에 들어가 창문에서 저격용 소총으로 암살한 다음, 암살범은 총을 든 채 아파트에서 빠져나오다가 경호원과 교전 중에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이 시나리오이다. 잡혀봤자 그래도 20세기 잉글랜드니까 심하지는 않겠지만 고문 또는 고문에 준하는 신문을 당할 것이고, 신문 끝에 관계자 여러분의 명단을 줄줄 읊을 수밖에 없을 터이니 암살자 한 명 때문에 IRA 조직이 와해되는 것보다 깨끗하게 죽는 게 여러모로 영웅답다, 이거다.

  이 작품을 읽는 영국인, 아일랜드 사람들은 동아시아 독자들과는 달리 암살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것임을 미리 알고 있다. 그러면 이 단편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다. 궁금하기는 궁금한데 어떤 방식으로 궁금한지 알아내기 위하여 한 번 더 읽을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힐러리 맨틀은 20대 젊은 시절부터 심신이 건강하지 못했다. 신경정신과 적으로 질환이 있어 약물을 복용해야 했고, 산부인과적으로도 질환이 있어 27세에 조기 폐경을 해 평생 “고통과 함께 살아야 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너무 빨리는 아니고 2022년에 70세의 나이로, 마거릿 대처 남작부인과 비슷한 질환인 뇌졸중 합병증으로 세상을 접었다.

  가볍지 않은 질환을 가진 채, 달리 말해서,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상태로 늘 약을 복용하며 살았던 맨틀은 죽음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올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책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등장한다. 이를 미디어의 서평에서는 “유머러스하고 잔인한 세계가 펼쳐진다”라고 표현하기도 했지만 내 생각으로 말하자면 좀 과한 평가 아닐까 싶었다. 작가 입장에서는 그렇게 당하고 싶지 않은 반어법적 그로테스크, 이것을 묘사하는 마음이 즐겁지 않았을 것 같아서. 하여간 뭐 그렇다.

  부커상을 두 번이나 탄 힐러리 맨틀이지만 단편들이 그리 즐길 만하지 않았던 것이 솔직한 감상이다. 스토리의 적절한 반전도 그냥 그렇고, 문장이나 구성이 눈에 차지도 않았다. 늘 얘기하는 것이지만 나는 “단편소설의 나라”에 사는 독자라서 단편 소설에 관해서는 눈이 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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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11 0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단편소설에 대해 눈높으시죠
근데 장편소설에 대해서도 눈 높으시잖아요. ㅎㅎ
이 작가는 이름이랑 작품이름만 알고 있었는데 주로 역사소설이군요. 헨리8세 근처 시대 딱히 관심이 없는데 고민좀.... 저는 요즘 아민 말루프 너무 좋습니다. 사마르칸트도 나쁘지 않았어요. 후반부의 딕션이 좀 떨어지긴 했지만 전혀 모르던 세계를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네요.

Falstaff 2025-08-11 16:09   좋아요 1 | URL
눈높이에 대해 솔직히 말씀드리면, 알라딘이 책 가게이지 않습니까? 마음 먹은 별점보다 한 반 개 정도는 상향 조정하고 있습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다, 이런 심정으로요. ㅋㅋㅋ
저는 사마르칸트, 이 중부 아시아 지역에 로망을 갖고 있어서 언제가 기대가 크거든요. 말루프의 <사마르칸트>는 너무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군요. <타니오스의 바위>는 괜찮았습니다만.

blanca 2025-08-11 14: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힐러리 맨틀이 이미 고인이 된지도 몰랐어요. 엄청난 작가라는 것만 알았는데... 단편집은 기대에 못 미치는군요. 단편과 장편 각각 특화 분야가 다른 것 같아요.

Falstaff 2025-08-11 16:12   좋아요 0 | URL
부커 2회 수상자면 굉장한 필력을 인정받은 거겠지만 ㅎㅎ 남의 나라에서 벌어진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역사 장면이라 아시아 변방인의 입장에서는 별로 끌리지 않더라고요. 단편집 읽어보니 역사 장편이 더 좋았습니다.

yamoo 2025-08-11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거 읽가 때려치웠어요. 부커상 받은 작가 모아놓고 읽는데 이 책은 읽다 때려친 2권 중 한권입니다..ㅎㅎ

Falstaff 2025-08-12 04:57   좋아요 0 | URL
ㅋㅋㅋ 돈 주고 사신 건데 웬만하면 걍 달리시지 그랬습니까.
 
알려진 세계 - 2004년 퓰리처상 수상작
에드워드 P. 존스 지음, 이승학 옮김 / 섬과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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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에 미국 워싱턴 D.C.에서 태어난 범띠 할배 에드워드 폴 존스는 아프리카계 자메이칸 미국인인 아버지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어머니 슬하 2남1녀의 맏이였다. 소년시절에 아버지가 집을 나가 글씨를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엄마가 말 그대로 죽을 고생을 해가며 키워 맏아들 에드를 “워싱턴 D.C 출신의 가장 훌륭한 작가”로 만들었는데, 아쉽게도 막내 아들 조지프 V.는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에드워드 P. 존스는 2004년에 퓰리처 상을, 2005년에 국제 더블린문학상을 받은 <알려진 세계>를 자신의 동생 조지프 V. 존스와, “더 나은 세상이었다면 훨씬 많은 일을 했을 어머니 저넷 S.M. 존스를 다시 한번 기리며” 헌정하기에 이른다.

  위키피디아에 나온 존스의 딱 세 권의 책만 등록되어 있다. 두 권은 단편집이고 <알려진 세계>가 유일한 장편소설인데, 다른 상도 아니고 미국 작가들의 로망인 퓰리처 상을 받은 것도 모자라, 21세기 100대 저작 가운데 앞에서 네 번째 자리를 꿰찼으니 읽기 전에 이 책에 대한 기대감이 어땠겠는지 짐작하시겠지? 물론 21세기 100권 리스트를 볼 당시에는 존스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것도 몰랐고, 이 책이 미국 남북전쟁 전 흑인 노예 이야기인지도 몰랐지만 하여간 기대만빵이었던 건 확실하다. 그리고 거의 언제나 그러하듯, 기대가 크면? 그래, 실망도 큰 법. 아쉽게 이 책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책의 본문이 511쪽에서 끝나는데, 511쪽이라 해도 그리 크지 않은 폰트와 빽빽한 편집,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저 오래전 알렉시 헤일리의 <뿌리>부터 시작한 흑인 노예와 탈출 이야기에 단련된 독자를 자극할만한 장면이 (거의)없는 순한 맛, 그러니까 독한 노예농장 감독과 농장주, 그들이 가하는 채찍질과 고문 같은 것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아, 이 독후감을 업로드할 날이 극강의 무더위가 지배할 8월 8일 경이 될 걸로 보이는데, 읽다가 엉덩이에 뾰루지 생기지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이걸 거꾸로 이야기하면, 그래서 착한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대하지 마시라니까 글쎄. 착한 작품이 재미있는 거 몇 번이나 보셨어?


  작품은 버지니아 주의 가상 군郡 맨체스터 카운티와 이에 속하는 지역의 농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맨체스터 카운티는 훗날 버지니아 연방 역사상 다른 카운티들, 애머스트 카운티, 넬슨 카운티, 어밀리아 카운티, 해노버 카운티 등에 분할되어 먹혀 버려 사라지게 되며, 그곳에서 있었던 모든 서류 역시 1912년의 대 화재로 인해 몽땅 불에 타버렸다고 했다. 이렇게 해 놓아야 작가가 자기 마음대로 허구를 쓸 수 있을 테니까.

  늘 그렇듯이 이 카운티에도 막강한 권력을 쥔 두 명의 부르주아가 있어 처음엔 사이 좋게 지내다가 날이 갈수록 점점 척이 지는데, 서부영화에 자주 나오듯 서로 총질도 하고 그랬지만 몬태규와 캐플릿 가문처럼 늘 살벌한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이 가운데 한 집안의 대장이 노예 113명을 소유한 맨체스터 최고 권력가이자 로빈스 농장의 주인 윌리엄 로빈스 씨.

  우리는, 아니, 나는, 그동안 소위 문학작품을 통해 보아온 노예 농장의 농장주들이 노예들에게 얼마나 잔혹한 만행을 저질렀는지 보아왔기 때문에, 로빈스 씨가 등장할 때부터 이 양반도 카운티의 주요 핵심 멤버들을 초빙해 점심 만찬을 즐기는 가운데 여흥으로 도망 노예를 피와 살이 튀게 채찍질하고, 반쯤 죽어나간 노예의 생식기를 잘라 입에 물린 다음,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이는 장면을 농장의 모든 노예들을 두 눈 똑바로 뜨고 보게 하는 동시에 만장하신 백인 만찬 참석자의 소화효소 생산에 도움을 주리라고 짐작했다. 이래서 교육이 중요하다. 그간 읽고 배운 게 그런 거 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잖아?

  그러나 로빈스 씨는 이에 비하면 정말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다. 계급간 확실한 경계를 지키는 것은 당시 농장주들의 윤리에 입각하면 당연한 것. 노예를 자신의 재산으로 취급한 것도 당시 윤리와 부합한다. 그러나 잔혹한 면은 없다.

  노예 가운데 오거스터스 타운센드라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손재주가 뛰어나고 매워 목수와 목각으로 이름을 떨쳤다. 아직 스무살도 되지 않아 오거스터스가 만든 책상, 의자, 장식장 같은 건 명품이라 해도 그리 손색이 없을 정도이고, 온갖 동물과 저택을 조각한 지팡이 같은 소품 역시 한 번 본 이들이라면 구입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정도의 솜씨를 자랑했다. 로빈스 씨는 오거스터스로 하여금 가구와 목각품을 만들게 하고 그것을 팔아 자신은 마땅한 수수료만 챙기고 나머지 이익금을 전부 젊은 노예에게 주었다. 정확하게 수수료를 어떻게 계산했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작품이 끝날 때까지 로빈스 씨가 하는 행동을 보면 (아마도) 수긍할 만하지 않았겠는가 싶다. 그리하여 오거스터스 타운센드는 겨우 스물두 살 때 노예 신분을 스스로 사들여 자유인이 된다. 그리고 스물다섯 살이 되는 해에 스물여섯 살인 아내 밀드레드의 몸값을 완불한다. 다만 이제 겨우 아홉살이 된 헨리의 신분을 사기 위하여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는데, 헨리가 다양한 방면으로 로빈스 씨의 마음에 들었고, 아빠 오거스터스를 닮아 손재주가 있어 가죽을 두드려 신발 만드는 일은 근동에 비교할 상대가 없었다.

  로빈스 씨는 아내와 딸 하나만 두었다. 애설과의 혼인생활에 유별난 문제가 있었다고는 보이지 않지만 세월이 갈수록 조금씩 멀어진 건 확실하다. 로빈스는 자신의 노예 가운데 딱 한 명의 여성 노예 필로메나와만 연인관계를 유지했다. 깊은 사이가 되자 그는 필로메나를 농장을 떠나 맨체스터 카운티 내의 집을 한 채 구입해 그곳에서 살게 하며 사이에 도라와 루이스를 낳았다. 오히려 필로메나가 로빈스 씨의 속을 썩이는 일이 발생했지만 그는 묵묵히 견뎌내고, 후에 뇌졸중으로 생을 마감할 때, 유색인종으로 구분해야 마땅한 딸 도라가 최후의 순간까지 병상을 지킨다.

  로빈스 씨가 맨체스터 필로메나의 집에 갈 때마다 사나흘씩 묵었다. 며칠 후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새벽이었다. 하루를 줄이기 위해 밤에 길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면 날이 더우나, 추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저택의 정문 앞 언덕배기에서 벌판을 바라보고 한 흑인 소년이 서서 그가 눈에 보이면 냅다 뛰어가 주인 나리, 돌아오셨습니까, 반갑게 반겨주는 게 헨리 타운센드였으니 특별히 마음에 들 수밖에. 그리하여 몇 년 후, 오거스터스 타운센드가 드디어 아들 헨리의 몸값을 지불하고 자유인으로 만들자, 로빈스 씨는 헨리를 물심양면으로, 그러나 티 나지 않게 도와 그로 하여금 처음엔 작은 농장을 경영하게 하다가 훗날에는 30명의 노예와 50에이커의 제법 큰 농장의 주인이 되게 해준다. 자신의 땅을 싼 값에 넘겨주어서. 그리고, 헨리 타운센드로 하여금 해방노예가 아니라 노예의 주인으로서 처신하는 태도, 말, 행동 같은 것도 체득하게 만든다. 이리하여 헨리는 해방 노예이되 의식은 해방 노예라기보다 노예를 거느린 농장주, 노예들의 주인 나리에 더 가깝다.


  해방 노예가 자신의 근본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농장과 노예의 주인이 되는 일. 이것 때문에 아버지 오거스터스와 회복할 수 없을 지경으로 사이가 벌어진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오거스터스와 어머니 밀드레드는 목공과 목각으로 번 돈을 맨체스터 읍내 자신의 집을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의 역으로 만들고, 이 급행열차를 타고 북으로 갈 도망 노예를 지원하기 위해 썼던 거였다. 한 예도 나온다. 1843년, 부모와 따로 떨어져 살 때 아들 헨리에게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해준 여자 노예 리타를 뉴욕에 보내는 지팡이와 함께 나무 박스에 포장해 우편으로 보내는 장면. 이때는 제대로 된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의 역장은 아니었지만 이 사건이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이러니 오거스터스는 아들 헨리가 노예를 구입했다는 걸 용서할 수 없다. 그래서 자기가 공들여 깎은 눈부신 조각을 한 지팡이로 헨리의 어깨를 내리쳐 (아마도 쇄골이겠지) 뼈를 부러뜨렸고, 헨리는 지팡이를 빼앗아 두 동강을 내버렸다. 이후 둘은? 서로 안 봤다.

  이건 주state 별로 봐도 처지가 비슷하다. 커미티에 살며 수공업을 해 돈을 버는 아버지 오거스터스는 자기 말고 별다른 조수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반면에 아들 헨리는 50에이커, 6만1,200평의 농장을 운영하기 위하여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남북전쟁 당시 노예해방을 주장한 북부 주가 오거스터스, 남부 주가 헨리와 비슷한 처지. 이들 사이에 한 판 다툼이 어쩌면 피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이라면 협상을 통해 해결하겠지만 당시에는 주먹 센 놈이 장땡이었으니까.

  존 스키핑턴이라는 이름의 맨체스터 카운티 보안관도 크게 선한 인간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은 백인으로 등장한다. 상대가 백인이거나 자유 흑인이거나 가리지 않고 오직 연방과 주 법이 지정한 대로 평등하게 다루려고 하는 크리스천. 훗날 6촌 형제인 스키핑턴 변호사에게 횡액을 당하는데, 변호사도 천연두로 처자식이 몰살하는 바람에 성격이 확 비뚤어진 것처럼도 보이고, 원래가 그런 놈이었던 것도 같고 뭐 그렇다. 이렇게 부유한 백인 출신 가운데 진짜 악당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여백을 메꾸는 악한은 농장의 관리자 역을 하는 충성스러웠던 노예, 체로키족 출신의 카운티 소속 노예 순찰대원, 그리고 이가 두 개밖에 남지 않은 추악하고 늙은 노예 투기꾼. 순서대로 흑인, 아메리카 원주민, 가난하고 늙은 백인.

  웃기지? 이 악당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해 악행을 벌이는 시기가 헨리 타운센드가 병으로 생을 마감한 다음이다. 분명하게 헨리 타운센드가 주인공이건만, 헨리는 작 초장에 숨이 넘어간다. 원래 자유민으로 태어난 헨리의 아내 캘도니아가 스물여덟 살에 과부가 되고, 악당들에 의하여 이러저러한 사건이 벌어진 후에 윌리엄 로빈스 씨의 피부색 다른 친아들 루이스가 과부에게 청혼해 혼인을 하기까지, 에드워드 P. 존스는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를 꾸려나가는데… 솔직하게 말씀드립자면, 8할은 지겨운 느낌, 2할은 처음 읽은 노예 시절의 차분한 이야기를 들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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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08 1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제도든 100%나쁜놈만 있는건 아니니까 이런 소설도 있는거겠지요. 한편으로는 또 백인들의 면죄부용인가하는 삐딱한 시선도 가져봅니다. ㅎㅎ 하여튼 제가 딱히 순수하지 못해서 말이죠. 약간 노예제 시절의 스토너 느낌도 나구요.ㅎㅎ

Falstaff 2025-08-09 05:53   좋아요 1 | URL
그럼요. 뭐든 다 좋을 수 있겠습니까. ㅎㅎㅎ 그냥 그렇게 사는 거죠.
삐딱한 시선이 세상을 발전시키니까요, 바람돌이 님은 건강하신 겁니다! ㅎㅎ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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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노 디아스는 1968년 12월 31일에 도미니카 공화국의 수도 산토도밍고에서 태어났다. 나고 하루만에 우리 나이로 두 살이 됐군. 7남매 가운데 셋째로 많은 식구들 먹여 살리느라 아버지는 주노가 어렸을 때 미국 뉴저지로 떠나, 유년기까지 어머니와 외조부모 슬하에서 자랐다. 여섯 살이 되어 가족도 뉴저지의 도미니카 타운으로 가 합류했다는데, 이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뉴욕의 거대한 쓰레기 매립지가 있었던 모양이다.

  작품의 주인공 오스카 데 레온의 엄마 벨리시아 카브랄은 도미니카 공화국의 가장 유명하고 솜씨 좋은 외과의사와 간호사 사이의 세 딸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 순간부터 말 그대로 “눈 뜨고 보기 힘든” 역경의 세월을 보내다가 10대 후반에 고모이자 양어머니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이민해, 그곳에서 맏딸 롤라와 아들 오스카를 낳아, 직장 세 군데를 다니는 억척을 떨어 두 아이 다 대학까지 다 마쳤다. 이렇게 인생 험하게 살다가 암으로 세상 뜬다. 엄마는 미국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지만, 대개 소설에서 남편은 다 개자식들이라, 아이들이 유년기일 때 집을 나가버렸다.

  (‘도미니카 공화국’을 ‘도미니카’와 헛갈리지 마시라. 멀지 않은 곳에 있지만 엄연히 다른 나라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야구 잘하는 나라이자 오스카의 할머니 라 잉카가 사는 나라는 도미니카 공화국이다.)

  작가 주노 디아스와 작품의 주인공 오스카 와오는 이렇게 다르다. 그러면 주노 디아스는 작품에서 사라졌나? 아니다. 책 전 분량은 아니지만 많은 페이지에서 화자 ‘나’로 등장한다. 주노를 알파벳으로 쓰면 Junot. 작품에서 벨리시아의 맏딸 롤라와 한 시절 연애도 하고 사랑도 했지만 주체하지 못하는 바람기 때문에 걷어 차인 청년 유니오르Yunior로 등장하는 걸로 보인다. 키 크고, 흑진주처럼 새까맣고, 아름답기까지 한 육상선수 출신의 누나 롤라는 초고도비만에 못생긴 동생 오스카를 살뜰하게 보살피고, 응원하고, 격려하는, 정말 나도 이런 누나 있었으면 싶을 정도로 동생을 사랑하는데, 유니오르가 대학 다닐 때 롤라의 부탁을 받아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오스카의 기숙사 룸메이트로 들어가 자연스럽게 오스카와 친해지는 역할을 맡았다. 이렇게 해서 유니오르는 문제적 가족 벨리시아-롤라-오스카의 뉴저지와 도미니카에서의 행적과 앞 세대의 몰락을 알 수 있게 되며, 훗날 이들의 삶을 작품으로 쓴 것. 유니오르라는 반 자전적 캐릭터와 아버지의 부재가 이 작품에만 등장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 1990년대 초기 단편집부터 등장했으니 디아스의 대표적 특징이라고 해도 좋을 듯.


  책 좀 읽는 인간들이 도미니카 공화국, 하면 아마도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2000년 작품 <염소의 축제> 아닐까 싶다. 1961년 5월 말에 차를 타고 가다가 기관총의 집중사격을 받아 암살당한 독재자 라파엘 트루히요. 국가의 거대한 부를 트루히요 일가가 독점하다시피 하고, 공화국의 어리고 예쁜 여자 아이들은 언제나 자기 마음대로 품을 수 있다고 여긴 염소. 한 인간이 30년 동안 절대 권력을 쥐고 보니 이제 스스로 자신이 신, 하느님과 진짜 초등학교 동창쯤 되는 것으로 착각한 게 틀림없다. 처음에는 공화국 안에서 자기 시민들, 정적들을 불법 구금한 채 잔인하게 고문하고 처형하다가 이웃나라 아이티의 민간인 수만 명을 학살하더니, 뉴욕에 거주하고 있는 반 트루히요, 반정부 인사들도 암살했다. 그것도 모자라 베네수엘라의 대통령까지 베네수엘라 땅에서 암살을 시도해 대통령과 국방부장관에게 부상을 입히고 군인과 경찰 등이 목숨을 잃게 하는 등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어질 즈음해서, 더 이상 눈 뜨고 보지 못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아이젠하워는 도미니카의 경제를 무너뜨려버렸다. 그러니 죽을 수밖에.

  트루히요 자신은 하느님의 초등학교 동창 정도로 생각했겠지만, 공화국 국민들은 어땠을까? 신이라기보다 악마로 여기지 않았을까? 저 먼 시절, 아프리카에서 출발해 서인도제도에 도착한 것은 노예만이 아니었다.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불운의 창에 맞은 흑인의 음울한 그림자 속에 함께 도착한 것은 푸쿠 아메리카누스, 또는 흔히 푸쿠라고 불리는 모종의 파멸이나 저주를 가리켰다. 파멸과 저주의 유령은 도미니카공화국의 근대사 20세기에 들어서도, 특히 트루히요가 통치했던 31년 동안 낮게 깔린 먹구름처럼 섬의 동쪽을 지배했고, 트루히요가 죽어서도 그 시절에 몸과 마음에 밴 공화국민의 의식에서 사라지지 않았단다.


  오스카의 할아버지 아벨라르 루이스 카브랄은 1940년대 최고의 수술 외과의사로 명문가의 명맥을 잇고 있었다. 그에게는 어여쁜 아내 소코로와 총명한 두 딸 재클린, 아스트리드가 있었다. 행복했다. 아이들은 영어와 프랑스어, 라틴어를 구사할 수 있었고, 놀라운 학업 성과를 얻어 재클린은 프랑스에서 의학을 공부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언제나 아이들이 아니었다. 키만 크고 비쩍 마른 재클린이 한 순간에, 정말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 눈이 동그래지고, 몸이 풍만해져 보는 사람마다 눈을 떼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카브랄 박사는 불안했다. 그래서 아내 소코로는 심각한 우울증에 걸려 집밖 외출을 하지 못할 지경이며, 재클린은 엄마를 돌보느라 짬을 낼 수 없다는 거짓말을 트루히요와 그의 측근들이 믿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이 가려지나? 특히 아름다운 여성이 있다는 것이? 그렇게 어느날 카브랄 박사 내외와 맏딸 재클린을 대통령 궁의 파티에 초대한다는 초청장이 왔다. 이제 남은 것은 해변으로 가 보트 한 척을 빌려 푸에르토리코로 가서 다시 미국으로 떠나는 일이었지만, 이렇게 어리고 예쁜 딸, 겨우 열댓살의 아이를 설마 50대 중반의 (당시 기준으로) 노인이 손을 대겠는가 싶어, 그러나 안심이 되는 건 아니라서 아내와 재클린은 그냥 집에 머물게 하고 아벨라르 혼자 파티에 참석했다. 그리고 며칠 후, 대통령에 관한 유언비어 배포와 반역 혐의로 체포되어, 차마 내 독후감에 다시 옮기기 힘든 방식의 고문을 받다가 미쳐버려, 감옥에서 몇 년 후에 죽음을 맞는다.

  이때 소코로는 임신 상태였고, 배 속의 아이가 오스카 와오의 엄마 벨리시아 카브랄이다. 언니 재클린과 아스트리드는 납득하기 어려운 사고로 어린 나이에 죽고, 엄마 역시 벨리시아를 낳자마자 죽어 시골의 악마 같은 가정에 입양된 벨리시아는 노예 수준의 하녀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몇 년 지나 벨리시아를 구출해 자신의 딸로 삼아 키운 사람이 오스카가 할머니라고 부르는 라 잉카. 갓 과부가 되어 죽을 때까지 상복을 입고 지낼 라 잉카가 벨리시아를 찾아냈을 때는, 저주받을 부부의 남자가 끓는 기름을 벨리시아의 등에 부어 끔찍한 상처가 난 상태였고, 그 몸을 한 채 닭장 안에 가두어 놓고 있었다. 그래도 살아 남아야 했던 어린 벨리시아. 이후 라 잉카가 아무리 좋은 교육을 시켜도 생존을 위해 충분히 단련해야 했던 야만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무리한 연애를 두 번 경험하고, 나이 든 유명 갱스터의 아이를 임신했건만, 세상에나, 갱스터가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은 그의 아내 이름이 소이 트루히요, 염소이자 유령이자 공포, 저주의 독재자 트루히요의 여동생이었던 거다. 당연히 벨리시아의 임신상태는 출산 전에 해소되었지만 문제는 임신중단의 방법. 경찰로 보이는 건장한 체구의 두 남자에게 사탕수수 밭으로 끌려가 극악한 수준의 폭행을 당한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 벨리시아의 목숨마저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엄마이자 5촌 고모 라 잉카는 10대 후반의 벨리시아를 미국행 비행기에 태우며 울었다.

  이제 남은 것은 벨리시아의 아이들. 롤라와 오스카. 진짜배기는 소개하지 않겠다. 재미있는 작품이라 읽어보시라는 뜻으로.

  오스카 와오. 벨리시아가 와오라는 이름의 남자와 결혼해 낳은 아이들이냐고? 아니다. 오스카가 못생긴 초고도비만자라 오스카, 와우, Wow! 가 오스카 와오로 바뀐 것. 못생기고 비만이며 환상문학, 장르물, 게임과 피규어 세상에 머무는 청년. 여자와 잠자리는커녕 키스 한 번 못해본 유일한 20대. 그의 짧은 인생을 타이틀로 하면서 카브랄 가의 불행을 통해 본 도미니카공화국의 현대사. 아쉬운 점은 무거운 주제에 비해 오스카와 유니오르의 성적 환상과 집착이 과하게 과장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거였다. 바르가스 요사의 <염소의 축제>가 그만큼 큰 것인지도 모르겠다. 좀 더 무겁게 썼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는데, 또 그렇게 썼다면 요사의 작품을 능가하기 쉽지 않기도 하고, 그래서 여차하면 유사품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직전에 읽은 폴 비티의 <배반>도 그렇고 이 작품도 마찬가지, 소위 21세기 100대 소설 목록에 들어 있어 찾아 읽었는데, 미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은 독자를 재미있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절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좀 들었다. 과한 말장난과 잔재주가 가끔은 독자를 짜증나게 할 수도 있는데 말이지. 다음 작품도 21세기 100대 작품으로 선정된 미국 작가인데 또 그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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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2025-08-07 06: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에서 Falstaff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요. 특히 Wow! <- 이 부분이요. ㅎㅎㅎ 실감 나게 써주셔서 단숨에 후루룩 읽었어요. 재밌으면서도 슬플 것 같아요. 다음 작품도 기대 ‘만땅’ 하고 있겠습니다. :)

Falstaff 2025-08-07 06:08   좋아요 1 | URL
넥. 이 책, 재미있습니다. 아프리칸 미국인들 차별 이야기 같은 거하고는 다른 재미. ㅎㅎ 근데 젊은 남자의 리비도에 촛점을 맞춰서 여성들이 공감하실지 ㅎㅎㅎ 남자새끼들 다 그렇답니다. ㅋㅋㅋㅋ

yamoo 2025-08-07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드뎌 제가 먼저 읽은 작품의 독후감이 올라오는 날도 있군요!!ㅎㅎ
주노 디아스의 책을 한꺼번에 3권을 사서 이게 제일 유명하다고 해서 읽어 봤는데, 나름 읽을만한데, 그리 인상적이지는 않았습니다. 마지막 문단이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었네요...ㅎㅎ 저는 이제 이 책의 리뷰를 쓸 필요가 없어졌어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뽈님께서 마지막문단에 떡~~하니 쓰셔가지구..^^

Falstaff 2025-08-08 04:51   좋아요 0 | URL
그래도 리뷰 한 번 쓰실 걸 그랬습니다.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 다른 법인 걸요.
오늘 또 흑인 노예 이야기.... 당분간은 흑인 문학은 좀 쉬어야겠습니다. 에휴... 사는 게 참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