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레아스와 멜리쟝드 20세기 프랑스 희곡선 12
모리스 마테를링크 지음, 유효숙 옮김 / 연극과인간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 1862-1949)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를 발견한 순간, 일각의 망설임 없이 집어든 것은 우습게도 원작자인 마테를링크가 아니라 클로드 드뷔시가 작곡한 동명의 오페라 때문이었다. 드뷔시의 음악에 관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로맹 롤랑의 작품 <장 크리스토프>. 이제 거장 작곡가의 자리에 오른 장 크리스토프가 친구 올리비에와 함께 극장에 가서 드뷔시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를 감상한다. 1막이 끝나고 이들이 나누는 대화.

 

  올리비에: 어떤가, 자넨 어떻게 생각해?
  크리스토프: 끝까지 이런 식으로 나가나?
  올리비에: 응
  크리스토프: 그럼 아무 것도 없군.
  올리비에: 자넨 정말 속물이네.
  크리스토프: 전혀 아무 것도 없어. 음악이 없어. 반전이 없어. 앞뒤 맥락이 없어. 앞뒤 관계가 없어. 무척 섬세한 화성은 있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 것도 아니야. 그야말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지.

 

  사실 나는 드뷔시의 <펠레아스...>를 그리 잘 듣지는 않았지만, 누가 이 작품을 좋아하느냐고 물어보면, 감히 드뷔시, 인상주의 천재가 작곡한 유일한 오페라에 관해서 솔직한 의견을 내지 않았었다. 지금이야 한 마디로, 골 아파서 안 들어, 라고 하는 단계이지만 젊은 시절의 나는 혹시라도 누구한테 까일까봐 비겁하게 몸조심을 했다. 뭐 당신들은 그런 적 없는가. 다 사는 게 그렇지. 그러다가 고전음악에 권위가 있는 로맹 롤랑이 <장 크리스토프>의 입을 통해 위와 같이 말하는 걸 듣고, 세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각성을 해 다른 건 몰라도 ‘감상’에 관해서는 솔직해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속 좁은 사람들이 항용 그러하듯이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해결하고 넘어가야 하는 장애물 가운데 하나로 치부하고 있었다. 같은 프랑스 언어를 사용하는 마테를링크와 드뷔시가 서로 협의 하에 대본작업을 하고 화성을 입혀 오페라가 탄생했는데 이 과정에 두 명의 천재들 사이에 격렬한 논쟁도 있었다고 한다, 라는 걸 애초에 알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희곡집을 발견했으니 어찌 순간의 망설임이 있을 수 있었을까.
  먼저 드뷔시를 경험해보았으니 그것부터 이야기해보자. 드뷔시의 <펠레아스....>를 듣는 건 장 크리스토프가 얘기한대로 섬세한 화성을 듣는 일이다. 처음 장면, 숲 속 외딴 연못가에 아름다운 멜리장드가 길을 잃고 앉아 있는데, 사냥을 하다 역시 길을 잃은 골로가 도착해 멜리장드를 데리고 가는 장면까지, 마치 아련한 몽환 속을 헤매는, 여태 별로 들어본 적이 없는 꿈결 같은 화성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이 다음이 문제다. 일찍이 옛 어른들께서 말씀하셨듯, 꽃노래도 삼세번인데 이건 세 시간에 육박할 때까지 노냥 비슷한 (것처럼 들리는) 화성이 계속되니, 객석의 관객들은 가사 또는 반수면 상태에 빠지는 것이 또 당연하다. 이런 드문 경험(오케스트라 반주에 의한 깊은 수면)을 하고 극장을 나서면서, 그래도 드뷔시의 유명한 작품 <펠레아스....>는 역시 걸작이야, 입을 털지 않으면 무식하다는 얘기를 들을 거 같아 전전긍긍하는 인종들이 모르긴 모르지만 무진장 많을 거 같다.
  그런데, 오페라 대본과 거의 비슷한 마테를링크의 원본 희곡을, 원어인 프랑스 말이 아니라 우리말 번역을 읽었는데도, 놀라워라, 물론 역자 유효숙이 될 수 있는 대로 원문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몽환과 에스프리를 느낄 수 있도록 번역을 해서 그랬겠지만, 오페라를 들을 때와 유사하게 시적인 감상, 이미지즘 적 몽환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런 효과음도 없이 다만 배경, 즉, 연못, 바닷가 동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탑, 바다가 보이는 방과 짧고 연속적인 문장들로.
  이런 효과를 더 높이기 위해 1893년 초연 당시, 골로로 직접 출연까지 했던 연출가 뤼네-포는 명도가 낮은 조명을 머리 위에서 내리 비추게 했고, 반투명 막을 무대 전면에 걸어 배우들의 모든 행동과 동선이 마치 안개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엽기 치정극이다. 적국의 공주와 혼인하기 위해 떠난 홀아비 왕자 골로가 도중에 사냥을 나갔다가 길을 잃어 도착한 연못가에서 연못에 왕관을 빠뜨린 채 울고 있는 멜리장드를 만나 결혼하고, 멜리장드와 함께 성으로 돌아오니 엉뚱하게 동생 펠레아스와 정분이 나, 이걸 참지 못해 펠레아스를 쳐 죽인다. 멜리장드 역시 핍박당하지만 결국 딸을 낳고 죽는다는 이야기.
  멜리장드를 취하는 장면은 유럽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물귀신 이야기, 예컨대 널리 알려진 <루살카>나 로르칭의 <운디네> 이야기의 한 에피소드와 적어도 많이 유사하다.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의 불륜관계는 여지없이 단테의 <지옥>에서 지옥에 떨어져 “가장 비참할 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건 없다.” 요지랄을 하는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와 많이 비슷하다. 골로는 <지옥> 장면에서는 조반니 말라테스타의 대체 인물이랄 수 있다. 한 가지 다른 건, 골로는 멜리장드의 몸을 통해 딸을 낳는 거 하나가 있지만.
  하지만 역시 이 작품의 매력은 스토리가 아니라 희곡을 읽어가면서 저절로 감응하게 되는 모호한 몽환과 신비의 색채이다. 이외에도 숱하게 많은 비유와 해석이 가능한 다중적 작품이라 읽은 사람들마다 감상이 다 다를 것이 분명하다. 1893년에 초연되고, 드뷔시가 오페라로 만들어 1904년에 초연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분명히 이미 고전 희곡의 자리에 오른 작품. 이제야 읽어 어찌 만시지탄이 없으리.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아 2021-07-06 10: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 할 일이 많아지는 리뷰네요!ㅎㅎ 드뷔시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를 듣고
<루살카>,<운디네>가 어떤 이야기인지 슬쩍 찾아보고 마지막에 이 책도 읽구요. ‘파올로와 프란체스카‘는 무수히 변주되었을 듯 합니다.😆

Falstaff 2021-07-06 10:54   좋아요 5 | URL
ㅎㅎㅎ 우짜 그걸 다 하시려고요.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만만치 않은 걸요.

청아 2021-07-06 11:07   좋아요 3 | URL
유튭으로 찾아놨어요ㅋㅋㅋ스콧님과 폴스타프님 덕분에 온통 클레식입니다.✌

Falstaff 2021-07-06 11:13   좋아요 3 | URL
아, 유튭이면 라흐마니노프의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 rachmaninoff francesca da rimini>도 검색해보셔요.
그게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불 붙는 오페랍니다. 완전 러시아판 치정 잔혹극. ㅋㅋㅋ

청아 2021-07-06 11:12   좋아요 2 | URL
오호! 러시아판!!!감사합니다ㅋㅋㅋㅋ

잠자냥 2021-07-06 11: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불면증 환자에게 드뷔시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와 마테를링크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를 동시에 처방하면 꿀잠 직행이로군요?! 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7-06 11:35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 잠자냥 님 재치가 만땅이셔요. ㅋㅋㅋㅋㅋ 바로 직행 맞습니다.

syo 2021-07-07 1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급독서와 클래식, 오페라 막 이런 품격있는 음악은 기필코 같이 가는 건가요?? 🥲 오늘날 이 시점까지 드뷔시가 드비쉬인줄 알았던 음알못 syo는 서재이웃님들이 음악에 대한 박식을 공개하실 때마다 우옵니다😢

Falstaff 2021-07-07 11:43   좋아요 0 | URL
흥. 뽕짝 얘기할 때는 한 마디도 안 하시더니, 뭐 음악 차별하는 거예요? ㅋㅋㅋ
세상에 음악에 품격이 어딨어요. 듣는 사람하고 맞느냐 아니냐 이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톨스토이냐 야설이냐! 난 둘 다 기호에 맞는 사람입니다. 물론 직격으로 비교는 상상도 못하겠지만, 이들 사이에 다른 건, 내놓고 보느냐, 숨어서 보느냐의 차이 말고, 또 다른 호오의 관점이 있나요?
우리의 초사이언, 사이오 님 그렇게 안 봤는데 차별을 허시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21-07-07 11:46   좋아요 0 | URL
뽕짝 그건 저도 꽤 아는 거니까요 ㅋㅋㅋㅋ 😆 나도 좀 아는데 남이 아는 게 뭐 그리 특별해보이겠어요 기본지식인가보다 했지 ㅋㅋㅋㅋㅋㅋㅋ 제가 클래식을 겁나 많이 알고 뽕짝을 하나도 몰랐으면 폴스타프님 뽕짝 페이퍼에 이런 댓글이 달렸겠죠? ㅋㅋㅋ
 
크리스마스 캐럴 펭귄클래식 43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급기야 읽고 말았다. 몇 번에 걸쳐 안 읽겠다고 광고를 했었지만. 글쎄 이게 디킨스의 힘이라니까. 본문이 2백 쪽 조금 넘어 그냥 <크리스마스 캐럴> 한 작품이겠거니 하고 아무 생각 없이 골랐더니, 디킨스가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해서 쓴 에세이와 단편소설을 포함한 모음집이다. 이 가운데 <크리스마스 캐럴>만 따지면 136쪽 분량. 이것만 가지고 책을 엮기엔 분량이 애매할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펭귄 클래식 원본도 모두 일곱 편의 작품을 실은 것처럼 보인다. 불만 갖지 말자.
  작품은 당연히 중편 분량의 표제작이다. 이외에도 <크리스마스 케럴>을 쓰기 위한 워밍업처럼 읽히는 <교회지기를 홀린 고블린 이야기>도 들어있다. 고블린, 유령과 도깨비의 중간단계. 주로 무리지어 생활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유령보다는 도깨비라고 해야 마땅하겠다. 옛날 옛적에 가브리엘 그럽이라는 이름의 교회지기가 있었는데, 교회지기라 함은 교회를 돌보면서 교회묘지에서 무덤 파는 일을 겸했던 사람이다. 그럽 씨는 성질이 괴팍하고 고집스럽고 무뚝뚝한 사람으로 성격 역시 까다롭고 침울한 외톨이 성향으로 몇 백 년이 흐르면 이런 스타일을 ‘외로운 늑대’라고 칭할 전형적인 사람이다.
  이이가 비록 교회지기라 하지만 유럽 사람들 최고의 명절인 크리스마스가 다가와도 그게 도대체 나하고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이냐, 하는 심정으로, 하필 또 때맞춰 죽어준 사람이 있어 성탄전야에, 아이고 잘 됐다 싶게, 필요도 없는 성탄전야 만찬이나 뭐나 하여튼 별 잡스런 모임에 가는 대신 밤이 내린 묘지에 가서 내일 하관을 할 묘지를 파는 일을 하기로 했다. 그래 삽을 가지고 가 땅을 다 파놓고 넓은 묘석에 앉아 담배 한 대에 질 나쁘고 쓰기만 한 네덜란드 진 한 모금을 마시려는데, 앞 묘지의 묘비에 길고 괴상한 모습의 다리를 달고, 힘줄로 불거진 맨 팔을 내놓았으며, 깃털 장식이 하나 달린 원뿔 모자를 쓴 고블린이 자기를 빤히 바라보고 앉았는 거 아니냐 말이지. 그래 기겁을 했는데 이에 그치지 않고 고블린이 자기 머리통을 잡아 아래로 꾹 누르니까 몸 전체가 땅 밑으로 쑥 들어가 고블린들의 앞마당으로 떨어져버렸다. 거기서 생고생을 하고, 다음날 눈을 떠보니 자기가 앉았던 넓은 묘석에 누워 서리를 덮은 채 잠을 자다 깬 거였다.
  가브리엘 그럽 씨는 그 길로 삽과 진이 든 병과 기타등등 사소한 물품을 팽개친 채 외지도 도망을 가,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마을로 돌아와 성탄을 축복하며 지내더라는 이야기. 뭐 한 마디로 <크리스마스 캐럴> 같은 동화 비슷하다.
  <크리스마스 캐럴>은 수없이 많이 각색되어 갖가지 콘텐츠로 발표가 된 작품이라 누구나 내용을 알고 있을 듯하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각색 과정에 분량을 줄이기 위해 몇 가지 생략한 에피소드는 있을지언정, 아마 숱하게 접한 콘텐츠를 모아 짜깁기하면 원본과 다 맞추어질 수 있을 것. 그리하여 새삼스레 뭐 독후감이라 쓸 거리도 별로 없다. 당신에게 권하지도 않거니와, 나 역시 이럴 줄 알았으면 선택하지도 않았을 듯. 아, 몰라. 이제 디킨스는 정말 안 읽어!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테레사 2021-07-05 10: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 저도 디킨즈 좋아합니다

Falstaff 2021-07-05 10:24   좋아요 2 | URL
ㅋㅋㅋ 전 변덕이 심해서 좋았다, 싫었다, 다시 좋았다가 미워지고 막 그렇습니다.

유부만두 2021-07-05 10:27   좋아요 1 | URL
팔스타프님, 디킨스에 정드셨어요.

Falstaff 2021-07-05 10:41   좋아요 2 | URL
이거, 미운정 맞죠? ㅠㅠ

유부만두 2021-07-05 12:31   좋아요 3 | URL
고운정 2: 미운정 8 인걸로 해두죠.
(사귄지 오십 년 넘으셨죠?)

Falstaff 2021-07-05 12:52   좋아요 1 | URL
그렇게 하겠습니다. 2:8. ㅋㅋㅋㅋ 사귄 기간은 3급 대외비입니다. -_-;;
 

알라딘 22주년 기념 기록 노트라는 것을 열어봤더니 재미난 게 있다.

과거는 뭐 별로 중요하지 않고, 관심도 별로 두지 않으며 사는데 전혀 기억하지 못한, 알라딘에서의 처음 쇼핑 품목이 아주 예상 외의 것이어서, 깜짝 놀랐다.



폴란드의 국민작곡가라는 평을 듣는 스타니슬라브 모니우츠코가 작곡한 오페라 <저주받은 영지>. 내 식대로 번역하면 <유령의 장원>. 제목은 살벌한데 작품은 그렇지 않다. 이때가 아마 모니우츠코의 다른 작품 <할카>를 인상깊게 듣고 폴란드 음악과 모니우츠코의 다른 작품을 뒤적이던 때였을 것이다.

알라딘 전에는 우리나라 최대 음반사인 핫트랙을 보유하고 있던 교보문고에 집중했었는데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권태로워져서'가 제일 중요한 이유였으리라, 잠깐 응24를 거쳐 알라딘에 정착했다. 나도 놀랐다. 첫 쇼핑이 <유령의 장원>이란 것이. 그래서 알라딘 귀신이 된 건가?



그리고, 1년에 2백 권 정도의 책을 읽는 사람 가운데,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우리의 초능력자 초 사이언인 사이오 님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든 거. 바로 보관함에 쟁여 둔 책들이다.



저번에 보관함 공개한 적 있는데 조금 줄었다. 두 권 사는 데 한 달이나 걸린다고 협박하는 알라딘. 거 참. 권 수에 따라 멘트 좀 다른 걸로 깔아두지 말이야.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다락방 2021-07-03 16:4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대박!! 장바구니와 보관함에 단 두 권!! 엄청납니디!!!

Falstaff 2021-07-03 16:51   좋아요 5 | URL
ㅎㅎㅎㅎ 그게 아니라... 성질이 드러워 도무지 보관함에 오래 두지 못하고 얼른 사버려서 그런 거 같습니다. 그래서 책 검색을 여간해서 하지 않는다는 슬픈 이야기가 있습지요. ㅠㅠ

syo 2021-07-03 16:5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는 며칠 전까지 텅 비어 있던 장바구니에 장마를 맞아 열 권을 넣어 놓았사온데 하필 이런 타이밍에 이런 페이퍼를 쓰셨군요 ㅋㅋㅋㅋㅋㅋ 졌다....


Falstaff 2021-07-03 17:03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청아 2021-07-03 16:59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알라딘과 첫만남 부터가 남다르셨군요! 게다가 전 장바구니 폭파직전이라 부끄럽습니다. 저 나름 미니멀리즘 추구하는데 쩝....
존경합니다!! 우선 장바구니 1000권이내로 줄여야겠어요.😭

Falstaff 2021-07-03 17:04   좋아요 3 | URL
와우.... 천 권 이내로. 언제나 놀랍니다. @.@

페넬로페 2021-07-03 17:2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장바구니와 보관함에 책이 두 권밖에 없다니요!!!!!
저는 다 사면 거의 이천만원에 육박하더라고요 ㅎㅎ

Falstaff 2021-07-03 17:56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ㅋ 제가 알라딘에서 여태 산 거보다 더 많네요. 저도 여태 산 금액이 2천에 육박은 하지만 좀 덜 육박. ㅋㅋㅋㅋ

mini74 2021-07-03 17:33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저 ㅠㅠ 보관함에 있는거 다 지르면 동네 도서관을 이길듯요 ㅎㅎ

Falstaff 2021-07-03 17:41   좋아요 5 | URL
ㅋㅋㅋㅋㅋ 도서 대출업 한 번 생각해보심이....

청아 2021-07-03 18:06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stella.K 2021-07-03 19:10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와, 2006년이면 상당히 오랜데요?
폴님을 서재에서 뵙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인 것 같은데.
한 2, 3년전부터...?ㅎ
저는 2003년 <요셉과 그 형제들> 1권을 샀더라구요.
저도 긴가민가 하는데 알라딘에서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야죠.
다 문명의 이기 아니겠습니까?^^

Falstaff 2021-07-04 15:37   좋아요 2 | URL
그렇네요. 2006년 10월 말일부터 알라딘을 주로 이용했군요.
서재 활동은 아마 2016년 말? 2017년 초부터 써놓은 독후감을 올리는 걸로 시작한 걸로 기억하니 한 십년 동안 독립군 했군요. ^^

새파랑 2021-07-03 21:2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역시 알라딘과 첫 만남부터 엄청나셨군요~!! 전 첫 구매가 Teps책이라고 뜨네요 ㅡㅡ 공부한 기억은 없는데 ㅎㅎ 전 구매금액이 상위 1퍼센트대네요 😭

Falstaff 2021-07-04 15:38   좋아요 1 | URL
엄청나긴요 뭐. 음반이나 책이나 특별한 거 있나요.
알라디너, 말이 좋아서 그렇지 사실 자기 취미생활 하는 것 뿐이잖아요. ㅋㅋㅋ

붕붕툐툐 2021-07-03 22:3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ㅋㅋㅋ알라딘과의 강렬한 만남 덕에 여기서 폴스타프님을 친구로 계속 뵐 수 는 거군요~ 조씁니다~ㅎㅎ

Falstaff 2021-07-04 15:39   좋아요 2 | URL
그리고 툐툐님하고 인연이 되니까 서재친구도 맺고 그런 것이지요. ㅋㅋㅋ

잠자냥 2021-07-04 00:1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보니까 2007년에 첫 알라딘 구매였네요. 폴스타프 님처럼 책이 아니라 음반, 그것도 프란츠 퍼디난드 (희귀) 싱글 앨범이었고… 현재 보관함은 713권 담겨 있어서 망설이면 32개월 걸린다네요. ㅎㅎ 그 시절에 저는 알라딘에 서재라는 게 있는 줄 몰랐어요. ㅎㅎ

Falstaff 2021-07-04 17:45   좋아요 3 | URL
ㅋㅋㅋ 잠자냥 님도 CD가 시작이었군요.
그땐 책이나 CD나 잘만 고르면 할인폭이 대박인 것들이 있어서 접속하면 눈알을 굴려대는 바람에 지금보다 더 많이 샀던 거 같아요.
도서정가제 이후 오히려 책을 덜 사고 있다는 거, 이거 좀 알아야 하는데 말이지요.
 
모프라 ff 시리즈 7
조르주 상드 지음, 정희경 옮김 / 꿈꾼문고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섯 살 연하의 남성들, 시인 뮈셰와 피아니스트 작곡가 쇼팽과의 연애로 더 유명한 문필가 조르주 상드, 1804년에 파리에서 태어날 때의 이름 ‘아망틴 뤼실 오로르 뒤팽’은, 사실 1830~40년대의 영국에서는 빅토르 위고, 오노레 드 발자크보다 더 유명한 소설가였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나부터도 위고나 발자크하고는 비교 자체를 안 하지만 당시 유럽 사람들의 기호에 훨씬 더 잘 맞추어주었던 모양이다. 19세기 프랑스에서는 역사상 최초로 활동하기에 편한 남자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들이 탄생했는데, 이들 가운데 한 명인 상드는 주로 승마복을 입고 다녔다 한다. 이에 파리 경찰청에선 남자 옷을 입고자 하는 여성들은 미리 신고하라고 했던 모양. 그러나 이를 무시하고 자신 마음대로, ‘자유롭게’ 남성복을 착용한 이들 가운데 가장 앞에 섰던 인물이 조르주 상드라고 한다. 즉 상드가 여성운동 발아기의 한 축을 담당했다고 해도 그리 큰 무리는 아니다. 작가라는 직업을 이용하여 자신의 신념을 널리 알릴 수 있었으니까.
  이 책 <모프라>에서도 여주인공 솔랑주-에드몽드 드 모프라, 애칭 에드메는 남자의 독재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여성주의 소설이라 보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 그보다는 고딕소설, 기사-로맨스, 교양소설, 범죄, 역사 소설의 혼합체(위키피디어 참고)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작품의 주제를 중심으로 말하자면 낭만-계몽시대의 중요한 과제였던 “사랑과 교육”을 주제로 했다고 할 수 있다. 상드는 어린 시절을 베리 주province에 있는 할머니 마리-오로르 드 삭스의 집에서 보냈고 열일곱 살 때 할머니가 운명하자 이 집을 유산으로 받았다. 이런 이유로 상드의 많은 작품에서 베리 주와 그곳의 저택이 자주 등장한다고 하는데, 이 작품도 그렇다.

 

  프랑스의 바렌 지역. 라마르슈와 베리의 접경지역에서 가장 나무가 빽빽이 들어차고 인적이 드문 곳에 다 무너져 내린 작은 성 ‘로슈-모프라’가 있었다. 이곳의 성주 트리스탕 드 모프라는 여덟 아들을 두었는데, 이 가운데 장남 하나만 결혼하여 외아들을 두었으니 아 아이 베르나르가 남자 주인공이다. 베르나르의 어머니는 아이를 낳고 얼마 안 있어 장폐색으로 생을 마감하고, 아버지마저 몇 년 후 삶을 접고 만다.
  트리스탕의 (사촌)동생 위베르 드 모프라는, 말하자면 모프라 가문의 방계혈족이라 할 수 있다. 귀족의 차남은 스탕달의 주장에 의하면 원래부터 군인이나 성직자, 적과 흑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거의 관습이라 젊은 시절에 몰타 기사단 소속으로 평생 독신서원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세상은 그의 신념에 간섭하기를 머뭇거리지 않아 60세가 넘어 상속자를 얻기 위해 결혼을 해 딸을 낳는다. 이이의 아내 역시 딸을 낳자마자 장폐색으로 생을 마감하니 이런 우연이라니. 딸이 바로 에드메 모프라, 여자 주인공이다.
  트리스탕과, 하나 죽고 이제 일곱 명 남은 아들들, 그리고 새로이 들어온 손자 베르나르와 함께 아홉 명(또는 열 명. 작품 속의 친척관계, 구성원의 수 같은 건 앞뒤가 조금 맞지 않는다.)의 집단을 이룬 로슈-모프라 성. 저 깊은 숲속에 음산하게 자리한 성은 온갖 범죄와 죄악과 부도덕의 온상이다. 읽는 내내 사드 후작의 <미덕의 불운>이나 <소돔 120일>에서 악당들이 거주하는 외딴 산의 저택이나, 완전히 고립 단절된 성을 생각할 수도 있으리라. 이들 열(또는 아홉) 명의 구성원은 먼저 영지의 평민들을 착취하고, 이어 부근에서 강도질하고, 더 넓은 영역으로 진출해 강도, 부녀 납치 등을 하는 와중에 폭행, 살인, 겁탈을 밥 먹듯이 저지르는 부끄러움 모르는 악당들이다. 베르나르도 이들과 어린 시절을 보내며 특히 큰 삼촌 장 모프라로부터 온갖 나쁜 성향을 배워 이제 악당의 무리 가운데 하나로 접어들 상태가 된다.
  반면에 로슈-모프라에서 60리 떨어진 자신의 영지 생트-세베르 성은, 선한 기사 출신의 위베르 드 모프라와 그의 아름다운 딸, 도지사의 법률 공부를 하고 지금은 도지사의 보좌관으로 있는 약혼자 드라마르슈 씨가 편안하고 건강한 삶을 사는 미덕의 집이다. 착한 위베르는 장조카가 죽은 후 그의 아들 베르나르를 자신이 맡아서 교육하고 상당한 재산을 상속하려 했으나 트리스탕이 일언지하 거절하고 자신의 성으로 데려가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었다. 하지만 아직 베르나르에 대한 애정은 정혀 식지 않았다. 이리하여 베르나르와 에드메가 열일곱 살이 됐을 때, 사냥을 좋아하는 위베르는 집안 행사로 여우 사냥을 준비했고, 말타기를 좋아하는 에드메 역시 사냥에 참가해 말을 타고 가다가 그만 길을 잃고 만다. 이때 우연히 에드메를 만난 모프라 형제는 그를 속여 로슈-모프라 성으로 끌고 가고, 때를 맞추어 강도단 체포를 위해 들이닥친 기마경비대와 전투를 벌이게 된다.
  기마경비대와의 전투는 모프라 형제들의 우위 속에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그때마다 형제들은 에드메를 욕보이고 죽이고자 하는 시도를 엿볼 수 있는 와중에, 아직 삼촌들만큼은 악당물이 들지는 않았고, 나이도 어려 제대로 전투를 하지 못하는 베르나르가 에드메를 자신의 당고모인지도 모르고 감시하게 됐는데, 둘은 이 와중에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에드메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 이 절명의 순간을 벗어나기 위해 에드메는 베르나르의 요구대로 이미 드라마르슈 시와 약혼한 신분임에도, 베르나르에게 몸을 허락하기 전에 아무에게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한 후, 둘은 로슈-모프라 성을 빠져나온다. 이게 신의 한 수. 숨을 고르고 있던 기마경비대는 이후 일시에 공격을 감행해 루이와 피에르는 전사, 로랑과 레오나르는 가조 탑에 이르러 자살하고, 앙투안과 장, 고셰는 다른 방향으로 도주하다 고셰는 연못에 빠져 익사하고 둘은 행방불명된다. 그러니 이제 베르나르가 유일한 모프라의 직계 혈통이 된 것.
  선한 위베르는 장손 베르나르를 최대한 따뜻하게 맞아주고, 이미 채권자의 손에 넘어가버린 로슈-모프라와 영지를 다시 낙찰받아 베르나르에게 되돌려주려 한다. 이 과정에서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중요한 조연 세 명. 숲속의 현명한 은둔자 파시앙스, 장셰니즘 신부 오베르, 흰담비, 족제비, 두더지 사냥꾼 마르카스와 그의 충실한 개 블레로.
  이후 상당한 분량이 위키피디어에서 말한 기사-로맨스, 쉬운 얘기로 베르나르와 에드메의 밀고 당기기가 이어지는데, 이는 야만화 되어버린 베르나르를 예절과 품위를 아는 인물로 교육시키기 위한 에드메의 현명한 조치로 판명된다. 오베르 신부를 가정교사로 하여 라틴어를 제외한 프랑스어, 역사, 철학, 신학, 신사로의 말버릇과 몸가짐 등을 배우는 장면으로 말하자면, 위에서 애기한 바처럼, 사드 후작의 사악한 창조물들의 집단에서 건진 한 명의 탕아를 교육을 통해 개선해나갈 수 있다는 교양소설로 읽히게 만든다. 그러면 뭐하나. 여자와 남자 주인공 사이의 밀고 당기기를 읽기가 징그럽게 힘들어지는 걸. 물론 와중에 주로 장 자크 루소의 철학이 에드메의 입을 통해 설파되기도 하고, 밀당의 피곤함에 나가떨어진 베르나르의 아메리카 독립전쟁에 참전하고, 현지에서 중요한 친구 아서를 만나는 일까지 나오기는 하지만, 별다른 에피소드 없이 밀고 당기고, 오해와 질투와 그리고 남발하는 구태한 어휘들이, 아이고, 아이고, 징그럽다.
  이런 로맨스로 일관하면 재미가 덜해지니 클라이맥스로 치닫기 위한 도움닫기로 등장하는 것이 이미 독자들은 언제 나오나 궁금해마지 않던 행방불명된 삼촌들 장과 앙투안. 이리하여 소설은 또다시 범죄를 다루는 Bildungsroman, 탐정소설의 영역으로 접어든다. 여기에 시대적 배경으로 보면 주인공들이 대개 1760년 초에 탄생해 소설의 막바지에 프랑스 혁명을 겪고, 이후 전쟁에도 참전하니 책을 출간한 1837년 입장에선 역사소설일 수도 있다.
  하여튼 이런 다양한 장르의 소설 형식을 합한 형태의 작품으로, 내가 읽은 바로는, 당대에는 절찬리 환호 속에 읽혔을지라도, 이제는 구태한 대사와 조금은 억지스런 로맨스가 그리 재미있게 다가오지는 않을 것 같은 느낌.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1-07-02 09: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생각보다는 혹평이 아닌데요? ㅎㅎㅎ 저땜에 순화하신 거 아닙니까?
아, 폴스타프 님은 ˝여자와 남자 주인공 사이의 밀고 당기기를 읽기가 징그럽게˝ 힘드셨구나. 전 그 부분이 재밌었거든요. ㅋㅋㅋㅋ 특히 여주인공이 남주 막 가르치고 호통치는 거 뭔가 통쾌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좀 너무 긴 느낌은 있었어요. ㅎㅎ

Falstaff 2021-07-02 09:35   좋아요 2 | URL
ㅋㅋㅋ 순화한 거 아녜요.
전 사드의 악당들도 교육을 통해 순화될 수 있다는 교양주의를 좀 까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다른 길로 빠졌더라고요. ㅋㅋㅋㅋ

잠자냥 2021-07-02 09:40   좋아요 1 | URL
그럼 폴스타프 님은 악당들도 교육을 통해 순화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 교양주의를 까려고 하셨다는 거 보면 아닌 거 같긴 합니다만...

Falstaff 2021-07-02 09:49   좋아요 1 | URL
순화할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더 많은 시간과 치료가 필요할 거 같네요.

저는 그것보다 ㅋㅋㅋㅋ 교양주의 소설 자체를 싫어해요. 씨, 재미있으려고 소설 읽지 못된 놈들도 교육받으면 착해진다, 그러니 차카게 살아라... 아이고, 재미 없어요.
악당은 악당 같이 살다가 벌을 받든지, 아니면 나쁜 짓해서 번 이익으로 죽을 때까지 잘 먹고 잘 살든지 하고, 착한 것들은 착해서 죽을 때까지 동네북처럼 줘 터지든지, 나중엔 쨍하고 해가 뜨든지 해야 산뜻하지 않나요?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07-02 09:52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그놈의 빌둥스로만ㅋㅋㅋㅋㅋㅋ
제가 깜빡했습니다. 우리가 괴테를 싫어한다는걸 ㅋㅋㅋㅋㅋㅋㅋ(괴테 이름만 써도 진저리가 나네요;;; 아이구.... 그놈의 빌헬름마이스터....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1-07-02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드 생일(7/1)에 맞춰서 읽으셨어요?

Falstaff 2021-07-02 20:19   좋아요 1 | URL
아, 그런가요?
근데 설마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마누라 생일도 놓치는 만날 구박덩어린 걸요. ㅋㅋㅋ
 
줄리어스 시이저 - 전예원세계문학선 305 셰익스피어 전집 5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신정옥 옮김 / 전예원 / 198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의 표지만 보고 전혜원에서 출간한 셰익스피어 전집을 우습게 알지 마시라. 번역을 한 신정옥은 1932년생으로 올해 아흔을 맞은 우리나라 셰익스피어 문학의 거장이다. 신정옥이 셰익스피어 전집 번역을 모두 마쳤을 때가 1989년, 지금부터 32년 전. 당시부터 한 20년 동안 셰익스피어를 거론할 때 빠지지 않고 중요한 한 자리를 차지해왔다.
  셰익스피어 전집은 음악으로 말하자면,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가 모든 디테일에서 최고라 일컬어지는 녹음이 없고, 말러의 교향곡처럼 전곡 모두 최고로 치는 지휘자의 녹음/녹화가 없는 것과 같이, 한 전작 시리즈가 셰익스피어 모든 작품의 대표적 번역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라고 들었다. 그럼에도 내 경우엔 이 신정옥 번역의 전혜원 세계문학선을 거의 우선적으로 선택하고는 한다.
  신정옥은 이북 출생으로 경북대(학사), 이화여대(석사), 외국어대(박사)를 거쳐 명지대 영문과 교수, 퇴임 후에 명예교수로 있다. 이이는 특히 영어 극문학을 우리나라에 소개한 공을 인정받아 숱한 상을 휩쓸었으며, 한국 셰익스피어학회장을 역임했으니 이이가 번역한 셰익스피어 전집이 중요한 자료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이제 삼십 년, 한 세대가 지난 번역이어서 새로운 작업이 뒤를 이어야 하겠지만, 이 숙제를 감안하지 않는다면 신정옥의 번역이 여전히 중요한 고려의 대상이란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나는 셰익스피어를 16세기 근/중세영어 원작은커녕 현대영어로도 읽어본 적이 없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놓고 “신성(神性)에 가까운 언어 천재성”이니, “인류 역사에 빛나는 불멸의 극시인”이니 하는 말로 상찬, 또는 감격할 수는 없다. 그래도 그가 생산하고 내가 읽어본 비극 명작들이 어떻게 인간 본성의 모습을 드러냈는지 일찍이 깊게 공감했고, 이런 공감은 다른 작품들, 예컨대 이번에 읽은 <줄리어스 시이저>를 통해서도 여전하리라 믿었던 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줄리어스 시이저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영어식 표기. 카이사르는 ① 지금의 프랑스와 벨기에 지역인 갈리아 지역을 분할해 그곳의 거친 갈리아인과 게르만 인들을 복속시키는 과정과 ② 삼두정치의 파트너였던 폼페이우스와의 관계를 돌이킬 수 없어 저 유명한 “주사위는 던져졌다.”를 외치며 기어이 폼페이우스를 멸망시키는 과정을 스스로 써서 <갈리아전기>와 <내전기>를 쓴 역사가이기도 했다. 셰익스피어는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와의 내전에서 승리하고 거의 절대적인 권력을 손에 쥔 서기전 44년 3월 15일 며칠 전을 드라마의 시작으로 삼았으며, 사료의 내용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바탕으로 했단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으로 말하자면, 알렉상드르 뒤마의 작품 <몽테크리스토 백작>에서 로마에서 활약했던 강도단 두목이 시간만 나면 열독 했던 책으로, 영웅들의 동전 앞뒷면과 같은 이중성, 멋있는 앞모습과 더불어 추레한 뒷모습까지 다 보여주는 데 작품의 매력이 있다. 로마의 1대 황제가 되려다 만 율리우스 카이사르 역시 플루타르코스의 붓끝을 피해가지 못했던 바, 사자 같이 용맹하고 여우같이 꾀 많은 영웅이긴 했지만 당시엔 치명적인 약점이었던 뇌전증(간질병) 환자였던 것과,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았던 장애, 미신을 과하게 신뢰했던 것들도 모두 기록해놓았다. 플루타르코스의 붓은 오직 한 명, 카이사르의 양아들이자 로마의 첫 번째 황제였던 옥타비아누스만 피할 수 있었다. 아무리 플루 선생이라 하더라도 대 로마의 초대 황제한테 함부로 혀를 놀릴 수는 없었던 것. 그렇게 했어도 그가 이른바 로마 5현제 시절을 살다 가지 않았더라면 편하게 죽지도 못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이 <영웅전>에서 소개한 카이사르의 모습을 그대로 희곡에 옮겨 놓았는데, 엉뚱하게도 <줄리어스 시이저>의 주인공은 그를 시해한 브루투스다.
  그럼 셰익스피어가 만드는 인간들을 보자. 첫 장면은 분명히 개선하는 카이사르다. 카이사르가 아직 내전에 돌입하기 전에 굉장히 유명한 개선행진을 했던 적이 있는 바, 로마인들을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지독하게 괴롭힌 갈리아 독립군 대장이자 지금은 프랑스의 국민적 영웅인 베르생제토릭스(베르킨게토릭스)를 포로로 잡아 (개선의 경우엔 포로를 방면하여 로마에 볼모로 두거나 노예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임에도) 끌고 와, 그동안 로마가 이 영웅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수많은 로마 시민이 보는 앞에서 처형을 한 적이 있다. 하여튼 개선 행진을 마치고 원로원에 든 카이사르에게 누군가가 왕관을 바친다. 그걸 납죽 받아들면 그는 얼마 가지 않아 죽음을 맞게 될 것. 이것을 뻔히 아는 카이사르가 그 길을 따르겠는가. 그는 왕관을 건네는 손길을 손등으로 물리친다. 이렇게 세 번 왕관을 바치고, 세 번 거절하는 장면을 카시우스와 브루투스가 이야기한다.

 

  “안토니우스가 왕관을 바치는 것을 보았어요. (중략) 그는 왕관을 물리쳤죠. 그런데 말입니다, 물리치긴 했지만 제가 보기엔 여간 갖고 싶어 하는 기색이 아니었어요. 이윽고 안토니우스가 그걸 다시 바쳤죠. 카이사르는 다시 물리쳤었구. 그러나 제 생각엔 카이사르가 왕관을 놓치기가 대단히 아쉬운 듯 보였습니다. 그러자 안토니우스가 세 번째 바쳤지요. 카이우스는 세 번째 물리쳤습니다. 거절할 때마다 어중이떠중이들이 소리를 지르고 거친 손으로 박수를 치는가 하면 땀이 밴 모자를 허공에 던지며 카이사르가 왕관을 거절한다고 지독하게 냄새나는 입으로 어찌나 떠들어 대는지 카이사르는 숨이 막혀서 거의 질식한 듯 기절하여 그 자리에 쓰러졌지 뭡니까.”

 

  카이사르가 카시우스와 브루투스 등의 손에 암살을 당하고, 그를 추모하는 연설에서 안토니우스는 같은 사안에 대하여 이렇게 로마시민들에게 웅변한다.

 

  “야심이란 이보다 더 냉혹한 마음에서 생기는 법. 그런데도 브루투스는 그를 야심가라 하오. 어쨌든 브루투스는 고매한 분이오. 여러분은 보셨을 거요. 루페르쿠스 제전 때 내가 세 번씩이나 카이사르에게 왕관을 바쳤지만 세 번 다 거절한 것을. 이게 야심이오? 그런데도 브루투스는 카이사르가 야심을 품었다고 말했소. 분명 브루투스는 고매한 분이시오. 내가 브루투스의 말씀에 대항하는 건 아니오. 다만 아는 바를 말하기 위해 여기 있는 것이오. 여러분은 한때 카이사르를 분명 사랑했소.”

 

  당연히 당시로부터 2천 년이 지난 우리는 그냥 내버려두었으면 카이사르가 초대 황제가 되어 후대 철없는 황제들, 옥타비아누스는 건너뛰고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는 빼주자), 네로같이 미치광이 독재자의 길로 접어들었을 수도 있다. 그리하여 현재와 비교하면 원시적이긴 하지만 공화정을 유지하려는 개혁파 집단인 브루투스, 카시우스들이 더 정의 의 편이었음을 이해한다. 그러나 안토니우스의 웅변에 마음이 간 로마 시민들은 카시우스와 브루투스를 추방하기에 이르고 로마는 다시 내전 상태로 돌입한다.
  그리하여 카시우스-브루투스 연대와 안토니우스-옥타비아누스 연대의 내전이 끝나는 시점까지를 그리고 있다. 사극의 내용은 다들 아시고 계실 터이니 생략한다.
  우리는 영상의 시대에 살고 있는 반면, 희곡은 무대라는 한정적인 장소에서의 공연을 위해 쓰인다. 희곡으로 전쟁 장면을 읽게 되면 늘 보던 활극이 좁은 무대에서 펼쳐질 수 없어서 매우 초라하게 읽힐 수 있는데 이것을 효과적으로 극복하는 방법은 독자가 머릿속에서 무한정한 스케일의 전쟁장면을 상상하는 것이다. 스스로 연출자가 되어 자신만의,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무한대의 무대를 만들어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일 터. 명불허전. 새삼스레 셰익스피어의 일독을 권할 필요는 없으리라 믿는다. 다음 셰익스피어는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로 점찍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1-07-01 09:5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신정옥‘ 교수 버전으로 세익스피어 희곡 여러 권 읽었어요. 다른 역자에 비해 떨어지는 면이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책 만듦새가 뭔가 뽀대가 안나서 그런지 사람들이 외면(?)하는 것 같더라고요. 옛 번역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할 것 같고요.

전 세익스피어 희곡 중에서 역사극은 참.... 다 읽기는 했는데 몇 년 지나면 다 헷갈리고 뒤섞이고 기억에서 희미해지는지 모르겠어요;; 폴스타프 님 등장하는 시리즈가 <헨리 4세> 시리즈였던가요?핫스퍼 나오는... ㅋㅋㅋㅋ

Falstaff 2021-07-01 10:04   좋아요 5 | URL
맞아요, 이 책은 디자인과 편집 기획 때문에 독자들이 잘 찾지 않는 거 같습니닷!

옙. 헨리 4세. ㅋㅋㅋ 근데 하도 오래 전에 읽어서 저도 하여튼 조만간에 (언제가 될지는 도통 모르겠지만) 다시 읽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