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죽어 가다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오세곤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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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기억하는 이오네스코는 반反연극을 주창한 부조리극 집단의 일원이다. 그의 소설 <외로운 남자>는 우리나라 독자에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나와의 사이에는 너무도 깊고 넓은 강이 흘러 도무지 가까이할 수 없었다. <대머리 여가수>는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으나, 그것도 벌써 9년 전의 일이라 어슴푸레한 기억밖에 남지 않았다. 대개 부조리극이 그렇더라. 읽을 때는 뭔가 근사한 거 같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내가 왜 공감을 했는지 별로 기억에 남지 않는 것들. 줄거리도 그렇고. 주로 프랑스 극작가들 사이에서 한 시절을 풍미했던 부조리극은 내가 읽어본 극작가에 국한해 말하자면 이오네스코, <타란느 교수>를 쓴 아르튀르 아다모프, <고도를 기다리며>의 사무엘 베케트, 내 20대 초반 시절에 희곡의 맛을 알게 해준 소품 <촛불>의 페르난도 아라발, <어느 여인의 초상>을 쓴 미셸 비나베르 정도. “부조리극의 반동에 대한 반동”이라고 불리는 미셸 도이치까지 포함하면 좀 오버일 수도 있겠지? 이게 가까우니까 독일로 넘어가 귄터 그라스와 막스 프리쉬로, 영어권에서는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의 에드워드 올비까지 이어진다. 해롤드 핀터도 알아주는 영국의 부조리극 극작가라는데 아쉽게도 읽어보지 못했다.

  외젠 이오네스코의 극작품은 딱 하나 <대머리 여가수>만 읽어봤다.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희곡 작품 수에 비하면 말 그대로 일천한 독서지만, 하여간 <대머리 여가수>를 읽으면서, 이오네스코의 부조리극은 어째 다른 극작가들과는 달리 말장난에 치우친다는 기분, 그래서 재미는 있지만 마음에 흡족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농담도 이미 촌스러워진 개그 콘서트를 보는 기분이었다. 예를 들어:


  스미스: (신문을 읽으며) 쯧쯧. 바비 와트슨이 죽었어.

  스미스 부인: 어머. 어째, 언제 그랬대요?

  스미스: 뭘 그렇게 놀라요? 다 알면서. 이 년 전에 죽었잖아요. 장례식 갔던 거 생각 안 나요? 일년 반 전에.


  2년 전에 죽은 사람을 6개월씩이나 보존했다가 1년 반 전에 장례식을 했단다. 그게 지금 읽는 신문에 실리 게 아니라, 그저 신문을 읽으면서 바비 와트슨이 죽었다는 생각이 나서 말해본 거다. 이런 말장난이 도무지 조리에 맞지 않아서 부조리극. 하여간 별의 별것이 다 있다니까? 참고로 <대머리 여가수>에서 대머리 여가수는 출연하지 않는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발꿈치도 볼 수 없는 것처럼. 근데 <왕은 죽어가다>에는 진짜로 죽어가는 왕이 나온다. 정말 왕이 죽어가느냐고? 그렇다. 그런데 그건 나도, 당신도 지금 죽어가고 있는 것과 같다. 다만 나와 당신은 한 나라의 왕하고 비교하면 따라지 인생이라 죽어가고 있는 것이 조금도 뉴스거리가 되지 않을 뿐.


  왕의 나이는 4백살이 넘었다. 결혼하고 283년이 흘렀고 277년 3개월 전에 왕좌에 올랐다. 283년 전에 결혼한 왕비는 마르그리트로 첫번째 왕비. 1988년 한국불어불문학회지에 실린 소논문을 발췌 요약한 “해설”을 보면 마르그리트 왕비는 “왕이라는 인물의 이성적 판단 능력과 죽음에 대한 욕구, 또는 마지막 순간 스스로 길잡이로 삼는 내면적 기능의 구현된 실체”라고 했다. 하여간 먹물들 말버릇하고는. 쯧쯧. 쉬운 얘기를 될 수 있는 대로 어렵게 하려 기를 쓴다. 한 마디로 하자면 죽어가는 왕에게 찍소리 하지 말고 천리를 따라 얼른 죽어라, 라고 입 바른 소리만 줄창 해대는, 그러나 겉으로는 한 마디도 왕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진정으로 왕을 사랑하는 조강지처 본마누라이다.

  왕비가 한 명 더 있다. 마리. 왕비가 한 ‘마리’ 더 있다는 얘기 아니고, 두번째 왕비의 이름이 ‘마리’다. 두 왕비가 서로에게 존칭을 쓰는 걸로 보아 왕이 직접 귀밑머리 풀어준 정식 혼인한 왕비다. 마리는 마르그리트와 반대로 죽어가는 왕의 살고자 하는 본성, 자연, 감정을 대변하는 역할. 당연히 조금의 시간만 나도 왕한테 사랑을 고백하고, 죽지 않을 거라는 거짓 암시라도 주어 희망을 갖게 하려 한다. 왕 입장에서 누가 더 예쁘겠어? 당연히 마리겠지? 그렇다. 게다가 마리가 훨씬 젊을 터이니 말 하면 뭐해.


  왕이 4백년을 넘게 살고, 277년하고 석달 동안 왕으로 있으면서 무엇을 했느냐고? 180차례 전쟁을 치루었으며 이 가운데 스스로 선봉에 선 전투만 해도 2천번이다. 처음 왕이 됐을 때는 화려한 붉고 흰 깃발을 꽂은 백마를 타고 장창을 옆구리에 들었으나 나중엔 탱크나 전투기 날개 위에 서서 군대를 지휘했다. 화약을 발명했고, 신들로부터 훔쳐온 불을 화약에 붙여 적을 물리쳤다. 세상에서 처음으로 제철소를 지어 철기시대의 도래를 고했으며, 최초의 풍선과 비행선과 최초의 비행기까지 손수 제작했다. 물론 단번에 성공하지는 못해서 이카로스 등 숱한 조종사가 목숨을 버렸지만 결국 왕이 직접 비행체를 운전하기로 결심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세자 시절엔 바퀴와 수레를 만들었으며, 놀라지 마시라, 낫과 쟁기, 트랙터는 물론이거니와 에펠탑도 설계했다는 거 아니냐.

  종교를 창시한 후에 이를 개혁, 재개혁한 것은 물론이고,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도 썼다. 호메로스와 그 시대에 대한 최고의 해설서를 집필했으며 빌 셰익스피어라는 필명으로 여러 편의 비극과 희극도 써서 공연한 건 비밀도 아니다. 전신과 전화는 물론이고 얼마 전에는 핵분열법도 발명한 천재 가운데 천재, 그가 바로 베랑제 왕이다. 그래, 왕 이름이 베랑제. 베랑제 1세다.

  그러나 그건 왕의 재임 시기 가운데 영광의 순간만 모은 것. 왕으로 등극할 당시 왕국의 인구가 무려 90억 명에 달했건만 이후 나날이 쇠퇴일로를 걸어 지금은 늙은이들만 천명 살고 있다. 청년은 없냐고? 있다. 무려 45명. 다른 나라로 갔다가 그 나라에서 강제 소환시킨 지체/정신 장애인들. 스물다섯 살에 송환되어 돌아오니까 불과 이틀만에 여든 살 먹은 노인이 되어버린다. 궁전은 폐허가 되고, 국토는 황무지가 되고, 산은 내려앉고, 바다가 제방을 부숴 전국이 물바다. 나라 전체에 벌집 또는 치즈처럼 구멍투성이가 되어 그나마 남은 국토에는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한다. 이게 다 이웃나라들이 국경을 밀어붙여 영토가 줄어드는데 한 시절 워낙 강국이어서 군인이라는 것들이 싸울 생각은 않고 밤낮 먹고 마시고 취해서 잠만 자 그렇게 된 결과이다.

  이걸로 끝난 게 아니다. 화성과 토성이 충돌해 둘 다 폭발해 사라졌고, 태양도 50내지 75퍼센트 기능을 상실해 태양의 북극에선 눈이 내리고, 은하수는 얼어붙었으며 기력이 빠진 혜성은 자기 꼬리에 휘말린 개처럼 한 자리에서 맴만 돌고 있다. 어제 저녁은 봄이었건만 두시간 삼십분 전에 갑자기 봄이 사라지고 지금은 11월이다. 국경 너머에선 초목에 싹이 돋고 암소들이 아침에 한 번, 정확히 오후 다섯시 25분에 한 번, 이렇게 하루에 두 번 송아지를 낳는데 이 나라에선 하늘에 번개가 멈춰 섰고, 구름은 개구리 비를 퍼부으며, 벙어리 천둥이 소리 없이 울부짖고 있으니 정말 망쪼가 들어도 단단히 들었다.


  왕이 언제 태어났느냐고? 이 작품이 연극 공연을 기본 목표로 하는 희곡이지? 왕은 인간이 연극을 처음 공연했을 때 태어났다. “왕은 죽어가다.” 그러면 언제 죽느냐고?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연극이 끝나는 순간 왕은 죽는다. 그러니까 미래. 하지만 그렇게 멀지 않은 미래. <왕은 죽어가다>를 공연하는 연극일 경우에는 이 <왕은 죽어가다>가 끝나는 시점에 왕은 죽는다. 그래서 마르그리트 왕비는 한시간 반이 지나면 왕, 베랑제 1세가 죽을 것이라고 알려주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시간 25분, 58분 30초, 뭐 이런 순서로 시간이 줄어든다. 또는 죽을 시간이 가까이 다가온다.

  근데 정말 죽느냐고? 그건 연극이 끝날 때까지 모르지. 연극이 끝날 1시간 30분 이전에 여의도만 한 위성이 지구에 충돌해 지구 자체가 멸망해버릴 지 누가 아느냐고? 연극의 결말 장면을 보면 정말 죽기는 죽는 것 같다. 왕도 처음엔 자신의 죽음을 거부하고, 부정하고, 저항하다가, 나중엔 죽은 자 가운데 사흘만에 다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겠다고 쥐랄을 하시다가, 결국 마르그리트 왕비의 말씀을 좇아 죽음을 인정하는 단계까지 이른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지구의 어느 한 극장에서는 연극을 공연하고 있다. 베랑제 1세는 이 연극을 공연하는 내내 죽어가다가 끝나는 순간 죽겠지만, 다른 어느 극장에서 다시 생명을 가질 수 있다. 맞지? 여기에 동의하시더라도 어디 가서 입 밖에 내지 마시라. 전적으로 아마추어인 내 생각에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게 말 하는 순간 왕창 쪽팔릴 수도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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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타 T.에 대한 추억 마르코폴로의 도서관
크리스타 볼프 지음, 양혜영 옮김 / 마르코폴로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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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이 내가 읽는 크리스타 볼프의 세번째 책인데, 참 낯설었다. <나누어진 하늘>과 <카산드라>를 기억하면, 사실 읽은 지 꽤 되어 정확하지 않겠지만,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이 쓴 문장 같았다. 아마도 이 독후감을 2025년 9월 1일, 올 가을의 첫날, 그것도 월요일 아침에 업로드할 거 같은데, 첫 아침부터 김 새게 이런 이야기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말 문장을 읽기가 편하지 않았다. 새삼스레 번역이 어쩌고저쩌고 떠들지 않겠다. 하여간 읽기 불편했다. 이제 역서를 읽으며 이런 이야기하는 거에 질렸다.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크리스타 T. 길쭉한 팔과 다리, 어색한 걸음걸이, 목덜미까지 내려온 다듬지 않은 머리카락. 여기에 어둡고 다소 거친 목소리를 가볍게 내는 혀 짧은 소리로 발음하면 그렇게 좋은 인상을 받기는 힘들겠지? 여기에 열의도 열정도 없는 눈빛까지 가졌다니, 한 마디로 외모로 보면 갖출 것은 다 갖춘 셈이다. ‘나’와 반 친구들보다 한 살이 더 많다. 유급을 당해 한 학년을 반복한 기록이 있다. 프리데베르크 지역에 있는 아이히홀츠에서 살아서 그런지 숲에 가는 것을 제일 좋아한단다. 베를린에서는 여관에서 지내고, 주말에 집에 다니러 간다. 집에서는 크리스타 대신 ‘크리샨’이라 부른다고.

  크리스타 T.를 처음 본 ‘나’는 생각한다. 싫어. 친하게 지내지 않을 거야. 친구로 받아주지도 않을 거고. 그렇게 처음에는 크리스타 T.를 무시해버린다.

  때는 1944년. 전쟁 중이라 멀리 다닐 수도 없었다. 그러나 크리스타 T.는 여름에 친구와 여행을 떠났다. 이제부터 독자인 나는 헛갈리기 시작한다.


  “나는 그 친구에게 질투를 느꼈다. 그녀는 베를린 아파트의 텅 빈 음악실에서 촛불을 켜놓고 크리스타 T.에게 베토벤 곡을 연주해 주었다. 공습경보가 울리면 촛불을 끄고 창가에 몸을 기댔다. 그녀가 불행과 죽음과 우정을 되는대로 내버려 두는 방식은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때 그녀는 어찌 되었든 성은 볼 수 없었다.”  (p.22~23)


  크리스타 T.에게 피아노를 연주해 준 게 첫번째 “그녀.” 공습경보가 울리면 창가에 몸을 기댄 것도 피아노를 연주해 준 그녀, 즉 크리스타하고 함께 여행을 떠난 친구? 불행과 죽음과 우정을 되는대로 내버려 두는 방식을 갖고 있는 그녀는 또 누구? 크리스타 T? 아니면 함께 여행을 간 친구? 어찌 되었는 성을 보지 못한 그녀는? 너무 세밀하게 읽으려 한다고? 젠장. 작품을 읽으면서 주어가 정확하게 누군지 알고 싶어 하는 게 글러먹은 거야, 아니면 독자로 하여금 주어가 정확하게 누군지 몰라서 염병할 주어를 찾느라고 문장을 뒤적뒤적, 뒤적거리게 만든 작가 및/또는 역자가 잘못이야? 죄송하지만 주어가 누구신지 아시면 좀 가르쳐 주실래요? 하면서

  물론 이 작품을 번역한 사람은 알겠지. 근데 독자는 오리무중이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2백쪽 더 계속된다. 그러면서 서서히, 천천히, 느긋하게, 여유롭게 독자를 미치게 만든다. 그러다가 250쪽을 넘으면 읽기가 조금 나아지고, 3백쪽에 육박하면 그래, 읽힌다. 결국 돌아버리지는 않았다. 돌아버릴 거 같아서 책 읽기를 때려 치우려고 했다. 책 읽다 죽기 싫어서. 그러나 이 책은 다른 작가도 아니고 크리스타 볼프가 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가 동네 도서관에 책 사달라고 희망도서 신청해, 시민과 자영업자들과 지역 기업들이 낸 지방세로 구입한 책이라서, 내 돈 주고 산 소위 내돈내산이라면 벌써 때려치웠을 것을, 농도와 성분이 피와 매우 유사한 세금으로 샀으니 차마 그럴 수 없어서, 다 읽었다. 역자 양혜영이 이 글을 보면 매우 불쾌하겠지만 초보 역자가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이렇게 처음에는 크리스타 T.를 경원했던 ‘나’가 점점 크리스타와 우정을 쌓고, 7년만에 다시 만나 더 깊은 우정을 쌓아가다 30대에 혈액암에 걸려 일찍 생을 마감하는 크리스타 T.를 추억하는 스토리다.  동부 독일에서 소련군의 점령을 고스란히 당해 피란을 떠나는 민간인, 특히 10대 후반의 여성이 겪는 이야기를, 어느 익명의 여성이 쓴 <함락된 도시의 여자들: 1945년 봄의 기록>하고 연계해서 조금 보태려 했다가, 치과 가야 한다. 차라리 잘 됐다. 즐겁게 읽지 않은 책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떻게 해도 재미있을 턱이 없다. 가서 고문당하고 오겠다. (갔다 왔다. 치과, 정말 싫다.)

  올해 가을의 첫날부터 이렇게 부실한 독후감을 올려서 미안하다. 뭐 사는 게 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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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포 투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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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이블 포 투》도 장편소설인 줄 알았다. 열어보니 여섯 편의 단편과 한 편의 중편을 실은 소설집. 전에 읽은 토울스 세 편이 거의 이 비슷한 분량의 장편소설이어서 이 책도 그러려니 했었다. 여섯 단편은 이제 막 뉴욕에 도착한 이민자 이야기부터 뉴욕을 무대로 사는 사람들 이야기. 2부 격인 중편 <할리우드의 이브>는 토울스의 데뷔작인 <우아한 연인>의 등장인물 이브가 뉴욕에서 시카고로 가는 기차를 탄 것으로 마감을 하는데, 시카고에 거의 도착할 무렵 이브가 돌연 LA까지 가기로 마음을 바꾸어 기념비적인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촬영 속 이야기로 들어간다.

  나는 <우아한 연인>을 그리 즐겁게 읽지 못해서 <할리우드의 이브> 역시 즐기지 못했다. 아무래도 추리, 범죄 소설은 내 취향이 아닌 것 같아서 그렇지 이쪽 장르 좋아하는 분에게는 매력적일 수 있을 것 같다. 반면 여섯 단편은 흥미롭게 읽었다.

  작품은 에이모 토울스가 차라리 자신의 고유 영역이라고 점 찍어 놓은 듯한 20세기 초기를 무대로 한다. 러시아 혁명 시대의 초기 소비에트 시절에 모스크바로 이주해 특유의 선함으로 남을 위한 배려의 대신 줄서기를 하다 우연한 기회에 ‘대신 줄서기’를 했다가 미국으로 이민 온 부부 이야기 <줄 서기>와, 공원에서 젊은이들 무리와 어울려 롤러 브레이드가 아닌 20세기에 유행했던 롤러 스케이팅을 할 때 삶의 진정하고도 절정의 행복을 만나는 68세의 노인이 이 사실을 배우자에게 이야기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배신과 거짓말을 한 죄목으로 이혼을 당하는 <나는 살아남으리라>가 매우 인상깊었다. 물론 다른 단편도 재미있게 읽었다.

  <할리우드의 이브>는 일단 다음으로 하고, 모든 단편을 흥미롭게 읽었으면서도 머뭇거리는 것은, <모스크바의 신사>를 읽고 그렇게 흥분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 가지 않아 책을 읽을 때의 공감과 격렬한 감동이 금세 휘리릭 휘발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도 그럴까? 아니기를 바라고, 아닐 것 같다. 단편 <줄 서기>를 이야기해보자.


  1916년, 모스크바에서 100마일 떨어진 작은 마을에 푸시킨과 그의 아내 이리나가 작지만 만족하면서 살고 있었다. 부부사이에 아이는 없었어도 서로 살뜰한 애정 속에서 살았다. 혁명이 성공한 다음 해 1918년에 수도에서의 삶을 동경하는 이리나의 바람대로 살림을 마차에 싣고 무작정 모스크바로 길을 떠났다. 닷새 동안 마차를 몬 10월 8일. 붉은 광장에 도착한 부부. 이리나는 남편 푸시킨 씨에게 이 자리에 꼼짝도 하지 말고 서 있으라 다짐을 받고 사라지더니 아르바트 거리에 있는 방 하나짜리 아파트를 구했다. 당연히 레닌의 사진을 액자에 넣어 바람벽 높은 곳에 붙였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붉은 별 비스킷 집단공장에 남편과 자신의 일자리를 구한 이리나는 5만 제곱 피트와 5백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공장에서 눈부신 성과를 내 금세 노동자 위원으로 선출된 반면, 농사 말고는 도무지 무슨 일 하나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남편 푸시킨 씨는 얼마 가지 못해 해고당하고 말았다.

  혁명 후 노동자 시대에 해고를 당해?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 집단 회의에서 공산당 선언을 적절하게 인용해가며 동지들의 사리를 고양시키는 데 각광을 드러내는 노동자 위원도 남편의 해고를 무효로 할 수는 없어서 푸시킨 씨는 체스판의 공깃돌처럼 모스크바 시내를 굴러다니기만 했다. 시계는 계속 흘러 1921년이 왔고, 다른 집 같으면 당연히 아내인 이리나가 해야 할 배급품을 받기 위하여 상점/배급소에 길게 줄을 서야 했다. 이리나가 출근하면서 설탕, 기름, 밀가루를 받아오라고 지시하면, 줄이 하도 길어서 이 가운데 둘 정도만 받아올 수 있었다. 그때는 다 그랬나 보다. 그래도 푸시킨 씨가 워낙 온화한 성품이라 이 줄서기에 차라리 ‘최적화된 인물’이라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 같았다. 푸시킨 씨는 온통 여성만으로 이루어진 줄의 맨 뒤에서 모자를 벗고 친절한 얼굴로 웃으며 인사를 하고, 앞 뒤의 주부들과 아주 일상적인 대화를 할 줄 알았다. 이게 대단한 능력인 줄은 몰랐지만. 이렇게 금세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의 여성들과 친하게 된 푸시킨 씨.

  일상이 줄 서기인 모스크바 사람들에게 줄을 한 번 섰다가 사정이 있어 줄에서 이탈할 경우에 다시 돌아오면 어김없이 줄의 제일 뒤에 서야 했던 것 같다. 하여간 이랬는데, 하루는 어느 주부가 푸시킨 씨에게 아이가 아파 약국에 가서 약을 사 오는 동안 자기 자리에 대신 서 있어달라고 했다. 이 여성이 다시 돌아오면 당연히 제일 뒷자리로 옮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줄의 앞뒤 모든 주부들이 푸시킨 씨에게 푸근한 호감을 갖고 있어서, 이 여성이 약을 받아와 그냥 푸시킨 씨가 지키던 자리에 들어와도 아무 항의를 하지 않았다. 여성은 감사의 표시로 푸시킨 씨에게 막대 사탕 하나를 선물했다.

  푸시킨 씨가 이 막대 사탕을 원했던 건 전혀 아니다. 그저 자기한테 남아도는 시간 동안 친절, 아주 가벼운 친절을 베풀었을 뿐. 그런데 이후부터 이 여성 말고도 다른 많은 주부들이 대신 줄 서기를 부탁했고, 부탁을 들어줄 때마다 감사의 표시로 건네던 막대사탕이 작은 소시지로, 작은 소시지에서 제법 큰 소시지로, 이윽고 외투로 커졌다가 급기야 현금을 건네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이쯤 되니까 공장의 노동자 위원인 이리나도 남편 푸시킨 씨의 소득 창출을 “공산주의의 또다른 성취”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26년에는 모스크바 주택부 국장 크라코비츠 동지가 푸시킨에게 프랑스산 샴페인 한 상자를 구하는 줄을 대신 서 달라는 부탁을 했다. 시간이 남아도는 푸시킨 씨가 구태여 힘있는 윗분의 부탁을 거절할 필요도 없어서 그렇게 했고, 감사의 선물로 자기의 샴페인 한 병을 건네주기 싫었던 크라코비츠 동지는 샴페인 대신 나키츠키 타워스의 널찍한 아파트 한 채를 배정해 주었는데, 이게 또 모스크바 강변을 바라보는 최신 주택이었다는 거 아니냐는 말이지.

  1929년 5월에는 내무인민위원부가 지식인 다섯 명을 체포해 신속하게 유죄판결을 내린 일이 있었는데, 이때 지식인들의 집을 수색해 책과 유인물을 잔뜩 압수해 싣고 가던 차량에서 잡지 한 권이 마침 지나가던 푸시킨 씨 앞에 툭 떨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독자는,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하여간 나는, 이 일이 마침내 푸시킨 씨가 맞을 비극을 여는 일이겠거니 생각했으나, 푸시킨 씨가 잡지를 열어보고 한 눈에 마음에 들어 북 찢어 얼른 호주머니에 넣은 건 하얀색 긴 드레스를 입은 뉴욕 여자와 그녀를 그윽하게 바라보는 턱시도 입은 젊은 남자의 사진이 실린 페이지였다. 남자를 향한 여자의 미소가 너무 부러워서. 얼마 후 모스크바의 청소부를 만난다. 전직 초상화 화가. 다른 화가들이 혁명이 일어나자마자 파리로 망명했을 때 조국을 지키겠다는 생각으로 머물렀다가 부르주아의 초상을 그려주던 화가라서 화가 자격을 빼앗기고 청소부로 전락한 인물이다. 그의 소원은 성바실리 대성당 그림의 국외여행국 스탬프가 찍힌 밝은 노란색 바탕의 여행허가증. 푸시킨은 화가를 위하여 또다시 몇 주가 걸리는 국외여행국의 줄을 대신 서주기로 한다.

  국외여행국의 줄은 모스크바에서 가장 손에 잡히지 않고, 가장 힘들고, 가장 넘볼 수 없는 줄이었다. 이곳에서 사흘을 지내다가 순전히 심심해서, 오직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기 심심해서 국외여행 신청서를 작성한, 아니지, 작성해본 푸시킨 씨. 그는 질문지의 모든 질문 사항에 과거 시골에서의 따뜻한 일을 되새겨보라는 초대장이라도 되는 듯한 생각을 했는지, 어린 시절 고향 고골리츠키에서의 토끼 잡이부터 온갖 추억을 서류 뒷면까지 빽빽하게 채웠다. 두툼한 서류의 마지막 질문. “왜 소련을 떠나려 하는가?”에 대한 푸시킨 씨의 진심과 답변은 이러했다. “그럴 생각 없음.”

  줄을 서고 18일이 지나 드디어 접수 창구에 도착할 수 있었던 푸시킨 씨는 즉각 전직 초상화가 리트비노프에게 알렸고, 화가는 아침 8시에 도착하겠다고 말했음에도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나타나지 않았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푸시킨 씨. 드디어 11시 35분이 되고 어쩔 수 없이 서류를 제출해야 했던 푸시킨 씨는 화가 대신 자기가 심심풀이로 작성한 서류를 디밀었다. 이윽고 서류심사. 딱 한 칸이 비어 있었다. 110번 질문. “가고 싶은 나라.” 시골뜨기 푸시킨 씨는 얼른 생각나는 장소가 없었다. 잠시 끙끙거리던 그는 갑자기 지갑 속에서 미소 짓고 있는 여자가 생각나 겨우 대답할 수 있었다. “뉴욕시요!”

  결과적으로 거의 1백대 1을 넘는 합격률을 뚫고 푸시킨 씨는 성바실리대성당 모양의 국외여행국 스탬프가 찍힌 여행 허가증을 받았고, 집에 가져가자마자 이리나는 1918년에 고골리츠키에서 모스크바로 향할 때 그러했듯이 세계의 수도에서 살고자 하는 동경을 이루기 위하여 즉각 여행가방을 챙겼고, 그동안 모스크바에서 주로 푸시킨 씨가 줄을 서서 번 자산을 현금으로 바꾸어 눈썹이 휘날리는 속도로 레닌그라드로 가서(또 어디 한 군데를 거쳐), 뉴욕행 배에 오른다. 세상을 법 없이 살 수도 있을 것 같은 푸시킨 씨는 배의 1등실에 머물며 승객과 각급 선원들에게 온갖 호구짓을 해 드디어 뉴욕에 첫 발을 딛는 순간, 그의 달러가 잔뜩 들었던 트렁크에는 단 한 장의 지폐도 찾을 수 없었고, 그렇게 완벽한 빈 손으로 뉴욕 광장에 선 그를 두고 이리나는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모스크바에서와 달리 아내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뉴욕의 주식시장이 가파른 추락을 시작하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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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2025-08-29 14: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에서 제일 부럽고 대단하고 귀한 사람은 <운이 좋은 사람> 아닙니까?
이리나는 참 바보네요. 푸쉬킨만큼 운좋은 남자는 뉴욕시 전체를 뒤져도 흔치 않을텐데.
뒷 이야기가 참 궁금하지만 푸쉬킨씨는 성품도 성품이지만 일단 그 모든 것에 앞서 운이 무지하게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뉴욕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았을 것 같아요.

금요일이라 다른 날보다 조금 신나는 근무시간에 팔스타프님 리뷰 언제나처럼 즐겁게 읽었습니다. 건강하세요~!

P.S 기한이 거의 다가온 서류를 검토하지 않는 상사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ㅋㅋㅋ 요즘에는 챗gpt 에 이런 거 문의하면 메일 문장까지 써준다는데. 거참.아... 말하기 전에 좀 해달란 말이야!!!ㅋㅋㅋㅋ

Falstaff 2025-08-30 04:08   좋아요 0 | URL
문제는 푸시킨 씨의 행운이 아메리카에 도착하자마자 끝난 것처럼 보인다는 겁니다. 아닐 수도 있지만 그렇게 읽히는 건 쇤네가 평생 행운하고 좀 거리가 있는 인간이라서 그럴까요? ㅎㅎㅎㅎ 어제 댓글을 달지 못하고 이제야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가브리살에 쐬주가 장해서....
상사한테, 그냥, 서류 좀 검토해달라고 딱 직선으로 얘기하는 게 제일 좋지 않을까요? 상사가 만일 남자라면 그렇게 얘기해야 알아듣는 사람일 확률이 높더라고요. 오히려 그렇게 얘기해주는 걸 좋아할 수도 있고요. 뭐 세상 일 그저 복골복입니다. ㅋㅋㅋㅋ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
커트 보네거트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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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트 보니것은 확실히 미국 천재 작가 가운데 한 명이다. 내 취향에 보니것에 필적할 만한 미국 작가는 토머스 핀천 뿐이다. 근거를 대보라고? 왜 이러셔? 기껏해야 아마추어 독자 나부랭이가 두 미국 작가를 좋아한다는데 근거는 무슨 근거.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보니것은 이 책도 “텔레파시 능력자이자 건달들의 친구인 앨빈 데이비스에게” 바친다고 딱 써놓았다. 앨빈 데이비스? 누군지 궁금해 못 견뎌서 얼른 위키피디아 검색해봤다. 그랬더니 1960년생 미국 프로야구 선수가 뜬다. 이이는 아닌 거 같은데…. 누굴까? 가상의 인물일 수도 있다. 충분히 그럴 만한 작가니까, 그럴 줄도 모른다. 이런 헌사를 능가하는 단 하나는? 프랑수아 라블레 <가르강튀아>. “고매한 술꾼과 고귀한 매독환자 여러분께 이 책을 바칩니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는 사람 이야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보니것은 말한다.

  “꿀벌 이야기에서 꿀이 빠질 수 없는 것처럼 사람 이야기에선 돈이 빠질 수 없는 노릇이다.”

  나도 형광등이다. 이 문장을 읽고도 책의 주인공 로즈워터 씨, 이이가 당대 미국의 10대 백만장자 가운데 한 명이라는 걸 눈치도 채지 못했다니 말이지. 그저 보니것의 작품 주인공이 항용 그러하듯이 ①전쟁에 반대하고, ②미국적 자본주의를 경멸하며, ③외상후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릴 수 있겠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추측을 했을 뿐이니. 뭐 ①~③까지의 내용도 틀리는 건 아니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에 엘리엇 로즈워터 대위는 SS부대가 점령하고 있다고 알려진 바이에른의 클라리넷 공장에 접근했다. 시가전이라 기관단총을 사용하면 좁은 공간에서 아군에게 피해를 줄 수 있어서 대검을 장착한 라이플을 든 채, 먼저 창문에다 수류탄을 몇 방 던진 다음, 꽈과광, 모두 터진 걸 확인하고 포연이 꽉 찬 건물 속으로 돌진했다. 수류탄 파편에 맞아 죽거나 심하게 다친 독일군이 널부러져 있었고, 시신에 발이 걸려 잠깐 쓰러졌다가 일어났는데 바로 코앞에 가스마스크와 철모를 쓴 독일인이 서 있었다. 엘리엇은 용감한 군인, 그것도 장교답게 당황하지 않고 무릎으로 사타구니를 걷어차고 대검으로 목을 푹 쑤셨다가 뺀 다음 개머리판으로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바로 이때 미군 하사관이 즉각 “사격중지, 사격중지! 빌어먹을, 이들은 군인이 아니라 소방관들이다!”라고 외쳤다. 정말로 늙은 남자 두 명과 기껏해야 열네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이었는데, 엘리엇이 대검으로 목을 찔러 죽인 건 열네 살 꼬마였던 거다. 겉으로 보기에 멀쩡했던 엘리엇은 10분이 지나자 달려오는 트럭 앞에 침착하게 걸어가 반듯하게 누웠고, 트럭의 바퀴가 대위의 몸에 살짝 닿은 순간 기겁한 부하들이 그를 일으켜 세워, 야전 정신병원으로 보냈다. 이것도 일종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 PTSD. 엘리엇의 남은 평생 동안 보통사람들이 그를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다.


  그건 주인공 엘리엇 로즈워터의 경우이고, 이제 돈에 관해 말해보자.

  1964년 6월 1일 현재 가치로 미화 89,472,033.61달러. 약 60년 전이니까 미국 국채 수익률 5%로 계산하면 현재가치로 미화1,671,264,748.13달러. 오늘 환율 1,391원/달러로 환산해서 2조3,247억2,926만5천원. 앗, 생각보다 얼마 안 되네? 이게 당시 미국 10대 백만장자 가운데 한 명인 인디애나주 상원의원 리스터 에임스 로즈워터 씨가 자기 재산의 9할을 쏟아부어 만든 로즈워터 자선문화재단의 기금총액이다. 당시엔 돈 값이 지금보다 훨씬 귀했으니 요새 2조원하고 수평 비교해도 조금 억울하기는 하겠지. 하여간 저 돈으로 1964년에는 1년에 350만 달러의 연간수입을 올렸다 하니 일요일도 포함해서 하루에 1만 달러의 돈이 저절로 생기는 규모였다. 생각보다 수익률이 좋지 않네 그려.

  상원의원이 뭐가 아쉬워 자선문화재단을 만들었느냐 하면, 자기 돈 9할을 퍼 놓고, 재단의 이사장 자리에 자기 외아들, 그러니까 엘리엇 예비역 대위를 올려 놓으면 사실상 자기 전 재산을 아들한테,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물려줄 수 있는 거였다. 기금을 출연한 해가 1947년이었는데, 이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각종 무공 훈장과 상이병사에게 주는 퍼플 무슨 훈장까지 수집해 돌아와 다 마치지 못한 명문대 졸업장까지 딴 시기였는데, 상원의원 리스터 로즈워터 씨가 그러했듯이 뭐하러 골치 아프게 사업을 시키느냐 싶어서 재단을 만듦과 동시에, 재단의 설립 강령을 법무법인 “매컬리스터, 롭젠트, 리드, 맥기”사의 대표 변호사 메컬리스터와 상의 끝에 재단의 이사장 직은 영국 왕관과 같은 방법으로 세습하는 것으로 탁 못을 박아 놓았다. 강령에 의하면 이사장의 형제들은 21세가 되면 재단 임원이 될 수 있으며, 정신이상 판정이 나지 않는 한 평생 임원 자리를 깔고 앉아, 죽을 때까지 풍족한 보수를 받으며, 일하지 않고, 손가락에 물방울 하나 묻히지 않은 채 평생 즐기면서 죽을 수 있었다. 대단한 돈 이야기지?


  그런데 돈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코넬 대학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이제 막 “매켈리스터, 롭젠트, 리드, 맥기” 법무법인에 입사해 수석변호사 매컬리스터의 새끼 변호사가 된 레바논계 러그 상인의 아들 노먼 무샤리가 등장한다. 5피트 3인치로 사무실에서 가장 작은 키지만 엄청나게 큰 궁둥이를 가지고 있었고, 만일 바지와 팬티를 벗으면 허여멀건 궁둥이가 정말 볼만하다고 보니것은 주장했다. 이 머리 좋은 신삥 변호사가 상원의원과 문화재단의 고문 변호사인 메켈리스터의 새끼 변호사로 재단에 관한 비밀 문서를 열람하다가 눈에 꽂히는 것이 있었으니:

  “정신이상 판정이 나지 않는 한…”

  즉, 재단의 초대 이사장이자 현 이사장인 엘리엇 로즈워터 씨가 기금을 낸 상원의원의 외아들이며, 다른 친척이 없는 관계로 만일 엘리엇이 누가 봐도, 여기서 ‘누가’라는 뜻은 법정에서 법적인 시각으로 판정의 의무를 지닌 인간의 시각을 말하는 것으로, 엘리엇이 미친놈이기만 하면, 책에서는 6촌이라고 했지만 사실 증조부의 형의 자손이니까 8촌 형제 하나가 저 로드아일랜드의 부촌 피스콴투잇에서 가장 가난한 보험판매원으로 살고 있어서 연 350만 달러가 보험판매원의 손에 떨어지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짱구를 굴린다.

  로스쿨의 존경하는 레너드 리치 교수가 가르침을 주시기를, “훌륭한 조종사가 항상 착륙할 장소를 눈여겨 보듯, 변호사는 뭉칫돈이 손바꿈 하려는 상황을 찾아야” 한다고. 이때 빈 틈이 생겨 변호사 역시 한 방에 팔자가 피는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는 거였다. 이 말을 신주단지처럼 여겨 늘 마음에 고였던 악덕변호사 노먼 무샤리는 전쟁 당시 사건으로 PTSD를 진하게 겪어, 귀국 후에도 뉴욕 대신 인디애나 주의 인디언이 한 명도 살지 않는 거대도시 인디애나폴리스도 아니고, 저 멀고 먼 고향, 알고보면 고향도 아니지만 고조, 증조 할아버지가 거대 부자의 기틀을 마련한 로즈워터 군郡에 머물며 의용소방대원 생활을 하고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이미 노먼 무샤리는 엘리엇의 기밀 서류 전부를 보았고, 아마도 복사본 정도는 가지고 있을 듯. 프랑스인 아내 실비아에게 보낸 편지 53통은 원본으로 가지고 있으니 나름대로 승산이 큰 싸움이 될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이쯤에서 독후감을 끝내려 하는데, 사실 내가 이 책에 주목한 것은 스토리가 아니라 주인공 엘리엇 로즈워터의 연설 몇 가지다. 그는 공상과학 소설 말고는 어떤 예술도 좋아하지 않는다. 사백년 전에 네덜란드의 한 화가가 그린 그림을 수십만 달러를 주고 사서, 응접실에 걸어놓고 보다가, 공공 박물관을 기증하는 행위? 그게 뭐? 돈이 어디서 난 건데? 결국 로즈워터 군에 사는 가난한 군민들의 노동으로 만든 돈을 한 줌도 되지 않는 부자들이 독식한 거 아니냐는 말이지. 다분히 공산주의적 사고일 수 있으나 엘리엇은 살다보면 “우연히” 공산주의와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고, “우연히” 절대 믿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와 정확하게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게 사람 사는 일이란다.

  예술을 싫어하는 엘리엇은 그러나 열 살 남짓 할 때 아버지와 여행을 하다가 들른 허름한 남자 화장실 벽에 쓰인 이행시는 마흔이 넘어서도 기억하는 놀라운 기억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행시, 짧으니까 전문을 소개한다. 제목은 없다.


  우리는 당신의 재떨이에 오줌을 싸지 않습니다.

  그러니 당신도 우리의 소변기에 담배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문학적으로도 자질이 있는 인간인 것도 같은데 하여간 그의 신념은 공상과학 소설가는 글을 잘 쓰는 어느 작가보다도 중요한 변화에 더 민감하기 때문에 시인이나 매한가지라고 하면서 “단 한 번의 생애에서 참새 방귀만큼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일들을 세세하게 묘사하는 잘난 글쟁이들은 죄다 무시해버립시다. 우리의 주제는 은하, 영겁, 앞으로 태어날 무수한 영혼이니까요.” (p.29) 라고 주장한다.

  이것 말고도 지금 읽어도 참신한 구절이 무수하게 등장하지만 역시 백미는 제일 마지막 결론부에 아주 죽여주는 위치에서, 아주아주 죽여주는 “말씀”을 슬쩍 내밀지만, 아이고, 여지없이 이게 최고의 클라이맥스라서 차마 여기에 옮기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통촉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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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5-08-28 0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 이 책 기억도 안날 만큼 오래전에 샀는데 아직 읽지도 않았어요ㅠㅠ 폴스타프님 이 리뷰 읽고 책장에서 찾아놨어요 제 기억을 깨워 주셔서 감사한 리뷰입니다😆

Falstaff 2025-08-28 05:46   좋아요 1 | URL
윽, 그러면 스토리를 넘 자세하게 소개한 거 아닌가요?
근데 제가 고마운 마음이 드는 건 왜 그럴까요? ㅎㅎㅎㅎ

망고 2025-08-28 05:51   좋아요 1 | URL
보네거트 매력은 스토리에 있지 않으니까 괜찮습니다ㅎㅎㅎ게다가 차마 여기에 옮기지 못 하는 최고의 클라이맥스, 궁금해서 얼른 읽고 싶은걸요😁
 
레퀴엠 - 어떤 환각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안토니오 타부키 지음, 박상진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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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사실 장엄미사곡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모차르트, 베르디와 포레의 장엄미사 말고는 기억나는 것도 없다. 올 6월에 내가 사는 도시 시향에서 모차르트 장엄미사를 연주한다 해서 안 갔다. 아무리 호국보훈의 달이라 해도 그렇지 멀쩡한 초여름날 하필이면 장엄미사를 듣겠느냐고, 귀신나오게시리. 차라리 모차르트의 <다단조 미사>였으면 갔겠다. 문학동네의 타부키 선집 4번. <페레이라가 주장한다>는 여태 읽었는 줄 알았는데 읽지 않았더라. <다마세누 몬테이루의 잃어버린 머리>만 읽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판 타부키 두 권 다 읽은 줄 알았다. <…잃어버린 머리>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어서 <페레이라…>까지 읽은 줄 알았던 게지? 거 참. 이번에 <레퀴엠>을 읽어보니 혹시 <…잃어버린 머리>에 관한 내 기억이 부정확한 거 아닌가 하는 마음이 생겼다. 거 참.


  이 책 <레퀴엠>의 앞날개에 적힌 것을 읽고 이번에 알았는데, 안토니오 타부키가 포르투갈 최고의 작가이자 시인인 페르난두 페소아의 영향을 받아 본격적으로 포르투갈어를 배우고 그의 대표작 <불안의 책>을 번역해 세상에 알렸다고 한다. 심지어 <레퀴엠>의 경우 작품 자체가 페소아와 그의 조국인 포르투갈에 대한 오마주라고 했을 정도. 작품을 읽어보면 정말로 그렇다. 통째로 페소아와 포르투갈에 바치는 헌정 작품이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 읽어봤다. 쉽지 않다. 10년 정도 지났는데도 솔직하게 말해 지금 내 머리 속에 있는 작품이 페르난두 페소아가 쓴 <불안의 책>인지, 루이 페르디낭 셀린느의 <밤 끝으로의 여행>인지 가물가물하다. 둘 다 읽었는데 서로 교차 혼돈이 일어나는 바람에 멀미가 날 정도다.

  그런데 안토니오 타부키가 페소아에 헌정한 작품 <레퀴엠>을 그리 인상깊게 읽었다고? 그렇다. 장엄미사 자체가 이미 죽어 저 세상 사람이 된 사람을 위하여 지내는 제사. 따라서 작품에는 이미 죽은 자와 산 자, 타부키 자신으로 생각할 수 있는 화자 ‘나’의 유년, 소년, 청소년, 청년 시절의 기억 속 인물과 장소들, 페소아의 다양한 가명 가운데 하나를 가진 인물, 페소아가 자주 다닌 카페 등이 배경 또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렇게 <레퀴엠>은 작가 스스로 말했듯 “산 자와 죽은 자를 같은 차원에서 만나는 하나의 소나타이면서 한 편의 꿈”일 수 있다.

  7월의 마지막 일요일.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7월 말은 그늘에서도 40도를 기록하는 극강의 더위가 덮치는 날이다. 바로 어젯밤까지는 아제이탕의 포도나무 그늘 아래에서 평화를 만끽했지만 오늘, 무지하게 더운 날 아침, 리스본의 산토스에 있는 작은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다. 그, 위대한 시인, 아마도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일 지도 모르고, 평생 존경하며 완전히 복종했지만 이제 염증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는 시인, “나의 손님”을 항구에서 만나 이야기하고 자정 즈음 다시 아제이탕으로 돌아가려 한다. 이 하루를 쓴 책이 <레퀴엠―어떤 환각>이다.


  7월의 마지막 일요일. 이날 하루동안 처음 향한 공원에서 ‘나’는 젊은 마약중독자를 만난다. 오늘 ‘나’가 만나는 스물세 명 중에서 처음 만난 인물이다. 수염이 덥수룩한 20대 청년. 청년이 말한다. “이틀 동안 먹지 못했어요.” 마약을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나’는 대답한다. “원칙적으로 나는 약을 하는 것에 찬성하는 편이오. 원칙적으로 그렇다는 거고 실제로는 싫어한다오. 나는 편견이 심한 부르주아 지식인이라서, 길거리가 아니라 당신 집에서 깨인 친구들과 어울려 모차르트와 에릭 사티를 들으며 약을 하는 건 찬성할 수 있소.” 이렇게 말해도 청년은 페소아의 초상이 그려진 백 에스쿠두짜리 지폐 두 장만 달라고 구걸하며 ‘나’에게 묻는다. “페소아를 좋아하세요?”

  두번째로 만나는 사람이 로토 가게 절름발이. 70대의 작은 체구를 지닌 노인이다. 로토 가게 절름발이 노인을 만난 ‘나’는 노인에 대해 기시감이 생기는 걸 알아챈다. 어디서 봤을까? 노인의 정식 이름은 프란시스쿠 마리아 페레이라 데 멜루. 스피노자 철학의 의미에서 영혼을 믿는다고 주장하지만 가톨릭 신자는 아니란다. 생각났다. 페소아의 <불안의 책>에 등장했던, 페소아를 괴롭히던 로토 가게 젊은이가 그 사이에 나이가 들었던 거다.


  다시 강조해, 작품의 시간적 공간은 7월의 마지막 일요일. 그래서 시작하자마나 화자이자 작가 타부키 본인인 것이 확실한 ‘나’는 물기를 잔뜩 머금은 스폰지를 꾹 누른 것처럼 땀을 줄줄 흘린다. 머리와 얼굴, 가슴과 복부, 그리고 등. 새벽에 입고 나온 셔츠는 이미 푹 젖어버려 어디 가서 새 셔츠를 적어도 두 장은 사고 싶은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일요일에 문을 여는 옷가게는 리스본에 없다. 페드라스 네그라스가街로 가기 위하여 택시를 탄 ‘나’는 택시 운전수에게 일요일에 옷을 파는 가게를 혹시 알고 있으면 그곳에 좀 들렀다 가자고 말한다. 이 택시 운전수가 세번째 만나는 사람. 이이는 상토메 출신으로 리스본에서 한달 전부터 택시 운전을 하고 있어서 리스본 지리를 이탈리아 사람인 ‘나’만큼도 모르는 것 같다. 그러다가 깜박, 운전수의 머리에 전등불이 들어온다. 프라제르스 묘지 입구에 집시들이 들어왔는데 집시들이 자기네 캠프에서 일요일하고 관계없이 장터를 열었단다. 그래서 집시 장터로 가 라코스테 폴로 셔츠 두 장을 사고,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집시 본 김에 손금도 본다. 이래서 집시 여인이 네번째 만나는 사람이다. 집시 장터가 어디? 프라제르스 묘지 입구. 신기하다. ‘나’가 택시에 올라 출발하자마자 술집에 잠깐 들르자 해서, 시원하게 냉장한 샴페인을 한 병 샀다. 술집에서 샴페인 판 점원은 오늘 만난 사람 리스트에 오르지 못한다. 그 샴페인이 한여름에 시간이 좀 지나서 미적지근하게 됐을 때 택시를 대기시켜 놓고 프라제르스 묘지에 들어가 묘지 관리인한테 물어물어 ‘나’의 절친이자 이미 죽은 타데우스의 묘까지 들고 가서, 타데우스와 나누어 마신다.

  묘지관리인이 다섯번째 만난 사람. 이미 죽은 타데우스가 여섯번째. 늙은 집시가 말하기를 ‘나’의 친구가 이 묘지 안에 있다고 했는데, 그래서 묘지관리인한테 참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옛날 친구 타데우스 바츨라프의 묘를 찾아달라 했고, 친구의 묘지 앞에서 친구 타데우스와 술잔을 기울이게 될 것을 미리 알아 샴페인을 샀을까? 이런 현상을 ‘나’의 환각이나 환상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단다. 대신 ‘무의식’이라는 말로 바꾸어 달라고. 그러니까 이 소설은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이미지의 세계를 그린 작품이다.

  그러면 ‘나’는 언제 무의식이 발현될까? 작품 초반에 무지하게 아픈 질병인 대상포진의 예를 든다. 갑자기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몸에 침투하여 신체 부위에 물집 형태의 병변이 일어나면서 해당 부위에 극심한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몸 속에 들어와 있던 수두 포진 바이러스가 몸의 저항력이 약해지면 그 틈을 타 신체의 한 부분에서 크게 발현해 숙주를 괴롭히다가 놀 만큼 논 다음 다시 잠복 상태로 돌아간다. 이것처럼 ‘나’의 무의식도 언제든지 무의식에 빠질 수 있는 상태이지만 늘 발생하는 건 아니고 비정기적으로 불쑥불쑥 무의식 상태에 이르게 하니, 작품 속에서는 아예 ‘무의식 바이러스’라고 일컫기도 한다.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다. 본문이 128페이지에 끝나는 짧은 작품이지만 당연히 속도는 빨리 나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독자가 저절로 집중하게 만드는 흡인력이 있다. 각 단계에서 만나는 사람과 배경을 이루는 허물어지는 집, 등대, 거리, 고장의 이름 같은 장치들이 어떻게 ‘나’의 무의식과 연결이 되는지 따져보는 것도 예상외로 근사한 일이었다.

  읽으면서 이제는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유혹도 생겼다. 그러나 10년 전에 얼마나 호되게 당했는지 선뜻 결심하지 못하고 있다. 처분하지 않은 건 분명하지만 책이 책장 어느 구석에 박혀 있는지도 모르겠고, 굳이 핑계를 대자면 얼마든지 댈 수는 있겠지. 그래도 미친 척하고 다시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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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08-26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

Falstaff 2025-08-27 05:29   좋아요 0 | URL
크...

stella.K 2025-08-26 1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불안의 책이 그렇게 어려운가요? 그럼 저는 못 읽겠군요. ㅠ

Falstaff 2025-08-27 05:30   좋아요 1 | URL
아휴, 하여간 저는 어려웠습니다. 사람마다 다르지요 뭐.

yamoo 2025-08-26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이 책 시리즈 전집은 아니지만 타부키 책은 다 사서 갖고 있습니다. 레퀴엠...요것두 읽었죠..ㅎㅎ 간만에 별5개 출현인데, 이미 갖고 있는 책이라 안심했습니다..ㅎㅎ
이 참에 걍 저 타부키 시리즈 다 읽을까 봅니다..ㅎㅎ

Falstaff 2025-08-27 05:30   좋아요 0 | URL
아하, 가지고 계시는군요. 얼른 읽으셔요. 생각보다 많이 좋더라고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