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싯 몸 단편선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3
서머싯 몸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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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1월에 《서머싯 몸 단편선 1》을 읽고 아홉 달 만에 《서머싯 몸 단편선 2》를 집어 들었다. 서머싯 몸은 참, 다른 건 몰라도 소설 하나는 정말 재미있게 쓴다. 등장인물이나 특정 사건의 배후, 또는 이면이랄까, 하는 것을 들쳐내는 솜씨가 놀랄 만하고, 주로 ‘나’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1인칭 소설에서 거침없이 드러내는 시니컬한 잘난 척 같은 게 귀엽다. 물론 이런 식, 그러니까 1인칭 작품에서 작가 자신임을 노골적으로 암시하지만 엄연히 허구 글이라 누군가가 혹시 작가 스스로를 염두에 두지 않았느냐고 물을 때면 시치미 뚝 떼는 건 한 두 번 본 게 아니다. 이런 숱한 작가들 가운데 서머싯 M 만큼 능청스럽게 세상만사 다 통달한 것처럼 노골적인 잘난 척을, 서슴없이 할 수 있겠는가 말이지. 이런 모습은 일찍이 <면도날>과 <케이크와 맥주>에서 알아봤고, 《서머싯 몸 단편선 1》에서 충분히 즐겼으며, 《서머싯 몸 단편선 2》로 넘어와도 마찬가지다.

  <루이즈>라는 단편이 있다. 이것도 M이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장편으로 늘려 쓸 만한 줄거리와 시간적 배경을 가졌는데, 단편으로 만들어서 세월의 진행이 말 그대로 쏜 살 같다. 루이즈는 어린 시절부터 매우 병약한 소녀였다. 얼마나 병약한가 하면, 심장에 문제가 있어서 어떤 의사라도 그리 오랜 삶을 즐길 수 있다고 여기지 않았으며, 루이즈 스스로도 곧, 길면 몇 년 안에, 빠르면 몇 달 만에 마지막 숨을 들이켜고 내쉬지 못하리라고 매사 조심하면서 살았다. 부유하고 건장한 청년 톰 메이틀랜드는 틀림없이 측은지심에서 출발했을 청혼, 어여쁜데다 병약한 루이즈가 숨을 거둘 때까지 전심전력을 다 해 돌볼 것을 맹세하고 결혼을 한다. 이후 성실하고 튼튼한 톰이 자신이 좋아하는 골프를 치러 가거나 사냥을 하러 갈 때면 루이즈는 상냥하게 잘 다녀오라고 말한 다음에 심장 발작을 일으킨다. 반면에 자신이 좋아하는 댄스 파티가 있을 경우, 새벽 다섯 시까지 별로 지치지 않고 춤을 추며 즐긴다. 이렇게 살다가 크루즈 여행 도중에 루이즈의 몸을 따뜻하게 감싸주려고 자신의 이불이란 이불은 몽땅 아내에게 양보했다가 밤새 독감에 걸려 황천길로 먼저 떠나버린 톰. 루이즈는 슬픔에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이 모습을 본 모든 이를 장님으로 만들어버렸다. 다들 눈물이 앞을 가렸거든. 그러나 딱 한 명, 굳이 M 자신이라고 밝히지 않는 ‘나’는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기어코 루이즈에게 대놓고 이렇게 말해버리고 만다.


  “난 당신이 이십오 년 동안 거대한 사기를 쳐 왔다고 생각해요. 당신은 내가 아는 어떤 여자보다 이기적이고 가증스럽소. 불쌍한 두 남자의 인생을 파괴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자기 딸의 인생까지 파괴하려 드는군요.”


  물론 이게 단편, 이중에서도 짧은 단편 <루이즈>의 처음부터 끝까지는 아니다. 그러나 25년 동안 아무도 말하지 못하고, 심지어 눈치채지 못한 진실, 이라기 보다 진실에 가까울 수도 있는 솔직한 비아냥을 M만큼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내기는 그리 수월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안 그런가?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자면, 《서머싯 몸 단편선 2》은 《서머싯 몸 단편선 1》 보다는 덜 재미있다. 많은 독자들이 단편선 1을 읽고 흥미를 느껴 단편선 2를 읽겠다고 마음 먹은 다음에 정말로 읽는 사람도 있고, 잊어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책 만들어 팔아먹는 입장에서 당연히 1권에 재미있는 작품을 더 많이 실을 수밖에 없고, 이걸 시비하는 건 독자로서 쫀쫀한 일이다. 그리고 사실 그리 크게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하여간 차이가 있기는 있는데, 또 그게 아주 살짝이라 하기엔 좀 면목이 없어지기도 하고 뭐 그렇다. 이 정도면 대강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아시겠지.

  하여튼 친애하는 서재친구 *자*님 말씀, 책 읽다가 슬럼프에 빠져 도무지 읽히지 않을 때가 생기면 슬럼프 탈출을 위한 가장 좋은 작가가 M이라는 건 진리거나 진리에 무척 가깝다.



  독후감을 여기까지 쓰고 며칠이 지난 오후다. 아시다시피 난 은퇴자다. 아직 연금생활자까지는 아니다. 하여튼 그렇다. 그러니 오후에 맥주 한 캔과 견과류 한 종지 옆에 놓고 이미 독후감 쓴 책 갖고 두 번 얘기한다고 타박하지 마시라.

  잊히지 않는 등장인물이 있다. <행복한 남자>의 주인공 스티븐스. 그가 세상 도처에 안 가본 곳이 없는 의사 출신인 ‘나’를 찾아와 조언을 청한다. M도 의과대학 졸업한 의사 출신인 건 아실 듯하다. 아이는 없지만 결혼한지 6년이 지났고 런던 캠버웰 병원의 의사로 있는데 진이 빠져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어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스페인으로 가 의사 개업을 하면 어떨까 하고 묻는다. M이 스페인이라고 다 <카르멘> 같지 않다고 하니까, 뭐라고 하느냐 하면,

  “하지만 햇살이 좋지 않습니까. 좋은 와인도 있고요. 색깔이 있고 숨 쉴 수 있는 공기가 있죠. 터놓고 말씀드리죠. 세비야에 영국인 의사가 없다는 말을 우연히 들었습니다.”

  M은 위험부담이 크다고 조언한다. 잉글랜드에서 그냥 의사로 일하면 쁘띠 부르주아로 살 수 있지만 돈 욕심 부리지 않고 세비야로 간다면 그저 먹고사는 것에 만족한다고. 대신 멋진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래서 그는 정말로 아내와 함께 세비야로 떠났다. 이런 일을 까맣게 잊어버린 M은 15년이 흐른 후 세비야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만 가벼운 병증이 일었고, 동네에 영국인 의사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 불렀더니 바로 스티븐스, 그가 왕진을 왔다.

  어땠을까? 꾀죄죄한 옷을 입은 채 방문을 열고 들어와 M을 만난 스티븐스의 말씀이. 문학적 성취와 관계없이 아오, 내 마음을 콕 찔러버린 짧은 작품이었다. 결론을 알고 싶으면 책을 읽어보셔야 하리라. 절대 알려드리지 않을 터이니.

  명작이 별거냐, 독자 가슴에 정확하게 바늘을 콕, 찌를 수 있으면 그게 그 독자한테는 명작이리라. 안 그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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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2-10-28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집에 말씀하신 책이 없는데요 ㅠㅠ 결론 좀 알려주시면 안될까요? 골드문트님 😭

2022-10-28 1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22-10-28 08: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제게 이 책이 있다는 걸 잊었습니다. ㅋ 친애하는 *자* 올림. <행복한 남자>를 오늘 읽어보겠습니다!

Falstaff 2022-10-28 16:22   좋아요 0 | URL
ㅋㅋㅋ 근데 다른 분들도 공감할 수 있는지, 그건 제가 보장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양해해주시기 앙망하나이다. ㅋㅋㅋㅋ

yamoo 2022-10-28 1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결론..무조건 단편집1을 읽고 나서 2를 읽을지 생각해봐야지..ㅎㅎ. 행복한남자는 넷플 영하가 있는데 동명소설과는 다른듯합니다. 전 영화를 넘나 인상깊게 본지라..첨에 영화를 언급하는줄 얼았습니다. ㅎㅎ

수이 2022-10-28 12:51   좋아요 0 | URL
야무님 결말 어떻게 나는지 좀 알려주세요 제가 오늘 도서관도 못 가는데 결말을 알지 못하니 미치겠습니다 ㅠㅠ

Falstaff 2022-10-28 16:25   좋아요 2 | URL
저더러 한 권만 고르라고 하면 1을 선택할 거 같습니다.
넷플에 행복남이 있어요? 한 번 찾아봐야겠습니다.
저도 넷플에서 정말 행복남, 행복녀 나오는 영화, 근래에 하나 봤습니다. 샐리 호킨스, 이선 호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내 사랑>입니다. ㅋㅋㅋ 울었지 뭐예요. ^^;;;

coolcat329 2022-10-30 1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휴~ <행복한 남자> 저리 끝내시니 ㅋㅋ 찾아보니 또 2에 실려 있네요.
도서관 가서 찾아 읽어야지 저도 궁금해 죽겠네요. ㅋㅋ

Falstaff 2022-10-30 20:36   좋아요 1 | URL
ㅋㅋㅋ 낚이실 뻔한 겁니다. 1이 조금 더 좋습니다. 1 읽으시고 마음에 들면 2를 선택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

stella.K 2022-11-01 2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파릇파릇했던 20세기 말에 이 책을 읽었더라구요.
물론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걸로.
얼마 전 그 사실을 알고 거의 경악을 할뻔했죠.
읽은 책은 아무리 오래되도 제목만큼은 확실히 기억한다고 생각했는데.ㅠ

근데 독후감을 며칠 있다 다시 쓰시기도 하는군요.
맥주에 견과류 드시면서. 왠지 작가의 포스가 느껴지는데요?ㅎㅎ
저도 며칠에 걸쳐 쓰곤 하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잘 쓰는 것도 아니면서...ㅠㅠ

Falstaff 2022-11-02 07:29   좋아요 1 | URL
옙. 독후감 쓰고 업로드까지 대개 한 주일 정도 사이가 있습니다. 작가의 포스는 무슨 ㅋㅋㅋㅋㅋ 매번 그러는 건 아니고요, 이 작품 같이 오래 남는 게 가끔 있습니다. 좋은 의미일 수도 있고 나쁜 의미일 수도 있고요. 그런 건 다시 읽어보고 고치고 뭐 그렇지요.
아, 20세기 말에 읽으신 책이 이 책의 빼박입니까? 그게 요즘 민음사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하고 있는 일입니다. 말은 ˝고전은 세대 별로 다시 번역해야 한다.˝ 라고 하면서 말입죠. ㅋㅋㅋㅋ 걔네들도 뭐 남는 게 있어야 먹고 사니까, 이해는 합니다만.
 
선창 1 - 헥사곤 한국문학선
천승세 지음 / 헥사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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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어이없는 양반이.... 오래된 약속, 한 잔 술을 사준다고 해놓고 벌써 가시면 우짜나. 하긴 공수표 날리는 게 특기인 건 알았지만 그리 당당하게 잘 생긴 양반이 훌쩍 가버리는 건 어쩐 일이실꼬. 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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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2-10-26 2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서구 신월동 살 때 같은 동네 사시던 꼰대셨습니다. 특별한 인연은 없고요, 제가 일방적으로 희곡 만선과 사계의 후조, 황구의 비명에 반해 뵐 때마다 아 슨상님 은제 술 사주실 겁니까, 조르고 졸랐는데 말만 사준다고 하고 끝내 공수표 날렸습니다. 주로 버스간이나 버스 기다려면서 뵀습니다. 가끔 잔뜩 술 취했는데 서로 바라보며 둘 다 취한 모습이 웃겨서 웃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웃씨. 따님이 예쁘게 생겼다고 소개해주겠다고 한 것도 역시 말풍선이었고요. 하긴 당시 전 복학생, 따님은 고딩이었으니 어울리진 않았겠지요. ㅋㅋㅋ
늦었지만 명복을 빕니다. 벌써 가신지 2년이군요. 으허....

coolcat329 2022-10-26 21:29   좋아요 1 | URL
저는 모르는 작가이지만 찾아 보니 많은 작품을 남기시고 상도 많이 받으셨네요. 이번에 이렇게 유작이 출간되어 그 시절이 그 추억이 떠오르셨겠어요.

Falstaff 2022-10-26 21:35   좋아요 1 | URL
넵. 좀 젊었을 때는 참 잘난 외모였습니다.
첫 만남이 재미있었습죠. 버스에서 탁, 보니까 천 선생인 겁니다. 그래 제가 먼저 아이고, 천 선생님 아니십니까. 했더니 누구시더라.... 이래요. 제가 고딩 때부터 팬입니다. 그랬더니 곧바로 하시는 말씀이, 술 한 잔 하자고 ㅋㅋㅋㅋ 이미 자정이 넘거나 자정 근처라서 열린 술가게가 없었거든요.
근데 그 담부터 자주 만나는 거예요. 나중에 알고보니까 선생의 따님이 정여사 제자이기도 하더라고요. 고딩이었나, 중딩이었나 그건 좀 헷갈립니다.
이 작품은 80년대 초반에 쓴 것으로 미완성이라 제가 읽을지 아닐지 잘 모르겠는데요, 박정희 정권 때 쓴 남녀상열지사 문학에선 ㅋㅋㅋㅋ 입심 하나는 대단했습니다.

coolcat329 2022-10-26 21:46   좋아요 1 | URL
따님이 어머님 제사였다니 와~그 정도면 특별 인연인데요. 작가를 알아보는 독자도 흔하진 않구요.
좋아하는 작가님과 술 한 잔 할 수도 있었는데 두고두고 기억나고 아쉬우셨겠어요.
아까 알라딘에서 미리보기로 조금 읽어봤는데 사투리가 아주 생생하더군요.
아무튼 골드문트님 옛 이야기는 늘 재밌습니다.
 
이강백 희곡전집 1 이강백 희곡전집 1
이강백 지음 / 평민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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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7년 전주 출생의 극작가. 오랜만에 ‘라떼’ 이야기 좀 하자. 고등학생 시절에 국어 교과서에서 읽을 수 있는 희곡은 유치진이 쓴 김유신 이야기든가, 화랑 이야기든가, 하긴 김유신도 화랑 출신이니 둘 다 일 수도 있고 그랬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문학 장르에서 제일 안 팔리는 종목이 희곡인 것은 똑같아서, 유치진 작품 말고는 한 편도 경험할 수 없었다. 이제는 그때와 달라 대입 수능에서 제일 높은 빈도수로 등장하는 극작가가 오늘 읽은 이강백이라고 한다. 내 경우에 이강백을 처음 읽은 건, 이야, 놀랍기도 하지, 지금부터 딱 4년 전인 2018년 10월로 이화여대 김성희 교수가 편 《한국현대명작희곡선집》에 실린 <봄날>을 읽어보았을 뿐이다. 아쉽게도 내용은 전혀 기억에 남지 않았지만.

  1980년대 초에 평민사가 이강백과 계약을 맺기를, 그가 그때까지 쓴 희곡 전집을 발간하고, 앞으로 나올 모든 작품 역시 평민사가 출판하기로 했다 한다. 이 책의 서문, 머리글에 작가 스스로 말했다. 저번에 한 번 얘기 했다시피, 우리나라에 유독 희곡 장르의 기록이 많이 유실된 이유가, 희곡을 쓰고, 공연을 하면, 연극이 성공을 하건 말건 하여튼 이후에는 그것을 책으로 만들어야 보존이 될 터이지만, 길고 긴 세월 동안 희곡-연극 장르의 예술행위의 가장 큰 고객은 인구 대비 지극히 적은 수를 차지했던 “여대생”이었던 관계로 도무지 독자가 없어서, 출판사도 이윤을 내 먹고는 살아야 한다는 대원칙을 지키기 위해 돈 안 되는 희곡을 찍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와중에 1971년에 등단한 이강백은 1982년, 등단 11년 만에, 서른다섯이라는 별로 많지 않은 나이에 이런 통 큰 계약을 당했으니 모르긴 해도 한 삼박사일 동안 쐬주 깨나 마셨을 거 같다. 이런 횡재를 얻어걸린 이강백은 당연히 이후에도 줄기차게 작품활동을 이어 나가, 숱한 대표작을 양산해 명실공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극작가의 자리를 꿰차고, 직장에서도 같은 건물, 같은 층에서 근무하던 시인 김혜순과 가약을 맺는다. 나도 처음 알았다. 이강백과 김혜순? 슬픔치약과 거울크림?

  네이버를 통해 ‘한국현대문학대사전’에서 이강백을 검색해보면, “등단이래 1970년대의 억압적인 정치∙사회 상황 하에서 제도적인 폭압 체계를 상징적으로 풀어내는 데 성공한 작가로 평가된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꼽은 것(들)은, 그러니까 70년대 작품 가운데 대표작이라는 얘긴데, <셋>, <알>, 그리고 <파수꾼>이다. 전집 1은 이강백의 1971년부터 74년까지 쓴 작품 여섯 편이 들어 있고, ‘폭압 체계를 상징적으로 풀어낸’ 대표작 세 편이 모두 실려 있다. 하지만 이강백 본인은 ‘지은이의 머리글’에서 분명하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정치적인 상황과 연극의 관계에 대해서 나는 생각해 본 일이 없다. 다만 나는, 우화적인 희곡을 쓰는 극작가로서 정치적인 상황이 우화적 희곡의 좋은 소재가 된다는 것을 놓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러한 소재는 관객들의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은 몇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번째는, 희곡전집의 초판이 나온 1982년 역시 1970년대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살벌한 깡패에 의하여 독재정치가 저질러지고 있던 형국이라 새롭게 책을 펴내면서 자신이 70년대에 쓴 작품이 진짜로 유신독재를 우화적으로 비틀어버린 거라고 고백했다가는 남영동 분실 욕조의 물 맛을 볼 수도 있다고 겁을 먹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두번째는, 원래 비평가, 평론가라는 직업이 전문적으로 해몽을 하는 것이라 직접 꿈을 꾼 (극작품을 쓴) 사람의 진짜 의도는 정치와 상관없이 그냥 그걸 소재 가운데 하나로 삼아 우화적 실험을 한 것뿐인데 그게 우연히, 또는 당시의 시대상과 어울려 유독 현 정치 환경을 빗대 평론하기를 좋아하는 유명 평론가들이 자기 멋대로 평가를 한 것일 수도 있다. 시어미 죽으면 시어미 죽은 슬픔보다 자기 속에 맺힌 것 때문에 앙가슴을 치며 통곡을 하는 며느리처럼.

  직접 이강백의 작품을 읽어보면, 이 무학, 한 번도 졸업이라는 걸 해보지 못해 가방끈이 짧다 못해 아예 없는 대학교수이자 살아있는 극작가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이의 초기 작품은, 특히 1974년 작품 <파수꾼>은 “한국적 민주주의”를 토착화 하겠다는 유신 치하에서 숱하게, 이 단어를 발음할 때 느낄 수 있는 ‘숱하다’의 어감보다 73배 더한 빈도의 ‘숱하다’로, 눈만 뜨면 신문, 방송, 교장 훈시 등을 통해 “북괴의 적화통일 야욕” 테제를 연상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단 한 명의 파수꾼만이 광야에 홀로 선 파수대에 올라 이리떼의 습격을 관찰해 경보를 울리고, 이때마다 주민들은 민방위 훈련처럼 지하실로, 대피소로 피해야 하는 일상의 연속. 만일 이것을 우화라고만 생각한다면 당연히 페리 인데스 210번의 이솝 우화 <양치기 소년>을 떠올리겠지만, 육영수가 문세광의 저격을 방어하느라 경호실 요원이 쏜 총에 맞아, 불행하게도, 죽기 바로 며칠 전인 『현대문학』 1974년 8월호에 발표했을 당시엔 머리글에서 극작가가 직접 밝힌 우화 운운하고 관계 없이 틀림없는 세대 풍자로 읽힌다. 그러니까 결론은 평론가의 말이 진실과 근접하고, 이강백은 서슬퍼런 전두환 깡패 시절에 솔직한 말을 하기엔 너무 쫄았었다는 거다.


  이강백은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다섯>이 당선이 되어 등단한다. 그러나 본인도 그렇고 평론가들도 그렇고 데뷔작인 <다섯>을 언급하는 데는 굉장히 인색하다. 이 극작가는 어려서 지금은 거의 없어진 질병인 소아마비를 앓아 한 쪽 다리에 장애가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무학의 학력을 지녔다. 외골수 청년으로 성장한 이강백은 자신의 말에 따르면 신춘문예에 당선하는 스물네 살 때까지 다락방이나 지하실 방에서 혼자만의 폐쇄적인 생활을 하며 시, 소설, 희곡 같은 것을, 특정한 장르에 목표를 두지 않은 상태로 죽어라 습작에 몰두하고 있었단다. 그리하여 희곡전집 1에 실린 여섯 작품 가운데 네 다섯 작품은 닫힌 세계, “홀로 있었다는 영향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금이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자신의 환경과 관계없이 추구할 수 있는 조금의 간극이 생겼지만 이이가 이십대를 시작한 60년대 중후반에 무학의 장애인으로 할 수 있는 건 창작이 거의 유일하지 않았을까 싶다. 넘쳐나는 자의식을 원고지에 담다가 극작가로 데뷔를 하고, 언감생심 연출가로부터 자기 작품을 공연하고 싶다는 편지까지 받았으니 기분이 어땠을까?

  <다섯>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작품은 전부 정치적이다. 또는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엄혹한 유신체제에서 이런 극작품을 생산하고 발표하고, 공연까지 할 수 있으려면, 당연히 우화의 탈을 써야 했다. 우화도 우화 나름이지 김지하처럼 <오적> 비슷한 신랄한 풍자는 흉내도 내지 않는 것이 만수무강까지도 아니고 그저 심신안정을 위한 최상의 방법이었으니, 이강백 정도의 우화 또는 우화의 차용도 사실 대단한 깡다구가 아니면 가능하지 않을 일이었다.

  재미있는 작품들이다. 물론 나 역시 데뷔작인 <다섯>을 제외하고 말하는 중이다. <다섯>은 이강백의 전매특허라는 우화, 알고리즘이라기보다 프랑스 희곡에서 자주 써먹은 부조리극을, 억지로 배에 태워 신탐라국으로 데려온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기들의 조국을 떠나 신탐라국으로 밀항하느라 배의 밑창에 숨은 다섯 명의 밀항자들 이야기다. 읽어보시면 좋을 듯한데, 우리나라 희곡 잘 안 읽는 거 안다. 알고도 무턱대고 읽어보라 권할 수도 없는 일. 에잇, 알아서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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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2-10-25 0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강백 평민사 전집 1,2권이 있고 이 중에서 파수꾼만 읽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작품도 읽었는데 그건 전집 몇권에 수록된지 모르지만 좋았습니다. 그리고는 이강백 컹렉션에 들어갔눈데...읽음 건 거의 없지만 작품이 좋은 건 분명히 알겠더이다. 다른 책들 읽느라 언제 읽을지 모르지만 빠른 시일 내에 일독해야겠습니다.
타타르인의 사막 읽고 지금 나는고백한다 읽고 있는데...그 다음에 우선적으로 읽어좌야겠슴돠!

Falstaff 2022-10-25 13:58   좋아요 0 | URL
저도 예상 외로 이강백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데뷔작이 좀 답답했지만 곧바로 흥미가 생기더라고요.
아, 지금 고백 읽으시는군요! 그것도 진짜 진짜 재미나던데요. ㅎㅎㅎㅎ
 
사촌 퐁스 을유세계문학전집 93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정예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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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서 ‘두번째‘로 불쌍한 인간은 프랑스 문자로 발자크를 읽지 못하는 한국 독자이며, ‘세번째‘가 발자크를 한국말로 번역해야 하는 역자이고, 제일 불쌍한 첫번째는 발자크를 읽지 않고 세상을 하직하는 세상의 숱한 인종들....... 아녀? 아니라고? 그럼 뭐 할 말 읎기는 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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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0-24 2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 저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첫번째..... ㅠ.ㅠ 어 물론 언젠가는 읽을거에요. 진짜요. ㅠ.ㅠ

Falstaff 2022-10-24 21:4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보시다시피 구랍니다, 구라. ㅋㅋㅋㅋㅋ

페넬로페 2022-10-24 2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일 첫 번째 불쌍한 사람 되지 않도록 빨리 발자크 시작하겠습니다 ㅎㅎ^^

Falstaff 2022-10-25 06:07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이 양반이 하도 오래 전 사람이라 좀 지루한 건 각오를 하셔야 합니다. ^^

coolcat329 2022-10-25 0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발자크는 삶에 있어서는 참 어리석기도 하고 문제가 많았지만 문학에 있어서 만큼은 발자크만큼 집중력과 에너지를 쏟은 작가도 없는 거 같아요. 발자크에 대한 멋진 말씀입니다~^^

Falstaff 2022-10-25 14:00   좋아요 1 | URL
맞아요, 집중력. 진짜 그건 정말 대단합니다. ^^
발자크는 딱 일정한 정도의 기대수준이 있어서 그런지 에이, 읽지 말자, 해놓고도 보이면 보이는 족족 사서 읽게 되더라고요. 이상한 작갑니다. ㅋㅋㅋㅋ

독서괭 2022-10-27 2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발자크가, 그 정도인가요? 저는 아직 안 읽었는데, 제일 불쌍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어서 읽어봐야겠네요^^;;;

Falstaff 2022-10-27 21:02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근데 조심하셔요. 19세기 초 양반이라서 세밀 묘사에 나가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양반의 세밀묘사.... 후대의 작가들이 사용을 하건 말건 간에 반드시 할 수는 있어야 하는, 마치 화가(지망생)들의 데생 수준이라고 생각한답니다.

그레이스 2022-10-28 06: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읽겠습니다 ㅋ

Falstaff 2022-10-28 16:26   좋아요 1 | URL
옙. 좀 구질구질한 구석도 있는게 재미나요. ㅋㅋㅋ

레삭매냐 2022-10-28 1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샀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봅니다.

꼭 사서 읽어야지 싶습니다.

Falstaff 2022-10-28 16:27   좋아요 1 | URL
윽. 갑자기 덜컥, 겁이 나는데요. 흠.... ㅋㅋㅋ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 고통을 경쟁하는 지구적 기억 전쟁
임지현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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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사학자 임지현은 1959년생으로, 당시 역사학의 한 학파로 당당하게 군림했던 서강대학 사학과에서 학사부터 박사까지의 교육과정을 마쳤다. 이이가 대학 다닐 시절의 서강대 사학과는, 당대 최고의 사학자라고 칭송받던 만주 일제 관동군 출신의 이기백(친일 인물 아님) 교수를 수장으로 하는 서강학파의 전성기였으나, 서강학파라는 존경의 호칭은 임지현이 전공한 서양사학보다는 국사학을 위한 것이었다고 기억한다. 오직 내 기억이니까 정확하지 않다. 서양사학을 포함했을 수도 있다. 지금은 임지현 교수가 이끄는 서강대 사학과는 그가 열렬히 주장하는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 주의 사학이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믿지는 마시라. 이 분야에 나는 아마추어 수준이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라면 민족주의라는 커다란 장르 안에 희생자의식을 배경으로 하는 민족주의라는 뜻일 터이다.

  나라마다 민족주의가 필요한 시기가 있고, 그 시기가 지나가면 더 이상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반도가 이데올로기에 의하여 분단이 된 후 내전을 거쳐 남과 북 공히 지극한 가난 속에서 지독한 독재를 겪었다. 이럴 때 국민들이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지 않을까 한다. 소위 개발도상에 있을 때까지는 한 민족이라는 기치 아래 뭉쳐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경제발전을 이루는 것이 가장 큰 가치일 터이니. 이후 일정 수준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그리고 군사력을 확보한 다음에도 여전히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일은 국가대항 운동시합이나 곧 다가올 월드컵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즐기기 위한 수준 이상이 되면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단재 신채호의 사관인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을 존경할지언정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아와 비아의 투쟁을 주장할 수도 없고, 주장해서도 안 된다는 뜻이다. 이런 말을 하면 서재 친구들의 ‘친구 취소’ 클릭하는 소리 들리고 심지어 돌도 날아올 지 모르지만 고백하노니, 나는 꽤 오래 전부터 애국가를 부르지 않았고, 눈치가 보여 전혀 안 할 수는 없지만 국기에 대한 경례를 될 수 있는 대로 하지 않으며, 국기에 대한 맹세는 죽어도 하지 않고, 개정된 국기에 대한 맹세는 외우지도 못한다. 오해하지 마시라. 여호와의 증인 신자 아니다. 그리고, ‘임을 위한 행진곡’도 같은 맥락에서 부르지 않는다.

  그리하여 친애하는 서재친구 단발머리 님께서 소개한 이 책의 한 페이지를 읽자마자 일초도 망설이지 않고 도서관에 상호대차 신청을 했다. “식민지 조선의 개별 가해자와 제국 일본의 개별 피해자” 그리고 “‘집합적 유죄’와 ‘집합적 무죄’에 대한 한나 아렌트의 비판”이 평소에(‘자주’라고 쓰기엔 면목이 없는 빈도로) 흥미롭게 궁리하고 있던 현상이었다. 이 고민은 이과를 졸업해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않은 큰 아이가 대학에 다닐 때, 왜 일본이 조선에 대한 식민지 경영을 사과해야 하느냐, 당시엔 제국주의가 세계사조라서 힘 있는 나라가 약한 나라를 강점하는 건 일종의 유행/대세 아니었느냐, 라는 물음에서 시작해 꼬리에 꼬리를 이어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아이는 그새 애 아범이 됐고, 지금 서른세 살이니까 벌써 10년 전이다.


  책은 일본계 미국인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의 소설, 원제목은 <대나무 숲에서 저 멀리>인데 <요코 이야기>로 널리 알려진 작품에서 시작한다. 내용은 강점기에 함북 나남에서 살던 열한 살짜리 요코네 가족이 전쟁이 끝나고나서 어머니, 언니와 함께 서울을 거쳐 부산으로 내려가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가는 험로를 그렸다고 한다. 문제는 요코 왓킨스가 자신들이 어떻게 해서 일본땅이 아닌 조선의 함경북도에서 살게 됐는지, 조선과 함북 나남에서 일본인들에 의하여 저질러진 대 조선인 박해가 어떠했는지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일본으로 가며 조선인들에게 당한 구타와 강간 등의 잔인한 범죄에 관해 상세하게 서술해 조선인을 사악한 가해자로, 일본인을 무고한 희생자로 그렸다는 데 있고, 이것이 미국 소년들에게 권장도서로 지정이 되는 바람에 당시 미국인 다수가 조선인-가해자, 일본인-선량한 피해자라는 등식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역사에서 가해자는 악당이고, 피해자는 선량하게 여기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리하여 조선에서 물러가는 일본인들에게 패악질을 한 조선인들은, 일본인이 35년간 지배하며 가한 피해를 고스란히 받았던 것에 비하면 조선에 거주하던 소수의 일본인에게 저지른 작은 악행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의, 피해 경쟁을 벌이는 양식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저자 임지현의 시각이다. 그리고 내 생각이기도 하다.

  희생자의식과 트랜스내셔널을 연구하는 임지현의 사고는 <요코 이야기>에서 시작해 단박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피폭으로 이어진다. 즉, 아시아 태평양 전쟁을 야기시킨 장본인이며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 학살을 저지른 가해자라기 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자폭탄의 피해를 입은 피해자 의식으로 2차 세계대전을 공유한다는 말이다. 일본을 방문한 많은 미국 대통령은 방문중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들러 헌화하고 예를 표하는 일정을 잡으며, 이때마다 일본은 침략국의 위상이 아니라 피해자, 그것도 이젠 피해자를 넘어 희생자의 위상에 올라, 아우슈비츠 등에서 있었던 홀로코스트와 동일시하는 버릇까지 생겼단다. 리틀보이와 팻맨에 얻어터진 일본은 이로 인해 중국 난징에서 있었던 학살과 조선 독립군에 대한 잔인한 토벌과 간도의 조선 주민 몰살, 위안부 등에 관해 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자기들이 더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세계 도처에서 벌어져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점령할 수 있었고, 독일에 의하여 인구의 20퍼센트를 희생당한 폴란드는 자기 국경 내에서 자국민에 의하여 벌어진 유대인 학살을 별 죄의식 없이 여기면서 역사에 선택적으로 기록 또는 은폐할 수 있었다. 헝가리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에서도 마찬가지고. <요코 이야기>로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에 관해 발제를 한 저자는 이후 세계 각지에서 보여준 실례를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하는데, 임지현의 글솜씨가 대단해서 정말 흥미롭게 사건의 발발과 전개를 읽을 수 있다. 역시 판검사, 변호사 뿐만 아니라 역사, 경제학자한테도 재미있게 글을 쓰는 건 돋보이는 장점이다. 이렇게 책은 결론을 향해 달려간다.

  희생자의식은 당연히 같은, 아니면 적어도 비슷한 기억을 연대하는 집단 사이에서 생기는 것으로, 이의 해소를 위해서는 각 연대의 “희생의 기억을 탈영토화하여 ‘제로섬 게임’ 적的 경쟁체제에서 벗어날 때, 자기 민족의 희생을 절대화하고 타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 뒤에 줄 세우는 기억의 재영토화에서 벗어날 때, 그래서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희생할 때, 기억의 연대를 막고 있는 장벽이 터지면서” 해소될 수 있다고 결론을 낸다.


  임지현은 이 책에서 피해와 희생을 섞어 사용하고 있다. 물론 책 중에 피해와 희생 victim과 sacrifice으로 정의하여 성경까지 가져와 상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지만 책이 끝날 때까지 나는 이 두 경우를 구별하기 힘들었다. 예를 들어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의 우라카미 천주당 상공에서 원자폭탄이 터져 사제, 부사제, 신도 전부가 한 순간에 화르륵, 불타 사라져버렸는데, 이들은 원폭의 피해자인가, 자발적으로 종전을 위해 희생당하기를 바랐던 순교자인가. 내 시각으로는 그저 피해자이다. 굳이 이들은 희생자로 승격을 당해야 했으며, 그럼으로 해서 일본인과 천주교는 더욱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와 종교를 강화할 수 있었다. 저자는 국가 사이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말고도 계급간 희생자의식이 어떻게 기능하는지도 보여주겠다고 책의 앞 부분에서 말했는데, 부도난 공수표였다.

  서해상 떠있는 배에서 실족해 바다에 빠진 공무원이 북한으로 표류하다가 북한 병사의 총을 맞고 죽었다. 이 불행한 사건의 주인공인 공무원은 피해자인가, 희생자인가? 명복을 빌어 마땅한 해당 공무원이 희생자가 되는 순간 누군가가 이득을 보고, 누군가는 (어쩌면) 치명적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같은 논리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다가 배가 침몰해 많은 학생들이 바다에 빠져 죽었다. 학생들은 피해자인가, 희생자인가? 당연히 명복을 빌어야 하는 어린 학생들이 희생자가 되면서 누군가는 정치적 이득을 얻으며 ‘미안하다. 고맙다’ 라고 결코 지워지지 않을 자국을 낼 수 있었다. 이 두 건은 ‘계급간 희생자의식’이라기 보다는 ‘진영간 희생자의식’이라 할 수 있겠지만, 만고의 진리인 유일한 결론은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는 거다. 원폭에 맞아 한 순간에 형체도 없이 사라졌건, 가스를 마시고 죽은 육신마저 태워져 한 줄기 연기로 변해야만 굴뚝을 통해 수용소에서 나올 수 있었건, 물에 빠져 죽었건, 물에 빠진 다음에 총 맞아 죽었건 간에.

  아무리 책이 희생자의식을 제목으로 내세우고 있어도, 이 반대편에 있는 “가해자의식”에 관해서도 한 챕터 정도는 할애할 줄 알았다. 35년간 수탈과 학대와 학살까지 서슴지 않았던 일본인들이 과거의 피해자인 한국인들을 바라보는 시각. 마찬가지로 길고 긴 세월 동안 식민지 경영을 했던 영국인들이 인도인을 대하는 시각. 아메리카 원주민을 보는 미국인, 역시 원주민을 보는 오스트레일리아인의 시각 등. 일본인은 과연 예전에는 조선인이라 불렀던 한국인들을 자신들과 모든 면에서 동등한 인류의 구성원이라고 생각할까? 아닐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35년 이상을 가해할 수 있었던 민족. 자신들보다 못났기 때문에 (사실과 관계없이) 스스로 나라를 합치자고 병합 조약에 서명한 나라의 국민들이라고 여기고 있지 않을까. 나는 그것도 궁금하다. 민족주의의 유령은 끈질기고 또 끈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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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10-21 09: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역사학자가 계셨군요.
내가 더 큰 희생자라는 의식을 앞세워 나는 선이고 너는 악이라는 구분을 지음으로써 서로를 더 증오하게 만드는 그런 희생자 민족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거네요.
내가 남에게 한 짓 보다는 내가 남에게 피해입은 것만 주장하는 건 어찌보면 인간의 본능이겠지만 이 책은 그것을 좀 더 이성적으로 들여다보자는 거죠.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Falstaff 2022-10-21 13:31   좋아요 3 | URL
저도 이이가 쓴 책은 처음 읽어보는데요, 영미 사학에서 시작했을 법한 시각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렇더군요. 웬만한 소설책보다 더 재미있습니다.

mini74 2022-10-21 10: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나쁜거냐고 한국아이들 울면서 집에 돌아오고. ㅠㅠ 그래서 미국에 살던 주재원 등 한국인엄마들이 분노하고 시위한다는 기사가 기억이 나요. 학교에 그런 일이 왜 생겼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요구하기도 하고. 누가 더 많이 아픈가의 경쟁이 아니라 앞뒤 흐름을 알게하고 판단을 각자에게 맡겨야겠죠. 일본판 안네의 일기라는 둥 이 이야기 말이 많았죠. 일본이 열심히 로비하고 퍼트려서 ㅠㅠ 둘 다 진실이지만 여기서도 힘과 경제의 논리가 작용한다는게 속상했던 기억납니다. 골드문트님 마지막 문단 ㅠㅠ

Falstaff 2022-10-21 13:34   좋아요 1 | URL
미니 님은 저 소설책 읽어보셨다고 했지요? ㅎㅎㅎ 재미는 별로일 듯한데 뭐 그건 우리 시각일 수도 있겠지요.
사실 가해자의식 민족주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다만 성공한 가해자가 일부러 그런 걸 말할 필요가 없을 뿐입니다.

그레이스 2022-10-21 10: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국가는 무엇이고, 역사는 무엇일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자주있습니다

Falstaff 2022-10-21 13:35   좋아요 2 | URL
그래서 저자는 국가와 역사를 합친 ˝국사˝를 신뢰하지 않더라고요. 본문에도 적혀 있었습니다. 객관성 결여라고 침을 (조금) 튑니다.

건수하 2022-10-21 1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이지만 아쉬운 부분이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궁금했는데 잘 읽었습니다.

Falstaff 2022-10-21 13:36   좋아요 2 | URL
옙. 말씀하신대롭니다.

단발머리 2022-10-21 10:3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침 일찍 이 글을 읽었는데요. 너무 반가워서 1회독 후 일단 ‘좋아요‘ 누르고 이제 돌아왔습니다. 오늘 유난히 사건이 많은 아침이라 아직도 집이 너저분한데 그게 뭐 대수겠습니까. 제게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더 중요하고요.

“희생의 기억을 탈영토화하여 ‘제로섬 게임’ 적的 경쟁체제에서 벗어나고, 자기 민족의 희생을 절대화하고 타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 뒤에 줄 세우는 기억의 재영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저자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학자들이 먼저 이런 식의 연구,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다만.... 골드문트님은 책을 다 읽으셨고, 또 이 페이퍼를 읽으신 분들도 이해하실 거라는 맥락 하에서, 저는 꼭 사과를 받아야겠습니다. 저는, 그렇다고요. 저는 독일이 ‘나미비아‘에 대한 사과나 반성 없이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만 주구장창 사과하는데 모순점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사과해야 한다고,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용서는 희생자의 몫이고, 희생자의 결정일테지만요. 물론 자신의 손으로 천황을 뽑은 게 아니어도 천황과 기타 정치세력 때문에 목숨을 잃은 일본인들에 대해 인간적으로 연민을 느낍니다. 안타깝지요. 하지만 골드문트님 지적대로 그들은 피해자이지 희생자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요. 홀로코스트의 절대적 희생자화(제가 존경하는 시몬 베유도 그렇게 주장했습니다만)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손으로 선택한 지도자를 통해 이뤄졌던 국가적인 악행에 대해서는 정부가 바뀌어도, 집권 세력이 바뀌어도 사과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세월호의 학생들은 희생자라고 생각하는 입장인데요. 세월호 사건이 시작부터 마지막 상황까지 발전과 개발 위주의 경쟁사회가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악행의 총합이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적어도 대통령이 이명박 정도만이라도 행동했었다면, 그런 비극적인 결과에까지 이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에 대한 합당한 예우, 애도마저 정치적 이득을 얻은 것으로 이해되서는 안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도 국기에 대한 맹세,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은지 아주 오래됐습니다. 초등 1학년이었던 큰아이가 이유를 물어서 간단하게, 정말 간략히 말해주었는데, 그 다음부터 요것들이(두 아이 모두)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겠다고 해서... 아무튼 그렇게 되었네요.

같이 읽는 힘, 같이 읽는 즐거움을 맘껏 누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좋은 사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골드문트님!! 저 이제 400쪽 남았는데요. 다 읽고 돌아오겠습니다^^

Falstaff 2022-10-21 13:41   좋아요 5 | URL
아이고, 이렇게 길게 댓글을 주셨네요.
하여간 제 바람은, 나하고 다른 의견을 가졌다고 비난하지 말자는 겁니다! ㅋㅋㅋ
단발머리 님의 글 보면... ㅋㅋㅋ 당연히 세월호 ˝희생자˝라고 하시리라 알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하신 말씀이 참 따뜻해서 좋습니다. 오히려 제가 단발머리 님 덕택에 흥미있던 분야의 책을 만끽했는 것을요. 고맙습니다.

잠자냥 2022-10-21 11:3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문트님 서재 맞는가? 하고 일단 어리둥절하면서 읽었습니다. ㅋㅋㅋㅋ (문학이 아닌 책이 올라와서요)
아, 저도 국기에 대한 경례인가 뭔가 되도록 삐딱하게 하거나 손을 안 올리고 애쓰던 사람으로서 반갑습니다. (여호와증인교 아님2222)
누구 말처럼 민족이란 그저 상상속의 공동체가 아닌가 싶네요.

Falstaff 2022-10-21 13:43   좋아요 5 | URL
ㅋㅋㅋ 저도 이런 책 가끔 읽습니다.
아, 여호와의 증인 신자 아닙니까? ㅎㅎㅎ 거기 신자들 굉장히 착해요. 누가 저더러 묻더라고요. 왜 여호와의 증인 믿는 사람들은 대개 착해? 그래서 제가 대답해줬습니다.
˝거긴 사이비 나이롱 신자가 거의 없거든.˝ 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2-10-21 16: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리 역사에서 민족주의가 긍정적인 역할을 하던 때가 분명히 있었지요. 그런데 그 민족주의가 시대가 바뀌고 사고의 틀이 바뀌어야 할 때도 그대로 온존하고 있으면 새로운 억압의 기제로 작용하더군요. 그런데 우리나라 역사학계는 민족주의의 힘이 얼마나 센지 거의 손도 못댑니다. 민족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가는 거의 학계에서 매장되는 분위기죠. 여기에 대해서는 고민도 많고 할말도 많은데 저도 책 읽고 돌아올게요. 사다만 놓고 안읽은 책에 요 책도 한자리 차지하고 있네요. 임지현 선생의 책은 우리안의 파시즘도 20년만에 다시 나왔습니다. 저는 20년 전에 읽었고, 이번에 다시 읽으려고 샀으나 역시 또 쌓여있는...ㅠ.ㅠ

Falstaff 2022-10-21 18:28   좋아요 1 | URL
ㅋㅋㅋ 제가 아주 아주 오래 전에 민족주의자였다는 거 아닙니까. 이걸 단방에 바꾸어주신 분이 모 대학 박물관 학예과장 하시던 윤X영 선생이었는데요, 나중에 선생한테 저 장가들 때 주례를 좀 서달라고 하니까 만날 무덤만 파던 인간이라 주례는 안 서겠다고 하셨던 기억이. ㅋㅋㅋㅋ 작은 체구에 쐬주도 장하게 드셨습니다.
언제나 미래는 있잖아요. 미래=희망.....입니다. 하여간 기다려봐야지요. ㅎㅎㅎ

- 2022-10-25 1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 스스로에 대해서, 그리고 제 주변의 세계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피해의식에 무지 관심이 많아졌어요. 사람과의 진실한 대화와 나 자신과의 대화에 가장 많은 걸림돌이 되는 게 피해의식인 것 같거든요. 많은 심리학책들이 그걸 잘 의식화해서 포기하라고 일러주는데, 머리로는 알겠는 데 포기가 잘 안되어요. 그래서 포기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책들을 읽게되는 것 같아요. 사과받고 싶거든요. 근데 이 사과받고 싶음이 인간 인류 전체로 확장됨 ㅋㅋㅋㅋㅋ 언젠가는 꼭 포기하겠습니다. 개인 차원에서도 일케 어려운데, 민족 차원에서는 … 사실 골드문트님의 글에 아주 많은 부분 동의합니다. 임지현은 아주 용감한 학자군요. 그리고 역시 한나 아렌트는 멋짐이 폭발해 버립니다. 좋은 책을 잘 읽은 글 잘 읽었습니다. 서재에서 이야기 나누는 분들도 멋지시구요 ㅋㅋㅋ 이 책은 가격때문에 고민이 되지만 ㅋㅋㅋ 사서 읽어보고 싶네요 흐흫

Falstaff 2022-10-25 14:05   좋아요 1 | URL
임지현이 저도 용감한 학자네, 라고 시작했는데요, 나중에 글을 전개하면서, 피해의식과 민족주의가 결합해 파시즘, 전체주의가 발생하는 현상이 나오면서부터 음, 자칭 타칭 진보사학자라는 사람이 좀 비겁하군, 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네오 파시즘 얘기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현 정치상황을 꼬집지 않을 수 없는데요, 정치 얘기하고 종교 얘기만큼 술 맛, 밥맛, 사람 맛 떨어지게 하는 종목이 없어서 그랬던 거 같습니다. ㅋㅋㅋㅋ
아무렴요. 피해를 받은 건 사과를 받아야 하고, 피해를 준 것은 사과를 해야 가해/피해한 측 두 진영 다 의식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 주장합니다.

Falstaff 2022-10-25 14: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흠. 어느 분께서 댓글을 쓰셨고, 제가 답글을 달았는데요, 댓글 저장을 클릭하니까, 글이 지워졌습니다. 그냥 두셨어도 되는데 아쉽습니다.

그레이스 2022-10-25 15:10   좋아요 1 | URL
ㅎㅎ
맥락을 모르겠지만 암튼 알것 같기도 하네요

독서괭 2022-10-27 2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골드문트님 글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제가 부족해서 딱히 의견 피력하기는 어렵지만, 저자의문제의식에는 상당히 공감이 가네요.

Falstaff 2022-10-27 21:07   좋아요 1 | URL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내가 피해를 받았으면 사과와 보상을 받아야 하고, 가해를 주었으면 이에 마땅한 사과와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자신이 받은 피해로 자기가 행한 가해를 퉁치지 말라는 겁니다. ㅎㅎㅎ 너무 일반화 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피해의식으로 뭉친 인간들의 단체화, 이른바 네오 전체주의....까지 슬쩍 건드리기만 한 건데, 나중에 연관된 책이 나올 것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