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녀들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 지음, 김재선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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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5년 반 전에 대산세계문학총서 시리즈 9번,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의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 어느 계단의 이야기》를 정말 흥미롭게 읽고(생각할수록 기막힌 작품이다!) 그의 다른 작품이 번역 출판된 것이 없다는 게 속이 상할 정도로 안타까웠었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기다리던 부에로의 다른 책이 2022년 12월 말에 드디어 책가게에 깔려 내 눈에 띄었다. 기다리는 동안, 하, 세월 진짜 빨라, 어느새 은퇴를 한 나는 구입해 내 책장에 꽂아놓는 대신 얼른 동네 도서관에 (아내 이름으로)희망도서 신청을 하고, 책이 들어왔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자마자 득달같이 달려가 (중간에 배고파 천 원짜리 육개장 맛 컵쌀국수 하나 먹은 거 빼고) 그 자리에서 한 방에 읽은 다음, 지금 개가실에 붙은 PC에 앉아 있다. 참 좋은 세상이다.

  대산총서 독후감에도 썼듯이 1916년 스페인 과달라하라에서 태어난 부에로는 1934년의 내전 때 인민전선에 가담했다가 종전 후 팔랑헤 일당들에게 사형선고를 받았다. 공화파 입장에서도 전쟁 끝났을 때는 나름대로 복수심에 불타 인민전선 쪽 가담자들에게 마구 사형을 선고했겠지만 그 많은 사람들을 진짜로 다 죽이면 스페인 사람들의 국민 단백질, 돼지는 누가 키우고, 걔네들 안 먹는 삼겹살은 누가 한국으로 수출하나 싶어, 집행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여덟 달 정도가 지나면 종신형으로 감형, 다시 몇 년 후엔 슬그머니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진짜로 사형을 집행하기도 했다. 부에로의 아버지와 친형도 이때 총살당해 죽었다.

  그러나 그건 나중 일이고 부에로는 어려서부터 책 읽기와 글쓰기에 남달랐지만 그것보다 그림 그리기에 더 남달랐다고 한다. 가족들 모두 마드리드로 이사를 하고 귀여운 막둥이는 화가가 되기 위해 베야스 아르테스 학교에 들어간 때가 1934년. 마침내 꿈을 이루기 위한 첫 날갯짓을 막 하려던 참에 전쟁의 참화 속으로 끌려들어간 꼴이다. 며칠 전 독후감을 쓴 <열차는 정확했다>의 하인리히 뵐과 대단히 유사한 경우. 내전이 끝나고 근 6년여를 여러 교도소에 수감되었는데 감방 안에서도 동료들의 초상, 정식 초상은 아니고 그저 캐리커쳐 수준 아니었을까 싶은데 하여간 그런 것들을 그려주면서 세월을 죽였을 정도였단다. 왜 이 양반의 미술 취향에 관해 말을 길게 하느냐 하면, 지금 읽은 책의 제목 <시녀들>이고, 책 좀 읽는 분께서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를 휙 떠올릴 지 모르겠는데, 여기서 말하는 “시녀들”은 1599년에 나서 1660년에 세상 뜬 스페인의 화가 디에고 로드리게스 다 실바 이 벨라스케스가 그린 <시녀들 Las Meninas>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시면, 아, 이거로구나, 라고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벨라스케스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내전 동안 연극을 포함해 실력있는 문화 예술 관계자들은 거의 대부분 이베리아 반도를 떠버리는 바람에 스페인은 이후 한동안 문화적 공백기를 맞아야 했단다. 이때 혜성같이 등장한 인물이 바로 오늘의 극작가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 그는 1947년에 <어느 계단의 이야기>를 발표하고 로페 데 베가 상을 수상함과 동시에 연극으로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내가 읽기에는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가 미세하게 더 좋았지만 스페인에선 <…계단 …>이 먼저 성공을 하고 이어서 데뷔작인 <…어둠 속에서>가 알려졌단다. 하여간 초기작의 성공 이후에 이름이 나고, 벨라스케스 서거 3백년을 맞아 한때 화가 지망생이기도 했던 바에로가 이를 기념하기 위해, 벨라스케스의 진짜 성격과 행동은 다음으로 하고, 그를 최고의 정의파로 다시 각색한 작품을 만들었으니 이게 <시녀들>이다.


​  역자 김재선이 “학회지에 실린 논문을 일부 요약하고 인용한” 내용에 따르면, 실제의 벨라스케스는 자신의 노예가 그림 기술을 익히려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고용인의 급여를 착복하기도 했고, 권력에 무한하게 아부해가면서 최고의 명예 가운데 하나인 산티아고 기사단 단원이 되고자 안달복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작품에서는 자기 노예에게 그림 기술을 알려주고, 왕을 통하여 자유인이 되게 했으며, 옛날 옛적 자신의 그림 <이솝>의 모델이 되어 준 늙은 페드로를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하게 보살피려고 하며, 산티아고 기사단이 되는 것도 왕이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보답해준 것으로 만들어놓았다. 그럼 이게 뭐야? 이거 허위사실 적시, 즉 범죄행위 아냐? 아니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부에로는 벨라스케스의 사망 3백년을 기념해 창작물에 관한 시각, 아름다움을 보는 미감, 인간 본성의 악함 같은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지 벨라스케스가 진짜로 선하고, 냉정하고, 정의롭고, 속화되지 않은 예술혼이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스페인 판 용비어천가를 쓴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2부로 되어 있다. 1부를 이끄는 것은 스페인 궁정의 사치와 위선과 질투를 포함한 음모, 그리고 헛된 짝사랑과 진실한 배우자(벨라스케스)를 향한 쓸데없는 투기 같은 것으로 꽉 메워져 있어 좀 지루할 수 있는데 2부로 넘어가면 진짜 본론이 등장해 흥미진진, 절정과 결말을 향한 행진을 시작한다. 모든 것은, 연극이니까 당연하겠지만, 오직 하나, 아름다움의 분별과 정의와 정직을 위해 복무한다. 그리고 이런 미덕이 밝혀지는 곳은 고깔모자를 쓰고 기둥에 묶인 채 화형에 처해 죽느냐, 스페인 땅에서 추방되느냐, 아니면 서양식 능지처참인 환형에 처해지느냐의 기로에 선, 이름도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는 종교재판 법정에서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이 극작을 법정 드라마라고 해도 별 무리는 없을 터.

  벨라스케스는 스페인 역사상 최고의 화가이고 고야가 나오긴 전까지, 물론 고야가 등장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어깨를 견줄 경쟁자가 없을 스페인 미술계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적 인물이다. 당연히 궁중화가였으며, 궁중화가라도 같은 궁중화가가 아니라 왕을 위한 그림만 그리는 왕의 화가였다. 잘 나가니 좋겠다고? 천만의 말씀. 내 독후감에 수없이 썼다시피 밖에서 보기에 아무리 유복한 인간이라도 한 인생을 행복하게 보내기란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보다 어렵다. 그는 같은 궁정화가이자 자신보다 선배 화가, 즉 벨라스케스가 궁정화가가 됨으로써 최고의 자리에서 밀려버리고 수치스럽게도 자신도 모르는 채 벨라스케스의 그림에서 본 ‘부분(색의 사용)’을 모사해 마치 자신의 창작물인 것처럼 스스로도 착각하고 있던 앙헬로 나르디에게 질투를 받으며, 나라가 어떻게 되든 백성을 갈취해 왕과 자신의 부만 쌓으면 그만인 후작은 왕이 일개 화백을 총애해 식부장관의 자리에 오른 벨라스케스를 시기한다. 그가 식부장관에 오르긴 했는데 같은 시기에 식부장관직을 희망했던 사촌 호세 니에토 벨라스케스는 디에고만 사라져주면 장관 자리가 자기한테 올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으며, 공주의 시녀 가운데 한 명인 도냐 마르셀라 데 우요아는 벨라스케스는 전혀, 전혀 관심이 없건만 자기 혼자 열라 짝사랑에 빠졌다가 그게 어긋나버리자 거꾸로 그를 구렁텅이에 빠뜨려 복수하고자 한다. 이런 삶이 행복허겄어? 사는 게 다 그렇지.

  게다가 먼 과거에 자신의 모델이 되어준 페드로 브리오네스는, 그림 속에 담긴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눈을 가지고 있던 천민 출신인데, 하인 생활을 하다가 주인 대신 도둑의 누명을 써 8년 동안 노예선에서 노를 젓는 일을 하기도 하고, 풀려난 후엔 군에 입대해 플랑드르 전쟁에 나갔다가 자기 부하들이 연대장한테 부당한 일을 당하자 격분해 결투를 신청해 상관을 살해해 수십 년 동안 도피생활을 한 반쯤 맹인이기도 하다. 이런 온갖 안 좋은 상황에 처한 벨라스케스라고 읽는 “진정한 예술인”은 자신을 향해 노골적으로 뻗어 오는 폭력적 음모에 맞서 당당하게 쌍권총을 뽑아드니,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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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3-30 0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부예로 바예호 새 책이 나왔군요! 이런이런! 사야지! 하고 가격 눌렀다가 깜놀.......
저도 도서관을 이용하겠습니다. ㅎㅎㅎㅎㅎㅎㅎ

Falstaff 2023-03-30 13:18   좋아요 1 | URL
ㅎㅎ 못보셨는지 알았습니다. 눈에 띄었으면 누구보다도 먼저 읽으셨을 분인데 싶었거든요. ㅋㅋㅋ

잠자냥 2023-04-04 10:52   좋아요 1 | URL
<시녀들>로 땡투 받으셨을걸요. 도서관에 신청하고 기다리기 답답해서 전자책으로 질렀습니다. 전자책은 그나마 좀 싸다능...ㅋㅋㅋㅋ

Falstaff 2023-04-04 13:02   좋아요 1 | URL
ㅎㅎㅎ 고맙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셔요.
 
열차는 정확했다
하인리히 뵐 지음, 사지원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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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인리히 뵐의 작품을 많이 읽은 줄 알았다. 하지만 오늘 세어보니 꼴랑 네 편을 읽고 많이 읽었다고 여겨온 거다. 조금 창피하네. <카탈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어느 어릿광대의 견해>,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와 <천사는 침묵했다>. 이게 전부다. 이러니 도서관 개가실을 뒤지다가 뵐의 <열차는 정확했다>를 발견한 순간 깜짝 놀라 집어 들을 수밖에 없었겠지.

  뵐은 1917년 쾰른에서 목공예 마이스터 가문에서 태어나 1939년에 쾰른 대학 독문과에 입학한다. 그러나 1939년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해. 그는 입학하자마자 곧바로 징집당해 참전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 초기부터 참전했으니 온갖 참상은 다 경험했을 뵐은 1944년에는 수 차례 탈영을 감행해 드디어 미군의 포로로 붙잡히는데 성공한다. 그리하여 1945년에 나치가 벌였던 최후의 대항전에 참전하지 않고 전쟁을 마친다. 이때의 경험으로 그는 <천사는 침묵했다>에서 하필이면 나치가 항복선언을 한 1945년 5월 8일에 탈영을 했다가 붙잡혀, 베를린에서는 히틀러가 자살하고 항복문서에 나치 잔당이 인감도장을 찍었지만 이 사실이 말단 전투중대까지는 하달되지 않았던 5월 9일에 총살당할 예정이었던 한스 슈니츨러 이야기를 쓴 바 있다. 이 작품도 재미있어서 더 이상의 스토리는 언급하지 않겠다. 하여간 젊은 시절의 전쟁 경험은 하인리히 뵐을 극도의 반전주의자로 만들었으며, 물론 기본적인 양식과 양심 등이 뒷받침 했겠지만 이를 테면 그렇다는 것이며, 독일민족이 유대인에게 가했던 학살과 핍박과 약탈에 관해서 대단한 죄의식을 갖게 만들었다. 물론 뵐 역시 원래는 아시아 유색인이긴 하지만 하도 오랜 세월 유럽 등지에 섞여 살아 거의 백인처럼 보이는 유대 족에게는 틈만 나면 사과와 유감을 표시한 반면, 독일인이 아프리카에서 야만적(이라고 지들이 멋대로 생각한) 흑인에게 자행한 살인과 고문과 학대와 착취 등에 대해서,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라고 선언한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물론 아우슈비츠에서 무릎을 꿇은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도 마찬가지다.

  하여튼 그리하여 내가 읽은 뵐의 작품을 거칠게 구분하면 ① <카탈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처럼 거대 현대 조직이 개인에 가하는 폭력의 고발, ② <어느 어릿광대의 견해>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같이 전쟁 중 또는 전후 폐허가 된 독일과 독일 시민들의 황폐한 삶, 그리고 ③ <천사는 침묵했다>와 <열차는 정확했다> 같이 전쟁 자체에 대한 반대와 전쟁의 비극성에 관한 것으로 나눌 수 있었다. 물론 다른 주제가 있는지 더 읽어봐야 할 터이다. 읽은 것이 짧아 이렇게 밖에 나눌 수 없음을 양해해주기 바란다.

  내가 하인리히 뵐에게 매료된 것은 전후 폐허가 된 도시와 전쟁 중 군인, 민간인들의 불안감을 묘사하면서도 그게 직접적인 전쟁의 장면을 그려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다분히 심리적 동요와 절망을 “대단히 섬세하게”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두번째 읽은 <…어릿광대…>부터 뵐의 모든 번역서를 읽어봐야겠다고 작심할 정도로 좋아하기 시작했는데(물론 곧바로 잊기는 했으나), 지금 <열차는 정확했다>를 읽고 나서 이 작품이야말로, 평론가들이 뵐의 대표작이라고는 하지 않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나한테 아직까지는 뵐의 소위 “최애”작품으로 등극했다. 전쟁 중 군인들과 군인 있는 곳에 반드시 존재하는 매춘부가 핵심인물로 등장하는 극강의 반전소설이지만 정작 군인들이 총 쏘는 장면이 한 컷도 등장하지 않은 채, 처음부터 끝까지 지극한 심리소설로 일관한다.

  주인공 안드레아스는 1920년생이다. 자신의 소원은 위대하다는 평을 듣지 못할지언정 피아니스트가 되는 거였다. 그러나 당시(1930~40년대) 우리나라 사람들도 대학물을 먹어야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던 것처럼 독일에서도 바칼로레아에 합격을 해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 안드레아스는 피아노 연습보다 대학입학 자격시험에 합격하려 최대한의 노력을 해야 했고, 그래서 입학 자격을 얻었지만 곧바로 세계대전이 터져, 그것도 염병할 나의 조국이 전쟁을 터뜨려 열아홉 살부터 거의 한 번도 피아노 건반을 두드려보지 못하고 말았다. 시점은 1943년 가을. 벌써 만으로 4년째 전쟁을 하고 있는 주인공은 3년 반 전인 1940년 프랑스 아미앵에서 전투 중에 포탄의 폭발 충격으로 어느 집 담장 밑까지 날아간 적이 있었다. 이때 구멍 뚫린 벽돌로 마무리한 담장 위에서 땅에 누운 자신을 내려다보던 한 여인의 눈을 안드레아스는 결코 잊지 못한다. 어둠 속의 비 맞은 모래 같은 색깔의 슬픈 눈을 가진, 예쁘지도 않고 윤기가 나지도 않았던 좁고 긴 얼굴의 아가씨를 그는 나머지 평생 가슴 속에 새기고 다니고 있었다. 단 한 순간만 경험했던 찰나의 사랑. 이름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데 오직 하나, 거의 사시에 가까운, 검은 모래처럼 불행으로 가득한 눈, 그것은 안드레아스, 온전히 그의 것이었다.

  이후 그는 동부전선으로 옮겨갔고 그곳에서 휴가를 얻어 라인 강변의 고향에서 몇 주를 보낸 후 이제 귀대하기 위해 정확한 시간에 도착한 열차를 탄다. 친구이자 가톨릭 사제인 파울의 전송을 받으며. 그는 이번에 가면 도저히 살아서 돌아올 것 같지 않다. 아무리 고쳐 생각을 해도 불운한 마음을 지울 수 없는 안드레아스는 사제 파울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저 바퀴 밑으로 뛰어들 수 있을 거야… 그래, 탈영병이 될 수 있어. 뭐라고? 원하는 게 뭐야? … 난 미쳐버릴 지도 몰라. 그게 내 정당한 권리인 것처럼 말이야. 미친다는 건 정당한 권리야. 나는 죽지 않을 거야. 죽고 싶지 않다는 사실은 끔찍한 일이지.”

  파리에서 출발해 저 남부 폴란드 프레미슬로 가는 전선휴가병열차에 탑승하고 정거장을 바라보면서 “이제 다시는 이 정거장을 보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까지 비난했던 내 친구의 얼굴도 다신 보지 못할 거야.”라고 회한에 찬다. 열차가 동쪽으로, 동쪽으로 가면서 창밖으로 보이는 모든 것들, 도르트문트 정거장과 주전자에 커피를 담아 귀대병에게 봉사하는 피곤하고 지저분한 차림의 잿빛의 소녀, 길가에 있는 녹색 집 앞의 붉은 빛이 나는 갈색 나무, 검은 머리에 노란 옷을 입고 손으로 자전거를 잡고 있는 소녀, 부드러운 잿빛 푸른 구름이 가득 찬 이 지역의 하늘, 열차의 창 가장자리에 앉았다가 라테보일의 어디론가 날아간 작은 파리 같은 것을 이제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란 어두운 예감, 자신은 렘베르크와 체르노비츠 사이에서 죽을 것이라는 예감에 젖어든다.

  이런 안드레아스에 접근하는 두 병사. 나중에 하사관 빌리라고 밝혀지는 수염쟁이와 지벤탈 병장이 본명/계급인 노랑머리. 이들 역시 전쟁으로 인해 불행해진 다양한 사람들의 일원이다. 빌리는 15개월만에 휴가를 얻어 집에 갔으나 자신의 소파 위에서 자기가 보낸 브랜디와 과일주를 마시고 있던 소련군 포로와 아내의 불륜을 목격하고 나머지 휴가일정을 포기한 채 귀대 열차에 올랐으며, 노랑머리는 파견분대의 대장 격인 상사가 분대원들을 계속적으로 성폭행하고 이에 응하지 않은 나이든 유부남 병사를 권총으로 쏴죽여버린 것을 목격했다. 전쟁만 아니라면 한 명은 잘 나가는 정비공장, 다른 한 명은 휘장가게의 사장으로 유복한 삶을 누리고 있을 텐데. 물론 안드레아스는 지금쯤 마음 놓고 피아노를 공부하고 있었겠지.

  전쟁은 군인에게만 불행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민간인에게도, 여성에게도 마찬가지로 사나운 폭력과 상처를 주기 머뭇거리지 않는다. 작품의 후반에서는 폴란드 매춘부이자 저항군, 레지스탕이기도 한 올리나와의 이야기가 재미있게 펼쳐지는데 차마 이것까지는 이야기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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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3-28 0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발견했다니 행운입니다! 전 이 책 출간됐을 때 희망도서 신청해야지 해놓고 여태 까먹고 있었네요. (다른 책에 밀림 ㅋㅋㅋ) 문트 님 덕에 신청하러 갑니다~

Falstaff 2023-03-28 14:25   좋아요 1 | URL
이 책이 나왔을 때가 책을 안 읽었던 몇 개월 딱 그때더라고요. ㅎㅎㅎ 정말 도서관에서 발견한 게 행운이었습니다.
즐겁게 읽으셔요!!

레삭매냐 2023-03-28 1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메이저 출판사에서
내주었으면 하는 커다란 바람이...

Falstaff 2023-03-28 14:26   좋아요 3 | URL
메이저는 이 정도는 좀 양보해줘도 좋지 않겠나 싶어요.
지만지 번역도 좋고 교정도 좋고, 제본이 좀 후지다는 분 계시지만 전 양장이 괜히 무겁기만 해서 반양장을 더 좋아합니다.
다만 가격이 좀 쎄서 그게 하나 지랄이지요. ^^

그레이스 2023-04-04 2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사놓고 아직 못읽고 있네요
골드문트님 요사이 지만지 도장깨기 중이신가요?
피드를 내리는데 계속 지만지 표지가!

Falstaff 2023-04-04 21:43   좋아요 2 | URL
ㅎㅎㅎ 제 인생에 남의 도장을 깨는 건 없습니다. 저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뭔 힘이 남아돌아서 남의 도장까지... 그렇지요? ㅎㅎㅎ
요즘에 지만지가 마구 책을 출간하기 시작했거든요. 전에 비싸서 사 읽을 엄두도 못 냈던 것이 무려 할인까지, 세월과 인플레이션을 생각하면 대폭 할인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마구 찍고 있거든요. 그래 새로 나온 책들을 저와, 아내와, 아이 이름으로 희망도서 신청해서 아주 만족하게 즐기고 있답니다.
다 좋은데, 간혹 예전 번역을 판을 바꾼 이야기도 하지 않고 걍 낸 경우도 있더라고요.
 
만 마디를 대신하는 말 한 마디 연극과인간 중국현대희곡총서 18
류전윈 지음, 오수경 옮김, 모우선 각색 / 연극과인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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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전윈의 동명 장편소설을 모우선이 각색해 희곡으로 다시 썼고, 이를 공연까지 한 작품이 연극전문 출판사 “연극과 인간”의 중국현대희곡총서 시리즈의 18번으로 나왔다. 이 책 역시 내 집 현관문에서 1층에 머물러 있는 엘리베이터를 불러 타고, 큰 네거리 두 개의 붉은 신호등에 걸려 대기했다고 쳐서 8분 정도 걸리는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것. 나 말고 우리동네 누군가가 희망도서 신청을 해 들여놓은 책이라는데, 나 말고 누가 또 중국현대희곡에 관심이 있는지 거 참 궁금하네. (혹시 이 독후감을 보시면 연락 한 번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쐬주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동네에 괜찮은 북어탕 집 있습니다. 북어탕에 쐬주 마시면 다음날 속이 좀 편합니다.)

  나는 원작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희곡을 읽었다. 그리고 곧바로 검색해 원작을 빠른 시간 안에 읽기로 결심을 했다. 류전윈의 작품을 찾아보니, <만 마디를 대신하는 말 한 마디>가 작가의 “가장 성숙하고 호방한 대표작”인 <말 한 마디 때문에>의 후속작이란다. 그러니까 중국현대희곡총서 18번의 희곡을 읽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원작자의 <말 한 마디 때문에>와 원작, 이 두 권을 미리 읽어 두는 것이겠다. 물론 희곡을 읽지 않은 채 원작만 읽고 곧바로 연극을 관람하든지.

  희곡을 읽거나 연극을 보는 일은 장편소설을 읽는 것하고 완전하게 다르다. 장편소설은, 이 작품의 원작을 예로 들자면 도서출판 아시아에서 2009년에 번역 출간했는데 옮긴이의 말을 포함해 328쪽. 본문만 대강 3백 쪽 정도 분량이면 하루에 다 읽어 치울 수는 있지만 조금 무리다. 나 같은 백수는 할 수 있으나 평일의 직장인한텐 많이 무리. 그러나 이것을 연극으로 공연하고자 하면 어떻게 됐든 길어야 두 시간 안쪽에서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각색자는 원작의 곁가지를 (거의)모두 걷어내고 스토리 라인의 핵심만 뽑아 이를 축으로 다시 구성해야 한다. 그러면서 장편소설의 재미를 살려낼 수 있을까? 있어야지. 그래야 이름난 각색자이며 극작가일 터. 이 책의 각색자 모우선(또는 머우썬)은 1980년대 중국 실험극의 선구자로 이름을 날리다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지더니 20년만에 돌아와 이 작품을 각색한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비단 이름값이 아니더라도 희곡을 읽으면서, 지금 읽기는 건조하게, 그냥 그렇게 읽고 있지만 좋은 연출을 통해 무대에 올리면 재미있는 연극이 되겠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내용을 거칠게 언급하자면, 근현대 중국의 평민을 그린 작품이 대개 그러하듯이 매우 토속적이고 삶을 위해 어떤 짓을 다 하고 구질구질하다. 원작과 같은 해에 출간된 작품이 옌롄커의 <풍아송>이었다는데, 류전윈을 옌롄커, 쑤퉁과 더불어 당대를 풍미하던 젊은 작가 3인으로 꼽았을 만큼, 이들과 비슷한 중국 농촌지역 사람들의 적나라한 삶의 모습을 그렸다. 원작은 앞으로 읽어볼 예정이지만 희곡만 가지고는 옌씨, 쑤씨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작품은 78세에 세상을 뜰 예정인 늙은 조청아 할머니가 자신의 이름이 바뀐 내력을 읊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머니 배속에서 나와 처음으로 받은 이름은 강교령. 아버지는 교령이 어렸을 때 심원 땅에서 비명에 죽은 ‘강호’라는 작자고 엄마는 오향향이다.

  2막으로 된 작품이다. 1막은 하남성 연진 땅 양씨 촌에서 두부를 팔던 양씨의 아들 양백순이 이끌어간다. 양씨에게 아들이 셋 있었는데 큰애는 학교 갈 나이가 지났고, 둘째 백순이 더 똑똑했다. 서양식 학교가 개교를 했으나 한 집안에 아들 둘을 다 보낼 수 없어서 하나만 보내기로 했다. 똑똑한 것이 교육을 받으면 부모 곁을 떠날 거 같으니 거짓 제비뽑기를 해서 좀 멍청한 막둥이 백리를 입학시킨다. 백리는 계모가 낳은 아들. 백순은 평소엔 식초를 팔지만 그것보다 상가에서 곡을 해주는 곡소리꾼으로 유명한 나장례의 소리에 반해 있었다. 하루는 나장례의 소리를 들으러 양을 돌보라는 아버지의 지시도 무시한 채 구경갔다가 구경도 못하고 아버지한테 크게 경을 쳐 그만 집에서 쫓겨나고 만다. 우여곡절 끝에 증씨를 만나 돼지 도살하는 법을 배우고 함께 살다가 증씨가 새로 들인 아내에 밉보여 쫓겨나 몇 년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갔지만 온갖 천대를 받아 또다시 가출, 연진 성당에서 복사를 하는 조씨를 만난다. 이이를 통해 이태리에서 중국 선교를 위해 파견 온 첨 가톨릭 신부를 만나 이름도 양모세로 바꾸고 기독교를 접한다. 그러나 도통 교리를 이해할 수 없다. 첨 신부는 중국에 온지 40년 만에 무려 여덟 명의 신자를 확보하는 성과를 올리지만 본국의 누이동생에겐 수십만 명에게 세례를 주었노라고 구라를 풀었다. 하느님도 용서하시리라. 이 덕분에 얼굴 한 번 못 본 조카가 외삼촌을 숭앙해 천주에 귀의해서 훗날 밀라노 교구의 대주교가 되니까. 중국에 와서 중국인 말고 이태리 외조카를 선교해버린 꼴이었다. 하여간 여기서 농사도 좀 짓다가 데릴사위가 되는 조건으로 과부가 된 만두가게 주인 오향향과 결혼해 이름도 양모세에서 오모세로 바뀌고 수양딸 강교령도 생겼다.

  오향향이 왜 결혼을 서둘렀을까? 은세공을 업으로 하는 유부남 고씨와 수년 동안 십계명에서 벗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네 이웃의 남편을 탐하지 마라.”를. 이이는 이제 모세와 결혼을 하고도 남편 모세와는 소 닭 보듯 하고 여전히 고씨와 하얗게 불꽃을 태우고 있다. 그러다가 결국 고씨가 오향향을 옆구리에 꿰고 도망을 치고 말았다. 오모세는 그러려니 하고 있는데, 주위 사람들이 이것들을 찾아야 한다고, 그래서 복수를 해줘야 체면이 선다고 충동질을 하는 바람에 의붓딸 강교령, 이젠 오교령이를 데리고 아내를 찾는 시늉을 하기 위해(진짜 찾으면 살인이 날 것 같아 그냥 시늉만 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우씨 라는 장돌뱅이한테 교령이를 유괴당하고 만다. 그리고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

  교령이는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조씨 집안에 팔려가서 수양딸로 지내게 되고 당연히 이름 또한 오교령에서 다시 조청아로 바뀐다. 이후 우씨 마을의 우서도에게 시집을 가 3남 1녀를 낳고 의붓아버지 오모세와 함께 집을 나온지 70년이 넘은 78세에 세상을 뜬다. 조청아의 둘째 아들 우애국 이야기가 2부에 펼쳐지기는 하지만 그것까지 소개하기엔 지면도 부족하고 워낙 큰 이야기를 너무 짧게 요약하면 재미도 없고 그렇다.


​  스토리는 희곡을 통해 아는 것이 축약된 내용이라 더 쉽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원작을 읽어보는 게 훨씬 좋으리라 생각한다. 희곡은 공연을 전제로 쓰는 것이라 그것을 염두에 두고 감상한 소감은, 내용은 중국 하남성에서 벌어지는 몇 대에 걸친 서민적 대하saga이지만, 공연의 방식은 그리스 고전의 양식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스 고전에서 특정 서사를 보다 빨리 전개하고 관객들에게 내용을 소개하기 위해 쓰는 것이 코러스의 활용이다. 모우선은 그리스 고전 적 코러스를 적용하되 저 오래전부터 유구하게 내려오는 중국 곤곡(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1)의 창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관객은 눈 앞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앞의 어떤 것과, 누구와 연관이 있는지 파악한다. 또 배우들이 직접 스토리를 설명하기도 한다. 그래서 역자이자 한중연극교류협회 회장인 오수경은 희곡임에도 이럴 경우엔 “… 한다.”나 “…이다.” 처럼 문어적 표기를 번역에 사용했다. 적절한 거 같다.

  희곡에 관심이 있으면 읽어도 좋을 듯하다. 하지만 원작을 먼저 읽고 결정하는 편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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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3-03-25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이 책 원작 소설 갖고 있어요~잊고 있던 책인데 이 책도 조만간 읽어봐야 겠습니다.

Falstaff 2023-03-25 13:13   좋아요 0 | URL
옙. 저는 차근차근, <말 한 마디 때문에> 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즐기셔요. ^^
 
유대인 쥐스 1
리온 포이히트방거 지음, 김충남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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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리온 포이히트방어의 책을 자주 읽는다. 2018년 한여름, <고야, 혹은 인식의 혹독한 길>을 처음 읽고 포이히트방어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그의 저작은 그것 말고는 번역 출판된 것이 없어서 아쉬웠었다. 작년에 도서관 출입을 하면서 요샌 희망도서라고 해서 특정 책을 사 달라고 신청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득달같이 포이히트방어의 책을 검색해보니 2021년에 <톨레도의 유대여인>이 나왔다. 그리하여 <톨레도의… >가 인생 후반기 처음으로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며, 생전 처음 도서관을 포함한 국가기관 ‘관청’에 신청해서 허락을 받은 혜택이 된다. 게다가 얼마나 재미 있었는지. 아직 <톨레도의…>을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은 꼭 도서관을 찾으시라.

  <고야….>도 그렇고 <톨레도의…>도 그렇고, 이번에 읽은 <유대인 쥐스> 역시 그러한데, 포이히트방어는 전형적인 벽돌공이다. 탄탄하게 이야기를 만들어가면서도 그렇게 조밀하고 서로 긴밀하게 스토리를 연결해가는 솜씨를 보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고야…>는 벨라스케스의 뒤를 이어 스페인 궁정화가로 이름을 날린 한 엉뚱하고 엽기발랄하며 성질 고약한 화가 프란시스 고야의 한살이를 그렸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낸 이 책은 다 읽어보니까 완결작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었다. 설사 완결작이 아니어도 좋았다. 그만큼 인상깊게 읽었다.

  <톨레도의 유대여인>은 세비야, 코르도바, 그라나다를 여전히 무슬림인이 다스리던 이베리아 반도의 톨레도를 무대로 때는 바야흐로 십자군 전쟁이 발발하던 시기에 한 천재적인 재무 관리인의 딸과 왕의 연애담, 그리고 이 사랑을 방해하는 종교의 갈등 등을 그린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 역시 유대인하면 대표적인 직업이 재무관리, 금융업, 그리고 고리대금업. 나는 이 책의 독후감을 쓸 당시에 <유대인 쥐스> 역시 빨리 번역해 나오기를 바라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고 했었는데, 불과 반년만에 지금 <유대인 쥐스>의 독후감마저 쓰고 있다. 말이 무색하다. 정말 이렇게 빨리 나올 줄은 몰랐다. 그래도 다행이다.

  역자 해설에는, 이 작품을 처음엔 3막 희곡으로 쓰고 뮌헨에서 공연까지 했으나 평이 좋지 않아 4년 후인 1922년 소설로 완성했다 한다. 초판은 6천부를 찍어 수수한 성과를 거두었고, 성공에는 반드시 운이란 것이 따르는 법이라서 때마침 유럽에 들른 미국의 한 출판인이 영역본을 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래 <유대인 쥐스>는 리온 포이히트방어가 쓴 최초의 역사소설인 동시에 대표작으로 자리매김을 했다는데, 내가 읽기로는 앞서 이야기한 <고야…>와 <톨레도의…>하고 호오의 변별 여부를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다.

  책을 읽으면 즉시 독후감을 써야 좋다. 이 책을 다 읽은 날 크게 취하도록 마시고 취한 김에 덥다고 베란다로 통하는 유리문을 열고 잤다가 열병에 걸려 며칠간 끙끙 앓아 지금도 정신이 좀 몽롱하다. 이 상태에서 읽기를 금방 마쳤을 때의 감각을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까. 그나마 다행스럽게 읽으면서 중요한 부분은 메모를 했다. 메모한 분량이 너무 많아서 탈이지만. 좋다. 어떻게 매번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나.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한 번 스토리 이야기를 해보자.


​  때는 (조심해서 발음하시기 바람)18세기. 장소는 뷔르템베르크 공국. 실제로 존재했던 궁정유대인 요제프 쥐스 오펜하이머가 주인공이다. 쥐스의 할아버지 살로몬은 프랑크푸르트의 유대교 회당 시나고그의 선고 기도자로 돈독한 유대인의 정체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아버지는 유대인 배우협회 회장을 지낸 유대인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였으며 어머니는 오케스트라가 반주하는 연극의 주인공을 도맡는 여배우였다. 여기서 말하는 오케스트라는 예술의 전당 대강당에서 만장하신 신사 숙녀를 모신 백 명이 넘는 연주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녹음시설이 없는 시절이라 뭐든지 생음악을 해야 하니 연극에 필요한 음향과 기분 고양을 목적으로 하는 음악 서비스를 담당하는 소규모 악단을 일컫는다. 아무리 그래도 한 극단의 여주인공이라면 대단히 어여뻐서 젊은 시절의 어머니 미하헬레 쥐스는 볼펜뷔텔 공작 등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어떤 종류의 총애인지는 책을 읽어보면 알고.

  요제프 쥐스는 천성적으로 똑똑하다. 유대인도 한국인처럼 자기들은 못 먹고 못 살지언정 자식은 어떻게 해서든지 좋은 공부를 시키려 애를 써서, 쥐스 역시 튀빙겐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다. 쥐스는 정말 대강 공부를 해도 모든 과목에, 특히 수학과 언어, 그리고 법학 과목엔 따라올 학생들이 없었지만 학문에 뜻을 두지 않고 공부보다 귀족 학생들과 사귀면서 끈을 만드는데 열심이었다. 자신의 본업인 법학을 열라 공부해 변호사가 되는 것에 뜻이 있지 않고 어차피 유대인이니까 높은 양반들을 접대하고 그들과 교류해 수족이 되어 일하며 현금을 손에 쥐는 것에 있음을 갈파했다. 그래서 학업을 중도작파하고 금융인이자 뷔르템베르크 공국의 궁정 유대인이자 팔츠 선제후국의 비용으로 로테르담에 체류하는 오리지널 유대인 이사크 시몬 란다우어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 팔츠 선제후국의 인지세 사업, 타름슈타트 시의 화폐주조사업 등을 통해 나이 마흔에 유럽에 손꼽히는 갑부가 됐다. 그리고 작품을 시작할 때, 그러니까 쥐스의 나이 마흔 조금 넘겼을 당시엔 위험한 사업에서 적시에 손을 떼는 민첩성을 발휘해 빌트발트에서 숨을 돌리고 있었던 거였다.

  이 당시 뷔르템베르크 공국은 쉰다섯 살 먹은 에버하르트 루트비히 공작이 다스리고 있었다. 루트비히 공작은 무려 30년 동안 크리스텔이라는 이름의 백작부인과 연인관계를 맺었는데, 원래 고귀한 출신이라서 백작부인이 아니라 연애를 이어갈 목적으로 보잘것없는 늙고 무능한 남자에게 백작 작위를 주고 크리스텔과 결혼을 시켜버렸던 거였다. 그리고는 내놓고 연인관계를 이어갔지만 당시 정서로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론 공작비 입장에선 속이 뒤집어지고 눈에서 불이 났겠지. 그래도 별 수 있나. 이렇게 수 십년을 지내왔건만 문제는 백작부인 역시 만만한 여자가 아니라서 팽팽 돌아가는 머리로 일단 측근에 늙은 유대 금융업자 시몬 란다우어를 두어 자금을 관리하게 하면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면으로 돈을 긁었다. 이를 위험스럽게 본 신하들은, 어느날 프로이센 왕에게 백작부인과 결별할 필요성을 설득했고, 왕은 날씨가 아주 좋은 날 루트비히 공작령에 놀러가 평야를 바라보며 이렇게 감탄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런데 저 위에 한 늙은 여자가 해충과 역병처럼 누워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공작은 다 견딜 수 있었지만 크리스텔보고 “늙었다”는 진실을 꼬집는 것은 참지 못했다. 왕에게? 아니, 자기 자신에게. 자신이 이미 늙어 풍선같이 살찐 여인을 아직도 애인이라고 데리고 있다는 것이 수치스러워 이별을 결심했고, 일반인이 생각할 수 없는 거금을 희생시켜 크리스텔을 추방해버리고 만다. 그리고 오래 살 줄 알았지? 자신도 얼마 있지 않아 그만 숟가락을 놔버린다.

  이제 왕위는 공작 계승자인 어린 아들에게 넘어가야 마땅할 터. 이때 우리의 주인공이자 돈이 많은 요제프 쥐스는 게임을 하기 시작한다. 공작이 죽기 바로 전에 때마침 뷔르템베르크에 놀러온 프러시아 황제의 원수great general이며 베오그라드 총독이자 루트비히 현 공작의 사촌인 동시에 공작위 계승서열 4위밖에 안 되는 가난한 카를 알렉산더 왕자의 후원을 지지하기로 결심한 것. 페테르바르다인 전투의 승리자이며 오이겐 왕자의 오른팔이지만 정치적으론 별볼일 없는 방계의 소왕자라서 전혀 위험하지 않은 존재. 그래서 할 수 없이 정중한 신사, 호감가는 동료이자 기분 좋은 친구를 자임하는 신사에게 뭐 볼 일이 있다고 그를 지지하는지. 그러나 사람들은 모른다. 저 먼 옛날 중국에서도 일찍이 여불위라는 인물이 있어, 조나라 한단에 볼모로 잡혀있는 왕족 떨거지 중의 떨거지인 안국군의 서자 이인에게 자신의 재물과 첩을 아낌없이 바쳐 끝내 그의 아들을 진나라 왕이자 훗날 시황으로 만든 적이 있었다는 것을.

  여불위가 그랬듯이 요제프 쥐스도 기꺼이 카를 알렉산더 왕자를 도와 그가 뷔르템베르크의 차기 공작으로 등극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  하지만 여불위가 곱게 죽었나? 천만의 말씀. 모든 재주와 지혜로 유방을 도와 그가 천하의 패권을 쥐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한신은 결국 팔팔 끓는 물에 산채로 던져지는 참화를 겪었다. 이방원을 태종으로 만든 처남 민무구, 민무질은 말로만 유형에 처해졌다가 귀양길 행로에 결국 목매달려 죽었다. 다 그런 거다. 반면에 유방의 손에 천하를 쥐여준 장량은 스스로 역사의 뒤편으로 스르르 사라지며 한 말씀 하셨다지? “한 판 잘 때려 놀았다!”

  이제 쥐스를 바라보는 또는 읽는 독자들의 머리 속에는 어떻게 쥐스가 자기 손에 쥐어진 권력을 사용하는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자기 길을 선택할 것인가에 있다. 여불위와 한신의 길일까, 혹은 장량의 선택일까? 사실 그건 뻔하다. 권력을 손에 쥐기도 힘들지만 놓기도 그에 못지 않게 어려운 법. 이 독후감을 읽는 분들도 그의 행적을 한 번 따라가보시면 어떨까?

  재미있게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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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03-23 04: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무슨 뜻인지는 안 알려드림.

다락방 2023-03-23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톨레도의 유대 여인>부터 도서관에 신청해봐야겠어요. 아무리 덮어놓고 지르는 저라고 해도 톨레도 는.. 그럴 수가 없네요. 하핫 ;;

건수하 2023-03-23 09:25   좋아요 3 | URL
톨레도의 유대 여인 있나 하고 찾아보니 역시 없고... 그런데 4만원이 넘네요?
요즘 예산 삭감되었다고 희망도서 막 자르던데 저희 동네는 안 사줄거 같아요 ;ㅁ;

저번의 거절 멘트: 예산이 부족함에 따라 판매부수가 적은 도서는 구입이 어렵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책을 사면 세금의 혜택을 보는 사람이 많긴 하겠지만... 그런 책만 도서관에 있는 걸 상상하면 끔찍합니다 ㅠㅠ

Falstaff 2023-03-23 11:14   좋아요 2 | URL
옙. 이 양반의 책은 특히 더 조심해서 사셔야 할 듯합니다. 굉장히 촘촘한 직조물 같은데요, 이걸 다른 말로 해서, 여차하면 지루해질 수도 있고 게다가 길기까지 하다는 뜻입니다.

ㅎㅎㅎ 저희 동네 도서관은 희망도서 신청하면 좋아해요. 그만큼 책 읽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도.....할까요? 근데 판매부수 적은 책이라 구입할 수 없다는 건 아휴, 거기 도서관장 얼굴을 보는 거 같아서 징글징글합니다.

그레이스 2023-03-25 1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권력 투쟁은 어디에나 있는 법!
두사람만 있어도 권력관계는 형성되죠.^^

Falstaff 2023-03-25 13:14   좋아요 1 | URL
암요, 암요. 저도 2인 가족인데요, 아내가 개 키우자는 걸 지금 열심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저보다 위 서열일 것이 뻔한데 미쳤다고 제가 상전 하나를 더 데려오자고 하겠습니까! ㅠㅠ
 
파도 을유세계문학전집 124
에두아르트 폰 카이절링 지음, 홍진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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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 하인리히 에두아르트 나콜라우스 그라프 폰 카이절링, 우리말로 적절하게 번역하자면 카이절링의 백작 요한 하인리히 에두아르트 니콜라우스, 이 정도 될까 싶다. 북부 저지 독일 사람으로 지금 지명을 굳이 따지자면 발틱 지역인 라트비아의 남 쿠를란트 행정구역(municipality)에 있는 파데른 성castle에서 독일계 귀족 가문의 문제아로 1855년에 태어났다. 왜 이 양반에게 “문제아”라는 딱지를 붙이느냐고? 말씀드리지. ① 귀족 가문의 자재로써 19세에 에스토니아의 타르투 대학에서 법학과 미술사, 철학을 공부한 것까지는 합당하다 쳐도, 3학년 때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퇴학을 당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있지? 없다. 당신이나 나나 그냥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자식이라면 그럴 수 있지만, 당당한 귀족의 자재가 불미스러운 일로 퇴학을 당했는데 얼마나 불미스러운지 카이절링 가문에서 퇴학 사유도 비밀에 부치게 만들어야 했을 만큼 중한 것이었으며, 하물며 이 일 때문에 지역 귀족들 사이에 따돌림을 당해 급기야 시골로 내려가 어머니의 영지를 관리해야 했다니 이게 문제아 사유 1번. 이 책에 세번째로 실린 단편 <무더운 날들>의 화자인 ‘나’, 빌은 대학입학자격시험에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낙방의 고배를 마셔서 어머니와 누이들과 여름을 보내지 못하고 엄한 아버지하고 지내야 하는 것으로 설정했는데 이 때 경험을 오늘에 되살렸는지도 모른다. ②. 카이절링이 오스트리아에서 머무르면서 명성을 떨치지는 못했지만 작품활동을 하다가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서른일곱 살 먹은 1892년에 다시 고향 쿠를란트로 돌아가 지내기 시작했는데 고향집에 머물고 일년 만에 심각한 척수병에 걸려버려 몰골이 영 말이 아니게 되어 버린다. 그래서, 암만봐도 이이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조금 짧은 장편소설이자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파도>에서 중요한 조연으로 등장하는 추밀고문관 크노스펠리우스가 척추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소위 “꼽추”인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짐작한다. 척수에 문제가 생긴 건 서른여덟 살, <파도>를 쓴 게 쉰여섯 살이니 그럴 수 있겠다. 19세기 말의 귀족 계급이라 스스로 일 하지 않고도 여유있는 생활을 보장받을 정도의 영지가 있던 카이절링은 유력한 문화계 인물들과도 교류하고 여행도 다니면서 건강만 빼고 즐거운 생을 살았을 거 같지? 아무리 귀족이라도 인생은 결코 즐거운 게 아니라서, 젊은 시절 잠깐 혹은 ‘잠깐’들이 워낙 잔뜩 모여 있어 ‘늘’ 방탕한 생활의 결과로 쉰 살이 넘어 매독증세로 인한 것이 거의 확실하게 그만 시력을 잃게 된다. 그러니 쉰세 살 이후에 발표한 작품은 구술로 지었다고 봐야 하는데 이 목록들 가운데 하나가 대표작 <파도>다. 아무리 눈이 보이지 않아도 살 수 있으면 살아야 하는 게 인생. 이이는 이후에 십 년을 더 살고 9월, 가을이 쳐들어온 1918년, 예순세 살의 나이로 뮌헨에 묻힌다. 더 이상 푄 바람이 불지 않을 때였다.


​  《파도》는 첫번째와 세번째에 긴 단편, 혹은 중편 또는 노벨라 정도의 분량으로 쓴 <하모니>와 <무더운 날들>을 배치하고 이들 가운데 짧은 장편 혹은 노벨라 정도 분량의 표제작 <파도>를 실었다. 그래서 본문만 360쪽. 불과 세 편의 작품만 가지고 이 높으신 카 백작의 작품세계가 이렇다 저렇다 말씀드릴 건 없고, 아마추어 주제에 소설책 한 권 읽고 작품세계 운운할 주제도 되지 않을 뿐더러, 하여간 그리 길지 않은 것들이라 스토리가 아닌 순수 읽은 감상으로 독후감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러다 책 뒤에 실린 역자, 서울대 독어독문과 교수 홍진호의 해설 첫 문장을 읽고 눈이 팍, 떠지는 것이 어떻게 이리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멋있는 문장 하나로 딱 매조지 했는지, 굳이 더 첨언을 해야 하나, 난감하게 됐다. 한 번 보자.


  “세기말 몰락의 정서를 묘사한 독일 데카당 문학의 대표 작가 에두아르트 폰 카이절링은 철저하게 통제된 유미주의적 삶을 살아가는 귀족들이 내적으로 붕괴해 가는 과정을 통하여 노쇠한 문명의 몰락을 묘사했다.” (p.365)


​  흠. 역시 나하고는 가방끈 길이에서 차이가 난다. 나는 죽어도 이렇게 쓰지 못할 거 같다. 이 비슷하게라도 쓸 수 있기 위해서라면 얼마나 더 책을 읽어야 할까? 아이고, 안 그러고 만다. 역자 홍선생은 공부로 책을 읽은 양반이고 난 즐겁자고 읽는 인간이니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부럽지도 않다.

  저 한 문장이 포함한 단어 가운데 내가 쓰고 싶었던 것이 “세기말 몰락의 정서”, “데카당” 그리고 “유미주의”이며, 아마 부정적 의미로 “귀족”이란 말도 꼭 하고 넘어갔으리라. “내적 붕괴”나 “노쇠한 문명의 몰락”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한 구절이다. 근데 그것도 읽는 순간 단번에 접수가 되니, 우짜냐, 사람은 이래서 배워야 하는 거다.

  세기말과 데카당, 그리고 유미주의라고 했으니 카이절링의 작품은 작가와 독자가 서로 궁합이 맞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독일 문학이라 세기말 데카당과 유미주의적 충격이 프랑스 데카당의 선구자 조리스-카를 위스망스의 작품들에 비하면 접수하기가 한결 편하지만 그래도 세기말 데카당은 합이 맞지 않으면 읽기가 매우 불편한 건 사실이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이 장르를 열광하지는 않으나 거부하지도 않아 카이절링을 흥미롭게 읽었으며, 재미없는(농담이다, 농담!) 독일문학이란 특징이 오히려 프랑스의 데카당 적 엽기만발을 순화시켜 읽기가 훨씬 부드럽고 편했다. 앞으로 세기말 데카당 문학이라 하면 위스망스 대신 카이절링을 이야기할 거 같을 정도로. (그런데 유명한 인상주의 화가 로비스 코린트가 그린 카이절링의 초상화를 본 순간, 익숙한 얼굴이라 이이의 다른 작품도 읽어본 거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아마 희곡이었을 듯, 그게 뭔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만일 별 다섯 개 만점으로 점수를 준다면, 위 문단에서 얘기했듯이 부정적 의미로 “귀족”이 하도 많이 나와, 작가가 이 동네 출신이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게 지긋지긋해서 반 개 정도 디스카운트, 네개 반을 주고 싶은데, 에이, 좋은 게 좋다고 별 다섯 개를 줄 생각이다.


​  명색이 독후감이니 스토리도 어느 정도 써야할 거 같은 강박이 좀 생긴다. 이거 참. 세 작품 다 흥미롭게 감상했고, 세 작품 모두 세기말 데카당 문학이라 우울하고, 단절되고, 퇴폐적이고, 이것들을 다 합쳐서, 이렇게 얘기하면 안 되는 줄 알고도 이야기하면, 세기말적이다. 그래서 모두 작품 가운데 중요한 사람 하나, 더도 아니고 딱 한 명씩 죽어야 끝난다. 남자 둘, 여자 하나가 죽는다. 누군지 일러드려? 아이고 그렇게는 못하지. 또 있다. 세 편 다 극도의 귀족 부르주아들만 주인공이다. 두번째로 실린 <파도>가 제목이 파도라서 저 영국의 버지니아 울프가 쓴 대단한 <파도>를 생각하지 마시라. 울프도 부잣집 아가씨, 도련님이 등장하는 <파도>를 썼으나, 카이절링의 <파도>의 주요 배역들과 비교하면 미주알이 찢어지는 집안의 아이들이다. 아, 급이 다르잖아, 급이. “그라프 폰” 가문인데. 성castle에서 산다니까. 내 큰 아이 전세 사는 롯데 ‘캐슬’ 말고 진짜 ‘성城’. 몇 년 동안 신나게 놀고, 바람피고, 술마시고노래하고춤추고, 지내다가 질리고 질려서 집(성)에 돌아오면 곧바로 영지를 둘러보며 소작인들을 어떻게 쥐어짤까, 궁리할 수 있는 인간들의 세기말적 고뇌. 안나 카레니나 비슷하게 서른 살 많은 백작 내팽개쳐 이 충격으로 늙은 남편한테 심부전이 오거나 말거나 자기 초상화 그리러 온 화가와 눈이 맞아 발트 해안의 초라한 어부의 집을 빌어 작업실을 꾸린 커플, 시골 촌구석에 박혀 사랑에 눈을 뜨는 바칼로레아 낙방생 부르주아 자재 등등. 이거 하나가 아쉬웠다. 대중의 삶이 안 보이는 거.

  그래도 좋은 건 좋은 거다. 만날 대중의 삶만 쓸 수 없듯이 만날 대중의 삶만 읽을 수도 없잖여? 그잖여? 카이절링의 다른 작품이 나오면 또 읽어버리고 말리라. 오늘 독후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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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3-03-21 06: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세기말 데카당 문학은 <파도>! 기억해 두겠습니다. 데카당 문학이지만 독일이라 그래도 좀 점잖다니 저도 맘에 드네요. ㅎㅎ

Falstaff 2023-03-21 11:57   좋아요 0 | URL
세기말 소설들은 개인적인 호오에 상당히 영향을 받습니다. 아무쪼록 심사숙고하셔서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

수이 2023-03-21 07: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침부터 배꼽 잡고 웃었잖아요, 골드문트님한테 또 낚였다 🤪

Falstaff 2023-03-21 11:57   좋아요 0 | URL
흠. 제가 또 낚시를 했군요. ㅋㅋㅋㅋ
재미나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건수하 2023-03-21 1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일 소설.. 농담 아닌 거 같지 말입니다.. ㅎㅎ

Falstaff 2023-03-21 12:01   좋아요 1 | URL
트라우마....가 있어서요. 오래 전에 러시아어로 노래하면 재미없다, 했는데 그걸 러시아어를 전공한 양반이 보고는 을매나 뭐라 하든지요. 행간을 읽어보면 그때도 농담으로 한 건데, 하여튼 이후로 이런 표현은 자제하고 있거든요.
그리하여 재미없는 독일문학이라고 쓰긴 썼지만 여전히 캥긴단 말입니다. ㅋㅋㅋ

stella.K 2023-03-21 1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름이 너무 깁니다. 오래 살았나 모르겠어요.
물론 울나라엔 수완무 삼천갑자 동방삭이란
전설같은 이름도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ㅋㅋ

Falstaff 2023-03-21 21:33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 전설, 정말 배꼽을 잡았었는데요. 당시 구봉서와 배삼룡이 이 작품하고 또 돈 주고 양반 산 인간들이 혼사를 맺고 서로 수인사하는 장면, 별 밑에 인사법! 하는 것도요. ㅋㅋㅋㅋ 귀족들은 모계 성도 이름에 포함시키고는 했더라고요. 부계와 모계가 얼마나 뻑적지근한지 자랑할 겸 해서 그랬던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