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원 을유세계문학전집 125
버나드 맬러머드 지음, 이동신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작가 버나드 맬러머드는 미국의 소설가로 솔 벨로우, 조지프 헬러(아니, 이이도?), 필립 로스와 더불어 가장 유명한 20세기 미국 유대 작가로 불린다고, 위키피디아는 설명하고 있다. 위에서 조지프 헬러를 거론할 때 왜 “아니, 이이도?”라고 의문을 표했는가 하면, 유대인 가운데 전쟁에 참가한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헬러는 1942년에 열아홉 살의 나이로 공군에 입대해서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이 되어 당시의 경험을 밑천 삼아 명작 블랙 코미디 수준의 반전소설 <캐치-22>를 쓴 작가. 맬러머드는 1914년생으로 2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하게 된 진주만 폭격이 일어났던 1941년엔 스물일곱, 사실상 참전을 목적으로 미국의 젊은이들이 입대하기 시작했던 1942년엔 스물일고여덟. 대학 학부를 졸업했으니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주인공 존 밀러 대위처럼 장교로 입대해 전쟁하기 딱 좋은 나이에 이이는 콜롬비아 대학에서 토마스 하디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따고, 1943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단편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눈치 받았겠다고? 눈치 주는 거 모르는 척하는데 도가 튼 종족 가운데 하나가 유대인이란 거 모르셔? 그래, 그래. 유대족이 아닌 백인 가운데서도 그랬던 인간이 있지. 스토너라고. 1차 세계대전이었지만. 갑자기 웬 스토너? 생각날 때마다 그가 미워서 그런다.

  맬러머드의 주요 작품은, 나는 운동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안 봤지만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인공을 한 영화의 동명 원작이자 데뷔작인 <더 내츄럴>. 1984년 작품 출간 이후 31년만에 영화로 만들어져 유명세를 탄 작품이다. 그러나 실제로 맬러머드가 소설을 써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즉 전업작가로 성공할 떡잎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두번째 작품인 <점원>이 전미도서상 최종심까지 올라갔을 때라고 한다. 그리고 바로 다음 해인 1958년 개의 해에 단편소설집 《마술통》으로 기어이 전미도서상을 받는다. 불과 8년 후엔 러시아 제국의 반유대주의를 그린 <The Fixer: 수선공>으로 두 번째 전미도서상과 미국작가들의 꿈인 퓰리처 상을 받았으니 대단한 성가를 누렸을 텐데, 설마 유대인들이 이리저리 밀어줘서, 소위 문화계 내의 유대 마피아들이 여기저기에서 압력을 넣은 결과는 아니겠지? 아니라고 믿자. 의심해봐야 증거도 없고 괜히 정신건강에만 좋지 않다. (내가 왜 이리 심통을 부리느냐 하면, <점원>이 정말 전미도서상이라는 큰 상의 심사에서 최종심까지 올라갈 만큼 대단한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긴 우리나라의 누가 말했다. 부모 잘 만나는 것도 실력이라고. 유대인 엄마 아빠한테 물총 잘 맞는 것도 실력이긴 실력이겠다. 꽤 오랫동안 노벨 문학상을 줄 때에도 특정 작품에 대해 심사를 했던 적이 있다. 어디선가 이이가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였다가 미역국 먹은 적도 있다고 들은 거 같은데 도무지 어디서 본 것인지 찾지 못하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여튼 노벨상 못 받았다. <점원>은 전미도서상 수상엔 실패했지만 미국 문화계 유대인협회에서 주는 ‘전미유대종족문학상’은 받았다고 한다. 그래, 이 정도면 양해해주지. 흠.


​  작품의 무대는 뉴욕의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사는 곳. 빈민가라고 하면 너무 험악할 거 같아서 그렇게 쓰기는 조금 무리다. 이 동네에 60세 노인 모리스 보버 씨가 있어 한 자리에서 21년 동안 식료품점을 운영하고 있다. 아침 여섯 시에 병에 든 우유 박스와 빵을 들여놓고, 이름은 모르지만 폴란드에서 온, 할머니까지는 아니고 나이 든 여자에게 3페니어치 빵을 파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 밤 열 시까지 꼬박 계산대 뒤에 서서, 정말 하루 종일 그렇게 서 있으면 하지정맥류로 인한 관상동맥 이상으로 벌써 세상을 떴을 터이니, 오전의 상당한 시간 동안은 유대여인인 아내 ‘이다’가 가게를 좀 봐주는 식으로 일주일에 7일을 쉼없이 열고 있었다. 식료품점이 잘 나가던 시절도 있었지만 길 건너에 독일 이민자가, 다른 곳에서 온 것도 아니고 하필 독일에서 온 이민자가 최신식 식료품점을 내는 바람에 이젠 그야말로 파리만 날리고 있어서 혹시 등장할지도 모를 멍청하고 불쌍한 인간에게 이 감옥살이 itself를 헐값에라도 팔아버리고 싶어한다. 가게 말고 위층에 방이 있어 푸소 가족에게 세를 주었는데, 하다못해 이 푸소 가족들마저 길 건너에서 식품을 사고는 혹시 모리스가 볼까, 들킬까 싶어 눈에 띄지 않게 조심스레 드나들 정도니 뭐 말은 다 한 거다. 모리스와 이다 사이에는 맏딸 헬렌이 있고, 아래로 에프라임이라는 이름의 아들이 있었다. 과거시제니까 당연히 아들은 병들어 죽었다. 그러나 부모 마음에는 크고 크고 또 큰 상처로만 아직도 살아있다.

  식료품점이 장사가 얼마나 안 되는지, 유대인들이 자식 교육 하나에는 정말 열심인 거 아시지? 똑똑하고 문학에 관심이 지대한 헬렌을 대학에 보내려고, 어떻게 해서라도 보내보려 노력했지만 비싼 등록금을 댈 수 없어서 헬렌은 비서 자리를 얻어 취직을 했고, 야간대학에 1년을 다녔지만 주경야독이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서 너무 힘들어 때려치우고 말았다. 여기까지면 그래도 없는 집안이 다 그렇지, 하고 넘어갈 수 있으나, 이 집구석은 장사가 안 되도 너무 안 돼, 헬렌이 받은 봉급의 거의 대부분을 (‘가게’ 말고)가계에 보태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어느 소설에서나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 같은 유대인이자 좀 멍청한 친구 줄리어스 카프는 어떻게 하다가 주류 영업권을 따고, 잘 사는 친척이 종자돈을 대주는 바람에 가난한 동네에 주류판매점을 개업해 대박이 난 인물이다. 가난한 동네가 술은 더 많이 팔리는 건 뉴욕이나 런던이나 춘천이나 마찬가지다. 돈이 많아지면서 저절로 똑똑해지기 시작한 카프 사장은 어느 날 밤, 가게 맞은 편 도로에 불 꺼진 승용차가 서 있는 걸 보고 일찌감치 문을 닫고 들어간다. 그리하여 애초에 영업이 잘 되는 주류판매점을 털려고 했던 두 명의 권총강도는 꿩 대신 닭이라고 카프네 말고 가뜩이나 장사 안 돼 돈이 떨어지긴 했지만 하필이면 그날이 헬렌의 봉급날이라서 봉급 받은 대부분을 가지고 있던 모리스 씨네 식료품점에 쳐들어와 돈을 다 털어가고, 그것밖에 없냐고, 더 내놓으라고 협박하다가 급기야 권총으로 쏴 죽이지는 않고, 권총 손잡이로 모리스의 이마를 후려쳐 까무러치게 만들어버린다. 이때 때린 놈은 동네 전담 경찰의 아들 워드 미노그, 폭행을 말리다가 졸도하기 일보직전의 모리스에게 물 한 컵을 떠다 준 놈은, 흠.

  그해의 11월의 화요일. 동네에 한 젊은 남자가 등장한다. 검은 턱수염, 낡은 갈색 모자, 갈라진 에나멜 구두와 해졌지만 검정 롱코트를 입은 남자는 며칠 동안 모리스 씨네 식료품점을 관찰하는 것 같다. 프랭크 알파인이라는 이탈리아 계로 부모가 없어서 보육원에서 자랐는데, 누이가 가리발리 부인이라고 주장하다가 결국 그건 거짓이라고 실토한다. 그가 어떻게 해서 식료품점에 들어오고, 척 보니까 돈 한 푼 없는 걸 알아챈 모리스 씨는 (없는 자들에게는 언제나처럼)차와 빵 같은 걸 먹여 보내고 그랬는데, 어느날 밤 글쎄 지하실에서 뭔 소리가 나길래 집안에 하나 있는 남자라고, 몽둥이를 든 채 지하실 문을 열고 불을 비춰보니 이 추운 날에 거기에 프랭크가 잠들어 있는 거였다. 프랭크는 이때 자신의 신상에 관해 전부 털어놓고 급여는 없어도 좋으니 그저 먹여주고 지하실에서라도 잠만 재워주면 자기가 점원으로 일해주겠다고 제안을 한다. 가뜩이나 없는 살림에 군식구 하나를 더 들일 수 없는 모리스 보버 씨. 거절을 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프랭크는 오히려 더 열심으로 가게를 청소하고, 물건을 받고, 모리스 씨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친절로 손님들을 맞은 결과, 놀랍게도 놀라운 매출을 올리고 만다. 와우. 근데 모리스 씨, 이때는 몰랐다. 나중에는 눈치를 챘지만.

  프랭크 알파인이 가게에 쳐들어온 권총 강도 가운데 물 한 잔을 떠온 강도였으며 갑자기 올라간 매출은 당시 자기 몫으로 워드 미노그가 프랭크한테 준 돈의 전부였다. 프랭크, 얘 정체가 뭐야? 회개한 검은 양? 좀 웃긴다.


​  이 작품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유대인, 유대성 등에 관해 이야기하는 모양인데 나는 한 집단으로의 유대인이란 종족이 있다는 것에만 초점을 둔다. 그들의 정체성과 폐쇄성, 그리고 종교에 관해서는 특히 관심이 없다. 작품의 말미에 랍비 하나가 나와 누가 유대인인가, 하는 문제를 설파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그게 뭐? 나는 아무 관심도 없이 그냥 훅, 읽고 지나쳤다. 그건 이 작품이 나온 1950년대에나 중요한 것이지 지금에 와서 유대인인지 아닌지 뭐가 중요한가 말이지. 소설 속에 모리스의 딸 헬렌이 등장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으니 틀림없이 연애하는 장면도 나온다. 헬렌을 둘러싸고 부모, 이웃 간에 유대인은 유대인끼리 혼인을 해야 하고, 유대인이 아닌 족속들은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는 것도 줄창 나오지만 그래서 뭐?


​  말이 나온 김에 하나 정확하게 하자. 역자 이동신. 나이도 좀 있는 거 같은데 헷갈린 모양이다. 위에 모리스와 이다 보버 부부 사이에 큰 딸, 효녀 중의 효녀 헬렌이 있다. 헬렌의 연애담도 당연히 등장한다. 그리하여 한 장면이 나온다. 별로 바람직하지는 않은 씬이다. 어쨌든 이제 막 결합을 하려는 순간, 헬렌의 입에서 욕설이 터진다.

  “잠시 후, 그녀가 소리질렀다. ‘개자식 ᅳ 포경도 안 한 개자식!’” (p.249)

  헬렌도 유대인이니까 여기서 말하는 건 상대가 할례를 안 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위에서 “포경도 안 한”은 “포경(수술)도 안 한”의 뜻이란 건 안다. 하지만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저자, 역자는 일반 독자하고 똑같이 쓰면 안 된다. 포경은 包莖, 감쌀 포, 줄기 경. 줄기를 감싸고 있는 것, 인간종의 수컷에서 줄기를 감싸고 있는 건 뭐 다들 아시는 것과 같이 소위 “조껍데기”다. 그러니 “포경도 안 하다”는 줄기를 감싸지도 않은 것, 즉 할례를 했다는 뜻이다. 하고자 하는 의미와 완전히 반대되는 말이니 틀린 번역이다. 우리도 알고 쓰자. 대신 “할례도 안 하다” 또는 “포경수술도 안 하다”로.


.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2023-04-11 0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대남에겐 중요하군요 ㅋㅋㅋ 안한 걸 햇다하면 안돼죠 ㅋㅋㅋㅋ

Falstaff 2023-04-11 09:35   좋아요 0 | URL
남자는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녀한테 까고 안 까고가 중요했던 것이지요.
레마르크가 쓴 <그늘진 낙원>에선 1940년대 스페인의 진보적 유대남들은 안 까기도 했던 걸로 나오더군요.

- 2023-04-11 11:14   좋아요 0 | URL
엥 근데 저 궁금한데 유대인 할례랑 우리나라 포경수술도 관련이 있나요? 식민잔재인가… (찾아볼게요!!)

- 2023-04-11 11:19   좋아요 0 | URL
헐 ㅋㅋㅋ 남한만 하네요 ㅋㅋ 미군정기 유행템이었대요 ㅋㅋㅋㅋㅋ 요즘엔 안한대요… 갑자기 식민지 분단국가 남성들이 짠해지네요ㅋㅋㅋㅋ

바람돌이 2023-04-11 11: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아 진짜 마지막 대목은 왜 이렇게 웃깁니까? 유대인에겐 중요하군요. 그럼 진짜 비유대인과연해하기 힘들겠네요. 유대인이 자신들의 집단을 유지하는 힘이 종교만은 아니군요. 할례 즉 포경수술이(뭐 이것도 종교에서 기인한거긴 하지만 그래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

Falstaff 2023-04-11 11:46   좋아요 2 | URL
ㅎㅎㅎ 이거 TMI 인 것이 분명한데, 그래도 밝히겠습니다.
저는 스물여섯 살에 제가 직장 다녀서 번 돈으로 병원가서 시술을 했습니다만, 정말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태어나도 할 거 같아요. 마치 새 세상을 만난 것처럼 뽀송뽀송한 세계를 경험한다니까요. 유대인들, 아랍인들이 다 머리가 있어서....ㅋㅋㅋ
붕대 감은 채로 직장 점심시간에 족구하다가 축구공에 맞아 실밥이 터져 붕대가 시뻘개졌을지언정 아문 다음엔 까짓 것은 아무 것도 아니더라고요.
당연히 종교하고는 관계 없습니다.

- 2023-04-11 12:16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뒷부분 사정도 아는데 골드문트님 ㅋㅋㅋ 죄송해요 ㅋㅋ 기억력이 좋아서 ㅋㅋㅋ

Falstaff 2023-04-11 12:25   좋아요 0 | URL
저 뒷부분에 뭐가 있는지 저도 모르는데요. 뒷부분이라면 치질 얘기 같습니다만. ㅎㅎ
그게 아니라면 저도 궁금하니 공개하셔도 좋습니다. 전 치핵, 치루 같은 거 말고, 치열이 조금 있어서 술이 좀 과하면 다음 날 약간 째집니다. 그거 얘기 같군요.

- 2023-04-11 12:35   좋아요 0 | URL
네 뜻하지 않았지만 앞뒤사정과 히스토리를 알게되어 … 많이 걸으실테니, 술 좀만 드시구요!!!!

바람돌이 2023-04-11 15:22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족구하다 공에 맞고도 잘 아물어서 정말 천만다행입니다. 제가 아들이 없어서 교훈을 들려줄수 없음이 슬플따름입니다. ㅎㅎ

blanca 2023-04-11 13: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당연히 유대인들 핍박 받은 역사에 대하여 증언적 문학을 하는 것에 대해 찬성하지만, 그 정체정 자체와 특권적 현재 위치를 적절히 타협하여 이용하는 것에 거부감 있어요. 과거를 이용하면서 현재적 특권을 공고히 하는 거잖아요. 골드문트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Falstaff 2023-04-11 14:59   좋아요 0 | URL
과거의 피해가 지금의 특권으로 되는 현상, 그게 또 미움/증오로 변이하는 것에 대해서는 결코 찬성할 수 없습니다. 동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coolcat329 2023-04-11 1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몰랐던 사실을 알았습니다. 뭐든지 대충 알 것이 아니라 한문의 뜻을 정확히 알고 사용해야겠어요.

유대인이 전쟁에 참전하는 게 흔한 일이 아니군요. 그러고 보니 저의 인생 미드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연합군이 히틀러 술창고 발견했는데, 극중 실존 인물이었던 한 유대인 장교가 히틀러 한정판 코냑을 가져와 나중에 손자 성인식 때 썼다고 한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ㅎㅎ

근데 조지프 헬러의 <캐치 22> 읽다 포기 했는데 다시 도전해 봐야겠습니다. 2차대전 참전한 유대인이라니 또 흥미가 가네요.

Falstaff 2023-04-11 21:00   좋아요 1 | URL
유대인들이 유럽 사람들한테 미움을 받은 진짜 이유가 저는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던 것으로 봅니다. 원주민들은 만날 전쟁터에 나가서 죽고 다치고 그랬는데 유대족들은 시내에 머물면서 부자가 되기도 했거든요. 비록 얼마 벌지 못했다고 쳐도, 죽음을 각오하고 전쟁에 나간 사람들한텐 정말 아니꼽게 보였을 겁니다.
저는 이게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걸 거론하는 사람은 포이히트방거 말고는 찾을 수 없었답니다. 세상에 가장 중요한 게 살고 죽는 거 아니겠어요. 거기서 살짝 빠져나가니 얼마나 미웠겠습니까.
캐치 22는 사실 좀 거칠지요. 그것만 극복하면 정말 잘 쓴 반전문학이라고 생각한답니다. ^^

coolcat329 2023-04-11 21:39   좋아요 1 | URL
아! <미국의 목가>의 시모어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해병대를 들어간 게 이해가 됩니다. 대부분의 유대인이 군입대를 멀리하는 현실에서 유대인이 아닌 진정한 미국인으로 거듭나려면 군대를 가야 한다고 생각했겠지요.

포이히트방거 <고야...>말고 다른 책도 찾아봐야겠습니다.

Falstaff 2023-04-12 06:25   좋아요 1 | URL
아, <미국의 목가>. 읽어본지 오래라 기억을 못했습니다. ㅎㅎㅎ
유대인들은 유대인들과 여호와를 위한 전쟁이 아니면 그저 못 본 척 했을 겁니다. 뭐 다 그런 것이지 그이들이 그리 특출난 것도 아닙니다만. ^^;;
 
오후의 예항 / 짐승들의 유희 대산세계문학총서 182
미시마 유키오 지음, 박영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일본의 대표적인 탐미주의적 작가 미시마 유키오. 나는 아주 어렸을 때, 70년대 초반에 집에 있던 <금각사>를 무슨 이야기인지도 모르고 읽어봤고, 쉰 넘어서 <가면의 고백>을 읽었는데 그게 다였다. 무엇 때문에 극우 골통 군국주의자가 쓴 소설을 읽어야 하는지 스스로를 납득시키지 못했던 거다. 미시마 유키오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1960년대 초반, 책의 뒷면에 쓰인 걸 그대로 인용한다면 “작가적 역량이 절정에 오른” 시기에 쓴 작품임에도, 미시마는 적어도 반 세기 정도 발달장애가 있었던 것처럼 여전히 탐미주의적, 예술지상주의적이고 만일 그게 아니라면 청소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차일디시, 좋아 좋아 영어 말고 예스럽게 얘기하자면, 구상유취한 정서를 미시마 특유의 미문으로 그려내고 있다. 만일 조선이었던 시절의 김동인이 자신의 전성기에 이런 작품을 썼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만세삼창이라도 해줄 수 있지만 1960년대, 며칠 뒤면 김승옥이 <생명연습>을 발표할 시점에 이렇게 발랄 엽기적 소설을 쓰는 이유는 도대체 뭐였을까? <오후의 예항>은 발표한 뒤에 곧바로 영역하여 영미권에서 절찬리에 읽혔다고도 한다. 독자들이야 죄 없다. 미시마의 미문은, 내용이 어떻고 주장하는 바가 저떻더라도 문장 하나만 가지고 충분하게 매료시킬 수 있을 터이니. 물론 이 독자들의 범위에서 나는 좀 빼주라.


  “그는 그것(복도에 선명하게 떨어진 햇빛)을 사랑했다. 수줍게, 열렬히. 어째서 저런 창에서 떨어지는 햇빛이 좋았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것은 은혜롭고 아주 거룩한 느낌이었는데, 칼로 토막 살해당한 유아의 하얀 몸처럼 마디마디 잘려져 있었다.” (<짐승들의 유희> 1장. p.200)


​  “노보루는 있는 힘껏 새끼고양이를 들어 올렸다가 목재 위에 세차게 내리쳤다. 손가락 사이에 잡혀 있던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간 것은 멋있었다. 그러나 손가락에는 부드러운 털의 감촉은 아직 약하게 남아 있었다. … (중략) … 노보루가 다시 잡아 올린 것, 그것이 이미 고양이가 아니었다. 반짝이는 힘이 그의 손가락 끝까지 꽉 차서, 그는 이번에는 자기의 힘이 그려내는 분명한 궤적을 따라 집어 올려 그것을 목재에 몇 번이고 내려칠 뿐이었다.” (<오후의 예항> 1부. p.65)


​  위에 인용한 문단은 19세기 자연주의 시절이나 20세기 초의 예술지상주의 혹은 세기말주의에서나 볼 수 있고 어울리는 것이지, 60년대에 이게 뭡니까. 평상시에 생각하는 게 이런 따위니까 천황, 뭐 천황? 그냥 왕이라고 해야 마땅하리라, 하여간 절대왕권을 위한 쿠데타 비슷하게 시도하다가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으니 할복을 해버린 것이지. 할복이나 제대로 했나? 배는 갈랐지만 숨이 넘어가지 않아 할복 도우미, 가이샤쿠가 옆에서 빨리 죽으라고 목을 쳐버렸고, 단번에 잘리지 않아 여러 번의 난도질 끝에 데굴데굴 구르던 미시마의 머리통, 이 가운데 대뇌, 큰골은 아직 완전한 죽음에 이르지 않았을 테고 그러면, 어쩌면, 혹시라도 여전히 살아있는 눈을 통해 머리통이 잘린 자신의 몸통을 아주 잠깐이라도 구경하고 가지는 않았을까? 아, 나는 “토막 살해당한 유아의 하얀 몸”이라든지 통나무에 새끼 고양이를 패대기쳐서 죽이는 장면 같은 건 아주 질색이다, 질색. 이런 장면을 연상하지 않더라도 세상은 충분하게 살기 힘든 곳이라서.


​  시절에 맞든 맞지 않든 간에 인정할 것은 인정한다. 미시마 유키오의 탐미주의적 뇌 놀림. 이건 정말 대책이 없다. 미시마 흉을 보느라 벌써 지면을 많이 써버려서 <오후의 예항>에 관해서만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여기에 위에서 인용한 ‘구로다 노보루 黑田登’라는 열세 살의 촉법소년이 등장한다. 아버지는 노보루가 여덟 살 때 일찌감치 차마 감지 못할 눈을 감아버리고, 어머니 구로다 후사코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일본 최고급의 수입 양품점 ‘렉스’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만큼의 놀랄 만한 수완으로 더욱 번창시켰다. 이제 막 유행하기 시작한 테니스를 클럽에서 정식으로 배워 탄탄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는 서른네 살의 아름다운 여성. 그러나 철저하게 수절하고 있는 과부라서 거의 매일 밤 모든 옷을 벗고 전신 거울을 통해 자신의 나신을 비춰보는 습관이 있다는 걸, 노부로는 우연히 서랍장에서 서랍을 모두 빼고 안에 들어가 장 때문에 가려져 있던 틈 사이로 훔쳐보면서 알아냈다. 아무리 미시마 유키오라고 해도 아들이 엄마의 사생활을 전부 관찰하게 만들 수는 없어서 틈으로 볼 수 있는 엄마 방의 범위를 한정적으로 할 수밖에 없었으니, 이 돈 많은 미인 과부가 언젠가는 베드 씬을 한 번 벌이지 않겠느냐, 그럼 엄마의 엑스터시를 아들이 A부터 Z까지 생 라이브로 관람을 하게 만들어야겠느냐, 하는 딜레마가 있었을 터이다.

  노부로는 바다와 선박, 그리고 항해에 관한 로망이 있다. 배의 구조와 설치물에 관해서는 상당한 지식까지 가지고 있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조금 천재성까지 있을 거라고 자부심을 느끼는 소년이라서 어머니한테 배 구경을 하고 싶다고 졸랐다. 세계적인 무역항 요코하마에서 일본 최고급 양품점을 하는 유력인사인 어머니는 선박회사 전무에게 부탁을 했고, 전무는 소개장을 써주면서 화물선 라쿠요마루 선장을 찾아가라고 일러주었다. 그리하여 이틀 전, 라쿠요마루 호에 오른 모자는 마침 선장이 외출 중이라 삼십대 단단한 체력과 체격을 갖춘 스카자키 류지 이등항해사의 안내로 배 견학을 한다. 받으면 보답을 해야 하는 게 일본식이라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었는데도 친절한 어머니인 후사코 씨는 그랜드호텔 양식당에서 류지에게 다음날 저녁 식사를 대접했고, 비프 스테이크를 대접한 김에 자신의 입술까지 주어버린 건 뭐 한창 때의 과부가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에그머니, 열세 살 먹은 노부로가 바로 옆방에서 자는 자기 집, 자기 방, 자기 침대에까지 끌어들인 거, 이건 어쩔겨? 물론 벌써 배꼽 아래 13cm에 푸른 색 모근으로부터 검정 터럭이 촘촘하게 돋고 있는 사춘기 아들이 서랍장 속에 들어가서, 부얼부얼한 가슴 털이 아래로 쪽 이어진 곳에서 류지의 “무성한 털을 뚫고 나와 자랑스러운 듯 솟아 있는 매끈매끈한 불탑”과 엄마의 맨 다리를 보고 있었다는 것은 몰랐을 테지.

  사실 노부로는 밤마다 가택연금 비슷한 “자기만의 방에서의 연금” 중이다. 여섯 명으로 된 학교에서 마리 좋은 아이들의 모임이 있다. 대장이 있고, 1호부터 5호까지 있어, 노부로는 3호로 불린다. 하루는 대장이 꼬여서 한밤중에 몰래 나가 놀다가 엄마한테 제대로 들켜 이후부터 밤마다 엄마는 방문을 밖에서 잠궈버렸다. 덕분에 노부로는 서랍장 속의 비밀을 하게 되긴 했지만. 하여간 이 또래들은 매우 혁명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바, 모든 영웅적인 것을 숭배하고, 지질한 잡것들을 타도해야 할 것으로 구분한 것. 제일 먼저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무리는 바로 아버지란 작자들하고 선생이란 새끼들이었다. 강한 자들에게는 경배하지만 위에 인용한 것처럼 새끼 고양이 같은 약하고 구질구질한 것들은 멸해야 마땅한 거다. 그리하여 새끼 고양이를 산 채로 통나무에다 패대기를 쳐 죽인 다음에 껍데기를 벗기고 배를 갈라 장기를 적출해 붉은 심장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까지 구경하는 내내 조금의 죄의식도 느끼지 못할 수 있었다. 이 여섯 명의 자칭 천재들은 스스로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니, 형법 제41조, “14세가 되지 않은 자의 행위는 이를 처벌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이제 세상이 자신들은 선한 존재, 귀엽고 아름다운 존재로 알아주는 일은 불과 몇 달밖에 남지 않아 자신들의 특권을 한 번을 써봐야겠다고 진지하게, 아주 진지하게 결심하고 있으니, 이거 진짜 미시마 유키오 맞지?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나는 당신이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거 말고도 읽을 책은 넘치고 넘친다. 그러나 선택은 당신이 하는 것. 내가 주제넘게 읽어라, 읽지 마라를 권하는 건 아무 의미도 없다. 불행하게도 미시마의 탐미적이고 감각적인 문장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걸 재료로 만들어 이 책에 담은 두 편의 소설은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23-04-08 1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토당토 않은 작가의 정치적
행태와 말로 때문에 도무지 정
이 가지 않는 작가입니다.

그런 선입견 때문인지 작가가
추구한다는 탐미주의에 대해
서 와 닿지가 않더군요.

Falstaff 2023-04-08 14:58   좋아요 1 | URL
이 책을 낼 때까지는 군국주의를 노골적으로 옹호하지 않았는데 뒤로 갈수록 도라이로 바뀌었지요. 제 생각엔, (어떤 기준인지는 몰라도) 병약했던 청소년기, 폐결핵 진단이 오진인 것을 알면서도 시침 뚝 떼고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은 과거, 이런 것들이 점점 커져 완전히 맛이 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림의 이면 을유세계문학전집 122
씨부라파 지음, 신근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태국 소설로는 두 번째 읽는 작품이다. 만일 버마 출신 중국인이면서 태국에서 대학에 다니며 농민들의 참상을 목격하고 농민운동에 뛰어든 민퐁 호가 쓴 <아버지의 쌀알>을 태국 문학이라고 치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걸 빼면 <그림의 이면>이 처음 읽는 태국 소설이다. 태국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작가 씨부라파는 (이하 위키피디아 및 해설/연표를 참조했음) 1905년 철도청 1등 서기 쑤완 싸이쁘라딧과 쏨분 싸이쁘라딧의 맏아들 꿀랍 싸이쁘라딧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다. 청소년시절엔 부유층 자제들이 주로 다니는 데브시린 학교에 들어갔지만 대부분의 학생과 달리 1등 서기관이었던 아버지는 여섯 살 때 일찌감치 세상 하직을 해 싸이쁘라딧 가문의 맏아들이자 외아들인 꿀랍의 교육비를 위해 엄마는 재봉사가 되어 자기는 입어보지 못할 여성복만 죽어라 만들어야 했고 여동생마저 손가락을 이상하게 비틀며 포즈를 취하는 태국 전통 무용수를 해야 했다. 아직 중등학교에 재학중이던 1923년, 열여덟 살 때 신문에 ‘선언’이란 사설을 발표하면서 본명 꿀랍 싸이쁘라닷을 버리고 씨부라파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근데 씨부라파 보다 꿀랍이 그래도 어감이 더 좋지 않은가? 내 귀에만 그런가? 하여간 이후에도 신문기자 등 신문newspaper인으로, 진보적 소설가로 활발한 작품생활을 하며, 당대를 대표하는 문학인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한다.

  진보 문학인답게 1952년에는 한국전쟁(에 태국이 연합군을 파병한 일)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동하다가 평화 반란죄를 범해 13년 4개월 형을 선고받고 57년 2월 불교나라 태국답게 불기 2,500년 기념으로 사면되기까지 4년 이상을 복역하고, 같은 해에 태국의 대표적 좌파 문인 자격으로 러시아혁명 4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받아 소련을 방문한다. 이듬해에는 고리키의 <어머니>를 태국어로 번역 출판도 했다. 8월엔 태국의 “문화교류진흥단”을 이끌고 중화인민공화국의 초청을 받아 베이징을 방문하기도 했으니 당시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에서 유행하던 우파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겠는가? 그리하여 씨부라파는, 이왕 베이징에 간 김에 그냥 중화인민공화국, 중공으로 망명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16년 후, 그 좋은 태국의 공기만 마시다가 베이징에서 황사 섞인 스모그를 장복해서 그랬는지 폐렴과 관상동맥질환으로 사망하니 향년 69세. 하긴, 1974년에 69세면 죽어도 그리 아까운 나이는 아니었다.


​  <그림의 이면>에서 ‘그림’은 훌륭한 아마추어나 딜레탕트 수준의 화가(지먕생)이 그린 수채 풍경화로 일본의 미타게 산 근처에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들과 오솔길, 물돌물 돌물돌 흘러가는 시냇물 같은 걸 그린 평범한 그림으로, 주인공 놉펀이 자기 서재에 책상에 앉았을 때 등 뒤 벽에 걸어놓은 “작품”이자 결혼 축하 선물이다. 그림에 관해 조금의 감식안만 있어도 차마 돈을 주고 사게 되지 않는 그림이지만 내가 이걸 “작품”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비록 객관적 시각에 의하면 평범할지언정 놉펀의 입장에서 그림을 바라보면 이 그림의 이면에 인생이 있고 그 인생이 자신의 마음에 새겨져 있어서 만일 정면에 걸어 둔다면 신경을 몹시도 건드릴 정도이기 때문이다. 놉펀, 사람 좋다. 사람의 신경을 건드리는 그림을 앞이건 뒤건 뭐하러 걸어 둬? 눈 앞에 보이면 신경을 그것도 “몹시” 건드릴 거 같다며? 그럼 뒤에다 걸면 그림 속에서 귀신이라도 튀어나오면 어쩌려고. 나 같으면 안 건다. 작가의 인생이 놉펀의 마음에 새겨질 정도라면 더 그렇지. 뭐 좋은 기억/추억인 모양이지?

  우리의 주인공 놉펀은 현재 일본 릿교 대학에 유학중이다. 아버지는 나 같은 서민이 보자면 재계에서 무지하게 빵빵한 거물이고, 장남이 일본에서 유학을 마치고 거기서 직장을 얻어 장가들어 일본인으로 살까 걱정이 되어 놉펀을 말도 몇 번 못해본 부잣집 아가씨 쁘리와 약혼시켜버렸다. 지금은 스물두 살 청년이지만 스무 살 때. 나 참. 내가 놉펀 아빠면 쁘리하고 결혼시켜 둘 다 유학시켜버리겠네. 그러면 씨부라파로 하여금 이런 소설을 쓰지 않아도 되게 할 수 있었지 않은가 말이지. 하여간 놉펀이 이제 스물두 살의 여름을 맞아, 당시 태국까지 가는 뱃삯이 보통이 아니라 도쿄 시내에서 빈둥거려야 할 때, 아버지의 친한 친구이며 평소 놉펀도 존경해 마지않던 아티깐버디 공(公)이 홀아비 생활을 마치고 두번째 장가를 들어 국왕의 증손녀인 끼라띠 여사와 도쿄로 허니문을 와, 그들의 관광 가이드 및 도쿄에서 8주 이상 묵을 숙소 임차 등을 맡기도 했다. 아티깐버리 공은 태국에서 손꼽히는 재벌 가운데 한 명이라, 비용은 얼마가 들든지 간에 하여간 자기는 호텔이 싫으니 독채 살림집을 빌리라 해서 도쿄 교외에 있고 철도와도 멀지 않은 아오야마 지역에 외관은 서양식, 실내는 다다미방으로 된, 일본식 정원으로 잘 치장한 집을, 영어를 구사할 수 있어서 보통보다 두 배는 비싼 하녀 한 명과 함께 임대해 놓았다. 이에 만족하는 아티깐버디 공. 그리고 끼라띠 여사.

  끼라띠 여사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번 대강이나마, 원문의 1/10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특징을 소개해보면, 예상외로 젊은 여성으로 눈부시게 빛나 보인다. 자그마한 하얀 꽃송이가 있는 남색 복장에 흰 모자, 그리고 하얀 신발. 통통하지만 체구가 크지는 않으며, 풍만하고 피부가 부드러워 빛이 났다. 그래, 1930년대에는 “통통하고… 풍만하고 부드러운 피부”가 미인의 척도였다. 하, 정여사 생각나네. 비단 있지? 그걸 쓰다듬을 때 느낄 수 있는 손의 감촉. 정여사 피부가 딱 그랬다는 거 아녀?

  놉펀은 끼라띠 여사를 보고 급하게 머리를 굴려보니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스물여섯이나 일곱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반면에 아티깐버디 공은 쉰 살. 무엇 때문에 이토록 젊고 싱싱하고 아름답고 귀한 가문의 여성이 쉰 살 먹은 쉰 늙은이와 결혼을 하기로 결심을 했을까? 처음엔 이게 궁금했다. 하여간 관심이 생겼다. 독자는 21세기를 살고 있어서 까질대로 까진 상태. 한 눈에 척 보고 놉펀, 얘가, 얘가 사고 한 번 치겠구나, 딱 감을 잡는다. 다만 문제는 끼라띠 여사가 왕가의 숙녀이며 거대 부를 보유한 공公의 아내로 쉽게 놉펀에게 마음을 주겠느냐, 하는 건데, 여기에 시절이 1930년대, 동남아 출신이 유교국인 일본에 와서, 이게 되겠냐, 하는 거. 어려서부터 엄한 가정에서 자라면서 학교 대신 서양에서 온 노처녀 독선생을 모셔놓고 서양식 교육을 받은 끼라띠 여사는 서양 여인으로부터 각종 미용, 패션 잡지를 섭렵하며 젊음을 조금이라도 유지할 수 있는 관리를 받아서 겉으로만 스물여섯, 일곱이지, (어차피 조금만 더 읽으면 나오는 거니까 밝히는데) 알고 보면 서른다섯 살, 당시 기준으로는 중년 여성이었으니 우리의 놉펀과는 열세 살 차이. 그런데도 이게 되겠어? 여사와 공의 열다섯 살 차이를 심한 터울로 봤는데, 놉펀과 여사 역시 열세 살 차이니까 말이지.


​  그래도 <그림의 이면>은 연애소설이다. 내가 줄창 연애소설은 궁극적으로 이별소설이라고 주장한 거 기억하시나?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만일 정말 연애소설이라면 열다섯 살 차이는 억지 결혼이고 열세 살 차이는 자연스런 연애가 되어야 하고, 이별 또한 해야 하는데, 문제는 얼마나 독자가 앙가슴을 치게 만들 수 있는 이별을 연출하느냐,에 연애소설의 성패가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필생의 소원이 연애소설 한 편 써보고 죽는 건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뻔하기 때문에. 남녀가 (요새는 남남하고 여여도 포함해서) 만나고, 사랑하고, 점점 뜨거워지다가 몽땅 불사른 다음 이별하는 일과성이자 일방통행을 그리 쉽게 절절하게 쓸 수 있겠어? 이미 그려놓은 보드 위를 달리는 말들인데. 이 책도 그게 아쉽다. 이야기의 배경, 달달한 문장과 애절한 사연, 구성 같은 거 다 좋다. 하지만 결말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연애소설이 쉬울 거 같아? 그럼 전부 셰익스피어고 괴테고 톨스토이게?

  (톨 백작의 <안나 카레리나>가 정말 명작인 건, 자식새끼, 늙은 영감 버리고 뛰쳐나온, 인류의 문학 역사상 가장 우아하게 아름다운 여인 안나가 미치게 사랑한 브론스키 백작을 결국 배 나온 대머리 술주정뱅이로 만들었잖여? 톨 백작 말고 이 비슷하게라도 끌고 간 인간이 누가 있는지 가르쳐주시면 만원 드림.)


.


댓글(9)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부만두 2023-04-06 07: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졸라 남주들도 외모는 별루에요… (만원 대신 리뷰 만개 부탁 드림)

Falstaff 2023-04-06 20:00   좋아요 0 | URL
윽. 졸라는 연애소설이 아닌 걸로..... ㅎㅎㅎ ^^;;;

유부만두 2023-04-06 20:51   좋아요 1 | URL
아… 제겐 “제르미날”도 연애소설이었어요;;;

다락방 2023-04-06 0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전에 잠자냥 님의 리뷰 읽고 이 책 사두었는데 골드문트 님의 이 리뷰를 읽으니 사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이천번 드네요. 으하하하하. 주말엔 이 책 읽어야겠어요. 와 너무 쫄깃쫄깃 재미있을 것 같아요!!

Falstaff 2023-04-06 20:01   좋아요 0 | URL
거의 백년 전 작품이니 넘 기대를 많이 하시지는 마세요. 전 러브씬 안 나오는 연애소설은 ㅋㅋㅋ 아주 조금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다락방 2023-04-06 20:50   좋아요 0 | URL
러브씬 제대로 수시로 나올 설정인데, 아니라구요?????

Falstaff 2023-04-06 21:20   좋아요 0 | URL
넵. 이게 20세기 초 아시아 작가에 의하여 쓰여진 작품입니다. 러브씬이 나오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냥 입술 박치기 한 번 나옵니다. 설왕설래舌往舌來도 없습니다.

yamoo 2023-04-06 1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니까 톨 백작의 <안나>가 연애소설의 원탑이라는 야그군요! 집에 판본이 2개인데, 일단 눈에 띄는 범우사본으로 일독하야겠습니다! 마지막 괄호 문장이 아주 강력하군요! ㅎㅎ

Falstaff 2023-04-06 20:03   좋아요 0 | URL
옙. <안나....>를 따라올 작품이 동서고금을 통해 몇 개나 있겠습니까. 전 오랜 세월 ˝D > T˝ 즉 도스토옙스키 > 톨스토이 였는데요, 이게 점점 바뀌고 있는 거 같습니다. ㅎㅎ
 
리먼 트릴로지
스테파노 마시니 지음, 조원정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스테파노 마시니는 1975년에 플로렌스에서 태어난 소설가, 극작가, 에세이스트인데,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작품이 지금 방금 내가 읽기를 끝낸 <리먼 트릴로지>, 즉 <리먼 삼부작>이라고 한다. 마시니는 플로렌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밀라노의 피콜로 극장, 플로렌스의 마치오 뮤지컬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리먼 트릴로지>를 발표하고 이게 영국과 브로드웨이에서 대박이 나 평론가들에게 극찬을 받은 끝에 미국 브로드웨이 연극상인 토니 최우수 연극상까지 수상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영미 외에도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벨기에, 스위스, 스페인, 그리스, 아르헨티나, 알제리, 멕시코. 페루, 러시아, 그리고 당연히 우리나라에서 무대에도 올려졌다고 위키피디아에 쓰여 있다. 우리나라에는 서울예술대학 공연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의 안드레아 파치오토 교수가 희곡 작품집 출간에 정성을 쏟고 있는 출판사 지식을위한지식(지만지)에 출판을 제안해 이를 받아들여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 등록 공인 번역사 조원정의 번역으로, ‘현대’ 이탈리아 극작가의 작품으로는 아마도 첫 출판물이라고 한다. 파치오토 교수는 책의 해설과 작가 소개도 썼다.


​  그러나 이 책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 즉 눈에 뜨일 정도를 넘어서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드는 건 2015년에 밀라노 피콜로 극장에서 이 작품을 공연할 때 연출을 맡은 연출가 루카 론코니가 쓴 서문이었다. 책을 읽기 전에 정말 한 번 휘리릭 열어본 적이 있는데, 분명히 희곡, 드라마라고 알고 있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화자가 한 명도 보이지 않아서, 이거 또 문제작, 읽어내기는커녕 읽어갈수록 뇌가 헝클어지거나 심하면 꼬여버려 최악의 경우에 뇌졸중이 올 정도로 부조리하거나 형이상학적 작품 아닌가 싶어 약간 쫄아 있었다는 것을 먼저 고백한다. 이런 상태에서 진짜로 연출을 한 연출가의 허리상학적 서문을 읽는 일은 독자로 하여금 더욱 야코가 죽게 만드는 일이었다. 요즘 진보적인 희곡/연극은 극작가보다 연출가와 드라마트루기(또는 드라마터지)의 비중이 더욱 중요해지는 거 같은데, 이런 경향의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이 <리먼 트릴로지> 아니겠나 싶다. 그러니까 희곡을 놓고 이것을 어떻게 연출할 것인지, 어떤 상징을 차용, 응용 또는 창조할 것인지는 당연히 연출가의 몫이다. 연출가 론코니는 자신의 연출 경향을 매우 지적으로, 독자의 기가 죽을 정도로 현학적인 표현을 구사했다. 그랬을 뿐이다. <리먼 트릴로지>는 2008년 숨이 끊어진 미국 4위의 글로벌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 사의 탄생부터 쇠망까지를 조망한 작품으로, 이를 “흑인 노예로 유지되던 앨라배마의 ‘라인의 황금’이 결국 신성을 지닌 경제 지수가 지배하던 월스트리트의 황혼에 도달하기까지”의 바그너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구라를 치니, 거 참, 입담 한 번 대단하다.


​  자, 현대, 근대도 아니고 현대 이탈리아의 극작이라고 나처럼 쫄지 마시라. 작품의 특징은 앞에서 이야기한 바 있다. 희곡이며, 따라서 분명히 등장인물이 있고 특정 대사를 하긴 하다. 하지만 등장인물을 특정하지 않는다. 즉 누가 이런 대사를 하라는 것도 없고, 특별한 지문도 없다. 무대에 대한 묘사도 당연히 생략하고 오히려 소설과 드라마 사이의 경계가 달군 프라이 팬 위의 버터처럼 스스륵 녹아버렸다. 극작가 스테파노 마시니는, 내가 이탈리아어를 아는 것도 아니고, 원본을 본 것도 아니라, 이게 운문인지 산문인지도 구별이 가지 않는데, 그냥 마치 자유시를 쓰듯이 이야기를 툭툭 할 뿐이다. 한 스토리와 여러 명의 등장인물을 가지고 누구에게 어떤 대사를 시킬 것인지는 전적으로 (드라마터지의 사용여하를 포함해서) 연출가가 결정할 사항이다. 또 모르지, 연출가가 배우들을 다 모아놓고 스터디를 하는 수도 있으니. 그게 더 좋은 거 같기는 하지만 론코니 같이 콧대가 높아 보이는 먹물 연출가 같은 경우에 자만심에 기스 날까봐 그냥 고집대로 할 수도 있고. 정말이다. 자유시 같은 스토리 말고 아무것도 없다. 이러하니 그냥 스토리를 말해야 할밖에.

  2008년에 미국에서 터진 리먼 브라더스 사태는 이 투자은행의 부채 6,130억 달러가 문제였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충격이 크긴 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하여 조금 덜 쇼크를 먹었다. 그건 이 사태가 터지기 십년 전에 외환위기를 한 번 경험한 적이 있어서 외화보유에 각별한 신경을 쓴 기업과 정부가 상대적으로 건실한 재무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기억한다. 혹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지만 십년 전에 얻어터진 악몽이 너무 커서 뭐 이 정도 쯤이야, 하고 넘겼을지도 모르고. 그것도 아니면 당시 내가 잘 나가던 반도체 분야에서 빵을 빌어먹고 있어서 충격 자체를 느끼는 감이 진짜로 별로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원래 미국 내의 부동산, 주로 집값의 거품이 꺼지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관련해 수많은 미국 중산층 시민이 집도 절도 없이 홈리스나 텐트족으로 대책 없이 추락했으며, 이럴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대규모 정리해고까지 당해 졸지에 극빈층으로 떨어진 실제 장면이 당시 외신을 타고 TV를 통해 시청할 수도 있었다.

  스테파노 마시니는 이런 불행의 방아쇠를 당긴 리먼 브라더스의 탄생부터 추적하기 시작한다. 리먼 브라더스는 독일 바이에른의 림파르에서 출발해 뉴욕에 도착한 헤이움 레만 Heium Lehmann과 그의 두 형제 이매뉴얼과 메이어, 이렇게 삼형제가 앨라배마에서 연 작은 포목점에서 시작한다. 19세기 초중반에 외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은 미국 세관에서 관원이 부르기 쉽게 이름까지 멋대로 바꾸는 바람에 헤이움 레만은 헨리 리먼 Henry Lehman으로 되고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유대인의 형제관계도 저 야곱의 아들 열두 형제들에서 볼 수 있듯이 개과 동물과 비슷해서 장자, 둘째, 막내 이렇게 차근차근 서열이 정해져 있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큰형 헨리는 모든 것을 결정하는 머리, 둘째 이매뉴얼은 실행하는 팔, 막내 메이어는 이 둘을 중재하는 식물인 감자로 비교한다. 왜 감자가 둘을 중재하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여튼 막내 메이어가 머리 하나는 팽팽 잘 돌아가서 초기 리먼 브라더스의 이익과 사업 번창을 위해 중요한 아이디어를 많이 낸다. 그의 아이디어로 포목점은 농기구와 씨앗 같은 것도 파는 만물상이 되었다가 때마침 닥친 대화재를 기점으로 목화 중개업으로 도약한다. 게다가 메이어가 장가를 잘 들어 당시 미국 남부의 시골 부자집엔 피아노를 연주하는 딸이 하나 이상은 꼭 있던 때인데 하필이면 거의 전문 피아니스트 수준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아가씨와 결혼해 아내 덕에 목화를 대규모로 매집하는 놀라운 영업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의 모든 물산과 돈이 모이는 곳이 뉴욕의 거래소. 장남 헨리는 아깝게 황열병으로 일찍 세상을 뜨고, 둘째 이매뉴얼이 뉴욕 사무소에서 목화 판매를, 셋째 메이어가 앨라배마에서 목화 수집을 담당하게 된다. 그러다가 합중국 남부에 의하여 분리독립전쟁이 발발해 목화 중개업은 사양길에 접어든다. 부자가 망해도 삼 년은 간다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버틴 형제는 종전 후 메이어가 앨라배마 주지사를 만나 자신이 앨라배마를 다시 복구할 테니 자금을 대라고 배팅하는 데 성공해 드디어 유대인의 혈관 속에 유장하게 흐르는 돈놀이, 좋은 말로 금융업 진출의 기반을 닦는다. 이후 뉴욕에서 형제가 만나고, 리먼 브라더스 은행을 설립해 큰 규모로 번성시킨다. 위에서 말했다. 전통적 삶을 유지하는 유대인 형제 간에는 다툼도 없이. 이들은 나이를 먹고, 동생이 먼저 죽고, 형도 죽어서 가족은행은 2세 필립이 회장을 맡는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철도에 투자해 더 큰 돈을 모은 리먼 브라더스는 이후에도 유정油井, 석탄, 철강 등 가리는 것 없이 다양한 투자로 더욱 몸집을 불린다. 세월은 흐르고 1세대에 이어 2세대, 3세대까지 몽땅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드디어 리먼이란 이름을 쓰지 않는 리먼 브라더스의 회장이 자리에 몇 번 더 앉은 다음에 충격적인 리먼 브라더스의 서브모기지 사태가 벌어질 때까지.


​  재미는 있지만 공연하는 데 다섯 시간 이상이 걸리는 대작이란다. 그리하여 희곡 한 편이 본문만 무려 574쪽 분량이다. 글 자체가 자유시 같다고 했으니 글자 수로 따지면 그리 많은 분량이 아니라서 읽는데 부담이 되지는 않지만 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나 정도는 어림없고 연극이나 극작 공부를 좀 한 탄탄한 내공을 가진 사람이면 좋지 않을까 싶다. 이런 작품을 선뜻 출판한 지만지 출판사도 대단한다. 번역의 수준은 내가 모르지만, 우리말로 바꾼 번역문 또한 매끄러워 까탈 잡을 일이 없다. 하여튼 이 작품이 현대 이탈리아 희곡 가운데 처음이라니 <리먼 트릴로지>를 시작으로 앞으로 다양한 이탈리아 희곡이 번역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이탈리아 영화는 자주 본 반면 희곡/연극은 거의 없었다는 걸 감안하면 더 그렇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리시마 다케오 단편집
아리시마 다케오 지음, 류리수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일본의 유력 일간지인 아사히 신문은 지난 천 년 동안 일본에서 가장 뛰어난 문인으로 아리시마 다케오를 선정한 적이 있다. 나는 이이의 작품 가운데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낸 대산세계문학총서 91번, <어떤 여자> 만 읽었는데, 아사히 신문이 무슨 마음으로 “천 년” 역사의 일본 문학 가운데 아리시마를 최고의 문인으로 선정했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떤 여자>가 그의 대표작이라고 하지만 21세기에 읽기에는 좀 심한 뽕짝기가 풍겼기 때문이다. 아, 물론 재미있는 책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다만 “천년 역사 가운데 최고”라는 “으마으마한” 계관을 쓰기엔 좀 그렇다는 뜻. 일본 문학이 11세기에 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장편소설이라고 주장하는 <겐지 이야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천 년 역사라는 건 인정하겠지만 에이, 아리시마라니 좀 과했다 싶었다. (천년 가운데 최고의 한 명인 줄 알았는데 글을 고치는 지금, 더 검색해보니까 ‘가장 뛰어난’ 문인이 무지하게 많더라. 저널리즘이 뭐 다 그렇지.)

  《아리시마 다케오 단편집》이 새로 나온 건 알고 있었다. 근데 불과 3년 전에 읽었지만 스토리가 거의 생각나지 않는 <어떤 여자>의 지은이라는 걸 기억하고는 백수가 내 돈으로 사서 읽기엔 무리라고 생각해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해서 방금 전에 다 읽었다. 마음에 들었다. 본문만 352 페이지. 하지만 딱 세 작품이다. 순서대로 <사랑을 선언하다>가 176쪽, <태어나려는 고뇌>는 일본 축마서방筑摩書房에서 낸 《아리시마 다케오 전집》에 장편소설로 분류되었다고 했으나 앞에 실린 작품보다 분량이 약간 적어 104쪽, 마지막 <카인의 후예>는 72쪽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단편소설이라고 읽는 것과 비교하면 분량이 만만하지 않고, 그래서 단편으로 치면 좀 더 복잡한 구성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은 읽기 전에 세 작품이 차례로 1915년, 1918년, 1917년에 발표한 점을 감안하는 것이 좋다. 즉 지금부터 한 세기 전의 동아시아 지역에서 쓰인 작품이라는 것. 당시에 아무리 탈아입구를 주창했고 심지어 유럽의 강국 러시아와 한 판 맞짱을 떠서 이긴 일본이라고 하더라도 숨막히게 고루한 의식에서 그리 많이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싶다.

  물론 아리시마 다케오의 의식은 당시 일본의 일반보다 훨씬 진보적이었다. 아리시마는 도쿄에서 대장성(지금의 재무성)의 관료 생활을 한 아버지, 요코하마 영화학교를 졸업한 신여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아버지가 요코하마 세관장으로 직을 옮기자 그곳에서 소년 시절에 미국인 목사 가정에서 영어를 사용하며 지내기도 했다. 귀족 자제들이 다니던 학교에선 늘 우등을 했고, 외가와 연이 있는 삿포로 농학교, 현재의 홋카이도 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기독교 세례, 군 복무를 마치고 도미, 해버포드와 하버드에서도 공부를 했으니 20세기 초반에서는 일본이라고 해도 대단한 교육을 받은 셈이다.

  아리시마는 귀국해서 소설을 쓰는 한편 문학활동에도 열심이었지만 (제국시절이니까)신민들이 놀라 자빠질 정도로 정말 열심이었던 것은 연애사였다. 그것도 남편이 있는 15세 연상의 여기자 하타노 아키코. 앞 뒤 다 제하고 결론만 말하자면 이들은 가나자와 시에 있는 별장으로 떠나 마지막 밤의 비극적이지만 치명적으로 환상적인 몸의 의식을 치룬 후, 두 명 다 대들보에 목매달고 만다. 그리고 먼 훗날 의사 출신 소설가 와타나베 준이치는 이 사건을 기념해 유부남과 유부녀가 마지막 날 정사 도중 시안화칼륨, 즉 청산가리를 탄 포도주를 입에 머금고 상대의 입으로 전해주어 완벽하게 결합한 상태에서 자살로 끝나는 소설 <실낙원>을 쓰게 한다. (이 책이 일본식으로 되게 야~하고 재미나지만 지금은 절판이다. 어머나, 세상에. 도서관엔 있다, 있어!) 당시 일제에 의하여 강점당하고 있던 조선에서는 윤심덕이 관부연락선 위에서 연인과 함께 투신한 사건이 이와 관련이 있다고들 하는 모양인데 그것에 대해서는 관심없다.


​  먼저 읽은 <어떤 여자>, 그리고 아리시마의 연애담을 미루어 보면, 이이의 초기작이며 원제는 그냥 <선언>인 <사랑을 선언하다>가 가장 아리시마답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나처럼 꼴랑 한 작품 읽고 거기에 작가의 바이오 정도만 훑은 다음 작풍作風이라고 책임감 없이 말할 수 있는 아마추어라면. <선언>은 1912년 9월에서 시작해 1914년 2월까지 A와 B사이에 오고 간 서간들을 모은 서간체 소설이다. 당시 일본의 여성 이름은 주로 아들 자子자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고, 일본말로 ‘코’라고 발음해 작품에 Y코 라는 여성이 자주 거론된다. 그리고 작품 말미에 Y코 양의 수기가 실려 있다. 그렇게 서른일곱 통의 편지와 Y코 양의 수기로 된 소설. 왜 우리말 제목을 사랑을 “선언”하다, 라고 했을까? 누가 누구한테 누구를 사랑한다고 선언했을까? 이것 일러드리지 못한다. 결론이라서. 다만 작품을 쓰고 벌써 한 세기 이상이 지났으니 조금 까진 독자들은 초반부터 어떤 결말이 준비되어 있는지 뻔하게 눈치챌 수 있어서 아쉬웠다. 물론 당시의 윤리를 가진 일본(또는 식민지 조선) 독자들이라면 꽤나 충격적인 결말이라고 열광할 수 있었겠지만, 더 이상은 아니라는 게, 거 참, 시간이 무섭기도 하고 뭐 그렇다.

  A는 신체 건강하고 매사 긍정적인 현재적 인물. B는 없는 집안에 고학으로 대학을 다녔는데 폐결핵에 걸려 당분간 시오바라라는 곳에 가서 학업을 중단하고 요양을 하는 중이다. A가 먼저 절친 가운데서도 베프인 B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작품을 시작한다. 두 명 다 생물학을 전공하는 과학도다. 혈기 왕성하고 욕망 충천한 청춘들이라 편지는 몇 번 지날 필요 없이 당연하게 연애 문제로 접어들고, A는 여덟 살 때부터 옆집에 사는 신혼부부의 새댁에게 상당한 정도로 집착하면서 여성을 향한 갈망이 시작되었으며, 열두 살 때는 누이동생이 자기 친구와 친구의 언니를 집에 데려온 적이 있었는데 그만 누이 친구 언니한테 꽂힌 적이 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지금은 얼마 전에 어머니를 모시고 홋카이도 노보리베츠 온천에 가서 완고한 할아버지와 함께 온 고바야시 성姓을 가진 작은 사슴 같은 우아하고 연약해 보이는 소녀한테 홀랑 빠졌다고 한다. 도쿄의 고이시카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 사실 지금은 학교에 나가지도 않고 여학생들 등하교 시간에 맞춰 여학교(들) 주변을 어슬렁대며 쉼 없이 눈알을 굴리고 있었단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 나가기 시작한 교회에서 문제의 여학생을 발견했다고 하니, B는 자신의 기독교 교적이 있는 교회다, 내가 도쿄에 가겠으니 여비를 보내라(B는 가난한 고학생)는 소식과 함께 정말로 도쿄로 와서, 무려 여학생을 A에게 소개를 해주니 이이가 바로 여주인공 Y코 양이다.

  문학작품이나 음악, 연극 같은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연애는 대개 번갯불에 콩을 구워 먹는 속도라서 이로부터 일년 이내에 A는 Y코 양과 약혼을 하게 된다. 때는 20세기 초. 아무리 약혼했다고 해도 이들은 서로의 맨몸을 본 상태가 아니다. 이 정도가 지난 후 A의 고향 센다이에선 잘 나가는 사업체를 운영하던 A의 아버지가 중환에 걸리고 결국 세상을 뜨는데, 알고 보니 사업체도 이미 거덜이 났고, 비밀리에 제분소 하나만 예전 하인의 명의로 남아 있어서, A는 학업도 때려치우고 센다이에 내려와 제분소 운영과 어머니와 누이동생 N코 양의 부양에 힘을 쏟아야 했다. 반면에 학업에 뜻이 있는 B는 병세가 호전되어 요양 중에 쓴 유전학 관련 논문 여섯 편을 가지고 도쿄의 학교로 돌아가, A와 목사의 뜻을 따라 Y코 양의 집, 코바야시 가에서 머물기로 한다. 이후에도 길고 긴 편지 왕래가 계속되는데, 여기까지만 이야기해도 어떤 결말이 나올지 다 눈치 채셨지?


​  <태어나려는 고뇌>는 일본판 <데미안>이라고나 할까? 새는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기 위해 별 지랄을 다 한다. 그럼 자기만의 방과 연수 5백 파운드가 없지만, 자질이 무척이나 훌륭한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질에 대하여 의심을 가지고 있으며, 제대로 된 공부를 하지/받지 못한 예술가 지망생이 알 껍데기를 까고 예술가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용기가 있어야지 뭐. 세상에 뛰어나고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어도 평생의 의무, 즉 먹고 살고 부양하기 위한 의무 때문에 자질을 펴보지 못하고 사라지는 무수한 사람들의 대표 선수 한 명을 소개하는 작품이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세상 사는데 빵이 먼저 아냐? 예술이 먼저인 사람은 빵을 벌어다줄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나거나, 더 쉬운 방법, 부자 할아버지나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거나 해라. 괜히 천분의 일의 확률만 가지고 예술합네, 하면서 평생 궁상떨지 말고. 얼마 살지 않았지만 엄혹한 세상엔 말이지, 무엇보다, 빵이 먼저더라.

  마지막 <카인의 후예>는 다분히 자연주의적이다. “독사는 칵 죽여버려야 해.” 하는 우리나라의 <카인의 후예>하고는 다르다. <태어나려는 고뇌>에서와 마찬가지로 홋카이도의 무자비한 눈 폭풍을 배경으로 못 배우고 가난하지만 완력 하나는 죽여주는 거친 사내의 거친 삶이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어 냈다.


​  아리시마 다케오 속에는, 작품을 쓰고 벌써 백 년 이상이 지난 상태에서, 아직도 찬란한 것이 문장이다. 문장과 문장을 엮어 한 단락을 만들어 내는데, 이 단락 또는 문단이야말로 작가들이 꼬불쳐둘 수 없는 지문과 같은 것. 이 섬세함을 어찌할꼬. 물론 읽는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말이지.


​.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oolcat329 2023-04-01 07: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처음 듣는 작가인데 이렇게 좋은 집안에 앞날이 창창한 작가가 사랑 때문에 세상을 뜨다니 저로서는 참 이해가 안가네요. 😓

Falstaff 2023-04-01 08:47   좋아요 2 | URL
에구.... 술몸살이 장하게 나서 한 보름 끙끙 앓다가 이제 좀 회복됐나 싶어 한 10km 좀 넘게 뛰고 왔더니 삭신이 ㅋㅋㅋ 발에도 물집이 큼지막하게 잡히고 그렇네요. (흠. 운동화 바꿀 때가 된 거야!)
뭐 연애지상주의지요. 그럴 수 있고 실제로 그러긴 했는데 좋아 보이지는 않죠? 저도 그렇더라고요.

stella.K 2023-04-01 11: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황순원이 이분의 영향을 받았을까요? 카인의 후예는 황순원 표인 줄 알았는디...
이 작가 읽어보고 싶네요.
이제 지만지 책 비싸다고 해야 다른 책값이 거의 비등하게 올랐으니 더러는 사서 볼 수도 있겠다 싶네요. 지만지가 이대로만 있어준다면. ㅋ
근데 문트님 건강하시네요.
10킬로를 뛰시다니. 저는 지난 주 토욜날 모임에 갔다왔는데 4천 몇보 걸었다고 나오더군요. 그날이 가장 많이 걸었던 날이었을 겁니다. 어제도 나갔다 들어왔더니 다리가...😆

Falstaff 2023-04-01 11:38   좋아요 3 | URL
황선생이 당연히 아리시마의 <카인의 후예>를 읽었을 겁니다. 제목을 지을 때, 일본과 교류가 완전히 없었을 당시라서 아리시마의 작품을 염두에 두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황선생과 아리시마의 작풍도 완전히 다르고 작풍도 거의 반대편에 있잖아요.
ㅎㅎㅎ 은퇴 전까지는 몸이 엉망이었습니다. 완전 D 형이었습지요. 이젠 좀 괜찮고요, 못 입고 걸어놓기만 한 옷들이 전부 맞아서 길 가다가 마넌짜리 주운 기분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