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영원의 시계방 초월 2
김희선 지음 / 허블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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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안 좋아하는 독자도 이 책 읽으면 빠져버릴 걸? 하여튼 나는 스트루가츠키 형제들보다 더 재미나고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이게 진짜 김희선이지.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진짜 김희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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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04-20 1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론 옥의 티는 있지. 없으면 그게 사람이냐!

잠자냥 2023-04-20 17: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문트가 SF를! 띠용?! ㅋㅋㅋㅋ

Falstaff 2023-04-20 18:10   좋아요 1 | URL
살다보면 별 일이 다 생긴다니까요! ㅋㅋㅋ

자목련 2023-04-21 0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 님이 별5를 주신 한국문학이라니, 궁금하네요!

Falstaff 2023-04-21 15:59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저도 한국문학 좋아해요.
요즘 우리 책들이 다 비슷비슷, 우중충해서 잘 안 읽는 것뿐입니다. ^^
 
말 한 마디 때문에 아시아 문학선 12
류전윈 지음, 김태성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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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전윈의 <말 한 마디 때문에>를 읽은 것은, 지난 달에 이이가 쓰고 모우선이 각색한 희곡 <만 마디를 대신하는 말 한 마디> 읽고나서 쓴 독후감에서 이야기했듯이, 류전윈의 원작을 읽어볼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맞게도 동네 도서관 개가실에 <만 마디….>의 전편 격인 <말 한 마디…>가 있어서 거의 반사적으로 집어 들었다.

  류전윈은 1958년생 개띠 작가로, 허난성 신샹시 옌진현 출신이다. 작가가 열다섯 살 때인 1973년에 처음으로 고향 옌진현을 떠나 군에 입대해 복무를 했다는데, 당시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열다섯 살짜리를 군대에서 받아주었던 모양이다. “인민”의 공화국에서 대가리에 쇠똥도 벗겨지지 않은 열다섯 살 아이, 우리나라 학제에 의하면 중학교 3학년생에게 총을 잡게 했다니, 대단하다, 대단해. 그런데 그 나라에선 군대에서 교육도 시키는 모양인지 1978년엔 다른 곳도 아니고 북경대학, 즉 베이징대학에 입학한다. 류전윈의 청소년기 시절 중국은, 인구는 많은 반면에 대학의 수도, 학교의 입학 정원도 극히 적어 학교의 등급은 차치하고 대학에 입학한다는 거 하나만 가지고도 상당히 비싼 총명탕을 몇 사발이나 들이켰다는 증거였다. 입학시험에 합격하면 옌진현 정도의 촌에서는 큼지막한 현수막 깨나 걸렸을 터인데 하물며 다른 곳도 아니고 베이징 대학이라니, 류전윈이 공부도 엄청 잘했던가 보다. 그럼 생김새는 좀 모자라야 할 텐데 그것도 아니다. 생기기도 잘 생겼지, 소설을 써도 쓰는 족족 베스트셀러에 문학상을 수집하는 게 취미일 정도라니, 좀 재수없지?

  왜 작가가 허난성 신샹시 옌진현 출신이라고 소상하게 밝혔는가 하면, 이 책 <말 한 마디 때문에>의 부제가 “옌진을 떠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지막 챕터를 제외하고 작품의 무대는 옌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양쟈좡楊家莊, 즉 양씨 성 집성촌에 사는 두부장수 나이든 양, 라오양老楊에게 아들 셋이 있었는데, 첫째가 장자요, 둘째가 거부요, 셋째가 그이인데 화수분이라고 합죠,는 아니고, 첫째가 사는 데 악착 같은 바이예(百業), 둘째가 작품의 주인공으로 온갖 굴곡을 겪을 팔자인 바이순(百順), 막내가 양아치까지는 아니더도 적극적으로 한 평생 놀고 먹고 싶은 소원을 가진 바이리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옌진 현이라는 행정단위 이곳저곳에 산포한 숱한 X좌장, 씨족 마을의 라오X가 등장해서 독자의 혼을 쏙 빼놓는다. 이 책 재미 있어서, 당신도 한 번 읽어보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힌트를 드리자면 무지하게 많은 엑스트라가 등장하는 장편소설이라 등장인물을 일일이 다 기억할 필요가 없으니 나처럼 라오리, 라오서, 라오쥔, 라오됭, 라오주, 기타등등의 라오들을 전부 외우려고 쓸데없이 뇌 용량을 소모하지 않으셔도 좋다는 점. 뒤쪽으로 가면 작가가 알아서 서너 번씩이나 친절하게 중요한 인물들을 시간/세월 순서대로 정리해주니까. 이렇게 등장하는 라오들은 전부 무슨 장사를 하거나 특정한 기술로 밥을 벌어먹는 사람들이다. 라오양도 양씨 집성촌 양쟈좡에 사는 두부 만들어 파는 두부장사요, 뤄쟈좡의 랴오뤄 뤄창리는 식초를 만들어 팔면서 누가 죽었다 하면 상가집에 달려가 장사 지내는 일을 진두지휘하는 함상 일 전문가이며, 쩡쟈좡의 무릎이 좋지 않은 라오쩡은 50리 안쪽에서 경사나 상사가 있을 때 돼지를 잡아주는 돼지 백정이고, 라오쟝은 옌진 시내에서 큰 염색공방을 하며, 라오루도 시내 근교 대나무밭에서 죽업사竹業社를 하면서 주인공 바이순과 인연을 맺는다. 그러니까 가난한 제조/상인이거나 돈을 좀 벌어 그럴싸한 업장을 가지게 된 제조/상인 출신의 공방 사장 정도다.


​  현대 중국 문인들의 소설을 읽어보면, 생각나는 대로 지금 하고 싶은 얘기와 연결이 되는 인물이라면 모옌을 필두로 다 고만고만한 연대의 쑤퉁, 류전윈, 옌롄커, 위화 등의 경우에, 우리나라 독자들이 같은 동아시아 사람임에도 중국인들은 참 독특하다고 느낄 정도의 문화적 이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 작품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에 너무 많은 인구가 살아 어린 시절부터 그만큼 대단한 경쟁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극성을 떨어 그런지, 어디서 들은 바와 같이 원래는 그렇지 않았는데 작가들의 유소년기에 문화혁명이라는 여차하면 언제 목숨이 날아갈지 모르는 격변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극도로 이기적 유전자가 발현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하여튼 이 작가들의 작품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극단적으로 이기적이거나, 같은 의미로, 대단히 솔직하다. 솔직해서 그럴 수도 있다. 우리나라나 일본사람들은 감정을 속으로 삭이는 대신 그들은 생존을 위하여 (현대 중국인의 특색인) 큰 소리로 항의하거나, 정말로 실행하면서 타인의 시선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보인다. (그럴 때마다 좀 징글징글하기도 하다.)

  양바이순이 제일 좋아하는 건 상갓집에서 사회를 보는 “함상喊喪” 전문가 뤄창리가 큰 소리로 노래하듯이 장례를 집행하는 걸 구경하는 일이다. 중국의 장례에 관해서는 전혀 모르지만 장례 전문가 “함상”쟁이가 있어서 손님 등장부터 상주와 인사, 문상, 문상 후 음식 대접 같은 일련의 절차를 크게 외쳐 장례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 바이순이 학질에 걸려 끙끙 앓고 있을 때, 집에 있던 돼지가 탈출을 감행해 열이 펄펄 끓는 바이순만 집에 남고 남은 가족 모두가 돼지를 찾으러 갔단다. 이때 바이순의 한 살 위 친구 리잔치가 들러서 30리, 12km 거리에 있는 라오왕이 죽어 아마 뤄창리가 함상 노릇을 할 터인데 구경가지 않겠느냐고 유혹을 했고, 악마의 목소리는 언제나 황홀한 법이라 순식간에 열이 내리며 진땀도 멈춘 것 같아 단숨에 30리를 뛰어간 적이 있다. 그러나 왕씨 상가엔 엉뚱한 함상쟁이가 한참이나 모자란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어 정작 뤄창리 구경도 못하고 그냥 돌아오는 동안 집에서 키우던 양 한 마리가 울을 넘어 도망가고 말았다. 이에 열을 잔뜩 받은 아버지 라오양은 지게 작대기로 양바이순의 대갈통을 후려 갈기며 당장 양을 찾아오라고, 찾지 못하면 들어오지도 말라고 호통을 치고 학질 걸린 아들을 한 밤에 내쫓고 말았다. 이때가 20세기 초 국민당 치하였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밤이면 들판에 늑대가 배회했다고 하니 깡촌은 정말 깡촌이었겠다. 어디 가서 양을 찾나. 그냥 마을 어구의 타작마당 헛집에서 잠을 청했다. 딱 이 시점에 모종의 일로 억하심정이 생긴 이발사 라오페이가 가슴에 날이 시퍼런 칼을 품고 아내와 처남을 쳐죽이려 밤길을 나섰다가 길가에 쭈그려 앉은 바이순을 밟았고, 이것도 인연이라고 밥도 먹지 못하고 벌벌 떨고 있는 바이순을 데려가 이미 문을 닫은 밥집의 현관문을 쿵쿵 두르려 주인을 깨우더니 양고기 볶음 국수를 한 그릇 사주어 바이순이 맛나게 먹었다는 거다. 그게 맛이 있어서 맛이 있었겠나. 옛사람 말씀대로 기갈starvation이 감식이었겠지. 배고픔과 갈증飢渴이 단 음식甘食, 이게 맞는 말은 물론이고 진리다, 진리. 그런데 양바이순이 이때는 몰랐다. 라오페이가 불쌍한 꼴을 당하고 있던 소년 바이순을 데리고 가서 한밤에 문을 닫은 식당을 두드려 주인을 깨우고 기어이 볶음 국수를 한 그릇 먹게 하면서 자신도 한숨 돌려 여유를 찾아 서서히 증오가 풀려 아내와 처남 죽일 생각을 접게 했으니, 하룻밤 추위에 떨더라도 젊은 학질 환자 바이순의 숨은 넘어가지 않았을 터이라, 정작 사람 목숨 살려준 건 라오페이가 아니고 양바이순 자신이었다는 걸. 그것도 칼 맞아 죽을 라오페이의 아내와 처남 두 목숨과 더불어 재판에 넘겨져 사형을 당할 라오페이의 목숨까지 말이지. 그걸 그럼 나중엔 알게 되느냐고? 아무렴. 양바이순도 몇 년 후에 거의 비슷한 짓을 하게 된다.

  그렇게 순한 바이순, 백번이나 순한 바이순百順이 무슨 수로? 당신이 바이순이라면 학질에 걸린 아들을, 아무리 미운 둘째 아들일지언정(나도 둘째 아들이다, 왜!) 겨울 한밤에 내쫓는 아버지한테 기쁜 마음으로 두부 만들어 파는 법을 배우고 싶겠어? 그래서 인연을 맺은 김에 라오페이를 따라가 이발 기술을 배웠으면 하는 의견을 피력하게 되고, 라오페이는 도제관계를 맺기 위하여는 너무 깊은 정이 들었던지라 자기 대신에, 우리나라만큼 백정 일을 천시하지 않는 중국이라서 그랬겠지만, 쩡쟈좡에서 돼지 잡는 라오쩡의 도제로 보낸다. 물론 처음부터 돼지를 잡지는 못하고 닭과 개를 잡는 일부터 천천히 진행하다가 아픈 무릎이 도지는 바람에 생각보다 빨리 실전, 즉 돼지도 잡게 되면서 칼부림 한 번 제대로 할 줄 아는 검사劍士가 되고, 이때 몇 년 전 라오페이처럼 한밤에 칼을 품고 길을 나섰다가 역시 동네 어귀 타작마당의 움집 곁을 지나며 한겨울 밤에 홑옷을 입은 여자 아이를 밟아 볶음국수를 사 먹이는 일이 생겨서 그날 그 일을 떠올리니, 인생은 역시 수레바퀴야.

  바이순의 팔자 한 번 기구하고 기구하다.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직장생활을 길게 이어가지 못하는 바이순은 심지어 이탈리아에서 온 신부의 도제가 되기도 하는데 결국엔 그리스도교에 감화 감동을 받지 못하고 이별하지만, 하여간 신부의 도제가 된 기념으로 이름을 양바이순에서 양모세가 되고, 양모세로 한 일 년을 산 다음엔 중국식 만두인 만떠우 장사를 하는 우샹샹이란 과부의 데릴남편으로 들어가면서 양모세가 우모세로 성까지 바꾸는 일까지 생긴다. 이 작품의 부제가 “옌진을 떠나는 이야기”. 이건 당연히 우리의 주인공 양바이순이 어쩔 수 없이, 예전 스승으로 <논어>를 가르쳐준 라오왕을 예로 삼아 옌진을 떠나 서쪽으로, 서쪽으로 길을 나서게 되는 참으로 기구한 팔자를 그리고 있다.

  재미있다. 그래서 이야기를 더 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스포일러가 될 거 같아 이쯤에서 말아야겠다. 읽는 도중에 모우선이 각색한 희곡을 이 책 읽은 다음에 봤으면 더욱 좋았을 거란 생각까지 들었다. 희곡 <만 마디를 대신하는 말 한 마디>는 이 책과 후속편인 <만 마디…> 두 권의 스토리를 고스란히 담았다. 후속편은 몇 달 있다가, 희곡의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을 때쯤 해서 마저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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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4-20 1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류전윈 생김은 딱 제 스탈인데요?
근데 재수없는 사람 맞는 것 같습니다. ㅎㅎ
그렇죠. 정말 삶은 징글징글한 것 같습니다. ㅠ
저도 언젠가 읽어보겠습니다.

이 시리즈 괜찮은가 봅니다.

Falstaff 2023-04-20 16:38   좋아요 1 | URL
ㅎㅎㅎ 류전윈이 스타일입니까. ㅋㅋㅋ
2부작이라던데, 이 책에선 옌진을 뜨고, 다음 책에선 돌아오는 모양이더군요.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
유진 오닐 지음, 이형식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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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이름 하나만 딱 보고 고르는 책 가운데 유진 오닐이 있다. 오닐의 책은 하여간 눈에 보이는 족족 읽어 치운다. 물론 그렇다고 오닐을 일부러 검색해서 안 읽어본 오닐 어디 숨었나, 뒤지는 수준은 아니고 온라인이나 도서관이나, 현금 주고 사지는 않는 동네 책방에서나 눈에 띄기만 하면 읽는다. 이 책도 우연히 눈에 띄었고, 곧바로 도서신청을 해서 빌려 읽었다.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Mourning Becomes Electra》라니 당연히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 삼부작》을 현대식으로 리메이크 한 것이겠거니 생각했다. 짐작이 맞았다. 아이스퀼로스의 삼부작에는 오레스테스를 주축으로 해 아가멤논의 도착해 그날로 목욕하다가 아내에게 살해당하는 <아가멤논>, 오레스테스가 친모 클뤼타임네스트라와 친모의 정부 아이기스토스를 쪼개 죽이는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그리고 오레스테스가 운명의 여신들에게 쫓기다가 아테나의 설득으로 복수의 여신이 복수를 포기하는 <자비로운 여신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아가멤논 가문(아트레우스 가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인류를 넘어서 신화 시대까지 아울러 가장 심한 콩가루 집안으로 세상의 온갖 명예와 부귀와 엉망진창의 가족관계와 죽음과 복수 같은 구토유발 요인을 소중하게 간직한 대단한 집안이다. 그리하여 예로부터 숱하게 많은 작가, 화가, 극작가, 시인 나부랭이들이 아가멤논 가문의 이야기를 차용하여 작품을 만들거나 작품 속에 인용해왔다. 어떤 것들이 있나, 한 번 정리해보려 했으나 다른 건 모르겠는데 내가 미술 쪽에 많이 약해서 양심상 그러면 안 되지 싶다.

  오레스테스 중심의 아이스퀼로스 삼부작과 달리 유진 오닐의 삼부작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는 무대를 트로이 전쟁에서 확 끌어올려 1865년 미국의 남부 분리독립 전쟁이 막 끝난 시점이며, 장소는 그랜트 장군의 직속부대에서 활약한 육군 준장 에즈마 매넌 장군의 저택이다. 아가멤논 당대와 아들 오레스테스네 집구석의 엽기만발한 칼부림도 막장이지만 아가멤논 윗대의 야단법석이 훨씬 더 막강하다. 그러나 유진 오닐은 현명하게도, 마치 아이스퀼로스처럼, 아가멤논의 윗대에 관해서는 극과 관련이 있는 한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춘다. 신화상에선 아이기스토스, 드라마에선 애덤 브랜트.

  전직 판사이자 시장, 현직 육군 준장 에즈마 매넌의 아버지 에이브 매넌 씨는 캐나다 출신의 간호사 마리 브란톰에게 홀딱 빠져 있었다. 그런데 정작 마리와의 연애에 성공한 건 에이브의 동생 데이비드 매넌이었고,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애덤 브랜트. 당시 전세계에서 가장 교조적으로 엄숙한 기독교가 판치던 곳이 미국 동부였던 바, 장자 에이브와 매넌 가문은 (당시엔 하녀 급이었던)한갓 간호사 따위와 연애를 해 아이까지 퍼질러 낳은 데이비드를 파문해버렸고, 그의 상속분은 거의 헐값으로 몰수해버렸다. 세월이 흘러 이제 애덤 브랜트는 세상 멋진 사내가 되었으며, 에이브의 아들, 그러니까 데이비드의 조카이자 애덤의 사촌형이 운영하는 선박회사 소속 플라잉 트레이즈 호의 선장으로 근무하면서 사촌형수인 크리스틴을 유혹하는 데 성공해 틈틈이 뉴욕의 호텔에서 한 시절 당할 여인이 없을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크리스틴과 뼈와 살이 타는 밤을 만들고는 했다. 아이스퀼로스의 극작품에서 클뤼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처럼.

  애덤 브랜트는 다분히 캐나다 간호사 출신 천한 계급의 어머니를 욕보인 매넌 가문에 복수하기 위해 사촌 형수를 특정해 유혹한 것으로 진정으로 원하던 복수의 끝은 형수를 매개로 사촌형과 결투 끝에 그의 숨을 끊어 놓는 것이었다. 그러나 벌써 세상은 19세기의 미국. 결투라니, 어림도 없다. 대신 이들의 딸인 라비니아한테도 껄떡거리기 시작하는데, 라비니아야말로 저 신화시대의 엘렉트라가 환생한 인물로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똘똘 뭉쳐 있어 애덤의 유혹은 말 그대로 이도 들어가지 않는다. 뭐 이런 스토리다. 크리스틴은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진심으로 남편(이 될) 에즈마 메넌을 사랑했지만, 결혼과 동시에 지긋지긋한 시댁식구들과 시댁 가문의 엄격한 격식, 냉정한 몸가짐 등등에 넌덜이가 나, 시媤 자가 들어가는 모든 것, 시금치 뿐만이 아니라, 시모노세키, 시오노 나나미, 시오도어 루즈벨트도 싫어했는데, 어쨌거나 그러면서도 딸 라비니아와 아들 오린을 생산했다. 그러나 그때 뿐, 이젠 남편 에즈마의 살갗이 닿는 것도 징글징글하다. 대신 빈자리를 애덤 브랜트로 메우고 있는 건데, 아이고, 그냥 이혼을 해버리지, 그냥 참고 살다보니 신화적인 비극이 19세기 미국땅에서도 벌어지고 마는 걸 크리스틴은 몰랐었지.

  작품은 전쟁이 끝나고 메넌 장군이 집으로 돌아오는 날 시작한다. 라비니아는 엄마가 브랜트와 뉴욕에서 만나 키스하고 방으로 들어가고, 그곳에서 새나오는 신음소리까지 이미 들어버린 상태. 엄마도 현장을 들켜버렸으니 라비니아한테 이실직고해야 했고, 아빠에 대한 라비니아의 비정상적인 애정을 알고 있는 크리스틴은 저것이 아빠한테 다 일러바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그리스 신화에서는 욕탕에서 따듯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아가멤논의 얼굴 위에 어두운 천을 씌운 다음 클뤼타임네스트라가 직접 도끼로 머리통을 쪼개 죽이는 반면, 이미 과학의 시대에 접어든 미국에서는 정부 애덤 브랜트가 준비해준 화학의 힘을 이용해 심장병 약이라고 구라를 치고는 독약을 장군의 목구멍으로 넘겨버린다. 신음을 하는 장군, 문 밖에서 엿듣던 라비니아가 문을 왈칵 열어젖히고 방으로 들어오자 아빠는 두번째 손가락으로 엄마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한다.

  “저년이 한 짓이야! 약 때문이 아니야!”

  어떠셔? 정말 《오레스테이아 삼부작》하고 비슷하다.


​  그럼 신화에서 오레스테스 역을 맡은 이 콩가루 집안의 아들 오린은? 가문도 좀 문제다. 전쟁이 터져 시장major를 하던 아버지는 장군 계급장을 달고 전장으로 떠났는데 아들 오린은 정말로 참전하기 싫었다. 그러나 엄격한 누나 라비니아는 엄마 크리스틴이 아들 오린을 자기보다 천배는 더 사랑하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가문의 명예와 영광의 지속을 위하여 입대할 것을 강권해 소위 계급장을 달고 참전을 하기는 한다. 전쟁터에서 누구보다 겁이 났지만 여차하면 자신이 지금 겁내고 있다는 것이 뽀록 날까봐, 그래서 가문의 명예에 스크래치가 갈까봐 오히려 더욱 위험한 작전이 벌어지면 선봉에 서겠다고 자원하고는 했다. 그러다가 도가 심해지자 거의 미치는 수준에 임박해 아무도 돌진하려 하지 않는 상황에서 벌떡 일어나 악을 쓰며 돌격 앞으로, 약진을 전개하고, 그걸 바라보던 동료 비슷한 미친 놈들도 함께 으아아악, 하는 비명과 함께 용맹하게 돌격을 감행해 큰 전과를 올리기도 했건만, 행운이 언제나 있는 건 아니라서 머리통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전쟁이 끝났지만 아직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가, 아버지가 지병인 심장병으로 죽었다는 전갈을 받은 후에 머리에 흰 붕대를 칭칭 감은 상태로 집에 돌아온다. 그러나 정작 오레스테스로 읽고 오린으로 발음하는 이 아들은 머리의 부상으로 인한 후유증이 아니라 전쟁 중에 숱하게 겪은 비참한 상황의 기억에 의한 고통, 즉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끔찍하게 시달리고 있다. 그것이 간혹 공격성향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비정상적 사고로 나타나기도 해 오린만 등장하면 얘가 무슨 짓을 할지 독자로 하여금 불안하게 만든다.

  유진 오닐의 극작품을 보면 가족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참 할 말이 많다. 이 작품에서도 아버지와 라비니아, 어머니와 오린, 나중엔 라비니아와 오린 사이의 애정이 예사 가족들 사이에서 따사로운 눈길로 기쁘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랑이 아니라 딸이 어머니를, 아들이 아버지를, 동생이 누나의 애인을, 누나가 동생의 애인을 질투할 정도의 사랑이 흔하게 모습을 드러내 당혹스럽다. 뭐 이 작품만 그런 게 아니긴 하다. <느릅나무 아래의 욕망>에서도 그렇고 <밤으로의 긴 여로>에서도 조금 그런 기미가 보인다. 내 생각엔 오닐의 정체성에 문제가 있지 않고, 오닐이 젊은 시절, 청소년 시절부터 그리스 신화와 그리스 극에 깊은 관심을 두어 기본적으로 어딘가에 그리스의 (특히) 비극 요소를 심어두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고전을 읽어두면 이런 것이 편하다. 후에 고전을 인용하거나 변용하거나 리메이크한 작품을 읽을 때 전혀 무리없이 즐겁게 읽을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유진 오닐이니까 이런 대작을 뉴잉글랜드 지역으로 바꾸어 공연시간이 무려 다섯 시간이 넘는 작품으로 새롭게 만드는 것이지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닐 듯하다.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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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4-18 10: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유진 오닐은 작가 이름만 보고 무조건 읽습니다. 유진 오닐은 자기 가족사를 작품속에 변용해서 투영해 넣는 솜씨가 일품인 거 같아요. 결국 대부분이 본인과 본인 가족의 이야기다 보니 울림도 좀 남다른 거 같고... 하여간 기막힌 작가입니다.
그나저나 최근에 지만지에서 유진 오닐 단막극선이 출간되었는데, 역시 가격이 사악해서 도서관에 신청했는데 신청이 안 되더라고요....?
관리자에게 문의하라고만 뜨고....... -_-; 쳇 제 돈 주고 사봐야 할 거 같습니다.

꼬마요정 2023-04-18 12:34   좋아요 2 | URL
진짜 가격 너무 사악해요 페이지 수도 많지도 않구만.. ㅜㅜ 전 이 가격이길래 600 쪽은 넘는 줄 알았네요ㅠㅠ

Falstaff 2023-04-18 13:13   좋아요 1 | URL
오닐 작품은 읽기 전에 ˝이번엔 어떤 가족이 등장하나?˝ 호기심이 팍팍 듭니다.
ㅎㅎㅎ 울 동네 도서관은 착해서 사달라면 거절하는 일이 거의 없어요. 출간 5년 안에만 신청하면요.
요정님. 도서관 가세요. 진짜 좋아요.

꼬마요정 2023-04-18 1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밌겠어요!! 아트레우스 가문은 모든 막장의 원형 같습니다. 옛날 사람들 천재인 듯!! 담아갑니다^^

Falstaff 2023-04-18 13:14   좋아요 1 | URL
옙. 당시 그리스 사람들 머리 속에는 뭐가 들었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

stella.K 2023-04-18 1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다섯 시간요? 엄청나네요.
실제로 공연되기는 어렵겠네요. 그냥 소설로 쓰지...
몇년 전 도 선생님 작품인가? 우리나라에서 공연됐다고 하던데
그게 6시간이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도 장시간 공연을 즐길 줄 아는 문화가 됐구나 싶기도 하지만
그때 이후로 또 했다는 소식은 못 들은 것 같습니다.
리뷰 사악하고 재밌게 쓰셨네요. ㅎㅎ

Falstaff 2023-04-18 15:49   좋아요 1 | URL
몇주 전에 독후감 쓴 <리먼 트릴로지>도 다섯 시간을 훌쩍 넘긴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에서 우리말로 공연도 했고요.
도저히 연극으로는 공연하지 못할 것 같은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형제들> 저는 관람하지 않았는데요, 누가 조시마 장로 역을 해서 대사를 할 지는 무척 궁금했습니다. 정동환이 했더군요. 이순재의 말에 의하면 발음이 제일 좋아서라던데, 수긍이 가더랍니다.
별 거 아닌데 독후감 재미나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ㅎㅎㅎ

coolcat329 2023-04-19 0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전을 읽으셔서 이런 작품도 즐기실 수 있으시니 부럽습니다.
희곡 좋아하시는 골드문트님은 지만지 드라마 정말 너무 좋으실 거 같아요.
도서관에 주문해서 보면 되니 비싸도 상관없구요 ㅎㅎ

Falstaff 2023-04-19 16:21   좋아요 1 | URL
에구, 부럽긴요. 대신 전 백수잖아요. 쿨캣 님도 시간 많은 시절이 올 겁니다. 될 수 있으면 늦게 오기 바라겠습니다. ㅎㅎㅎ
지만지 드라마 좋아요. 비싸서 좋아요. ㅋㅋㅋ 다른 사람들 비싸서 망설일 때 많이 읽고 허풍떠는 재미도 있답니다. 너무 솔직하면 안 되는데 말입니다. ㅋㅋㅋㅋ
 
이보 안드리치 단편집
이보 안드리치 지음, 김지향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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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보 안드리치 팬을 자임하는 내 눈에 《이보 안드리치 단편집》이 띄었으니 어찌 안 읽고 넘어갈 수 있나. 그리하여 득달같이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하고 꼬박 한 달을 기다린 끝에 기쁨을 억누르며 드디어 첫 장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이런. 이거, 읽은 책이다. 물론 《이보 안드리치 단편집》이라는 제목은 아니다. 출판사 ‘연극과인간’에서 2001년에 초판을 찍은 《아스카와 늑대》라는 책이었다. 역자 김지향金志香의 진짜 도장이 찍힌 책이다. 여전히 내 책꽂이 어딘가에 꽂혀 있(거나 방바닥부터 대책없이 쌓은 책 탑 어딘가에 있)을 텐데 한 번 찾아보고 있으면 사진도 올리고, 못 찾으면 그냥 두겠다. 세상에 이런 일이. 책값은 비싸지만 믿고 읽었던 출판사가 지식을만드는지식(지만지)였건만. 책 뒤에 보면 초판 1쇄 펴낸 날이 2009년 4월, 지금 표지를 하고 가격을 조금 내린 개정판 펴낸 날이 2021년 10월. 흠. 말도 안 돼. 초판 1쇄는 연극과인간에서 찍은 2001년 5월이다. 이렇게 써야 올바르다.

  거참. 만일 이거 돈 주고 샀다면 스팀 좀 뿜을 뻔했다. 도서관에서 구입한 것, 즉 시민들 세금으로 산 거라고 열을 받지 않은 건 아닌데 그래도 직접 내 돈 주고 산 거보다는 아무래도 덜 돈다. 세상 인심이 다 그렇지 뭐.

  2019년에 나는 이 책의 진짜 초판본 《아스카와 늑대》를 읽고 쓴 독후감을 이렇게 끝맺었었다.

  “표지가 귀엽게 생겼다고 동화 읽는 기분으로 골랐다가는 골로 가는 책. 주의 바람.”




+++++++ <아스카와 늑대> 독후감  2019년 11월



  저 먼 먼 기억의 삽화



 출판사 “연극과 인간”은 주로 희곡을 출간하는 회사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우리나라 독자들이 잘 찾지 않지만 정말 좋은 작가, 라고 내가 생각하는 보스니아 사람 이보 안드리치의 단편소설집을 냈다. 2016년에 그해에 내가 가장 감명 깊게 공감하며 읽은 책으로 안드리치가 쓴 <드리나 강의 다리>를 꼽은 적이 있다. 2017년에는 아달베르트 슈티프터의 <늦여름>, 작년엔 김태정의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그러고 보니 벌써 11월 중순, 올해도 이제 슬슬 정리를 해야겠다, 라고 썼는데, 왜 이야기가 난데없이 삼천포 시로 빠졌을까. 그래, <드리나 강의 다리>. 이 책을 번역한 이가 한국외대 대학원에서 세르비아-크로아티아 어를 가르치고 있는 수석연구원이라고 하는 김지향. <아스카와 늑대>에서는 아주 오랜만에 보는 빨간 인주 묻힌 인지가 붙어 있고, 거기에 예쁘장한 한자어로 ‘金志香印’이라 박혀있다. 내가 비록 이이가 번역한 <드리나 강의 다리>를 2016년에 읽은 최고의 한 권으로 뽑은 적이 있지만, 안드리치의 다른 책 <저주받은 안뜰> 독후감에서는 번역한 한국어 문장의 질에 관해 아주 모질게 독설을 펼친 바 있어, 사실 이이의 또 다른 작품인 <아스카와 늑대>를 읽은 감상을 쓰기가 좀 캥기기는 한다.
 《아스카와 늑대》는 작가가 쓴 서문 격인 <어떻게 내가 문학의 세계에 들어가게 됐을까>를 제외하면 단편소설 일곱 편을 묶은 단편집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 우리가 단편소설의 나라에 살고 있지만 이보 안드리치의 단편들 역시 매우 매력적이다. 특히 첫 두 작품 <파노라마>와 <서커스>를 매우 좋게 읽었다. 두 작품의 구조는 비슷하다. <파노라마>에서는 어렸던 시절의 기억으로 남은 시장통 마당에 자그마한 가두 상점을 빌려 오스트리아 사람이 파노라마, 굳이 우리말로 하자면 대형 만화경쯤으로 생각할 수 있는 구경거리를 열었고 소년 시절에 이국의 정경들을 보며 무한대, 소년 특유의 무한정의 상상력을 펼쳤던 것을 기억하며, 어느 새 순식간에 이제 나이 들어 당시의 감정을 회상하는 작품이고, <서커스> 역시 어린 시절 시장 공터에 서커스단이 와 천막을 치고 공연을 했는데 워낙 어려서 부모가 자신을 데려가줄지 아닐지, 아닐 것이 분명해 울음을 터뜨리기 바로 직전에 함께 가기로 결정을 했으며, 난생처음 서커스, 기묘하고 긴박하고 긴장되는 공연에 자지러지다가 또한 갑자기 수십 년이 흘러 당시 서커스단의 단장을 만나는 시간의 전이가 벌어진다. 글쎄, 요즘 젊은 분들이 파노라마와 서커스 구경, 그것도 옛 시절의 (파노라마는 분명 보지도 못했을 것이고) 서커스를 봤을지 확실하지 않아 이 이야기에 공감할지 아닐지는 모르겠으나, 노년의 작가가 소년시절을 떠올려 상상해가며 차분하게 쓴 단편소설들이 참 마음에 들었다. 물론 다른 다섯 편의 단편들도 다른 외국 소설가들의 단편들에 비해 더 친근하게 느꼈지만 그것들에 비해 <파노라마>와 <서커스>에 훨씬 공감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가격도 착해서 10% 할인 가격이 6,650원이다. 단편 한 작품에 천 원 미만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표현이기는 하나 요새 유행하는 가격대비 성능비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거 같다.



* 표지가 귀엽게 생겼다고 동화 읽는 기분으로 골랐다가는 골로 가는 책. 주의 바람.


​ 책 찾았다. 안드리치 팬이라고 그래도 쉬운 자리에 꽂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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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4-15 0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귀여운데요? ㅎ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언제 다시 읽어도 좋죠. 평을 좋게하시니 저도 기회되면 기억했다 읽어보겠습니다. 좋은 주말요.^^

Falstaff 2023-04-15 17:10   좋아요 1 | URL
오, 조심하세요. 알라딘 독자 서평을 보면 제가 최고의 평가를 하는 드리나 강의 다리 조차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괜히 큰 기대 하시고 읽으셨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

yamoo 2023-04-15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 저도 그렇습니다.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광팬으로서 그의 작품들이 눈에 띄면 득달같이 달려가서 사오곤 했는데, 읽어보면 타이틀만 바꿔서 단 번역본. 빡치는 기분을 몇 번 당하니, 뭐 그려러니 합니다..ㅎㅎ

이보 안드리치...저도 나오는 족족 사려고 하는데, 번역된 작품이 별로 없네요..^^;;

Falstaff 2023-04-15 17:13   좋아요 0 | URL
슈니츨러도 그런 책이 있었군요! ㅎㅎㅎ
안드리치 번역은 다 읽은 거 같은데요, 유고슬라비아를 대표하는 소프라노 세나 유리나츠가 보스니아의 역사를 알고 싶으면 안드리치의 작품 <대신과 영사>를 읽어보라고 했다고 합니다.
다만 <대신과 영사>만이라도 얼른 번역해 나오면 좋겠습니다.
 
사소한 삶
피에르 미숑 지음, 윤진 옮김 / 민음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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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참 희한한 사람일세. 1945년 중부 프랑스 크뢰즈 지방의 샤틀뤼르마르셰에서도 촌동네인 작은 레카르 마을에서 태어난 것도 좋고, 만으로 서른아홉 살이던 1984년에 자기가 하여튼 엮여서 살아온 집안 사람들과 어릴 적 살던 동네의 존경할 만한 주정뱅이와 농투성이, 사제, 장난꾸러기 아이들에 관한 기억,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어린 시절이었다면 노인들이 해주던 이야기에다 그랬을 것이라는 작가적 상상력을 보태 연작 장편소설을 쓴 것도 좋다. 작가는 그럴 권리가 있는 직업인이고, 가문에 작가가 한 명 생겼다 하면 자기들이 살아온 방식이 어떻게 해서든지 결국은 죄다 까발려지게 되는 것이, 가족 구성원 가운데 재수없게 작가가 된 식구를 거느린 가족의 숙명이니까. 미숑이 제목을 “사소한 삶”이라고 했지만 세상에 “사소한” 삶이 어디 있니? 남들 보기에 조금 사소해 보일 망정 당사자들은 즐겁기도 하고 목이 메기도 하고 정말로 목을 매달기도 했던 일상사 가운데 한 번이라도 사소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을 테니까. 그러니까 “사소한 삶”은 반어법이겠지. 남 보기에 사소하지만 자기 마음 속에는 중요하기 그지없는 가족의 삶을 피에르 미숑은 천연덕스럽게 내보이고 있다. 하지만 미숑의 가족사 정도면 장소가 중부 프랑스이건 가난한 동부 튀르키예이건, 경상북도와 강원도를 접경한 남동쪽 봉화나 영양쯤 대한민국이건 흔하지는 않지만 동네에 적어도 한 집구석은 있을 법한, 그리 유별난 삶도 아닌데, 현대 프랑스에서 이름을 휘날리는 소설가인 피에르 미숑의 유별난 화려체 문장 덕에 사소하기는커녕 데뷔작 한 편으로 하여금 시작부터 “현대 프랑스 문학의 걸작 A genuine masterpiece in contemporary French literature”이라고 상찬을 받았단다. 나는 이런 표현을, 책을 다 읽은 다음에 지금 독후감을 쓰기 위해 위키피디아도 찾아보고, 옮긴이 윤진의 해설도 읽어보면서 알았기 망정이지, 만일 처음부터 현대 프랑스 문학의 걸작이라는 등의 말을 미리 읽었더라면, 제일 앞 장인 “앙드레 뒤푸르노의 삶”에서 고개를 끄덕였겠지만, 이후부터 조금씩 고개를 외로 꼬았을 듯싶다. 왜냐하면, 이건 꼭 알아 두셨으면 좋겠는데, 후진 가족의 뚝뚝 떨어지는 궁상이 지겨워지는 것이 아니라, 앞 장chapter에서 감탄하며 읽었던 화려한 은유와 감각적 수사와 현학적인 차용과, 낡고 누추해서 더욱 아름다운 추억이란 조미료의 놀라운 문장들이, 아오, 지겹도록 계속되는지라, 우리 조상님이 말씀하신 대로, 꽃노래도 삼세번이라고, 질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 스테이크가, 참돔 회가 맛나더라도 삼시 세끼, 일주일에 일곱 번, 한 달에 서른 날 같은 걸 먹으면 그게 식도락이니, 고문이니? 피에르 미숑의 글이 후졌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절대로, 한 번 더 강조해서 절대로 아니다. 서양의 권위 있는 평론가 집단이 “현대 프랑스 문학의 마스터피스”, 그것도 genuine masterpiece 라고 강조했다시피 글 좋고, 꼬질꼬질해서 더욱 추억 같은 (성공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누선자극 의도도 괜찮았다. 하지만 책을 덮을 때까지 이 작품에 열광할 수 없었던 것은 첫째가 여태 이야기한 과도한 미문, 그것도 겁나게 화려한 수식과 뭐 하나 그냥 이야기하고 지나가지 않는 (조금 과장해서)탐미주의적 은유의 능선이 그걸 넘기 힘들게 했고, 둘째 이유로, 복잡한 가계도, 저 먼 옛날, 앙투안이라는 남자를 끝으로 아들을 생산해내지 못해 “대가 끊긴” 플뤼셰 가족의 한 시골 여자가 역시 시골 농부와 결혼해 외동딸 마리를 낳았고, 마리는 팔라드 라는 성姓의 남자와 결혼해 또 두 딸을 낳았는데, 맏이 카틀린은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둘째 필로멘은 레카르 마을(이제야 나온다, 레카르 마을이)의 폴 무리코와 결혼해 외동딸 엘리즈를 낳는다. 이 엘리즈가 피에르 미숑이라고 읽는 화자 ‘나’의 외할머니다. 엘리즈는 펠릭스 게오동과의 사이에서 다시 한 번 외동딸인 내 어머니 앙드레를 낳고, 어머니는 에메 미숑과 결혼해 역시 맏딸 마들렌을 낳지만 마들렌은 어려서, 불과 두 살도 되지 않아 백혈병으로 숟가락 대신 젖병을 내려놓고, 이후에 다시 ‘나’, 피에르 미숑을 낳는다. 그리하여 ‘나’는 앙투안 플뤼셰(의 누이), 마리, 필로멘, 엘리즈, 앙드레, 피에르의 계보에 따라 5대 만에 처음 태어나는 아들인 셈. 엄마 앙드레의 처녀 적 이름이 앙드레 게오동이고, 에메 미숑과 결혼하며 앙드레 미숑이라는 이름이 생겨 ‘나’ 피에르 미숑을 낳았지만, 피에르가 소년들의 투견장인 기숙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마치고, 조현증 증세가 가볍지 않은 천재 극작가/연출가 앙또냉 아르또의 극단에서도 일하는 한편, 열심으로 술과 약물에 절어 있다가, 그리하여 두 여자로부터 이별을 당한 후에, 드디어 처음 발표한 소설 <사소한 삶>을 엄마는 엄마지만 ‘앙드레 미숑’이 아니라 ‘앙드레 게오동’에게 헌정했다는 것은, 피에르 미숑이 아버지를 부정했다, 엄마 앙드레 게오동의 혼인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비록 친할머니, 친할아버지인 클라라와 외젠의 사랑을 받았던 것과 그들의 친절은 기억하지만, 어려서 자신과 엄마를 버리고 집을 나갔다는 이유가 아니고, ‘나’ 피에르의 알코올 의존과 약물 장복이 아버지인 외눈박이 에메로부터 드러운 유전자를 내려 받았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이다. 어떠셔? 정말 아버지 쪽, 그러니까 미숑 가의 핏줄이 깨끗하지는 않지? 비단 할아버지 외젠은 사람이 부드럽고 유약하고 아내 클라라한테 찍소리 한 마디 못하고 살지만, 외눈박이 아버지로부터 알코올과 약물 의존의 유전자를 받은 거 하나만 가지고도 치가 떨렸을 거다. 내가 언젠가 이야기했다. 알코올 의존의 80%는 유전이라고. 알코올 의존증이 있는 많은 사람들의 가장 큰 소망이 술을 끊는 것이며, 스스로 알코올 의존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후세의 안녕과 복지와 마음의 평화를 위하여 후손의 생산을 포기하는 걸 한 번 진지하게 생각들 해보시라고. 아버지 에메도 자신의 알코올 의존을 알아채고 처자식이 조금이나마 자유스럽게 살라는 깊은 뜻에서 집을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던 건 아닌지, 알코올 의존증에서 벗어난 서른아홉 살의 아들 피에르는 정말 몰랐을까, 아니면 아비가 되어 처자식을 나몰라라 했던 것이 그토록 서럽고 분해서였을까? 정신없이 이야기하다 보니 이 작품이 조금 유감스러웠던 둘째 이유와 셋째 이유가 호박넝쿨처럼 한꺼번에 나왔는데, 둘째가 복잡한 가계도를 너무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실명을 그대로, 족보에 관계없이 그냥 사용하기 때문에 가뜩이나 남의 집구석 이야기를 과하게 듣는 마당에 족보 여하가 마구 헷갈렸기 때문이며, 셋째가 나 스스로가 비록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알코올 의존 성향이 있어서 피에르 미숑의 알코올 의존과 약물 의존에 관한 묘사가 심장을 너무 콕콕, 바늘로 찌르듯이 아팠던 것이 이 책에 후한 점수를 매길 수 없었던 이유였다. 마지막 이유는, 사실 이걸 세번째로 넣었으면 좋겠지만 알코올 의존과 가계도를 따로 떼기 쉽지 않아 마지막에 놓았을 뿐으로, 시와 소설, 극작, 회화 같은 것들을 마구 인용해, 동아시아 독자는 마치 인용한 것을 모르는 것이 이 책을 충분하게 감상하지 못하게 만드는 일인 것처럼 여기게 만드는 현학적 태도였다. 하지만 이런 지적질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아름다운 문장으로 일관한다는 건 확실하다. 그리고 바로 이 점 때문에 젊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함부로 이 작품을 필사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감정의 과다한 분비를 의도적으로 하는 작가들은 없다. 아니지. 내 주제에 무슨 단정을 하나, 그리하여 다시 쓰면, 없을 것으로 믿는다. 문장 하나하나에 공을 들여 어떻게 미문을 만들어볼까 궁리하다가 드디어 그것들로 촘촘히 날줄과 씨줄을 엮어 한 장의 결 고운 비단을 만든 후, 조금 멀리서 한 마리 누에가 토해 놓은 곱디고운 실의 모음에 과다한 감정 분비물로 질척하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 지경 바로 앞에서 일단 정지를 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게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서 말씀입니다, 하여간 조심하고 조심해서 읽어야 할 책이 아닐까 싶다. 아름답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이런 작품이 겉으로 보기에 아름답다고 대책 없이 필사했다가 나중에 자기도 모르는 새에 어디서 써먹고는 큰 코 다칠 수 있으니. 그 정도로 문장이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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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4-13 08: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휴 제가 이거 읽다가 질려버렸지 뭡니까! 문트 님 리뷰 다시 봐도 또 절레절레 ㅋㅋㅋㅋㅋ 전 이이 책은 또 안 읽을 거 같아요. 질린다 질려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3-04-13 18:07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 마음 이해 합니다. 저도 굳이 찾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레이스 2023-04-13 09: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소한 삶이란 없죠.
골드문트님!
북튜버를 하심이 어떠실지, 입담도 장난 아니실듯 하여... 이 글대로 말씀하시면 정말 재밌을 겁니다.

Falstaff 2023-04-13 18:10   좋아요 1 | URL
아휴, 저는 입담 별로 없어요. 발음도 좋지 못합니다. ㅎㅎㅎ
이 페이퍼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마구 써버린 겁니다. 그리하여, 물론 그러실 리는 없지만, 조금만 꼼꼼하게 읽어보시면 말이 안되는 문장, 소위 비문이 중요한 자리에 있습니다. 고칠까 말까 하다가 독후감을 한 방에 쓴 증거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내버려 둔 것입지요.
재미나게 읽어주신 거 같아서 기쁘네요. ^^

stella.K 2023-04-13 1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이들수록 소설 읽는 게 자신없어 지더라구요.
내가 지금 읽고 있는 게 맞나? 자꾸 의심하게되고
되돌아 다시 읽어야할 것 같고.
이책은 읽을 자신이 없어지네요.
문장 좋은 작가들 부럽던데.
몇년 전에 노르웨이 작가가 <나의 투쟁>인가 4권짜리
나왔잖아요. 1권의 반을 읽다가 접은 아픈 기억이 나네요. ㅋㅋ

Falstaff 2023-04-13 18:15   좋아요 1 | URL
그까짓 소설 읽는 거에 무슨 자신이고 뭐고가 있어요? ㅎㅎㅎ 걍 읽고, 뭐 그런 것이지요. ㅎㅎㅎ 너무 심각하십니다.
<나의 투쟁>은 아이고... 저도 한겨레든가 하여튼 신문매체의 평가가 하도 화려하기에 무려 내돈내산했다가 1권 초장에 키 크고 험악하게 생긴 아빠가 수퍼마켓에서 아이들 어깨를 쥐고 앞뒤로 흔드는 것까지 읽고, 도무지 더 읽어줄 수 없어서 확, 방바닥에 팽개친 게 생각나네요. 근데 그게 뭐 어떻습니까. 걍 팍팍 읽으셔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