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심장 가까이 암실문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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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독후감은 써 놓고 저장하는 걸 깜박 잊어버려 싹 지워졌다. 그래서 책 읽고 9일이 지나 다시 썼다. 기억이 가물거린다. 하여간 달려보자. 다른 이들의 소감과 차이가 있더라도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짧게 쓰겠다.)


​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는 처음 읽는다. 브라질 작가를 많이 읽은 것도 아니지만 19세기에도 물라토 출신 소설가 마사두 지 아시스가 엽기적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포스트 모던하기도 한 <브라스 꾸바스 사후 회고록> 같은 것도 발표했을 정도로 그럴싸한 근대 문학의 전통을 이어갔으리라고 추측했었다. 브라질 작가 작품들이 활발하게 번역되어 나오지 않아 읽어볼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생각을 늘 하고 있던 건 아니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이러다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에 관한 이야기들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1920년에 우크라이나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리스펙토르는 태어나자마자 브라질로 이민을 가서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로스쿨을 다녔으며, 스물두 살 때인 1942년에 첫 번째 장편소설 <야생의 심장 가까이>를 써 다음 해에 발표해 브라질 문단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이후 외교관과 결혼해서 1959년까지 유럽과 미국에서 생활하다가 이혼해 다시 리우로 돌아와 작품을 쓰면서 여생을 보내다 난소암으로 생을 마친 작가다. (위키피디아 참조했음)

  리스펙토르의 일생을 검색하기 전에 책을 읽었다.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줄에 쓰인 "리우에서 1942년 11월"을 보자마자 기겁을 했다. 나는 이이가 인생을 이젠 제법 살아서, (연보에 의하면 이혼하고 다시 브라질로 돌아온 1959년 이후) 세상을 좀 알게 되어 지난 날을 회상하면서 쓴 것인 줄 알았다. 근데 스물두 살짜리가 이런 작품을 썼다니. 아오. 책 광고 글 특유 극도의 찬사가 리스펙토르, 또는 이 작품 <야생의 심장 가까이>에 관해서는 절대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이 작품은 스토리로 읽는 책이 아니다. 나는 첫 문단부터 리스펙토르의 화법에 확 끌렸다. 한 번 보시라.


​  "아버지의 타자기 소리가 탁-탁... 탁-탁-탁... 이어졌다. 시계가 먼지 없는 뎅-그랑 소리로 깨어났다. 정적이 잠잠잠잠잠잠 이어졌다. 옷장이 뭐라고 말했지? 옷-옷-옷. 아니, 아니야. 시계와 타자기와 정적 사이에는 귀가 하나 있다. 듣는, 커다란, 분홍빛, 죽은 귀. 세 가지 소리는 햇빛과 반짝이는 작은 나뭇잎들의 바스락거림으로 이어져 갔다."


​  이것이 어린 주아나의 기억 속에 잊히지 않고 남아 있는 한 장면이다. 아버지는 타자기로 시를 쓰고, 딸도 아버지를 흉내 내어 시를 써 보여주지만 아버지는 그리 다정하지 않다. 주아나는 인형 아를레치를 가지고 놀이를 한다.

  "아를레치는 파란 차에 치어 죽었다. 요정이 나타나 그녀를 도로 살려냈다. 딸과 요정과 파란 차는 주아나 자신이었고, 그렇지 않으면 그 놀이는 따분했을 것이다."

  주아나의 기억 속에서 아버지와 사는 장면은 아주 짧다. 아버지는 가끔 자신을 떠난 여자를 생각한다. 아버지에게 이제는 사소하고 아프지 않은 고통으로, 소리 없는 감탄사 '아!' 순간의 모호한 상념으로 남은 엘자. 딸 주아나를 낳고 자신을 떠나버린 아내.

  삼촌 집에서 살다가 기숙학교에 들어간 주아나. 아무리 엄격한 학교라도 선량한 교사는 있는 법이라, 교사가 말한다.

  "어쩌면 너는 행복해질 수도 있어." 주아나에게 드는 의문, 의문들.

  "행복해지면 얻는 게 뭔가요?" "행복해지면 어떻게 되나요?" "다음엔 뭐가 오나요?" " 행복해지는 건 무엇을 위한 거예요?"

  선생은 주아나에게 종이에 이 질문들을 적어 간직하고 있으라고, 훗날 성인이 된 다음에 다시 읽어 보라고 권하지만, 주아나는 대답한다. "싫어요."


​  이 모든 스토리에서 주아나의 내적 감정이 작품의 9할 이상을 차지한다. 이 감정이랄까, 의식이 함의하고 있는 상태를 표현한 글. 이걸 읽는 일이 그렇게 즐겁지는 않다. 폭풍처럼 쏟아지는 은유가 범위의 제한도 없이 지평선과 수평선을 너머까지 펼쳐지는데, 절반 분량을 읽을 때 까지는 도대체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 깊은 안개 속에서 더듬는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2부에 접어들 즈음, 이제 눈에 익어서 그랬는지, 익은 게 아니라면 눈이 저절로 떠져서 그랬는지,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름대로 '추리'할 수 있었고, 초장과 비교하면 훨씬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으며, 그리하여 점점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에 경탄할 수 있었다. 다시 이야기하면, 대책없이 쏟아지는 은유의 폭격, 이것들의 의미를 나는 '추리'할 수 있었을 뿐, 이해했다고는 주장할 수 없다.

  쉽지 않았다. 그러나 책 한 권을 읽으면서도 모험을 해보고 싶은 분들은 충분히 한 번 도전해볼 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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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7-18 08: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리스펙토르의 책을 한 권 도서관에서 빌려왔다가 다섯장도 채 못읽고 그대로 반납했어요. 전 도저히 못읽겠더라고요. 어휴,이건 내가 읽을 책이 아니다 싶었는데, 오늘 골드문트 님의 리뷰를 보니 왜인지 알겠네요. ‘스토리로 읽는 글이 아니고‘, ‘폭풍처럼 쏟아지는 은유‘ 때문이었음을 …

Falstaff 2023-07-18 09:10   좋아요 0 | URL
자칫하면 안개 휩싸인 골짜기로 빠져들어가기 십상이더군요. 짧지만 함부로 읽었다가 쌍코피 줄줄 흐를 책입니다. 일찌감치 포기하신 게 어쩌면 더 바람직하지 않았겠는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저도 읽고나서 한 20일 흘렀는데 거의 기억나는 것이 없더군요. 위에 인용한 문장들하고, 행복에 관한 질문 정도만 남았습니다.

물감 2023-07-18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의 시간>도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한 절반 읽고 접었습니다. 횡설수설 기법이랄까, 여튼 이렇게까지 인내해서 읽어내고 싶진 않았어요ㅋㅋ

다락방 2023-07-18 11:48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대출했다가 못읽고 반납한 책이 <별의 시간> 이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물감 2023-07-18 11:5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예전같았으면 억지로 읽고 비평이라도 남겼는데, 이제는 시간낭비 감정낭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니다 싶으면 과감히 덮어야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3-07-18 15:28   좋아요 0 | URL
저도 <별의 시간>이 더 유명해서 그거 먼저 읽으려 했는데, 울 동네 도서관에서 이상도 하지, 그 책이 대출불가인 겁니다. 어쩔 수 없이 <야생의 심장...>을 읽었다는 거 아닙니까. 다 팔자지요 뭐.

coolcat329 2023-07-19 0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사 실종. 의식의 단어화‘ 제목이 다 말해주네요. 이 책 읽고 조용히 포기하신 분들도 계시구요...올려주신 발췌문 읽어보니 저도 안 될 듯 싶네요. ㅎㅎ

Falstaff 2023-07-19 17:51   좋아요 1 | URL
저도 추천은 못하겠더군요. 아무 생각없이 읽다가 독자 취향에 맞으면 대박이고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작품들....아니겠느냐, 하는 심정입니다. ㅎㅎ

그레이스 2023-07-23 2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헐!
이런 책을 다시 기억해서 리뷰하신 건가요?

Falstaff 2023-07-23 21:00   좋아요 1 | URL
따옴표에 든 문장은 읽다가 메모해놓은 겁니다. 설마 기억했겠습니까. ㅎㅎㅎ
 
카디프, 바이 더 시 - 조이스 캐럴 오츠의 4가지 고딕 서스펜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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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이스 캐럴 오츠가 1938년생이니까 여든다섯 살인가? 다작의 여왕이다. 장편소설을 쉰여덟 편, 천편에 육박하는 중단편 소설을 썼다. 아침에 너댓 시간 쓰고, 오후에 또 쓰고, 저녁 먹고 다시 쓰기를 반복한 완벽한 전업작가. 쓴 작품의 양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에 번역 출판되어 나온 책의 수가 그리 많지는 않은 편이다. 곱게 나이 든 할머니인데 미국 현대 고딕 소설의 대가라고 하고, 그로테스크의 여왕이라고도 불린다. 전형적인 미국 작가로 이이의 관점은 전적으로 미국 위주다. 우리나라에서 이이의 대표작으로 꼽기도 하는 <카시지>의 경우가, 내가 읽기로는, 그랬다. 이럭저럭 맞춰보자면, 미국적인 작가이고, 그로테스크의 여왕, 현대 고딕. 이러면 대강 감을 잡을 수 있으니, 하여튼 나는 글 좋은 대중작가라고 본다. 작품 속에는 리얼한 폭력을 담고 있으며 자주 철철 피가 흐르고, 그걸 역겹기 바로 전까지 상세하게 묘사하기도 한다.

  《카디프, 바이 더 시》도 예외가 아니다. 이 중단편집은 2020년에 초판 출간했는데 초판 표지에 내놓고 “네 편의 서스펜스 노벨라”라고 박아 놓았으며, 우리나라 번역본 표지에는 여기에 단어 하나를 추가하여 “4가지 고딕 서스펜스”라고 했던 바, 나는 깜짝 놀라길 “4가지”? 혹시 “싸가지”를 이야기하는 건가? 했는 줄 알고 말이지. "싸가지 고딕 서스펜스" 완전 새로운 장르의 소설 말씀이야. 하여간 네 편 모두 여성 피해자가 극한 상황까지 몰리는 사건을 그렸으며, 언제나 그렇듯이 악당은 권력과 완력을 가지고 있는 남성이다. 물론 다 죽어 마땅한 새끼들이다. 아니, 죽여 마땅한 새끼들. ‘죽어’와 ‘죽여’, 점 하나의 엄청난 차이란! 하여간 그렇다.

  내가 읽은 소감은 그냥 오츠. 오츠한테 기대했던 딱 그만큼의 오츠. 오츠, 하면 많은 독자들이 <좀비>나 <흉가>, <악몽> 같은 걸 떠올리는 듯한데, 나는 <카시지>와 <사토장이의 딸> 딱 두 작품 읽고 더 이상은 내 돈 내고 오츠를 사서 읽지는 않기로 했다. 《카디프, 바이 더 시》 역시 도서관 개가실의 신규 구입 도서 책장에 놓인 것을 보고 잽싸게 읽었다. 잘했다.


​  네 편의 노벨라, 중편 소설이 들어 있는데, 요약해서 말씀드리자면, <카디프, 바이 더 시>는 시poem 옆의 카디프(라는 이름의) 아가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에서 몇 번 보신 바 있는, 또는 내가 생각하기에 누구나 한 번은 영화를 통해 본 경험이 있을 것 같은 다음과 같은 장면에서 시작한다. 술에 취한 건장한 남자가 엽총이나 권총을 들고 집안으로 들어온다. 집엔 세 명의 아이들과 엄마가 있었다. 먼저 엄마의 머리를 향해 총을 두 방, 빵빵, 쏘아 죽이고, 큰 딸한테도 가슴과 목에 빵빵 쏴 아직 열살도 안 된 목숨을 거두었으며, 이어서 어린 아들이 눈에 띄자 역시 한 방, 빵, 쏴서 죽여버리고 만다. 이제 겨우 두 돌 아홉 달이 된 막내 클레어는 개수대 아래 어두컴컴하고 냄새나는 공간, 배수관 뒤편, 거미줄과 머리카락이 함부로 흩어져 있는 작고 작은 공간으로 몸을 구기고 들어가 더러운 공간보다 더 작게 웅크리고 있다. 조금 후, 남자의 발과 다리가 보이고, 시커멓고 축축하게 번들거리는 뭔가가 바짓단에 묻어 있는 것도 보이지만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가 거의 혼절 상태에 이른 막내를 발견하니 가족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다. 살인자는 아빠. 처자식을 쏴 죽인 다음 남은 총알을 자신의 옆통수를 관통시켜 자살해버린 사건. 세월은 흐르고 흘러 클레어는 다른 가정이 입양해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었는데, 한 통의 전화가 와 옛 사건이 벌어진 집과 일대의 땅을 상속받았음을 전해준다. 그리하여 저 기억 속, 어쩌면 평생의 트라우마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아 있던 아득한 곳으로 돌아가게 되는 이야기, 이게 타이틀 롤 <카디프, 바이 더 시>다. 내 말 맞지 않나? 작은 피난처에 몸을 피한 유년의 나. 영화에서 본 장면이지? 이 책의 초판이 2020년이니까 오츠도 영화의 한 장면이 인상 깊어 그걸 꺼내 작품으로 썼을 거 같다. 뭐 아니면 말고.

  흠. 이거 스포일러 맞는데, 엣다 모르겠다, 얘기하자면, <카디프, 바이 더 시>에서 진짜 악당이 처자식 죽인 아빠가 아닐 수도 있어서 결론을 미루더라도, 두 번째 <먀오 다오> 부터는 진짜 개자식들이 나온다. <먀오 다오>에서 출연하는 개자식은 사춘기를 맞은 주인공 미아의 의붓아빠 패리스 로크. 하긴 이 중편에 나오는 남자 치고 개새끼 아닌 게 거의 없기는 하지만 이외에도 사춘기를 맞아 가슴이 봉긋해져 손만 대도 아픈 가슴을 고의적으로 툭 치고 “아, 미안, 젖소” 하며 지나가는 한 학년 위의 뎀스터도 마찬가지다. <먀오 다오> 악당들의 공통점은 성희롱, 또는 우리나라 국회의원을 통해 처음 들은 단어인 ‘성비위’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그래도 이 개자식들은 충분하게 (또는 죄에 비해 과하게) 벌을 받기는 한다.

  세 번째 작품 <환영처럼, 1972>는 가장 역겨운데, 성공회 신부 공부를 하다가 때려 치고 대학에서 강사질을 하는 젊은 악당 사이먼과, 유명 시인의 계관/권력을 자랑하는 61세 늙은 교수 롤런드 B가 등장한다. 이 새끼들 가운데 한 명은 젊고 똑똑한 학부 2학년 학생 앨리스를 임신시키고, 당시에는 전 미국에서 낙태 수술이 불법이었으며 간혹 야매로 해주는 의사가 있더라도 학생신분으로는 엄두를 내기 힘들 만큼 많은 돈을 요구해 절망에 빠진 앨리스에게 문제 해결을 위하여 자신과 결혼을 해 애 낳고 키우자고 제의를 한다. <환영처럼, 1972>는 별로 주의하지 않고 읽으면, 읽다가 갑자기 숨이 턱, 하고 막힐 만큼 분노하게 되고, 안타까워하다가, 한숨을 푹 쉬면서 끝장, 그러니까 결론에 이르게 만든다.

  마지막 작품 <살아남은 아이>는 첫 번째 이야기 <카디프, 바이 더 시>와 달리 아이 죽이고 자살한 인간이 아빠가 아니라 엄마, 살아남은 아이가 딸이 아닌 아들, 일 것 같은데 오츠 작품은 끝까지 읽어봐야 한다. 앞에서 내가 말하기를, 이 책에서 나오는 (사춘기 중이거나 지난) 남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다 개자식들이라고 했다. 그러니 정말 이 집안의 아빠는 무고한 거야? 읽어 보셔야 안다니까. 하여튼 엄마가 죽는 방식도 어디서 본 거 같다. 차고 안에서 틈을 막아 놓고 시동을 건 다음 배기가스가 차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수면제 칵테일 한 잔 마시고 잠에 빠져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편안하게 죽음에 이르는 방법. 토미 리 존스와 수잔 서랜든이 주인공을 한 <의뢰인>에서 나오는 자살 미수 장면이다.


​  이제 소감. 딱 조이스 캐럴 오츠. 그러나 여태 오츠의 트레이드 마크인 그로테스크의 여왕이란 별호가 어울리는 작품을 읽어보지 않아 그런 줄은 모르겠지만, 하여간 내가 알던 오츠 보다 강도가 훨씬 셌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오츠가 매년 거의 빠지지 않고 노벨 문학상 수상자 후보에 올라간다고 하는데, 미국 땅 안에서 잘 팔리는 작가라 하고, 또 읽어보면 정말 글을 쉬우면서도 (아마 짧은 단문 위주로 써서 그렇기는 하겠지만) 흥미진진하게, 때론 복장 터지게 만드는 솜씨가 대단하다는 데 다른 의견이 없긴 하지만, 감동이라든가, 공감이라든가 하는 것까지 바라지는 못할 것 같다. 심지어 어제 밤에 <환영처럼, 1972>의 마지막 장면이 꿈 속에서도 나와 아주 진저리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자다가 벌떡 깼지 뭐야, 잠 깬 김에 방광 한 번 비우고 다시 자긴 했어도), 솔직하게 말해서 이 책이 인상깊지는 않다. 높은 대중성으로 영화화하면 괜찮은 수준의 박스 오피스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조이스 캐럴 오츠. 여전히 나는 이이의 책을 돈 주고 사서 읽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나는 백수거든. 아무 책이나 살 수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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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07-15 0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만로도 짓눌려 숨이 막히는데요?
… 수고하셨습니다.

전 오츠의 “좀비”가 좋았고요 (역시 피 철철이지만 읽으면서 소설/문학의 보호막이 생생했어요) “카시지”는 실망스러웠어요.

오츠가 문학 교수여서 독후감을 여럿 썼는데 그 글들은 좋아요.

Falstaff 2023-07-15 10:04   좋아요 1 | URL
미국 소설 보면 오츠를 좋아하는 작가들이 많더라고요. 문화 차이인지 저는 여간해서 그런 감정이 생기지 않고요. 도서관에서 이이의 책을 좀 읽어보려 합니다.

stella.K 2023-07-15 1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맞다! 그로테스크! 며칠 전부터 이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머리에 파리가 들어 앉은 느낌이었는데 여기서 보게되네요. ㅎㅎ
가끔 그런 작가가 있긴 하더군요. 하루종일 글만 쓴다는 사람. 그럼 책은 언제 읽지하는데 글을 안 쓸 땐 읽겠죠? 아니면 소싯적에 많이 읽어둬서 채울 건 없고 뽑아쓸 것만 남아있거나.
저의 엄니보다 하나 적네요. 근데 여전히 쓰고 있다니 대단해요. 그렇게 다작이면 대표작 몇권만 읽어도 될 것같네요. 문제는 제가 고딕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죠. ㅋ

Falstaff 2023-07-15 16:24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로테스크...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 많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막 미칠 거 같은 순간도 있어요. 전엔 걍 단어가 줄줄 떠올랐는데 이젠 영 아니더라고요. 뇌가 쉬었어요. 묵은지도 아니면서.... 흑흑흑.....
 
언어의 무게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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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으면서, 페이지가 넘어감에 따라 이 작품을 읽은 다음에 마음먹고 독후감을 쓰려면 원고지 3백장도 쓰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메르시어는 스위스 베른에서 태어나 베른 고등학교에서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를 배웠단다. 서양 소설을 읽으면 학생들이 가장 고통을 겪으며 배우는 과목이 라틴어와 그리스어인데 여기에 히브리어까지 더 했고, 독일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하이델베르크 대학 철학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철학자다. 이후 유명 대학 철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21세기 들어 대학에까지 자본주의의 논리가 지배한다는 사실에 회의를 느껴 은퇴를 했으니 좌파 지식인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리라. 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야 나는 파스칼 메르시어가 <리스본 행 야간열차>의 지은이라는 걸 알았는데, <…야간열차>는 제목 때문인지 좀 스릴러나 추리극 아닐까 싶어서 여태 거들떠보지도 않은 책이었다. 지금 후회하고 있다. 좀 읽어볼 것을. 하긴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조만간에 빌려 읽겠다.

  철학자들이 소설도 많이 쓴다. 인상 깊게 읽은 철학자가 쓴 소설로 나는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가 쓴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을 꼽는다. 피어시그는 책에서 십대 아들을 모터사이클 뒷자리에 태우고 미국 전역을 다니며 질, 품질, Quality가 무엇인지, 소설의 기법을 이용하여 독자에게 차근차근 알려준다. 이 책 <언어의 무게> 속에서 파스칼 메르시어는 언어, 언어를 기호화하는 문자, 문자의 집합으로 만들어지는 단어, 단어의 연속인 문장, 문장을 발음할 때의 독특한 음감, 이것들이 각 민족의 입 안 발성기관을 통해 나오면서 같은 뜻일 망정 미묘하게 다르게 전달하는 뉘앙스를 재미있게, 정말 재미있게 풀어냈다. 말 가운데서도 선정된 몇 가지 단어를 중첩 사용함으로써 이 단어를 쓰는 사람들만의 바운더리를 형성하는 권력 기구, 좌파 지식인이니까 당연히 그들을 향한 비판의 시선까지 매우 다양하게 언어를 이야기한다.

  나도 평상시에 언어와 언어의 사용에 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바라, 메르시어의 주장을 정독해서 읽어야 했고, 그리하여 피어시그의 모터사이클 관리술을 읽을 때 하고는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부분을 이해했다고 믿었는데, 세상에 뭐든 다 좋을 수는 없는 것이라서 630쪽에 불과한 책 한 권을 읽는데 무려 나흘이나 걸렸다. 게다가 작품 속에는 장편소설이라고 해도 요즘 장편소설 하고는 좀 다르게 중요한 조연들이 숱하게 나오고, 그러니까 당연히 심각한 에피소드도 많이 달려 나오고, 친절한 철학자이자 작가인 파스칼 메르시어는 주인공 사이먼 레이랜드로 하여금 이미 11년 전에 죽은 예쁘고 마음씨 착하고 매사에 능력 있어서 돈도 잘 벌었던 아내 리비아에게 결코 짧지 않은 편지를 자주 써서 그동안의 내용을 요약해 독자에게 다시 한 번 설명해주는 친절을 베풀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과공은 비례라서過恭非禮, 이런 친절은 처음엔 괜찮았으나 5백 쪽이 넘어가면서부터는 도무지 읽기가 싫어지는 일이 벌어졌다. 뭐하러 아까 한 이야기를 다시 또 듣고(읽고) 있을까, 싶었던 거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유명 철학자라서 그런지 신중하고 진지한 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일정 수준 이상의 텐션을 유지하며 읽게 만들었다. 나 아니고 당신이 읽더라도 이 책은 정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아예 읽지 말던가, 아니면 마음을 독하게 먹고 시작하는 편이 좋을 듯하다.


​  원고지 3백장 정도의 독후감. 이것도 과장이 아니다. 이 정도로 많은 이야기가 서로 뒤섞여 있다. 그래도 귀띔을 해드리자면, 메르시어가 심성이 나쁘지 않은 사람이라서 모든 이야기(들)의 결말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

  위 단락에서 메르시어가 대학에서 교수질을 하다가 때려치운 것이 (한 시절엔)상아탑(이라고 불리던 곳)에서도 자본주의의 논리가 횡행하는 것에 염증을 느꼈다고 한 바 있다. 그런데 작품의 주인공 사이먼 레이랜드를 보자면, 조부 크리스토퍼 셀던 레이랜드 경은, 경sir니까 귀족은 귀족이지만 세습하지 않는 귀족으로, 인도의 독립을 강력 반대하던 인물이며, 이것 때문에 아들 애슈턴 첸들러와 마찰을 빚었었다. 하지만 애슈턴 챈들러가 잘한 것이라고는 프랑스와 독일의 피가 흐르는 아내를 맞아 아들 사이먼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구사할 수 있게 만들어준 것뿐이었다. 그리 총명하지 않아 오랜 세월이 흐른 후, 학벌 콤플렉스가 있었는지 아들과 함께 옥스퍼드 대학에 구경 갔다가 잘 정돈된 잔디를 발 뒤꿈치로 파헤쳐 놓기도 한다.

  애슈턴 첸들러의 동생이자 사이먼의 삼촌인 워런 숀은, 동양의 언어를 평생 공부한 사람이다. 이이들이 말하는 동양은 서아시아 지역. 워런 숀은 저 라오스 문자까지 해독하기 위해 다 늙어서도 공부를 멈추지 않은 인물이다.

  아무리 좌파 작가라도 일단 배워야 작품을 쓰는 거니까 공부는 그렇다고 치자. 사이먼은 김나지움을 나와 옥스퍼드 존 던 학교에 들어가 1년 만에 그곳에서 도망 나온다. 존 던은 영국의 위대한 시인. 하지만 존 던 학교에서는 존 던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존 던을 망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아서 몇 번을 망설이다 런던으로 뛰쳐나간다. 열일곱 살이었는데 세 살을 더 보태 스무 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벨사이즈 리트리트 호텔의 야간 경비원으로 취직해 조금씩 돈을 모은다. 몰타 여행을 하기 위하여. 평소 좋아하는 워런 삼촌의 집에 걸려있는 지중해 지도를 보면서 지중해를 감싸고 있는 모든 지역의 언어를 알고 싶다고 이야기한 바 있었고, 이때 삼촌이 “몰타는 빼지 말아라.”라고 말했었기 때문에. 그래서 진짜로 가게 되는데, 아무리 가보고 싶었지만 정말로 가보면 기대한 것에 훨씬 못 미치는 일은 다 경험해 보셨지? 사이먼도 그랬다.

  다시 런던의 호텔 야간 경비원으로 돌아와 독일어로 된 아동 도서를 번역할 기회를 잡고, 이러저러한 일로 이탈리아 여성 리비아 페르토트를 사랑하게 되고, 결혼도 해서 딸과 아들을 낳은 후 얼마 되지 않아, 장인이 세상을 뜨는 바람에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의 중견 출판사를 통째로 차지하게 된다. 십여 년을 아내가 경영하고 자신은 번역 일을 하면서 지내다가 11년 전엔 아내가 장인과 같은 증상인 급성 심정지로 세상을 떠 이제 처가 재산이 몽땅 자기 재산이 된다. 그리고 작품을 시작하자마자, 런던 북부의 햄스테드에 사는 워런 삼촌이 숟가락을 놓으면서 집을 통째로 상속해준다. 좋아, 좋아.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지. 그런데 어쨌든 좀 세월을 두긴 했지만 장인이 죽어, 아내도 죽어, 삼촌도 죽어서 이제 사이먼은 무지하게 많은 돈을 갖게 되는데, 대학에도 자본주의 논리가 쳐들어온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만 둔 교수…가 쓴 소설의 주인공답게, 사이먼 레이랜드는 자기 주변에 돈 때문에 곤란을 겪는 친구들에게 펑펑 돈지랄을 하기 시작한다. 천천히 망해가다가 이제 본격적으로 문 닫을 일만 남은 친구의 출판사에 5십만 파운드의 돈을 출자해주는 것이 아니고, 증여를 하는 걸로 사이먼의 활수한 돈지랄은 시작한다. 10년을 바쳐 천 페이지짜리 책 한 권을 쓴 파올로의 작품의 출판비를 자기가 내겠다고 하고, 러시아 작품을 훌륭한 이탈리아어로 번역하는 실력을 지닌 안드레이 쿠츠민을 위하여 트리에스테의 건물 한 동을 통째로 사서 쿠치민한테 월세를 제해주기도 한다. 이거 안 웃겨? 이러면 자본주의의 영향을 받지 않는 건가? 난 정말 궁금했다. 사이먼의 돈지랄이 언제까지 갈지. 근데 딱 거기까지. 자신이 친구라고 생각하는 몇 사람들에 국한한다. 대신 프란체스카라는 돈 많은 작가의 미발표 소설을 통해, 돈을 준 사람이 아니라 돈을 받은 사람의 채무감 같은 걸 무지하게 상세하게 그렸다. 돈 주는 것도 쉽지 않다는 말이지.


​  나는 여태까지 작품과 작가에 관하여 언짢은 점만 골라 썼다. 앞으로도 훨씬 더 많이 쓸 수 있다.

  이 책이 얼마나 좋은 작품인가를 쓰려고 하자면 아예 독후감이 끝나지 않을 거 같아서 그랬다.

  특히 초두에서 말한 특별한 언어를 구사함으로써 자신들을 다른 집단들과 특정 시키고자 하는 백색 카스트와 흑색 카스트에 대한 신랄한 필설 같은 것이 매우 재미있었다.

  꼭 빼지 말고 독후감에 써야 하는 것으로, 역자 전은경이 정말 고생했겠다는 것이다. 작품의 제목을 보시라. “언어의 무게”. 언어가 얼마나 큰 무게를 갖는지를 작가가 철학적 의미까지 넘치게 담아 설명하는 책의 번역을 어떻게 가볍게 할 수 있었겠는가? 한 번 인용해볼까? 주인공 사이먼 레이랜드의 직업도 번역자인데 그가 말하기를;


​  “번역자만큼 책을 자세히 읽는 사람은 없다네. 불필요한 반복이나 틀린 점, 리듬에서의 더듬거림, 미끄러진 장면, 필요하지 않은 모든 것, 다시 말해 진부하고 형편없는 것들을 발견해내지. 다른 언어로 복제하려면 모든 것, 정말 모든 것을 캐내야 하니까. 어떤 문장을 읽으며 내가 그저 복제하는 게 아니라면 좋을 텐데, 라고 생각한 적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네. 번역자만큼 작가에게 가까운 사람은 없지. 번역은 다른 그 무엇보다도 강한 친밀함, 연인 사이의 육체적 친밀함보다 더 가까운 관계를 만들어주네. 번역자는 시간이 좀 흐른 후에는 작가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은밀한 것, 그의 상상력에 숨어 있는 알파벳을 알게 되니까. 그 알파벳이 번역자에게는 지극히 낯설 수도 있네. 그럴 때 번역자가 느끼는 낯섦은 평범한 만남에서 느끼는 그 어떤 것보다 싸늘하고 위협적이지. 번역은… 낯선 내면세계로 향하는 엄청난 침입일세. 위험하지. 번역자는 작가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또한 그 누구보다고 더 심한 상처를 줄 수 있다네.” (P.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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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7-13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하신 301페이지 너무 좋네요. 저도 이 책을 갖춰두고 있습니다.

작가의 전작인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도 주인공이 교수였던 걸로 기억해요. 다리 위를 지나다가 자살하려던 여자를 구해주는데 그 여자가 포르투갈 여자였나, 그래서 포르투갈 어에 매력을 느끼고 갑자기 그 언어에 대한 열정으로 막 공부하던 장면이 나오는데, 저는 그 소설을 통틀어 그 장면, 외국어에 열망을 느끼고 몰입해 공부하던-이 제일 좋았어요. 그 장면 때문에 영화를 봤는데, 영화에서는 제가 원했던 만큼의 그런 장면을 볼 수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오래돼서 희미하지만요.

아, 저도 이 책 읽어야겠어요. 저는 나흘 이상이 걸릴듯 합니다.

Falstaff 2023-07-13 17:12   좋아요 0 | URL
다락방 님 댓글 아침에 읽고... 이노무 알라딘은 셀폰에서 답글쓰기가 언짢아서 말입죠, 야간열차 읽어봐야겠구나 싶었는데요, ㅋㅋㅋㅋ 아래 대화모음 보니까 다시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잠자냥 2023-07-13 0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300장으로 다시 써오거라.

Falstaff 2023-07-13 17:11   좋아요 0 | URL
정말 3백 장 쓸 거 같다니까요! 근데 쓰면 뭐합니까. 누가 읽는다고. ㅋㅋㅋ

잠자냥 2023-07-13 17:13   좋아요 0 | URL
저랑 락방이요 ㅋㅋㅋㅋ

잠자냥 2023-07-13 0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큭 저 이 책 사실 작가의 전작이 제겐 별로였어서 이 작품도 노관심이었는데 이 글 보니 읽어보고 싶네요!)

다락방 2023-07-13 10:37   좋아요 1 | URL
리스본이요? ㅎㅎ
저도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만큼 좋진 않았어요. 찌찌뽕~

잠자냥 2023-07-13 11:01   좋아요 0 | URL
찌찌뽕~ 저는 영화도 그냥 그랬어요........-_-

다락방 2023-07-13 11:39   좋아요 0 | URL
저도 영화도 별로 …

Falstaff 2023-07-13 17:13   좋아요 1 | URL
도서관 가셔요. 그게 장땡입니다. 맘에 들면 소장용으로 한 권 사시면 되지요 뭐.
 
토트 씨네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외르케니 이스트반 지음, 정방규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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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작년에 <장미 박람회>를 읽을 때는 이 유대인 출신 헝가리 작가가 이렇게 희비극적이고 다층적으로 해석이 가능한 기막힌 전쟁소설도 쓸 지는 몰랐다. 외르케니는 유대인 출신 헝가리 군으로 독일 연합군 일원이었지만 유대의 낙인 때문에 총도 없이 거의 작업 노예 정도로 총알이 빗발치는 최전선에서 온갖 험한 꼴을 당하다가 소련군에게 포로로 잡혀, 오히려 아우슈비츠보다 더 악명이 높은 소비에트 수용소에서 늘 죽음의 곁에 있었다는 건 <장미 박람회> 독후감에서 말한 바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헝가리는 헝가리 제2 공화국을 열었으나 소련의 무력에 굴복해 문을 닫고, 헝가리 인민 공화국으로 재건, 이후 40년이 넘는 통제의 시대로 접어든다.


​  <토트 씨네>는 세계대전 중일 수도 있고, 제2 공화국 시절일 수도 있다. 어쨌든 전쟁은 3년이 넘게 진행 중이어서 산 좋고 계곡 깊은 시골 마을 마트라센탄나에서도 가구의 60퍼센트 이상이 가족 가운데 한 명 이상의 남자를 전선에 보냈을 정도였다. 이 마을에 토트 러요시 씨는 8년 동안 철도 승무원으로 일하다가 자리를 옮겨 마트라센탄나의 의용 소방대장으로 온 사람이다. 키가 크고 덩치도 좋고, 생기기도 잘 생겼으며 사람이 온후하고 공정해, 동네의 온갖 대소사를 결정할 때가 되면 사람들이 일의 처리에 관해 상의하고 결정을 해 달라고 부탁을 할 정도였다. 토트 씨는 소방대원 정복을 입고 근엄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 라고 의견을 주면, 사람들은 이 의견이란 것이 누구나, 심지어 자기들도 늘 해오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토트 대장의 입에서 나왔기 때문에 마치 틀림없는 것이려니 싶어 하는 현상을 보인고는 했다. 운이 좋은 데다가 사람 자체가 좋은 운에 어울리는 이런 행운아가 살다 보면 정말로 있다. 그게 바로 토트 러요시. 이이는 이십 년 전에 머리슈커 아가씨와 결혼해 아들 줄러를 낳았고, 터울을 조금 두어 다시 총명한 딸 어기커도 낳았는데, 줄러는 무럭무럭, 그리고 건전하게 자라 학교 교사를 하다가 어린 나이에 입대를 하여 군대의 최연소 사관으로 최전방에서 근무중이었다.

  토트 줄러가 최연소 사관이라고 하니까 18세나 19세쯤 되지 않을까 싶다. 동생 어기커가 방년 16세. 그러던 어느 날, 전방 부대에서 줄러가 군사우편을 보내면서 소설은 시작한다.

  줄러의 지휘관으로 버로 소령이란 사람이 있는데, 건강이 악화되어 2주간의 병가를 승인 받았다. 줄러가 이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지휘관에게 쪼르르 달려가 아뢰기를, 저희 집이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아 헝가리 각지에서 휴양객이 몰려오는 마트라센탄나거든요. 소령님의 증세는 육체적 고통이라기보다 저 소비에트 빨치산들의 시도 때도 없는 기습공격 때문에 신경쇠약이 도져 심한 불면증 등 하여튼 신경이 유난히 날카로워져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신경질도 늘어나고 참을성도 없어지고, 조금만 맘에 들지 않아도 필요 이상으로 지랄을 하시고요. 소령님의 가시고자 하는 소령님 아우님 댁이 카드뮴 공장 바로 옆인데 어찌 충분히 요양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일이 이러하니 고려시대 때부터 휴양지로 이름이 높았던 마트라센탄나의 쇤네 집에서 편하게 거하시면 깊은 숲속에서 뿜어져나오는 소나무 향 같은 자연치유 효과로 소령님의 모든 증세가 개운하니 고쳐질 거라고 사료됩니다요. 그래서 버로 소령이 휴가를 보내기 위해 토트 씨네 집으로 향하게 됐고, 이 덕분에 줄러도 다음 차로 따라오라 했으니, 토트 버로는 이제 석달 열흘 만에 목욕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된 거였다.


​  편지를 받은 토트 씨가 제일 먼저 소령을 맞이하기 위해 한 일은, 변소의 정화조 처리에 관해, 유명 법학박사이지만 정화조 청소를 하는 것이 벌이가 두 배 이상이 된다는 걸 알고 직업을 바꾼 박사와 정화통 청소의 적당한 시기에 관한 토론이었다. 냄새가 지독하지는 않지만 느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른 법이라, 소령이 오기 전에 청소를 해야 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이었다. 법학박사는 청소를 하면 냄새가 가라앉기 전까지 오히려 더욱 극악하게 날 터이니, 청소를 하려면 지금보다 오히려 소령이 다녀간 뒤에 하는 것이 좋겠다는, 학자적 양심에 입각한 조언을 받아들인다. 줄러 사관의 엄마 머리슈커는 예전 사장이 있을 당시 청소일을 했던 영화관에 찾아가 새 주인을 만나서 2주일 동안 분무기를 빌려온다. 이는 소령이 소나무 향기를 좋아한다고 해, 솔향을 낼 수 있는 재료를 물에 희석해 소령이 머무는 동안 내내 칙칙 뿌려줄 생각이었다. 동생 어기커는 16세 소녀답게 사춘기적 자아를 찾느라고 절대 쪽팔린 일은 하지 않겠다고 각오를 했건만 결국 오빠를 위하여 오빠의 생사여탈을 손아귀에 잡고 있는 소령의 편의를 위해 볼품없는 손수레를 끌고 동네를 다니면서 필요한 여러 자질구레한 장비를 빌려온다. 마을 사람들은, 전쟁터에 간 남자들이 많은 동네 사람들은 최전선에서 지휘관이 왔다는 말을 듣고, 마치 자기네 남자들의 지휘관이라도 되는 양, 단번에 관심 폭발, 멀리서나마 한 번 봤으면 하는 모양이 역력했고, 그래서 자기들이 빌려줄 수 있는 편의 품목은 서로서로 빌려주기 위해 경쟁까지 할 정도였다.

  드디어 소령이 도착하기로 한 날의 며칠 전. 토트 씨네로 전보 한 통이 온다.


​  “전보. 최연소 사관 토트 줄러 군이 전투지역번호 8/117에서 적국과의 전투에서 영웅적으로 전사했음을 알려드립니다. 헝가리 적십자사.”


​  멀쩡한 남자들이 다 군대로 끌려가 비어 있는 우편 배달부 자리를 임시로 맡고 있는 사람이 주리 아저씨였다. 곱추에다가 말도 더듬고 생각이 단순하며 정신마저 오락가락 하는 인물로 우편물을 거의 다 먼저 뜯어 읽어본 다음에,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한테 온 좋은 소식,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온 나쁜 소식은 전해주지 않고 우체국 처마 밑의 빗물 통에 던져버리는 습관이 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주리 아저씨가 보기에 마을 소방대장 토트 러요시 씨야말로 동네에서 가장 멋있고 점잖고 넉넉한 사람이라, 이렇게 슬프기 그지없는 소식을 전해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입을 싹 씻고 있는 동안 드디어 버스 정류장에 소령이 나타난다. 그것도 두 명이. 한 명은 빼빼 마른 몸매에 강단있는 체력과 누가 봐도 군인 같은 모습. 다른 하나는 작달막한 키에 후줄근한 복장과 장화를 신은 장교. 토트 씨네 세 가족은 군인 같은 소령에게 꽃다발까지 건네며 환영을 했지만 그는 신경질만 벅벅 내고 맥주 한 조끼를 급하게 마신 후에 타고 온 버스를 다시 타고 꽃다발도 든 채로 돌아가버렸다. 엉뚱한 곳에서 내린 것. 그래 다른 한 명의 소령을 데리고 집에 도착한 토트 씨네.

  전장에서 바로 휴양소로 온 버로 소령. 신경은 끝간 데 없이 날카로워져 있고, 온 몸이 전장에서 벌어지는 일에 자동적으로 반응을 한다. 제일 먼저 나타난 증세는 자신의 뒤를 끊임없이 관찰한다는 것. 특히 빨치산의 야간전투가 빈번할 때, 뒤에 사람이 있는지, 있다면 그게 적인지 아군인지 확인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을 터. 소령은 마주 앉은 토트 씨, 앉은 키도 큰 토트 씨의 눈이 자신의 뒤를 쳐다보는 것 같아서 토트 씨에게 계속 묻는다. “왜 내 뒤를 보고 있는 거죠?”

  두 번째로 일상화된 야간전투로 인해 버로 소령의 바이오리듬도 낮에 잠을 자고 밤에 깨어 있는 것. 밤에 잠들지 않는 것만 가지고는 어림도 없어서, 늘 뭔가를 해야 한다는 점. 부대에서는 체스를 두거나, 카드를 하지만 시골사람 토트 씨는 체스도, 카드도 할 줄 모른다. 그리하여 선택한 것이 이곳에선 여자들이나 심심풀이로 가욋돈이나 벌어볼까 싶어 하는 붕대 상자 만들기. 버로 소령은 뜻밖에도 이 상자 만들기에 전심전력을 다 하게 되고, 이런 것들이 보름 동안 누적이 되니까 여태까지 불가침적인 성역이었던 가정에서 토트 씨는 갈 바를 모르게 된다.

  선량한 산골 마을의 가정에도, 전쟁터가 되지는 않았지만, 전쟁터에 있던, 자기 아들의 생사를 가르는 권력을 쥔 지휘관이 오자마자 작은 마을, 작은 가정 하나는 여지없이 전쟁의 폭력 속으로 꼬나 박힌다.

  그걸 외르케니 이슈트반은 이렇게 희비극적으로, 종말 부분의 놀라운 전환이 벌어져 가볍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잔혹극을 선택해, 광기에 대항해 작은 단위를 지키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를 그리고 있다. 마지막 장면 하나만 읽기 위해서라도 구매 버튼을 클릭하거나 도서관 방문을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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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과 수녀 / 쇠물닭 / 폭주 기관차 제안들 34
스타니스와프 이그나찌 비트키에비치 지음, 정보라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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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초에 비트키예비치의 책 두 권, 희곡집 《광인과 수녀 / 쇠물닭 / 폭주 기관차》와 장편소설 <탐욕> 가운데 어느 책을 읽을 지 조금 고민한 적이 있다. 그러다 <탐욕>을 선택했고, 6백쪽이 넘는 형이상학적 묘사를 읽느라고 오뉴월 땡볕 아래 죽을 고생을 한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도 하도 인상 깊게 읽어서 《광인과 수녀 / 쇠물닭 / 폭주 기관차》 역시 머지않아 읽겠다고 다짐을 했다가, 세계 양궁사에 빛나는 우리나라 양궁 선수들이 쏜 화살처럼 시간이 가는지라 이제야 독후감을 쓰는데, 그것도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덕택이었으니 이 게으름을 어찌할꼬.

  비트키예비치는 소설 보다 초기엔 희곡으로 작품활동을 했다고 역자 정보라의 해설에서 쓰여 있는 바, 1921년에 <쇠물닭>을, 23년엔 <광인과 수녀> 그리고 <폭주 기관차>를 발표했다. <탐욕>을 발표한 것이 1927년 말이라 오늘 읽은 희곡 보다는 몇 년 뒤임에도, <탐욕>을 읽느라 워낙 칼로리 소모가 많아 희곡에서도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순수한 형태”로의 창작을 이유로 한 마약 의존과, 형이상학, 초현실주의, 다다이즘, 다중의미의 단어가 빈번하게 출몰할 것이란 두려움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책 머리에 출판사 워크룸 편집부에서 쓴 “이 책에 대하여”라는 소개가 있는데, 읽어보니 비트키예비치가 알프레드 자리, 아우구스트 스트랜드베리, 프랑크 베데킨트, 앙토냉 아르토 등의 계보를 이어갔다고 하고 다행스럽게도 그나마 작품을 읽어본 극작가들이라, 그래도 조금은 덜 무거운 마음으로 페이지를 열었다가, 아니나 다를까, 허덕허덕, 쉽지 않은 시간을 즐겼다.

  비트키예비치를 통해 계보를 넘겨준 극작가들의 면모를 보면 초현실주의, 표현주의, 잔혹극, 부조리 같은 것인데 이이는 그것들이 한 작품에 몽땅 다 들어 있는 것이 나로 하여금 여러 현상을 내포하고 있을 극작품을 읽으며 허덕이게 만들었을 듯하다. 부조리극 하나만 보더라도 이게 결코 만만하지 않은 데, 한 작품 속에서 실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으니, 극장에서 시청각을 통해 극을 보는 대신 오직 활자 위에서만 상상할 수밖에 없는 독자들은, 아이고, 어쩌라는 말이냐고.

  게다가 비트키예비치를 거론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르샤바 출신의 유대인, 아쉬케나지 족속이라는 것. 특히 <쇠물닭>을 읽으면서 주인공 쇠물닭 역할을 하는 엘쥬베타 플레이크프라바츠카라는 26세 가량의 대단히 아름답지만 성적인 매력은 전혀 없는 여성은, 초장부터 남자 주인공 에드가 바우포르에게 총을 맞아 죽임을 당하고, 이후에 어라, 다시 멀쩡하게 살아 등장하긴 하는데, 다시 에드가의 사냥총에 얼굴을 정통으로 두 방이나 맞아 한 번 더 죽음을 맞는 장면을 읽으며, 이거 혹시 구박받는 유대인을 묘사한 거 아냐? 라는 생각도 들었었다. 아니겠지. 폴란드의 유대인 차별이 비록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지만 그래도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결코 심하지는 않았고, 이 작품을 쓴 1923년 만 해도 히틀러가 집권하기 전이라, 딱 꼬집어 유대인을 상징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신 부조리극 특유의 논리도 없고, 사건의 원인도 없고, 그냥 극 가는 대로의 심상만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추측만 할 뿐.

  그래도 내가 읽기로 비트키예비치가 프랑크 베데킨트의 잔혹극 만큼은 아니지만(<룰루>, <눈 뜨는 봄>, <카이트 후작> 등의 눈 부신 작품과는 아무래도 좀 그렇지만), 알프레드 자리의 대표작 <위비 왕>이나 앙또넹 아르또의 <첸치 일가>, 아우구스트 스트랜드베리의 <직조공> 같은 것보다 (한 작품 안에서 봐도) 훨씬 다양하며 그만큼 복합적인 재미도 있고, 스토리 또한 극적이라 훨씬 읽는 맛이 난다. 앗, 그러고 보니 잔혹극의 한 이정표를 세운 앙또넹 아르또는 비트키예비치보다 열 살 이상 적은데 그의 계보를 이었다는 설명은 좀 그렇지 않나 싶기도 하다. 하여간 비트키예비치의 희곡은 그만큼 갑이란 말씀. 당연히 읽기 쉽지 않기는 하지만 말씀이야.

  이렇게 변죽만 울리는 독후감을 쓰는 이유는, 내가 이이의 극작품에 대하여 깊은 이해를 한 것도 아니고, 그의 문법을 알아들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역자 정보라는, 독자 입장에서 화딱지 나게시리, “독자 여러분도, (마약을 빨아야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던) 순수한 형태는 발견 못해도 상관없으니 비트카찌의 뒤틀린 유머 감각과 지면 속 가상의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뒤죽박죽 정신없는 사건들을 함께 한껏 즐겨 주시면 좋겠다.”는 해설을 남겼다. 극작가의 순수한 형태는 못 봐도 좋다고 했으니 일단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뒤죽박죽 앞 뒤 없이 쏟아지는 사건들을 즐기는 것도, 뒤틀린 유머를 찾을 수 있는 감각이 있어야 즐기는 것이지, 앞 뒤 조각을 맞추기에도 정신 사나와 죽겠는데, 이 와중에 다른 언어에서 한 번 바뀐 유머, 그것도 뒤틀린 유머를 어떻게 찾으라는 말인지, 정보라 선생, 이거 너무 한 거 아냐? 몇 번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외국인하고 회의할 때 제일 염병인 것이, 영어로 유머 날리면, 업무 관련해서는 웬만큼 알아 듣지만 이거 무슨 말이지, 양코 아저씨 한 마디에 귓구멍이 콱 막히는 순간, 갑자기 다들 웃고, 박수치고 난리를 치면 그게 왜 농담인지를 이해 못해 “야, 저 새끼가 지금 뭐라고 그런 거냐?” 묻고, “글쎄 말야. 미친 것들이 웃고 지랄이야.”라고 답하는 몇몇 아저씨들 심정도 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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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7-08 1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페이퍼 제목에서 빵 터졌어요. ㅋㅋㅋㅋㅋㅋㅋ. 완전 공감합니다.

Falstaff 2023-07-08 17:49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까! ㅎㅎㅎ 하여튼 쉽지 않은 작품입니다. 어떻게 읽었는지 몰겄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