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친이 치매 진단을 받은지 1년이 되었다. 지난 1년 동안 어머니의 치매 진행을 늦추기 위해서 매일 한 것이 있다. 바로 '인지 학습'이다. 인지 학습은 뇌 기능의 활성화를 위한 여러 학습 활동을 가리킨다. 낱말 풀이, 숫자 계산, 그림 그리기, 퍼즐 맞추기, 종이 접기와 같은 것이 그에 해당한다. 고시 공부 교재를 사들이듯 많은 교재를 사보고 어머니와 함께 공부를 해나갔다. 오늘 글은 치매 환자의 인지 학습에 대한 내 생각을 적어보려 한다.

  사실 치매 환자의 인지 학습이 정확히 어떤 것인가에 대한 표준적 지침이나 학습 도구가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각 지역마다 있는 보건소 부설 치매 안심 센터에서 진행하고 있는 인지 학습 프로그램이 있기는 하다. 그런 프로그램들도 아직까지는 시범 사업적 측면이 강하다. 인지 학습을 진행하려면 무엇보다 교재의 개발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거기에는 당연히 국가 예산이 투입되어야 한다. 나는 보건복지부가 치매 환자의 인지 학습 교재 개발에 어느 정도의 예산을 쓰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 정부의 향후 정책 방향을 알 수 있는 자료는 '제 4차 치매 관리 종합 계획(2021년-2025년)'에 있다. 그것은 선제적 치매 예방과 관리, 치매 환자 치료의 초기 집중 투입, 치매 돌봄의 지역 사회 관리 역량 강화, 치매 환자 가족의 부담 경감을 위한 지원 확대, 이렇게 구성된다.

  거기에서 '선제적 치매 예방과 관리'와 '치매 환자 치료의 초기 집중 투입', 이 두 분야는 치매 환자의 인지 학습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단 의료계는 인지 학습을 '인지 중재 치료'라는 이름으로 병원을 거점으로 한 치료 모델로 끌고 가려는 입장에 서있다(출처: 메디칼업저버 www.monews.co.kr의 2021년도 기사). 나는 치매 환자의 인지 학습을 '질병-치료 모델'에 끼워 맞추는 것이 그다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인지 학습을 병원에서 '중재 치료'로 시행하게 된다면 반드시 '의료 수가'가 매겨져야 한다. 수가의 문제는 정부의 한정된 의료 재정과 연결된다. 또한 치료의 주체를 누구로 할 것이냐도 문제다. 의사가 치매 환자의 인지 학습을 직접적으로 주도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아마도 종합 병원급 이상 대형 병원의 경우, 임상심리사들이 치료팀으로 참여해 해당 학습 치료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병원 주도의 인지 중재 치료가 치매 환자에게 효과적일까? 병원에서 치매 환자의 인지 학습을 얼마나 자주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것도 생각해 봐야 한다. 치매 환자의 인지 학습은 매일 꾸준히 해야하는 것이 최상이다. 현재 초기 치매 환자의 인지 학습은 주간 보호 센터, 보건소 부설 치매 안심 센터, 요양보호사에 의해 보조적으로 이루어지는 학습, 이러한 세 가지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주간 보호 센터의 경우에는 정부에서 인지 학습에 대한 인증을 받은 곳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주간 보호 센터는 그리 많지가 않다. 대다수의 주간 보호 센터에서 이루어지는 인지 학습은 아주 기초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일종의 개인 사업적 측면을 지닌 주간 보호 센터가 인지 학습과 관련된 전문 인력을 채용하는 일도 드물다. 요양보호사는 주로 신체 활동의 보조, 돌봄에 집중하기 때문에 그 자격증에 인지 학습에 대한 전문적 이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치매 안심 센터의 경우 인지 학습 프로그램 자체는 무료로 이루어진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소수의 프로그램에 늘 신청자는 넘쳐 나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치매 안심 센터의 인지 학습에 참여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무엇보다 치매 안심 센터의 프로그램 참여는 접근성과 이동 수단의 제한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환자의 보호자가 직접 환자를 매번 데리고 가서 학습 과정 동안 함께 해야 한다. 자가용이 없는 보호자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환자와 동행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접근성'이라는 측면에서 초기 치매 환자의 인지 학습에 좀 더 나은 선택지가 주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가 자격을 검정하는 '청소년 상담사'처럼 치매 환자의 통합적 학습, 관리에 대한 국가 전문 자격증을 신설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현재 기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치매 환자의 인지 학습에는 체계성과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이유에서 보건 복지부가 이 부분에 대한 로드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전문 인력이 양성된다면 치매 요양 관련 기관과 단체에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환자의 요청이 있다면 그러한 전문 인력의 치매 환자 가정 방문 학습을 지원해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부분은 장기 요양 보험의 예산에 배정하면 된다.

  나는 정부가 장기적으로는 치매 환자의 가족 지원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치매 환자의 돌봄 서비스는 요양 보호사 파견과 기관에 대한 장기 요양 보험 예산 지원에 치중되어 있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치매 환자를 가장 가까이에서 돌보는 가족에 대한 경제적, 정서적 지원 서비스가 확대되어야 한다. 치매 가족을 돌보기 위해 가족 구성원이 직접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면 그에 따른 수당을 지급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특수한 경우이다. 아동 양육 수당처럼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에게 수당을 주고, 심리 상담과 같은 정서적 지원 서비스를 신설하는 것도 시급한 일이다.

  나의 어머니와 우리 가족은 '치매'라는 낯선 길을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 길을 걷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고통스럽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 모두의 지치지 않는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이 길을 걷는 많은 치매 환자와 가족들에게 국가가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오늘의 이 글은 그런 생각에서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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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가끔 구글의 검색창에 내가 알고 지냈던 사람들의 이름을 써넣어 본다. 어젯밤 늦게 그렇게 누군가의 이름을 써보았다. 바로 검색 결과가 나온다. 편의상 그 사람을 'H'라고 부르겠다. 내가 H의 근황을 확인해본 것은 20년만의 일이었다. H는 어느 대학교의 교수가 되어있었다. 당시에 H는 박사 과정 중이었다. 공부를 업으로 삼은 사람이 결국에는 교수가 되었으니 참 잘 되었다 싶었다. 생각난 김에 모교 대학교의 학과 홈페이지에도 들어가 보았다. 나를 가르쳤던 교수님은 이제 은퇴해서 명예 교수의 직함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새삼 세월의 흐름을 실감했다.

  나는 내 기억 속의 누군가를 인터넷의 바다에서 끌어올리는 일은 거의 하지 않는다. 더러는 H처럼 교수가 되었고, 또 어떤 이들은 번듯한 기관이나 단체에서 직함을 달고 있다. 사실 그런 것을 확인하는 일은 꽤나 오래도록 씁쓸함을 남긴다. 그 씁쓸한 감정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다. 나는 타인의 삶을 시기하지 않는다. 다만 나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 싫을 뿐이다.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언젠가 인터넷 자유 게시판에 이런 글이 올라온 것을 읽었다.

  '독일어로 된 칸트 전집을 갖고 있어요. 이거 인터넷 장터에 내놓으면 사갈 사람이 있을까요? 독일에서 유학할 때 산 책인데 앞으로 더 볼 일이 없을 것 같아요. 지금은 그냥 밥솥 운전하면서 살고 있거든요.'

  철학 전공으로 독일 유학까지 갔지만 이제는 주부로 살고 있는 이의 글이었다. 거기에 이런 저런 댓글이 달렸다. 유학까지 가서 공부한 것이 아깝지 않느냐고 묻는 이도 있었다. 그러자 글을 올린 이는 현재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자신의 책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지난 세월 내가 공부했던 것들이 그 주부의 '칸트 전집'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어찌어찌 2개의 대학교에서 10년이란 시간을 공부에 쓰고도 그걸 제대로 써먹은 적이 없다. 그건 어떤 면에서는 '낭비'와 '무의미'에 가까운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를 했으니 되었다, 라는 생각은 그다지 위안이 되지 않는다.

  내가 늘 다니는 산책길에는 3개의 화단이 자리하고 있다. 아마도 아파트 1층에 거주하는 이가 가꾸는 그 화단들은 나름의 특색을 가지고 있다. 두 개의 화단은 계절에 맞추어 아름다운 꽃들이 오밀조밀하게 심어진다. 나는 그 화단을 지나칠 때마다 'have a green thumb'이라는 영어 표현을 떠올린다. 영어에서는 누군가 식물을 가꾸는 재능이 있을 때 그렇게 말한다. 그 화단을 가꾸는 이들은 바로 'green thumb'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나머지 한 군데 화단은 뭐랄까, 'green thumb'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무척 넓은 공간에 오만 잡다한 꽃나무들이 자리하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거기에서 조화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되는대로 늘어놓은 화분과 지주(支柱)대며, 흔하디 흔한 꽃들이 무질서하게 심어졌기 때문이다.

  초봄의 문턱에서 나는 그 화단을 지나가다 주인을 보게 되었다. 나이가 좀 든 영감이었다. 그는 봄을 맞아 겨우내 비워둔 화단을 정비하느라 나름 분주해 보였다. 나는 화단 주인에 대해 잠깐 생각했다. 도대체 무엇이 저 사람을 화단 가꾸기에 몰두하게 만드는가? 내가 보기에 그 주인은 'green thumb'의 재능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 영감에게는 식물에 대한 엄청난 애정이 있었다. 그것이 그를 화단으로 이끄는 원동력이었다. 화단을 가꾸면서 느끼는 보람과 기쁨은 온전히 그 자신의 몫이었다. 거기에 나와 같은 남의 시선과 생각은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나는 오늘 그 화단에서 무리를 지어 피어난 노란 수선화를 보았다. 그 주변에는 볼품없어 보이는 몇 가지 다른 꽃들도 있었다. 그다지 어울리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화사하게 핀 수선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졌다. 그리고 어젯밤 H의 근황을 확인하고 나서 나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 살아있고, 써야할 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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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지 발톱이 자라지 않은 것이 벌써 2달이 지났다. 걱정이 되어서 피부과에 갔더니 의사는 그냥 두고 지켜보아도 괜찮다고 했다. 약간씩 기분나쁘게 욱신거리는 통증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궁금증이 생겼다. 대체 왜 발톱이 자라지 않는가? 인터넷으로 열심히 검색을 해보았다. 찾아보니 조갑탈락증()이라는 병명이 나온다. 조갑탈락증(onychomadesis)은 갑자기 손발톱의 성장이 멈추어서 결국에는 손발톱이 빠지는 것을 말한다. 조갑탈락증은 무좀균이나 기타 다른 감염균에 의해 손발톱의 일부분이 떨어지는 조갑박리증(onycholysis)과는 다른 질환이다.

  그런데 이 조갑탈락증을 일으키는 원인이 불분명하다. 어린아이들의 경우 수족구병(手足口病)을 앓고 바이러스 감염으로 조갑탈락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성인의 경우에는 별 다른 원인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조갑 부위에 가해지는 충격에 의한 외상도 원인으로 꼽기는 한다. 그리고 거기에 스트레스도 포함된다. 스트레스는 손발톱의 성장도 멈추게 만든다. 문제는 조갑탈락증에 대한 명확한 치료법이 없다는 데에 있다. 나를 진찰했던 피부과 의사의 말대로 그냥 내버려 두는 방법 밖에 없다. 그러다 발톱이 빠지던지, 아니면 조금씩 이전의 발톱을 밀어내면서 새로 자라던지 그렇게 되는 모양이었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대표적 질환으로는 가려움증(pruritus)가 있다. 오래전에 인터넷으로 UC 버클리 의대 교수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를 본 적이 있다. 바로 '가려움증'에 대한 강의였다. 그 교수는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의 감각에 대한 이론에서부터 시작해서 데카르트의 지각, 그리고 현대 의학에 이르기까지 가려움증에 대한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었다. 그는 스트레스가 가려움증을 일으키는 절대적 요인이라고 말했다. 당뇨병과 같은 만성 질환에 의한 가려움증이 차지하는 비중은 5%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스트레스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또 다른 무시무시한 병이 있다. 바로 대상포진(Shingles)이다. 나에게 3월은 대상포진을 호되게 앓았던 기억과 결부되어 있다. 피부에 수포와 발진이 나타나기 전에 나는 일주일 동안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다. 그 통증은 일찌기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엄청난 통증이었다. 결국에는 종합 병원에 일주일 동안 입원을 해야만 했다. 퇴원을 하는 것으로 병이 끝나지는 않았다. 나는 한동안 대상포진후 신경통(Postherpetic neuralgia)으로 꽤나 고생했다.

  대상포진을 호되게 앓고 난 뒤에 이 질병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대상포진에 대한 해외 논문들을 죽 찾아서 읽어보았다. 대상포진의 발병 기전은 대략 이러하다. 일반적으로 바이러스는 인체에 질병을 일으킨 이후 면역 시스템에 의해 사멸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이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Varicella-zoster virus, VZV)는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 인체 내부에서 살아남은 VZV는 신경절(神經節, ganglia)에 숨어든다. 일종의 동면 과정에 들어가는 셈이다. 인류가 우주를 탐사하는 지금의 시대에도 어떻게 이 바이러스가 면역 시스템을 교묘하게 회피하는지 그 기전을 알지 못한다. 참으로 놀라운 바이러스이다.

  그렇게 잠들어 있던 바이러스가 어느 순간이 되면 깨어난다. 체력이 저하되고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상황이 그때이다. VZV는 자신이 활동할 때가 왔음을 직감한다. 기지개를 켜고 슬슬 활동을 개시하려는 이 바이러스는 일단 자신이 숨어있던 굴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대상포진의 극심한 통증은 바로 바이러스가 신경절을 뚫고 나오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그렇다. VZV는 신경을 조각 조각 절단내면서 자신의 화려한 부활(!)을 통증으로 알린다.

  대상포진은 신경에 비가역적인 손상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되는 질병이다. 통증의 정도가 심하고 특히 발병 부위가 안면과 머리에 해당한다면 대학 병원의 응급실을 찾는 편이 낫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48시간은 대상포진 치료의 골든 타임이다. 오직 빠른 치료만이 대상포진으로 인한 신경손상과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다. 표준적인 치료법은 피부에 발진이 생긴 후 48시간 이내에 항바이러스제와 스테로이드제를 투여받는 것이다.   

  스트레스와 질병에 대한 나의 글은 이렇게 대상포진에 대한 몸서리처지는 기억으로 끝이 난다. 최근에 내가 석 달 넘게 신경을 쓰는 일이 있었다. 애면글면 속을 끓이는 동안 내 발톱은 성장을 멈추어 버렸다. 내가 바라는 결과는 아니었지만 결국 그 일도 마무리되어가는 참이다. 그러고 보면 병에 걸리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의 마음을 잘 살펴보고 다독이는 데에 있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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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주말 일과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동물 다큐멘터리'를 챙겨보는 일이다. EBS 1에서는 토요일 오후 4시에, KBS 1에서는 주말 오후 5시 10분에 동물 다큐멘터리를 방영한다. EBS의 동물 다큐는 on air 서비스가 되지 않지만, KBS는 인터넷으로도 볼 수 있다. KBS의 on air 창을 보면 동시 접속자수가 뜨는데 대략 3천 명에서 4천 명 정도의 사람들이 본다. 나처럼 동물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그 시청자들이 때로는 동료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내가 KBS 1TV의 '동물의 세계'를 본 세월은 대략 40년에 가깝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성우 이완호 선생의 구수한 해설이 그리워진다. 내가 왜 그렇게 동물 다큐멘터리를 좋아했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에게 동물 다큐멘터리는 일종의 '명상의 시간'이었다. 가만히 넋놓고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차분해졌다. 동물을 인간의 시각이 아닌, 자연의 생명체로서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된 것이 40년 동물 다큐 시청이 남긴 깨달음이다.

  그렇게 보았던 다큐들 가운데 기억 속에 남아있는 에피소드들이 있다. 첫번째는 새끼를 잃은 어느 어미 치타의 이야기이다. 대부분의 치타는 무리를 짓지 않고 단독 생활을 한다. 어미 치타는 온전히 자신의 힘만으로 새끼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 사냥을 나가기 전에 치타는 새끼들을 풀숲에 숨겨둔다. 새끼 치타를 노리는 포식자들은 많다. 사자와 하이에나가 대표적이다. 초원의 포식자들은 한정된 먹이 자원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사정이 그러하니 육식 동물들은 경쟁 관계에 있는 동물의 새끼들을 보면 본능적으로 죽여버린다. 내가 본 다큐 속 어미 치타도 새끼를 그렇게 사자에게 잃었다.

  힘겹게 잡은 사냥감을 가지고 와서 어미는 새끼를 부른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어미는 곧 축 늘어진 새끼의 시체를 풀숲에서 발견한다. 황망함 속에 나즈막하게 울음 소리를 내던 어미는 곧 차분해진다. 그러고 나서는 어미는 자신의 죽은 새끼를 먹어치우기 시작한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내게는 잊혀지지 않는 놀라운 광경이었다.


  사자는 대개의 경우 치타나 하이에나의 새끼를 죽이기만 하고 먹지는 않는다. 죽은 새끼 치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청소부 하이에나들의 뱃속으로 들어갈 터였다. 굳이 인간적인 생각을 보태자면 이렇다. 어미는 자신의 새끼가 어차피 포식자들에 의해 갈갈이 찢겨 먹히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그냥 자신이 처리해 버렸던 것이 아닐까?

  그렇게 충격을 주었던 것과는 다른 애잔함을 느끼게 만든 에피소드도 있다. 늙은 미어캣(meerkat)의 이야기였다. 미어캣 무리의 우두머리는 암컷이다.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 암컷은 그저 무리에서 이런 저런 뒤치다꺼리를 하며 지낸다. 우두머리 암컷이 낳은 새끼들도 돌보고, 다른 미어캣들에게 사냥 기술을 가르치기도 한다.


  이 늙은 미어캣에게는 지혜와 따뜻함이 있었다. 무리의 젊은 수컷 하나가 유독 이 늙은 미어캣을 따라다녔다. 철없는 수컷은 늙은 미어캣에게 짝짓기를 하자고 계속 졸라댔다. 늙은 미어캣은 그럴 때마다 계속 젊은 수컷을 밀어냈다. 생의 끝자락에 놓여있는 늙은 암컷은 젊은 수컷을 마치 어린아이처럼 달랬다. 그러거나 말거나 젊은 수컷 미어캣은 늙은 암컷을 따라다니며 보챈다. 해가 저물 무렵의 초원에서 두 미어캣이 나란히 서있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그저 비정한 약육강식의 모습만 존재할 것 같은 동물의 세계.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거기에도 인간사 못지 않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존재함을 알게 된다. 나는 그 세계에 깃든 조화와 경이로움을 오랫동안 애정해왔다. 가끔은 이런 동물 다큐멘터리가 언제까지 제작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인간이 야기한 기후 변화와 환경 오염으로 인해 생물종의 다양성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서식지를 잃은 동물들은 육지와 바다에서 계속해서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면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걱정이 앞선다. 내가 지구와 동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봐야 일회용품을 덜 쓰고, 소비를 줄이는 것이 전부이다. 나는 지난 세월 동안 내 사유의 근원이 되어준 이 소중한 동물 다큐멘터리를 앞으로도 오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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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03-12 08:08   좋아요 0 | URL
푸른별님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동물의 세계 저도 좋아합니다 얼마 전 읽었던 [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 읽으며 저도 그런 생각했어요 동물의 서계 생각도 많이 났구요. 그들 세상과 우리 세상은 지구별이란 한정된 공간ㅇㅔ서 결국 이어져 있잖아요 무얼 할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푸른별 2023-03-12 21:06   좋아요 0 | URL
은하수님도 ‘동물의 세계‘를 좋아하는군요. 코끼리들의 애도 의식도 특별하지요. 동료와 가족이 죽었을 때 코끼리들이 보여주는 슬픔과 연민이 매우 인간적으로 느껴지거든요. 아주 오래전 까치글방에서 펴낸 ‘코끼리가 울고 있을 때‘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어요. 동물행동학에 대한 책인데 찾아보니 절판이네요. 은하수님이 읽은 책에도 코끼리 이야기가 있군요.
지구와 동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해봅니다. 요즘 내가 읽고 있는 과학 잡지들에는 육식과 축산업에 대한 논의가 많이 올라와요. 나는 그런 기사들을 보며 육식을 점차적으로 줄이려고 노력합니다. 은하수님이 가진 생태적인 마인드가 참 좋네요. 그런 고민들 속에서 작은 실천을 해나가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지난주에 방영된 EBS 다큐 시네마는 '춘희막이(2015)'였다. 본처 막이 할머니와 첩 춘희 할머니의 구구절절한 삶이 담긴 다큐였다. 막이 할머니는 젊은 시절에 아들 둘을 잃는 비극을 겪었다. 할머니의 남편은 대가 끊긴다며 딴살림을 나겠다고 성화를 부렸다. 하는 수 없이 막이 할머니는 자신의 손으로 첩을 골라서 집안에 들였다. 그렇게 해서 들어온 사람이 춘희 할머니였다. 춘희 할머니는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았다. 지적 장애를 가진 춘희 할머니가 아이를 키울 수 없어서, 막이 할머니가 그 아이들을 다 키웠다. 막이 할머니는 춘희 할머니가 아들 하나만 낳으면 내쫓으려 마음을 먹었단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양심을 거스르는 일이어서 그냥 같이 산 세월이 46년이었다.

  막이 할머니의 삶은 일그러진 가부장제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대를 이어야 하는 가부장제적 명분은 막이 할머니의 삶을 춘희 할머니와 엉키게 만들었다. 그 삶의 그늘과 고통은 춘희 할머니도 옥죈다. 장애인의 인권이라는 개념이 희박한 시대에 춘희 할머니는 자신의 집안에서 어떻게든 치워버려야할 존재였을 것이다. 결국은 누군가의 아들을 낳아주는 도구적 존재로, 그리고 '첩'이라는 경멸적인 용어로 규정되는 삶을 살았다. 미움과 연민이 켜켜이 쌓인 두 할머니들의 삶을 고작 96분의 다큐멘터리로 제 3자가 가늠하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다큐를 보고나서 그 후일담이 궁금해졌다. 어린 아이의 지능을 가진 춘희 할머니를 마치 자식처럼 보살폈던 막이 할머니는 고인이 되었다. 춘희 할머니는 요양원에서 잘 지낸다고 했다. 다큐에서 춘희 할머니는 막이 할머니를 '어매', '어마이', '할마이', 여러 호칭으로 부른다. 춘희 할머니에게 막이 할머니는 유일한 친구이며 삶의 동반자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큐를 만든 이는 박혁지 감독이다. '춘희막이' 이후에 만든 작품이 있나 해서 찾아보니 올해 1월에 개봉한 다큐가 있었다. 제목은 '시간을 꿈꾸는 소녀(2023)'. 어린 나이에 신내림을 받은 무당의 성장기를 담아낸 다큐라고 한다. 다큐의 주인공으로 나온 무당은 이전에도 여러 TV 출연으로 이름이 알려진 젊은 처자였다. 어쩌다가 그 무당 처자가 개설한 유튜브 채널도 보게 되었다.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무당의 삶에 대해 궁금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짧은 동영상에 담겨져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이런 제목도 있었다.

  "신(神)발이 떨어진 무당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그 보살(일반적으로 무당은 스스로를 보살, 제자라고 부른다)은 그런 때가 오는 건 다 신의 뜻이라고 말했다. 공부(무당도 공부를 해야한다. 굿의 사설부터 춤과 노래 같은 것들)를 하거나 기도를 한다고 했다. 내게는 그렇게 낯설지 않은 이야기이기는 하다. 오래전, 종교학 강의를 들을 때 샤머니즘에 관심이 생겨서 굿을 보러 다닌 적이 있다. '진적굿'은 그런 면에서 본다면 무당의 '신(神)발'이 떨어졌을 때에 꼭 해야하는 굿이다. 진적굿은 무당 자신이 스스로를 위해 하는 재수굿이다. 자신의 손님들과 가까운 지인들을 불러서 하는 일종의 잔치라고 보면 되겠다. 나는 나이든 만신(巫女를 대접하여 부르는 말)의 진적굿을 보러 갔었다.

  만신의 나이는 칠순에 가까웠다. 그 나이에도 무당으로 살아가려면 자신이 믿고 따르는 신들에게 공손하게 의탁을 해야한다. 굿당에서 신에 사로잡혀 춤을 추는 만신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한편으로는 놀라움과 애잔함이 느껴졌다. 신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삶의 무게란 저런 것이겠구나, 싶었다. 자신을 찾아오는 재가집(무당은 손님을 그렇게 부른다)의 점을 보거나 굿을 해주기 위해서는 신들의 도움 없이는 할 수 없다. 그러니 무당들은 '신(神)발'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명산대처(名山大處) 찾아다니며 열심히 기도를 하는 것이다.

  나는 그 무당 처자의 유튜브를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글발이 떨어진 작가는 무엇을 해야할까? 사실 그것은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전에는 그리 어렵지 않게 써내던 영화 리뷰들을 내가 써내지 못한 지가 좀 되었다. 이른바 'Writer's Block'이라고 부르는 이 현상은 글쓰는 이들에게 찾아오는 직업병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걸 고칠 수 있는 방법이란 것이...'없다'.

  누군가에게 답이 되었던 해결책은 나의 것이 아니다. 글의 신이 있다면 제사라도 지내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런 신이 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뮤즈(Muse)는 그저 신화 속의 표상일 뿐이다. 뭐 어쩌겠는가? 그냥, '악깡버(악으로 깡으로 버티기)'하면서 스스로 그 장벽을 무너뜨리는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이런 잡다한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다큐 '춘희막이'를 보다가 시작한 한밤중 생각의 흐름은 결국 이렇게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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