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밴빌John Banville
1945년 아일랜드 웩스퍼드에서 태어났다. 열두 살 때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을 읽고 영향받아 처음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미술과 건축에 관심을 쏟았다. 세인트 피터스 칼리지를 졸업한 뒤 아일랜드 항공에 취직했고, 1969년 아이리시 프레스>에 입사해 <아이리시타임스>로 이직, 1999년까지 기자생활과 작품활동을 병행했다. 1970년 작품집 롱 랭킨」을 발표하며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발표한 두 편의 장편소설에 ‘아일랜드 소설이라는 평가가 따르자새로운 작품과 주제에 몰두하며 ‘과학 4부작‘ ‘닥터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뉴턴 레터 메피스토와 예술 3부작‘ 증거의 책」 「유령들아테나」를 잇달아 출간해 평단과 독자의 지지를 얻었다. 2005년 발표한 장편소설 「바다로 유례없이 경합이 치열했던 그해 맨부커상을수상하며, 제임스 조이스와 사뮈엘 베케트의 뒤를 잇는 아일랜드 최고의작가로 자리매김했다. 2006년부터 벤저민 블랙‘이라는 필명으로 범죄소설과 대체역사소설을 발표하다가, 2020년 눈부터는 모든소설을 존 밴빌 명의로 출간하고 있다. 2012년 오래된 빛으로 ‘앨릭스와 캐스 클리브 3부작‘을 마무리하며다시금 평단의 찬사와 함께 아일랜드 도서상을 받았다. 가디언 소설상, 래넌 문학상, 프란츠 카프카 상, 유럽문학상, 아스투리아스 왕세자상등을 수상한 밴빌은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그야말로 호화로운 소설, 문장은 물론이거니와 재치 있고 도발적인 요소가 넘쳐나니 읽지 않을 수 없다. 리처드 포드
장난스러운 설계, 경쾌한 문체 이면에 엄청나게 충격적이고 놀라운 결말을 감춘 소설. 뉴욕타임스
러브 스토리에 기대하는 모든 것을 갖춘 소설. 매혹적이고, 설득력 있으며, 당황스럽고, 웃기고슬프고, 잊을 수 없다. 이브닝 스탠더드
2014년 스페인 아스투리아스 왕세자상 2013년 오스트리아 유럽문학상 2012년 아일랜드 도서상 2011년 프란츠 카프카 상
아일랜드인에게 언어를 준 것은 영국인이나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가르쳐준 것은 아일랜드인이다. 오스카 와일드, 조지 버나드 쇼, 제임스조이스, 사뮈엘 베케트에 이어 이제는 밴빌이 이를 증명한다. 데일리 텔레그래프
빌리 그레이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나는 그의 어머니와 사랑에 빠졌다. 사랑은 너무 강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이 경우에 적용될 더 약한 말을 나는 알지 못한다. 이 모든 일은 반백 년 전에 일어났다. 나는열다섯 살이었고 미시즈 그레이는 서른다섯 살이었다. 말하기는 쉽다. 말 자체는 수치를 모르고 절대 놀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직 살아 있을지 모른다. 아마 지금은, 어디 보자. 여든셋, 여든넷이려나? 그정도는 고령도 아니다. 요즘에는, 내가 그녀를 찾아 나선다면 어찌될까? 그건 탐구가 될 것이다. 나는 다시 사랑하고 싶을 것이다. 다시 사랑에 빠지고 싶을 것이다. 딱 한 번만 더. 우리는, 그녀와 나는 원숭이분비선 시술이라도 받고, 오십 년 전처럼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황홀경에 빠져 어쩔 줄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 - P13
하다. 여전히 이 땅에 속해 있다는 가정하에. 당시에는 아주 불행했다. 틀림없이, 아주 불행했다. 용감하게 또 한결같이 명랑한 태도를 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계속 불행하지는 않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가 그녀의 무엇을 기억하고 있을까, 여기 한 해가 소멸해가는 이부드럽고 창백한 날들 속에서? 머나먼 과거의 이미지들이 머릿속에 위글거리고 대개는 그게 기억인지 내가 만들어낸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 둘 사이에 별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차이가 있다 해도.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기억을 만들어내 꾸미고 윤색한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 말을 믿는 쪽이다. ‘기억 여사께서는 은근한 속임수에 대단히 능하니까. 돌아보면 모든 게 유동적이어서 시작도 없고 어떤 끝을 향해 흘러가지도 않는다. 적어도 내가 경험하게 될 끝을 향해서는, 최종적이고 완전한 정지라면몰라도, 내가 전체적인 난파-삶이란 점진적인 난파 외에 달리 무엇이겠는가?-에서 건져내고자 하는 표류물들은 유리 진열장에 전시해놓으면 겉으로는 필연적인 듯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무작위적이다. 뭔가를 표현하겠지만, 아마도, 아마도 설득력 있게 그러겠지만, 그럼에도 무작위적이다. - P14
미시즈 그레이와 나의 첫-그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첫 만남? 그표현은 너무 친밀하고 직접적으로 들리고-사실 그것은 육체의 만남은 아니었기 때문에 동시에 너무 밋밋하게 들린다. 그게 무엇이었든, 질풍과 갑작스러운 비와 씻겨나간 광대한 하늘이 있던 수채화 같은 4월의 어느 날 우리에게 그것이 있었다. 그래. 또다른 4월, 어떤 면에서 이 이야기에서 시간은 늘 4월이다. 그때 나는 열다섯 살짜리 날것 그대로의 소년이었고 미시즈 그레이는 삼십대 중반의 무르익은 유부녀였다. 물론 우리 타운에서 그런 불륜은 일찍이 알려진 적이 없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마 내가 틀렸을 것이다. 이미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일의 재앙적 출발점인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일을 제외하면.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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