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밴빌John Banville

1945년 아일랜드 웩스퍼드에서 태어났다. 열두 살 때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을 읽고 영향받아 처음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미술과 건축에 관심을 쏟았다. 세인트 피터스 칼리지를 졸업한 뒤 아일랜드 항공에 취직했고, 1969년 아이리시 프레스>에 입사해 <아이리시타임스>로 이직, 1999년까지 기자생활과 작품활동을 병행했다.
1970년 작품집 롱 랭킨」을 발표하며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발표한 두 편의 장편소설에 ‘아일랜드 소설이라는 평가가 따르자새로운 작품과 주제에 몰두하며 ‘과학 4부작‘ ‘닥터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뉴턴 레터 메피스토와 예술 3부작‘ 증거의 책」 「유령들아테나」를 잇달아 출간해 평단과 독자의 지지를 얻었다. 2005년 발표한 장편소설 「바다로 유례없이 경합이 치열했던 그해 맨부커상을수상하며, 제임스 조이스와 사뮈엘 베케트의 뒤를 잇는 아일랜드 최고의작가로 자리매김했다. 2006년부터 벤저민 블랙‘이라는 필명으로 범죄소설과 대체역사소설을 발표하다가, 2020년 눈부터는 모든소설을 존 밴빌 명의로 출간하고 있다.
2012년 오래된 빛으로 ‘앨릭스와 캐스 클리브 3부작‘을 마무리하며다시금 평단의 찬사와 함께 아일랜드 도서상을 받았다. 가디언 소설상,
래넌 문학상, 프란츠 카프카 상, 유럽문학상, 아스투리아스 왕세자상등을 수상한 밴빌은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그야말로 호화로운 소설, 문장은 물론이거니와 재치 있고 도발적인 요소가 넘쳐나니 읽지 않을 수 없다.
 리처드 포드


장난스러운 설계, 경쾌한 문체 이면에 엄청나게 충격적이고 놀라운 결말을 감춘 소설.
뉴욕타임스


러브 스토리에 기대하는 모든 것을 갖춘 소설. 매혹적이고, 설득력 있으며, 당황스럽고, 웃기고슬프고, 잊을 수 없다. 
이브닝 스탠더드


2014년 스페인 아스투리아스 왕세자상
2013년 오스트리아 유럽문학상
2012년 아일랜드 도서상
2011년 프란츠 카프카 상


아일랜드인에게 언어를 준 것은 영국인이나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가르쳐준 것은 아일랜드인이다. 오스카 와일드, 조지 버나드 쇼, 제임스조이스, 사뮈엘 베케트에 이어 이제는 밴빌이 이를 증명한다.
데일리 텔레그래프

빌리 그레이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나는 그의 어머니와 사랑에 빠졌다. 사랑은 너무 강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이 경우에 적용될 더 약한 말을 나는 알지 못한다. 이 모든 일은 반백 년 전에 일어났다. 나는열다섯 살이었고 미시즈 그레이는 서른다섯 살이었다. 말하기는 쉽다. 말 자체는 수치를 모르고 절대 놀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직 살아 있을지 모른다. 아마 지금은, 어디 보자. 여든셋, 여든넷이려나? 그정도는 고령도 아니다. 요즘에는, 내가 그녀를 찾아 나선다면 어찌될까? 그건 탐구가 될 것이다. 나는 다시 사랑하고 싶을 것이다. 다시 사랑에 빠지고 싶을 것이다. 딱 한 번만 더. 우리는, 그녀와 나는 원숭이분비선 시술이라도 받고, 오십 년 전처럼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황홀경에 빠져 어쩔 줄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 - P13

하다. 여전히 이 땅에 속해 있다는 가정하에. 당시에는 아주 불행했다.
틀림없이, 아주 불행했다. 용감하게 또 한결같이 명랑한 태도를 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계속 불행하지는 않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가 그녀의 무엇을 기억하고 있을까, 여기 한 해가 소멸해가는 이부드럽고 창백한 날들 속에서? 머나먼 과거의 이미지들이 머릿속에 위글거리고 대개는 그게 기억인지 내가 만들어낸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 둘 사이에 별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차이가 있다 해도.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기억을 만들어내 꾸미고 윤색한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 말을 믿는 쪽이다. ‘기억 여사께서는 은근한 속임수에 대단히 능하니까. 돌아보면 모든 게 유동적이어서 시작도 없고 어떤 끝을 향해 흘러가지도 않는다.
적어도 내가 경험하게 될 끝을 향해서는, 최종적이고 완전한 정지라면몰라도, 내가 전체적인 난파-삶이란 점진적인 난파 외에 달리 무엇이겠는가?-에서 건져내고자 하는 표류물들은 유리 진열장에 전시해놓으면 겉으로는 필연적인 듯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무작위적이다.
뭔가를 표현하겠지만, 아마도, 아마도 설득력 있게 그러겠지만, 그럼에도 무작위적이다. - P14

미시즈 그레이와 나의 첫-그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첫 만남? 그표현은 너무 친밀하고 직접적으로 들리고-사실 그것은 육체의 만남은 아니었기 때문에 동시에 너무 밋밋하게 들린다. 그게 무엇이었든, 질풍과 갑작스러운 비와 씻겨나간 광대한 하늘이 있던 수채화 같은 4월의 어느 날 우리에게 그것이 있었다. 그래. 또다른 4월, 어떤 면에서 이 이야기에서 시간은 늘 4월이다. 그때 나는 열다섯 살짜리 날것 그대로의 소년이었고 미시즈 그레이는 삼십대 중반의 무르익은 유부녀였다. 물론 우리 타운에서 그런 불륜은 일찍이 알려진 적이 없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마 내가 틀렸을 것이다. 이미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일의 재앙적 출발점인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일을 제외하면.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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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온유: 반의반의 반 

가족의 주축이자 자랑이었던 영실이 사실은 자기 허영과 독선으로 외형을 겨우 유지해온 고립과 외로움에 굶주린 한 인간이었음을 밝혀내는 이 소설에는 안정적 문장과 전개, 생생한 인
물 표현과 상황의 여러 면을 접고 접어 들여다보는 신중함까지 적어도 내가 소설에서 기대하는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김금희(소설가)


강보라 바우어의 정원 

창작, 재현의 윤리, 자기 세계를 만들어간다는 것, 먹고사는 문제 등이오디션에 참가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통해 섬세하게 그려지는 작품이었다. 배우 은화와 무재, 정림이 현재 어디에 서 있고 무엇을 선택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지켜보면서 살아내는일의 어려움과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했다. 긴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 
기준영(소설가)


서장원 리틀 프라이드 

좋은 이야기는 서로에게 비슷한 결핍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다른지 깨달으면서 시작된다. 그것을 알려준 「리틀 프라이드」는 내게 2024년 ‘올해의 소설‘이었다.
_인아영(문학평론가)


성해나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촬영 중 아역 배우를 학대한 감독을 계속 추앙해야 하는가. 이 소설의 미덕 중 하나는 계속 추앙할 수 있는 사람과 이젠 그럴 수 없는 사람 사이의 차이, 즉 ‘겪은 만큼 분노하는 그 차이의 존재가 공동체의 윤리적 난세임을 알고 있다는 데 있다.
신형철(문학평론가)


성혜령 원경 

이 아슬아슬한 이야기가 흘러가는 동안 무심코 던져진 듯한 문장 하나로 긴장을확 조였다 풀었다 하는 완급을 따라가는 기분이 짜릿했다. 모든 문장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데 왜그렇게 예민하냐고 물으면 시치미 떼고 웃으며 ‘뭐가?‘라고 되묻는 소설이다. 
인아영(문학평론가)


이희주 최애의 아이 

이희주는 그 모든 순간에 머뭇거리지 않는 것 같았다. 이야기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그것을 전하는 화자는 달변이었다. 읽는 내내 넘쳐흐르는 힘과 리듬이 전해져왔다. (…) 눈을 질끈 감고 파국의 서사를 기꺼이 껴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머리와 무관하게 열려버린 마음 때문이었다. 
정용준(소설가)


현호정 : ~~물결치는~몸~떠다니는~혼~~ 

한 번 읽으면 현란하고 두 번 읽으면 심오하고 세번 읽으면 쓸쓸하다. 모폴로지(형태학적이라고 해야 할 생물학적 상상력과 말 그대로 ‘들린 듯한 입담에 유감없이 경탄했다. 
신형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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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하는 모과


모과 낙과를 생각하며 모과나무 아래를 서성이다

모자란모과 낙과를 모과나무뿌리 가까이 모아두는 마음

모과 낙과는 늦된 가을장마에 얼굴을 떨구고
모과 낙과는 흙에 얼굴을 묻고 눈과 귀를 묻고

몇개나 남았을까, 단풍 든 잎들 뒤에서 노랗게 익어가는모과를 헤아려보다

넌 고집 센 고독이구나, 그러니 저만치의 징검돌이겠구나, 기꺼이 모과에게 손 내밀어보다

모과나무가 떨군 모과 하나를 방에 들여놓고 모과 향기에부풀던 그 가을을 기억하는 내내

긴 기다림에, 바닥을 친 모과가 멍들었다

마지막 모과가 떨어진 겨울부터 - P68

모과잎이 돋고 연분홍 모과꽃이 피고 다시 마지막 모과가떨어지기까지

모과는 모과라서
모과는 모방하는 이름이라서

끝났으나 끝내지 못한 채
다른 사랑의 후렴을 모방하듯

오늘도 모과나무 아래를 서성이는 마음 - P69

두부 이야기


출생의 비밀처럼 자루 속 누런 콩들이 쏟아진다
이야기는 그렇게 실수처럼 시작된다

비긋는 늦여름 저녁 식탁에 놓일 숟가락 개수를 결정해야해, 그게 라스트신이거든

물먹다 나왔는데 또 물먹으며 으깨진다
시간의 맷돌은 돌아가고 똑딱똑딱 떨어져 
고인
너의 나날은 푹푹 삶아져야 고소해지고
거품을 잘 거둬낼수록 순해진다

매 순간의 물과 불 앞에선 묵묵한 캐릭터가 필요해

오랜 짠물은 너의 단맛을 끌어올려준다
몽글한 웅얼거림과 뜨거운 울먹임이 뒤섞여 엉겼다가
무명 보자기에 걸러지면서 단단해지는 이 플롯을
구원이라 할까 벌 아니면 꿈이라 할까

담담한 눈빛과 덤덤한 낯빛으로 맞이하는 밥상에서 - P72

만만찮은 희망으로 만만한 서사를 완성하기 위해

콩밭 매는 마음과 콩밭에 간 마음을 쓸어 담아
써 내려가야 갈 너의 한밤이 희고 깊다

밤새 이야기는 그렇게 쏟아지고 불려져
아침의 너는 또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 P73

곡우


산안개가 높아지더니 벌레가 날아들었다
어치가 자주 울었고 나도 잠시 울었다

별 짙고 소리 높고 기척도 멀어졌다
질 것들 가고 날 것들 오면 잊히기도 하겠다

발 달린 것들의 귀가 쫑긋해지고
발놀림도 분주해져 바깥들 기웃대겠다
밥그릇에 밥풀도 잘 달라붙고
꽃가루에 묻어온 천식도 거풍되겠다

오는 서쪽 비에 가슴이 먼저 젖었으니
가는 동쪽 비에는 등이 먼저 마르겠다

계절도 사랑도 서쪽에서 동쪽으로 간다

저물녘이 자주 붉고 달무리도 넓어졌으니
아침이면 젖은 발로 마른 길 갈 수 있겠다 - P82

여름 이야기


아이스커피 잔에 맺힌 물방울이 미끄러지자
하지의 저녁 창에 소나기가들이쳤다

급히 닫힌 창안은 꽃 속인 듯 깊고

창에 맺힌 빗방울이 폐포처럼 벌떡이다
물 끓는 소리를 내며 가쁘게 흘러내렸다

찬물에 해동되는 굴비가 비릿하고
한소끔 끓어오른 아욱국이 자욱하고

식탁엔 숟가락과 젓가락이 기다랗고

세찬 비는 흠뻑 젖은 귀갓길 신발들을
서, 서, 서, 창안으로 다급히 쓸어 담고 - P90

언니야 우리는


우리는 같은 몸에서 나고 같은 무릎에 앉아 같은 젖을 빨았는데

엄마 다리는 길고 언니 다리는 짧고 내 다리는 더 짧아
긴 다리에 짧은 다리들을 엇갈려 묻고
이거리 저거리 각거리, 천사만사 다만사, 조리김치 장독간, 총채 빗자루 딱,
한 다리씩 빼주고 남는 한 다리는 술래 다리

언니야 우리는 같은 집에서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아버지와 오빠들과 살았는데
너는 언니라서 더 굵고 나는 동생이라서 조금 덜 굵고
남자들을 위해 씻고 닦고 빨고 삶고 낳고 먹이느라 엄마처럼 하얘지도록
너는 언니라서 더 꿇고 나는 동생이라서 조금 덜 꿇고

우리는 같은 가족으로 자라 같은 학교에 다니고 같은 시대를 살았는데 - P91

남자들이 우리에게 어떤 손자국을 남기고 어떤 무릎을 요구했는지
남자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서로의 어깨를떠밀었는지
서로를 손가락질하고 서로에게 어떤 자물쇠를 채웠는지

너는 먼저 나서 잘 싸우고 나는 나중 나서 더 잘 싸우고
너는 먼저 피 흘려서 곰이 되고 나는 나중 피 흘려서 늑대가되어

그래 우리는 같은 성으로 살며 똑같이 결혼을 하고 똑같이 아이들을 키우며 또 같이 울었지

공깃돌을 줍다 빨래하러 가자 손을 잡고
징검다리를 건너다 물에 빠진 내 손을 붙잡아준 네 손
오래 매달리기를 하다 팔이 빠진 나를 등에 업어준 네 손
나란히 엎드려 팝송을 듣고 일기와 편지를 쓰고 생리대를나눠 쓰던 우리 두 손
늦은 밤이면 굳게 잠긴 철대문을 몰래 열어주던 서로의 - P93

손을 붙잡고

그래 언니야 우리는 같은 엄마의 여자였고 서로의 엄마였어 그러니까 서로의 애기였고 서로의 얘기였어

너는 언니라서 더 지치고 나는 동생이라서 덜 지치고
너는 맏딸이라서 더 외롭고 나는 막내딸이라서 덜 외로웠을 뿐
더 더 외롭고 더 더 지친 엄마 다리에 네 
다리와 내 다리를엇갈려 묻고 마주 앉아
퉁퉁 부은 서로의 다리에서 한 다리씩의 어둠을 뽑아
무청 같은 날개를 달아주며

애기 새들처럼 목청껏 한소리로 노래하지
니다리 내다리 짝다리, 천근만근 무다리, 주홍마녀 유리천장, 강물 파도야 싹, - P93

시인의 말


한 날개는 금세 도망칠 쪽으로
한 날개는 끝내 가닿을 쪽으로

기우뚱,

날개 밖 풍파의 서사를
날갯짓의 리듬에 싣고
깃털까지 들썩이는
그 새에 대해

누가 노래할까?

다행이야
응, 아직 울 수 있어서

2023년 5월
정끝별 - P146

정끝별의 시들은 자못 인간에 닿아 있다. ‘절절하다‘는 의미가없어질까 ‘파인다‘라는 말이 사라질까 애가 끓고 잠을 못 이룬다. 그는 시를 조각하지 않는다. 별의 날로 친다. 정끝별의시에서 풍기는 비린내를 좋아한다. 내 속에서 올라오는 소리와 통증이기도 하여서 그의 시에 내 얼굴을 여러번 포갠다. 이시집은 진실을 향한 안간힘으로 발톱을 오므려 세우고 있다.
이 도저하고도 낭창낭창한 슬픔을 태워 질그릇을 구워내다니 슬픔을 다듬는 냄새가 이리도 아름답게 낭자하다니. 시인에게 ‘슬픔의 해체사‘라는 벼슬을 주고만 싶다. 어찌하여서 이시집은, 누대에 걸쳐 승계된 풍경의 슬픔을 장엄히 지난 우리를 마침내 복종이라는 거대한 슬픔 안으로 입국하게 하는가.
이 시집을 덮고 나서도 슬픔을 끊어내지 못할 거라면 그때는슬픔을 측정해야 한다. 정끝별은 이 시집으로 인류의 발굴 안된 새 슬픔을 발굴해냈다. 시집 이상으로 쌓아올린 ‘시집‘의출현이다.

이병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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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끝별

1964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88년 『문학사상』 신인상 시 부문에 「칼레의 바다」외 여섯편의 시가,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부문에 「서늘한 패러디스트의 절망과 모색」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한 후 시쓰기와 평론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시집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삼천갑자 복사빛」 「와락」 「은이가」「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 등이 있다. 현재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에 재직 중이다.

디폴트값


얼마나 오래 혼자인가요?
얼마나 오래 말을 해본 적이 없나요?
얼마나 오래 날짜와 날씨와 요일과 요즘을 잊나요?
얼마나 오래 거울에서 얼굴을 보지 않나요?
얼마나 오래 여기 있다는 걸 아무도 모르
나요?

얼마나 자주 자기를 웃어넘기나요?
얼마나 자주 누군가의 말과 눈빛에 베이나요?
얼마나 자주 이상할 정도로 이를 악무나요?
얼마나 자주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얼마나 자주 칼날에 혀를 대보나요?

얼마나의 해저를
산채로 파고들어 저를 묻고 적을 묻다

두 눈이 불거지고 온몸이 투명해져 스스로 빛을 낼 때면

눈물에 부력이 생기고
가슴에 부레가 차올라
마침내 심해의 바닥을 치고 솟아오른다 언제나 너는 - P10

모래는 뭐래?


모래는 어쩌다 얼굴을 잃었을까?
모래는 무얼 포기하고 모래가 되었을까?
모래는 몇천번의 실패로 모래를 완성했을까?
모래도 그러느라 색과 맛을 다 잊었을까?
모래는 산걸까 죽은걸까?
모래는 공간일까 시간일까?
그니까 모래는 뭘까?

쏟아지는 물음에 뿔뿔이 흩어지며

모래는 어디서 추락했을까?
모래는 무엇에 부서져 저리 닮았을까?
모래는 말보다 별보다 많을까?
모래도 제각각의 이름이 필요하지 않을까?
모래는 어떻게 투명한 유리가 될까?
모래는 우주의 인질일까?
설마 모래가 너일까?

허구한 날의 주인공들처럼 - P33

너였던 내 모든


심장이
몸 밖에 달렸더라면
네 마음을 더 잘 보았을 텐데

뿔이
눈 아래에 돋았더라면
네가 덜 아프게 찔렀을 텐데

그 뿔에
손이라도 있었더라면
네 상처를 더 어루만졌을 텐데

아니, 생각이
나보다 먼저 잠들기만 했어도
너와 더 오래 한집에 머물렀을 텐데

그 집에
바퀴라도 달렸더라면
가출하지 않고도 달아났을 텐데 - P64

그니까 사랑을
볼 수만 있었더라도
서로를 안을 때 그리 파고들지 않았을 텐데

그랬더라면, 우리도 없었겠지?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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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첫 베이커를 좋아한다.
투명한 밤이 떠오르는 그의 목소리를 사랑하고, 나른하고도 낭만적인 트럼펫 연주에 매료되곤 한다. 노트북과 아이패드 배경화면은 음반 녹음중인 쳇 베이커의 사진이며, 그의 곡을 컬러링으로 설정해둔 지도 꽤 되었다. 기댈 곳 없던 시기에 그의 음악은내게 안식을 주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는 위대한 트럼페터이자 보컬이지만, 마약을 사기 위해 연인의 물건을 전당포에 넘기고 전화선을 목에 감는 등의 폭행을 일삼던 추악한 인간이기도 하다. 달콤한 목소리 뒤에 감춰진 그의 - P185

악마성은 선득하고 경악스럽지만......
마찬가지로 나는 우디 앨런을 좋아한다.
친구와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에서 어떤 장면이 가장 좋았는지 공유하고, <카이로의 붉은 장미>와 <맨해튼> 중 어떤 작품이 더 취향인지 열띠게 논하는 과정이 즐겁다. 여전히 <매치 포인트>를 보며 감탄하고, <블루 재스민>을 돌려 보며 나는 죽었다깨나도 저런 역작은 못 만들 거라 감복하지만……
우디 앨런과 관련된 불쾌하고 끔찍한 스캔들은 구태여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다.
쳇 베이커의 음악이 듣고 싶거나, 우디 앨런의 신작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는 고민에 잠긴다. 저 사람의 작품을 과연 듣고 보는게 옳을까. 그래도 될까. 그러나 결국 듣고 본다. 숨어서, 묘한 죄책감을 느끼며.
내가 좋아하는 건 그들의 작품이지 인격이나 삶이 아니라고 합리화하기도, 판단을 유보하기도 하지만 피해자의 항변과 명징한 사실로부터 나는 늘 자유롭지 못하고 그래서 더 복잡해진다. - P185

이 소설은 그러한 상충에서 기인했다. 죄의식과 사랑(혹은 기호)이라는 얇은 막 하나를 오가며 번민하는 나 또는 우리의 내면을 마주보고 싶어서.
하드보드지처럼 두껍고 견고한 사랑도 있을 
테지만, 대개의 사랑은 습자지 같아서 단 한 방울의 반감과 의심으로도 쉽게 찢어지는 것 같다. - P186

그러나 어떤 사랑은 푹 젖어도 찢어지지 않고 도리어 곤죽처럼 질퍽해진다. 사랑이고 죄의식이고 찬미고 경멸이고 죄다 흡수해 종내 원형을 알 수 없는 상태로.

누군가를 ‘그런 사람‘이라 단언하기보다 ‘그럴 수도 있는 사람‘ 이라는 여지를 두고 깊고 길게 들여다보는 것이 이해고 사랑이라여기지만, 그러한 방식에도 늘 변수와 병폐가 존재하는 것 같다. 툭 튀어나온 부분을 다듬을 수 있는 영화와 달리, 현실은 소거와 편집이 불가하므로 이미 벌어진 사건을 ‘그럴 수도 있는 일‘로 무감히 넘기는 건 기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심결에 옹호와 이해를 동일시하거나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맹목적인 변호를 이어간다.
이것을 단순히 병적 애착 혹은 집착이라 부르는 게 옳은지. 그안에 담긴 진심마저 쉬이 배제해버리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불신 없는 무조건적 사랑은 과연 가능한지 문득 의문이 든다.
가부를 나눌 수 없는 무수한 문제 속에서 우리는 자주 구겨지고 찢어지며 괴리를 겪는다. - P187

길티 플레저는 죄책감을 뜻하는 길티 
guilty와 기쁨을 의미하는 플레저 pleasure의 합성어로, 어떤 행위로부터 즐거움을 느끼지만 그를 통해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기에 떳떳해질 수 없는 마음을 가리킨다. 예컨대 귀지 파기 영상이나 숨어서 듣는 나만의 명곡과 같이, 남들 앞에 당당하게 드러낼 수 없지만 나에게는 은밀한 만족감을 선사하는 그 무언가를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을것이다. 성해나의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는 이 길티 플레저를 경유해 우리의 일상 곳곳에 잠재해 있으나 입 밖으로 내뱉기는 어려운 감정들을 포착하는 소설이다.
‘나‘는 우연히 영화 <인간 불신>을 본 것을 계기로 영화감독 김곤의 열렬한 팬이 된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하며 일약 스타로 부상한 그는 커피 찌꺼기로 염색한 셔츠를 입고, - P188

특정 출판사 시집의 애독자이자, 즐겨 마시는 맥주가 있는, 자신만의 취향이 분명한 사람이다. ‘나‘는 수려한 외모와 예술성을 갖힘을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올바르고 ‘힙‘한 취향을 가진 사람을 지지한다는 데서 오는 만족감을 느낀다. 김곤은 고급스러운 문화적 취향을 가진 자이기에 ‘나‘의 욕망의 대상이 되며, ‘나‘에게 김곤의 팬이 되는 일은 스스로를 ‘예술이랑 먼 사람‘으로 규정지었던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내가 다르다는 식의 단절과 자기규정의 수단으로 작동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개인의 취향이란 순수한 기호나 선호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계급적 구별 짓기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고급문화와 저급문화 중무엇을 향유하는지에 따라 예술적 취향이 구분되며, 취향은 각각의 사람들이 어떤 계급에 속해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와 같은 문화적 계급 질서는 개인이 수치심이나 열등감에 빠지지 않고 자유로이 자신의 취향과 선호를 드러내는 일을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맥락에서 ‘길티 플레저‘는 흔히 유치하거나 예술적 가치가 낮다고 여겨지는 작품에서 모종의 즐거움을 느낄 때 발생하는 양가감정이다. 고상하지 못한 자신의 취향으로 인해 자신 역시 형편없는 사람으로 비춰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그것이 주는 쾌락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 P189

내가 타인의 고통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인가, 의심도 들었다. 나는 김곤이 혐오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안쓰러웠다. 만일그 사건이 사실이더라도 쪽잠 자며 촬영하다보면 누구든 예민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실수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인데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면 나 자신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근데 그래도 되는 건가. 실수라 해도 일곱 살 난 아이에게 그럴 수 있는 걸까. 친구들 말처럼 만약 그게 내 아이의 일이었대도나는 김곤의 영화를 몇 번씩 관람하고 굿즈를 소비할 수 있었을까. 늘 헷갈렸지만 그럼에도 김곤의 신작을 기다렸고 그의 기사에 선플을 달았다. (155쪽)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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