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독립출판 퇴근 후 시리즈 14
구선아 지음 / 알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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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편집 인턴, 독서지도 강의, 사서직 근무, 온라인 서점 매니저 등이 내가 거쳐온 이력들이다. 여기에 출판 번역 수료까지...전공과는 무관하게 그저 책이 좋았기 때문에 경험할 수 있는 일이었다. 가장 하고 싶던 책방 운영과 에디터 업무는 과장을 조금 더해 수백번 넘게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앞서 나열한 업무들은 결국 가장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기위한 차선이었던 셈이다. 이제 평균적 수치로 살아온 날과 앞으로 남은 날들이 비슷해진 나이에 더이상 망설일 시간도 그럴 이유도 없기에 과감하게 작은 책방과 독립출판사 운영을 심각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며 책을 살피던 중 이 두가지를 실제 운영중인 구선아 작가님의 진짜 필요한 정보가 담긴 <퇴근 후, 독립출판>을 만나게 되었다. 실무를 다룬 책이 이전에도 물론 있었고, 유사한 직종에 근무하다보니 익숙한부분도 있었지만 깔끔하게 작업 과정과 유의해야 할 부분들이 군더더기 없이 설명되어 있어 좋았다. 책방을 운영하는 운영자들의 에세이들도 분명 도움이 되었지만 막상 책을 인쇄소에 맡길 때 작성된 원고를 어떤 프로그램을 이용해야하고 저작권과 관련한 주의사항들은 저자들의 에피소드와 관련된 부분이 아니면 전혀 알 수 없었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출산 전에 육아와 관련된 책을 보며 어느정도 짐작하던 것과 막상 아이가 태어나서 필요한 정보들과는 차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임신 중에는 각 단계별 필요한 교구와 프랑스식 혹은 유대인들의 육아법과 관련된 책을 보며공부했으나 신생아 때는 아이가 우는 이유, 통잠 방법들이 가장 중요한 일인 것처럼 출판과 책방운영도 실전에서 꼭 필요한 것들을 잘 알려주는 책이 꼭 필요했다. 디자인도 다 맡기거나 직접 제작해서 넘긴다고 해도 당장 종이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한다면 자신의 첫 책을 받아을 때 무언가 잘못된 것 같은 기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종이는 가볍지만 두께는 좀 있어야하고 판형에 따른 비용차이를 쉽게 생각해예산보다 비용이 초과될 수 있는 위험도 충분히 존재한다. 원하는 종이가 분명 있는데도 몰라서 비용도 초과되었는데 맘에도 들지 않는다면 이또한 비극이 아니겠는가.



제가 원고만 써서 인쇄소에 넘기면 알아서 해주는 건가요?
잘못된 거는 수정해서 인쇄해 주는 거죠?
130쪽
출판사 에디터가 직접 알아서 다 해주는 경우라면 모를까 직접 출판을 하려면 당연히 데이터와 발주서 모두 전달자인나의 몫이다. 책에서는 위의 해당되는 내용 뿐 아니라서점과 계약하는 방법은 물론 마케팅에 관한 부분도 빠짐없이 다루고 있다. 콘텐츠가 아직 준비되지 않은 사람부터, 인쇄소에 맡기기만 하면 될 것 같은 예비 작가 그리고 인쇄된 책을 이제 막 받아본 신입 작가분들까지 한 번 이상은 꼭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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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쯤 나 혼자 어디라도 가야겠다 - 가볍게 떠나는 30가지 일상 탈출 여행법
장은정 지음 / 북라이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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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누군가와 함께 떠나는 것도 좋지만 혼자라도 가까운 곳으로 잠시 탈출해보는 재미도 정말 좋다. 장은정 작가의 <하루쯤 나 혼자 어디라도 가야겠다>는 1인 여행자를 위해 최적화된 책이지만 뭐, 둘이면 어떻고 여럿이면 어떤가.  일단 책속 여행부터 가보자.

걷고 싶을 때 걷고 멈추고 싶을 때 멈추는 것, 내가 원하는 것에 귀 기울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시간.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으로 채워진 그 여행을 통해 나는 나와 훨씬 더 가까워졌다. - 프롤로그 중에서

나와 가까워질 수 있는 오롯이 나를 위한 여행인 만큼 책에서 여행지를 소개하는 방식은 계절별로, MBTI 유형별 추천지도 있어 참고하면 좋다. 나의 유형은 어디에 속하는지 굳이 말하고 싶지 않지만 말하지 않아도 북에 홀릭해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으니 책을 테마로 한 여행지에 대한 페이지들을 제일 먼저 읽어보았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책방, 회원제 책방 그리고 책과 함께 잠들 수 있는 여행지도 있는데 파주 라이브러리스테이 지지향은 바로 북스테이가 가능한 여행지다. 과거에는 템플스테이만 명상과 이색체험으로 자주 소개가 되었는데 이제는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북스테이를 할 수 있다. 이 곳 주변은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축물들이 밀집되어 있어 책뿐 아니라 건축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투숙하기에 좋을 것 같다. 아직 초보엄마지만 엄마라는 단어만 보이면 눈과 마음이 동시에 풍덩 하고 빠져버린다. ‘엄마의, 서재‘는 그런 까닭에 꼭 가보고 싶은 곳인데 큐레이션 또한 엄마들을 위해 마련되어 있을 뿐 아니라 엄마가 아닌 사람들은 잠시 둘러보는 것외에 서재이용은 불가능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차별이 될 수 있지만 엄마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자신을 위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책을 잠시 밀어두면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사천 메가박스 삼천포‘가 맘에 들었다. 사실 삼십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바다에 대한 호감도가 크지 않았다. 지인을 돌보기 위해 한달 반가량 바닷가 근처에서 지내야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매일 아침 해변가를 따라 달리던 것을 계기로 바다에 대한 열정이 타올랐다고 해야할까. 영화는 단 한 편이었지만 대학생 시절 직접 시나리오도 써봤을 만큼 진심인 편이었다. 출간 이후 아이를 중심으로 변해버린 일상덕에 바다도, 영화도 아주 멀리 떠나있었는데 사천 메가박스 삼천포 글을 보자마자 이곳이야 말로 내가 가야할 곳이 아닌가 싶었다. 30명 안팎의 인원만 입장가능하고, 오션 뷰를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영화관, 사진만 봐도 이렇게 좋은데 부디 멀지 않은 미래에 꼭 가볼 수 있으면 좋겠다.



책과 영화 그리고 바다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이런 곳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그저 따뜻한 한잔의 차와 조용한 산사를 그리워 하는 이들, 즉흥적으로 식도락 여행을 즐기고 싶은 이들이라면 또 그에 맞는 여행지가 마련되어 있다. 이 책은 컨텐츠 자체로도 풍성하지만 책제목과 저자의 이야기 부터가 움츠려있던 여행자의 영혼을 깨우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야말로, 하루쯤 나 혼자 어디라도 가야겠다, 싶을 때 이 책 한 권만 들고 나가보자. 적어도 어디를 가야할 지 몰라서 못갈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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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셰프 서유구의 과자 이야기 2 : 당전과·포과편 임원경제지 전통음식 복원 및 현대화 시리즈 9
서유구 외 지음, 임원경제연구소 외 옮김 / 자연경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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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배가 조금 아프거나 날씨가 쌀쌀할 때면 설탕 녹인물을 조금씩 마셨던 기억이 난다. 엄마의 마법과도 같았던 그달달한 물을 성장하며 약이나 차, 코코아 그리고 커피등을 마시면서 조금씩 잊고 살았다. 대신 시럽이 듬뿍 묻혀진 정과류와 도너츠 등을 신체적, 심리적 기운이 떨어졌을 때 ‘당 떨어졌어‘라며 먹고 있기에 <조선셰프 서유구의 과자 이야기 2>의당전과, 포과편이 정말 반가워 읽고 싶었다. 


이 귀한 설탕을 얻는 방법은 사탕수수를 재배해야 가능한 것인데 안타깝게도 조선시대에도 제대로 된 사탕수수 재배가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책에서도 여러차례 언급되는 것처럼 좋은 식재가 있음에도 정작 설탕이 없어 제대로 조리되지못하고 보관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설탕이라고 하면 요즘에는 살을 찌우는 것, 당의 수치를 높여 건강을 해치는 주범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각종 차나 청을 만들 때에도 설탕은 반드시 필요하다. 연근 조림도 설탕을 넣어 조리하는데 책에서소개된 방식은 최근 각광받고 있는 수비드 조리법과 유사한 방식이었다. 천천히 밀봉 상태로 조리하면서 설탕이 재료에찬찬히 그리고 깊게 잘 배어 향과 맛이 그윽하다고 한다. 평소에 빠르게 조리하여 청을 넣거나 꿀 등을 입혀 반짝 반짝 윤이 나게 만드는 방법과는 조금 다른 방식인 것이다. 앞서 어릴 적 엄마가 타준 설탕물을 아프거나 서늘해지면 마셨다고 했는데 실제 설탕이 과거에는 약으로 쓰였다는 이야기가 책에 나온다.


옛날에는 설탕이 약으로 쓰였다. 비위를 상하게 하거나 몹시 쓴 약을 먹은 다음에는 입가심용으로 설탕을 먹었다. 소화가안될 때도 설탕을 먹었고 심지어 배가 아플 때나 피곤할 때도 설탕을 물에 타먹었다. 93쪽


입이 심심할 때 흔하게 찾게 되는 것이 오징어, 육포 등인데 과일 또한 말려서 포로 먹을 수 있는 방법도 소개되어 있다. 흔히 변비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먹는 말린 자두 푸룬은 이건(자두)방으로 불리는데 자두 보다 더 끌리는 레시피는 다름아닌 살구 였다. 살구를 참 좋아하지만 과육 자체가 워낙 부들부들 해 보관이 어려운 데 행포(살구)방으로 만들면 보다 더길게 즐길 수 있다. 행포방 또한 이건 방처럼 변비예방에 도움을 준다. 또 빛이 말린 자두 보다 환하고 고와 고명으로 사용하기에 훨씬 더 활용도가 높아보였다. 


설탕과 관련된 조리법 중 가장 익숙한 것은 다양한 과일을 활용한 청으로 담그는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날씨가 추워지면유자청이 간절한데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유자를 청으로 담그는 것이 대표적인 것이 오히려 유자에게는 미안한 일이라는 것이다.


<정조지>와 <규합총서> 속에 있는 조리법만 봐도 지금보다 쓰임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자 껍질과 속을 꿀에 조려 정과를 만들거나 전복 김치에 유자를 채 쳐 넣어 귀한 전복에 향을 더했다. 동치미에도 유자를 통째로 넣고 나중에 썰고 국물에 꿀을 타고 석류에 잣을 뿌려 먹으면 맑고 산뜻하여 맛이 좋다고 했다. 243쪽


부유의 상징이기도 했다는 설탕은 몇년 전 정제 방식에 따라 더 좋고 나쁨이 있다는 기사가 있었는데 흔히 흑설탕이 백설탕보다 더 좋다거나 둘다 어느 정도 수고가 더해지므로 갈색 설탕이 가장 안전하다는 내용들이었다.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오징어 게임>덕에 달고나가 유행하면서 설탕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시점, 설탕을 이용한 다양한 과자와 청을 옛방식에 현대의 기술을 더한 이 책을 보며 조리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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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0-19 1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유구의 정조지에 놀라운 음식이 많던데 이런 과자류까지 대단합니다. 저도 살구 좋아라하는데요 행포방 이름도 고와라. 리제 님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

mini74 2021-10-19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 제가 아는 그 실학자 서유구인가요? ㅎㅎ 조선시대 설탕 요리법 재미있어요 ㅎㅎ 저도 읽고 싶어지네요 ~~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유미리 지음, 강방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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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시온공원에서 지내는 노숙자 ‘나‘는 고향 후쿠시마에서 생계를 위해 12살 때부터 집을 떠났다. 밭일부터 바닷가에 이르기 까지 그는 가리지 않고 일을했고 도쿄올림픽을 위해 도쿄에 경기장을 건축할 무렵에는 높은 보수를 위해 잔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일년에 단 두 번, 명절뿐이었다. 아들이 타고 싶다던 헬기를 돈이 없다는 이유로 태워주지 못했을 때, 그 아쉬움과 속상함이 그렇게 오래 남겨질 줄은 몰랐다. 21세. 아들이 죽었을 때의 나이다. 아들의 죽음은 더이상 그를 ‘살아있게‘하지 못했다. 장례식을 마치고 거울에 비춰진 그의 모습은 ‘끝난‘상태였다. 아직 부모와 동생들, 그리고 아내와 딸이 남아있기에 그는 다시 집을 떠나 노동자의 삶을 살아간다. 모든게 끝난 것 같았어도 죽은 것은 아들이고 그는 여전히 살아있고 돌아갈 곳은 ‘집‘이었던 그가 어쩌다 돌아갈 집의 존재를 상실하게 되었을까.


공원에 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엄청나게 비밀스럽거나 감동적이지 않다. 아내없이 혼자서 밥을 차려먹지 못하는 남편을 둔 가정주부, 말린 정어리에 대한 극찬과 건강을 염려하는 중년들의 대화 등 우리가 쉽게 말하는 ‘소소한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식인처럼 보이는 시게를 통해 우에노시온공원의 역사를 들여주고, 그 역사속에서 위대한 장군이 역적으로 남을 수 밖에 없는 삶의 아이러니까지 덤덤하게 이야기는 이어진다. 도대체 이런 이야기를 다 어떻게 잘 듣고 있을 수 있었던 것인지 글의 초반과 후반, 그리고 중간 곳곳에 단서를 보여준다.


작가는 노숙자들이 천황과 그의 가족들의 행행차로 인해 강제퇴거 당하는 일들을 소설을 쓰기 전에 취재했었다고 한다. 그들의 사연을 취재하는 동안 한 노숙자에게 들었던 이야기는, 집을 가진 이들은 그렇지 못한 이들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말이었다. 비단 노숙자와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후쿠시마를 먼 나라에서 바라보는 이들과 그 안에서 이유없이 배제되고 차별당하는 후쿠시마 사람들의 입장도 나는 그저 안타깝다 정도밖에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작가의 역할이 아마도 그런 것이리라. 저자의 말처럼 갈 곳도 있을 곳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쓴다는 그 말대로 이 소설이 아니었더라면 분명 일본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판단만 비판할 뿐 정작 후쿠시마 안에서 이미 다 잃었으면서도 생을 잃지는 못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잠시라도 깊게 생각해보진 않았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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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호텔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2
마리 르도네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림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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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는 여태껏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았다. 하긴 쥐 탓도 아닌 것이, 야영지에 쓰레기를 버려 썩게 한 공사판 사람들 잘못이다.
152쪽

소설 <장엄호텔>를 읽기 시작한 초반에는 지금보다 수십년전, 늪 주변에 들어선 호텔의 모습은 음침하고 우울한 기운만 느껴졌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호텔을 물려받고, 호텔의 운영권과 함께 두 언니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삶은 굳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유쾌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제대로 연기를 배운 적도 없는데다 엄마와 함께 수많은 곳을 여행하면서도 어찌된 영문인지 호텔에서만 머물던 사람보다 더 갇힌 삶을 산 것 같은 폐쇄적인 성격은 사람들, 자신의 이야기에 적당한 선을 두고 지켜보는 이들에게만큼은 호의적이다. 적당히 대화를 나누고, 동생의 수고 덕에 청소도, 빨래도 심지어 아다의 병간호까지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삶은 그럭저럭 동생에 비하면 괜찮아 보였다. 짙은데다 꽤 오랜시간을 공들여야 괜찮아보이는 병색이 짙은 아다 역시 맘대로 부릴 수 있는 막내가 있어 그나마 괜찮은 듯 싶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늪의 냄새가 호텔에 더 번질수록 두 자매 뿐 아니라 장기간 투숙하던 공사 인부들마저 병들어 떠나버린다. 글에는 유머러스함도 없고 일말의따스한 인간미도 없었다. 그런데도 지루하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오늘은 사람들이 배수구 때문에 불평을 하고, 어차피 빚은 여전하고 이렇다할 희망사항도 없지만 살아가는 것, 불평사항이 줄지도 늘지도,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것이 생겨나도 그랬다. 역자의 후기를 읽지 않아도 서두에 발췌한 문장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팬데믹 시대, 지금 이 소설을 읽고 있는 내가 살아가는 시대였다. 특정한 누구에 대한 원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작정 평화로운 삶도 아닌 지금, 나 또한 이 소설의 화자처럼 그렇게 약간의 불편과 끝나지 않고 지속될 것 같은 짐들의 무게를 견딘다는 느낌도 없이 견뎌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니들은 벌써 조금은 잊혔다. 나도 기억력이 나쁜가보다. 풀이 무덤을 덮기 시작한다. 호텔로 돌아가는 그 순간이 참 좋다. 멀리 호텔이 보인다. 159쪽

독자의 시선으로 보면 호텔은 부동의 짐이자 삶의 시작이며끝이다. 저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간다는 말이 참이라면 화자에게 십자가는 호텔 그 자체였을 것이다. 늪은 한 번 삼키면 제스스로 결코 토해내지 않는다. 누군가 잡아당기려 해도 쉽사리 놓아주지 않는다. 화자에게 가족이 늪과 같았는지, 아니면 호텔이 그러했는지 독자인 나는 명확하게 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장엄호텔에 머물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까닭은 앞서 언급한 팬데믹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외출할 때 자연스럽게 마스크를 착용하고, 언제 벗을 수 있을까 했던 불편함이 이제는 마스크에 색을 입히고 디자인을 변형하는 듯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마치 화자가 장엄호텔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처럼 그렇게. 소설의 담담한 문체가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던 것과 꼭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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