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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타이완 여행기 - 2024 전미도서상 번역부문 수상, 2024 일본번역대상 수상, 2021 타이완 금정상 수상
양솽쯔 지음, 김이삭 옮김 / 마티스블루 / 2025년 11월
평점 :
1938 타이완 여행기
양솽쯔의 장편소설 <1938 타이완 여행기>는 조금 독특한 설정을 가지고 있다. 해당 여행기의 저자 ‘아오야마 치즈코’가 실제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이후의 역자가 존재한다는 설정 전부가 모두 ‘양솽쯔’의 설정한 허구이기 때문이다. ‘초판 서문’까지 등장하기 때문에 초반에 ‘일뤄두기’를 제대로 봐두지 않으면 조금 혼란스러울 수 있다. 그치만 이런 혼란마저 포용할 만큼 이야기가 흥미롭기는 했다. 특히 먹방이나 음식관련 문학이나 만화 혹은 영화나 드라마 등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타이완을 다녀온 적이 없거나 잘 알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맛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다.
“’사기’에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왕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먹는 걸 하늘로 삼는다.’ 그러니까 먹을 수 있다는 건 복인 셈이지요.” 83쪽
아오야마 치즈코. 일본 규슈지방 작가로 미혼이며 ‘요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대식가이자 미식가이다. 제대로 된 여행을 하려면 반년 정도 현지에서 살아보는 정도가 되어야 제대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한 아오야마는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글은 쓸 수 없어 타이완 방문 기회를 포기한다. 하지만 본국 보다 조금 늦게 타이완에서 자신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 인기를 끌면서 숙식은 물론 통역가까지 지원되는 타이완 순회 강연 제안을 받게 되어 어서 빨리 결혼하라는 식구들의 걱정을 뒤로 하고 타이완 여행을 시작한다. 책을 읽기 전에 아오야마와 현지 타이완 통역사 간의 우정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샤오첸이 통역을 담당하는 순간부터 슬슬 먹방의 시작인가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필기를 정리하다가 면이 먹고 싶다고 외치면, 샤오첸이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춰 바지락 달걀 국수와 으깬 참마 국수를 내주었다. 성경에는 하느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는 말이 있다. 내가 볶음 쌀국수, 당면탕, 삶은 국수, 날달걀 우동 비빔면을 먹겠다고 하면, 샤오첸은 식탁을 바로 빛나게 만들었다. 128쪽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타이중 숙소를 중심으로 위아래 기차를 타고 강연을 다니며 지역 특산물과 간식 부터 성찬까지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여행을 다녀와 글을 쓰는 아오야마를 위해 끼니 때마다 타이완의 현지식을 요리하는 샤오첸의 등장도 감탄 그자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무리 1930년대라 할 지라도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샤오첸의 놀라운 요리솜씨와 회화실력, 게다가 아오야마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처세술과 고난도의 심리술까지 능수능란한 샤오첸의 정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둘의 사이가 정말 가까워질수록 샤오첸은 점점 더 아오야마에게 알 수 없는 말로 선을 긋는 듯 싶더니 급기야 통역마저 그만두기에 이른다. 샤오첸이 도대체 왜 저럴까 싶었는데 미시마가 털어놓는 두 사람의 관계가 제3자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를 보는 순간 아오야마 만큼은 아니었겠지만 나 또한 머리를 세게 얻어 맞은 듯 머리가 멍해졌다. 동시에 미시마가 지적한 부분들이 내게도 있었음을 깨닫고 이미 끊어진 과거의 관계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소설의 핵심내용이라 전부 말할 순 없지만 이 소설의 배경이 되고, 원저자인 양솽쯔가 이런 구성의 글을 기획했는지도 단박에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제국의 강경한 방식은 확실히 불쾌하죠. 하지만 벚꽃은 죄가 없는걸요. 샤오첸과 함께 벚꽃을 구경하러 갈 수 있다면, 꿈을 꾸는 기분일 거예요.
397쪽
어쩌면 우리나라와 대만 그리고 주권을 빼앗겨 본 적이 있는 국가의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감상이 많이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호불호가 나뉠거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기회가 된다면 우리나라의 다른 독자들은 물론 해외의 역사적 배경이 같거나 다른 독자들과도 감상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계절, 좋아하는 간식을 두고 혹은 차와 술을 즐기며 누군가와 함께 읽어도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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