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라도 경주 - 느긋하고 깊고 다정한 경주의 사계절 언제라도 여행 시리즈 3
김혜경 지음 / 푸른향기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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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라도 경주, 언제라도 여행 시리즈 03

언제라도 여행 시리즈 세 번째 책은 김혜경 저자의 ‘언제라도 경주’다. 저자 약력부터 마음에 들었는데, 잘 웃고, 또 울기도 하는 저자가 정말이지 맘에 쏙 들었다. 저자와 함께 동행 해준 지인들과 따님들과의 얘기도, 특히 맛있는 비빔밥, 칼국수 그리고 진한 커피향이 맡아지는 것 같은 생생함이 담겨 있었다.

“어? 나 이렇게 가까이서 첨성대 보는 건 처음이야!”
“아닐걸, 수학여행 왔으면 봤을걸.”
생각해 보니 첨성대 앞에서 사진을 찍었던 것 같기도 하고. 분명, 6학년 수학여행으로 경주에 왔었는데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 그때를 첫 경주라 부르지 않는다.) 53쪽

저자의 논리로 따지자면 아마 서른이 넘고 마흔이 되어도 첨성대를 제대로 본 적 없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언제라도 경주를 통해 ‘타실라’라는 이름 만큼 멋진 교통수단을 알게 되었다. 하루 이용료도 단돈 1000원! 타실라만 있으면 골목이든 언덕이든 가능했고, 단순하게 정보를 안내하는 수준이 아니라 저자가 직접 타실라를 이용해서 다닌 장소가 많아 언제라도 경주와 타실라만 있으면 책에 등장하는 왠만한 곳은 다 갈 수 있었다. 이런 중요한 여행지 정보도 있지만 언제라도 경주의 진짜 장점이자 저자에게 푹 빠져 읽을 수 있었던 다른 이유가 있다.

“다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겠지? 나는 혼자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먹을 거 다 해놓고, 며칠씩 비위 맞추고. 그럼 그러겠지? 내가 언제 그런 걸로 눈치 줬냐고. 진짜 안 줬을지도 모르고. 그냥 나 혼자 눈치 보였던 건지도.” 24쪽

담아두고 쌓아둬 봐야 나만 무거워지는 말들과 마음은 경주의 은행잎들과 떨어지라며 그곳에 매달아 두고 왔다. 아니 두고 오고 싶었다. ‘털어낸다고 털어지면 그게 먼지지 마음이겠냐?’ 머릿속으로 혼잣말을 해대며 실없이 웃었다. 162쪽

저자처럼 피식 웃음이 나오면서도 저자가 쓴 이 책 덕분에 무거웠던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아 그저 고맙기만 했다. 그런가하면 열심히 셔터를 누르는 저자를 불편해 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겠지만 이미 익숙해져 기다려주는 배우자와 사진 찍을 줄 알고 예쁘게 담았다는 식당 주인의 한 마디는 참 따뜻하다. 덩달아 셔터를 눌러주는 것도 고맙고, 그저 아무 말없이 기다려주는 것도 당연히 고맙지만 무심히 툭 던지는 한마디는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또 여행에세이의 어쩌면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맛집’에 관한 부분도 읽으면서 침이 고일 정도였는데, 잠옷에 외투 하나 걸치고 나와서 먹는 한 밤의 비빔밥이라니 서평을 적는 지금도 먹고 싶다.

‘조금 날씬해져 돌아가는 여행’이 목표라던 사람은 비빔밥에 잔치국수까지 시켜버렸다. (…)
실룩이는 입꼬리로 비빔밥과 국수를 번갈아 먹는 날 보시곤 “국수가 좀 싱겁지요? 양념장 필요하면 말해요.” 문득문득 나를 쳐다보며 뭐 더 필요한 거 없는지 살피셨다. 어째 비빔밥이 더 맛있어진 것 같다. 246쪽

저자의 이야기에 푹 빠져 읽다보니 재방문한 곳에서 저자를 알아보는 사장님들을 만나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럴때면 1박2일 정도로는 어림없지, 이런 경주라면 ‘한달 살기’정도는 해야하는 거 아니냐며 혼자 결연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직원용 라떼와 말차 케이크와 그림책 책방과 헌손님이 되고픈 가게에 이어 종류별로 먹어보고픈 피자가게까지. 그리고 저자가 임명한 ‘그자리’에서 인증샷도 찍어야 한다. 아바타를 만나게 될 행운도 찾아올지 모른다. 이렇게 재미난 경주를 저자가 추천한 11월은 이미 지났으니 오히려 아무때나 가도 될 것 같다. 저자의 다음 책도, 언제라도의 다른 책들도 기대된다.

#경주여행 #여행에세이 #언제라도경주 #김혜경 #푸른향기

해당 도서는 출판사 @prunbook 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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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로 가야겠다
도종환 지음 / 열림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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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고요로 가야겠다


시인의 시는 이월 부터다.

허나 지금이 12월 겨울을 맞이했으니 뒤로 한참을 넘겨 현재를 찾는다. 

임의접속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부터 책은, 언제고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을 언제라도 갈 수 있었으니까.


꽃으로 화창하던 날 교만하지 않았고

찬 바람 몰아치는 날 비굴하지 않았다

오늘 담담할 수 있어야 

내일 당당할 수 있다

  • 겨울 벚나무 중 일부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담담할 수 없어서, 여전히 당당하지 못했었는지도 모른다.

시집을 읽을 때면 성서를 읽을 때보다 더 마음이 서글프다. 오래 전 ‘시인이란, 누군가 해야만 하는 말을 대신 해주는 사람’이란 글을 본 적이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할 말은 없지만 듣고 싶었던 말들은 분명 있었던 것 같다. 서글픈 말이지만 분명 듣고픈 말이었다. 달리 말하면 시집을 읽고 당장 이 순간만이라도 담담하려 애쓰면 당당한 순간을 언제고 한 번은 맞이할거란 기대가 들기 때문이다.


겨울 하늘 오래 바라본다

눈앞의 들끓는 것들에 마음 빼앗기지 말고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할 수 있으려면 어찌해야 할까

  • 겨울 오후 중 일부


10여년 전, 세례를 받은 이후부터 이 무렵이면 어느 때 보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과 ‘반드시 버려야 할 것’에 대해 묵상한다. 시인과 달리 나는 이미 그 답을 알면서도 여전히 부여잡고선 ‘놓지를 못하겠어요. 허나 주님 뜻대로 마시고, 제가 알아서 잘 놓을 수 있게 시간을 좀 더 주세요.’ 하기를 매해 반복한다. 주님 뜻대로가 아닌 내 뜻대로. 그래놓고선 늘 같은 원망을 쏟아낸다. ‘왜 저에게만 이러세요.’


바람이 분다

사무치게 분다


이렇게밖에 못해서 미안하다


너를 몸부림치게 해서 미안하다


  • 바람이 분다 전문


바람이 왜 내게만 불지 않느냐고 여름에는 투정부리고, 겨울이면 왜 내게만 불어오는 것 같냐고, 그것도 황사가 부냐고 또 원망을 늘어놓는다. 헌데 시인은, 시인은 ‘이렇게밖에 못해서 미안’하단다. 시인은 내가 듣고 싶은 말대신 들어야하는 말을 해주는 사람인가부다.


시집 안쪽에 시인의 서명이 적혀있다.

이월에도 다시 펴 보라고, 그리고 ‘우리도 겨우 여기까지 오지 않았는가’ 하며 달래주려는 손길이 마냥 헛것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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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타이완 여행기 - 2024 전미도서상 번역부문 수상, 2024 일본번역대상 수상, 2021 타이완 금정상 수상
양솽쯔 지음, 김이삭 옮김 / 마티스블루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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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타이완 여행기




양솽쯔의 장편소설 <1938 타이완 여행기>는 조금 독특한 설정을 가지고 있다. 해당 여행기의 저자 ‘아오야마 치즈코’가 실제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이후의 역자가 존재한다는 설정 전부가 모두 ‘양솽쯔’의 설정한 허구이기 때문이다. ‘초판 서문’까지 등장하기 때문에 초반에 ‘일뤄두기’를 제대로 봐두지 않으면 조금 혼란스러울 수 있다. 그치만 이런 혼란마저 포용할 만큼 이야기가 흥미롭기는 했다. 특히 먹방이나 음식관련 문학이나 만화 혹은 영화나 드라마 등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타이완을 다녀온 적이 없거나 잘 알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맛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다.

“’사기’에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왕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먹는 걸 하늘로 삼는다.’ 그러니까 먹을 수 있다는 건 복인 셈이지요.” 83쪽

아오야마 치즈코. 일본 규슈지방 작가로 미혼이며 ‘요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대식가이자 미식가이다. 제대로 된 여행을 하려면 반년 정도 현지에서 살아보는 정도가 되어야 제대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한 아오야마는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글은 쓸 수 없어 타이완 방문 기회를 포기한다. 하지만 본국 보다 조금 늦게 타이완에서 자신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 인기를 끌면서 숙식은 물론 통역가까지 지원되는 타이완 순회 강연 제안을 받게 되어 어서 빨리 결혼하라는 식구들의 걱정을 뒤로 하고 타이완 여행을 시작한다. 책을 읽기 전에 아오야마와 현지 타이완 통역사 간의 우정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샤오첸이 통역을 담당하는 순간부터 슬슬 먹방의 시작인가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필기를 정리하다가 면이 먹고 싶다고 외치면, 샤오첸이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춰 바지락 달걀 국수와 으깬 참마 국수를 내주었다. 성경에는 하느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는 말이 있다. 내가 볶음 쌀국수, 당면탕, 삶은 국수, 날달걀 우동 비빔면을 먹겠다고 하면, 샤오첸은 식탁을 바로 빛나게 만들었다. 128쪽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타이중 숙소를 중심으로 위아래 기차를 타고 강연을 다니며 지역 특산물과 간식 부터 성찬까지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여행을 다녀와 글을 쓰는 아오야마를 위해 끼니 때마다 타이완의 현지식을 요리하는 샤오첸의 등장도 감탄 그자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무리 1930년대라 할 지라도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샤오첸의 놀라운 요리솜씨와 회화실력, 게다가 아오야마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처세술과 고난도의 심리술까지 능수능란한 샤오첸의 정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둘의 사이가 정말 가까워질수록 샤오첸은 점점 더 아오야마에게 알 수 없는 말로 선을 긋는 듯 싶더니 급기야 통역마저 그만두기에 이른다. 샤오첸이 도대체 왜 저럴까 싶었는데 미시마가 털어놓는 두 사람의 관계가 제3자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를 보는 순간 아오야마 만큼은 아니었겠지만 나 또한 머리를 세게 얻어 맞은 듯 머리가 멍해졌다. 동시에 미시마가 지적한 부분들이 내게도 있었음을 깨닫고 이미 끊어진 과거의 관계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소설의 핵심내용이라 전부 말할 순 없지만 이 소설의 배경이 되고, 원저자인 양솽쯔가 이런 구성의 글을 기획했는지도 단박에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제국의 강경한 방식은 확실히 불쾌하죠. 하지만 벚꽃은 죄가 없는걸요. 샤오첸과 함께 벚꽃을 구경하러 갈 수 있다면, 꿈을 꾸는 기분일 거예요.
397쪽


어쩌면 우리나라와 대만 그리고 주권을 빼앗겨 본 적이 있는 국가의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감상이 많이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호불호가 나뉠거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기회가 된다면 우리나라의 다른 독자들은 물론 해외의 역사적 배경이 같거나 다른 독자들과도 감상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계절, 좋아하는 간식을 두고 혹은 차와 술을 즐기며 누군가와 함께 읽어도 좋은 작품이다. 

#1938타이완여행기 #대만소설 #책추천 #전미도서상 #양솽쯔
@matisseblue_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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뜀틀, 넘기
박찬희 지음 / 한끼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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뜀틀, 넘기

박찬희 작가의 장편소설.
청소년 시절 타인들의 시선과 오해, 결국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할 거라는 좌절속에 성장한 아픔을 가지고 있는 체육교사 박원은 남들과 조금 달라도 보통의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그의 반 아이들 서바움, 공미숙, 정다솜, 변우혜가 주요 인물이다. 타이틀 <뜀틀, 넘기>는 누구나 다 할 수 것 같은 ‘뜀틀 넘기’가 의외로 쉽지 않다는 것, 사는 동안 반드시 넘어야 할 것은 ‘뜀틀’ 이 아닌 편견과 좌절, 그리고 포기라는 것을 뜻한다. 바움은 영어학원 원장인 엄마와 항공사 기장인 독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경제적으로 상당히 풍족하게 성장했다. 공부도 잘했고, 엄마의 영향 덕분인지 이제 겨우 중1 인데 영어로 회화가 어느정도 가능한 수준이다. 딱히 무언가 불만이거나 문제가 될 것이 없어보이지만 가족력으로 인해 왜소증을 앓고 있다. 단순히 키가 작은 정도가 아니라 다리가 자꾸 휘어지고 벌어져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것도 불편을 느낄 정도다. 혼혈 그리고 왜소증으로 인해 학교에서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기에 늘 사람들의 시선을 불편할 뿐이다. 같은 혼혈이지만 미숙은 아버지가 없다. 마트에서 근무하는 어머니는 직원들의 파업으로 요즘은 얼굴을 마주할 시간조차 없다. 꼭 연예인이 되려는 건 아니지만 sns에 일상을 공유하며, 긴 다리와 큰 키로 오디션을 보러 다닌다. 다솜과 우혜는 어릴 적부터 친구다. 고등학생은 되어 사귀는 친구가 평생친구라는 엄마의 말을 부정하고 싶을 만큼 우혜는 다솜을 좋아한다. 둘은 우정반지를 맞출 정도지만 요즘들어 다솜은 우혜와의 약속을 잊거나 전화도 제대로 안받을 만큼 소원해졌다. 담임인 박원과 함께 미술교과 선생님인 경복과 교감 이선도 주요 인물 중 하나다. 경복은 아이들이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고 있고, 이선은 아이들에겐 어른의 보호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는다. 물론 두가지 모두가 다 아이들에겐 필요하다.

바움의 목소리는 단단했지만, 굳이 찾자면 슬픔이 배어 있다는 걸 박원은 느낄 수 있었다. “저는 애들하고 다르잖아요. 똑같이 연습하다가는 다칠 위험도 있고, 애들한테 피해주는 것도 싫어요.” 72쪽

조별로 뜀틀을 연습하고 넘어야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과제가 바움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연습만 계속해도 점수를 얻을 수 있지만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다른 조원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았다. 무거운 뜀틀을 나누어 옮기는 것도, 무엇보다 같은 혼혈이라 사람들의 시선을 더 받을 수 밖에 없는 미숙과 한 조라는 것도 불편했다. 바움이 자신을 찾아올거라는 걸 알았으면서도 박원은 바움에게 뭐라고 해야 할 지 어렵기만 하다. 하지만 박원에게는 ‘영원이 불가능하다는 체념이 아닌, 그러므로 포기하겠다는 절망이 아닌(72쪽)’ 것을 바움이 깨닫기 바랐다. 학교에서는 조별 연습으로도 충분히 복잡한데 집에서는 엄마의 장애인 서류를 우연히 보게 되어 더 심란해졌다. 분명 자신은 장애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던 엄마가 자신을 배신한 것 같았다. 자신과 달리 건강한 동생과도 이제 더이상 함께 하고 싶지 않다고 느끼는 바움을 보며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떠올랐다. 언니와 계속 놀고 싶은 동생 안나와 비밀을 감추고 피하려는 언니 엘사처럼 마냥 밝기만 한 동생이 바움은 부담스럽다. 바움의 고민이 깊어지듯 미숙에게도 위험한 상황이 다가오고 있고, 자신을 점점 소홀하게 대하는 우혜는 다솜을 만나기 전 가장 친했던 예지와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깊어져간다.

소설을 읽는 동안 중학교 1학년일 뿐인데도 이렇게 많은 고민과 눈물, 상실 심지어 세상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까지 드는 아이들이 너무 안타까웠다. 아주 오래 전, 내가 그 나이였을 때도 분명 그런 고민들이 있었고, 지금 와 생각해보면 사소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것도 아니라서 박원이 어떤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뜀틀 과제를 내주었는지 조금씩 납득할 수 있었다. 또 어떻게든 아이들을 품에 두고 지키려했던 교감 이선의 아픈 사연까지, 그야말로 사연없는 사람은 세상에 없는 것만 같다. 누군가의 아픔을 위로는 커녕 더 상처를 주는 악랄한 존재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부디 그들에게 지지 말고 이 아이들처럼 함께 견뎌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청소년소설 #차별 #뜀틀넘기 #독서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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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공의 빛을 따라 암실문고
나탈리 레제 지음, 황은주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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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공의 빛을 따라> 나탈리 레제가 남편을 잃고 느꼈던 깊은 상실감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녀의 슬픔을 읽기 전 손으로 가만가만 어루만져본다. 허공을 더듬거나 감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었다. <창공의 빛을 따라> 표지 앞면에 타이틀과 저자 그리고 역자가 각인되어 있어 손끝으로 감각해본다. 짧지 않은 시간 도슨트를 하면서 해설 준비를 마친 뒤 전시장으로 처음 들어서서 마주하는 것은 ‘전시서문’일 것이다. 이 책의 첫 페이지는 지금은 그녀 곁에 없는 그래서 모든 곳에 있을 수 있는 남편 장-루 리비에르가 기획한 전시 책자의 제목으로 문을 연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내가 없는 지도가 필요하다. 11쪽


남편과의 마지막을 앞둔 장면들이 이어진다. 그 장면을 마주하는 내 마음은 당연하게도 끊임없이 가라앉는다. ‘시작에 대해 말하고는 있지만 우리는 끝과 시작 사이에서 벌써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14쪽)와 마찬가지다. 이제 페이지를 펼쳤으나 그녀의 아픔은 내게 기다림을 주지 않는다. 어쩌면 그래서 더 죽음답다. 죽음은 우리에게 초대장을 보내주며 친절하게 참석할지 여부를 묻지 않는다. 예고할 순 있어도 정확한 날짜와 장소는 알 수 없다.


영화는 오로지 너를 존재하게 하기 위해서 발면된 게 아닐까? 영원한 삶에 대한 믿음이 힘을 잃고 천국이 쓸모를 다하게 되자 필름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고, 이제 필름에 깃든 유령들은 마치 휴양지에 다다른 듯 언제까지나 거기 머물게 되었다. 32쪽


백남준의 비디오 푸티지 작품들을 해설 할 때 종종 그런 말을 한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을 작가는 비디오 작업을 통해 가능케 한다고. 머스 커닝햄과 악수를 나누던 뒤샹은 죽고 없지만 그 장면을 담은 작품속에서 여전히 뒤샹은 뒤로 걷거나 서로 대화를 주고 받는다. 나탈리 레제와 남편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나오는 영상을 보며 그녀는 그가 ‘있었던 사실’을 확인받음과 동시에 위로를 얻는다. 동시에 그럴 수 없었던 딸을 잃은 빅토를 위고를 불러와 ‘다시 보다는 것(같은 페이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너무 처절한 상실은 기억의 부재를 낳는다. 하지만 무엇이 처절한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인가. 책의 초반에 저자는 말한다. 아무리 슬퍼도 겉으로는 멀쩡할 수 있다고. 그러니 누군가 상실의 아픔을 견뎌내는 방법이 자신의 기대와 다르다 하여 그 슬픔마저 기대와 다르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고 느낀다.


나는 내려가고, 또 내려가서, 보다 구체적인 곳으로, 보다 투명한 곳으로 나아간다. 날이 밝아 온다. 나는 거꾸로 뒤집힌 하늘의 신선함 속으로 나아가고, 계속해서 나아가고, 창공의 빛을 따라 몸을 던진다. 76쪽


시작부터 나를 끌어내린 그녀의 슬픔은 나를 죽이지 못한다. 나를 죽이지 못한 그녀는 자신 역시 ‘계속해서 나아’간다. 창공의 빛을 따라 몸을 던진 그녀를 통해 그렇게 나는 또 한 번 누군가의 죽음으로 비롯된 슬픔에 던져져 무언가를 찾아 떠오를 수 있었다. 그것은 애도, 살아있는 자를 위한 애도였다.



#애도 #상실 #죽음 #나탈리레제 #암실문고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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