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떠나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느낀 바가 없었던 사람이 있을까. 종교가 거추장스럽고 부담스러웠던 그 시절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던 다음날 나도 모르게 불교음악에 심취해 마치 '무념무상'을 깨달은듯 건방을 떨 던 때가 있었다. 왠지 모든게 가볍게 느껴지고 용서할 수 있듯 나 역시 누군가에게 아니 모든이로부터 용서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아 맘이 편안해졌었던 그때, 그 조차 버려야 한다는 사실에 벌컥 화를 냈던 기억이든다. 그만큼 무소유라는 것은 속인이 깨닫고 따르기에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다. 무소유를 통해 속인인 우리곁에 있어주는 듯 싶으면서 정작 본인께서는 '아름다움'은 배제터라도 모든것에서 '무'의 상태를 이룬 분이 아닐까 싶다. 그분의 수행처를 재가제가 정찬주, 저자가 따라나선 기행이 이책 그대만의 꽃을 피워라다. 책에 대한 강한 이끌림이 있으되 지난 해 부터 신앙에 맘을 정한터라 머뭇거림도 있었다. 하지만 몸이 좋지 않은 날 위해 언니가 함께 예배를 가주듯 그런 언니에게 선물할 요량으로 읽기 시작한 책은 어떤 종교든 결국 종국에는 인간의 그릇된 사심과 욕심을 버리고 참된 자아를 만나게 해주는 점에서는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해줬다. 존경의 맘으로 책에 등장하는 스님들과 그분들이 남겨주신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대만의 꽃을 피우라는 것은 결국 누군가를 쫓아 거짓된 나를 형성하지 말라는 의미인 것 같다. 무소유, 무념등은 타인을 시기하고 부러워 하지 않는다면 굳이 생기지 않은 사리사욕이기 때문이다. 기행문 답게 책 곳곳에 절과 주변광경을 담은 사진들이 보인다. 사찰이 있는 그곳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이고 안정감을 주는데 그런 모습에 담겨진 스님들의 말씀은 마치 곁에서 들려주시는 듯 마음속에 무언가를 남겨두시기도 하고 힘겨웠던 것들을 꺼내가시는 듯한 기운이 감돌았다. 때때로 이런 기분이 종교적으로 부딪히는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순례라는 것은 일단 깨달음이요 법정스님을 비롯 소개되는 스님들은 종교를 넘어선 분들의 가르침이란 생각에 다시금 몰입할 수 있었다. 기독교 서적을 읽으면서도 늘 안타까웠던 것은 '종교서적'이라는 분류로 인해 비종교인들에게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것이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고인이 되신 김수환 추기경님이나 법정스님과 같은 분들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뿐아니라 존경으로 예를 갖추는데 왜 그분들의 손을 잡고 따르는 우리들은 그렇지를 못하는지 다시금 깨닫게 책이었다. 나를 따라 예배를 함께 해준 언니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서라도 몸이 회복되면 책에서 소개해주시는 사찰을 따라 순례기행을 꼭 다녀오고 싶다. 그리되면 나만의 꽃을 피우는 방법 혹은 모종이나 씨앗 한줌 얻어올 수 있지 않으려나...하는 바람이 드는 것이 아직 나는 멀었나보다.
나에게 그림이란 _ 다. 나는 _ 을/를 그리고 싶다. 연필을 잡는 그 순간 부터 우리는 드로잉이 시작되었어야 한다고 본다. 활자와 숫자속에 나이가 들수록 드로잉은 점점 사라져 간다. 내보일 수 있는 멋드러진 드로잉이 아니면 그것은 본인 의사와는 무관하게 낙서가 되거나 심지어 '종이낭비, 즉 쓰레기'가 되기도 한다. 왜 이런책이 이제서야 나온것인가. 오은정 작가님은 그동안 왜 나와같은 이들을 방치해두었는지 묻고싶다. 라고 하면 저자는 상당히 서운할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나왔으니 다행이지!'하고. 처음에는 대책없이 두꺼운 책이 아닌가 싶었다. 7년전 본격적인 드로잉을 시작한 이래 늘 미술학원이나 화실을 기웃거리면서도 슬럼프를 견뎌내지 못해 좀 나아진다 싶다가도 멈추거나 그나마도 이따금 이건 혹 퇴행이 아닌가 싶을 때가 많아 재작년 부터는 아에 손을 놓았더랬다. 하지만 줄리아카메론의 저서 '아티스트 웨이'의 도움으로 그나마 아에 완전히 손놓지 않고 '언젠가'를 기다리던 내게 지금 시작 하는 드로잉은 구세주나 다름이 없다. 내가 강사나 멘토 복이 없었던 건지는 몰라도 이책이 알려주는 슬로잉 티칭방법은 그동안 잘 그리지 못했던 내게 치유가 되는 시간을 주었다. 나름 열심히 그린다고 그려도 일취월장하는 주변사람들과 비교하며 왜그리 답답해 했는지 지금와 생각하면 참 어리석었다. 더군다나 왜 그림을 그리려고 하고 무엇을 그리려고 하는지를 알면서도 슬럼프에만 빠지면 늘지 않는 실력만 탓했다. 내가 그림으로 밥벌어 먹겠다는것도 아니고 난 그저 기상천외하며 스펙터클한 나의 알 수 없는 꿈을 내 눈으로 다시금 확인시켜 주고 싶었을 뿐이다. 기왕이면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을 그려 선물도 해주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궁극적인 목적인 자기만족 이었는데 왜 그 사실을 잊고 살았을까. 이 책읽고 그대로 따라그리면 잘 그려질까? 하는 허황된 기대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꾸준히 그리는 것, 그것의 힘을 알려주고 그럴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책임에는 분명했다. 열심히 오래도록 내가 왜 그리려고 하는지를 잊지 않는다면 아마도 이 책은 궁극적으로 잘 그리게 도와주는 마법의 책이 되어줄 수도 있을 것 같다. 덧붙여 재료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정말 친절했고 전체적인 문체가 그림을 잘 그리게 해주는 학습서가 아니라 함께 그리며 이야기를 나눠주는 멘토와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던게 매력적이었다.
보는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른 상반된 결말의 작품은 작가의 위대함도 느껴지지만 애매모호한 결말이라는 삐딱한 시선으로 견주자면 혹평을 벗어날 수 없는 작품이 되기도 한다. 나사의 회전은 그렇다면 전자와 후자중에 어느쪽에 속하는 작품인것인가. 일단 헨리제임스라는 네임벨류만 놓고 보자면 세상에 처음 공개되었을 당시야 비평가의 혹평을 받았다해도 현재의 시점으로 보면 그는 위대한 작가중에 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논란의 여지가 많은 작품을 꽤나 싫어하는 나 같은 사람도 읽고 싶게 만들었다. 고딕양식의 성이 등장하고 이 모든것을 소유한 매력적인 남성이 등장하고 어슴프레 호러의 기운이 물씬 감도는 까닭에 읽기 전부터 포우의 어셔가의 몰락, 메리 W.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그리고 복잡하고 난해하며 음울한 호러를 유쾌하게 비틀어 독자로 하여금 후속작을 기대하게 만들었던 최제훈의 퀴르발 남작의 성까지 차례대로 떠올려졌다. 우선 작가가 의도했던 대로 독자가 생각할 수 있는 아주 고약하고 무서운 상상의 결말을 나름의 방식으로 토해내자면 가정교사가 보았던 유령이 환상이었든 어떻든 유령이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비평가의 말처럼 성적으로 고착되었거나 결함이 있었다고는 해도 존재하지 않는 실체를 존재한다고 강력하게 믿고 그것을 타인에게 압력을 가할 정도라면 존재했다고 보는편이 맞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여기서 과연 두 남매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왜냐면 화자가 환영으로 보았다고 해서 유령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도 없는것 아닌가. 그녀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남매눈에는 보였을 수도 있기에 남매의 거짓유무에 난 더 관심을 기울일 수 밖에 없다. 화자와 그 남매의 첫만남을 보면 그것은 단순히 스승과 제자와의 만남으로 보기도 어렵고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로 보기도 어렵다. 성에서 유일하게 남매와 대등한 위치에 있던 그녀라도 어쨌든 그녀역시 고용인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연인을 만난 것처럼 자유롭게 첫 인상에 대해 서술한다. 환영을 작정하고 만들어 낼 수는 있어도 자신도 속을 정도의 환영에 사로잡힐 정도로 나약한 존재는 분명 아닌것이다. 뿐만아니라 나중에 더글라스가 가정교사에 대한 애정을 애틋하게 묘사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과거의 '잘못'을 어느정도 시인하는 부분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어진다. 설혹 남매가 유령을 정말 보지못했더라도 그녀가 그들에게 쏟은 애정과 눈길, 평화를 쉽게 깨고 싶지 않은 아이들이 갖는 순수함을 떠올린다면 없던 존재라도 동조해주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미안함의 반증이라고도 생각이 된다. 물론 작가의 의도가 '사고하는 독자'를 위한 작품이었기에 저자의 의도를 백분 살려주기 위함이라면 어떤 것이 맞는 결론인지 우리는 다툴필요가 없다. 유령의 존재여부 역시 각자의 의견을 나누는 것에 그쳐야지 논란이 될 까닭도 없는 것이다. 그저 저자가 한껏 여유를 부리며-작가의 말의 뉘앙스가 나의 기준에서는 분명 여유로웠다-결말을 독자에게 던진 것 처럼 21세기에 그닥 소름돋지도 않는 유령이야기에 열을 내는게 쉽지 않다. 오히려 유령의 등장보다 그녀가 묘사하는 사람들과의 첫 대면에 대한 소감이나 스스로의 대한 자화자찬등에 소름이 돋았다. 재미난 구성에 열린 결말, 그것도 각각의 주장을 뒷받침 하는 근거가 타당한 완벽한 명작임에는 분명하다.
왠만해서는 혹평하지 않는다. 악평을 적다가도 나름의 의미도 있고 무엇보다 영혼의 창이란 도서를 읽은 뒤로는 나의 감정보다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책을 쓴것인지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서 더더욱 그렇다. 그치만 도저히...이 책은 읽으면서 기분이 상해서..흠;; 그래도 나름 잘팔리는 책인데다가 유명인사 및 언론사에서 극찬을 했기에 되새겨가며 고민했다. 나만 이상한건가? 지나치게 긍정적인 사고는 위험하다. 반대로 지나치게 부정적인 사고도 위험하다. 저자가 부정적 사고를 권하려고 쓴 책이 아니라는 건 안다. 시크릿을 비롯 거대한 교회(조xxxx틴 등)가 말하는 대책없이 강구하고 바라면 이뤄진다는 맹목적인 긍정의 사고의 위험을 알릴려고 썼다는 의도는 아는데 표현이 지나치게 거칠다 못해 예로 든 도서중에 일부는 지나치게 부정적인 견해로 보았다는 사실을 넘길 수가 없는 것이다. 뭐든 지나치면 위험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본인이 내세우는 주장의 근거가 되는 부분에 있어 오류를 범하는 것을 어떻게 그냥 넘어갈 수가 있을까. 굳이 그렇게까지 이미 베스트셀러에 스테디셀러인 도서들을 비방하면서 까지 자신의 주장을 펼치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긍정은 무조건 옳다고 여기는 것이 문제이긴 해도 때로는 그런 긍정적인 사고가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 비판의 끝이 반드시 권리를 되찾는 길이 아닌 경우도 많다. 현실을 직시했을 때 과연 어떠한 것이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저자가 말하고자 한 것이 옳고 그름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난 도저히 저자의 손을 들어줄 수가 없다. 특히 초반부터 나를 가장 거스르게 했던 부분은 '미친 놈한테 난자당해서 죽는 편이 낫다'라고 말하는 부분이었다. 그 문장의 충격이 강했기에 페이지가 넘어갈 수록 중립적인 시선으로 책을 읽기가 버거웠던게 사실이다. 웃으면서 암을 받아들이고 수술을 하고 고통을 축복으로 여기는 것이 문제가 된다면 저런 과격한 표현, 가령 진짜 저런 사고로 가족이나 지인을 잃은 사람들을 전혀 생각지 않은 그냥 내뱉어버린 저 말들...이 곳곳에 있었다. 나역시 얼마전 수술을 받고 한시간에 한번씩 진통제를 먹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기 까지 했다. 그때 저자가 그토록 경계하는 맹목적인 긍정적 사고로 난 버텨낼 수 밖에 없었다. 내 잘못이라고 그 모든 고통이 내가 원인이고, 이 고통이 오히려 내게는 지난 날을 반성하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하며 견뎌냈다. 그래서였는지 모른다. 만약 내가 아프지 않았고 정확히 6개월 이전에 내가 읽었다면 호평을 했을지 모른다. 결국 다 '경험'에 의해 판단이 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긍정적 사고를 비판했지만 난 반대다. 내 경험을 통해 긍정적 사고의 힘을 깨달았다. 결론적으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건 이 책을 읽지말라던가, 한 쪽면만을 보는 듯한 저자의 원망도 아니다. 책을 읽을 때 본인의 마음가짐과 상황이 주는 영향이 얼마나 클 수 있는지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책 한권이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친구가 되고 위로가 되어준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책을 통해 책 한권이 갖는 파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무조건 다독하는 것 보다는 마음이 끌리는 책, 읽었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책을 읽는 것, 책과의 인연을 함부로 여기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준 책이다.
보통의 존재. 타이틀을 생각해낸 것이 저자인지 혹은 출판사 팀원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출판 된 수많은 도서들 중에서 손꼽힐 정도로 참 맘에드는 서명이다. 보통의 존재. 책을 구입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읽은 비운의 도서 중 한권으로 대부분의 리뷰가 호평인데다가 타이틀 또한 앞서 언급한 대로 워낙 맘에 들어 덜컥 구입해놓고서는 이상스럽게 읽지를 못했다. 밀린 도서가 많았어도 읽고 싶었다면 제쳐두고 읽었을텐데 아마도 아껴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사탕과자를 낼름 먹지 못하고 엄마가 그리울 때 먹었던 의천도룡기의 그 꼬맹이처럼 말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렇게 방치되었던 책이 아파서 몸져 누워있으려니 눈에 들어왔다. 나 역시 보통의 존재구나를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는 동안 평생 병원에는 갈 일 없을 줄 알았고 가더라도 치과수준이지 절대 수술따위(맹장도 아니고;;;)라식이나 라섹수술..등의 시력교정술을 제외하고는 운좋게 쌍커풀도 가지고 태어났고 얼큰이라서 턱을 깍으라는 제안을 수십차례 애인으로 부터 듣고 있어도 굳건하게 마취따위 안하고 살거라며 큰 소리쳤음에도 불구하고 내게도...그런 날이 오고야 말았으니 그제야 난 보통의 존재임을 깨달을 수 밖에... 그치만 책을 읽다보면 딱히 저자가 보통의 존재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그로인해 눈살찌푸려 지는 부분이 곧잘 등장해서 뭥미 하며 읽게 되는 때가 많았다. 어쩜 그렇게도 프리하게 연애를 할 수 있었던 건지 x걸프랜드는 물론이요 x와이프와의 일들까지 말할 수 있는건지 부럽다기 보다는 그냥 나와는 다른 존재구나 느껴지는 정도?였다. 보통맞아? 이사람...-_-+ 그치만 본인이 보통의 존재라는데 일개 독자가 아니라고 우겨봐야 뭔 소용. 안읽으면 그만이지만 내돈내고 구매한 몇안되는 책이라 또 꾸준히 읽는다. 마치 남기면 아까운 음식처럼. 읽다보니 재밌고 맘이 편안하다. 언젠가 어디선가 만났거나 만나게 될 법한 이웃집 그 누구의 아들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보통사람은 아닐지 몰라도 보통의 존재는 맞는가보다. 그치만 딱히 평점을 주기에는 참 애매모호한 책이기도 하다. 이걸 뭐 추천해주기도 뭐하고...비추하기도 뭐하고...그냥 미용실이나 찻집에서 집어들어 읽기에 좋은 책이라고나 할까. 이야기가 가벼워서라기 보다는 어느정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읽기에 적당할 것 같기 때문이다. 당장 삶의 무게가 지나치게 버거운 이들에게는 초반에 내가 느꼈던 뭥미 스러운 감정이 들것이 뻔하니 약간이라도 여유가 있는 독자가 읽어야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보통'의 의미를 어느정도라도 받아들 일 수 있고 어느순간에는 공감할 수도 있을것 같다. 어쨌든 그런면에서 난 여유가 있었던모양이다. 수술을 앞둔 그것도 생애 첫수술이 전신만취인 사람이 여유가 있었다는건 감사할 일이겠지. 도서 리뷰라기보다는 그냥 수다 떤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나의 리뷰는 늘 이런식이다. 그치만 뭐 어째. 책의 줄거리는 검색하면 다 나올테고..결국 개별적인 감성만 늘어놓을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