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중국은 세계의 패권을 쥘 수 없는가 - 중국 낙관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31가지 근거
데이빗 매리어트 & 칼 라크루와 지음, 김승완.황미영 옮김 / 평사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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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세계의 패권을 쥘 수 없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모로 공감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국내는 물론 국외에 다양한 언론을 막기만 하는 중국정부로 인해 알 수 없었던 사실적인 근거들을 31가지나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중국의 경제적 발전과 점점 더 막강해지는 파워를 느끼며 그들의 위협적인 성장이 이젠 두렵기 까지한 이들이라면 이 책을 읽고 그런 불안함과 두려움이 사라질까? 아니다. 전자도 후자도 아닌 나조차 이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중국이 더더욱 두려워졌다. 31가지의 근거는 그야말로 고통스러울 정도다. 부록에 실린 사이트나 도서목록을 별도로 손대기 주저할 정도로 중국의 현실은 고통스러웠다. 물론 이전에 읽었던 중국경제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책을 읽긴 했지만 책, 왜 중국은 세계의 패권을 쥘 수 없는가에서 다루는 것은 그야말로 중국전체의 치부를 드러내놓고 있다.

우선 저자가 우려하는 집단, 남아선호 사상으로 인해 깨어져벼린 성비로 인한 사회적문제, 가구당 1인 출산을 장려한 까닭에 지나치게 부모의 힘에 의존하는 무력하면서도 이기적인 소황제, 소황녀들, 농촌에서 더이상 밥벌이가 어려워 도심으로 몰려드는 농민공 등 중국의 사회에 일촉즉발의 위험을 가진 위협적 집단의 존재이다. 이들은 지금 겨우살이를 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이들보다 더 위험해 보이는 집단은 다름아닌 '자유'를 빼앗긴 티벳을 비롯한 소수민족들이다. 중국은 역사적인 배경을 무기로 폭력적으로 그들의 영토와 문화를 정복을 넘어 훼손하고 있다. 제3자의 시선으로 보아도 분명 악위적이며 폭력적인 대치를 해외의 대부분의 나라가 묵인해주고 있다. 뿐만아니라 멀리 떨어진 대만의 경우만 보아도 중국의 위협적인 권유에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중국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읽으면 읽을 수록 중국사회에 대해 의아해져만 갔다. 영토가 큰 만큼 사건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2분마다 한명씩 자살하고 묻지마 살인이 여기저기 터지고, 탄광에서는 오늘도 수십명 혹은 수백명의 노동자들이 죽어가는 데 여론탄압에 의해 중국에 살고 있는 중국인들마저 그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인터넷을 통한 국민의 알권리가 어느 정도 보장되는 듯 기대했지만 중국은 구글을 비롯한 해외기업들에게 압력을 가해 이젠 그나마도 전부 차단된 상태이다.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한 이후 중국의 언론과 알권리는 송두리째 빼았겼다. 사건은 일어나고 내 이웃은 죽어가지만 집안에 갇혀있는 대다수의 중국인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다.

저자들이 말한 중국의 현실이 사실인지의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의 말대로 사랑하는 중국이 세계적으로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위험집단의 갈등해소는 물론 소수민족과의 대립도 원만하게 해결 해야 된다고 본다. 지금은 어느정도 안정기에 놓인 듯 보여도 이웃하는 여러 나라도 풍전등화나 다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www 발명을 두고 가정한 중국정부의 행태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국민이 아닌 군을 위해 철저하게 숨겼을거란 예상이 나 역시 지금의 중국을 본다면 능히 그럴 수 있을거라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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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서재 - 그리고 그들은 누군가의 책이 되었다
한정원 지음, 전영건 사진 / 행성B(행성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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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서재. 작가, 디자이너, 정치인, 연예인들의 서재를 이따금 잡지나 비슷한 주제의 책들을 통해 접해왔다. 그들의 서재는 대체적으로 현대적이거나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소장권수도 일반인과는 사뭇다른 마치 작은 도서관을 옮겨놓은 듯한 양적, 그리고 질적인 차이에 그저 부러워만 했던게 사실이다. 때문에 지금 껏 보아왔던 유명인사들의 서재에서 우리가 느낀것은 '책'이 아닌 '책을 포함한 또하나의 차이'였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식인의 서재에서 느껴지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들은 누군가의 책이 되었다.

 

책의 부제가 이토록 잘 어울릴 수가 있을까. 그들의 이야기는 어느새 내 눈을 통해 들어와 내 머릿속에 계획해 두었던 필독리스트를 변경해 놓았고 마음속에서는 '읽기의 자유로움, 즐거움' 을 선사해주었다. 그렇게 책이 되어준 그들은 또한 이웃과 소통할 수 있는 소통의 매체로서 '책'의 역할도 빼놓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공통된 책의 역할은 '소통'이었다. 그리고 '나눔'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책을 통한 자기정화라고 생각이 된다. 법학자이면서 인문학과 시를 좋아하는 그도, 공학도면서 다양한 방면과 학술적 콜라보레이션 격으로 학문의 결합을 즐기던 그도, 소장하고 있는 요리책에 요리를 전부 요리했던 그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들의 독서습관이나 방식은 현재의 그들의 직업이나 가치관을 말해주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내가 그토록 알고 싶었던 몇몇 지식인들의 서재는 그야말로 '또 하나의 세상'이라고 생각된다. 그안에서 쓰여지는 글들과 강의록, 작품세계, 경영방식은 책을 좋아하는 자들에 비해 훨씬 이상적이다. 그들이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 삶'에 가까운 까닭도 그 때문이라 생각된다.

 

'나 그 책 읽었어.'

장진감독의 말은 수많은 책, 도서리뷰 블로거들의 존재의 의미를 알려준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상품리뷰와 영화리뷰등도 가치있지만 특히 도서리뷰의 가치는 그만큼 중요하다. 책은 물질이지만 물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많은 정신적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내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어떤 지혜를 구할 수 있었는지, 책 블로거들은 그렇게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는게 아닐까 싶다.

 

이 책을 궁금해 하는 그대에게.

더 많은 책의 내용을 소개하려고 맘먹고 시작했다가 이내 마음을 거두었다. 이 책이 궁금해서 찾아본 이들이라면 주저없이 자신의 서가에 꽂아두었으면 싶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화두가 된 요즘 다양한 리스트가 이리저리 추천되고 나름의 가공을 거쳐 그 권수가 수만권에 다다른다. 뿐인가. 경제학을 비롯 문학작품에 이르기 까지 우리가 흔히 표현하는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필독리스트가 왠만한 도서관과 서점의 '소장리스트'와 별반 차이가 없어졌다. 많이 읽을 수록 좋다지만 제대로 그 책을 소화하고 그의 말처럼 저자와의 만남이라고 생각한다면 기필코 많은 책을 읽는 것이 더 낫다고는 볼 수 없다. 그저 '지식인의 서재'에서 소개된 지식인들의 추천도서만 읽어도 분명 더이상의 필독리스트는 필요없을 것이다. 책을 고르는 눈이 분명 생겨날 거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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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 - 한 시골교사의 희망을 읽어내는 불편한 진실
황주환 지음 / 생각의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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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똑바로'살아가고 있는지 처음으로 자문했던 때는 대학에 입학 하고 도서관에서 그동안 알지못했던 사회과학책들을 섭렵하면서 부터였다고 기억된다. 그전까지 입시에 시달려서도, 동무들과 신나게 뛰어놀아서라던가 혹은 문학이나 여러 예술활동에 심취해서 그런 생각을 가지지 못했던건 아니었다. 그저 그런 쪽으로의'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후에 나의 삶은 '바른'삶이었느냐 하면 그 역시 아니다. 오히려 알게 되면 될 수록 무언가로부터 강하게 억압되고 숨어들고 '나만의 방'을 찾기위해 몸부림 쳤던것 같다. 그런 어색하고 처연한 행동을 가리기 위해 오히려 더 많은 책을 읽어왔던 것 같다. 나를 가리기 위한 방패였던 독서가 '아주 작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과 같은 책을 접하게 되면 혼란에 빠지게 된다.

보도자료를 읽으면서 기대했던 내용은 책 표지에도 적힌 것처럼 시골 교사의 시선에 비친 부조리한 교육실태 정도였다. 사립고등학교에 이어 사립대를 졸업한 이력이 아니더라도 지금의 교육현실을 굳이 교육자의 시선으로 보지않아도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그로인해 결코 희생되어서는 안돼야 할 '청소년'들이 희생양이 되어가는 것이 마땅찮아 더 잘알기 위해 읽으려 했었는데 저자 황주환은 교육의 부조리는 둘째치고 '표현 없는'인간들에게 쓴소리를 하는 듯했다. 그는 스스로의 시선이 삐딱하고 부정적이라 불편할 수 있다고 거듭강조했지만 내가 느낀 그의 어조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하고 담담하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더 괴롭혔다.

그가 던진 질문들에 의연하게 대답할 수 없는 현실에 나로 인해 속상해졌고, 되려 의연하게 대꾸 할 존재들로 인해 또다시 속상해져왔다. 그가 소개한 도서의 일부를 나도 만났었고, 저자가 느꼈던 괴로움과 텅빈 공감을 가졌었지만 어리석게 나는 그 의구심을 덮었었다. 그것은 내가 사회에 잘 적응하기 위한 당연한 처사라고까지 믿었었기 때문이다. 다시금 그가 늘어놓은 책들을 살펴본다. 그가 던진 질문들에 대답을 혹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된다. 그렇다고 저자가 독자로 하여금 '뜨끔'하게 만들려고 책을 쓴건 아니다. 오히려 그는 타이틀처럼 '아주 작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을 갖을 수 있도록 인도한다. 그것은 상대를 충분히 배려하고 이해한 상태에서의 소통인 것이다. 작은 것을 기다린다는 것은 소통의 기본 자세가 되는 것이다.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은 '문제'에 얽혀있어서도 아니고 '문제'를 가져서도 아니다. '상처'입었기 때문이다. 상처를 치유하는 데 필요한 것은 약과 기다림이다. 작은 것을 기다릴 줄 알게 되면 그 이후의 커다란 무엇도 자연스레 기다릴 수 있게 되고 그리되면 소통은 이미 이뤄진 상태라고 생각된다. 우리의 미래라고 말하는 교육, 청소년들에게 우리가 해야 할 가장 먼저이자 주된 것이 바로 그 기다림이라고 저자는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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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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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하다고 생각했었다. 책의 타이틀이 되어준 '카스테라'를 읽고서는 어이가 없다고 느꼈고 그나마 난해하다라는 고급스러운 평이 내려진 건 중반까지 읽은 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까지 책을 읽은 것은 쉽게 페이지를 덮어버리던 나의 버릇을 머뭇거리게 만든 것은 순전히 작가가 '박민규'였기 때문이다. 박민규 소설은 내게 참 어려운 소설이다. 파반느를 읽었을 때에도, 더블A,B를 읽을 때에도 그랬다. 마치 여러번 만나고 밥도 먹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과 기억하고싶은 추억을 몇 차례 만들고 나서야 그와 내가 '연인'이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것같은 저자와 독자의 관계였던 거다. 그런 믿음때문에 마지막 까지 비평글과 작가의 말까지 다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총 10편의 글이 담긴 카스테라는 혹 카스테라 편이 난감했다면 뒤에서부터 역으로 읽어보길 바란다. 비현실적인 현실을 이상하게 현실적으로 서술한 책에 익숙한 나 혹은 그대라면 말이다. 카스테라의 내용은 간단하다. 소음이 굉장히 심한 냉장고를 만나게 된 '나'는 냉장고의 소음을 분석하면 할 수록 그 소음이 고장이나 불량 혹은 모자람과 부족함이라기 보다는 '할 말이 많은' 그 만큼 '위대한' 존재의 외침이라고 판단한다. 그래서 냉장고안에 음식따위를 넣는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소중한 것, 혹은 세상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 등을 넣음으로써 또 하나의 '세상'을 냉장고안에서 만들어낸다. 그런 뒤 얼마즘 뒤 냉장고는 조용해진다. 그리고 그안에는 '카스테라'가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정도로 정리를 하면 될 것 같다. 무엇을 느껴야 하는걸까 싶었다. 차라리 작가의 말부터 읽었더라면 좀 수월하게 아니 너그롭게 카스테라의 출현을 의연하게 받아들였을 텐데 말이다.

 

놀라운 사실은 10편 중 그 어떤 작품도 환타지라고 치부할 수 없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너구리, 기린, 개복치등의 등장이 오히려 반갑다. 농촌문제를 다룬 부분에서는 차라리 UFO의 등장이라고 믿고 싶을 만큼 우울한 현실을 체감케 만들었다. 웃고 있다가도 다시 우울하게 만들지만 저자가 '소설가'라서 다행스럽게도 위트있는 마무리로 한숨이 놓였다.

 

카스테라가 박민규의 소설이 아니라 어느 고등학생, 그것도 문제가 많거나 왕따를 당했다거나 정신치료를 받은 '그'에게서 나왔다면 독자는 둘째치고 비평가와 출판계로부터 환영을 받을 수 있었을까 하는 씁쓸한 의문이 들었다. 아마도 '이상한 사람 혹은 아이'란 꼬리표가 달릴테고 어쩌면 병원행으로 결론지어질 것 만 같았기 때문이다. 어지러운 세상, 꼭 그만큼 일탈과 상상의 나래를 펴는 박민규표 소설이 다른 이들에게서 나올 수 없다면 그에게서라도 오래도록 발표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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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 칸타타 - 작은 나뭇잎 프레디의 여행
레오 버스카글리아 지음, 조병준 옮김, 천은실 그림 / 샘터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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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전 샘터에서 스프링칸타타의 제목을 공모한 적이 있었다. 후보로 오른 제목중에 내가 고른 제목이 바로 '스프링칸타타'였다. 봄의 설레임이 한풀 꺾인 5월이 되서야 만나게 되었지만 스프링칸타타 라는 타이틀에서 느껴지는 생기발랄함은 변함이 없었다. 무엇보다 막상 책으로 받아보니 표지를 비롯 첨부된 영문판과 프리노트 그리고 내용은 그 이상이었다. 나뭇잎 프레디와 함께 하는 4계절 여행, 그 여행은 한동안 떠나지 못했던 나의 방랑벽을 어느정도 해소시켜주었기 때문이다.
프레디는 봄에 태어난 잎이다. 그보다 먼저 태어난 잎은 그에게 프레디를 포함한 다른 친구들의 존재, 즉 커다란 나무에 나뭇잎으로 태어났음을 알려주었고 그들의 역할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알려준다. 더운 여름날 나이든 노인들에게는 편안한 쉼터가 되어주기도 하고 아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에코 놀이터의 역할을 제대로 해낸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몸을 맡겨보기도 하고 따가운 햇살은 나름의 에너지로 그들을 푸르고 싱그럽게 만들어주었다. 계절이 바뀌고 그들의 색이 각각 변하면서 프레디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존재에 대한 깊은 물음을 갖게 된다. 계절이 변화면서 갖게되는 프레디의 심리변화는 인간이 나이를 먹으면서 갖게 되는 심리변화와 같다고 느껴졌다. 봄을 10대로 비유하고 여름을 20~30대, 그리고 가을은 40~50대. 그리고 겨울은 슬슬 죽음이라기 보다는 한 생애의 마무리 단계인 노년기인 것이다. 하지만 프레디의 삶처럼 정해진 순서대로 흘러가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때때로 인간은 서른도 되기전에 자아성찰에 깊이 빠진 체 흔들리기도 하고 중년에 나이에도 여전히 봄날을 보내지 못한 체 젊은 날의 자신으의모습을 그리워 하며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프레디가 전해주는 것은 자연의 섭리와 그에 따른 순리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겨울이 되어 하나 둘 떠나가는 동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도 저 땅 어디로 떨어져 이듬해 또다른 프레디와 같은 존재를 위한 거름으로 쓰여질 것이란 사실을 덤덤하게 받아들인가. 이윽고 땅에 떨어졌을 때 프레디는 아프거나 괴롭지 않다. 자신의 이후가 어찌될지 잘 알기 때문이다. 발버둥쳐도 자연의 섭리는 부정할 수 없다. 프레디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만 남을 줄 알았는데 어느새 그는 지금의 나보다 더 성숙한 존재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지금의 내 모습은 어떤지, 지금의 내가 해야할 일들을 잘 하고 있는것인지 이시간이 흐르고 난 이후에 후회는 없을런지 조용히 사색하게 하고 성찰하게 만드는 그런 책이 바로 스프링칸타타였다.
그저 어린 나뭇잎 프레디의 삶을 쫓아 편안한 삽화에 취해있는 줄로만 알았던 만남은 그토록 귀한 만남이었던거다. 영문판 역시 읽게 되었는데 단어가 갖는 다양한 의미를 다시금 느껴보고 싶어서였다. 영문판을 다 넘긴 프리노트에 나는 또 몇마디를 적어본다. 무어라 적었는지 그것은 비밀이다. 책을 읽고나면 저마다 적고 싶은 말은 각각일테지만 결국 같은 맥락일거라 생각한다. 프레디를 만난 후 길가에 흔히 보이는 나뭇잎도 더이상 그저 그런 나뭇잎이 아니게 될 것 같다. 내가 아는 프레디가 저 위에서 그토록 아름다운 하루를 보내고 있겠거니 생각이 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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