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의 연애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단 한 문장으로 표현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소설, 이현의 연애를 읽기 전 까지 나는 단 한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나는 책을 좋아하기에 얕지도 깊지도 않은 지식을 가졌으며, 그로 인해 그대가 생각 하는 것 보다 괜찮거나 혹은 무서운 사람입니다."라고 말해왔었습니다. 더불어 영혼을 기록할 때의 이진과 그렇지 않을 때의 이진의 표정과 심리상태가 달라지듯 책을 읽을 때와 나의 표정과 심리상태도 다릅니다. 도서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가 출간되었을 때 흠칫하며 옆에 서있던 연인의 눈치를 보았던 까닭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물론 영혼을 기록하는 이진의 삶이 평범을 완전히 벗어나 고통과 같았다는 것을 겪어보지 않고도 알 수 있지만 책을 좋아하는 제 삶도 그리 평범하거나 고통이 없지는 않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고통이 영혼을 기록하는 고통에 비해 덜 한 까닭에 제게서 살구즙 향을 맡을 수 없으며 셈을 잘 하지 못해도 그저 얼굴한번 보기위해 물건을 사줄 만큼 이성의 넋을 뺏는 아리따운 미모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진의 삶이 부럽기도 하다가 이내 사랑하는 사람과 '감정'을 나누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반드시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거부'할 수 있는 나의 삶이 나은 듯도 싶은 감정의 교차를 여러번  느꼈습니다. 더불어 이진이 기록하는 영혼들의 이야기 속에 빠져들면 들수록 힘겹고 고단하기만 했던 내 삶이 위로를 받는다고 느끼곤 했었는데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 영혼을 기록하는 이진과 같은 기록자의 시선으로는 이런 나의 느낌도 거짓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반드시 진실만이 기록된다는 전제하에 그렇습니다. 부총리의 요청에 의해 기록을 보았던 이현이 그것을 진실이라고 말해왔던 이진의 말을 믿은 것 처럼말이죠. 이현이 약속된 금기나 다름 없던 노트를 꺼내어 읽고, 기록된 페이지를 찢어버린 것 역시 이진의 말을 믿었던 까닭이니까요. 

 

그 사건으로 이진이 죽고 난 뒤에 이현은 그녀의 삶을 기록합니다. 표면적으로 그로 인해 이진이 죽긴 했지만 영혼을 기록하는 데 있어 이현의 역할은 반드시 필요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진의 엄마가 이세 공을 통해 경제적으로 안정된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 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금기를 어긴 이현 때문에 이진이 죽었던걸까요. 배신에 의한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이진이 이현을 사랑했기 때문이었을거라 생각합니다. 마음이 없는 여인을 사랑했고, 그 사랑으로 그 여인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고 믿었던 어리석음이 죄라서가 아닐겁니다. 자신의 숙명과 같은 업의 균형을 깨뜨린 이현을 용서하자면 기록되어야 할 수 많은 영혼으로 부터 스스로가 괴롭힘을 당하게 되고 하루종일 머리가 복잡해 셈도 할 수 없었던 그녀이기에 차후에는 그를 사랑하는 그 마음마저 잃을것이 두려워 스스로가 소멸하는 쪽을 택했던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소멸되어도 그녀가 말했던 것 처럼 기록으로 인해 영원히 존재하고, 다른 사람이나 또 다른 기록자가 아닌 자신을 사랑했던 이현을 통해 기록됨으로써 그녀를 사랑했던 이현도, 그녀의 어미를 사랑했던 이세 공도 모두 분명 존재했던 '사실'임을 모두에게 말할 수 있었을테니까요. 물론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접하게 된 독자들도 어설프게 정의되어왔던 사랑과 삶에 대한 진정성에 대해 배웠거나 깨닫게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단 한 문장으로 표현되지 않는 사람 이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고나서 아직은 그럴 수 없지만 앞으로는 단 한 문장으로 표현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상대가 누구인지 상관없이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라고 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내 나이가 좋다 - 꿈이 있어 아름다운 88세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
이기옥 지음 / 푸르메 / 201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p.147  
 
하느님은 우리의 욕망을 어디까지 용서해주실까?

일 년에 두 번 피는 꽃에게 나는 많은 질문을 던져본다.
 
     

리뷰를 적는 것 보다 타이틀을 정하는 데에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 '나는 내 나이가 좋다'도 그 중에 포함될 줄은 미처 몰랐다. 결국 그 어떤 타이틀에도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서명 그대로를 적어버렸다. 연세 드신 분들의 Bravo my life!로 정리되는 책을 이전에 읽었지만 그 때는 내년이면 예순이 되시는 엄마와 같은 또래분들의 이야기라 그저 즐겁고 신나고 엄마도 한번 이렇게 살아봐! 하며 나 혼자 신나고 했는데 여든 여덟이 되시는 어르신의 글앞에서는 섣불리 공감이 된 다거나 이 분처럼 늙고 싶다라는 말도 나오질 않는다. 아흔이 넘게 살다가신 친할머니와 저자 이기옥 할머님 보다는 아직 '젊으신' 외할머니도 계시지만  어째서인지 전혀 딴 세상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기분에 까닭모를 죄송함만 깊어졌다.
 
88세의 삶이란 것은 어떤 삶일까.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와 김애랑 작가의 '두근 두근 내인생'에서 평범하게 나이들지 않는 그 두사람의 어설픈 노년기와 불행한 삶의 한켠을 보긴했어도 진짜 나이듦에 대한 생각이 솔직히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아이들에게 줄 밥상을 손수 차리고 멋들어지진 않아도 입을 수 있는 옷을 내손으로 만드는 것은 지금도 쉽지 않은 일을 하시면서 행복을 느끼며 감사함을 느낀다는 이기옥 작가님의 글은 그야말로 따뜻하고 한글자 한글자 모두 감사하다고 고백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나이들어 가족들의 손이 그립다고, 몸이 이곳저곳 아프다고 적으면서도 한사코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도 만들고 불행하게도 만드는 것은 어느 누구도 아닌 자신의 마음가짐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오랜 깨달음은 그렇기에 송구하게도 맘에 와닿는다. 몸이 아팠던 시절 은연중에 그런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다. 나이들어 관절염이 생기고 다쳐서 아픈게 아니라 정말 기력이 약해져 거동이 힘들어질 때 아마 이런 상태가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때는 지금의 작가의 말처럼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힘겨움을 느낄 수 밖에 없고 생의 '마지막'을 위한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기에 아프다고 포기하면 그때 해야할 일을 몇 십년이 앞당겨 하게 되는 것 밖에 안되겠구나 싶었다.

 

병이 나는 것도 마음에 생채기가 생겨나는 것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중장년층에 에세이와는 무언가 다른 낮은 자세와 진정한 비움의 고백이 담긴 이 책을 나는 멀리두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침대 곁에 아주 가까운 그곳에 두고 마음의 못된 씨앗이 심어질 때면 꺼내봐야지. 내 노년의 삶이 이제와 노력한다고 저자의 모습같진 않게 되더라도 손 뿐 아니라 다른 모든 곳이 아이에 볼에 비추었을 때 흉악하게 보이지 않도록 열심히 나를 담금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명작을 읽을 권리 - 작품이, 당신의 삶에 말을 걸다
한윤정 지음 / 어바웃어북 / 201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림이다. 한 쪽 어깨에 걸쳐진 옷이 흘러내린 줄도 모르고 책에 빠져있는 모습은 언제봐도 묘하게 매력적이다. 이 책의 내용도 표지만큼이나 매력적이냐고 묻는다면 다소 모호한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꽤 진지하고 학술적인 저자 서문을 지나 펼쳐지는 명작들의 이야기는 분명 표지의 여인이 그러하듯 빠져들만한 내용이었다. 때문에 챕터 1,2를 읽을 때까지는 정말 재미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소개된 책들의 리스트를 체크하면서 그동안 읽었던 책들이 대다수 포함되어 있어 스스로의 독서량에 뿌듯함도 느껴졌다.원작소설과 영화를 비교하는 것에 더해 같은 주제를 두고 서로 다른 결말에 이르는 작품 비교도 흥미롭긴 했다.
크게 4개의 챕터로 구분지어 놓았지만 굳이 나누지 않아도 될 만큼 큰 변별력을 갖지 않는 비교분석은 책을 주제로 하는 블로거의 포스팅을 보는 듯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명작을 읽을 권리라는 대담한 타이틀 아래 포함되어진 내용치고는 아쉬운 작품이었다. 명작을 읽을 권리라는 것이 어짜피 독자에게 주어진 몫이라는 저자의 말에는 공감한다. 분명한 것은 단 하나다. 저자의 경우 작품을 바라볼 때 상당히 긍정적인 마인드와 그동안 쌓아놓은 해박한 지식을 바탕을 가졌다는 것이다. 같은 작품을 읽고서도 작품에 녹아든 역사적 배경과 저자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를 유추해서 '명작'을 읽었다는 기분을 스스로 갖게 할 수도 있고 반대로 명작을 읽으면서도 보여지는 텍스트나 이미지외에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독자는 타인에 의한 명작외에는 읽을 기회를 스스로가 박탈하게 되는 것이다. 명작을 읽을 권리는 결국 그 어떤 권리이행에 앞서 책임과 의무를 가지는 것과 같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소개된 작품의 결말과 줄거리를 상세하게 소개한 까닭에 하나의 강연이나 리뷰로서의 점수는 높게 줄 수 있지만 막상 그 책을 읽고자 하는 마음은 사그라들었다. 내용을 너무 잘 알아버렸고 작가의 느낌이 마치 내 느낌이 된 것 같아 고정된 시선으로 작품을 봐야할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소개된 작품들도 이전에 다른 저자들에 의해 여러번 언급되었던 작품이라 친숙한 점이 다소 독이 되었다. 이미 많이 들어서 어느 누구보다 잘 설명할 수 있게 된 작품의 배경을 재탕한 듯했다. 재밌게 읽으면서도 뭔가 아쉬운 기분이 떠나질 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덕의 계보학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니체의 책을 접하게 된 것은 스무살 때 였다. 대학생도 되었으니 철학자와 그의 저술서도 궁금해졌고 무엇보다 입학 이전 1월에 읽었던 독일문학가의 여행서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니체를 비롯하여 전혜린 작가 등 독일과 관련된 문학, 철학의 키워드를 뇌리에 새겨두었기 때문이다. 우선 지나치게 어려울 것 같은 니체의 저서보다 전혜린씨의 에세이를 읽고 에세이의 서명이나 중간중간 등장하는 니체의 이론을 접하다가 본격적으로 '우상의 황혼' 그리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권을 읽었다. 아직 정신적으로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때 읽었던 2권의 내용이 지금까지 남아있지는 않다. 솔직히 지나치게 난해했고 허세에 의한 독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렵 S대 미학과에서 '우상의 황혼'을 필독서라고 말했던 지인의 영향이 컸었으리라.
 

그렇듯 20대에 어설프게 만났던 니체는 어렵고 말고를 떠나 그저 이름만 아는 철학자로 내곁에 남아있다. 그리고 서른이 넘은 지금 니체의 후기 철학서에 해당하는 '도덕의 계보학'을 만나게된 것이다. 도덕의 계보학은 이전에 출판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와 우상의 황혼에 비해 좀 더 종합적으로 논리적인 의견을 제시한 책에 해당한다고 설명하지만 내게 있어 그 어떤 책보다 유머러스한 책이라는 느낌을 줄곧 가져다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니체 스스로가 서문에 다음과 같이 밝혔다.

 

p.22 다른 경우에는 잠언 형식이 이해를 어렵게 한다. 그 이유는 오늘날 사람들이 그 형식을 제대로 진중하게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올바로 새겨지고 표현된 잠언은 읽는다고 해서 아직 '해독된' 것이 아니다.

 

제1논문에서는 '선과 악', '좋음과 나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직 되새김질을 미처 하지 못했기에 평을 떠나 대략적으로 정리되거나 혹은 공감했던 부분을 정리하자면, 도덕이라는 것이 어떤 정확한 잣대에 이해 판가름 된다는 가정 하에 도덕적 가치를 비판하는 일이 필요하게 된다. 니체 이전에 이에 관한 지식이 없었고 이런 지식을 사람들이 가지려고 한 적도 없었기에 니체는 이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게 된 것이다. 제2논문에서는 '죄', '양심의 가책' 그리고 이와 유사한 것 제3논문에서는 금욕적 이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담고 있다. 우선 '선과 악','좋음과 나쁨'의 경우는 로마인들과 유대인들의 전쟁을 예로 들었다. 그들 중 누가 선이고 악이라고 판단 할 수는 없다. 다만 로마인들이 반유대적인 것에 대한 행위에 대한 비판은 필요해진다. 이런 비판에 쟁점에 서있는 사람이 프랑스의 나폴레옹-위버맨쉬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이 죄를 짓고 그로인해 양심의 가책 즉, 병을 갖게 되는 것에 시작은 어떤 대상을 비롯한 제 3자로 부터 취하게 되는 책임이 시작이 된다. 자신의 행위를 책임질 수 없거나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 우리는 고통을 느끼게 되고 그 고통을 자신의 죄라고 느껴야 한다고 니체는 말한다. 그렇다면 금욕적 이상이라는 것은 또 무엇인가. '우리가 차츰 알게 되겠지만 예술가의 경우에는 그것은 전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p.141' 라고 말한다. 혹은 전혀 아무것도 아니라 할정도로 많은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는데 니체의 이런 이중적인 해석은 처음부터 줄곧 표현하는 방식이 된다. 어떤 대상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라고 표현했다가도 뒷이어 바로 이해할 필요성이 없다라고 말하니 책을 읽으면서 이것이 진정한 니체의 표현이었는지 번역에 의한 작용인지를 가늠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결국 재미있게 도덕의 계보학을 읽고 기억에 남을 만한 경구를 메모해두어도 여전히 니체가 무슨말을 하는지, 니체가 어떤 사람인지를 깔끔하면서도 정어느정도 정확하게 이해했다고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되새김질을 하면 가능해질 것인지는 의문스럽긴 하지만 아직 그렇게 하지 못한 지금 이를 두고 두려워할 까닭은 없다고 본다. 더불어 이에 대한 양심의 가책은 느끼지 않아도 될 것 같다.

 

p.209

'이 모든 것의 진정한 의미는 너무나 자주 자기 자신의 무언가를 더 이상 보이지 않게 하는 데에 있지 않은가! 자기 마비의 수단으로서의 학문, 여러분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퀴엠 블루문클럽 Blue Moon Club
뤼크 피베 지음, 양진성 옮김 / 살림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p.435 나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연주하거나 그처럼 생생하게 살리려면 모든 영혼을 그것에 바치고 미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레퀴엠 수수께끼는 저녁식사 후에 이후로 리뷰를 임시저장 해놓고 깜빡한게 벌써 2번째다. 커피숍에서 2~3시간씩 앉아있을 수 있게 된 지난 여름날 부터 몰아치듯 책을 읽은 탓인 것 같다. 어찌되었든 읽은지 한달이 지나 리뷰를 적는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무지 불쾌하게 읽었던 책의 경우는 어느정도 순화 단계를 거쳐 별1개 에서 심할 때는 별3개 수준으로 극상되기도 하고 엄청 재미나게 읽고서도 한달씩이나 지나고나면 감흥이 이내 사라져 별 4개정도에서 그치기 때문이다. 만약 이 책의 내용이 모차르트가 레퀴엠을 작곡하는 배경에 관한 스릴러에서 그쳤다면 극히 위험했을 것이다. 하지만 왠걸. 한달이 지났어도 아직 생생하다. 레퀴엠을 읽으면서 몸서리치게 떠나고 싶었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불현듯 은퇴를 선언하고 사라졌던 레미 봉스쿠르 피아니스트가 복귀하는 무대에서 갑자기 쓰러진 뒤 죽음을 맞이한다. 그를 열렬히 사랑하는 클래식 잡지기자 드니는 기사를 위해 현장에 있었던 사람으로 마치 제3자의 입장에서 지켜보는 시선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하지만 봉스쿠르의 매니저를 만나게 되면서 그 자리에 있게 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게 된다. 봉스쿠르가 오래전 부터 자신을 주목해왔다는 사실을 알게된 드니는 플루리스트 로라와 함께 무작정 사건을 파헤치러 과감하게 봉스쿠르의 '부름'을 응한다. 내용의 배경이 된 베니스, 빈, 런던은 지난 겨울 다녀왔던 곳이라서 그런지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는 정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드니가 묘사하는 베니스와 런던은 나를 비롯한 누구라도 느껴봤을 법한 풍경이었다. 일정 시간이 되면 물이 차오르는 베니스에 사는 음악애호가의 집을 방문하는 장면은 나의 역마를 견디는 가장 고된 순간이었다.




   p.432  
 
베니스가 물 위를 떠다니는 과거의 조각이라면 런던은 정신없이 빠르게 달리는 노선이었고, 빈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한 곳에 존재하지 않는 도시였다.
 
     



단순히 모차르트를 비롯하여 유명한 음악가들의 원본 악보 수집에 열광하다 죽음을 당했다고 생각했던 것에 그치지 않고 역사적 사실여부가 궁금해질 만큼 진지하게 현재에서 과거로 이어지는 작가의 상상력과 그 상상력을 뒷받침하는 음악에 대한 배경지식에 감탄하게 되었다. 종교음악, 비밀조직, 유명한 작곡가, 값을 짐작할 수 조차 없는 진귀한 악보들.

 

등장하는 음악가만 해도 한두명이 아니다. 반갑게도 그안에 정명훈씨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 괜스리 더 작품에 호감이 갔다. 왠지 뿌듯하기도 하고 이토록 유명한 음악가가 등장하는 소설에서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채워준 작가 뤼크 피베가 예뻐보이기 까지 했다. 책을 읽기전에 언뜻 보았던 저자의 약력을 책을 다 읽고다서 다시금 주목하게 되었다. 작곡과 연주를 하던 음악가에서 연극과 TV 프로그램 작가로 활동하다 2006년부터 스릴러 소설창작에 몰두하고 있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가 저술한 다른책도 꼭 읽어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