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뿌리는 자 스토리콜렉터 8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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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컨데 이 리뷰는 책을 읽은 후 일주일이 훨씬 넘어 적게 되었다. 여러가지 사적인 문제로 인한 것이라 하루하루 조마조마해가져 경험해 본이들은 알거라 생각된다. 스릴러를 포함, 대개의 도서를 바로바로 리뷰로 남겨두지 않으면 인간의 기억력이 밤사이 높아졌다가 급 하강한다는 사실을. 때문에 불안하고 불안했다. 아, 나중에 살인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여자가 범인일까요? 아닐까요? 한 줄만 적어놓고 더이상 써지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하지만 의외로 독서 후 3일이 경과되니 오히려 신기하게 내용과 인물들을 곱씹어 보게 되었다. 그것이 반복적으로 떠올린 까닭인지 아니면 이전에 출간된 소설보다 시리즈상 먼저 출간된 까닭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넬레 노이하우스라는 작가에 필력에 대해 새삼 놀라게 된 것은 사실이다.

 

경감, 그리고 피아에 대한 접근점도 사건 수사중에 의뢰인과, 그것도 독자로 하여금 가장 '유력한 용의자'와의 밀애는 답답하다 못해 피해자 입장(엄연히 따져보면 이것도 좀 애매하다, 과연 누가 진정한 피해자일까?)에서는 화나고 속상할 정도였다. 지난 '너무 친한 친구들'과 비교하자면 이번 바람을 뿌리는 자의 경감의 태도는 더더군다나 화가났다. 때문에 도대체 이들이 수사하려는 생각은 있는것인지가 의문이었다면 시일이 한참 지나고 난 뒤에는 형사도, 의사도 결국 외로움이라는 절대적 존재를 부인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었다. 뿐인가. 내가 읽은 시리즈의 경우는 늘 개인대 개인의 사건이 아니라 '단체'와 '경영집단'과의 대결구조로 살인사건이 발생하는데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또한 결국 자신의 마인드를 컨트롤 하지 못하거나 개인적인 원한과 증오가 발단이 되었다는 사실인 것이다. 물론 이부분을 전혀 깨닫지 못했던 것은 아닌데 사건의 중점을 '범인잡기'에만 두었던 나의 무지와 문학을 문학으로 못보고 '사건'으로만 보았던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근래 들어 읽었던 다른 스릴러 물의 경우 '범인잡기'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풀기위해 알아야 할 방대한 지식의 재발견이 중심이 되었다면 책, 바람을 뿌리는 자는 오히려 인간 심리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출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서명 또한 바람을 뿌리는 자, 음모론이 엿보이는 기후와 풍력발전소와의 관계는 바람이라는 대자연을 '뿌리려는, 손대려는' 인간의 이기심과 신의 대항하는 당돌함이 느껴졌다. 헌데 더 기가막힌 것은 실제로 인간의 손에 의해 바람이라는 잡히지 않는 존재를 '뿌리려는 행위'등처럼 가능해졌다는 사실이었다.

 

타우누스 시리즈의 경우는 책 표지도 내용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너무 친한 친구들의 경우 동물가면을 쓴 자들이 친한 듯하면서도 서로 피가 묻어있는 칼을 들고 있거나 엄연한 서열이 동물들을 등장시켰다면, 이 책 바람을 뿌리는 자는 등돌아 서있는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를 만나는 순간 그녀를 알고 싶어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상대남성들은 그녀가 누구인지 조차 중요해지지 않을 정도로 그녀에게 빠지고 만다. 하지만 안타까운 사실, 정작 그녀가 수년간 사랑했던 그는 왜 이토록 무서운 여인을 알아보질 못했을까?!

 

결국 인간의 외로움, 인간과의 관계라는 기본을 잘 살린 넬레 노이하우스의 타우누스 시리지는 계속 읽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과연 다음 편에는 누군가의 외로움이, 또 누군가의 과거가 요리될런지 기대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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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사상선집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이을상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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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가 무엇인가.

친절하게도 공리가 무엇인지 설명해주어 고맙긴 한데, 공리주의가 딱부러지게 이것이다라고 첫줄에 나오는 것은 아니다. 내가 너무 연약한 자세로 공리주의를 대하려고 했나보다. 공리주의는 쾌락과 같지 않으며 공리주의를 비판하는 자들이 쾌락과 같다는 오해를 한다고 한다. 공리가 쾌락인가. 도덕적 선의, 혹은 결과주의적 선의 측면으로 보자면 다수의 이익이 곧 쾌락으로 지칭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만 엄연한 의미에서의 공리는 단순하게 쾌락, 좋은 것은 아니다. 공리가 최대의 행복이라는 점에서 보면 밀의 주장처럼 아직 명확하게 풀어지지 않는 몇가지 점이 있다. 일단 행복이란 것이 그의 말처럼 고통 뿐 아니라 쾌락조차 없는 상태를 뜻하는데 그런 상태를 어떻게 명확한 잣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공리주의자였던 이들이 나이들면서 변해지는 것도 비판자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기도 한다. 쾌락을 멀리하자던 공리주의자들도 나이들면 나태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태가 즉 쾌락이며 그것이 공리주의에 반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역시나 명확한 기준이 없어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내가 더 궁금한 것은 저급 쾌락과 고급 쾌락이다. 쾌락에도 급이 있고 저급쾌락은 더 멸시받는 까닭이 조금 우스워졌다. 어짜피 공리라는 것이 쾌락을 배제한 상태를 칭하는 거라면 그것에 급이 왜 필요하며 더더군다나 저급쾌락이라고 해서 더 비판받을 까닭도 없지않은가. 물론 내가 쾌락에 빠지지 않고 쾌락을 멸시하거나 공리 그자체에 뜻을 둔다면 앞서 가진 의문은 굳이 해결되거나 답을 들어야 할 부분은 아니다. 내게 중요한 것은 어쩌면 내가 권리를 이행할 수 있고 보장받을 수 있는 국가의 국민인지가 중요할 것이다. 개인의 공리가 모여 국가의 공리가 되는 것이고, 개인의 공리가 국가의 공리에 우선시 될 수 없으며 '결과적으로' 최대의 행복이라는 결과론적 성향이 갖는 몇 가지 우려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나 오히려 교과서에서 배울 때보다는 책을 통해 읽고나니 어설프긴 해도 의심이나 비판적인 시선은 사그라드는 느낌이 든다. 내가 또 문학적인 시선으로 읽은 탓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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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 - 조선을 지배한 엘리트, 선비의 두 얼굴
계승범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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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

조선시대의 선비를 떠올리면 남루하거나 비단 도포를 입거나 상관없이 학문에 정진하고 가정에 충실하며, 무엇보다 어진 마음으로 왕과 나라에 대한 지조를 지키는 뜻있는 남자사람이었다. 하지만 서명이,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이며 부제가 조선을 지배한 엘리트, 선비의 두얼굴이라길래 호기심에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괜한 호기심은 두눈을 잃을 수 있는 치명적인 위험이 있는데 그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조선시대의 존경스럽기까지 했던 선비들의 모습이 장님 코끼리 만지듯 평가했던 것임을 알게된 것이 결코 유쾌할 수는 없었다. 저자는 어떤 대상의 단면만을 보고 칭송하고 우러러보는 잘못된 평가를 바로잡기 위해 책을 폈다고 하지만 위인전을 통해 친근하게 다가왔던 이들조차 비약하면 위선자와 같았던 역사적 사실에 기운이 빠지긴 하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와 함께 5장으로 구성되었는데 1-3장이 우리가 알고 있는 선비에 대한 반박이라면 4장은 조선시대의 실제 선비들의 모습을 담았으며 5장은 현대에 이르러서 선비를 올바르게 평가하는 것의 중요성을 좀 더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조 있으며 자신의 신조를 꺾지 않는 모습을 선비라 할 때 과연 근대 및 현대에 이르러 독재정권을 펼쳤던 전 전대통령이나 박대통령의 경우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냐는 의문에 나 역시 할말을 잃었다. 조선시대에는 '선비'로 대접받다가 현대에 이르서는 '독재'로 평가되는 이중잣대등이 이 책을 흥미롭게 만드는 여러 요소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조선시대, 그때는 신분제도가 있었으며 중국과 달리 모계의 신분이 크게 인생을 좌우했는데 대표적으로 아버지가 양반이라도 제 어미가 노비이거나 후처 혹은 첩의 자식이면 관직에 오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당시에는 깨어있는 선비들은 분명 있었기에 인재등용에 있어 철폐까지는 아니더라도 신분의 제약을 낮추거나 예외를 두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그 의견이 우리가 믿었던 그 '선비'들에 의해 좌절된다. 해당 제도를 반대했던 인물중에 이황이 있었다는 사실이 슬프기 까지 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아니다. 조선엘리트들이 다가오는 사회변화에 대처하는 방법은 개인주의를 넘어서 이기적으로까지 비춰졌다. 유교사상이라는 것도 자신들의 권위와 영위를 위한 술책으로 보였다는 점이 여러모로 씁쓸했다.

 

그렇게 비난에 가까운 본문의 글을 뒤로 하고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꺼낸 이야기의 대부분을 거듭 되풀이 하며 이제 그만 선비를 역사로 놓아주자고 한다. 선비가 뜻하는 바도 시대에 따라 달라졌는데 70~80년대에 선비는 경제활동을 게을리 하고 제대로 가정을 보살피지 못한 한량에 가까운 이미지였다. 가부장적 제도로 대표되는 유교사상이 언급되면서 다시금 선비가 추앙받고 재평가 되기 시작했지만 이 역시도 서문에 밝힌 것처럼 왜곡된 평가였기에 올바른 평가가 필요하다는 점이 저자가 이 글을 쓰게 된 경위라고 볼 수 있다. 과연 선비와 유교문화, 이는 존경받아야 할 존재와 사상인지 앞으로 어떤 선비에 대한 평가가 나올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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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관 살인사건 스토리콜렉터 7
오구리 무시타로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로드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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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주 재미난 책이다. 여기서 재미남의 이유가 여타의 다른 작품들과는 전혀 다르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끝까지 해답을 듣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주 악의적인 비소의 재미라고 보면 맞을 것 같다. 책을 읽고자 하면 활자를 따라 눈을 굴리기면 하면 된다. 하지만 이해하려 드는 순간 노리미즈가 그러했듯 제 아무리 박학다식한 독자라도 쉽사리 통쾌한 웃음으로 읽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흑사관으로 불리는 대저택에서 일어나는 연쇄살인 사건이란 말에, 일본의 3대 기서란 말에, 탐정이 등장하는 추리소설 중에 손꼽히는 작품이라는 말에 내가 너무 얕잡아봤다. 일드에서 흔히보이는 몇몇 개의 트릭- 트릭이라고는 해도 어찌보면 작가 입장에서 볼 때 정말 아무것도 아닌-를 해결하고나면 아! 그런거였군 할 수 있지 않았다. 솔직히 모르겠다. 읽고 읽어도 노리미즈의 공책을 뚫어져라봐도 잘 모르겠다 싶었다. 처음에는 리뷰를 요약하듯 적으려고 했다. 하지만 장르가 문학이지 않은가! 그것도 추리소설인데 어설프게 추리할 수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범인이 나열해놓은 그 수많은 장서와 장치를 내가 어찌 열거 할 수 있겠는가. 특히 사건의 바탕이 되는 파우스트는 아직 완독하지 못한 책이었는데 다시금 미완의 독서를 통탄케 했다.

 

이렇게 적으면 이 작품이 꽤나 난해하다보다 아주 사람 답답하게 만드는 책인가보다 싶어 겁내고 물러설까봐 몇마디 더 붙이자면, 근래 보았던 셜록홈즈, 밀레니엄의 기자와 천재해커 소녀를 떠올려보면 좋을 것 같다. 포스트잇으로 사건을 하나하나 인물도 하나하나 벽에 붙여놓고 따라가며 이 책을 다시 찬찬히 공부하듯 읽어보고 싶을정도의 매력은 가진 책이다. 무엇보다 이책을 읽고나면 접하지 못한 명작들도 만날 수 있는데 작가가 픽션으로 탄생시킨 작품들이 아니란 사실이 더 매력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또 하나.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살인사건의 정황을 엿볼 수 있는 판화가 등장하는데 피가 난무하고 실사를 담은 사진도 아닌데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는 오히려 흑백이미지 속에서 더 잔혹함을 갖게 만든다는 점이다.

 

고저택, 흑사관이라는 흑사병과 관련된 괴기스러운 별칭이 붙여진 그곳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 단순한 트릭도 가벼운 원한으로 풀려지지 않는 난해함. 별거 없는 흰 뼈에 얽힌 근육과 조직들처럼 붙어있는 끝없는 이야기들. 어떤 독자가 전쟁이 날 경우 그 어떤 책보다 이 책 한권을 가지고 가겠다는 까닭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이 책은 몇 번을 읽어도 질릴수도 시시해질 수도 없기에 독자를 끊임없이 빨아들이는 힘을 가진 책이다. 물론 난 포스트잇으로 탐정흉내를 내보려는 흑심을 숨기지 않겠다. 그리고 한마디 더, 역자 김선영님 정말 애쓰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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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시선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이상 지음, 이재복 엮음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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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나치게 오만했음을 미리 밝혀둔다. 초판이다. 이상의 시는 현대어로 말끔하게 옷을 갈아입은 상태로 읽어도 난해한데 어쩌자고 초판에 욕심을 냈을까. 이상의 시는 누구나 한번쯤 탐내는 시다. 기형도의 시가 그러하듯, 윤동주의 시가 그러하듯 각기 이유는 달라도 한번쯤 꼭 눈으로 읽는게 아닌 마음으로 만져보고 싶은 시. 하지만 난 전혀 그렇게 읽지를 못했다. 한자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주석이 없었다면 결코 알 수 없는 표현들. '잊을 수 없소이다'를 '니즐수업소이다' 정도로만 적었어도 그나마 수월 했을텐데...하고 뒤늦게 어리석은 속내를 내보여도 처음 읽기 시작한 이후 일주일 가량은 주석에 의지 해 시를 읽는 것인지 연구를 하려고 잃는지 스스로도 분간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대략 한눈에 그 뜻을 알 수 있었던 몇몇 시는 나를 참 우울하게 만들었다. 이상이 이 세상에 머물다간 시절의 괴로움은 지금의 현대인들도 똑같이 가지고 있다. 무서운 아해를 무서워하던 아해가 어느순간 무서운 아해로 변해가는 모습은 얼마전 보았던 영화 my way의 정대가 안똔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상기시켰다. 그러다가 자신을 쏘는 무기앞에서 다시금 무서워하는 아해로 입장이 달라지는 것은 비단 전쟁에서 만은 아닐것이다.  이상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인 거울이 담긴 시의 경우 거울을 바라보는 자신을 겁내하기도 하고 묵묵부답인 거울속의 자신을 답답해하기도 한다. 자신을 너무 잘 알아 괴로워할 적의 내모습, 내가 무엇때문에 괴로운지를 몰라 역시나 괴로워하는 나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누렁이가 물고 온 주먹을 쥔 채 잘린 팔은 '나'의 팔이다. 그런데 내가 느끼는 고통은 그 이전에 있었던 고통이 아니라 누렁이를 보고 느끼는 고통이다. 나의 아둔함을 내가 모르고 타인의 모습을 통해 비로소 깨닫는 것은 영화나 책등을 통해 때때로 반성하는 내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무엇보다 시 속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이나 작품들을 보며 이상도 잠을 잘 수 없었던 이유가 마음의 괴로움이 아니라 지식에 대한 갈급함을 해소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시집 뒤에는 저자의 대한 설명, 작품에 대한 설명등이 실려있다. 헌데 난 잘 모르겠다. 재학시절 그리고 이후 인문학 수업을 통해 들었던 말들, 입체파, 다다이즘, 포스트 모더니즘 등의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모르는게 아니라 이상의 시를 그렇게 면밀하게 분석하고 싶은 마음이 부족한 탓일거다. 난 그냥 내가 느끼는 대로 그의 시를 느꼈다. 한자, 낯설은 어체에 대한 어려움은 온데간데 없고 그가 쓴 시가 보이기 시작한 이후로는 아에 주석도 보질 않았다. 그래서 내멋대로 그의 시를 해석하고 느꼈을런지는 모른다. 하지만 학문적으로 파고들어 어렵기만 한 이상의 시보다, 지금의 내처지와 견주어 공감도 하고 위로도 받으면서 읽는 것, 그게 시를 읽는 또 다른 방법이 아닐까 싶다. 물론 전혀 이해하지 못한 난해는 커녕 난독에 가까운 시들이 대부분이라 이런 표현도 조금 건방져 보일 수 있음은 미리 양해를 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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