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사회 - 휴머니티는 커피로 흐른다
이명신 지음 / 마음연결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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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아침마다 반복되는 의식처럼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찾는 것은 커피입니다. 에스프레소 한 잔의 농축된 쓴맛부터 라떼의 부드러운 위안까지 커피로 일상의 리듬을 찾아갑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2위 커피 소비국이라고 합니다. 커피는 음료를 넘어 우리 정체성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이명신 저자는 <커피사회>에서 “왜 우리는 커피 없이 하루도 견디지 못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각성, 향유, 우애 세 가지 키워드로 커피와 사회의 관계를 풀어냅니다.


일상을 지탱하는 커피의 힘, 각성 파트에서는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믹스커피 등 다양한 커피가 우리 삶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들여다봅니다.





에스프레소는 모든 커피의 기본이 되는 베이스입니다. 탄탄한 기본기가 있어야 변형도 가능하다는 인생의 진리를 에스프레소에 비유합니다. 저자는 "우리는 자신이 누군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내면을 들여다보기보다 타인의 삶을 기웃거리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보이는 나를 다 걷어내고 나면 내 안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라며 에스프레소처럼 진하고 강렬한 자기 성찰의 중요성을 일깨웁니다.


가장 대중적인 커피 아메리카노는 바쁜 일상 속 능률을 올리는 부스터 역할을 합니다. "좁은 땅에서 치열한 경쟁을 견디며 살아내는 한국인의 몸부림은 독특한 커피 문화, '아아'를 만들어냈다. 속도와 효율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표상이다"라며 한국인의 분주한 삶을 상징하는 음료로 묘사합니다.


믹스커피, 터키시 커피, 달걀 커피 같은 커피들을 통해 삶의 무게를 견디는 방법과 오리지널리티의 가치 그리고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을 찾는 지혜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원래는 노른자 크림이 들어가는 달걀 커피가 대한민국에서는 노른자 동동이 된 상황을 참살이와 연결해 이야기하는 에피소드도 인상 깊었습니다. 바쁜 출근길 직장인들이 아침을 먹지 않아도 오전을 버텨낼 일타쌍피 역할을 한 달걀 커피.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먹거나 간편식으로 채우는 현대인의 일상을 짚어보며, 일과 삶의 균형을 찾는 것이 현대인의 중요한 과제임을 상기시킵니다. 그러고 보면 도란도란 둘러앉아 식사를 함께 하는 시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커피를 통한 자기표현과 취향의 발견, 향유 파트에서는 커피가 자기표현과 취향의 도구가 되는 측면을 탐구합니다. 더치커피, 캐러멜 마키아토, 가향 커피 등 다양한 커피를 통해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지 살펴봅니다.


더치커피는 시간의 밭에 인내를 심는 과정을 상징합니다. 천천히 추출되는 더치커피처럼 삶에서 중요한 것들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함을 일깨웁니다. 캐러멜 마키아토처럼 달달한 커피는 고단한 일상에 작은 위로를 던지는 역할을 합니다. 자판기 커피에서는 소소한 낭만을, 셀피 커피에서는 현대인의 자기표현과 과시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들여다봅니다.


특히 셀피 커피는 자기표현 방식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3D 프린팅 기술로 자기 얼굴이 새겨진 커피 인증샷을 찍는 행위는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드러내는 문화적 코드가 되었습니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소비를 통해 자신을 정의하는지, 그 과정에서 진정성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지 질문합니다.


커피를 통한 연결과 공존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우애 파트에서는 커피가 인간관계와 사회적 연대를 형성하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에 주목합니다. 드립 커피, 카페라테, 캔커피, 공정무역 커피 등 우리가 어떻게 타인과 연결되고 공존할 수 있는지 탐색합니다.


드립 커피는 타인을 환대하는 과정을 상징합니다. "환대는 레드 카펫처럼 타자에 대한 인정과 존중을 의미한다. 추앙과 환대는 인간 고유의 본성이자 진정한 인간다움의 표현이다."라며 커피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매개체임을 보여줍니다.


카페라테는 밀어내지 않고 부드럽게 서로를 포용하는 공존의 지혜를 상징합니다. "우리는 서로의 환경이다. (…) 지금 우리에게는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어우러지는 스며듦의 미학이 필요하다."라며 카페라테처럼 에스프레소와 우유가 조화롭게 섞이는 모습을 통해 사회적 공존의 중요성을 일깨웁니다.


마지막으로 카페라는 공간이 현대 사회에서 갖는 의미도 생각해 봅니다.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장소가 아닌, 일과 휴식이 공존하는 제3의 공간으로서 우리 삶에 깊이 자리 잡았습니다.





<커피사회>는 커피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 사회와 문화, 인간관계를 새롭게 바라보게 합니다. 각성이라는 현대인의 필수 요소, 향유라는 자기표현의 욕구, 우애라는 인간다움의 가치를 커페에서 발견합니다. 매일 마시는 커피 한 잔이 우리 자신과 사회를 이해하는 의미 있는 의식이 될 수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저자가 추천하는 커피와 어울리는 음악까지 켜놓으면 커피타임이 더욱 즐거워집니다. 커피를 매개로 사회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담고 있는 <커피사회>. 호모 코페아(Homo Coffea), 커피 인간으로서 어떻게 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지 고민합니다.


내 커피 취향이 말해주는 건 단순한 기호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내 삶과 가치관을 표현한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깨어 있기 위해 마셨던 이 커피를 통해 나를 알고 우리를 이해하는 인문학적 각성의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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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과 사용 설명서 - 피부과 진료 선택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인승균 지음 / 라온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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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피부는 타고나는 것이라는 말도 이제는 옛말입니다. 피부는 관리해야 한다는 시대적 인식이 자리 잡았습니다. 인승균 원장의 <피부과 사용 설명서>는 피부과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 피부 관리의 올바른 방향을 알려주는 안내서입니다.


피부과 전문의인 저자가 진료 현장에서 경험한 다양한 사례와 환자들의 질문을 바탕으로 피부 질환부터 미용 시술까지 폭넓은 정보를 소개합니다.


우리가 피부과를 찾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피부 질환 치료부터 미용 목적 그리고 최근에는 자기 만족과 심리적 안정을 위해 정기적으로 피부과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제 피부과는 자신을 가꾸고 삶의 질을 높이는 웰빙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피부과와 피부 관련 시설이 즐비한 요즘, 어떤 기준으로 병원을 선택해야 할까요? 저자는 피부과 전문의가 운영하는 의원과 일반 의원, 피부관리샵의 차이점을 명확히 설명합니다.


피부과 의사로서의 자격과 전문성이 치료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또 다른 병원에서 호전되지 않던 증상이 회복된 사례를 통해 올바른 피부과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다양한 피부 질환에 대해 짚어줍니다. 아토피 피부염, 건선, 백반증과 같은 만성 피부 질환부터 두드러기, 대상포진, 사마귀까지 다양한 피부 문제를 다룹니다.


두드러기만 해도 여러 유형과 특징이 있습니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고 있어 자신의 증상을 더 잘 이해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는 데 도움이 됩니다.


탈모 문제에 대해서도 다룹니다. 남성형 탈모뿐만 아니라 여성형 탈모 치료법까지, 미녹시딜과 같은 치료제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부작용에 대한 설명도 꼼꼼히 짚어주니 치료법을 선택할 때 도움 됩니다.


<피부과 사용 설명서>라는 제목처럼 저자는 피부과 진료실에서 자주 접하는 질문들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내놓습니다. 좋은 피부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부터 시작해 피부에 좋은 습관과 나쁜 습관, 노화를 늦추는 법 등 실용적인 조언까지 폭넓게 다룹니다.


보톡스와 필러에 대한 선입견, 다양한 피부 관리 시술의 차이점, 자외선 차단제의 올바른 사용법 등 실생활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정보가 유용합니다. 특히 피부과 시술 가격의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를 편의점 커피와 스타벅스에 비유하며 이해하기 쉽게 설명합니다.





피부과 의사가 직접 받는 시술이나 가성비 높은 시술과 낮은 시술에 대한 정보는 소비자 입장에서 유용한 가이드라인이 됩니다. 특정 피부 고민별로 적합한 치료법을 소개하고 피부과 장비의 진품·복제품 차이, 가정용 미용기기의 효과에 대한 솔직한 평가까지, 시술 전 반드시 읽어야 할 사전 정보 역할을 잘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피부 관리의 목적이 단순히 외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신을 아끼고 돌보는 과정에서 얻는 심리적 안정감과 만족감에 있다고 강조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피부과 사용 설명서>는 피부과 진료의 다양한 측면을 폭넓게 다루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피부를 건강하게 가꾸고 그 과정에서 자존감과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을 짚어줍니다. 외모 지상주의로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피부 관리가 주는 심리적, 사회적 혜택을 인정하는 균형 잡힌 시각이 녹아 있습니다.


피부 질환으로 고민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미용 목적으로 피부과 방문을 고려하는 이들, 그리고 일상적인 피부 관리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유용한 가이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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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웬디 코프 지음, 오웅석 옮김, 유수연 감수 / 윌마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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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점심시간에 커다란 오렌지를 하나 샀어 – 그 크기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지.”


영국 현대 시인 웬디 코프(Wendy Cope)의 대표작이자 동명의 시집 『The Orange』의 핵심 정서를 함축한 「오렌지」 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찬란하게 기념하는 동시에, 그 무엇도 당연하지 않은 시대에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지를 보여주는 시입니다.


시집 <오렌지>에는 총 31편의 시가 수록되었습니다. 유수연 시인의 감수로 정제된 번역본과 웬디 코프 특유의 리듬감과 유머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영어 원문으로 구성되어 있어 좋았습니다.





“그 오렌지 덕분에 너무도 행복했어,

평범한 일들이 종종 그렇지,

특히나 요즘에는. 장을 보는 일도. 공원을 거니는 일도.

모든 게 평화롭고 만족스러워. 새삼스럽게도.” – 「오렌지」 중에서


이 시는 도시적 고단함 속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평범한 기쁨을 상기시킵니다. 커다란 오렌지를 사서 나눠 먹는 일, 그 단순한 행위에서 비롯된 감정이 하루를 평화롭게 만든다는 것. 이런 기쁨의 발견을 우리는 평소 얼마나 많이 지나쳐버렸을까요. 바쁘게 지나쳐버리는 삶의 디테일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시입니다.


오렌지는 작은 행복의 은유입니다. 이 책이 특히 2030 세대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꿈보다는 “그냥 좀 행복하고 싶다"라는 욕망, 그것을 시인은 다정하게 받아들이고 포용해 줍니다. 지금의 세대가 겪는 정서적 피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제는 안전하게 정착할 사람을 찾았으니,

인생에서 단 하나의 야망이 있다면, 바라건대

계속해서 지루하게 지낼 수 있기를.” – 「지루하게 지내기」 중에서


이 시는 평범함에 대한 예찬입니다. 웬디 코프는 드라마틱한 삶이 아닌, 반복적이고 지루할 수 있는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안정과 평온을 사랑합니다. 무한 경쟁 속에서 지친 우리들에게 이보다 더 솔직하고 절실한 ‘야망’이 또 있을까요?


「가볍게 더 많이 써 봐」 시는 웬디 코프의 유머러스하면서도 자조적인 시선이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노력은 더 이상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살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심리상담도 받고, 이것저것 배워보고 (...) 좋은 음식을 챙겨 먹고, 군것질은 줄여. 담배는 피우지 않고, 술은 멀리해. 그런데도 달라지는 건 없어, 앞날은 깜깜해.” – 「가볍게 더 많이 써 봐」 중에서


마치 일기장을 슬며시 들여다본 듯한 느낌입니다. 너무나 현실적인 고백이 오히려 위로가 됩니다. 웬디 코프가 '당신만 그런 게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한결같이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을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가 가득합니다. 『오렌지』에 실린 시들은 비범한 상황이나 격정적인 사건을 묘사하지 않습니다. 대신 평범함을 장난스럽게 예술로 승화시키는 힘이 돋보입니다.


작가 특유의 리듬감을 원문으로 확인해 보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영시를 낭독해 보니 새삼 이런 시간이 행복감을 선사하는구나 싶더라고요. 잊고 있던 기쁨 감각을 되돌려주는 작은 처방전과도 같은 시집입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고, 남들보다 앞서지 않아도 좋으며,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지루함도 삶의 일부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웬디 코프의 시는 유쾌하게 망가져도 괜찮다고, 평범하게 살아도 충분하다고 말해주는 다정한 속삭임입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의 하루를 지탱해 주는 힘은, 그 오렌지 한 알일지도 모릅니다. 지루한 하루에도 반짝임은 있다는 것. 그걸 시로 쓴다면 이런 모습일 겁니다.





귀염뽀짝한 오렌지 꾸미기 스티커로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시집이 완성됩니다.


단순하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는 순간을 포착하게 일깨워 준 <오렌지>. 복잡한 수사와 난해한 은유 대신, 일상의 언어로 고민과 불안, 그리고 소소한 기쁨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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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로 보다, 근현대사 - 한국 근현대사의 순간들이 기록된 현장을 찾아서 보다 역사
문재옥 지음 / 풀빛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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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거리와 골목, 공원, 시장의 풍경에서 역사의 기억을 끌어올리는 <장소로 보다, 근현대사>. 장소를 통해 시대를 읽고, 공간을 통해 기억을 복원하며, 역사적 상상력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저자 문재옥은 여러 역사 박물관에서 활동하는 도슨트로, 그간의 풍부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과 경기 지역 14개 코스를 엮어 근현대사의 흔적을 되살려 냅니다.


교과서에서만 접하던 역사적 사건들은 어딘가 멀리 있는, 우리 일상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장소로 보다, 근현대사>는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공간들이 사실은 역사의 현장이었음을 일깨워 줍니다.





한국 근대사의 출발점인 개항의 역사를 되짚는 첫 장은 강화도와 제물포 개항장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교과서 새 단원마다 제시되는 학습목표처럼 이 파트에서 우리가 왜 이 장소와 역사를 알아야 하는지 콕 짚어줍니다.


병인양요, 신미양요가 벌어졌던 정족산성과 광성보, 강화도 조약 체결 장소인 연무대는 자주국방이란 이상과 식민의 현실이 교차했던 지점을 보여줍니다.


지금의 인천 자유공원에 서 있는 맥아더 동상 자리가 과거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었던 세창양행 기숙사 터라고 합니다. 하나의 장소에서도 여러 시대의 층위가 겹쳐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저자는 장소의 변화를 통해 지워진 역사와 남겨진 흔적의 의미를 짚어냅니다. 응봉산 일대의 서양식 건물들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제물포구락부의 사진 자료는 그 시절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장소는 기억의 고리이자, 역사를 상기하게 하는 키워드입니다.


두 번째 장에서는 서울의 북촌과 정동으로 시선을 돌려 격변의 순간들을 살펴봅니다. 삼일천하로 끝난 갑신정변의 현장인 북촌과 창덕궁,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의 현장인 경복궁 내 건청궁, 그리고 세계를 향해 문을 연 조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정동의 각국 공사관을 찾아갑니다.


서양인들은 한 지역에 모여 사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선택된 곳이 정동이었다고 합니다. 도심 중심부임에도 정동에는 대한제국의 꿈을 품은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건청궁과 환구단, 경운궁 등의 장소는 조선 말기 정치적 혼돈과 새로운 체제의 시도를 보여주는 무대입니다.


세번째 장에서는 일제 침략기의 역사적 현장들을 찾아갑니다. 남산 일대는 일제의 지배가 도심 깊숙이 스며든 흔적의 집합소입니다. 통감관저터, 조선총독부 자리, 조선신궁터, 혼마치까지 식민 지배의 물리적 증거들이자, 우리 근현대사의 가장 아픈 장면들을 기억하게 합니다.


명동은 문화의 거리 혹은 관광지 이미지 이면에, 한때 조선의 중심지였던 과거를 숨기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공간의 전환을 날카롭게 짚어줍니다. 남촌(지금의 명동, 을지로, 남대문 일대) 지역은 일본인만을 위한 공간으로 재편되었고, 조선인들은 경제·문화적으로 배제되었습니다.


네 번째 장은 3.1운동과 독립운동의 현장들을 찾아갑니다.  3.1운동의 불씨가 타오른 중앙고등학교 숙직실, 독립운동가 여운형과 손병희의 집터, 만세 시위가 일어난 탑골공원과 서울역 광장 등은 평범한 일상의 공간에서 거대한 항거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던 현장입니다.


독립운동가들이 겪었던 고통이 단지 일제강점기에만 머무르지 않았다는 사실은 가슴이 아픕니다. 효창공원 내 삼의사 묘역과 임시정부 요인 묘역은 우리가 어떤 역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는 장소입니다.





다섯 번째 장에서는 해방 이후의 혼란스러운 정국과 민주주의를 향한 여정을 살펴봅니다. 이화장과 경교장, 서대문형무소와 4.19기념탑은 해방 이후 혼란기와 민주화 운동의 현장입니다. 김구가 왜 경교장에서 죽음을 맞이했는지, 조봉암이 어떤 이유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했는지, 그 각각의 장소는 진실을 향한 침묵의 증거입니다.


4.19기념탑은 민주주의의 씨앗이 어떻게 거리에서 피어나고, 젊은이들의 희생이 어떻게 헌법 정신으로 승화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저자는 정치적 상흔의 현장들을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응시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마지막으로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의 오늘을 살펴봅니다. 창신동, 을지로, 청계천, 세종대로, 청와대까지 이어지는 이 코스는 우리 사회가 겪은 변화의 역동성과 그 이면의 그림자를 함께 드러냅니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이 일어났던 평화시장, 도시재생이라는 이름 아래 변모하고 있는 을지로, 세월호 사건과 연결된 청와대 등은 아직도 진행 중인 역사임을 말해줍니다.


역사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장소로 보다, 근현대사>는 오늘의 발걸음으로 어제를 들여다보고, 내일의 시선으로 현재를 성찰하게 합니다.


문재옥 저자의 시선은 그저 장소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 장소가 말해주는 시간과 기억을 해석해 줍니다. 도시를 사유하고, 골목을 존중하고, 역사를 질문하게 만드는 이 책으로 근현대사를 입체적으로 경험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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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없는 삶 - 타인의 욕망에서 벗어날 용기
고명한 지음 / 세이지(世利知)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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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소비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브랜드 없는 삶이란 과연 가능한 이야기일까요? 세상의 모든 물건은 제조사의 브랜드를 달고 있으니 말입니다.


제목부터 도발적인 책, 고명한 작가의 <브랜드 없는 삶>. 이 책은 단순히 브랜드 없는 삶을 설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심코 따라가고 있는 소비의 방향이 과연 나의 진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인지 되묻습니다.


자크 라캉의 이론을 빌리자면,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존재임을 짚어줍니다. 그리고 브랜드는 이 욕망의 파이프라인이자 상징과도 같습니다. 더 갖고, 더 보여주고, 더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진짜 나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고명한 저자는 브랜드가 어떻게 우리의 욕망을 조종하는지 파헤칩니다. 흥미로운 것은 '클래식과 명품은 같은 말일까'라는 질문입니다. 고전적인 아름다움과 값비싼 명품 사이의 간극, 그리고 그 사이에서 우리가 느끼는 소외감과 경쟁심이 교묘하게 분석됩니다.


또한 '우리 삶에서 외모 이야기가 사라진다면' 꼭지에서는 외모지상주의가 만들어낸 미용 산업의 메커니즘을 해부합니다. "여성들이 노화를 긍정하고 대단할 것 없는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게 되면 거대한 미용 산업은 성장 동력을 잃는다"라는 문장은 산업이 결점을 어떻게 조작하고 소비를 유도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오래 쓸 수 있게 더 좋아진 물건들이 오히려 더 빨리 버려지는 현실. 브랜드가 만든 끊임없는 트렌드 변화와 소비자들의 심리적 욕구 조작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합니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결점 생산 시스템이라 부릅니다.


타인의 시선과 욕망에서 비롯된 자기 검열과 소외에 대한 공포가 어떻게 소비를 이끄는지 설명합니다. 물건은 단지 물건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 됩니다.





'하차감'이라는 단어를 아시나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소비—즉, 차에서 내렸을 때의 멋을 위한 소비—를 말합니다. 오늘날 소비는 점점 더 실용성보다 상징 자본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습니다.


기능과 가성비를 열심히 따지면서도 결국 우리를 결정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은 타인의 시선이라는 겁니다. 저자는 이것이 바로 브랜드의 마법이라고 설명합니다. 브랜드는 우리의 내면에 잠자고 있는 욕망과 허상을 깨워 그것을 아름답게 포장해 소비자가 찾던 제품으로 각인시킵니다.


<브랜드 없는 삶>은 소비 절제나 미니멀리즘을 넘어 비움의 철학을 이야기합니다. 비움과 수용, 자아 회복의 단계를 통해 브랜드에 잠식된 삶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안내합니다.


"필요와 불필요를 분리할 줄 알며 자신의 객관적 현실과 욕구 사이의 격차를 본능적으로 파악하는 것, 욕구를 통제하면서도 별 노력 없이 편안하고 행복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간소한 삶이라고 합니다.


'숲을 거니는 사람과 숲의 나무를 베는 사람'이라는 비유를 통해 저자는 자연과 사물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를 비교합니다. 숲을 거닐며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과, 숲에서 가치 있는 목재만 찾아 베어내는 사람. 브랜드에 매몰된 삶은 후자와 같습니다. 모든 것을 소유와 가치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겁니다.


그런데 미니멀리즘조차도 브랜드화되는 현실입니다. 미니멀한 디자인의 제품을 사기 위해 기존 물건을 버리고, 미니멀리즘 관련 책과 용품을 사들이는 모순적인 행동을 우리는 반복합니다. 진정한 비움은 소비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통찰을 던집니다.


저자는 자기 자신과 화해하고 진짜 욕망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제안합니다. 상실을 받아들일 용기는 우리가 물건과 함께 잃어버린 감정, 기억, 자아를 어떻게 다시 복원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부친의 유품을 정리하며 물건의 진정한 가치는 그것이 상징하는 관계와 추억에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브랜드나 시장 가치와는 무관한, 정말로 소중한 가치 말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다는 사실, 즉 '상실'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정직한 고백 그리고 날카로운 인식론으로 질문을 던집니다.


그 질문들은 마치 거울처럼 우리 일상의 소비, 태도, 관계를 비추며 성찰의 시간을 가지게끔 합니다. 소유보다 사유, 브랜드보다 존재를 증명하는 여정은 타인의 시선과 욕망에서 자유로워지는 내적 여정입니다.


<브랜드 없는 삶>은 타인의 욕망에 잠식된 우리를 위한 나다움 회복 처방전과도 같은 책입니다. 내가 소유한 브랜드가 아닌, 내가 선택한 가치로 삶을 채워가는 용기를 일깨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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