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월드 - 심해에서 만난 찬란한 세상
수전 케이시 지음, 홍주연 옮김 / 까치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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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심해라는 미지의 공간으로 떠나는 인간의 깊은 여정을 다룬 <언더월드>. 전미 잡지상 수상 경력과 「오프라 매거진」 편집장 이력, 「내셔널 지오그래픽」, 「에스콰이어」 등 유수의 매체에 글을 실어 온 저널리스트 수전 케이시는 취재를 넘어 실제로 탐험선에 탑승해 심해를 목격하고 체험하며 이 책을 펴냈습니다.


바닷속 신비로운 생명과 과학적 발견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이 왜 끝없이 깊은 곳을 향해 나아가는지 그리고 그 여정이 우리 존재에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지 보여줍니다.


바다라는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을 역사·과학·철학·인문학적으로 확장하며, 우리가 알지 못했던 심해의 풍경뿐만 아니라 그 풍경을 향해 나아간 사람들의 집념과 도전, 심해를 바라보는 우리의 욕망과 책임까지 짚어냅니다. <언더월드>는 해양 탐사 기록을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탐사 기록으로 완성됩니다.


심해(深海). 그 단어만으로도 가슴 한편이 간질간질해지면서도 으스스한 기분이 듭니다. 지구에서 가장 깊고 금지된 세계로 거침없이 내려간 대담한 여정을 담은 <언더월드>를 읽으며 바닷속 풍경 너머의 진실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16세기 가톨릭 사제 올라우스 망누스가 제작한 『카르타 마리나』에는 상상 속 괴물들이 심해를 누비고 있었습니다. 바다뱀과 크라켄이 선원들을 집어삼키는 상상 속 지옥 같은 심해는 두려움과 무지의 공간이자 인간의 상상이 빚어낸 공포의 저장소였습니다.


하지만 과학의 발전은 이런 미신을 걷어내기 시작했습니다. 해저에 전신 케이블을 설치하면서 바다는 미지의 공포에서 탐구의 대상으로 변모하기 시작했습니다. 심해에 대한 과학적 탐구는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인류는 드디어 이곳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더불어 목숨을 건 심해 개척자들의 드라마가 펼쳐집니다. 아버지가 설계한 트리에스테 호를 타고 아들 자크가 돈 월시와 함께 마리아나 해구 챌린저 해연(수심 1만 1,000미터)에 인류 최초로 도달하며 인간이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던 열망의 산증인이 되었습니다.





저자는 왜 그들이 목숨을 걸고 심해로 내려갔는지, 어떻게 탐사 기술을 진화시켜왔는지를 추적하면서 인류가 심해라는 암흑을 향해 내디딘 첫발의 의미를 되짚습니다.


연구선에 승선해 심해 관찰 시스템 RCA로 심해 열수공을 목격합니다. 빛 한 줄기 없는 세계에서 생물발광으로 스스로를 밝히는 생명체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 경외감을 자아냅니다. 차갑고 고요한 심해에서 분출되는 열수공과 새로운 지각의 형성, 거기에 기생하는 독특한 생태계까지 이 모든 것이 심해를 활동과 창조의 현장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이어서 트라이턴의 수장 패트릭 레이히와 탐험가 빅터 베스코보 등 현대 심해 탐험의 아이콘들이 소개됩니다. 첨단 잠수정 리미팅 팩터 호, 파이브 딥스 탐사 등 심해를 향한 도전이 열정과 사명을 품은 개인들의 영역으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과정에서 기술적 난관, 예상치 못한 사고, 심해의 거친 환경이 인간을 시험하지만 결국 이들은 다시 도전합니다.


보물찾기 같은 흥미진진함을 선사하는 해양고고학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전설적인 스페인 갈레온 선 '산 호세 호'를 평생을 바쳐 추적한 로저 둘리. 이 보물선의 행방은 심해가 품고 있는 수많은 비밀 중 하나일 뿐입니다.


심해는 과학의 공간일 뿐 아니라 수많은 인간사가 잠들어 있는 역사적 현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해양고고학자들의 시선은 심해를 돈의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시도와 달리 기억과 이야기로 읽어냅니다.


저자는 트라이턴의 새로운 잠수정 '넵튠 호'를 타고 심해로 내려갑니다. 빛이 거의 닿지 않는 박광층을 지나 심해의 압도적 고요와 어두운 푸른색을 체감하는 순간. 그곳은 섬뜩하면서도 신비롭고, 낯선 생물들은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예술 작품 같습니다.





현재진행형인 이슈도 가져옵니다. 심해 광물 개발, 난파선 약탈, 심지어 심해생물의 유전자 특허까지 돈을 위해 바다를 파괴해온 역사를 비판합니다. 심해는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인류와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지탱하는 중요한 생태계라는 사실을 환기시킵니다.


베스코보와 함께 하와이 제도의 로이히 해저화산 탐사에 동참한 저자는 심해와 다시 연결된 감정을 고백합니다. 심해는 두려움과 무지를 넘어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 할 경외의 공간이자 생명과 지구의 비밀을 간직한 깊고 고요한 스승이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언더월드>의 사진과 생생한 스토리텔링으로 우리도 그 경이를 간접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 집 아이도 심해어에 관심이 높아 바이퍼피쉬(독사고기) 표본을 가지고 있는데 저 역시 첫인상이 충격적이라 기억에 남습니다. 무시무시한 비주얼과 달리 예상보다 작은 크기에 깜짝 놀랐거든요.


탐사 그 자체의 스릴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심해를 지켜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해주는 <언더월드>. 지구의 마지막 미개척지인 심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짚어주는 의미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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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B for BEAUTY - 향기로운 오일이 된 식물들의 모든 것
심나래 지음 / 에이엠스토리(amStory)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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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향기로운 오일이 된 식물들의 모든 것 <Herb for Beauty 허브 포 뷰티>.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허브의 비밀, 국제 아로마테라피스트가 밝히는 76가지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아이의 아토피를 계기로 아로마테라피를 만나게 되었다는 심나래 저자는 영국 IFA, 미국 NAHA, 프랑스·벨기에 자격증을 섭렵한 국제 아로마테라피스트로 11년간 교육과 컨설팅을 해온 전문가입니다. 허브가 어떻게 향기로운 오일로 변모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몸과 마음을 어떻게 치유하는지 이 책에서 풀어냅니다.


오늘날 허브는 향기를 지닌 식물로만 인식되고 있습니다. 저자는 허브의 본질적 가치를 복원하고자 합니다. 허브의 역사와 향 계열 분류, 에센셜 오일과 캐리어 오일의 개념부터 탄탄히 다룹니다. 허브가 인류 문명과 함께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얼마나 오랫동안 신과 인간을 이어주고 몸과 마음을 치유해온 존재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고대부터 이어져 온 허브의 문화적 의미가 흥미롭습니다. 오레가노 잎을 피부 상처 치료에 사용했던 고대 그리스 의사 히포크라테스의 기록, 폭약 제조에 쓰였던 녹나무 수지 캠퍼 이야기 등 허브의 쓰임새가 단순한 향기 치료에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허브의 역사와 문화, 과학적 분석을 통해 허브를 새롭게 바라보는 눈을 뜨게 됩니다.


<Herb for Beauty 허브 포 뷰티>는 69가지 에센셜 오일을 8가지 향 계열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소개합니다. 아로마틱, 캠퍼, 얼씨, 플로럴, 프레시, 메디셔널, 스파이시, 우디&발삼 8가지입니다. 저는 라임처럼 과즙이 터질 듯 상큼한 향을 좋아하는데 이 책을 보며 같은 계열의 다른 허브들도 알게되어 도움되었습니다.


단순 소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식물학적 특성부터 문화사적 의미, 화학적 성분, 치료적 활용법까지 다층적으로 접근합니다. 예를 들어 아로마틱(자연의 신선함) 계열에는 바질, 클라리 세이지, 페퍼민트 등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는 오레가노 잎을 피부 상처 치료나 근육 통증 완화에 사용했다는 사례처럼 향을 맡는 즐거움을 넘어 치유 효능이 있음을 짚어줍니다.


바질은 에센셜 오일 분야에서도 꽤 중요한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바질 오일은 원산지에 따라 스위트 바질과 이그조틱 바질로 나뉘는데, 이 두 종류는 향과 화학 성분이 완전히 달라 실질적 효능에도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비슷한 향도 화학적 구성이 달라지면 전혀 다른 효과를 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캠퍼(시원하고 강렬한 향) 계열의 베이로렐은 소화기 질환, 간질, 신경통 치료에 쓰였고, 뱀에게 물렸을 때 해독제로도 활용되기도 했고, 수천 년 전부터 비누 제조에 사용됐다고 하니 하나의 허브가 지역마다 다른 방식으로 활용되어온 역사는 인류의 경험적 지혜가 얼마나 풍부한지를 보여줍니다.


이어서 에센셜 오일과 함께 사용하는 캐리어 오일의 특성과 용도를 다룹니다. 책에 소개된 아몬드, 아르간, 호호바 등 7가지 캐리어 오일들은 각각 고유의 피부 개선, 진정, 보습 기능을 지녔습니다. 저는 헤어용으로 아르간 오일을 사용중이어서 허브의 전통적 활용과 현대적 효능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스토리텔링이 재미있었습니다.


허브의 화학적 성분을 대중적인 언어로 풀어내 배경지식이 없어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향이 단순한 감각의 영역을 넘어 구체적인 분자의 결합과 상호작용을 통해 치유 효과를 낸다는 점을 들려줍니다. 


에센셜 오일은 약 75개 이상의 다양한 생화학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이 어우러져 진정, 이완, 상처 치유, 소화, 토닉 등 치유 효과를 발휘한다는 설명에 허브의 신비로움이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왜 이 향이 편안하게 느껴질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서 어떤 성분이 그 작용을 할까라는 단계로 순차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 향기의 화학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는 시간입니다.





무엇보다 책 자체가 참 예쁩니다. 허브의 형태적 특징을 추상화하면서도 그 본질을 잘 담아 패턴화한 일러스트와 깔끔한 양장 제본이 소장용으로도 제격입니다. 


허브를 식물학적 관점에서만 보지 않고 허브의 역사, 문화, 생태, 화학적 구조를 두루 살펴보는 구성은 취미서를 넘어 아로마테라피 백과사전을 읽는 듯한 기분입니다. 허브의 감각적 매력을 전하는 것을 넘어 학문적 깊이와 치료적 가능성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책입니다.


안전한 사용법에 대한 정보도 빠질 수 없습니다. 프랑스 메디컬 아로마테라피의 권위자 도미닉 보두 박사가 설립한 '도미닉 보두 컬리지 서울'의 전속 강사로 활동하며 쌓은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각 허브의 적절한 용량과 금기 사항, 다른 허브와의 상호작용 등에 대한 정보를 소개합니다.


향 계열 분류를 통해 자신만의 향 노트를 만들고, 허브의 화학적 성분과 효능을 이해하며, 캐리어 오일을 활용해 자신만의 블렌드를 시도할 수 있게 돕습니다. 허브의 아름다움과 과학적 가치를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향은 감각을 깨우고, 과학은 그 향을 증명합니다.


허브를 향료로만 인식하던 것에서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Herb for Beauty 허브 포 뷰티>. 식물의 생명력을 담은 한 방울에 담긴 역사와 화학, 치유의 비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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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수록 나의 세계는 커져간다 - 어떤 순애의 기록
김지원(편안한제이드)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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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 경력 20년 이상의 덕후가 증명한 순애의 경제학 <사랑할수록 나의 세계는 커져간다>. 《혼모노》 성해나, 《체공녀 강주룡》 박서련 강력 추천 에세이로 제12회 카카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종합 부문 대상작으로 선정된 작품입니다. 


김지원 작가는 자신을 "나 정도면 덕질 그렇게 심하게 하는 건 아니지"라고 말하던 사람이라고 소개하지만, 실제로는 초등학생 때부터 쉬지 않고 덕질을 해온 진성 덕후입니다.


좋은 사람을 좋아하기에 나 또한 더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순애의 기록이라고 정의 내린 <사랑할수록 나의 세계는 커져간다>는 덕질을 자기 성장과 세계 확장의 동력으로 바라봅니다. 그저 무언가를 좋아했다에서 그치지 않고, 좋아하는 마음이 나를 어떻게 만들고 바꾸었는지를 되짚은 연대기입니다.





덕질의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선을 풀어낸 저자는 입덕할 때의 달콤한 설렘은 잠시뿐, 그 이후에는 즐거움과 함께 불안과 괴로움을 친구처럼 끼고 가야 하는 것이 덕질이라고 고백합니다.


덕질의 고통조차 사랑으로 환원하는 힘, 그게 바로 덕질의 매력 아닐까요. 비공식 굿즈에 대한 중독, 공백기를 견디는 애틋한 마음 등 덕질의 숨은 본질을 담담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풀어냅니다.


저자가 걸어온 덕질의 발자취를 따라갑니다. 아이돌, 배우, 드라마, 일본 연예인, 프로게이머, 구체관절인형 등 저자가 빠져들었던 최애의 세계는 상상 그 이상으로 넓고 깊습니다.


비합리적이면서도 한없이 진심인 덕질의 세계. 용기와 열정이 없으면 하기 힘듭니다. 덕질이란 결국 좋아한다라는 감정 하나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저자는 최애의 영상을 자막 없이 보고 싶어 일본어를 배우고, 비공식 굿즈 제작을 위해 포토샵을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그 모든 과정은 자아를 확장하는 여정이자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선택이 됩니다.


덕질을 통해 스스로를 어떻게 단련하고 성장시켰는지를 들여다봅니다. “내가 좋아했던 아이돌이 대중적으로는 실패했을지라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실력 있는 아이돌이라는 걸 팬인 나는 알았던 것처럼, 누구나 실패했든 성공했든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왔고, 꽤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마음처럼 말입니다.


덕질의 가치는 여기에 있습니다. 좋아하는 대상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타인을 평가하는 기준이 노력과 진심으로 옮겨간다는 것. 그리고 그 변화는 나 자신을 더 따뜻하고 단단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좋아하는 것조차 영원하지는 않다며 그렇기에 당장 절실하게 좋아해야 한다는 말이 와닿습니다. 좋아하는 감정의 무상함을 인정하면서도 그 순간에 충실하려는 태도는 덕질뿐만 아니라 삶 전반에도 통하는 태도이니까요.





덕질을 통해 깨달은 삶의 통찰을 유쾌하고 진솔하게 풀어낸 <사랑할수록 나의 세계는 커져간다>. 저자는 덕질은 결국 나를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라고 말합니다.


현실을 살아가며 지치고 무너질 때, 덕질이라는 회피 수단을 통해 에너지를 얻고, 결국에는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는 힘을 얻는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자기애의 발현입니다.


누군가를 향해 무조건적인 응원을 보내는 마음은 결국 나 자신을 더 존중하고 아끼는 힘으로 돌아옵니다. 우리는 결국 서로의 안녕을 빌며 연결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됩니다.


한때 무엇인가에 미친 듯이 마음을 기울여 본 사람은 압니다. 그 치열한 몰입의 기억이 삶의 굽이굽이에서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은밀한 힘이 됩니다.


덕질은 결코 쓸데없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나로서 살아가기 위한 힘이자, 가장 순수하고 치열한 애정의 형태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왜 부끄러운 일이 아닌지, 그 마음이 어떻게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이끄는지를 작가는 자신의 삶으로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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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의 세계 - 시공을 넘어 공명하는 영혼의 행방
에노모토 마사키 지음, 민경욱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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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독립 제작 애니메이션의 신화를 이룬 신카이 마코토의 세계를 한 권에 담아낸 <신카이 마코토의 세계>. 일본 문예평론가 에노모토 마사키는 언어의 마술사라 불리는 신카이를 시대와 재난, 사랑과 단절을 언어와 영상으로 직조해내는 영상문학가로서 탐구합니다.


정통 문학 연구자인 저자의 이력 덕분에 이 책은 단순한 팬심이나 장르적 접근을 넘어서 진정한 문학적 분석을 시도합니다. 신카이 감독과의 롱 인터뷰까지 수록하여 그의 작품이 태어난 맥락과 창작의 긴장감까지 세밀하게 포착해냅니다.


저자는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어린 시절부터 살펴봅니다. 신카이의 작품에는 고향 나가노의 하늘, 산과 강처럼 늘 곁에 있던 자연 풍경이 배어 있습니다. 그의 작품들에서 풍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내면과 서로 공명하는 감정적 기호로 작용합니다.


반면 건설업 가문의 장남이자 지역 의원 아버지를 둔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환경은 소년 주인공들의 고독과 거리감을 낳게 됩니다. 이런 이질적 요소들이야말로 그가 평생 그려낼 단절과 재회, 풍경과 내면을 잇는 시적 상상력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2002년에 나온 25분짜리 단편 〈별의 목소리〉는 2D와 3D CG를 조합해 거의 혼자서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한 명의 창작자가 시대의 아이콘이 되는 순간입니다.


재미있는 건 관객층의 변화였습니다. 남성 중심 애니메이션 팬들이 지배적이었지만, 입소문과 재관람객의 힘으로 젊은 층과 여성 관객까지 확장되었습니다. 감성과 풍경, 단절과 그리움을 주제로 한 이 작품은 신카이계를 대표하는 시적 서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첫 장편 영화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은 독립 제작에서 집단 제작으로 전환한 사례입니다. 신카이는 업계 내부의 관습이나 제약에도 불구하고 매 작품마다 최적의 방법을 찾아냅니다.


작품마다 가장 적합한 제작 환경을 유동적으로 결정하는, 임기응변에 강한 적응력이야말로 신카이의 강점이 됩니다. 고집스러운 예술가라기보다는 최초의 관객인 스태프와 제작진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유연한 창작자였습니다.





각 작품마다 변화하는 제작 환경과 협업 방식에 대한 분석은 동시대 창작자들에게도 유용한 조언이 됩니다. 개인 창작자가 어떻게 팀 작업과 상업적 성공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지 생생한 사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보는 이들에게 각자의 과거와 현재를 되돌아보게 하는 힘을 안겨준 <초속 5센티미터>, 가장 지브리적이라고 평가받은 작품이지만 동시에 신카이의 정체성 고민이 드러난 <별을 쫓는 아이> 등 신카이의 실험은 계속됩니다.


흥행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실패로 단정하지 않고 "관객이 보고 싶어 하는 것과 내가 주제로 삼고 싶은 걸 어떻게 맞출지"를 다음 과제로 삼는 유연한 자세를 취하며 이후 걸작들을 준비합니다.


언어와 침묵의 의미를 탐구한 문학적 애니메이션 <언어의 정원>도 매력적입니다. 짧지만 상징적인 대사들이 긴 여운을 남깁니다. 문학적 깊이와 상업적 매력을 절묘하게 결합합니다.





<너의 이름은.>부터 <날씨의 아이>, <스즈메의 문단속>에 이르는 최근 작품들에서 신카이 마코토는 자연재해를 소재로 한 판타지를 선보입니다. 개인적 서사에서 사회적 메시지로 관심을 확장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시대적 반영과 사회적 책임을 고민하는 작품군으로 발전해가는 겁니다. 초기 작품들에서 보여준 거리감과 소통의 단절이라는 테마가 최근 작품들에서는 연결과 공감으로 발전해가는 모습이 흥미롭습니다.


흥행 신화를 만든 〈너의 이름은.〉은 일본적 샤머니즘, 무스비 사상, 재난과 애도의 서사가 어우러진 작품입니다. 관객과의 공명을 통해 상실을 넘어서는 이야기는 세계적인 성공을 이끌었고, 신카이는 영상문학가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다졌습니다.


신카이는 “작품은 나를 위해 만드는 게 아니라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말합니다. 각본 회의와 인터뷰에서 드러난 그의 태도는 철저히 대화형 창작자의 모습입니다.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는 재해를 기억하는 의미와 여성 캐릭터들을 통한 성장서사를 보여줍니다.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받은 영감을 여성 캐릭터들의 연결로 풀어내고 싶었다”라는 고백처럼 스즈메가 각지에서 만나는 인물들은 성장의 촉매로 기능합니다.


에노모토 마사키 저자의 시선은 신카이 마코토를 단순한 흥행 감독으로 보지 않습니다. 시공을 건너는 영혼의 흔적을 좇는 시인이자 관객과 대화하며 성장하는 영상문학가로 기록합니다.


<신카이 마코토의 세계>는 신카이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은 물론이고, 창작의 고민과 시대적 배경까지 탐구하고픈 이들에게 보물같은 책입니다. 작가의 내면을 레이어별로 분석하는 저자의 평론이 작품 이해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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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즘적 쾌락주의
리프레시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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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마케팅 전략가 출신 저자 제이한(J.Han)이 내놓은 <미니멀리즘적 쾌락주의>는 현대인의 욕망 피로감을 파고든 철학적 처방전입니다.


광고 및 마케팅 업계에서 소비자 심리를 분석하던 그가 오히려 '덜 바라며 사는 법'을 설파한다는 아이러니가 이 책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욕망을 자극하는 시스템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제시하는 욕망 절제의 철학이기에 더욱 현실적이고 구체적입니다.​


2300년 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제시한 쾌락주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 책은 단순히 물질을 정리하는 미니멀리즘을 넘어 감정과 관계, 일상의 루틴까지 포함한 철학적 미니멀리즘을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쾌락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부터 풀어냅니다. 에피쿠로스의 쾌락은 감각적 향락이나 방종과는 정반대의 개념이었습니다. 그가 말한 쾌락은 아타락시아(ataraxia), 즉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 평온한 상태입니다.


"쾌락주의자란 이런 사람이다. 무엇을 '더 많이' 얻는 사람이라기보다, 무엇을 '덜 바라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 p23


성취 지향적 행복관에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높은 곳에 오르려는 욕망이 오히려 불안과 피로를 가져다줍니다.


방종 대신 절제를 선택하는 태도, 그 안에서 오히려 더 깊은 기쁨을 맛보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에피쿠로스의 정의에 따르면 쾌락은 단기적 자극이 아닌, 고통이 없는 상태입니다.


몸의 고통과 마음의 고통을 구분합니다. 불안을 만드는 것은 주로 마음의 문제입니다. 저자는 SNS에서의 비교,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등이 마음의 고통을 키운다며 이를 의식적으로 차단하고 내 기’을 회복하라고 조언합니다.





욕망을 세 가지로 분류한 에피쿠로스의 욕망 3분법이 소개됩니다. 에피쿠로스는 욕망을 자연적이고 필수적인 욕망, 자연적이지만 불필요한 욕망, 부자연스럽고 해로운 욕망으로 나눴습니다. 


배고픔을 해소하려는 욕망은 자연적이고 필수적이지만, 반드시 고급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욕망은 필수적이지 않습니다. 이처럼 명예와 권력에 집착하는 것은 오히려 고통의 씨앗이라는 점을 설명합니다.


물질적 소비뿐 아니라 인간관계, SNS, 사회적 야망까지 폭넓게 적용됩니다. 저자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가짜 필요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지 짚어줍니다.


우리가 가진 많은 물건은 사실상 불안을 증가시킨다는 저자의 관찰이 인상적입니다. “물건을 많이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나를 흔드는 요소도 많아진다는 것이다”라고 말이죠. 물건이 공간을 차지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로 인해 우리의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걸 일깨워 줍니다.


옷장에 옷이 많을수록 아침에 무엇을 입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책이 쌓일수록 읽지 못한 것들에 대한 죄책감이 커집니다. 물건이 도구가 되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 우리가 물건의 하인이 되어 살아간다는 표현은 소비 사회의 아이러니를 정확히 찌릅니다. 이처럼 물질뿐 아니라 감정, 루틴, 인간관계 등도 비우고 남겨야 진짜 중요한 것이 보인다는 철학적 미니멀리즘을 들려줍니다.


관계의 미니멀리즘도 흥미롭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우정을 가장 높은 가치로 여겼지만, 그렇다고 해서 많은 사람과의 관계를 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좋은 사람 한 명이면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SNS에서 수백 명의 친구와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진정한 소통을 나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관계도 정리가 필요합니다. 나를 지치게 하는 관계, 불안하게 만드는 관계에서는 과감히 거리를 두라고 조언합니다.





<미니멀리즘적 쾌락주의>는 철학을 일상에 적용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보여줍니다. 저자는 에피쿠로스의 질문법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해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소비 결정부터 인간관계, 일상의 루틴까지 모든 영역에서 적용 가능한 실용적 도구로 작용합니다. 철학이 추상적 사유에 그치지 않고 삶의 기술이 될 수 있게 도와줍니다.


흥미로운 건 에피쿠로스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철학 대담을 실었다는 점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와 19세기 미국의 사상가가 나누는 상상의 대화를 통해 동서양을 아우르는 덜어냄의 철학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됩니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본질적인 삶을 추구한 두 사상가의 대화가 울림이 큽니다.


에피쿠로스의 고전 철학을 현대인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번역하되 그 본질적 의미는 훼손하지 않은 <미니멀리즘적 쾌락주의>.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이 아니라 더 적게 필요로 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현대 사회의 과도한 욕망과 자극에 지친 모든 세대에게 필요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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