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AI 타이탄들의 전쟁 - 1조 달러 시장의 승자를 결정할 게임의 법칙
게리 리블린 지음, 김동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8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실리콘밸리의 AI 전쟁터,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 1조 달러 게임의 법칙을 해부한 <AI 타이탄들의 전쟁>. 저널리즘 현장에서 수십 년간 날을 세워오며 퓰리처상을 수상한 게리 리블린 저자의 집요한 취재력과 문학적 감각이 결합된, 마치 소설처럼 술술 읽히는 논픽션입니다.
AI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지금, 이 책은 왜 지금이 AI 전쟁의 분수령인가를 질문하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사실상 돈을 벌 수 있는 기간은 18개월, 길어야 24개월입니다.”라는 인용은, AI 산업이 단순한 장밋빛 미래가 아니라 치열한 시한부 게임임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AI의 첫 번째 전투 무대를 닷컴 버블과 나란히 배치합니다.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누구나 아는 이름이 등장하지만, 게리 리블린 기자는 이들을 거인이 아닌, 순간마다 흔들리는 플레이어로 묘사합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단연 리드 호프먼입니다. 링크드인과 페이팔 공동창업자로 실리콘밸리 투자계의 전설이 된 그는 오픈AI와 인플렉션AI 창립에도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쉬운 돈벌이의 시대가 끝나고 있었다는 자각 앞에서 새로운 전략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혁신의 무덤이 되었던 마이크로소프트는 후발주자들에게 공포를 안기는 폭군으로 재등장합니다. 사티아 나델라가 터닝포인트였습니다. 오픈AI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구글이 독점하던 AI 영역에 쐐기를 박았습니다.
기술력이 승부를 가르던 시대는 끝났고, 자본과 조직 문화가 운명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 펼쳐집니다.
딥마인드 창업자 하사비스는 “AI 문제를 정말 해결하려면 회사를 구글만큼 키워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다는 걸 깨달았죠.”라며 혁신을 꿈꾸는 연구자는 늘 시간과 돈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히는 현실을 짚어줍니다. 딥마인드가 결국 구글 품에 안긴 과정은 스타트업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 항복의 상징처럼 다가옵니다.
반면 오픈AI의 서사는 드라마틱합니다. 일론 머스크가 떠나고 자금줄이 끊기는 순간조차 말입니다. 샘 올트먼의 리더십은 불안정한 구조 속에서도 속도전으로 돌파하는 전형적 스타트업 정신을 보여줍니다. 챗GPT를 일찍 내놓은 결정도 그 맥락입니다.
샘 올트먼은 “스타트업이 출시한 제품이 그것을 만든 사람의 마음에 들 정도면 이미 출시 시기를 놓친 것”이라며, “다소 부족한 점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일찍 세상에 공개한 이유는, 자료를 충분히 입력하고 시행착오를 거쳐 다듬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오늘날 모든 스타트업이 곱씹어야 할 교훈이기도 합니다.
리드 호프먼은 “스타트업 창업이란 절벽 끝에서 몸을 던진 후, 추락하는 동안 비행기를 만들어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2022년 챗GPT 공개 이후, 실리콘밸리 전체가 정지 상태에 빠졌다가 갑자기 폭발적인 열기에 휩싸이는 아이러니가 펼쳐졌습니다.
애플과 구글조차 안심할 수 없는 오늘날의 긴장감을 포착합니다. 저자는 AI 유성의 충격에 빗대며, 실리콘밸리의 권력 구조가 얼마나 불안정한지 생생히 묘사합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정면 대결이 특히 흥미진진합니다. 한쪽은 검색 제국, 다른 쪽은 오피스 소프트웨어 제국. 두 제국이 AI라는 신대륙에서 격돌하니 긴장감이 배가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와중에 딥마인드 공동창업자 무스타파 술레이만의 여정도 흥미진진합니다. AI계의 록스타로 불리던 그가 인플렉션AI를 창업하며 사람처럼 대화하는 AI 파이(Pi)를 개발했지만, 시장점유율 2%도 채우지 못하고 결국 마이크로소프트에 흡수됐습니다.
그가 결국 마이크로소프트로 들어간 사건은 스타트업의 이상이 어떻게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지 보여주는 교본 같은 사례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빙과 코파일럿 등 AI 전략 전반을 이끄는 핵심 인물로 재탄생한 것입니다.
메타의 경우도 흥미롭습니다. 저커버그가 메타버스에 올인했다가, 뒤늦게 AI로 방향을 튼 사례는 기업의 오판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잘 보여줍니다. LLaMA를 오픈소스로 공개한 결정은 빅테크가 생존을 위해 전략을 유연하게 수정해야 함을 보여주는 신호였습니다.

<AI 타이탄들의 전쟁> 후반부는 거품론을 다룹니다. “이 말도 안 되는 회사들이 투자를 척척 받는 꼴을 좀 보세요.”라는 날 선 문장은 닷컴 버블의 환영을 떠올리게 합니다. 저자는 1990년대와 2020년대를 비교하며 혁신과 투기의 교차점을 드러냅니다.
예전에는 대학 기숙사에서도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거대 기업이 탄생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AI 게임은 완전히 다르다는 걸 일깨워 줍니다. 대규모 언어모델 하나 제대로 훈련시키려면 수천억 원이 필요하고, 엔비디아 GPU를 확보하는 것부터가 전쟁입니다.
저자는 생성형 AI 분야는 성공에 따른 보상이 엄청난 만큼 초기 자본 또한 많이 필요하다며 스타트업 신화의 종말을 예고합니다. 지금 실리콘밸리에 있는 대부분의 AI 스타트업이 결국 살아남아 부자가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냉정한 결론도 내립니다.
<AI 타이탄들의 전쟁>은 기술 책이 아니라 권력의 책입니다. 기자의 눈으로 본 이 산업은 알고리즘보다 돈, 코드보다 권력이 더 중요한 게임판이었습니다. AI 산업을 단순히 혁신 서사로만 소비해온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을 안겨줍니다.
기술이 세상을 바꾼다지만, 그 기술을 누가 소유하고 통제하느냐는 여전히 자본의 논리를 따릅니다. AI 시대의 진짜 승자는 가장 혁신적인 기술을 가진 자가 아니라, 가장 오래 버틸 수 있는 자본과 시장 지배력을 갖춘 자입니다.
AI 전쟁의 승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곧 기술 사회에서 진짜 힘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물음으로 이어집니다. 실리콘밸리의 심장을 해부한 리포트를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