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작품을 읽을 때 항상 가장 궁금하고 신경 쓰이는 것은 원작의 제목과 그 뉘앙스이다. 내가 출판사에 일했을 때에도 그랬고, 늘 그랬겠지만, 외국 작품들을 우리나라로 가져올 때 제목을 바꾸는 경우는 너무나도 많다. 그렇게 제목이 바뀌면서 원제의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도 제법 많다. 아, 이 글의 시작을 좀 잘 못 한것 같다. 실제로 제목이 바뀐 경우에 이렇게 글을 시작해야 적절한 설명이 되었을텐데, 이 경우엔 실제로 제목이 바뀌지 않고 똑같으니까, 이렇게 시작하면 쓸데없이 분량만 잡아먹는 꼴이 된다.

그런데, 아니 그럼에도 이렇게 이 글을 시작한 이유가 있다. 나는 사실 이 소설을 읽기 전에 영화를 먼저 봤었다. 그리고 그 영화 내용이 거의 하나도 기억도 안 날 때쯤 이 소설을 읽었고,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영화를 봤고, 그리고 소설을 빠르게 한 번 더 읽고 이 글을 쓴다. 맨처음 이 영화를 봤던 때가 언제였는지, 그때 혼자 봤었는지 아니면 누군가 다른 사람과 함께 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히 봤던 것은 맞고, 조금은 불확실하지만, 혼자 봤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고, 누군가 다른 사람과 같이 보고 그와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남아있다. 분명 같이 봤던 사람은 여성이었고, 그는 내게 만약 남자 주인공이었다면 어떨 것 같냐고 극중 상황에 대해 질문을 했었다. 구체적인 내용과 내 대답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리고 나도 그에게 여주인공의 입장이면 이라는 가정으로 비슷한 질문을 했었다. 역시 그의 답변도 그닥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 영화만 봤을 당시에는 이 작품의 원제가 비밀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뭔가 다른 제목이었을텐데 그냥 배급사에서 편하게 정한 제목이 아니었을까? 그도 그럴것이 예전에는 정말 이상하게 지은 외국 영화 제목이 많았다. 이건 나중에 따로 글을 하나 쓸 생각인데, 정말 뜬금없는 제목들이 많다. 아,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왜 이 소설과 영화의 제목이 비밀이 아니라고 느꼈냐면, 영화에서는 마지막 결론의 그 비밀이 별로 부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품의 막판에 드라나는 가장 큰 반전이자, 제목을 의미하는 그 비밀이 원작에 비해서는 비중이 너무 적어서 그닥 와닿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책을 읽고 다시 영화를 보면서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했다. 게다가 책에는 분명 히미츠 라고 알파벳으로 일본어 원제가 적혀있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그 시절에 이 영화를 봤던 기억에 다른 건 다 몰라도 히로스에 료코의 표정들만은 잊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자세한 내용은 몰랐지만, 대략의 흐름에 대해서는 남아있었다. 그 상태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음, 왜 지금에서야 이 소설을 읽었느냐고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을수도 있겠다.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최근 몇 달 동안 나는 새책 보다는 중고책을 많이 샀다. 예전에 비해 알라딘 온라인 중고 상품은 거의 없고, 내가 어떤 책을 검색하면 우주점이라고 표현한 전국 어딘가 매장에 원하는 책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경우 해당 매장에서 2만원 이상을 구매해야 배송료가 없어지더라. 그 배송료가 아까워서 나는 일단 처음 검색했던 책을 담아놓고 다른 책들을 추가로 담아서 2만원을 넘기려고 하는데, 꼭 세 권 이상 담아야 하더라. 이런 경우 제일 무난한 방법이 검증된 작가의 책을 추가로 담는 것이다. 최근에 가장 많이 담은 검증된 작가가 히가시노 게이고 였고, 이 책 [비밀]도 그런 와중에 내게 오게 되었다. 책을 받고 보니 처음 구매하려고 검색했던 책보다 이 책에 손이 먼저 갔고, 그래서 읽었다. 다행히 영화에 대한 기억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서 흔히 스포일러라고 말하는 요소는 없었다. 물론 대략 어떤 흐름이라는 건 남아있었는데, 내게 그 정도는 몰입을 방해하는 스포일러가 되지 않았다.

그럼 책과 영화에 대해 생각나는대로 두드려보자. 일단 책 먼저. 일단 나는 시작하는 방식이 좋았다. 이야기의 화자인 남편 스기타 헤이스케가 야근을 마치고 돌아와 혼자 아침을 먹으려 하는 장면이었는데, 이 방식이 아주 자연스럽게 주인공의 습관과 성격을 보여주었다. 나도 야간에 물류창고에서 일을 하고 아침에 집으로 돌아와 혼자 간단히 아침을 먹고 잠이 드는 경우가 많은데, 내 공감이 더해져 이 도입부가 더 마음에 들었을지도 모른다. 도입부에서 사고 장면에 대한 묘사 없이 뉴스에서 사고 소식을 접하는 것도 좋았다. 이걸 나중에 깨달았는데, 이 소설에서 작가는 철저하게 헤이스케의 시선으로만 이야기를 풀어간다. 즉, 헤이스케가 직접 겪지 않은 그 사고와 같은 내용은 아무리 중요한 이야기라도 직접 다루지 않는다. 물론 그래서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수도 있다. 가령 병원 장면은 조금 그랬다. 아내인 나오코와 딸인 모나미가 얼마나 다쳤는지, 지금 얼마나 위독한 상황인지 곧바로 보여주지 않고 의사의 언급으로만 간접적으로, 그러니까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이렇게 쓰면서 생각해보니 이 소설에 상대적으로 시각적 묘사가 적은 듯 느껴진다.

나오코가 죽고 모나미만 간신히 살아남았는데, 딸인 모나미의 몸에 아내인 나오코의 의식(영혼이라고 쓰려다가 왠지 이 단어가 더 적절한 것처럼 느껴졌다.)이 깃들었다는 것을 깨닫는 헤이스케의 모습은 처음에는 위화감이 적었는데, 두번째 읽을 때는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긴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얼마나 놀라고 얼마나 저항해야 현실적인 것인지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영화도 소설도 이 부분이 너무 무난하게 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나미가 알 수 없는 나오코와의 첫 데이트와 (아마도) 첫 관계가 있었을 나오코 집에서의 첫 날의 기억 등으로 과연 모나미의 몸 안에 나오코가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가 어떻게 처음 만나고 서로 호감을 가졌는지 얘기해 준 적이 있다. 아이들이 그 이야기를 얼마나 자세하게 기억할지 모르지만, 어쩌면 거의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나오코가 모나미에게 그 이야기를 해줬을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사고로 희생된 많은 승객들의 유가족들이 호텔에 모여 대책 회의를 하는 장면은 전형적인 일본인들 다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고정관념일지도 모르지만 여러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그런 장면들을 보았으니. 사고에 대한 묘사가 없었기에 독자는 사고 원인에 대한 정보도 주기적으로 열리는 이 회의를 통해 접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런데도 거의 정보를 주지 않는 것이 좀 답답했다. 물론 나중에 헤이스케가 이 부분을 파고 들긴 하는데, 정말 명쾌하게 원이 밝혀지기까지 몇 년이나 걸리니 답답할 수 밖에 없다. 삿포로까지 가서 졸음운전을 했던 운전사의 전처의 아들을 만났으나 아무런 성과가 없었었을 때, 나중에 전처를 만나야 결론이 나겠구나 하고 생각이 들기는 했는데, 그 일이 정말 그렇게 나중에 일어날 줄은 몰랐다.

사고 희생자들을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그리고 최근 제주항공 참사가 떠올랐다. 철저하게 헤이스케 중심의 이야기 전개라서 다른 희생자들의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는 않는데, 그래도 호텔의 회의 장면들과 1주기 때의 현장 방문 장면 등에서 아주 조금의 정보들이 나온다. 특히 이기적인 사람의 전형으로 등장하는 쌍둥이 딸을 잃은 아빠(이 아저씨 이름이 생각이 안 나는데, 다시 책을 찾아보기는 귀찮네)를 다루는 방식도 나쁘지 않았다. 특히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 차에 매달린 인형을 보는 헤이스케의 시선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나오코의 죽음과 방금 얘기한 것처럼 간접적으로 언급되는 희생자들 이야기와 1주기 때의 현장 방문 장면 등에서는 울음이 나는 걸 참기가 어려웠다. 아까 말했듯이 세월호 등 억울하고 안타까운 생명들이 떠올라서 더 그랬다. 이 사고도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 희생된 것으로 나온다. 애초에 스키여행을 위해 운행한 셔틀버스 성격이었으니 당연하겠지. 당시 일본에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던 건지, 작가가 다른 비슷한 사고를 보고 넣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냥 작가가 생각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충분히 현실에서 있을 법한 사고였다. 다만 운전사가 돈 때문에 충분히 잠을 자지 못하고 무리해서 사고가 났다는 설정은 너무 손쉬운 설정이라는 생각이었다. 눈길이었고, 차량의 결함이 있을 수도 있고, 길 자체가 위험한 구간이었을텐데 그냥 정말 다른 이유 없이 졸음 운전으로 결론이 나는 것은 좀 이상했다. 물론 이 소설의 핵심이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한 것이 아니기에 여기에 분량을 할애하지 않은 것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왜 운전사가 졸음 운전을 할 수 밖에 없었나 라는 의문만을 밝히려 하는 태도가 좀 납득하기 어려웠다.

일본 지리를 잘 몰라서 도쿄에서 나가노까지 얼마나 먼지 모르겠는데, 그 거리가 버스 기사 두 명이 교대 운전을 할 정도인가는 의문이다. 내 경험에 명절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버스로 17시간 이상 걸린 적도 있고, 10시간 이상 걸린 적은 수도 없이 많다. 당연히 버스 기사님은 한 분이었고, 그 분이 그 긴 시간 휴식 없이 운전대에 앉아 계셨다. 교대 기사 따위 없었으니까. 교대 기사까지 있는데도 버스 기사가 졸았다는 것. 아무리 돈을 위해 쉬지 않고 일했다는 설정이라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게다가 해당 기사가 졸려할 때 다른 기사 한 명은 뭘 한 걸까?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영화의 모나미, 그러니까 히로스에 료코는 그렇게 어리지 않았기에 처음 모나미가 초등학생이라고 했을 때 좀 놀라웠다. 고등학생이라면 어른이나 마찬가지니 위화감이 좀 적었겠지만, 5학년이라도 초등학생은 초등학생인데, 그 몸에 30대 어른이 들어가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뭔가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 밖에 없겠지. 작가가 영리하게 적절한 나이를 잘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모나미는 딸이지만, 나오코는 아내였으니 지금 나오코는 모나미의 몸에 있어도 아내라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인데, 이 어린 아이가 학교도 다니면서 집안 일을 모두 다 한다. 저녁거리를 사와서 매일 저녁을 준비하고, 설겆이와 뒷처리도 모두 혼자한다. 청소와 빨래에 대한 묘사는 거의 없는데 헤이스케가 한다는 묘사도 없으니 역시 혼자 다 한다고 봐야겠지. 헤이스케는 집에서 하는 일이 없다. 야구 보고 다른 티비 프로그램 보고 가끔 맥주나 마시고 목욕하고 잔다. 아니 그 어린애가 학교 마치고 장보고 돌아와 서둘러 밥을 준비하고 설겆이까지 다 하는데 왜 아빠이자 남편이란 인간은 아무것도 안 하지? 왜 엄마가 죽고 딸이 성인이 될 때까지 그 긴 시간 헤이스케가 밥을 하는 장면은 단 하루도 없지? 한 두번 혼자 라면을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도 혼자 먹는 것이었다. 아무리 아내라고는 해도(아니 아내여도 마찬가지지만) 외형은 어린아이인 딸인데 왜 단 하루도 집안 일에서 휴식을 주지 않는 걸까?

게다가 부부관계 즉 밤 일에 대한 부분은 참 어이가 없었다. 이 부분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이렇게 끌고 간 것이겠지만, 딸이지만 아내니까 부부관계도 할 수 있다. 뭐 이런 논리인 것이겠지만, 그리고 결국은 당연히 안 된다고 할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참 정신이 아득해지는 장면들이었다. 만약 여기서 선을 넘었다면, 그냥 이 책 집어던지고 더이상 안 읽었을 것이다. 물론 실제 부부라면 싸우고 나서 그 방법으로 해소하는 상황이 아예 없지는 않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작가도 딱 그런 생각으로 이 장면을 만들었겠지만, 그리고 독자들이 딱 지금 내가 생각하듯 생각하길 바라고 넣은 것이겠지만, 그래도 읽으면서 너무 어이가 없었다. 나중에 영화로 이 장면을 봤는데, 다행히 영화에서는 옷은 안 벗었더라만(아마 심의 등급 등을 고려해 벗을 수 없었을 수도 있겠지만) 시도 자체로 화가 나는 것 마찬가지였다. 이것과 함께 목욕 장면도 정도는 좀 덜하지만, 마찬가지로 어이가 없었다. 이것 역시 영화에서는 가볍게 넘어가는데, 소설에서는 헤이스케가 나오코와의 목욕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나오코가 혼욕을 거부하고 나가자 화를 내는 장면에서 이게 일본이라서 당연한 것인가? 아니면 시대가 그랬던 건가? 궁금해졌다.

2000년 즈음에 사막화 방지 운동 차원에서 일본 대학의 시민단체와 함께 몽골에 갔을 때 처음으로 깨달았었다. 정말 일본은 남녀 관계가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봉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구나 하고. 그때 함께 어울려 놀던 대학생들 중 어느 남학생이 내게 작은 실수를 했었는데, 나중에 이 학생의 여자친구가 일부러 나를 찾아와 사과했었다. 그것도 그냥 말로 사과한 것이 아니라 무릎까지 꿇는 모습을 보고 정말 놀랐었다. 아니, 잘못은 남자애가 했는데, 왜 아무 잘못도 없는 여학생이 사과를 하나! 며칠동안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대충 보니, 늘 남학생들은 뭐든 마음대로 하는 편이고, 여학생들은 늘 뭔가 제약에 묶여있다는 느낌이었다. 반면 나와 우리 학생들은 반대에 가까웠다. 여학생들은 대체로 남학생들을 짐꾼이나 일꾼처럼 부려먹었고, 남학생들은 큰 불만없이 대체로 요구하는 대로 따랐다. 그렇다고 우리 여학생들에게 불만이나 어려움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 보이는 모습은 그랬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 내가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일본에서 성인 남성으로 살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다. 남존여비라는 생각이 박혀있었던 건 세계적으로 마찬가지였고, 우리나라도 과거에 심각했지만, 그리고 아직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고질적인 문제들이 존재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모습들은 그래도 달라지고 있고 제법 달라졌다고 생각하기에 이 책을 통해 느낀 일본의 모습은 새삼스럽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물론 그 시절 일본에도 여성을 인격적으로 대해주고, 집안 일을 함께하는 남성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중의 문제였겠지.

나오코는 그러니까 딸의 몸에 들어가 다시 청소년기를 겪으며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나오코는 거의 초인처럼 느껴졌다. 대체 어떤 아이가 저런 삶을 살 수 있을까? 실제 일본의 여성 청소년들은 다 그런가? 식사와 청소와 빨래 등 모든 집안 일을 다 하면서 학교도 다니고 공부도 잘 하고, 그러면서 동아리 활동이나 학생회 활동도 다 하고. 이게 나오코가 이미 이 시기를 한번 겪었던 어른이라서 이미 모든 집안 일을 달인 수준으로 잘 한다는 설정이긴 하지만, 모든 집안 일은 아무리 달인이라도 시간이 걸린다.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해서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라면 잠을 잘 수 없어야 하고 그러면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할 수 없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니 아기였을 때 나와 애들 엄마는 아무리 열심히 집안 일을 해도 늘 시간에 쫓겼다. 퇴근하고 둘이 쉼없이 집안 일을 해도 마치면 새벽이었고, 지쳐 잠이 들어도 아기들은 새벽에 꼭 깨기 때문에 금방 다시 깨야했다. 가능하면 애들 엄마가 조금이라도 더 자도록 내가 일어나 아기에게 분유도 먹이고, 트림도 시키고, 기저귀도 봐주고, 안아서 재우고 다시 잠을 자기도 했지만, 어떤 날엔 아기가 아무리 시끄럽게 울어도, 애들 엄마가 내게 좀 어떻게 해보라고 아무리 깨워도 모르고 잠들어있었던 날들도 있었다. 이 소설에선 아기를 키우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다른 집안 일들 모두가 고스란히 딸의 몫이 된다.

나오코가 제2의 인생을 살아가다는 측면에서 오래 전에 읽었던 [리플레이]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이라 고민할 가치조차 없지만, 그래도 만약에 내가 다시 젊은 혹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떤 삶을 살까하고 생각해본다. 나는 아마 다시 살아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어떻게 보면 실패한 인생처럼 보이지만, 또 어떻게 보면 그냥 그럭저럭 잘 살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내 목표는 남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경제적 성공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니까 지금의 내가 이 성격과 성향과 기억을 그대로 갖고 어려진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을 것 같다는 얘기다. 여전히 나는 공부를 그닥 열심히 하지 않을 것이고, 여전히 수학을 못 할 것이고, 아마도 돈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을 것 같다. 아, 여기서 소설 속에 재미있는 설정 같은 것이 하나 있었다. 나오코는 학창시절 수학과 과학을 잘 하지 못했었다. 전형적인 문과 뭐 이런 느낌. 이건 나도 마찬가지라서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헤이스케는 이과라 수학도 과학도 잘 했었다. 그 딸인 모나미는 아빠를 닮아서 수학을 꽤 잘했다고 나온다. 그래서 나오코는 갑자기 잘했던 수학을 못하는 모습이 이상하게 보일까봐 걱정하는데, 의외로 헤이스케가 알려주니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고. 의식은 나오코지만, 뇌는 모나미의 뇌니까 수학을 잘 하는 모나미의 뇌로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이니 잘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 이런 논리였다.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까 [리플레이] 소설을 언급했는데, 여기서는 정확히 특정 시점의 본인에게 의식이 들어가는 혹은 돌아가는 개념이라 몸이나 뇌가 바뀌지 않는데, 이 경우는 딸의 몸으로 들어간 것이니, 그렇다면 전혀 다른 상황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음, 좀 더 세부적으로 할 말이 많았는데, 시간 관계상 이쯤하고 이제 결론인 반전으로 가보자. 영화에서는 이 부분이 좀 어이없고 딱히 인상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확실히 소설은 아! 하고 한번 환기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다만 금방 다시 의심이 들기는 했다. 어쩌면 나오코가 모나미에게 얘기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다른 시시콜콜한 것들을 다 기록해두면서 그렇게 중요한 걸 전해주지 않은 것이 더 이상하지 않은가. 물론 나오코와 모나미의 기이한 공존이 이상하다고 여긴 시점에서 게임은 끝난 것일수도 있다. 이건 각자가 다르게 판단할 수 있는 몫이라고 여긴다. 암튼 여기서 작가가 얼마나 영리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초반에 짚었듯이 이 소설은 철저히 헤이스케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헤이스케의 생각과 시선 안으로 갇힌 느낌이다. 그 바깥의 시공간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래서 헤이스케가 나오코와 모나미의 공존 기간을 한치의 의심도 없이 믿으면 독자들도 자연스럽게 믿을 수 밖에 아니 대부분 믿게 만들어진 구조다. 반면 반지 때문에 헤이스케가 이 모든 것이 나오코가 의도한 긴 시간동안 연출한 상황이라고 깨닫는 순간, 독자들도 일정부분 그 생각에 따르도록 만들어진 구조인 것이다. 사실 아무런 징후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그것도 이성교제를 비롯해 여러모로 남편과 아내의 갈등이 극에 치달은 시점에, 갑작스레 모나미의 의식이 깨어난다고 하는 상황이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엄마의 의식이 딸에게 들어가는 것도 말이 되지 않지만, 이건 이 소설의 세계관이자 핵심 설정이고, 여기서 모나미가 의식을 찾으려면 이 부분에 대한 트리거가 될 수 있는 어떤 특정한 사건이 있어야 한다.

자, 시간에 쫓기니 영화 이야기는 원래 의도와 달리 짧게만 다루자. 일단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소설과 달리 시각적으로 인물과 상황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하지만, 영화는 2시간 이내로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큰 제약이 있다. 그래서 모나미가 초등 5학년이 아니라 고등학생으로 시작한다. 초반에 사고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데, 이 연출이 좀 별로였다. 확실히 옛날 영화구나 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전체적으로 그 비극적인 느낌을 거의 살리지 못해서 차라리 소설처럼 남편이 뉴스로 소식을 접하는 장면부터 시작하거나, 그냥 버스가 눈 덮힌 산길을 달리는 장면에서 사고 장면을 건너뛰고 남편 장면으로 넘어가기만 했어도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시간이 짧으니 등장인물을 다 잘라내고 운전사의 아들을 직접 등장시킨 것은 정말 큰 패착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은 이해하지만, 그랬다면 이 인물을 좀 더 입체적으로 잘 살렸어야 하고 나오코가 이 인물에게 호감을 갖게 되는 상황을 만들어줘서 관객들을 설득시켜야 했다.

무었보다 중간 과정의 인물들이 다 빠지면서 나오코가 얼마나 현명하고 상황에 따라 대처를 잘 하는 사람인지 보여주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쉽다. 모나미의 담임과 헤이스케와의 관계도 많이 생략된 것이 아쉽고. 아, 이게 드라마도 있다고 하던데, 드라마라면 분량이 충분할테니 확실히 보여줄 수 있었을 것 같다.

딱 하나 영화 시나리오에서 영리하게 잘 한 것이 있다면, 평소 나오코가 헤이스케의 턱을 들게하고 까끌까끌한 수염을 만지는 습관이 있다고 설정한 것이다. 이건 말그대로 습관이라 무심코 튀어나올 수 있는 행동이고, 이건 일부러 모나미가 따라하고 싶어도 따라하기 쉽지 않은 행동이다.

그래서 책을 두번째 읽고 생각해보니 소설보다 영화의 반전이 훨씬 더 간결하면서도 설득력이 있다고 여겨졌다. 와! 처음에 별로 반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나중에 보니 오히려 훨씬 괜찮은 반전이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음, 더 할 말이 많지만, 자꾸 연락이 오고 있어서 딱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이 소설에서는 정확한 시기가 나오지 않지만, 가전제품과 그 부품들 이야기로 대략 추정해 볼 수 있다. 물론 일본이라서 조금 다를 수는 있겠지만.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 소설을 발표한 시점이 1998년이고, 내용으로 유추해보면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일 것 같다. 영화는 99년에 제작되었는데, 딱 그 시대로 설정한 것 같다. 중간에 소마 선배가 모나미에게 휴대폰 번호를 알려달라고 말하는 대사가 있다. 소설에서는 휴대폰이란 것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시대였다. 소마 선배가 4시부터 모나미가 나올 때까지 무조건 기다린다고 했었다.

아, 전화 이야기로 또 한참 옛 추억을 더듬어 떠들 내용이 있었는데, 그건 다음 기회에 써야겠다. 그리고 진짜 마지막으로 주인공의 딸이자 아내인 모나미의 이름 때문에 처음에는 자꾸 특정한 볼펜이 생각나서 몰입을 방해했다. 나중에 찾아봐야지 생각했는데, 지금 검색해보니 그 모나미는 프랑스에 Mon ami 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정말 마지막으로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히로스에 료코다. 다른 거 다 필요없이 그냥 그가 연기하는 모나미, 아니 나오코의 의식이 깃든 모나미를 보는 것이 정말 좋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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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01 21: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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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02 22: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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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대화


하늘이 낮게 드리운 늦은 오후였다. 누군가를 찾기 위해 어딘가를 걷고 있었다. 누구를 찾기 위해서였는지, 어디를 걷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기억나는 건 옆에 같이 걷던 일행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일행과 나는 무언가 대화를 나눴다. 한참 뭔가 얘기를 나누고 있던 중에 그는 내게 X세대를 구별짓는 특징과 세대론의 일반적인 내용과 그 한계에 대해 물었다. 나는 그 질문을 들으며 대학 1학년 때 썼던 과제를 떠올렸다. 과제의 주제가 X세대였다. 뭐라 답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머리에 떠오르는대로 사회학자와 이론을 언급하며 길게 대답을 했다. 그래 내가 엄연히 사회학을 전공한 사회학도란 말이야. 졸업하고 사회학 서적을 읽지 않은 게 벌써 이십년이 훌쩍 넘었지만, 이렇게 설명을 잘 하잖아. 라고 생각하며 우쭐해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가 영어로 트럼프 시대의 미국 이민자의 삶을 출신 지역 별로 예측해보자고 했다. 남미와 아시아를 중심으로. 나는 영어로 뭐라고 답을 하기 시작했는데, 계속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다. 내가 지금 제대로 문장을 만들었는지, 말이 되는 말을 떠들고 있는 건지 스스로 생각해도 의심이 들기는 했지만, 답을 하기는 했다. 그가 내 대답에 공감의 몸짓과 눈빛을 전해왔다. 저렇게 열심히 경청하는 자세를 보이면 아무리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라도 자신감을 갖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남미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적어서 구체적으로 얘기하기 어려웠지만, 아시아는 나라와 지역에 따라 범주를 나눠 얘기할 수 있었다. 그는 이번에는 미국 내 중국계, 일본계, 한국계 이민자의 생활 양식을 거칠게라도 일반화 할 수 있을지 물었다. 음, 중국계와 일본계에 대해서는 몇몇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아주 전형적인 모습 밖에 떠오르지 않았고, 한국계도 그다지 아는 것이 없지만, 딱 떠오른 영화가 [미나리], [패스트 라이브즈], [서치]였다. 이 영화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 중 [미나리]를 통해 한국계 이민자들이 미국에 자리 잡는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는 얘기를 했다.


그는 이번에는 일본어로 재일 한국인 문제, 그 중에서도 무국적 재일 조선인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주제를 바꿨다. 어떻게 그의 일본어를 잘 알아듣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의심의 여지 없이 잘 알아듣고 있다고 여겼다. 다만, 이제 일본어로 답을 하려고 하니 말문이 막혔다.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는 주제라 적절한 답을 우리말로 하라고 해도 어려울텐데, 일본어로는 단어를 단 하나도 떠올릴 수 없었다. 스미마셍, 와타시와 니혼고가 데키마셍. 겨우 이 말을 떠올리는데에도 한참이 걸렸다. 아니 데키마셍이 아니라 하나시마셍이라고 해야 하나? 그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다시 말했다. 아나타와 이마 니혼고데 하나시테이마스. 아니 그건. 간신히 그 말 정도만 떠올린 거라고. 이걸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이거 현실이 아니구나. 그래 내가 영어와 일본어를 이렇게 잘 할 리가 없지. 어쩐지 막힘없이 다 알아듣고 있더라.


꿈이라 깨닫는 순간 우리가 걷고 있던 길 주위의 묘한 풍경들도 눈에 들어왔다. 왼쪽은 넓은 초원이었고, 저 멀리 낮은 산들이 있고, 그 너머로 해가 넘어갈 듯 노을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모습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림으로 그려서 간직하고 싶을 만큼. 오른쪽은 바다였다. 어둠이 깔려가는 바다에서 주기적으로 파도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이 길을 한참 걷고 있었던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니 양 옆의 초원과 바다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옆에서 함께 걷고 있는 그를 돌아보았다. 그는 내 왼쪽에 서있었고, 그의 뒤로 붉은 노을이 펼쳐져 있어서 아주 조금 눈이 부셨다. 몇 발짝 앞서 걸은 후 뒤돌아 그를 보았다. 그의 왼쪽 얼굴과 몸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여긴 어디죠? 우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요? 내가 묻자 그는 웃는 듯 찡그린 듯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고, 갑자기 그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뭔가 날카로운 통증을 느끼는 순간 잠에서 깼다.


꿈에서 깨자마자 나와 함께 걷던 그가 누구인지 떠올려 보려고 했다. 함께 걸으며 내 이야기에 집중하던 그 얼굴. 바람에 긴 머리를 나부끼며 왼쪽 뺨이 노을에 물들었던 그 얼굴. 웃는 것인지 찡그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달려들기 직전의 그 얼굴. 분명 아름답다고 느낀 그 얼굴은 내 기억 속의 누구와도 맞지 않았다. 다만, 목소리는 분명 익숙한 느낌이었다. 딱 누구라고 떠오르지는 않지만, 분명 들은 기억이 있는 조금은 독특한 목소리였다. 마지막 순간 그는 나를 무언가로, 어쩌면 칼로 찌른 것이었을까? 어쩌면 잠에서 깨는 순간 내 무의식이 그 얼굴을 떠올리기 싫어서 왜곡한 것인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시간 여유가 많지 않아서 일본어와 영어 그리고 중국어를 그렇게 열심히 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번처럼 여러 언어를 바꿔가며 말하는 꿈을 여러 번 꾸었다. 어떤 꿈에서는 아예 모르는 불어를 유창하게 말하기도 했고, 어떤 꿈에서는 힌디어로 좋아하는 인도 영화와 배우들에 대해 떠들기도 했다. 어떤 날엔 현실의 나처럼 떠듬떠듬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상태로 답답하게 대화를 하기도 했었다. 아무리 꿈이지만, 아니 꿈이라서 더욱 말을 잘 못하는 것 보댜는 유창하게 잘 하는 것이 더 좋다. 시간이 아직 이른 편이라 화장실을 다녀와 다시 누워서 머리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다시 꿈 속의 내용을 음미했다. 아마도 X세대 내용이 나왔던 것은 최근에 본 영화 [백 인 액션] 때문인 것 같다. 영화에서 카메론 디아즈와 남자 주인공(많이 본 배우였는데 이름을 못 외웠다.)이 술집에 큰 딸을 데리러 갔다가 싸움이 일어날 때, 시비를 건 젊은이가 '부머'라고 부르니, 카메론 디아지그 우리는 부머가 아니라 X세대라고 답한다. 그게 영어 대본도 그런 것인지, 아니면 자막만 그런 것인지는 확실치 않은데, 분명 부머라는 단어는 들렸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리고 우리나라와 연령대가 다를 수 있겠지만, 확실히 부머와 X제너레이션은 미국에도 있는 세대일 거라 생각한다. 나중에 찾아봐야지.


꿈에서 언급한 X세대를 주제로 한 과제는 실제로 대학 1학년 때 썼던 것이 맞다. 이 과제를 준비하는 과정이 재미있었고, 성적도 제법 괜찮게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회학이 재미있었던 것은 다양한 사회 현상을 여러 층위의 이론으로 분석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2000년 즈음에 갑자기 유행했던 '엽기'라는 단어가 붙은 다양한 유행들에 대해서 조별과제로 분석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정말 해괴한 사진이나 영상들을 많이 접했었다. 물론 그때 그 엽기라는 단어의 유행을 어떻게 분석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다만 기억나는 것은 우리 조가 복학생이었던 나를 빼고 모두 여학생이었다는 것, 우리가 각자 조사하거나 함께 찾아본 사진이나 영상들 중 상당수가 내용적인 측면에서 여성들과 함께 보기 곤란한 것들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 학생들 중 미모가 뛰어나서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한 학생이 그런 장면들이 나올 때 마다 내가 눈을 돌리고 외면하면, 쿨한 태도를 보이며, "선배, 지금 눈 돌릴 때가 아니에요. 과제 해야죠." 라고 말하며 내 양 볼을 잡고 얼굴을 다시 컴퓨터 화면으로 돌렸다는 것. 아, 한 가지 더 있다. 그 발제를 내가 맡았고, 우리 조의 발제 점수는 만점을 받았으며, 그날 이후로 조별 과제 마다 여자 후배들이 복학생인 나와 같은 조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


어떤 시절


문득 생각해보면 이게 다 꿈인가 싶은 시절을 지나고 있다. 뜬금없는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 가결. 현직 대통령의 체포 영장 집행과 구속영장 발부. 게다가 법원에 대한 테러 행위까지. 이게 다 현실인 거 맞아? 차라리 내가 유창하게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더 현실인 것 같고 이게 다 꿈인 것 같은데, 장자와 나비 이야기처럼 어느 삶이 꿈이고 어느 삶이 현실인지 모르게 된 것인가? 아니면 영화 [매트릭스] 처럼 어느 삶이 가상 현실이고 어느 삶이 현실인지 모르는 것인가?


요즘 주위에 내란성 불면증과 내란성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건지 모르게 정신없이 살고 있다. 뉴스만 보면 꼴 보기 싫은 얼굴이 나와서 보고 싶지 않지만,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일들이 터지니 뉴스를 안 볼 수도 없고. 내란 수괴를 구속시킨 것은 백번 잘한 일이지만, 그 공범이나 다름없는 경호처의 범죄자들은 왜 또 그냥 석방 시킨 것인지? 검찰이란 집단에 대해 불신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또 벌어진다. 게다가 내란에 동조하는 미친 인간들의 집단인 빨간당의 지지율은 왜 올라가는 것인지? 하긴 저들도 믿는 구석이 있으니 내란에 동조하는, 정치적 자살에 가까운 짓을 기꺼이 저지르는 것이고, 그런 자들의 뒷배가 되어주는 자들이 분명히 존재하니, 극우 유튜버라는 미친 쓰레기들이 이렇게 설쳐대는 것이겠지. 그렇기에 초유의 법원 테러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범죄 행위가 벌어진 것이겠지.
















한참 재미있었던 SF읽기 모임이 한동안 모임을 못 열고 있다. 다들 바빠졌기 때문이다. 벌써 두 달째 모임 날짜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이번에는 꼭 모임을 하자고, 소설이 아닌 책을 읽자는 제안이 나왔다. [섹스로봇과 자살기계]라는 아주 자극적인 제목이다. 뭐 우리가 꼭 SF 문학만을 읽자고 한 것은 아니기도 하고 내용이 SF 라는 우리 주제와 닿아있기도 하고. 문제는 모임 날짜다. 벌써 2월이 다 되어가는데 날짜는 정하지 못했고, 그 사이에 자꾸만 새로운 일정들이 달력에 기록되고 있다. 금방 또 2월의 달력이 다 채워질 듯.



오랜만에 밀린 일들을 좀 처리하려고 누가 시키지도 않은 야근을 하다가 잠시만 쉬어야지 하고 알라딘에 들어왔고, 이런 시국에 책이라도 사야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는 핑계로 몇 권의 책을 주문했고, 이웃들의 글을 조금 읽다가 자판이라도 두드려야지 하는 마음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제 집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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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1-25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꿈을 어떻게 이리도 생생하게 기억하는지요. 어떤 작가는 꿈노트를 작성한다는데...전 눈을 뜨면 신기루처럼 사라집니다. 아쉬운 꿈은 옷자락이라도 잡고 싶지만 담배 연기처럼 홀연히 사라집니다.
다만 오래도록 바라거나 그리워한 어떤 사건이나 사람에 대한 몇몇 꿈은 추억보다도 오래 기억에 남아 있더군요. 고3때 친구를 하늘로 떠나보내고 보름만에 꾼 꿈은 너무나 생생했는데, 30년이 훌쩍 지나 다른 기억은 다 희미해져도 그 꿈만은 사라지지 않더군요. 추억을 꿈이 대신한 경우랄까요.

감은빛 2025-02-02 21:59   좋아요 0 | URL
제가 이상하게 비슷한 패턴의 꿈을 반복해서 꾸거든요. 그렇게 자주 반복하면, 여러가지를 기억할 수 있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가끔 꿈 속에서 이게 꿈이라고 느낀 경우에는 좀 더 잘 기억나기도 하구요.

또 일정 부분은 대략 이런 흐름이었다는 것만 기억한 것에 기억을 떠올리려 애쓰다가 약간 기억을 덮어 쓴 것도 있을거예요.

그죠. 어떤 꿈은 꼭 실제 기억처럼 오래 기억나기도 하죠. ㅎㅎㅎㅎ

페크pek0501 2025-02-01 2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외국어 공부를 하셨군요. 그러니까 꿈에서도 나오죠. 외국어 공부를 하시는 분들 보면 좋은 인생을 산다는 생각이 들어요. SF읽기 모임을 하셨었군요. 저도 가끔 그런 쪽으로 책을 읽어요.
감은빛 님은 글을 길게 쓸 줄 아는 능력, 이 있어요. 제가 부러워하는 점입니다. 저는 길게 쓰고 싶어도 그게 안 됩니다.마치 긴 대답을 할 줄 모르고 짧은 답변만 할 줄 하는 사람처럼 말이죠.ㅋㅋ

감은빛 2025-02-02 22:02   좋아요 1 | URL
예전에 영어 학원에 다닐 때에는 자주 영어로 꿈을 꾸기도 했어요. 꿈에서는 참 유창하게 말을 잘 했는데, 깨고나면 아니어서 늘 아쉬웠었죠.

저는 짧은 글을 잘 못 써요. 가끔 청탁받은 원고도 늘 분량을 한창 초과해 써놓고 줄이느라 애를 먹어요. 그냥 아마도 할 말이 많아서 길게 쓰는 것이겠죠. ㅎㅎㅎㅎ
 


100년 전 오늘 신문기사

활동하는 분야가 다양하고, 여러 연대단위에 속해 있다보니 참여하고 있는 단체 대화방도 많다. 카카오톡이라는 이 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에 반해 기능은 많이 떨어지고 불편한 메신저 앱 기준으로 단체 대화방이 수십개다. 가끔 낮에 긴 시간 회의를 하느라 대여섯 시간 이상 폰을 안 보다가 나중에 열어보면 안 읽은 새 대화가 몇 백개가 있다고 빨간 글씨로 알려주기도 한다.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맡은, 권력에 미치고, 무속이라 불리는 헛소리에 사로잡힌, 어리석은 인간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작년 12월 3일 밤에도 그랬다. 나는 그날 피곤하고 몸이 좀 안 좋아서 일찍 잠들었는데 새벽에 잠을 깨보니 부재중 전화도 여러 통 와있었고, 저 카톡의 여러 단톡방은 그야말로 난리였다. 무슨 일이 생겼구나 하고 얼른 유튜브로 뉴스를 찾았었다. 국회로 뛰쳐나갔던 사람들과 나가려고 했으나 가족들이 붙잡아서 못 나간 사람들과 불안한 마음으로 계속 뉴스를 보고 있었던 사람들이 여러 개의 단톡방에서 많은 소식들을 올리며 교류하고 있었다. 국회에서 일하는 지인이 상황이 일단락 되었으니 이제 주무시라고 올린 대화를 보고서야 일단은 안심할 수 있었다.

사실 저 카톡이라는 앱에 저렇게 많은 단톡방이 있는 건 내게는 스트레스다. 다른 사람들이 내 기준에서 그닥 흥미롭지 않은 이야기들을 공유하는 것에 나는 관심이 없다. 그럼에도 그 많은 방들을 나가지 못하는 것은 일과 사람들과 엮여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대화가 몇 십개 정도 쌓여있을 때 빠른 속도로 스크롤을 내리며 대략 어떤 주제의 대화인지만 파악하고 금방 다시 닫는다. 읽지않은 대화가 백여개가 넘어가면 그냥 열어서 스크롤만 내리고 다시 닫는다. 그 대화를 읽느라 소모할 시간 여유가 없다. 하지만 비상계엄이 선포된 날처럼 특별한 날에는 대화가 아무리 많아도 꼼꼼하게 여러번 다시 읽는다. 저 절박한 순간 사람들이 어떤 심정으로 어떤 소식들을 주고 받았는지, 그것은 서로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정보 과잉의 시대라고 말한다. 인터넷에서 손가락만 좀 움직이면 어지간한 정보들을 대체로 찾아볼 수 있다. 물론 그 정보들이 얼마나 정확한지,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단톡방에서 공유되는 가짜뉴스와 거짓정보들이 많듯이, SNS에도 교묘하게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정보들이 많다. 나는 정말 그렇게 많은 어르신들이 카톡으로 거짓 정보들과 음란물들을 공유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한 연로하신 운동판의 선배가 대화 중에 안경을 벗고 눈을 찡그리고 폰을 들여다보다가 자신의 카톡 대화방 중 하나를 내게 보여주었다. 정말 충격이었다. 왜 이런 대화방에서 나가지 않냐고 물으니, 이 나이쯤 되면 어느 방이든 다 마찬가지라고 했다. 나였다면 절대 단 1초라도 그런 방에 머무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에게 전달되는 많은 정보들 중에 내게 필요한 것을 고르고, 찾는 것에도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된다. 이게 무슨 사회적 낭비인가 싶은 생각이 종종 든다. 얼른 이 복잡한 관계들을 다 벗어나 카톡을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암튼 그런 수많은 단톡방 중 한 곳에 근대뉴스라는 이름으로 100년 전 오늘 신문 기사들을 아카이빙 해서 소개하는 글들을 매일 올리는 분이 계시다. 처음에 나는 매일 아침 올라오는 이 글이 일종의 스팸이라 여겼다. 이 방에 있는 사람들이 과연 매일 저 링크들을 열어볼까? 열어서 읽어보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매일 여러 개의 제목과 링크가 올라오다 보니 읽고 싶지 않아도 제목은 늘 눈에 들어오게 되는데, 백년 전에도 기사의 제목들은 참 자극적이었구나 싶다. 정말 나도 모르게 링크를 클릭하게 만드는 제목들이 제법 있었다. 링크로 들어가면 정확히 100년 전 오늘, 해당 신문기사의 이미지가 있고 그 아래에 기사를 한글로 옮겨놓았다. 이미지를 살펴보면 원문에서 사람 이름이나 명사들은 대개 한자인 경우가 많고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자음과 모음들이 보여서 딱 곧바로 이 글을 읽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몇 번 흥미로운 내용의 기사들을 접한 후에 매일 이 링크들을 올리시는 분이 대단한 작업을 하고 계시구나 하고 생각했다. 특히 몇몇 르포 기사와 특별 연재 기사들은 그 내용이 엄청 흥미롭고 완성도도 괜찮았다. 어떤 내용들은 역사책에서도 접해보지 못한 생생하게 살아있는 당시 서민들의 모습들이었다. 그때부터 매일은 아니지만 시간 여유가 허락하는 한, 단 한 두개라도 백년 전 오늘 기사들을 읽으려 하고 있다.

오늘 읽은 1925년 1월 10일 동아일보 기사에는 용산 관내에 부자집이나 큰 식당에 버려지는 아기들이 많다는 내용이었다. 기자는 그 이유를 기아, 즉 굶주림 때문이라고 했다. 이 추운 한겨울에 굶어죽지 않으려고, 아니 아기를 굶겨죽이지 않으려고 부자집이나 큰 식당 문 앞에 버려두고 가는 부모의 마음은 과연 어땠을까? 정월 초하루 밤에 버려진 어느 아기에게는 이름과 생년월일과 함께 사주가 적혀있었다고 했다. 기저귀 3개와 솜이불 한개도 함께였다고 했다. 그 여자아이는(기사에는 계집아이라고 표현되어 있었다.) 그 집에서 잘 자랐을까? 나중에 친부모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을까? 혹 그 부자집에서 잘 키워줬다면 엄혹한 일제시대와 광복과 한국전쟁을 겪었을텐데, 어떤 삶을 살았을까 궁금해졌다. 기사에 7달 된 아기라고 했으니 1924년 6월 생이시니, 만약 지금까지 살아계시다면 101세가 되시겠구나.

백년 전 오늘 용산에는 이렇게 아기를 굶겨죽이지 않으려고 한겨울 밤에 아기를 부자집 앞에 버리고 돌아서는 부모가 있었는데, 지금 용산에는 법질서를 무시하고 국민을 배신한 내란수괴가 숨어있구나. 언제쯤 저 어리석은 인간이 구속되어 정당한 법의 심판을 통해 사형 선고를 받을 것인가!

무기수 김신혜 무죄 석방

김신혜라는 젊은 무명 배우이자 보험 설계사가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접했던 것은 아마 거의 20년 전이었던 것 같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오마이뉴스 기자였던 박상규씨가 썼던 기사를 보고 알았었다. 그리고 나중에 재심이 확정될 즈음에 재심 전문 변호사로 유명한 박준영씨의 방송도 보았었다. 지금 이런 시대에도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다고? 경찰과 검찰이 했던 짓거리도 어이가 없었지만, 결국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받았다는 것도 믿을 수 없었다. 증거도 하나도 없고 정황도 하나도 맞지 않고 강압에 의한 거짓자백 하나 밖에 없었는데, 그는 무기수로서 25년을 감옥에 갇혀있었다. 하! 25년. 누가 그의 인생을 책임질 것인가. 나는 2015년 즈음 이 사건의 재심이 열릴 거라고 하여 하루라도 빨리 무죄를 받고 풀려나길 바라는 마음이었으나 이후에 꽤 오랫동안 재심에 대한 소식이 없었다. 언젠가 궁금해서 검색해 본 적도 있는데, 딱 재심이 시작될 예정이라는 소식 이후 아무 정보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최근에 무죄 석방 소식을 뉴스로 본 것이다. 재심이 쉽게 금방 열리지는 않았겠지만,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인지도 의문이다. 무려 25년. 억울함을 호소하고 운 좋게도 이 사건의 의문을 품은 여러 사람들의 도움 덕분에 간신히 구속 15년만에 재심 절차에 들어갔는데, 그로부터 다시 10년이 더 걸려 석방된 것이다. 이 사건의 여러 의문점들은 아마 그의 무기징역이 확정된 직후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유튜브에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는데도 2003년, 그러니까 사건이 벌어진 3년 후이자,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2년 후쯤에 찍은 추적60분인가 시사프로그램 방송이 나왔다. 그 방송에서 자세히 다뤘었고, 또 유명한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에서도 다뤘었다. 앞서 언급한 박상규 기자와 박준영 변호사의 글들과 방송들도 있다. 저 2003년 방송에는 담당 경찰 얼굴이 고스란히 나오던데, 그 인간은 지금 뭐하고 살고 있을까? 자신의 폭력과 강압으로 아무 죄없는 젊은 여성이 반 평생을 감옥에 갇혀 살았는데, 과연 그 경찰은 죄책감을 느꼈을까? 담당 검사는? 판사는? 그 인간들 모조리 추적해서 지금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줬으면 좋겠다.

이 사건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 한 명 있다. 경찰도 잘못이 크고, 검사나 판사의 잘못도 분명 있었겠지만, 그 이전에 김신혜 씨가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죄를 덮어쓰게 만든 장본인은 따로 있다. 바로 김신혜 씨의 고모부라는 인간이다. 장례식장에서 저 고모부라는 인간이 김신혜 씨를 불러서 남동생이 아버지를 죽였고, 자신이 그 뒷처리를 도왔다고 말했으며, 남동생은 아들이니 집안을 위해서 큰 딸인 네가 대신 경찰에 자백하도록 시켰다는 것이다. 김신혜 씨가 남동생에게 확인하려고 했는데 남동생을 못 만나게 하며 그의 큰아버지와 함께 그를 경찰에 데려갔다고 했다. 고모부가 그에게 저 거짓말을 하는 장면을 그의 여동생이 보았고, 고모부가 왜 저런 말을 했는지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했다.

게다가 고모부라는 놈은 김신혜 씨의 아버지를 파렴치한 성폭행범으로 만들었다. 그것도 친딸들을 성폭행한 악마로. 김신혜 씨가 계속 무죄를 주장하니, 고모부라는 놈이 (아마도 경찰놈들과 짜고) 김신혜씨의 범행 동기를 만들고자, 아버지가 자신과 여동생을 지속적으로 성폭행해서 죽였다라는 거짓말을 퍼뜨렸다. 그리고 손녀딸이 하루라도 빨리 석방되기를 바라는 김신혜 씨의 할아버지를 움직여 마을 사람들의 탄원서를 받게 했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아버지가 지속적으로 딸들을 성폭행했다는 말을 믿게 되었다. 거기다 이 고모부라는 놈은 김신혜 씨의 두 동생들에게도 이 사실이 맞다는 거짓 증언을 경찰에 하도록 강요했다.

나는 궁금했다. 이 고모부라는 놈이 왜 이런 짓을 저질렀을까? 이렇게 김씨를 감옥에 넣는다고 자신에게 무슨 이익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을텐데. 김씨 가족은 가난했고, 뭔가 재산을 노린 것도 아니었던 것 같고. 혹시 경찰이 뭔가 뒷거래를 제안했을까?게다가 고모부의 저 범죄를 김씨의 고모라는 인간까지 그대로 따르고 협조했다. 고모라는 인간은 왜 자신의 오빠 혹은 남동생의 죽음이라는 슬픔 속에서 자신의 조카에게 누명을 씌우는 짓에 협조했을까?

여기 어느 댓글에서 그 이유를 추측하는 내용이 있다. 그 고모라는 인간이 장애인이자 술만 취하면 자신의 친정집에 가서 행패를 부리고 부모에게 함부로 하는 김씨의 아버지를 엄청 싫어했을 거라고 했다. 그랬을 법하다고 생각한다. 사건이 일어난 밤에도 아버지는 친구랑 술을 많이 마셨고, 할아버지 집으로 가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다투었고, 그 소식을 여동생이 김신혜 씨에게 전화로 전했기 때문에 김씨는 아버지 집도, 할머니 집도 가지 않고 친구를 만나려다가 결국 혼자 차에서 잠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김씨는 알리바이를 확보하지 못해 25년을 감옥에 살았던 것이다. 나중에 이날 연락했던 친구들 2명은 자신들이 밤늦게까지 기다리다 집에 들어갔었기 때문에, 새벽이었고 어디 갈 곳도 없었고 다음날 출근도 해야해서 나가지 않았던 것이 결국 이렇게 되었다며 후회하며 울었다고 한다. 암튼 저 댓글에서는 그래서 고모와 고모부는 저 오빠(아무래도 오빠가 맞을 것 같은데, 이 부분을 확인할 정보가 없음) 때문에 부부싸움도 했을 것이라 추측했다. 그리고 사건 당일 오빠가 친정집에 가서 자신의 부모와 다툼을 벌였다는 소식을 들은 고모가 자신의 남편을 보냈을 거라고, 그 남편인 고모부가 같이 술을 마시다가 양주에 수면제를 타서 살해하고 마치 교통사고인 것처럼 위장해서 시신을 유기했다. 즉, 진범은 고모부다 라는 내용이다. 그냥 딱 읽었을 때는 어쩌면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저 고모부라는 인간이 왜 조카를 살인범으로 몰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으니 저런 추측이 나올수도 있겠지. 정말 진범이 고모부라면 저런 행동을 이해할 수 있으니. 그런데 진범이 고모부가 맞을지도 모르지만, 양주에 수면제를 탄 것은 아닐 것이다. 재심 재판 기록에 박준영 변호사가 변론한 내용에 이 부분이 있다. 양주에 수면제를 탔다는 전제가 틀렸다는 내용이다. 시사프로그램 방송에서도 전문가가 그런 취지의 발언을 했었다. 풀리지않는 또 하나의 의문은 부검을 통해 확인한 수면제의 양이다. 저 정도 농도가 검출되려면 160알? 정확한 숫자는 기억나지 않지만, 확실히 100알은 넘었는데 그 숫자를 과연 누군가가 먹이거나, 본인이 먹었을까? 너무 많은 양이다.

청산가리 살인 사건의 재심은?

작년 오늘 내가 서재 쓴 글을 보니 내용 중에 청산가리 사건에 대해 언급했더라. 이 청산가리 사건과 김신혜 씨의 사건에 조금 비슷한 점이 있다. 청산가리 사건에서는 누명을 쓴 부녀의 엄마이자 아내가 죽었다. 경찰과 검찰이 지적 장애가 있는 부녀를 몰아붙여 강압적으로 거짓 자백을 받았다. 특히 담당검사가 아버지와 딸을 각각 불러다 거짓으로 자백을 강요하는 CCTV 장면들은 진짜 욕을 하지 않고 볼 수가 없었다. 특히 검사는 아버지에게 딸이 이미 자백을 했다는 거짓말로 아버지를 압박하며 당신이 자백하지 않으면 딸이 혼자 덮어쓰고 더 중한 처벌을 받는다고 협박했다. 게다가 이 검사는 아버지와 딸이 성관계를 맺고 엄마가 이를 눈치채자 죽인 거라는 진짜 말도 안되는 어이없는 범행 동기를 만들어 냈다. 저 위의 사건에서 고모부라는 놈이 멀쩡한 아버지를 친딸들을 성폭행한 악마로 만든 것처럼, 여기서는 검사라는 놈이 지적 장애가 있는 아버지와 딸을 가스라이팅하여 서로 관계를 맺었다는 인륜에 어긋나는 짓을 저질렀다고 했다. 이들이 과연 인간인가? 저 고모부라는 놈과 여기 검사라는 놈은 정말 절대로 같은 사회에서 살고 싶지 않은,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할 범죄자이다.

이 두 사건에서 정말 아무 힘없는 사람들에게 누명을 씌우고 사건 정황을 조작한 인간들이 검사라는 놈들이다. 지금 용산에 숨어있는 범죄자 놈이 같은 검사였다고 생각하니 애초에 검사라는 놈들이 다 이런 놈들인가 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이 청산가리 사건의 재심도 얼른 열어서 무죄를 밝히고 아무 죄없는 부녀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아울러 김신혜 사건과 청산가리 사건을 조작했던 경찰과 검사들을 모조리 찾아서 처벌하길 바란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겠지만.

그리고 제발 하루라도 빨리 저 용산에 틀어박혀서 꼼짝도 안하는 내란수괴를 감옥에 쳐넣었으면 좋겠다. 내 주위 많은 지인들이 이 내란 사태로 인한 우울증을 호소하고 있다. 미치광이 하나 때문에 온 국민이 이렇게 고통을 받아야 한다니! 이 고통받는 국민의 범주에는 지금 한남동 길거리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드는 저 미치광이의 지지자들(이라고 쓰고 세뇌된 가여운 영혼들이라고 읽자.)도 해당된다. 저들은 또 무슨 죄로 이 살벌한 추위에 거리에서 지내야 하나. 아, 물론 모 쵸콜릿을 연상하게 만든다는 모습으로 화제가 된 은박비닐을 덮어쓴 시민들의 고생은 뭐 비교할 바가 되지 못한다. 결국 우리 모두가 다 피해자라는 얘기다. 저 미치광이와 그 배우자와 그에게 붙어서 내란을 주도한 인간들과 그들에게 빌붙어 떨어지는 콩고물이라도 먹어보려는 의원들과 소수의 정치인들, 전광훈이라는 종교인을 빙자한 쓰레기와 유튜브로 거짓 선동을 일삼는 쓰레기들이 문제일 뿐. 그들에게 속고, 세뇌당한 소수의 국민들은 피해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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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01-13 0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선하기도 하지만 극악하기도 하지요. 특히 이해관계에 있어서는...
억울한 옥살이 소식을 들을 때마다 어이가 없어요. 죄 없는 사람이 수십 년 옥살이를 한 경우 누가 어떻게 보상을 해야 하나요?
어수선한 나라가 하루빨리 안정을 찾아야 할 텐데요...^^

감은빛 2025-01-23 21:50   좋아요 0 | URL
페크님, 정말 이 나라가 언제쯤 안정을 되찾을까요?
내란수괴를 구치소에 넣기는 했으나,
공범이나 다름없는 경호처 간부들은 또 석방해버리는 이 검찰들은 대체 뭘까요?

제 주위에 내란성 불면증과 내란성 우울증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도 이 시절을 어찌 지나가는지 모르게 정신없이 살고 있네요.

곧 설 명절이네요.
저는 옛날사람이라 그런지 1월 1일이라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새해 인사는 별로 와닿지가 않더라구요.
제게 새해의 기준점은 설날입니다.
뱀띠해가 되면 뭔가 달라져야 할텐데. 달라지겠지요.
 

새해 첫 날

1월 1일 이라는 숫자는 좀 재미있다. 새 해를 시작하는 첫 달 첫 날.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 24시간, 365일이기 때문에 만들어진 날, 달, 해 라는 시간 개념이 익숙해서 다른 별은 이게 완전히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 않은데, 과학과 수학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정확하게 어떤 내용인지 알지 못 하지만, 우리가 다른 별을 이주해 살아가야 한다면, 일단 지구와 시간 개념 자체가 바뀌어야 할 것이다. 지구보다 자전 주기가 훨씬 긴 별이라면 엄청나게 긴 하루를 살아야하겠지. 그런 곳이라면 하루에 여러 차례 출근과 퇴근을 반복해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자전 주기가 지구 시간으로 100시간인 별이라면, 한 8시간이나 10시간 단위로 일과 휴식을 반복하거나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삼체]라는 작품에서처럼 해가 여러 개인 별이 있을 수도 있겠지. 그런 곳에서는 해가 지는 시간이 아주 짧거나, 어쩌면 아예 없을수도 있겠다.

우리 인간은 지구에서 긴 시간 적응해 살아왔기 때문에 이 24시간, 30일, 365일의 단위를 만들어 그에 맞게 생활해왔다. 만약 먼 미래에 지구에 살던 사람이 어딘가 다른 별로 이주한다면, 지구에서 살아봤던 사람은 새로운 별의 시간대에 적응하기 어렵겠지. 그 별에서 태어나 지구 시간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어떨까? 유전자에 각인된 시간 개념이 남아 있을까? 아니면 자신이 태어난 별의 시간 흐름에 쉽게 적응할까?

아, 물론 우리 인간이 빛의 속도로 이동하더라도 가장 가까운 은하라는 안드로메다 은하까지 약 250만년 걸린다고 하니, 다른 은하를 가보는 건 불가능한 일일테고, 우리 은하 안에 있는 다른 항성까지는 얼마나 걸리려나? 1977년에 발사한 보이저들은 이제 태양계를 벗어나는 중이라고 하는데, 그 카이퍼 벨트와 오르트 구름이 얼마나 넓은지, 즉 우리 태양이 얼마나 넓은 범위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아직 정확히 모른다고 한다. 사람이 타고 출발할 우주선으로 태양계를 벗어나려면 얼마나 걸릴까? 보이저가 출발한 시점보다 얼마나 더 우주공학이 발전했을지 몰라도 수명이 100살이 채 되지 않는 사람이 평생을 가도 못 가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앞서 자전과 공전 주기가 완전히 다른 별로 이주하는 상상을 한 것은 결국 다 쓸모없는 일이다.

어쨌거나 오늘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과 생각이 대부분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어제부터 수없이 받고 있는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내용의 카톡과 문자들을 보면 복을 바라지 않는 나같은 사람들은 죄책감이 들 정도다. 나는 정말 딱 이 시기에만 할 수 있는 인사말로만 저 말을 쓰는데, 많이 쓰지도 않고 어느 정도 거리감이 있는 사람들, 예를 들면 사적 친분 보다는 공적으로 얽힌 관계들에서 더 많이 쓴다. 당연히 그 분들이 실제로 복을 받으시라고 한 말은 아니다.

며칠 전에 사기 경험을 적은 글에 몇 년째 연락하고 지내는 인도네시아 사람이 있다고 썼었는데, 어제 아주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제주항공 참사 소식을 접하고 쓴 듯, 혹시 내 주변 사람들이 사고를 당한 것은 아닌지 물으며, 사고 희생자들에게 애도의 뜻을 전해왔다. 나는 다행히 내가 아는 사람 중엔 없었다고, 안부를 물어주고, 함께 애도해줘서 고맙다고 답했다. 그리고 Happy new year 를 써서 보냈다. 어느 시점부터인가 이런 식이 되었다. 명절이나 어떤 특별한 기념일에 인사를 건네고, 최근 소식들을 주고 받고 한동안 연락을 안 하다가 이번 처럼 큰 사고가 나면 또 생각나서 연락을 하게 된다. 몇 년 전이었는지, 그게 어떤 사고였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데, 인도네시아에 큰 일(아마도 지진?)이 생겼을 때 나도 걱정을 담아 연락했었다. 아마 이번 참사가 없었다면, 그냥 새해 인사를 서로 나눴겠지.

실제로 만나본 적도 없는 친구가 이렇게 걱정을 해주고 신경을 써준다는 건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다. 어디의 무슨 ‘장‘이라는 직함(예를들면 총장, 이사장, 회장 등)을 가진 사람들이 계속 형식적인 새해 인사를 보내오는데, 예전에는 일일이 답을 했지만, 이젠 아예 답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마 폰에 저장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단체로 보내는 것일테니, 나 하나 답을 하지 않아도 크게 상관없을 것이다. 물론 그중에 일부러 나를 찾아서 나를 떠올리며 보내는 분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런 형식적인 인사를 주고 받는 것이 별로 좋지 않다. 밥을 먹다가, 음악을 듣다가, 책을 읽다가 이런 메세지들 때문에 흐름이 끊긴다.

시국이 시국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이유가 있어서 이번 연말은 조용히 보냈다. 오라는 데가 제법 있었는데, 대부분 못 가거나 안 갔다. 이제 나도 새로운 기분으로 늘 하던 일들을 다시 해야지. 물론 새로운 시도도 해보고 싶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북플에서 지난 오늘 메뉴를 열었는데, 당연히 글이 하나도 없었다. 이게 내가 알라딘을 이용해 온 약 20년 동안 1월 1일에 쓴 첫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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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5-01-02 2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은빛 님, 새해가 시작되었어요!
올해는 작년보다 건강하고 즐거운 한 해 되시길 빕니다~~

감은빛 2025-01-09 16:51   좋아요 0 | URL
야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렇게 인사 전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야무님께서도 건강하시고 바라시는 일들 많이 이루시길 바랍니다.

transient-guest 2025-01-03 05: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2025년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사는 행성과 별의 영향을 받는다는 전제로 뭔가 상대적이란 생각을 하면 자전이 긴 행성에서 산다면 그냥 모든 주기가 slow down되고 우리가 느끼는 하루는 거기에 맞춰 지나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현실은 살아생전에 유인우주선이 태양계를 벗어나는 것조차 보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만... 우리가 생각을 port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생각이 여행을 하고 어딘가에 들어가 작용할 수 있다면 빛의 속도보다도 더 빠르게 성간여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되는데 이렇게 쓰고 나니 어지러워졌습니다.ㅎㅎㅎ

감은빛 2025-01-09 16:56   좋아요 1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시구요.
생각이 여행을 하고 작용한다는 개념은 구체적으로 잘 상상이 안 되긴하는데, 그렇게 된다면 상당히 재미있을 것 같아요. ㅎㅎㅎㅎ

잉크냄새 2025-01-03 1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한 해 좋은 말씀과 글로 나눈 교류 감사드립니다.

물리학을 F 맞아본 입장에서 상대성 이론을 언급하는 건 얼토당토아니하지만, 살짝 독서하는 삶에 녹여본다면, 책을 읽으면서도 스스로의 변화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은 그 행위를 통해 우리의 변화를 감지하는 뇌도 따라서 변화해가기 때문이죠. 그런 이유로 어제 읽은 책도 가물가물하지만 그래도 읽는 행위를 지속하게 되는 거죠. 음, 쓰고 보니 물리학 F 맞은 이유가 다 있네요. ㅎㅎ

감은빛 2025-01-09 17:05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시고 바라시는 일들 잘 이루시길 바랍니다.
아하, 그래서 저도 읽어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 거였군요. 라고 말씀을 드리면서도 사실 잉크냄새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 못 했다는 것을 깨닫는 군요.저는 수학 0점 받은 사람이라서 물리학 F 정도는 뭐. ㅎㅎㅎㅎ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필 이런 시국에 이런 대형 참사가 또 생기다니! 윤석열이 당당히 맞서겠다고 어이없는 헛소리를 지껄인 후에 틀어박혀서 칩거 중인데, 뭔가 상황이 자꾸 꼬여가는 중에 한덕수 총리는 또 권한대행 주제에 쓸데없이 고집을 부리고, 이재명과 파란당은 또 그걸 탄핵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탄핵하는 건 또 처음 보네. 사실 이태원 참사때도 그렇고, 이번 비상계엄과 탄핵 국면에서 한덕수 진짜 꼴보기 싫었고, 저런 인간이 한 나라의 총리라고 삿된 말로 쪽팔린다고 생각했다. 뻔히 쉬운 단어를 두고 어려운 영어단어 쓰는 버릇도 우스워보였다. 그렇지만,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건, 헌법재판관이 현재 6명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건, 국회라는 점이다. 특히 지금 뭐라도 된 양 날뛰는 파란당이 초래한 잘못이다. 한덕수가 잘 한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민주당 역시 잘 한 것 업다. 암튼 진짜 뭐 이렇게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지 너무 꼴보기가 싫어서 한동안 뉴스를 안 보고 있었다. 그래서 비행기 사고가 났다는 사실을 몰랐다.

잠시 뭘 기다려야 할 상황에 마땅히 할 게 없어서 습관처럼 SNS에 들어갔다. 별 생각없이 피드를 훓어 내려가다가 제주항공 참사? 아니 사고 였던가? 암튼 그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뭔가 사고가 났구나. 비행기 사고라면 대개 대부분 살거나, 대부분 죽거나 둘 중 하나다. 이건 후자이겠구나 하고 직감했다. 일단 빨리 뉴스부터 찾아봤다. 아! 또 이렇게 소중한 목숨이. 다른 걸 다 떠나서 희생된 승객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유가족 인터뷰를 보는데 자꾸 눈물이 났다.

사고 장면을 보면서 그간 보았던 수많은 비행기 사고 관련한 영화들이 생각났다. 처음 생각난 건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이었다. 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는 비슷한, 아니 실제 사고 원인이 무엇인지와 관계없이 비행기가 추락한다는 비슷한 상황에서 모두를 살린다. 영화를 본지 오래라 디테일은 기억나지 않고, 실화를 따로 찾아보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그 상황이 너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기적처럼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또 경우와 상황이 완전히 다르지만, 유독 최근에 비행기 관련 영화를 몇 편 본 것이 다 생각났다. 조정석의 말도 안되는 코메디 영화 [파일럿], 비행기 납치 월북 시도를 막아낸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하이재킹], 가상의 기내 독극물 유출 및 납치 시도를 가정해 만든 망작 [비상선언] 등이다. 파일럿과 비상선언은 별로 언급할 말이 없지만, 하이재킹은 제법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하정우 배우가 연기한 부기장이 실제 상황에서 승객들을 구하기위해 폭탄을 몸으로 막아 돌아가신 수습 조정사 역할까지 맡은 것도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실제 사건을 잘 살리면서 영화적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 아니, 영화 얘기를 꺼낸 것은 그렇게 많은 영화에서 동체 착륙 장면을 봤어도 이런 대참사가 일어나지 않는데, 역시 현실은 현실이구나. 실은 동체 착륙이라는 것이 이렇게 위험한 일이구나. 영화는 역시 영화구나 하는 당연한 걸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돌아가신 사고 때문에 한동안 머리가 멍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갑자기 예전에 난기류를 만나 비행기가 엄청나게 흔들려, 이러다 죽는 건가 하고 생각했던 일이 떠올랐다. 이제 구체적인 시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사진을 찾아보거나 여기 서재 글을 검색해보면 나오겠지만. 암튼 오륙년 전 늦가을 혹은 초겨울 무렵이었다. 제주에서 발표를 요청 받아 가는 날이었다.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부터 몇 가지 일이 꼬여서 심란하고 머리가 복잡했다. 그래도 일단 서울을 떠나 제주로 가는 것이니 기분을 풀어보려 노력했다. 얼른 제주로 가서 가볍게 점심을 먹고 발표를 한 후에 저녁에 맛있는 걸 먹고 하루 푹 쉴 생각이었다. 한창 일이 바쁜 시기였지만, 제주까지 와서 당일 바로 올라가기는 너무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충분히 여유있게 시간을 두고 비행기를 예약해 두었는데, 예정된 출발 시간을 한참 지나도 비행기가 이륙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뭔가 안내 방송만 몇 차례 나오고 꽤 긴 시간이 흘렀다. 비행기를 자주 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주는 비행기로 제법 갔었는데, 이렇게 한 시간을 넘기도록 출발을 못하는 일은 처음이라 이러다 못 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럼 이 바쁜 시기에 차라리 잘 됐다며 돌아가서 얼른 일이나 하자 라는 생각과 그래도 억지로 시간 만들어서 월차까지 썼는데 하는 아쉬움이 동시에 들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기다리고 있어야 하나 답답함에 몸이 막 뒤틀릴 것 같을 때쯤 되어서 비행기는 이륙했다. 그리고 얼마나 갔을까? 나는 비행기 입구에서 나눠주는 신문 하나를 정독하고 있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행기가 위아래로 크게 출렁였다. 사람들의 놀라는 소리와 동시에 나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느낌에 외마디 비명 까지는 아니고 소리를 냈다. 아니 내가 일부러 소리를 냈다기 보다는 저절로 나온 소리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 머리로는 잠깐 이러고 말겠지 했는데, 그 뒤로 몇 번이나 더 그보다 더 심하게 기체가 요동쳤다. 안전벨트 등이 켜지고 기장이 난기류를 만났다고 안내 방송을 하는 사이, 복도를 오가며 승객들 반응을 살피고 안심시키던 승무원이 앞쪽 간의 의자를 펼쳐 앉은 후 안전벨트를 달칵 채웠다. 마치 이 동작이 스위치라도 된 것처럼 갑자기 기체가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격렬하게 상하좌우로 움직였다. 승객들의 웅성이는 소리와 몇몇 비명들이 커졌다. 그러다 문득 기체가 밑으로 가라앉는 것처럼 한참을 아래로 떨어지다가 다시 위로 솟구쳤다. 이때 정말 진심으로 이 비행기가 추락하는 건가? 나 이대로 죽는 건가? 이렇게 허무하게 가는구나. 이런 생각들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손잡이를 꽉 잡고 이를 악 물고 버티고 있었다. 그때 어쩌다 저 앞쪽 간이 의자에 승객들을 마주보고 앉은 승무원과 눈이 마주쳤다. 아마 그는 계속 불안해하는 여러 승객들과 일부러 눈을 맞추며 눈빛으로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의 표정과 눈빛 덕분에 아주 조금 불안감을 떨쳐낼 수 있었지만, 그래도 비행기라는 것이, 하늘에 떠 있나는 것이 이렇게 공포스럽고 불안한 일이었구나. 이대로 기체가 곤두박질 추락할까봐 무서웠다.

실제로도 난기류 속에서 요동치던 시간이 길었던 것이지, 아니면 내 두려움 때문에 그 시간이 유독 그렇게 길게 느껴졌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제법 긴 시간이 지나서야 기체는 다시 안정을 되찾았고, 안전벨트 등이 꺼졌다. 기장은 다시 방송으로 뭔가 설명했던 것 같은데, 당시 내 귀엔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긴장을 조금 풀었던 건, 앞에 앉아있던 승무원이 벨트를 풀고 일어나 통로를 걸어오면서 양측 복도쪽 승객들의 어깨를 쓸어주는 등 괜찮은지 살피며 다가올 때였다. 내가 앞에서 두세번째 좌석 복도쪽에 앉아 있었으므로 그는 금방 내게도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얼굴을 가까이 대고 괜찮은지 물었네. 나는 아마 작은 목소리로 네, 괜찮아요 라고 답을 했었던 것 같다. 아니, 솔직히 어떻게 답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물을 한잔 달라고 했었던 것도 같다. 그는 아마 친절한 목소리로 곧 전체 승객들에게 음료와 물을 나눠드릴 예정이라고 답을 했을 것이다.

그날 이후로 비행기를 서너번 정도 더 탔을 것이다. 매번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면 그때 그 공포가 다시 생각난다. 다시는 비행기를 안 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리고 이번 사고를 뉴스로 보고 나서 이제 무서워서 비행기 못 타겠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이번 사고로 저가 항공사에서 주로 운행하는 비교적 작은 기체에 대한 두려움도 커졌다. 저 위에 말한 난기류를 만난 날도 저가 항공에 작은 기체였다. 뭐, 물론 아직 정확한 사고의 원인은 알 수 없고, 언론에서 목격자 증언과 몇몇 영상들을 근거로 추정하는 새떼 충돌이 원인이라면, 저가 항공이나 작은 기체가 문제가 아닌 것이겠지만. 잘은 모르지만, 난기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용띠해 잘 가.

이제 해가 바뀌기까지 하루하고 몇 시간 남았다. 작년 이맘때쯤 작은 아이가 내년이 용띠해라고, 그럼 내년에 태어난 아기들은 아빠랑 같은 띠냐고 물었었다. 그런 걸 띠동갑이라고 부른다고 알려줬었다. 뭐, 용띠해라고 내게 특별히 좋았다거나 나빴던 것은 없었다. 그건 다른 어떤 해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올해 나는 제법 큰 변화들을 겪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 변화의 흐름 안에 있다. 어떻게 어디로 흘러갈지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꽤 오랜 시간을 어디 머물러 정착하지 않고 계속 흘러다닐지도 모른다.

올해 나는 장거리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10킬로미터 코스 대회에 두 번 참가했다. 첫 대회는 처음이어서 놀랍고 신기한 경험이었고, 두번째는 한 번 겪어봤음에도 계속 놀랍고 신기했다. 그리고 대회가 아니라도 종종 혼자 15~20킬로를 뛰는 나를 발견하고 그것도 신기했다. 지난 한 5년 동안 나는 1~3킬로 정도씩 달리기를 했었는데, 그때 내 생각은 사람이 3킬로 이상 먼 거리를 왜 굳이 달려야 하나 이런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5킬로 미만으로 달린 후엔 별로 달린 기분이 들지 않고, 왠지 게으름을 피운 듯한 기분이 든다. 예전에도 지금도 달리기가 재밌고 좋은 것은 같은데, 달리기에 임하는 자세는 많이 달라졌다. 내년에도 또 즐겁고 신나게 달려보자. 중간중간 대회에도 나가보고.

올해 내가 또 몰입했던 것 중 하나는 프로야구를 다시 보는 것이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랐고, 롯데 자이언츠 어린이 회원인가 뭐 그런 것도 했었고, 무엇보다 사직구장에서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 최동원 선수와 같은 훌륭한 선수들을 직접 보았던 팬이라 앞으로도 평생 롯데가 아닌 다른 구단의 팬이 될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그럼에도 먹고 사는 일에 지쳐 엄청 오랜 시간동안 야구를 안 보고 살았다. 가끔 한 두 경기를 중계로 보아도 선수들을 모르고 시즌의 흐름을 모르니 제대로 즐길 수가 없었다. 그런 것들을 제대로 즐기려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올해는 조금 시간 여유가 있는 편이어서 롯데가 늘 하던 봄데 마저도 못하고 하위권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을 때 과감하게 야구에 다시 빠져들었다. 그리고 서울에 자리잡은 지 거의 20년 만에 처음으로 수도권 구장들에 직관을 가기 시작했다. 고척, 잠실, 문학 이렇게 세 곳을 다섯번인가? 갔었다. 수원이나 대전도 가보려고 했고, 대전은 어렵게 예매도 했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 포기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건 여름 휴가 일정에 맞춰 사직구장 예매에 성공하고, 아이들과 다녀왔던 일이다. 이건 아마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아이들 둘 다 마찬가지일텐데, 아이들도 올해 좋았던 일을 꼽으라고 하면 가장이 붙지는 않더라도 사직구장에 갔던 날이 세 손가락 안에는 들어갈 것이다.

그간 아이들과 나는 저 언급한 수도권 야구장들을 다니며 원정팀 응원팬으로의 서운함과 불리함 등을 계속 느꼈다. 긴 시간 사직에서 야구를 봐왔던 시절에는 절대 몰랐던 일들이었다. 그런데 몇십년만에 다시 사직에 와보니 역시 야구는 홈구장에서 봐야 하는 것이었다 를 깨달았다. 내 경우에 그랬고, 아이들은 사직이 처음이라 아마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 어쩌다 아빠 잘못 만난 덕에 같이 롯데를 응원하게 되었는데, 가는 곳마다 원정팀이라 소외되고, 뭔가 홀대받는 느낌인데다 경기를 지는 날이 대부분이어서 안타깝고 분하고 그랬는데, 비오는 날 사직에서 정말 멋지게 이겨서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거기에 정말 운이 좋게도 응원석 바로 근처 자리를 예매할 수 있었다. 고척이나 문학에서 그렇게 노력했어도 못 구했던 자리였는데.

올해 롯데는 객관적으로 잘 했다고 볼 수 없는 성적을 거뒀지만, 재미있는 경기를 많이 했다. 그리고 비교적 젊은 선수들로 세대교체 과정을 잘 밟아간 한 해였다. 내년에는 좀 더 착실히 성장해서 제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다음으로 올해 기억할 것은 언어 익히기이다. 일부러 공부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아서 부자연스러움을 무릅쓰고 익히기라는 입에 잘 붙지 않는 단어를 가져왔다. 아마 10년 가까이 되었을 것이다. 심심할 때 여러 언어의 단어나 표현들을 찾아보며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던 것이. 그러다 요 앞에 사기 당할 뻔한 일들을 소개한 글에 적었던 언어 익힘 앱들을 만났었다. 거기에 썼던 누군가 특정한 언어를 배우기 원한다고 등록하면, 해당 언어 네이티브들과 연결해주는 앱을 통해 다양한 나라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정말 즐거웠다. 나는 영어 하나만 희망 언어로 등록했었는데,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어 배우기를 원하는 많은 나라 이용자들이 한국인을 찾아서 말을 걸어왔고, 내게도 종종 연락이 왔었다. 게다가 유럽이나 동남아시아 쪽 많은 사람들은 영어를 네이티브 못지 않게 혹은 제법 잘 했으므로 내 영어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어차피 영어 외에 의사소통이 될만큼 아는 언어도 없었기에 어느 나라 사람과 대화하더라도 영어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이건 약간 편견이 섞인 말일 수 있는데 그 앱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 중에 딱 두 나라만 영어를 사용하기 싫어하는 느낌을 받았다. 중국과 일본이다. 이 두 나라 사람들은 굳이 번역기를 통해서라도 각자의 말로 소통하자고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앞서 내가 편견일 수 있다고 한 이유가 있다. 그ㅗ앱에서 당시에 주로 접한 중국인은 시도때도 없이 사기를 치려고 말을 걸어오는, 분명 누군가의 사진을 도용한 것으로 추정하는 젊고 어여쁜 프로필 사진을 앞세운 사람들이었기에 애초에 언어가 목적이 아니었다. 일본인은 엄청 소수만 만났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영어로 말을 걸어도 일본어로 답하거나, 굳이 번역기를 돌려 어색안 우리말로 답하곤 했다. 그외 나라 사람들과는 대부분 영어로 했다. 아주 가끔 러시아 사람, 동유럽 사람, 남미 사람 등 영어를 아주 잘 하지는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당연히 나보다는 훨씬 나아서 늘 배울 점이 있었다.

이 앱을 쓰면서 두 가지 아쉬움이 있었다. 첫번째는 이 앱이 채팅으로 대화하는 것과 음성 녹음 파일을 주고 받는 것 외에도 실시간 통화 기능을 제공했는데, 주로 멀리 있는 나라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느라 시차 때문에 통화를 많이 활용하지 못 했다. 또 내가 밖에 있으면 주위 소음 때문에 통화가 어려워서 혼자 집이나 사무실에 있을 때 활용해야 하는데, 그 시간을 서로 맞추기가 참 어려웠다. 두번째는 그들도 그렇고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아무리 모국어라고 해도 낯선 언어를 체계적으로 정확하게 잘 알려주는 일은 어렵다는 것이다. 그 앱을 통해 알게된 인도네시아 사람이 있는데, 그는 영어 강사다. 바하사 인도네시아를 가르치는 것은 아니지만, 영어라는 언어를 가르치는 사람임에도 그는 내게 인도네시아어를 효과적으로 알려주지 못했다. 나 역시 책도 찾아보고 검색도 많이 해봤지만, 우리말을 제대로 잘 알려주지 못했다. 해당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연결해준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한계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암튼 이 앱을 몇 년동안 꾸준히 썼는데, 어느 시점부터 중국계 아리따운 여성들이 마치 바이킹의 대이동이나 훈족의 대이동처럼 이 앱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도저히 쓸 수 없는 상화이 되어 결국 지워버렸다. 이후에도 이런저런 앱들을 많이 찾아다녔다. 무료앱도 있었고 유료앱도 있었다. 어떤 건 소액 결제를 해보기도 하고, 어떤 것은 무료 범위 안에서 쓰다가 지우기도 했다. 그러다 시간이 좀 흘러 올해 초에 만난 것이 듀오링고였다. 이 앱의 가장 큰 장점은 쉽고 간편하게, 마치 게임에서 간단한 퀘스트 해결하고 보상 받는 것 처럼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용자들 간의 경쟁을 유도해 조금이라도 진도를 더 나가도록 하기도 한다. 내 생각에 듀오링고의 단점은 체계적으로 설명하거나 순서를 밟아간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우리말 번역과 어순은 부자연스럽고 심지어 잘못된 내용도 있었다. 즉 알려주는 내용이 정확하게 맞는 표현인지 확신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말로 영어를 익히는 코스들에는 비문이 가득하고, 어순도 종종 잘못된 것을 맞다고 우긴다. 몇몇 단어들은 정말 어색하기 짝이 없게 옮겨놓았다. 영어를 기반으로 일본어를 익히는 코스에도 이상하거나 어색한 영어 표현들이 종종 나온다. 어이가 없는 오류들도 있다. 분명 철자가 맞는 정답인데도, 계속 오답이라고 나와서 더는 진도를 나갈 수 없는 오류가 몇 번이나 있어서 운영진에게 여러 차례 제보 했었는데, 바로바로 반영이 되지 않았고, 나중에 바로 잡고 난 후에도 피드백을 주지 않았다. 이건 진짜 좀 어이 없는데, 같은 단어라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발음이 달라지는 일본어 단어들이 있는데, 가끔 이 발음을 틀린다. 분명 앞에서 제대로 알려줬는데 나중에 뒤에 가서 엉뚱한 발음을 한다. 아, 그리고 이것도 진짜 짜증나는데, 얘네가 최근에 영어 코스에 새로운 기능(아마도 실시간 대화)를 넣어놓고 이걸 쓰려면 유료 결제를 하도록 유도하고 있는데, 이게 좀 비싸기도 하고, 이미 나는 유료 결제를 해서 사용하고 있는데도, 다시 추가 결제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좀 어이가 없고 화가 나기도 한다. 이게 짜증나는 것이 그냥 한번 물어보고 안 한다고 답한 사람한테는 이제 노출을 안 해야 정상인데, 매 챕터마다 두세번씩 징검다리처럼 밟아 나가야 하는 커리큘럼에 포함시켜 두었다. 징검다리 하나를 모두 마치고 다음을 클릭했는데 또 결제하라고 나오고 안 한다고 선택하면 그 챕터 마치기 전에 또 나온다.

이런 몇가지 단점들에도 올해 초에 시작한 듀오링고를 꾸준히 계속 쓰는 것은 아까 말한 장점. 마치 게임하듯 접근한다는 이 앱의 본질적인 태도 때문이다. 내용으로 따지면 훨씬 체계적으로 잘 알려주는 앱들도 있는데, 걔네는 며칠 연속 하다보면 지겨워서 손을 떼게 된다. 듀오링고의 장점은 부담없이 열어보게 만드는 그 태도에 있다. 또 하나 내 기준에서 좋은 점은 영어를 제외하고 다른 언어들은 우리말 기반이 아니라 영어 기반으로 익혀야 하는데 내 기준에선 둘 다 모국어가 아니라 둘 다 한꺼번에 배우는 느낌으로 접근하게 된다. 영어로 일본어를 배우지만, 그러려면 마치 영어가 내 모국어가 된 것처럼 생각을 전환해야 한다. 중국어도 마찬가지고, 인도네시아어도 그렇다. 아주 가끔 들여다보는 스페인어나 독일어도 마찬가지다. 이 지점이 나는 아주 재밌다.

아, 이렇게 길게 쓰려고 시작했던 것은 아닌데, 또 쓰다보니 엄청 길어졌다. 얼른 마무리하고 오늘치 듀오링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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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12-31 0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고가 무척 크게 났네요 여러 사람 이야기를 보니 마음 아프더군요 여럿이 같이 가고 좋은 일로 가기도 했는데...

새해에도 달리기 하시겠군요 조금 달리면 더 달리고 싶다니, 그건 좋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지금도 달린다고 하잖아요 야구 보러 가기, 그것도 좋을 듯하네요 2025년에도 따님들과 함께 가서 보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외국어 공부도 즐겁게 하세요

감은빛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게 지내세요


희선

감은빛 2025-01-01 16:39   좋아요 0 | URL
가끔 잊을만하면 이렇게 큰 사고가 나서 많은 소중한 사람들을 데려가네요. 우리 모두 언제 어떻게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 바로 현대사회가 아닌가 싶어요.

희선님 말씀 덕분에 올해도 건강하게 하고 싶은 일들 하면서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잉크냄새 2024-12-31 1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행기 터불런스는 한두번으로 지나가면 그러려니 하는데 시간이 길어지면 아, 이제 끝인가 하는 생각이 들긴 하더군요. 짧은 공포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런 생각에 잠식당했던 자신이 슬며시 웃겨지기도 하고요...

제가 기억하는 마지막 롯데 선수는 박정태군요. 아마 그때가 프로야구를 시청한 마지막 시기일 겁니다.

감은빛 2025-01-01 16:43   좋아요 0 | URL
저는 비행기를 그리 많이 타보지 않아서 그렇게 긴 시간 공포를 느낀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요. 아, 진짜 지금 다시 생각해도 너무 무섭네요.

저도 박정태 선수 참 좋아했어요. 제가 롯데라는 팀에 미쳐있던 시기가 딱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예요. 대학 입학한 후로는 야구 볼 시간 여유가 없었어요.

박정태 선수 특유의 그 배트 휘두르는 장면이 갑자기 보고 싶네요. 검색해보면 나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