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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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사람의인터내셔널 #김기태 #문학동네

 



2024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게 김기태 작가의 보편 교양이었다. 이전 작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센세이셔널한 느낌이었달까. 내면으로 파고드는 작품 즉 심각하다 못해 내가 어떤 이야기를 읽었나 고민에 빠지는 게 아닌, 보통 사람들의 풍경들이 보였다. 심각한 상황보다는 유머와 위트가 있는 작품을 원할 때 적재적소에 나타난 거 같았다. 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이웃들의 이야기가 고팠던 것 같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위안 혹은 공감이랄까. 머릿속에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가 하나씩 꺼내주는 느낌이었다. 한 권의 작품을 읽었을 뿐인데, 더 출간된 작품이 없나 찾아보게 만드는 작가였다.



 

최근 우리나라 젊은 작가들의 작품 장르가 다양해지는 추세다. 순문학에서도 추구하는 주제가 달라졌다. 퀴어나 SF 등 이전에는 볼 수 없는 다양한 주제의 작품이 나와 읽는 즐거움이 커 독자로서 만족한다.





 



전부터 소개팅 프로그램을 재미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나와 달리 주변 사람들은 이런 프로그램을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SOLO> 출연자들이 인터넷 뉴스에 오르내리기도 하던데, 아마도 이 프로그램에서 따온 듯한 롤링 선더 러브는 상당히 위트있는 작품이었다. ‘사랑이 좀 하고 싶다는 맹희가 짝짓기 예능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 신청하며 일어나는 내용이다. 맹희가 자기를 가리켜 나 조맹희. ~.’로 시작하는 말은 왜 이리 웃기냐 말이다. 서로에게 다가가기 위해 애썼던 과거의 어떤 날들이 떠올랐다.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즐거움의 한순간을 롤링 선더 러브에서 즐겨보시라.

 



음악성과 대중성을 접목한 아이돌 가수의 등장은 많은 이들을 열광시킨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듣고, 그가 만든 음악에 관련된 프로그램을 보고, 굿즈 뿐만 아니라 팬덤을 형성해 그들과 끈끈한 우정을 나눈다. 김기태의 소설에서는 아이돌 음악에 관련된 내용이 두 편 실려 있어 음악에 관심이 많은 작가인 거로 보였다. 로나, 우리의 별세상 모든 바다가 그렇다. 잠실에 모인 세모바의 팬 중의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는 하쿠와 그날 만났던 영록과 나누었던 대화가 그를 해진으로 이끌었다. 노래 가사를 흥얼거리는 순간과 바닷물의 차가움이 공존한 세상과 닮아있는 것 같다. 코로나를 거치며 TV 채널에서는 수많은 경연이 넘친다. 특히 한 장르의 음악 경연이 여기저기서 나오는데, 오래전에 발라드 가수였던 이들이 트로트로 전향해 애쓰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내 마음과는 달리 그들은 그저 최선을 다하는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한 권의 소설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무겁고 높은에서는 제2의 장미란 같은 역도를 꿈꾸는 소녀가 나온다. ‘오늘도 미래를 듭니다라고 외치는 송희다. 왜 하필 무거운 걸 들겠다고 하는지, 100킬로그램을 드는 자신을 상상하는 송희에게 좋은 소식을 기대해보지만, 세상은 냉정하다. 그 무거운 바벨을 번쩍 드는 순간을 수없이 상상했을 송희에게 또 다른 내일의 희망을 기대해본다.



 

, 팍스 아토미카의 주인공이 나라면 정말 힘들 거 같다. 현관문 앞에 선 남자, 자기가 직접 문을 닫았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수없이 되뇌는 남자의 모습을 보라. 미칠 것 같은 느낌이 온전히 전해졌다.

 



표제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이 소설에서도 음악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음악은 많은 이들을 아우르는 분야인 것도 같다. 서울과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진주와 니콜라이의 삶을 들여다본다. 특별한 삶이 아닌 보통의 삶을 사는 우리 주변 인물을 볼 수 없다. 가난이라는 이름을 밝히기보다는 그저 삶을 이야기한다. 따뜻한 밥 한 끼를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 지난한 삶을 사는 인물들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라는 독일인의 시에서 유래한 기립하시오 당신도!’라는 밈이 압권이었다. 궁색한 사정을 안고 오늘을 사는 이들의 모습이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조금 슬펐다.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는 이들의 희망은 당장은 요원해 보이지만, 언젠가는 찾아오지 않을까.

 



김기태 작가의 이름을 알게 한 게 이 작품이었으니. 도대체 어떤 작품이기에 이렇듯 이름이 자꾸 오르내릴까. 그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던 중요한 소설집이다. 아홉 편의 작품들을 읽고 났더니 그의 장편은 어떤 느낌일까.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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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 식당
하라다 히카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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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식당 #하라다히카 #문학동네

 

책에 관련된 소설을 꽤 읽는 편이다. 소설뿐 아니라 에세이도 찾아 읽는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책방 혹은 헌책방, 고서점에 관한 책을 싫어하기란 드물다. 하라다 히카의 도서관의 야식을 읽고 낮술 세트에 이어 헌책 식당까지 구매하게 되었다. 책과 음식, 책과 술, 책과 커피. 이렇게 잘 어울리는 조합도 없는 거 같다.

 



헌책 식당은 하라다 히카의 최신작으로 책과 음식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 속 음식을 만들어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만들어보았거나 어디선가 먹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책과 음식은 꽤 잘 어울린다. 작품 속 음식은 주인공의 음식 취향과 함께 장소는 명소에 가까워진다. 책 좀 읽어본 사람은 책 속의 장소를 가보았을 것이다. 책 속의 장소 진보초도 언젠가 방문해보고 싶은 여행지인 것처럼. 헌책 식당의 배경인 진보초 거리엔 헌책 혹은 신간을 파는 서점에서 음식을 함께 파는 곳이 있다. 책방에 있다가 배가 고프면 근처 책방에서 음식을 먹고 책방을 지키는 사람이 먹을 음식을 포장해온다. 포장해 온 음식을 나눠 먹는 모습을 그려본다. 책을 살펴보는 사람, 식사를 하는 사람, 그 옆에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 등 책방 풍경이 다채롭다.

 






각 장은 일본 작가의 작품과 음식 한 가지가 나온다. 물론 책은 책방 주인이 권하는 책이다. 죽은 오빠가 남긴 책방을 살펴보기 위해 홋카이도에서 도쿄로 온 산고는 책방 문을 열었을 뿐 책에 대해서는 오빠만큼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책을 찾는 사람과 어울리는 책을 권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읽었던 책과 책을 찾는 사람의 사연을 듣고 그에 맞는 책을 찾는 건 비교적 쉬웠다. 책을 판매한 만큼 집에 있던 책으로 채워 넣고 있지만 이 일을 계속할지 자신은 없다. 반면 대학원생인 미키키는 작은할아버지의 다카시마 헌책방을 자주 찾아왔었다. 장래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자신 없을뿐더러 연구에도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책방에 자주 찾아와 산고에게 도움을 준다.



 

아이의 도시락을 만들어주기 위해 찾아온 여성, 경제적으로 자립해 부자가 되고 싶은 츠지도 출판사의 편집자 겐분, 직장에서 해고되고 고3인 아들과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중년의 남자, 소설가 지망생, 대학원생으로서 연구를 계속할지, 다른 것을 할지 고민하는 미키키가 다카시마 헌책방을 찾아오는 중요한 인물이다. 이들에게 책을 권하는 산고와 음식 한 가지가 각 장에 소개되는데 음식이야말로 사람과 가까워지는 매개체라는 걸 다시 실감한다.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맞게 책을 권하는 일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다만, 지금 나에게는 이들이 부러울 정도로 빛나 보인다. 호감이나 애정이나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을, 그런 식으로, 자신이 느낀 감정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건 인생의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 둘은 모를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180페이지)



 

하라다 히카의 소설은 책과 음식으로 인해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관계에 대하여 말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책 속의 음식을 먹는 일은 감동이다. 특히 작가가 즐겼다는 음식이 있을 경우 꼭 경험해보고 싶지 않겠나. 그 음식에서 나타나는 작가에 대한 애정과 음식을 먹으며 작품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장면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아울러 산고가 홋카이도에 남겨둔 감정에 대하여 말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감정을 꾹꾹 눌러가며 쓴 편지에서 애틋함이 보였다.

 



인생에 필요한 소설이나 책은 우리가 찾는 게 아니라 그쪽에서 찾아오는 걸지도 몰라요. (274페이지)



 

책이 우리를 찾아온다는 말이 참 좋다. 우리가 선택한 게 아닌 책이 우리를 선택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인생작이라고 하는 것도 책이 우리를 선택했기 때문에 그 책을 읽게 된 거다. 삶과 책, 책과 삶. 우리를 거치는 모든 것들이 책과 나의 인연이라는 말처럼 기분 좋은 것도 없다.

 

 

#헌책식당 #하라다히카 #문학동네 ##책추천 #문학 #소설 #소설추천 #일본문학 #일본소설 #헌책 #헌책방 #진보초 #다카시마헌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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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편지
아밀 지음 / 버터북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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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편지 #김지현 #버터북스

 

번역가이자 소설가인 김지현은 필명 아밀로 소설을 쓴다. 생강빵과 진저브레드에서 작가는 소설 속 음식에 대하여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읽는 책의 주제가 자주 겹친다. 읽어야 할 책을 선택하고 보면 비슷한 주제다. 책이 나에게 선택권을 주는가 보다. 이번에 함께 읽었던 책도 작품 속의 음식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작가는 한 권의 책과 문장들, 주제를 정하여 당신즉 독자에게 편지를 쓴다. , 음악, 소설, 미술 작품에서 사랑을 찾는다. 사랑이 스며드는 순간, 사랑의 감정들을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이다.


 

우리는 죽음 앞에서 비로소 진실을 말할 수 있게 된다. 죽음이 우리 앞에 온 순간에 보이는 것들이 있다. 캐서린 앤 포터의 창백한 말, 창백한 기수의 내용을 보자. 스페인 독감이 유행이던 시절 한 연인과의 관계를 통해 죽음과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묻는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는 게 어렵다. 입 밖으로 내지 못하다가 마지막 순간에야 진심을 전할 수 있는 것일까. 무의미했던 순간이 의미의 순간으로 바뀌는 시점은 이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섰을 때만 가능한가 보다.





 

이슬아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 이슬아 작가와 남궁인의 서간문 연재 내용이 반가웠다. 두 사람의 서간문이 남성적 화법과 여성적 화법으로 정의하는 여론이 생길 정도였다고 하는데, 저자는 성차별적인 고정관념에 대하여 말한다. 남성과 여성을 대변하여 글을 썼던 게 아니었지만 타인이 보기에는 마치 편 가르기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나 보다. 첨예한 대립 속 주장들은 어쩌면 성차별을 해소하는 중요한 요소인 거 같기도 하다.

 


더보이즈의 Bloom Bloom노래를 예로 들었다. 아이돌 음악은 BTS 빼고는 잘 모른다. 그것도 자매 중의 하나가 BTS팬이라 자주 듣게 되었다. 책 속의 더보이즈 노래가 한 편의 시처럼 느껴졌다. 글로 보는 가사는 시다. 밥 딜런이 가수임에도 노벨문학상을 받지 않았나. 저자가 말한 노래의 가사가 머릿속에 쏙쏙 들어온다. 작가의 설명도 마음에 든다. “노래하는 화자가 소년인데, 상대방을 꽃으로 비유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꽃으로 비유한다는 점이에요.”라고 말했다. 김춘수 시인의 시처럼 하나의 의미로 다가온다. 내처 두 번을 들었더니 계속 귓가에 머문다.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를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것 같다. 작가는 이 동화를 설명하며 오스카 와일드의 삶의 한 단면을 이야기한다. 아이들을 무척 사랑한 작가였다. 스캔들 때문에 감옥에 간 후 자기 아이들을 보지도 못하며 아이들의 인권에 관한 기사를 써 교도소법이 개정되는데 기여했다고 한다. 오스카 와일드의 삶과 생각이 들어있는, 자기의 모든 것을 내어주었던 행복한 왕자를 다시 읽어보고 싶다.

 


책 속의 음식에 이어 사랑에 관한 글은 우리의 마음을 미소 짓게 만든다. 사랑이야말로 모든 것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내가 그에게 눈길을 준 것도, 한 사람을 마음에 담기 시작한 것도 사랑 때문이었다. 그 사랑을 오래도록 지키려고 했던 노력은 꾸준함의 결과다. 내가 너를, 네가 나를 사랑하는 모든 분야의 사랑을 망라하여 우리에게 따스한 인사를 보낸다. 사랑의 인사를.


 

최근 베스트셀러 작가가 독자에게 보내는 에세이를 유료로 구독했다.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읽고 공유하며 같은 글을 읽는 사람들과 공감했다. 특별한 감정을 가졌다. 내밀한 감정들을 말하는 글을 읽고 다음 글이 전해질 시간을 기다렸다. 기다림이 즐거웠다. 독자에게 전하는 저자의 편지도 그러했을 것이다. 어떤 이야기를 할지, 기다림의 시간을 즐겼을 것이다. 한 편의 글을 메일로 받아보면서 또 다른 기다림이 생겼다. 제인 오스틴에 관련된 에세이다.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도 꺼내어 읽었던 책은 그를 사로잡았을 것이다. 어떠한 순간에도 책을 꺼내어 읽는 걸 바라보며 우리에게 위로가 되어 주는 책에 수줍은 감사를 보낸다.

 

 

#사랑편지 #버터북스 #아밀 ##책추천 #문학 #에세이 #에세이추천 #한국에세이 #한국문학 #김지현 #메일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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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더 귀하다 - 아픔의 최전선에서 어느 소방관이 마주한 것들
백경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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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더귀하다 #백경 #다산북스

 

인간적인 삶을 들여다보지 않을까 해서 읽게 된 책이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시선으로 바라본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건조한 문체에 가까운 글은 죽음 앞에선 사람들을 바라보는 소방관의 고뇌와 아픔을 말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소방관은 불을 끄는 의인이다. 위급한 상황에서 불을 끄기 위해 앞장서고, 사람을 살리다가 순직한 직업이 소방관이다.

 

일선에서 구급대원으로 일하는 저자는 수많은 출동에서 가난과 죽음의 그림자를 맞닥뜨렸다. 구급대원이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워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나의 직업이려니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얼마 전에 호수를 산책하려고 나섰다가 함께한 지인 중에 한 분이 언 땅에 미끄러져 발이 접질린 적이 있었다. 119 구급대가 출동하여 그분을 모시고 간 후 마음이 좋지 않았었는데 실제로 그 상황에 있는 대원들은 느낌이 다를 것 같다. 사고가 접수된 후 신속하게 출동하거나 병원으로 달려가며 심폐소생술을 하는 그 모든 과정이 사람을 살리기 위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앞서 글이 건조하다고 말했다.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을 마주한다는 건 저절로 냉정해지는지도 모른다. 구급대원을 부르는 사람이 가난한 이들이 대부분이란 게 안타까웠다. 폭력이 두려운 사람들, 술 취한 사람들의 가족조차 무심하다는 건 그런 일들이 수없이 일어났다는 거다. 매일 여러 건을 마주하다 보면 감정이란 게 남아있을지 의문이다.

 

소방관들의 자살률이 순직률보다 높다는 기사가 이를 대변해준다. 저자의 글에서 반가웠던 에피소드는 그가 달리기를 한다는 거였다. 상처와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인 거 같았다. 달리고 나면 고통에서 조금은 잊을 수 있겠다 싶었다. 트라우마를 이기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 또한 좋은 방법이지 않겠나. 글을 쓰므로써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조금쯤은 벗어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구급차는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출동한다. 간발의 차로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간다. 그 안에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소방관과 구급대원의 노고가 크다는 것을 이 책으로 인해 더 상세히 알았다. 물론 트라우마로 고통받는다는 것도. 우리 주변의 고통과 안위에 대하여 너무 무심하지 않았나 반성했다. 고통받고 외면당한 사람들, 가난의 냄새가 짙게 풍기는 사람들이 안타까웠다.

 

마주하는 모든 죽음에 눈을 빼앗기면 마음이 남아나질 못한다. 그래서 출동부터 귀소까지 머릿속에 주문처럼 뇐다.

내 가족 아니고 내 친구 아니다. 그게 룰이다. (71~72페이지)

 

마음이 남아나지 못한다는 글이 못내 안타깝다. 안타깝다 못해 슬프다. 죽음을 대면하다 보면 무너지는가 보다. 그게 당연한데 너무 몰랐다.

 

저자가 만난 사람들이 우리들의 미래가 아니라고 하지 못하겠다. 늙어 병들고 자식들이 떠난 집에서 홀로 삶과 죽음의 사투를 벌이는 일이 많을 것이다. 도움을 요청했을 때 달려와주는 구급대원이 고마울 것이며, 어떤 이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일지도 모르겠다. 너무 당연해서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 버리는. 그런 사태는 만들지 말아야겠다.

 

죽음을 조롱해서는 안 된다.’는 저자의 말이 목에 가시처럼 붙어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그들의 노고에 항상 감사해야 할 거 같다. 많은 부분 공감했고, 너무 슬펐다. 저자가 외치는 소리를 외면하지 말자.

 

 

#당신이더귀하다 #백경 #다산북스 ##책추천 #문학 #한국문학 #한국에세이 #소방관 #소방관일기 #구급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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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들짝 지구 불시착
김서령 지음 / 폴앤니나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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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들짝지구불시착 #김서령 #폴앤니나



 

SNS에서 아이 우주를 팔로우하고 있다.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보아와서 마치 내 조카처럼 여겨진다. 그 아이가 벌써 여섯 살이다. 아이의 미소 때문에 즐겁고, 아이의 말 한마디에 미소를 짓는다. 물론 아이 엄마는 내 존재도 모를 것이다. 혼자서 짝사랑하듯 아이를 지켜보고 있다. 우주라는 이름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 같다. BTS와 콜드플레이가 함께 불렀던 곡도 ‘My Universe’였지 않았나.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각설하고, 나는 또 새로운 우주에게 반했다. 김서령 작가의 아이 우주. 비혼주의자였던 작가에게 화들짝 찾아온 존재. 나는 그 아이를 작가의 전작 에세이 뭘 사랑까지 하고 그래에서 앞서 만났었다. 선물처럼 찾아온 우주의 탄생과 성장일기가 이처럼 한 권으로 책으로 나오길 기다렸다.

 



아이의 순수함과 영민함과 엉뚱함이 몇 마디의 말로 드러나는 걸 바라보며 이제는 성인이 되어버린 내 아이들이 생각났다. 얼마나 귀엽고 얼마나 예뻤느냐 말이다. 천재가 나타난 것 같다고 자랑질했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작가의 이런 면이 부러웠다. 아이의 일상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 또한 사라지고 없는 부모님과의 추억 또한 기록으로 남겨둘 수 있다는 거다.

 





대여섯 살이 되기 전 아이에게 엄마 뱃속에서의 일을 물어보면 대답한다는 걸 우연히 보았다. 아이에게 질문을 하면 그럴듯한 답변을 내놓는 모양인데, 작가 또한 우주에게 물었었다고 한다. 엄마 배꼽으로 노란 불빛이 들어와 무섭거나 깜깜하지 않았고, 다만 심심해서 엄마를 간지럽혔다고 했다. 그리고 여섯 살이 된 우주는 엄마 놀라게 해주려고 한 말이었다고 했다. 얼마나 영특하냐 말이다. 오래전 블로그에 아이의 성장기록을 써왔던 게 생각나서 몇 편을 읽어보았더니 새로웠다. 우는 것마저 귀여웠었는데 시간이 어쩜 이렇게 훌쩍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사소한 것들에 위로받는 것에 이야기한다. 몇 가지의 예를 들었는데 그중의 하나, 아이에게 받았던 위로를 보자. 피곤하면 잇몸에 피가 난 작가는 아이가 속상해하자 약국에서 치약을 샀다. 약국에 비타민제를 사려고 들렀을 때 여섯 살의 아이는 제 목에 맨 지갑에서 돈을 꺼내 잇몸에서 피 안 나는 약 달라고 하는 그 말에 나 또한 울컥해졌다.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엄마를 사랑할 때가 아닌가. 작은 행동 하나에 감동한다.

 



가벼운 위로가 넘치는 세상이라 비웃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안다. 위로 타령 지겹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 내가 왜 몰라. 하지만 나를 향했던 다정한 시선들을 소환하며 괜찮아, 괜찮아, 그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잖아. 나를 달래는 것도 위로인걸. 이렇게 글로 쓰며 그 시간을 기록하는 것이 내가 돌려줄 수 있는 작고 낮은 감사 인사라는 것을 그들이 몰라도 괜찮다. 밤은 길고, 우리가 서로를 안아줄 수 있는 시간은 아직 넉넉하니까. (171페이지)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나의 기억을 돌아보는 일. 아이의 행동 하나를 보고 과거에 내가 했던 행동임을 보고 깜짝 놀란다. 아이에게 없는 모습은 아이 아빠의 습관과 닮았다는 거. 아이들의 성장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 나간다. 비록 모든 것이 서툴러도 다른 한편으로 우리보다 훨씬 나은 존재가 되지 않느냐 말이다. 나이가 든 게 사실인가 보다. 한 번도 마주 앉아 말해보지 않은 아이가 이렇게 예쁜 걸 보면. 왜 이렇게 똑똑하느냐며 아이의 행동 하나에 감동한다.



 

책 속엔 작가가 그린 그림이 수록되어 있다. 만화처럼 귀여운 모습이 가득하다. 아마도 어릴 적 만화가가 되고 싶었던 작가의 바람이 들어 있는 것 같다.



 

성장기록은 개인의 역사다. 개인의 역사가 모여 시대를 아우르는 문화가 되지 않겠나. 어떤 말을 하고 어떤 것을 좋아했는지에 따라 유행의 척도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 책은 육아 에세이가 아닌 성장소설이라 일컫는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하루하루 반짝이는 날들을 지켜보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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