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양이 4 - 소자 두식이라 하옵니다!
네코마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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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콩알이와 팥알이의 집에 새로운 시바견이 들어왔다. 두식이라는 이름으로, 아는 할머니가 돌아가신후 다른 집으로 가기전에 콩알이와 팥알이의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시바견 두식이는 고양이와 함께 자라서 자신이 개가 아니라 고양이인줄 아는 개였다. 집에 고양이가 두 마리나 있어 키울 여력이 되지 않지만, 어쨌든 아는 분의 개라서 받아주기로 했다. 며칠이 지난 뒤 새로운 주인을 만나 갔으나, 그쪽 집에 있던 개들과 어울리지 못해 다시 돌아왔다.

 

이런 것을 보면 사람이나 반려 동물이나 비슷하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면 힘이 빠지고 한쪽 구석에 쭈그러져 있기 마련. 두식이도 새로운 집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그렇게 있다가 다시 콩알이와 팥알이의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엄마는 임시로 있는 거라 받아주지만 온 집안에 동물로 가득찬 것이 싫었을 수도 있었으리라. 다른 고양이들에게 무관심했던 아버지가 두식과 함께 산책을 나가는 것이었다. 산책을 하며 즐거워보이는 두식이. 아버지가 두식이를 불렀을 때, 개 줄을 가지고 달려온 것은 습관의 힘이었다. 즐거웠던 산책의 시간을 기대하는 마음. 그런 개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이 들어있었다.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나는 사실 이런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 아마 나도 콩알과 팥알네 엄마처럼 집에서 키우는 걸 고양이를 싫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자식처럼, 진짜 가족처럼 지내고는 하더라. 특히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더할 수 없는 좋은 벗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안다. 팥알과 콩알네는 고양이 뿐만 아니라 개 두식과 비둘기, 친구에게서 분양받은 거북이 10마리까지 키우게 되었다. 질색을 하는 엄마의 모습이 낯설지 않아 슬며시 미소가 비어져나왔다.

 

 

고양이를 유달리 좋아하는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가발을 갖고 노는 고양이들. 자신이 고양이 인줄 아는 개 두식은 싸우지도 않고 사이좋게 지낸다. 특이할 부분은 두식이의 마음을 표현할 때는 '소자, 두식이라 하옵니다.'처럼 옛말을 쓰는 것이다. 원본에서는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번역하는 사람의 위트가 살아있어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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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독서의 계절이 왔다.

봄에는 꽃구경하느라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고

여름에는 물가로 놀러다니느라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고

가을엔 색색으로 물들인 단풍 구경 다니느라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

눈내리는 추운 겨울엔 아무래도 집안에 거주하게 된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일이 TV 보는 것과 책 읽는 것인데,

책을 좋아하는 알라디너들은 책을 읽는다.

따뜻한 거실에서 혹은 따뜻한 이불 속에서.

 

올해부터 안방 침대 앞에 전기 매트 작은 것을 깔았다.

거실에서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 프로그램을 즐기는 신랑을 피해서다.

따뜻하게 전기 매트를 켜놓고, 푹신한 쿠션 몇개들 등뒤에, 무릎위에 둘러놓고

책을 읽는다.

조용한 나만의 시간.

저절로 책을 읽는 속도가 빨라진다.

텔레비전 소음을 차단한 안방에서 집중력이 발휘되는 시점이다.

소설이 너무 재미있어,

책 읽는 시간이 너무 좋아,

어떨 때는 아침에 출근하기 싫어질 때도 있다.

하루종일 책만 읽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럴 때 읽고 싶은 신간들이 있어 반갑다.

 

 

 

 

 

 

 

 

정은궐의 신작이 오랜만에 나왔다. 

이번에는 어떤 내용을 다루었을까.

여화공 홍천기와 하늘에서 떨어진 맹인 남자 하람의 이야기란다.

스놉시스에서부터 이야기의 설렘이 느껴진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과  <못다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라는 소설과 시집.

이도우의 소설이야 스테디 셀러가 되어 나도 세 권의 책을 읽었고,

두 권의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는 겨울에만 만날 수 있는 윈터 에디션이란다.

표지가 예뻐 눈길이 가는 작품이다.

<못다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는 황인숙 시인의 시집이다.

시인의 시를 겨울이 가기 전에 읽어보고싶다. 제목마저도 겨울 냄새를 짙게 풍기니까.

 

 

 

 

 

 

 

 

 

유달리 우리나라에서 사랑받는 작가 기욤 뮈소의 신간 <브루클린의 소녀>다

그의 <거기, 있어줄래요?>라는 작품이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져 우리나라에서 개봉 예정이다. 그의 신작 소식에 또 눈길이 간다.

 

표지를 달리해 비채 모던클래식으로 새로 태어난 다이안 세터필드의 <열세 번째 이야기>다 이야기가 가진 모든 의미와 재미를 느낄수 있는 작품이라, 읽었으면서도 소개하고 싶다.

 

리안 모리아티의 <정말 지독한 오후>도 기대중이다.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몇 권의 책을 다 읽은 사람으로서 그의 신작도 읽어주어야 할 것만 같은 의무감이 생긴다.

 

윌리엄 트레버의 <여름의 끝>도 기대되고,

장강명의 소설도 기대된다. 구입할까 말까 망설이는 중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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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씨 2016-11-30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의 끝 한참 전에 구매했어요.
근데 안(못) 읽었다는... ㅠㅠ
진짜 추워져서 그런가 책이 더 쏟아지는 느낌이 들어요.

Breeze 2016-11-30 11:26   좋아요 0 | URL
책탑이 자꾸 올라가고 있어요. 어쪄~~~
 
실화를 바탕으로
델핀 드 비강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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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좋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이야기가 좋았다. 할머니에게 들려달라고 했던 옛날 이야기에서부터 수많은 이야기가 들어있는 책을 읽는 일까지. 이야기가 좋아 지금까지 나는 이야기 책을 읽는다. 내가 들었던 이야기들, 읽었던 이야기 책들에서 아이들을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것처럼 이야기는 오랜 시절에서부터 전해져 내려온다.

 

우리는 유달리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나 영화를 즐긴다. 그냥 지나칠 내용도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면 다시 한번 눈여겨보고 실화가 가진 파장을 기대한다. 얼마전에 보았던 영화 「설리 : 허드슨 강의 기적」 에서도 그렇다. 시간이 빠듯하다는 핑계로 그냥 지나칠 영화였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고 해서 봤었고, 세월호 사건이 생각나 눈물을 흘렸던 영화이기도 하다. 이처럼 사람은 소설을 읽을 때에도 자전적 소설이라고 쓰여있으면 한번 더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있음직한 이야기를 하는게 소설이지만,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다양한 방법으로 만나기도 한다.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 라는 소설과 원작 영화에서도 큰 파장을 일으켰었던것처럼. 이처럼 있음직한 이야기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내용들은 수많은 이야기들을 양산한다.

 

작가는 『길 위의 소녀』라는 소설에서도 노숙자에 대한 의미있는 이야기를 하더니 이제 『실화를 바탕으로』라는 소설에서는 이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났던 이야기인지 허구의 인물을 만들어냈는지 가늠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작가에게 글이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본다.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끌어내 글로 표현하는 일이 작가의 글쓰기가 아닐까. 만약 어떠한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을때, 그때 느꼈던 감정들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표출하지 않으면 때로는 정신적인 충격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거나 트라우마 때문에 심리적으로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게 아니면 글이라는 매개로 어떻게든 풀어내야만 한다. 마음속의 울분을, 마음속의 상처들을 헤집어 드러내야 한다. 상처는 드러내야 치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문학이 수행해야 하는 소명이므로 행복한 일이었다. 문학이 인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 문학이 분노와 경멸과 질투를 불러일으켰다는 사실. 그렇다, 그것은 좋은 소식이 아닌가. 뭔가가 일어났다. 우리는 문제의 한복판에 있었다. 그리고 그 편지들이 나를 '본질'로 다시 데려가야 했다. (226페이지)

 

작가의 이야기인듯 허구의 이야기인듯 진행되는 소설에서 작가는 글쓰기라는 작업에 대해서, 글쓰기라는 고통에 대해서 근접해 설명한다. 작가에게 글쓰기는 더 넓고 깊은 참호를 얻기 위해 부지런히 땅을 파는 일이라고 말이다. 또한 글쓰기는 작가를 외톨이로 만드는 일이라고. 외톨이라야만 글을 쓸 수 있기에 자기 고독 속에 빠져 있어야 글을 쓸수 있다는 것을 피력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였다. 작가에게 문제의 인물인 L은 극단적인 고독을 강조했고, 그 어느 누구도 작가의 곁에 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작가의 친구들에게도 글을 쓰는 그녀를 방해하지 말아달라는 메일을 남겼던 것. 오로지 L만이 그녀 곁에 머물렀고, 자신의 글을 쓰라고 종용했다.

 

 

작가에게 L은 둘도 없는 친구였다. 연인과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친구. 작가 델핀에게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얼굴을 비춰주지 않았다. 쌍둥이 아이들이 자신의 공부를 위해 떠났을 때도, 연인 프랑수아가 일 때문에 외국으로 출장을 갔을 때에도 그녀 곁에 머물렀다. 표면적으로 작가의 곁에 아무도 없을 때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자 친구였다. 그런 L을 어떻게 의심할 수 있었겠는가.

 

작가와 이름과 같은 소설가 델핀에게 L의 존재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은 사람으로 그녀의 곁에서 그녀에게 글쓰기를 강조한 인물이다. 그녀에게 글쓰기를 강조했지만, 정작 델핀에게 3년 동안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하게 만들었던 인물이다. 주인공 델핀에게나 독자에게나 L의 존재는 궁금할 수 밖에 없다. L이 과연 실제 인물인가. 작가의 마음속 인물인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제아무리 진짜 있었던(그것과 비슷한) 일이라 해도, 제아무리 사실로 인증된다 해도, 우리 소설가들이 쓰는 건 언제나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우린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리고 사실상 중요한 건 오히려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그리고 현실을 가공하는 그 모든 자잘한 사항들일 거예요. (371페이지)

 

흔히 친구들은 닮는다고 한다. 비슷한 취향을 가진 누군가가 예쁜 스카프라도 하게 되면 친구들이 한꺼번에 구입하기도 한다. 나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의 친구가 나와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헤어 스타일을 한다면 이미지가 비슷해질 수 밖에 없다. 만약 누군가가 작가의 곁에서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하게 조치하며 그녀의 모든 것을 통제한다면 어떻게 될까. 더군다나 그녀가 일부러 작가와 닮아간다면? 한 줄의 글도 심지어 이메일도 보내지 못하는 작가에게 누군가가 대신 친구들과 가족들 혹은 출판업자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등 작가의 모든 일을 맡아한다면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져 버린다. 점점 글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그 어떤 생활마저 할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데, 작가가 존재하는 이유마저 사라지게 만드는데 어떤 작가가 두렵지 않을까.

 

작가로서 글쓰기에 대한 생각들과 소설이 가진 힘, 문학이 가진 힘을 이야기하는 소설이었다. 픽션과 사실의 경계에 서 있는 문학. 진실을 향해 나아가지만 결국은 작가의 이야기라는 점,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이야기의 산물이라는 점이었다. 작품은 작가의 내면의 거울이다. 작가는 내면에 깃들어 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작품으로 나타낸다. 독자들은 작가의 내면의 거울과 마주하는 일에 이 즐겁게 동참한다. 이 책에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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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 꿈길
진양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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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가을이 무르익고 있다. 산이나 거리엔 나뭇잎들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다.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곳에서는 단풍 구경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그럴 줄 뻔히 알면서도 단풍이 예쁘게 물든 곳이 궁금한 건 왜인지 모르겠다. 발갛게 물든 단풍잎 길을 걸으면서 계절의 상념에 빠진다. 내가 걷고 있는 길, 누군가와 함께 걷는 길. 좋은 사람과 함께 걷는 길은 행복의 길임에 틀림이 없다. 그 어떤 고난이 닥쳐도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길이 꽃길처럼 여겨질지도 모르는 일. 고로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나는 시대물보다는 현대물을 더 좋아해, 라고 해보지만, 글 쓰는 이에 따라 그 소설이 좋은 소설이 될 수도 있고, 전혀 아닌 소설이 될 수도 있다. 다만 개인적 취향으로 시대물보다는 현대물 쪽이 더 맞다고 생각했는데, 이처럼 시대물이면서 판타지물인 소설이 재미있을 경우, 자꾸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된다. 현실의 인물이 아님에도 믿고 싶어하는 우리 마음속의 판타지를 건드리는 소설로 인해 책을 읽는 시간들이 즐거워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진양의 소설은 시대물이면서 판타지다. 우리의 상상속의 산물인 돗가비(도깨비)가 나오는 소설이다. 얼마전 배우 김수현과 전지현의 출연작인 「별에서 온 그대」처럼.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외모를 가지거나, 불로장생하며 신통묘술하기까지 한 인물이 나온다면 인간들은 혹할 수밖에 없다. 부러워하면서도 가지지 못했기에 두려워하는 식이다.

 

대부분 우리가 알고 있는 돗가비는 장난꾸러기처럼 여겨진다. 사람들 사이에 있으되,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인물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는 나 뿐만 아닌 듯, 작가는 돗가비 정지후를 장난을 위해서라면 뭐든 가리지 않는 인물로 묘사했다. 물론 인간들의 세상에서 오래 살다보니 인간들과 친해지고,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고, 인간에게 마음 주는 일도 생기기 마련. 그가 신묘한 꽃물을 이용해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게 했으니 그의 마음 또한 어지럽혀지는 건 어쩔 수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 꽃물이란게 눈에 바르면 눈을 떴을때 처음 마주한 사람을 보면 가슴이 뛰고 온 몸이 뜨거워지게 하는 신비의 물이었다. 그 첫번째 장난이 청하관의 주인 백녀이고, 두번째가 목석공자 주명현이었다. 청하관의 주인 백녀는 사람으로 변한 정지후의 방맹이를 눈을 뜬후 처음으로 보았고, 주명현의 눈 앞에는 은복이 있었던 것이다. 주명현이 누구던가. 가문의 복수를 위해 태자를 죽여야하는 운명이었고, 은복은 태자 연의 호위무사로서 태자를 지켜야 했다. 돗가비 정지후의 짓궂은 장난이 초래할 일이 생겼으니, 상대를 잘못 택했던 것이다.

 

사람을 홀리는 꽃물이라고 해도, 과연 꽃물 때문에 처음 눈앞에 보이는 사람을 연모하게 될까? 그게 맞다고 해도 부정하고 싶지 않을지로 모른다. 아무리 복수때문에 눈이 멀었다고 해도 자기가 연모하는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비록 꽃물 때문이라고 해도. 복수를 위해 14년을 기다려 온 남자와 14년전 아버지의 죽음후 황궁에 의탁해왔던 은복의 사랑이 위태위태했다.

 

근데 말이지, 온 고려에 목석 공자라고 소문난 주명현도 은복을 위해서는 저절로 마음이 풀어지더라. 은복이 물에 빠졌을 때도 구하려 차가운 물속에 뛰어들고, 불이 난 배에도 뛰어드는 게 주명현이었다. 사랑앞에서는 그 아무것도 필요치 않았다.

 

오랜만의 쓴 소설이라고 했다. 작가의 전유물은 현대물도 아니고 시대물이며 판타지물인데, 읽힘에 전혀 문제가 없다. 더군다나 재미있기까지 하다. 물흐르듯 유려하게 흘러간다. 사랑에 빠져 복수 따위 잊어버리지도 않을 뿐더러, 사랑하는 사람때문에 호위무사로의 직분을 버리지도 않는다.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의 일을 할 뿐이었다.

 

이제 주명현과 은복의 사랑이야기를 읽었으니, 돗가비 정지후가 궁금하잖나. 조선시대에서의 정지후가 마음 둘 이 하나 없을까. 장난을 치며 꽃물을 누군가의 눈에 바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 꽃물을 바른 이가 맨처음 눈을 떴을때 정지후를 만나면 어떨까.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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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이야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다이안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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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에, 유령이 사는 저택이 있었지!

옛날 옛날에, 책으로 둘러싸인 방이 있었어!

옛날 옛날에, 쌍둥이가 있었어......

 

이 세상에 책이 없으면 어떻게 살까. 나에게 책이 감히 어떤 의미냐고 묻는다면, 나는 없어서는 안될, 나의 온 생을 다해 제일 중요한 친구같은 존재라고 말하고 싶다. 책이 없었으면 아마 나는 불행했을지도 모른다. 어린시절부터 책은 나에게 둘도 없는 친구였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 책을 읽지 못하면 불안함에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나는 책에 빠져 있다. 책에 대한 이러한 감정을 나만 갖는게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책에 미쳐 있으며, 책에 빠져 있다는 것을 나는 한 소설 책에서 경험했다. 소설속 인물이 가진 책에 대한 감정이 마치 내 것처럼 생각될 정도다.

 

우리가 읽었던 수많은 책들 중에서 같은 책을 읽었다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나 『엠마』, 브론테 자매의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혹은 윌리엄 윌키 콜린스의 『흰옷을 입은 여인』 등이 소설책 속에 언급되면 같은 책에 대한 느낌을 책속의 인물과 교감하는 것 같다. 위 소설들은 책 속의 주인공인 마거릿 리와 비다 윈터 자매들이 제일 좋아했던 소설들이다. 그 중에 특히 중요한 책은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다. 소설에서 말했다시피 『제인 에어』는 겉도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다. 엄마 없는 아이의 겉도는 이야기.

 

소설 속 헌책방은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헌책방과는 느낌이 다르다. 주변의 헌책방이 누군가 보지 않은 헌책들, 참고서들을 판매한다면, 책 속의 헌책방은 주로 희귀본의 책들을 다룬다. 우리나라에서야 크게 다루지 않지만, 외국에서는 초판본이나 희귀본의 책들을 상당히 중요하게 다룬다. 희귀본과 초판본은 굉장히 비싼 가격에 판매될 뿐만 아니라 경매에 나올 정도다. 이런 책방에서 일하는 주인공 마거릿 리에게 어느날 한 통의 편지가 온다.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금세기의 디킨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작가인 비다 윈터라는 작가에게서 였다. 어린 아이가 쓴 듯한 필체로 여섯 장의 편지지로 된 글이었다. 편지에서 비다 윈터 여사는 마거릿에게 전기를 맡기고 싶어 한다. 즉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것이다. 몇십 권의 소설을 썼음에도 자신의 이야기는 늘 소설처럼 각색해 온 윈터 여사가 마거릿에게 진실을 말하겠다고 했다. 윈터 여사가 또다시 각색한 이야기를 말하지 않을까 의심스러웠던 마거릿은 공식 기록으로 나타난 사건을 알고 싶다고 한다.

 

윈터 여사를 만나러 가기 전에 마거릿은 처음으로 현존하는 작가의 책을 찾아 읽었다. 비다 윈터의 책이었다. 잠이 오지 않은 밤, 꿈을 꾸었던 마거릿은 책방의 캐비닛으로 가 비다 윈터의 특별한 소설을 꺼냈다. 「열세 가지 이야기」라는 제목을 가진 소설로 열두 가지의 이야기만 들어 있을 뿐 열세 번째 이야기가 빠져있는, 그래서 전량 회수된 책이었지만 한 수집가에 의해 존재하고 있었던 책이었다. 마거릿은 열세 번째 이야기가 궁금했던 것이다.

 

 

 

 

 

죽은 자의 무덤을 보살피듯 나는 책을 보살핀다. 책을 닦아주고, 작은 흠집을 보수하고, 말쑥한 상태로 유지한다. 날마다 나는 책을 한두 권 뽑아 몇 줄, 몇 페이지를 읽으며 죽은 자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 울려 퍼지게 한다. 죽은 작가들은 자신들의 책이 읽히는 것을 느낄 수 있을까? 날카로운 한줄기 빛이 그들의 어둠을 가를까? 자신을 책을 읽는 누군가의 섬세한 손길에 그들의 영혼이 동요할까? 그러기를 바란다. 죽는다는 것은 참으로 외로운 일일 테니까. (31페이지)

 

어느 누구에게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던 비다 윈터가 마거릿에게 진실을 말한다. 자신이 애덜린 마치 였으며, 자신의 삶은 열여섯 살에 일어난 엔젤필드에서의 불 때문이었다고. 조부모의 이야기에서부터 부모의 이야기, 쌍둥이인 자신들의 이야기를. 윈터 여사는 이야기의 재미가 발단, 전개, 결말 때문이라며 발단에서부터 전개, 결말 까지를 이야기한다.

 

비다 윈터가 말하는 애덜린과 애멀린 자매의 탄생에서부터 삼촌인 찰리와 어머니 이사벨의 이야기를 하는데 그들의 가족 이야기는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과 닮아 있다. 비틀어진 사랑과 욕망의 결과물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문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은 비통한 감정들이 히스클리프와 놀랍도록 닮아 있었던 것이다. 찰리와 이사벨에게서는 『폭풍의 언덕』이, 애덜린과 애멀린 자매들에게서는 『제인 에어』가 저절로 연상되었다. 사람들 앞에 나타나 있는 자매와 숨어 있는 자매, 사랑에 대한 고통, 그로 인해 폐허가 되어버린 저택. 무엇보다 어느 누군가의 사생아로 보이는 한 남자의 존재가 고딕 소설 속에서 각자 살아 움직이는 듯 했다.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슬픔이 있다. 그 모양이나 무게, 깊이는 다를지라도 슬픔의 빛깔만큼은 모두 똑같다. (565페이지)

 

그 사람의 진실함을 나타내는 진짜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다른 사람의 진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것. 아마도 그 사람의 진실함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상처가 내게 위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누군가의 진실함이 내 상처를 내보이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을. 결국 누군가에게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와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에게. 나와 비슷한 슬픔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내 슬픔을 바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책방은 한때 너무도 사랑받았지만 더 이상은 아무도 찾지 않는 책들의 안전한 보금자리다. (25페이지)

 

다시 읽어도 좋은 작품을 만났다. 이 책을 처음 읽은게 아마 2009년쯤. 소설에 반했고, 이 책을 출판한 출판사에 반해버렸었다. 이 책을 쓴 작가도, 이 책을 번역한 작가도 마치 각인된 것처럼 뇌리에 스며들었다. 누군가에게 책을 권할때면 항상 이 책을 권했다. 절판되어 아쉬웠던 책을, 새롭게 출간되어 만나니 그 기쁨이 더해졌다. 누구나 읽는 책, 그럼에도 자신의 마음에 쏙드는 책을 만나는 일은 드문 일이다. 아주 가끔, 드물게, 만날 뿐이다. 나는 이 책을 내 인생의 책이라 말하고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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