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첫 부동산 공부 - 내 집 마련부터 꼬마 월세까지, 이 책 한 권으로 따라 한다
이지영 지음 / 다산3.0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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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있다면 부동산 투자를 하겠다는 사람이 많다. 나 또한 조금의 돈만 생겨도 부동산을 사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실제로 내 집 마련을 하고 더 큰 집으로 이사한 후 담양 쪽에 땅을 구매해 텃밭으로 사용해오고 있다. 비싼 가격은 아니지만 훗날 돈이 되지 않겠냐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근처에 땅이 나오면 보게 되는데 마땅한 게 없어 관망중이다. 물론 이것을 내가 적극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옆에서 바라볼 뿐. 한때 노후 준비로 상가가 꽤 인기를 끌었다. 주변에 아는 분도 퇴직 자금으로 상가를 두 개 구매해 월세를 받으면서 다른 직장생활을 하고 계신다. 경기 불황으로 침체기에 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것 만큼 돈을 불리는 것도 없는 것 같다.

 

 

사실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책으로 부동산을 공부해 보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재테크에 대한 것에 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여유 자금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여유자금만 있다면야 소형 아파트를 구매해 월세 받으면 하기 싫은 직장 생활을 안해도 되겠다 싶었던 건 사실이다. 이런 와중에 읽게 된 이 책에서 여러모로 공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런 책을 읽는 구나 싶었달까. 

 

 

저자는 결혼을 하고 첫아이를 임신하면서 내 집 마련을 하게 되었고, 부동산을 보는 방법을 배웠던 것 같다. 책을 읽고, 인터넷 카페를 뒤지며 지식을 쌓아 구매했던 소형 아파트를 전세로 내놓고 더 적은 곳으로 이사가면서 재테크를 시작했다고 했다. 투자하는 사람들을 보면 전세를 안고 사는 경우가 많은데, 저자도 이처럼 살던 집을 전세로 내놓고, 전세를 안고 다른 소형 아파트에 투자해 그 차익금을 챙겼다고 했다.  

 

 

 

 

 

주변의 아파트에서부터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 지방에 있는 부동산에 투자를 시세 차익을 챙겼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현재 23채의 소형 아파트와 상가, 오피스텔 등 다양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는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렇게 하니 이런 재테크에 관련된 책도 쓸 수 있는게 아닌가 싶었다.

 

 

책의 앞 부분에 '엄마가 부동산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5가지 이유'를 들었는데, 참고해 보면 좋을 것도 같다.

첫째, 투자의 안정성이 크다.

둘째, 투자 레버리지 효과가 있다.

셋째, 투자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다.

넷째, 투자 가격 협상이 가능하다.

다섯째, 자기계발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38~40페이지) 라고 했다.

 

 

저자 스스로 이 책을 부동산 투자에 관한 책이지만, 궁극적으로 경제적 자립으로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책의 후반부에 저자의 주변 사람들을 예를 들어 설명한 부분은 인상적이다. 아직 미혼인 30대 후반의 여성이 부모와 함께 살 경우와 부담이 되었지만 대출을 끼고 자립하는 경우를 설명했다. 경제적 자립은 곧 내 집 마련의 지름길이고 그게 재테크로 가는 길임을 말했다. 여러가지 예를 들어 본인의 노하우를 전수해주었다. 재테크에 관심있는 사람이 읽으면 좋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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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이야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조르주 바타유 지음, 이재형 옮김 / 비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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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디즘의 원조 사드 후작의 적자라고 불리는 이가 조르주 바타유라는 사실을 그의 작품 『눈 이야기』를 읽으며 알게 되었다. 조르주 바타유라는 이름을 어디선가 접한 것 같은데, 정작 그의 작품을 읽은 적은 처음이다. 일단 '금기와 위반의 문학'이라는 문장에 책에 대한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우리는 금기외 위반을 사랑하므로. 또한 에로티슴의 거장이라고 하니 얼마나 흥미 돋는 일인가. 이 작품은 그의 자전적 첫 소설이며, '로드 오슈'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에로티슴을 말하는 문제작이다.

 

영화 「스물」에서 가장 핫했던 게 김우빈이 말한 대사였다. '니 엉덩이에 내 OO OOO 싶어'라는 말이었다. 차마 여기에 적나라하게 쓰지는 못하겠다.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어쩌면 당연한 말이었지만 영화속에서 솔직하게 말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스물 즈음의 청춘들에게 있을만한 일들을 영화로 나타냈었는데 꽤 인기를 끌었다. 이처럼 최근에는 솔직하게 말하는 작품들이 인기를 끈다. 저런 대사가 쓰였던 영화 「스물」이 15세 이상가였는데, 더한 작품도 문학이라는 이름을 쓰면 예술 작품이 되는게 일반적이다. 조르주 바타유의 『눈 이야기』는 미셀 푸코 등에게 영향을 미친 작가라고 한다. 이 작품에 대해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이 꽤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너무도 적나라하고 어떻게 보면 폭력적인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었으니까.

 

 

열여섯 살의 소년에게 여자 친구는 성적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해변에 위치한 별장에서 소년과 시몬은 성에 탐닉하게 된다. 시몬은 주로 엉덩이를 사용하는데 그 처음이 우유가 담긴 접시에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몬과 소년은 오르가슴을 느끼게 된다. 이들의 성적 유희는 별장에서부터 벼랑이 내려다 보이는 숲속에서 시작하게 되는데, 엉덩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혹은 시몬의 친구 마르셀이 보고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자극이 되었다. 

 

특히 시몬은 엉덩이에 탐닉하게 되는데, 우유가 담긴 접시에서부터, 변기안의 물, 그들의 몸안에서 나오는 오줌에 이르기까지 주저하지 않는다. 시몬은 엉덩이로 달걀을 깨는 신공을 보이기도 한다. 이 장면을 읽을 때 머릿속으로 그 상황을 그려보는데, 잘 상상이 되지 않아 혼자서 빙긋이 웃기도 했었다. 쾌락을 위해서 상대방에 보는 앞에서 오줌을 누는가 하면, 시몬이 특히 좋아했던 건 마르셀과 함께 하는 경우였다. 마르셀과 몇몇의 소년소녀들이 함께 모여 난교 파티를 하게 되는데, 마르셀은 매우 순진한 아이였고, 장롱 속에 숨어 극도의 오르가슴을 느낀후 충격을 받아서인지 정신병원에 입원하기까지 했다.

 

시몬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마르셀이 입원해 있던 병원을 찾아가기도 하는데, 끝내 마르셀은 목을 메고 말았다. 시몬과 소년은 에드먼드 경과 함께 여행을 하게 되는데, 스페인에서 투우 경기를 보는 장면은 투우 경기의 장면도 에로티슴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투우사의 깃발 아래의 빈 공간, 투우 경기를 보는 사람들이 죽은 황소의 그것을 구워서 먹는 것. 여기에서 황소의 그것은 달걀 모양과도 비슷했다. 시몬이 엉덩이로 달걀을 깨트리는 이유가 황소의 그것과 연결되어 있는 식이다. 또한 고해 신부실의 신부를 농락하고 그를 오르가슴으로 인도해 눈알을 파는 장면은 극한으로 치닫는 것 같았다.

 

 

목을 메 자살하는 사람들이 마지막 죽을 때 오르가슴을 느낀다는 이야기는 들어 알고 있었다. 작품 속에서 시몬, 에드먼드 경과 함께 신부의 목을 조르며 그가 오르가슴을 느끼는 장면을 보고는 이들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달걀과 황소의 그것, 눈(안구)에 이르기까지 타원형의 물건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엇을까. 남자의 성기? 아니면 오르가슴의 어떤 한 부분? 정신 착란을 일으킬만큼 성에 탐닉하다보면 그들의 끝이란 과연 있을까. 그들에게 남은 건 죽음 뿐일까.

 

에로티슴은 영화와 문학계에서 늘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된다. 예술이냐 외설이냐를 놓고 왈가왈부하게 되는데 그 작품이 미치는 영향과는 달리 작품으로만 보면 된다. 때로 금기의 문학 만큼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도 없다. 그를 이렇게까지 성에 대한 탐닉으로 이어졌던게 부모와의 관계때문은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보며 작가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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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7 22: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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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8 17: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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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김신회 지음 / 놀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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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스쳐지나가듯 본 만화에서도 위로의 문장들을 발견한다. 책을 읽는 그 상황에 따라 다른 감정으로 다가온 책들의 내용. 다른 상황에서 읽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는 문장인데도, 어느 순간 가슴속에 깊이 스며드는 경우가 있다. 기대하지 않았던 문장, 기대하지 않았던 종류의 책에서 말이다. 내가 그랬다. 보노보노라는 이름의 만화도 처음인데, 나는 그저 이 책이 표지에서처럼 보노보노라는 만화인줄로만 알았다. 그리고 펼쳐든 책에서 나도 모르게 감동하고 말았다. 문장 하나하나마다 어쩌면 그렇게 마음속에 쏙 들어오는지. 그래도 어느 정도 살아서 감정에 대한 것만은 자신있을 줄 알았는데 사람과의 관계에서 감정 다루기가 아직도 힘들다는 걸 발견하곤 한다. 특별히 나쁜 일이 있지도 않았는데, 짧은 문장들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아마도 보노보노라는 해달이 주인공인 만화속 캐릭터가 가진 힘이 컸을까. 아님 보노보노의 짧은 문장들을 자신의 감정과 더불어 적절하게 배치한 작가의 능력탓이었을까. 몇 번이나 눈물을 훔쳤는지 모른다. 눈물을 훔치면서 내가 갱년기인가 싶을 정도로 순간적으로 다가든 감정이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감정이란것이 참 힘들다. 조심한다고 해도 그것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하고 진심이 어긋나게 전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때로는 미안하다고 바로 사과하는 경우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버려 그냥 넘어가기도 한다. 이른 경우 서로의 감정에 골이 깊어지는데, 이런 게 참 힘들더라.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하는 건 내 마음 뿐일 것이다.

 

 

누군가 힘들어할 때 곁에서 위로의 말을 건네게 되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그냥 들어주기도 하지만, 충고랍시고 말 한 마디 건넨게 그게 상처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느낀다. 위로의 한마디 보다 그저 상대방이 말하는 것을 조용히 들어주며 끄덕거리면 될텐데 말이다. 작가는 이에 대한 말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상해하는 당신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안 좋다. 그저 그 마음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게 침묵이건, 농담이건, 그저 경청하는 태도건 위로를 해야 하는 순간에는 내가 위로받았던 순간을 떠올려보기로 했다. 그동안 나는 그저 묵묵히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앞에서 가장 많이 위로받았다. (17페이지)

 

 

아무 말 하지 않더라도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는 걸 아기 해달의 말 속에 찾았고 공감했던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힘든 것인 이것 뿐만 아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칭찬을 하게 되는게 이게 잘못 전해지는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작가 또한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했는데, 그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필요하다. 작가의 말처럼 '그러려니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걸 말했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들여다 보지 못한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글을 마주했을 때에야 깨닫는 경우가 있다. 친구들과의 관계는 십대 때나 지금이나 무척 중요하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더 중요하다. 나이가 먹어도 친구의 말 한 마디 때문에 상처받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사람들은 내가 주는 건 제대로 알지 못하고 내가 받은 상처만 기억한다. 친구가 나한테 했던 서운했던 말 한 마디. 위로를 받고 싶은데 무관심하게 대처했던 것들. 그저 나의 말을 들어주었으면 싶은데, 따끔하게 건네는 말. 이런 것들은 위에서 말했던 것과도 일맥상통한 것인데, 그 연장선에서 보면 좋을 것 같다.

 

 

그저 내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해서 이런저런 말을 하게 되는데, '너는 그게 문제'라는 등 충고의 말을 원한게 아니었다. 작가가 언급한 것처럼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친구가 속상했던 자기의 마음을 묵묵히 들어주었으면 좋은데, 더 나아가 한마디를 하는 것. 이렇게되면 친구는 위로를 받고 싶어 왔다가 더 불편해져 돌아가는 경우가 되는 것이다.

 

 

포로리 아빠   노인네들하고 한 약속은 어기는 거 아냐.

포    로    리   어긴 게 아니라 잊어버린 거예요.

포로리 아빠   노인네들하고 한 약속은 잊어버리는 거 아냐.

                     젊은이들한테는 다음 달, 내년도 있겠지만

                     노인네들에게는 지금뿐이라고. (104~105페이지)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전화하지도 찾아뵙지도 못하고 있는데, 아마 자식이라면 한달음에 달려갔겠지. 이런 마음이 문득문득 든다. 자식에게 할 행동들의 십분의 일이라도 부모님 생각을 하자고. 이번 주엔 시간이 안돼 다음주에 찾아뵈어야지, 했다가도 꼭 놓치게 된다. 보노보노의 친구인 다람쥐 포로리와 아빠는 매년 꽃구경을 갔었다. 그해에 부모님의 병간호를 하느라 가지 못했는데 아빠는 은근히 기다렸었나 보다. 포로리 아빠와 포로리의 대화를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작가가 아빠와 대화 도중 돌아가신 할머니가 보고싶어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씀 하셨을때, 언젠가 나도 우리 부모님이 보고싶어 가슴이 사무칠 때까 있을 것 같았다.

 

 

이렇듯 별 것 아닐 것 같았던 보노보노의 문장들이 가슴속에 스며들었다. 어쩌면 기대하지 않았기에 더 좋았을 수도 있다. 보노보노가 친구들과 나누는 짧은 대화들이 작가의 글과 적절히 어우러져 우리의 마음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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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 빛의 일기 - 상
박은령 원작, 손현경 각색 / 비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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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많은 시민들을 TV앞으로 이끌었던 드라마가 있었다. 수랏간의 궁녀로 있다가 의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대장금」이라는 드라마로 국민 배우가 되었었고, 이웃 나라로 수출까지 되어 꽤 많은 인기를 누린 배우가 이영애다. 이영애라는 배우가 사임당 역할로 나온다고 해서 많은 팬들은 기대했다. 기대했던 마음이 컸던 탓일까. 막상 드라마가 뚜껑을 여니 생각보다 심심했고, 다른 드라마에서 나오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내용이 때로는 식상하게까지 느껴졌다. 과거와 현재가 오가는데, 드라마 특성상 배우가 과거와 현재의 인물이 겹치게 되어 제대로 스토리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런 탓인지 생각보다 인기를 누리지 못했고, 사람들에게 조금은 외면을 받았던 듯 하다. 지나치듯 드문드문 본 드라마에 제대로 적응할 수 없었고 기대했던 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 같아 한편으로 아쉽기도 했다.

 

대부분의 영화나 드라마 원작 소설이 사실 재미가 없다. 배우의 연기와 외모, 긴장을 부르는 장면들 때문에 그 잔상이 오래도록 남는데 비해 소설이 심심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를 제대로 보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신사임당과 이겸의 러브스토리가 좋았기 때문일까. 이 소설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오히려 드라마보다도 재미있었고, 과거와 현재, 앞과 뒤의 맥락이 제대로 이해되었다.

 

 

배우 이영애는 과거 조선시대의 사임당과 현재 한국미술사를 전공하는 인물을 맡아 연기한다. 현재의 인물은 서지윤이라는 이름으로 교수 임용을 위해 민정학 교수 밑에서 그의 뒤치닥 거리를 하고 있다. 민 교수는 안견의 <금강산도>가 진품인지의 여부를 놓고 연구하는데, 볼로냐 학회에서 민 교수로부터 내침을 당하고 불가사의한 경험을 한다. 몇백 년 전의 과거의 기록이 있는 미인도와 서적을 발견했던 것이다. 안견의 <금강산도>가 가짜라는 것만 발견하면 자신의 미래는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과거의 어린 소녀 사임당. 헌원장에 안견의 <금강산도>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 그림을 보고자 월담을 하는데 그것을 본 이가 바로 소년 이겸이다. 이겸과 함께 시와 그림에 대해 논하며 서로에게 다가가는데 이들은 서로 혼약을 맺었다. 출세에 눈이 먼 민치형에 의해 운평사에 머물던 유민들을 죽게 한 자도 그였으며, 의성군 이겸을 구하기 위해 사임당은 이원수와 혼례를 올린다. 그후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버지 신명화에 의해 시와 서화에 띄어났던 사임당을 그녀의 남편 이원수는 무척 질투를 했다고 했다. 드라마에서는 굉장히 이원수를 비루한 남자로 그리는데, 이는 사임당을 더 돋보이기 위함이 아니엇을까 싶기도 하다.

 

 

소설에서도 나왔지만, 서지윤과 한상현에게 민 교수가 부리는 횡포는 지금도 비일비재하다. 제자의 작품을 가로채는가 하면 쓸모 없다고 느꼈을때 과감하게 내치기도 하는. 어떻게든 교수가 되어보려는 제자는 지도 교수의 횡포에 말없이 따를 수 밖에 없는 현실의 모습을 그렸다.

 

사실 원작인 드라마에 관심 없었는데, 소설을 읽고났더니 드라마도 궁금해졌다. 같은 시점으로 이어지기에 드라마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지윤은 안견의 <금강산도>의 진품을 제대로 알릴 수 있을까. 사임당의 일기가 어떻게 해서 이탈리아까지 흘러가게 되었는가. 아마도 짐작하기에 이겸이 조선을 떠나 이탈리아로 향했던 것 같은데, 그 내막이 궁금하다. 물론 어느 정도 예상하는 바가 없지않지만 말이다.

 

스쳐가듯 본 드라마에서 이영애가 운평사 고려지를 만들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그 장면은 마치 오래전의 드라마 「대장금」에서 요리를 만들던 모습과 흡사했다. 또한 사임당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그림에 대한 열망이 살아나는 송승헌의 진한 눈빛 또한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되니 드라마의 내용이 더 궁금해진다. 이번 주말엔 「사임당 빛의 일기」 드라마나 다시보기 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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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솔지 소설
손솔지 지음 / 새움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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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글자들이 있다. 곰곰 생각해보면 한 글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거의 두 글자로 된 음절들을 사랑했다. 책의 제목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휘파람 소리를 내어보았다. '휘'라고 소리를 내어 발음을 해본다. 휘파람처럼 여운이 있는 글자다. 한 글자로 된 음절 속에서 이름 끝에 따라오는 여운을 음미해 본다. 바람소리처럼, 누군가의 부름처럼, 휘라는 글자가 나에게 다가섰다.

 

단음절로 된 글자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하나의 글자로 다른 글자에 기대에 사용하는 글자들의 제목이었다. 휘, 종, 홈, 개, 못, 톡, 잠, 초라는 제목을 가진. 단음절로 된 제목 앞에서 우리의 주변에서 보았음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조해 냈다. 그들의 이야기는 짙은 여운을 남기고 우리의 머릿속을 부유한다. 단음절의 제목을 새기고, 그 속에 깃든 의미를 생각해 보는 시간. 이렇게 소설로 나타난 글들에서 사유의 시간을 갖는다.

 

「휘」 라는 단편에서, '휘'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은 자신을 두고 떠난 부모를 찾는다. 악(樂)이라는 이름자가 들어간 아버지. 그래서였을까. 그가 '악'하고 소리를 낼때마다 사라진 아버지가 떠오른다. 아버지를 찾겠다고 나간 어머니 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때, 제 이름 마냥 바람이 되어 사라진듯한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볼 수도 없는 이름에 대한 이야기였다.

 

노인은 내 이름을 묻지 않았다. 노인에게는 내가 보이지 않았고 나는 창틈으로 들어와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 이름 없는 바람이었다. (22페이지, 「휘」)

 

내가 여자이기 때문일까. 읽으면서 못내 불편했던 단편이 「종」이었다. 집안의 유일한 계집이고, 그러므로 가족에게 혹은 모두에게 종이었던 누이. '누구든 누이를 쳤다'라고 시작한 단편에서 한 사람이 무너질 수도 있구나. 그런 누이를 자신 또한 치지 않게 해달라고 말하는 이의 목소리는 비감에 차 있었다. 어머니의 역할까지 하게 되었던 누이는 밤마다 아버지와 함께 잤다. 그런 누이가 더렵다고 느꼈고, 한편으로 두렵기까지 했다. 자기에게 오빠라고 부르는 누이. 주인공은 모두의 종이었던 누이가 어느새 누이를 위해 울리는, 들려오는 종소리에 귀기울였다.

 

 

모든 단어에는 중의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휘라는 단어에 이름이 되지 못해 바람소리처럼 흩어지는가 하면, 또다른 이름이 되어 나타났다. '종'이라는 단어에도 누군가의 종이 되었다가, 어디선가 울리는 종소리의 종이 되었다. 「홈」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 책상위에 조금씩 깊에 패여가는 홈과 가정을 나타내는 홈이 이중적 의미로 나타났다. 수능을 앞둔 고등학교의 교실, 전교 십 등 안에 들지 못한 십일 등의 자살 소식에 이어 십 등의 자살이 이어졌다. 이제 구 등 차례인가. 언제부턴가 십일 등의 책상에 조그맣게 홈이 패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날이 지나갈수록 홈의 크기는 점점 커졌다. 볼펜이 들어갈 홈에서 점점 커져 다른 것도 끼워넣을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홈은 깊게 패어버린 마음의 상처인가, 동시에 집안의 아늑함을 나타낸 것이었던가.

 

 

우리는 종종 동물이 인간을 바라보는 세상을 소설 속에서 경험한다. 「개」 라는 단편에서도 개가 인간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담았다. 개가 바라보는 세상은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과 다르지 않다. 외국인 아내를 둔 할배와 며느리뻘이라 하여 동네 사람들에게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엄마. 그리고 진구라는 아이가 있는 가족 속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이야기이다. 혹시나 도망갈까봐 집밖에 못나가게 하는 할배. 할배를 피해서 창고에 짐을 싸놓고 나가길 주저하는 엄마. 점점 자라 반항의 시기를 겪는 진구. 사람들 사이를 떠도는 개의 시선을 바라볼 수있다.

 

그녀가 들려주는 연애가 한낱 블로그에 연재하는 이야기였음을 나타내는 「못」과 한 소녀가 장난으로 떨어뜨렸던 것들로 인해 비밀을 가진 「톡」, 불면증을 앓고 있는 남과 여의 이야기인 「잠」이 이어졌고, 마지막엔 세월호 이야기를 다룬 「초」라는 이야기였다. 작가가 소설을 쓴 시점이 아직도 인양되지 못한 세월호에 대해 말했는데, 거짓말처럼 세월호는 인양되었고, 다시 3년전의 악몽을 되살아나게 했다. 세월호 사건이 있었던 날들에서부터 간절한 바람으로 지켜보았던 마음, 그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달았던 노란색 리본이 다시금 보이고 있는 현재다. 조금만 대처를 잘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며, 아직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것들이 비수가 되어 날아드는 감정들을 말했다.

 

 

비는 좌절의 상징이다. 우비를 뒤집어쓴 사람들을 내다보면서 나는 더는 한 글자도 적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쓰는 문장들이 칼날이 되어 누군가의 마음을 베어내고 상처 입힐까 봐 두려웠다. 진실을 가리는 차양이 될까 봐 망설여졌다. (247페이지, 「초」 )

 

 

단음절로 된 단어들은 이처럼 많은 뜻을 내포한다. 이것도 될 수 있고, 저것도 될 수 있는. 우리의 삶이 그러지 않을까. 조금만 방향을 틀어도 길은 엇갈리고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미지의 길 앞에 있는 것처럼 한 글자로 된 말들은 우리의 삶 속에 깊이 파고들었다. 어두운 공간 속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았지만, 모두들 그 속에서 한줄기 빛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그 빛을 향해 나아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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