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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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요양병원에 계시는 엄마를 뵙고 왔다. 지난 번에 뵈었을 때보다 살이 내린 모습에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텃밭에서 따 간 빨간 자두를 드렸을때 달게 드시는 모습을 보고 안도했고, 잘게 썰어진 음식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고 또 안도했다. 엄마에게 갈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무심코 보낸 하루가 엄마와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면 울컥해진다. 만일 엄마가 아프지 않았다면 엄마를 모시고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고 했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갖는다. 뒤늦은 후회다. 이렇듯 엄마에게 갈 때마다 나는 엄마와의 이별 연습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엄마와 나눴던 이야기, 우리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 아직은 우리를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 등을 눈에 담는다. 엄마를 보고 있으면서도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다.

 

나의 이런 마음과 비슷한 책을 만났다. 유쾌하면서도 가슴 뭉클해지는 글을 주로 쓰는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이다. 길지 않는 짧은 소설로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와 손자, 할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이다. 원래 아빠는 바쁜 법이어서 아들이 어렸을 때 제대로 놀아주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할아버지는 아들의 아들, 손자에게 애정을 쏟는다. 아들에게 해주지 못했던 것을 보상이라도 하듯 정성을 쏟는다. 아들과 함께 하고 싶었던 숫자 게임이라든가, 서로의 꿈을 이야기하며 손자의 말을 귀담아 듣는다.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애틋한 이야기, 할아버지의 뇌가 졸아들어 점점 작아지는 기억의 공간을 따스한 이야기로 헤집는다. 자꾸만 기억의 공간이 작아지지만 기억 속에서 애틋했던 이야기는 살아 남는다. 먼저 간 할머니와 처음 만났던 이야기, 손자의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들려준다. 물론 할아버지의 또다른 자아다. 할머니의 기억과 손자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여기는 내 머릿속이란다, 노아노아.

그런데 하룻밤 새 또 저보다 작아졌구나. 

 

 

 

주머니에서 뭔가를 계속 찾는 기분.

처음에는 사소한 걸 잃어버리다 나중에는

큰 걸 잃어버리지.

 

프레드릭 배크만의 전작들이 재기발랄 했다면, 이번 중편 소설은 우리의 주변을 뒤돌아보게 만드는 묵직함이 있다. 우리가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후회하지 않을 삶을 위해 몇번이고 거듭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다. 하지만 별 생각없이 오늘 하루를 보낸다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지도 모를 일. 뇌가 쪼그라 들면서 머릿 속 기억들은 점점 자취를 감춰다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의 모습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자며 말을 하곤 한다.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를 대하는 아들과 손자의 대화는 다정하다. 꽤 많은 시간을 작별 연습을 하는데 군더더기가 없다. 담담하게 함께 시간을 보내며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 손자와 아들의 모습이 보인다. 시간을 훌쩍 넘겨 다 자란 청년의 모습으로 할아버지 곁에서 위로의 말을 할 줄 알게 된다.

 

노아노아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약속해주겠니?

완벽하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게 되면

나를 떠나서 돌아보지 않겠다고.

네 인생을 살겠다고 말이다.

아직 남아있는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건

끔찍한 일이거든.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오늘 이 시간을 그리워 할지 모른다. 느리게 이별 연습을 했던 시간. 후회하지 않을 시간이길 바라는 마음. 아마 작가도 이런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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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5 11: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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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5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악마의 증명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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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기 작가가 현직 판사일때 쓴 책이 간간이 출간되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소설을 한번도 읽지 않은 상태였다. 판사직을 그만두고 변호사를 개업했다는 그의 신간 소식에 이번에는 반갑게 읽게 되었다. 일단 단편으로 된 추리소설이라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웬걸 나는 밤에 책을 읽다가 순간 소름이 끼쳤다. 소설의 내용 때문에 갑자기 싸해 지는게 굉장히 이입되어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법조인이 쓴 소설이라는 편견을 깨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 거야, 하는 놀라움이 일었던 것 같다.

 

총 8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작품 하나하나마다 각자의 매력이 있는 소설이었다. 표제작인 「악마의 증명」에서부터 도진기 만의 추리소설의 매력을 느꼈다. 쌍둥이 중 한 명이 살인을 저지르고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자신의 죄를 다시 물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형이 증인으로 나오게 해 사건의 내용을 뒤집는다는 이야기였다. 법학 전공자답게 법을 이용해 무죄를 이끌어내는 방법이 상당히 재미있었다. 물론 우리가 예상한 식의 결말이 나오지는 않는다. 허를 찌르는 반전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에서 반전이 없다면 재미가 없을 정도다. 쌍둥이 중 동생이 강도 살인을 하고, CCTV도 증거로 확보된 마당에 당연히 그가 유죄를 받을 줄 알았지만, 그것을 예상한 검사가 있었으니 바로 호연정이라는 검사였다. 이렇게 영특한 검사가 있으면 우발적 범행이든, 계획적 범행이든 범행을 저지른 사람들을 제대로 찾아내어 단죄를 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악마의 증명」에서의 호연정은 「선택」이라는 단편에서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를 개업한 인물로 나와 또다른 재미를 즐거움을 준다.

 

 

 

생각보다 이른 나이에 변호사를 그만 둔 호연정은 하나의 사건을 맡았다. 외과의인 딸이 둘째 아이와 함께 교통사고로 죽은후 첫째 아이를 돌봐야 하는 한 할머니의 사건 의뢰였다. 죽기 전 생명보험에 들었으나 딸의 죽음을 자살로 본 경찰 때문에 보험회사는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고 있다고 했다. 할머니가 딱해 보인 연정은 사건을 조사했던 경찰서를 찾아가게 되고, 다시 사건을 구성해본다. 남편이 죽은후 아이들밖에 없었던 딸이 자살할 리 없다고 한 할머니의 말과 딸이 근무했던 병원 관계자들,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서 직원의 이야기를 다시 들었다.  

 

「선택」의 결말은 감동적이며 뭉클하기까지 하다. 그러한 결말을 이끌어낸 호연정이라는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 왠지 다른 추리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인간적인 캐릭터라서 일까. 아니면 여성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게 된 호연정 만의 시선이어서 일까. 자살과 타살의 경계에서 좀더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연정의 시선이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을 읽는 많은 독자들이 소설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선택」을 선택하지 않을까.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사건의 양상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다만 소설 속 딸과 둘째 아이는 죽었지만 어머니의 애틋한 마음을 느끼게 되는 순간일 것이다.

 

이외에도 약간은 환상적인 어쩌면 괴기스러운 소설도 들어 있었다. 여자 무당과 한 남자의 시신이 있던 곳에 칼을 들고 있었던 살인범.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아 유죄로 인정되었지만, 시간이 흐른 후 판사에게 편지로 보내 온 진실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자기가 죽이지 않았다며 사건의 전말을 적었던 「죽음이 갈라 놓을때」와 법정안 방청석에 앉아 있던 한 노인 때문에 놓친 사건의 정황을 알게 된다는 「구석의 노인」이란 단편도 즐겁게 보았다.

 

판사와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던 것 때문에 보게 된 사건과 사람들의 모습을 추리소설의 형태로 나타내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다. 직업때문에 소설의 소재는 아주 다양하게 찾을 수 있으리라. 좀더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킨 소설과 괴기스러운 판타지를 나타내는 소설 때문에 다양한 즐거움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그의 다음 소설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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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죽이다 데이브 거니 시리즈 3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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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설 속에서 악인을 만난다. 우리 주변에서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경험한다. 어쩌면 이런 사람들이 있을까 싶지만, 한 발자국 건너면 이런 일들이 어디선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안다. 얼마전에는 전봇대에서 작업하는 사람이 음악을 크게 틀어놨다고 의지하고 있던 줄을 잘라 사망하게 한 사람도 있었다.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지만, 이처럼 어디선가는 살인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존 버든은 『658, 우연히』라는 소설로 만나게 되었다. 숫자 게임과 퍼즐 맞추기식의 추리소설로 꽤 강력한 느낌을 받았다. 이번 신작을 읽으며 다시 한번 존 버든식 퍼즐 맞추기에 대해 놀라운 경험을 했다. 존 버든의 소설 속 데이브 거니는 마흔아홉 살의 전직 형사다. 어떤 사건으로 세 발의 총격을 받아 경찰을 그만두고 집에서 은둔하고 있는 캐릭터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을 바라볼때 그의 형사적인 감각은 상당히 날카롭고 예리하다. 심지어 사건을 파헤치느라 자기가 점점 자기 안으로 파고들었던 감각을 잊을 정도로 사건에 집중한다.

 

'착한 양치기 사건'에서도 그렇다. 저널리스트인 코니 클라크의 딸, 킴은 저널리즘 박사과정의 일환으로 살인사건 희생자의 유가족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희생자의 가족, 자녀이야기로, 부모가 살해되었는데 사건이 끝내 해결되지 않은 경우, 그 사건이 가족에게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명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피해자의 가족을 인터뷰 하는데 도움을 달라는 코니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착한 양치기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10년전 메르세데스 벤츠 운전자 6명을 죽인 사건으로 피해자 차량 근처에서는 플라스틱 장난감 6개가 종류별로 한 개씩 놓여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방송에 '탐욕이 모든 악의 근원이며 탐욕을 일삼는 인간은 탐욕의 숙주, 즉 숙주를 제거 한다'라는 착한 양치기 선언문을 보내왔다. 데이브 거니는 킴과 함께 피해자 가족들을 한 명씩 만나게 되는데, 이 사건이 어딘가 퍼즐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즉 연쇄살인범의 동기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방송을 위해 피해자의 가족들을 만나게 되면서 킴과 데이브 거니의 집엔 누군가가 그 사건을 막는 듯한 일이 일어난다. 킴의 집에는 칼이 사라지거나, 바닥이 핏방울이 맺힌 것을 보이기도 하고, 데이브 거니의 헛간은 불타버렸다. 누군가 사건을 파헤치는 걸 방해하고 경고를 보내는 것 같은데, 그가 누구인지, 킴의 전 남친인 로버트 미스인지, 착한 양치기 인지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데이브 거니의 퍼즐 맞추기가 시작된다. 10년 전의 사건 파일을 훑고, 그에 대한 의문을 갖는다. 메르세데스 벤츠 차량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가, 사건이 발생한 순서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모든 사건이 동일한 중요성을 지녔는가, 발생한 여섯 차례의 사건 중 나머지 사건의 필요에 의해 일어난 사건은 없었는가, 등이다. 범죄심리학자가 쓴 살인범에 대한 프로필 또한 믿을 수 없었고, FBI가 사건을 양치기가 원하는 대로 바라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즉 데이브 거니는 살인범인 착한 양치기의 신경증적인 살해 동기를 의심했던 것이다. 살인을 저지른 자는 동기가 있기 마련인데, 착한 양치기는 자신의 동기를 교묘하게 감춰두었다. 자신의 의도대로 바라보기를 바랐고, 10년간을 아주 조용하게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건을 킴과 거니가 깨우고 있었다. 사건을 수면에 드러내자 '악마를 깨우자 마'라는 경고를 나타냈던 것이다.

 

데이브 거니가 가장 의문을 가졌던 점은 실제 표적을 죽이기 위해 특정한 차를 탄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가 였다. 데이브의 아내 매들린이 말하는 <검은 우산을 쓴 남자>라는 영화의 내용은 이 사건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도움을 준다기 보다는 사건을 바라보는 방향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한 것과는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방법을 내보인달까.

 

언젠가 작가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고 말한 적이 있다. 소설 속 데이브 거니 또한 형사로서의 직감, 일반 경찰들이 바라보는 시선과는 다른 생각들을 지녔다는 것이 중요하다.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사건은 다른 양상을 띤다. 살인범이 교묘하게 감춰둔 살해 동기를 파악하는 것과 살인범이 원하는 방식의 수사가 어떠한 결과를 나타내는지를 말했다. 우리가 바라보는 방향을 바꿔보는 것이 사건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요건이 된다는 것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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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날씨가 흐렸다.

혹시나 하고 비를 기다렸다.

마침 라디오 기상청 리포터는 제주도와 전라도 쪽에 비 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아침에 출근하려고 준비하는데, 바람부터 다르더라.

서늘하니, 비 올 바람이 불었다.

카디건을 챙기고, 책 한 권을 챙기고, 출근했다.

시원한 바람이 불었지만 비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난 후,

비가 왔으면 하고 바랐다.

 

오후 3시경,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쏴쏴~~~

이 얼마나 들고 싶었던 소리인가.

텃밭의 작물은 비가 오지 않아 상추도 쓴 맛이 나고

오이 또한 길다랗게 자라지 못해, 오그라졌다고도 했다.

신랑은 일주일에 두 번 퇴근하자마자 텃밭으로 달려가 작물에 물을 준다.

두 군데 나눠 심은 고구마 줄기는 이미 말라버렸다.

단비가 그리웠다.

 

이십 분쯤이나 내렸나보다.

이렇게 짧게 비가 내리다니.

가뭄이 심해 어느 지역에서는 제한 급수를 한다는데.

비 좀 내렸으면 좋겠다.

일 년 중, 꽃이 피는 봄 빼고, 비가 오는 장마철을 좋아하는데,

올해도 마른 장마인가보다.

 

비 좀 시원하게 내렸으면 좋겠다.

댐이나 저수지에 물이 가득차서 농사짓는 사람들도 물 걱정 안했으면 좋겠다.

기우제라도 지내야 하나.

비가 너무 오지 않는다.  

 

구입했거나,

구입하고 싶거나,

읽었거나,

읽고 있거나,

읽고 싶은 책들.

 

 

 

 

 

 

 

 

 

 

 

 

 

 

 

 

 

 

 

 

 

 

 

 

 

 

 

이 책들 중에서 내가 읽은 책이 꽤 되는 구나.

<보복대행전문주식회사>는 조금 서운했고,

<잠>은 역시나 좋았고,

<넛셸> 또한 <햄릿>의 재해석을 다룬 글이라 아주 좋았다. 

<우먼 인 캐빈 10>은 <인 어 다크, 다크 우드>에서처럼 심장이 쫄깃 거리게 만든다.

<선한 이웃>은 다른 소설이 운동권에 있었던 사람들을 다룬 내용이라면,

<선한 이웃>은 정보요원들의 이야기를 한다. 

 

어젠가, 그젠가, 라디오에서는 비가 왔으면 하는 마음에서일까.

'하늘에서 남자들이 비처럼 내려와' 라는 버블시스터즈의 노래가 나오더라.

자락자락 내리는 빗속을

예쁜 우산을 쓰고 쏘다니고 싶다.

아니면, 창 밖 풍경이 아름다운 곳에 앉아 장대비를 구경하며

커피를 마시고 싶기도 하다.

 

일하기 싫은 어느 날 오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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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파트 지하실을 잠근 사람들. 수많은 아기 고양이들이 있는 곳. 엄마 고양이들이 음식을 찾아 떠난 때 주민들은 그만 지하실 문을 잠궈버렸다. 고양이들이 드나들지 못하게. 하지만 지하실 안에 갇혀있는 그 많은 아기 고양이들은 어떻게 하나. 굶주림으로 죽을지도 모르는데. 얼마의 시간이 지난뒤 고양이 시체 냄새나는 건 아닐까. 아무리 고양이가 싫다기로서 지하실 문을 잠궈버렸을 때의 뒷 상황은 생각하지 못했을까. 새끼들을 향한 어미 고양이들의 고통스러운 울음소리를. 애타는 어미 고양들의 슬픔을 어찌해야 할까.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는 시인이라고 알고 있다. 그래서일까. 시 속에서 고양이에 관한 시가 많았다. 고양이에 대한 애정을, 애틋함을 만나볼 수 있었던 시어들. 우리는 그 시어들 속에서 우리 자신을 들여다본다. 새끼를 밴 배가 불러 있는 고양이들. 먹이를 찾아 지나가는 사람들 발치에서 머뭇거리는 고양이들을. 그렇다고 음식을 챙겨주지도 못하면서 누군가는 챙겨주겠지 하고 생각했던 나의 모습을.

 

요즘의 시들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시어에 깃든 숨은 의미를 굳이 찾지 않아도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에 근접할 수 있다. 예전보다는 시인의 마음을 덜 감추는 것 같다. 마음을 숨기는 시 보다는 드러내는 쪽이 시를 읽는 사람들과 교감하지 않겠는가. 어려운 시를 기피하기 보다는 좀더 쉽게 다가는 시를 자주 읽는게 더 좋을 것도 같다.

 

슬픈 건 내 마음

고양이를 봐도 슬프고 비둘기를 봐도 슬프다

가게들도 슬프고 학교도 슬프다

나는 슬픈 마음을 짓뭉개려 걸음을 빨리한다

쿵쿵 걷는다

가로수와 담벼락 그늘 아래로만 걷다가

그늘이 끊어지면

내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걷는다

그림자도 슬프다.   (9페이지, 「그림자에 깃들어」 중에서) 

 

 

 

 

쓸쓸하고 외로운 사람을 떠올린다. 수많은 날들이 너무 쓸쓸하고 외롭다면 우리는 주변의 것을 챙기는 수 밖에 없을까. 로또를 사는 시인이라. 전혀 상상이 되지 않지만 시 속에서 시인은 로또를 구입하고 있었다. 로또 한 장에 기대를 걸어보고 설렘을 느껴보는 건 우리 일반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시인도 똑같은 생활인이기에. 모르겠다. 로또에 비유한 삶을 노래한 시를 내가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지도. 시어의 이면에 깃든 마음을 눈치채지 못하는 지도. 

 

흘러라, 눈물이여

비야, 쏟아져라

어제도 그제도 그끄제도

그리고 오늘도 

줄창 비가 오고

걷잡을 수 없이 눈물 흘러

모든 것 물에 잠겼네

모든 것 몽롱하고 영롱해졌네

물 위에 모닥불 지피고

빨랫줄 한가득 빨래를 너네

이제 머리를 감은 뒤

귀 막고 음악을 들을테야

젖은 확성기가 속삭이는

내 머릿속 이상한 음악을

 

깊은 물속 저 아래

땅에 사는 땅돼지

이따금 첩첩첩

옛 세상 안부 전하네  (54페이지,   「몽롱한 홍수」 전문)

 

 

 

비가 내리는 풍경을 상상해본다. 많은 비가 내리는 홍수가 난 풍경을. 홍수가 났다면 피해를 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시인은 홍수가 난 풍경을, 물속에 잠긴 세상을 옛세상에 대한 안부를 전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시는 낭만적인 것. 내리는 비를 보고서도 이처럼 땅속의 세상, 옛 세상을 생각할 수 있는 감성.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하는 감성들을 갖고 있다. 마음을 함축한. 기억들을 함축한 시어들에서 우리는 지난 날의 기억들 혹은 지난 생의 그리움을 깨닫는다. 내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 조차 새로운 기억이 되어 나타나는 것. 시를 쓰는 감성이 있기에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일상에서 만나는 언어들조차 한 편의 시가 되어 우리들에게 전해지는 것. 시인들의 감성이 우리에게 맞닫는 순간이다. 시를 읽고 지난 날의 삶을, 앞으로의 삶을 생각해본다. 좋은 일만 있기를, 행복한 일들만 있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우리의 염원. 시인이 느끼는 염원과 우리가 느끼는 염원이 다를지라도 결국엔 행복을 위한 일이 아닐까. 자신의 마음을 깨닫는 일.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만나는 일. 시를 읽는 일이다. 시와 함께 하는 일들이다. 삶이 뿜어내는 우수를 만나는 일, 그것은 시를 만나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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