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그림의 마음 - 조선의 두 천재 정선과 김홍도가 옛 그림으로 전하는 휴식과 위로
탁현규 지음 / 지식서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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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그림의마음 #탁현규 #지식서재

 

간송미술관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미술관을 1년에 두 번 전시했을 때였다. 그때 전시한 게 <민속인물화대전>으로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 등의 조선 산수화 및 인물화 전시였다. 눈앞에서 혜원의 <미인도>, 단원 김홍도 등의 그림을 보며 감탄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도 가봤지만,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간송미술관 전시였다.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의 애틋한 마음을 알지 모르겠다.



 

진경산수화의 거장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의 고사인물화를 엮은 책이다. 두 거장의 그림으로만 구성되어 그림을 더욱더 깊게 느끼고 바라볼 수 있게 했다. 그림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 책 속에 수록된 그림이라 자칫 놓칠 수 있는 부분까지 세세하게 설명해주어 그림을 보는 능력을 키워주었다. 그림 설명을 읽으며 놀란 게 그림 속 인물들에 관한 표현이었다. 그림 속 작은 인물에서 느껴지는 화가의 의도에 재차 감탄했다.

 



겸재 정선의 그림은 <귀거래도>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동진 시대의 도연명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생활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시가 <귀거래사>. 겸재 정선 이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바탕으로 그림, 10폭 병풍으로 된 <귀거래도>. 집으로 향하는 배에 앉아있는 도연명의 모습이 압권이었다. 버드나무가 드리워진 물을 배경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도연명과 냇물이 흐르는 초가집에 술병을 놓고 앉아있는 도연명의 모습은 흡사 신선처럼 여겨진다. 겸재 정선을 가리켜 왜 조선 최고의 화가라고 일컫는지 탄복하며 그림을 바라보게 된다.





 

산수화에서 소나무는 많은 의미가 있다. 겨울에도 푸르름을 간직하여 선비의 꼿꼿한 기개를 나타내며 그림을 받쳐주는 기둥이 된다. 저 멀리 너른 밭이 보이는 그림 앞면에 소나무 한 그루만 있어도 그림의 모든 것을 아우른다. 정선의 <유연견남산>은 채색을 쓰지 않고 먹빛으로만 만물의 기운을 나타냈다. 너른 밭, 남산 자락의 여백에서 비움의 미학이 두드러진다. 겸재 정선을 떠올리면 당연히 <인왕제색>이다. 평생의 벗 사천 이병연이 세상을 떠나자 추모하는 마음으로 그린 그림이다. 짙은 구름이 내려앉은 먹빛의 인왕산에서 화가의 슬픔이 짙게 풍긴다. <총석정><통천총석정> 그리고 금강산을 그린 <금강전도> 또한 압권이다. 바라볼수록 아름다운 그림이다. 그림을 실제로 보고 싶을 정도로 감동이었다.

 



정선과는 또 다른 풍을 그린 화가가 김홍도다. 정선의 그림은 선비의 기개, 산수의 아름다움이 극대화되었다면 김홍도의 그림은 다른 매력이 느껴진다. 화려함보다 수수한 매력이다. 김홍도의 그림은 8폭 병풍으로 된 <고사인물도><취후간화>부터 시작한다. 마당에 핀 매화를 바라보며 술을 즐기는 불그스름하게 취기가 돈 인물 그림이 인상적이다. 오래된 고목이 된 매화가 반쯤 피어있는 그림에서 배를 띄운 장면은 고즈넉한 아름다움이 있다. <적벽야범>의 인물은 바위 절벽 아래 강물에 배를 띄우고 절벽을 바라본다. 강물에 아무것도 그리지 않아 여백의 아름다움이 있다. 고목에 흰점이 박히듯 흩뿌려져 있는 매화 그림에 언제나 감동한다.

 



그림과 관련된 이야기를 설명하며 전체 도판과 부분 도판을 수록했는데 놀라울 정도로 선명하다. 매화를 호분으로 점을 찍어 그린 정선의 <고산방학>과 김홍도의 <서호방학>을 비교해봐도 좋을 것 같다. 각자의 아름다움을 느끼면 될 터, 취향으로 가를 수 없을 것이다.

 



정조 임금에게 사랑받았던 김홍도가 마지막으로 바친 그림이 8폭 병풍 <주부자시의도>. 정조는 주자의 시를 배우는 것이 시대에 맞는 선비가 되는 좋은 길이라 여겨 아송이라는 책을 편찬했고, 주자의 시 8편을 골라 김홍도로 하여금 그리게 했다. 정조 임금이 배우고 실천하고자 했던 내용의 시를 그림으로 만나볼 수 있다.



 

삼성 그룹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그림이 꽤 많이 수록되어있다. 이건희 컬렉션에서 본적이 있어 반가웠다. 김홍도가 죽음을 앞두고 그린 노년의 쓸쓸함과 슬픔이 묻어난 <추성부도>는 의미가 깊다. 김홍도의 태어난 해와 사망한 해를 몰라 안타깝다고 했다. <추성부>는 북송 시대 문장가인 구양수의 산문시다. 구양수의 시를 그림으로 그린 게 <추성부도>. 바람결에 휘날리는 나뭇잎, 가을의 쓸쓸함은 곧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처럼 비유되기도 한다. 가을의 황량함, 슬픔의 탄식을 읊조린, 김홍도 평생 최고의 걸작이라고 일컫는 그림이다.

 



근대문화예술도 좋지만 조선시대의 산수화나 인물화가 좋다. 김홍도의 그림은 다양하게 보고 읽었으나 겸재 정선의 그림 위주로 나온 책은 드물었던 것 같다. 언젠가 정선의 그림만 수록된 책을 읽어봐야겠다. 그림은 보는 만큼 안목도 좋아지는 법이라는 걸 느꼈다.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 조선 그림의 마음을 들춰보시라.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조선그림의마음 #탁현규 #지식서재 ##책추천 #한국미술 #한국예술 #그림 #회화 #예술서 #김홍도 #정선 #국립중앙박물관 #간송미술관 #호암미술관 #미술해설 #미술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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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1-03 0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지 않을 수가 없네요. 내 취향에 꼭 맞는 도서라 찜합니다.
 
최선의 철학 - 고대 철학가 12인에게 배우는 인생 기술
권석천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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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철학 #권석천 #창비교육

 



중앙일보 논설위원이자 칼럼니스트인 권석천의 고대 철학가 12인에게 배우는 인생의 지혜를 논하는 책이다. 삶의 모든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서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궁극적인 질문을 통해 삶의 지혜를 알 수 있게 한다.

 



사상가들의 철학을 글 몇 줄로 알고 있다고 여기지 않았나, 반성하게 하는 글이었다. 소크라테스 하면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것과 악처에 대한 일화만 기억하고 있었다. 저자는 철학가의 사상을 통해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소크라테스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마흔이 되었을 때 철학자의 길을 걸었다. 아테나이 거리를 걸으며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대화를 나누었으나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새로운 신을 믿는다는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친구와 제자들의 권유에도 망명하지 않고 죽음을 택했다.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며 삶의 통찰력을 배울 수 있도록 했던 그는 신념을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스스로 질문을 하게 된다. 또는 친구들에게 질문을 하여 해답을 얻으려 하는 것과 비슷하다. 질문을 통해 내가 원하는 방향, 삶의 가치를 정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여, 당신은 침묵을 지키며 조용히 살아갈 수 있지 않았나요?”

캐묻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35페이지)







 

비극 안티고네를 쓴 소포클레스를 통해 신념을 위해 침묵하지 않는 용기를 배운다.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의 딸이다. 오이디푸스가 방랑길에 오른 뒤 외삼촌 크레온이 왕이 되며 형제의 시신을 수습하는 것 때문에 반목하게 되었다. 같은 신념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사람마다 다른 법이다. 죽는 한이 있어도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안티고네와 달리 이스메네는 원칙을 지키되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이스메네가 현실적이며 합리적 사고를 하는 것 같다. 안티고네처럼 행동하다가는 현실에서도 부러지고 말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구부릴 줄도 알아야 한다고 하지 않나. 신념을 품고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논하는 저자의 글이 와 닿는다.



 

신념을 품고 산다는 것은 결코 세상과의 대립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확고한 기준을 세우고,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보는 과정입니다. 건설적인 대화와 토론을 향해 마음을 열어놓는 과정입니다. 내 주장과 다른 생각에도 마음을 열고 근거와 논리를 재정비할 때 문제를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신념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이해하게 될 때, 비로소 자기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61페이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모든 문학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저자는 일리아스를 가리켜 공감의 중요성을 알려준 최고의 참고서라고 일컬었다. 일리아스는 트로이아 전쟁에서 파트로클로스가 헥토르와 싸우다 죽자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작품이 시작된다. 헥토르를 쫓아가 그가 죽자 시신을 돌려보내 주지 않다가 프리아모스 왕이 찾아와 아버지의 마음으로 호소하자 그제야 헥토르의 시신을 양도했다. 죽음은 신들의 영역이라고 보는 그리스 신화 속 인물들의 다툼과 각 인물의 활약이 돋보였던 책으로 아킬레우스의 감정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사회 생활하면서 혹은 책을 읽으며 맥락을 잘 찾아야 한다. 맥락이란 무엇인가. ‘어떤 일이 발생한 배경이나 전후 관계를 일컫는다. 저자는 헤로도토스의 역사팩트 너머에 있는 맥락을 볼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아울러 맥락과 함께 열린 관점이 중요한데 헤로도토스는 역사를 기술할 때 들은 것을 그대로 전할 수 있으나 다 믿을 의무는 없다고 말한다. 즉 어떠한 사실에 자신의 견해를 덧붙여 지지한다고 표현했다. 이런 것을 열린 관점이라고 저자는 말했다. 맥락을 찾는 일은 새로운 통찰을 하는데 중요한 일임을 강조했다.



 

내가 지금 놓치고 있는 맥락은 무엇일까? 내 일상 속 작은 변화들, 내가 일시적 유행이라고 치부했던 것들 가운데 진짜 중요한 흐름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맥락이란 것은 강한 확신의 순간이 아니라 의심의 순간에 발견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관건은 열린 자세로 그걸 잡아내느냐, 닫힌 자세로 그걸 놓치느냐에 달렸습니다. (253~254페이지)

 



개인적인 경험은 공감력을 키우는 큰 주제다. 문학에서도 개인적인 경험을 변주해 공감력을 키우고 좋은 작품으로 거듭나지 않나. 독자에게 책을 읽는 경험은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대리 경험하는 것과 같다. 타인의 삶을 비교하고 성찰하며 미래의 삶을 계획한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그 방법들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다.



 

철학서를 한동안 읽지 않았다. 길을 걷다가 길이 막히면 이정표를 확인하는 것처럼,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싶을 때 철학서를 읽으면 삶의 방향이 보이는 걸 느낀다. 머리를 내리치는 도끼처럼 책 속에서 배울 수 있다. 언론인 손석희의 말처럼, 또 한 수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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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술집 - 기억도 마음도 신발도 놓고 나오는 아무튼 시리즈 44
김혜경 지음 / 제철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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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술집 #김혜경 #제철소


 

아무튼 시리즈에 김혼비 작가의 아무튼, 만 있는 줄 알았더니 아무튼, 술집도 있다고? ‘기억도 마음도 신발도 놓고 나오는이라는 부제만 보아도 술꾼들은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나. 아무튼, 술집을 읽으며 술과 술집에 대한 다양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작가를 만든 세계 즉 아무튼 시리즈를 읽는 일은 이처럼 즐거운 일이다. 공감하고 웃으며 새로운 주제를 향한 기웃거림이 계속된다. 명절 전 책이나 몇 권 사볼까 하고 둘러보다가 아무튼 시리즈 중 술집을 발견했다. 김혼비 작가가 이어서 쓴 건가 싶어 살폈더니 다른 작가의 '술집 이야기'였다.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고 싶은 걸 반영하는 것 같다. 어렸을 적 처음 밥집이었던 술집의 기억부터 작가가 범상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글감은 가족사부터 나온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아빠와 관련된 기억을 불러오며 술집 순례가 시작된다.

 


김혜경은 술집의 이름을 그대로 말한다. 술집의 맛있는 안주부터 술집을 운영하는 사장님의 마인드까지 자칫 소설처럼 여겨지는 다양한 에피소드에 절로 흥이 났다. 집보다는 주로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김혜경이 결혼하려고 집을 구할 때도 걸어서 갈 수 있는 술집들이 모여 있는 곳, 망원동을 외쳤다고 할 정도다. 소위 단골 술집이라고 하면 술집에 관한 혹은 술버릇에 관한 에피소드 몇 개 정도 있을 터. 다음 날이면 기억이 나지 않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면 그때는 많이 취한 거다.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도 여러 번. 하지만 술 마시는 장소, 혹은 분위기가 좋아 절주를 할지언정 금주는 못하겠다고 외친다.






 

김혜경의 술집 이야기는 독자를 북적이는 장소로 이끄는 듯하다. 사람들이 모여 있고, 저마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장소에 가깝다. 홀로 술을 즐기려 찾은 장소에 김혜경 작가가 있다면 서로 건배하며 술에 관한 역사를 토론할 것만 같다. 술을 마신 다음날이면 친구가 되는 관계가 되어 있을 것 같지 않나. 거침없이 마시고, 낯선 이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술집에 관한 이야기였다.

 


술 좀 마신다는 사람은, 어쩌면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술잔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맥주나 소주를 마실 때 종이컵은 절대 용납 못 한다는 사람 여기 있다. 한창 캠핑에 빠져있을 때 유리로 된 소주컵을 가지고 다닌 적도 있었고, 깨지지 않는 스테인리스 컵을 사서 가지고 다녔다. 타 지역으로 여행갈 때 지금도 챙기는 컵이기도 하다. 펜션이나 리조트에 의외로 술잔 없는 경우 많다. 소주는 소주잔, 맥주는 맥주잔, 위스키잔, 와인잔 저마다 용도에 맞게 필요하지 않느냐 말이다.

 


술집은 잊고 사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잊기 위해서 마실 때도 있고, 잊어야 할 만큼 마실 때도 있다. 잊다가 잃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알코올이 다량으로 함유된 보통의 술자리는 어쩔 수 없이 휘발성이다. (중략) 그런 자리를 거듭해본 분이라면 공감하겠지만, 망각은 괜히 선물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모두의 품위 유지를 위해 적당히 흘려보내는 미덕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 술자리, 그런 의식 있는 자리들의 집합소가 술집이다. (108페이지)

 


김혜경은 광고회사에 다니는 회사원, 팟캐스트 시시알콜에서 김풍문이라는 이름의 진행자다. ‘시시알콜은 술 마시며 시를 읽는 팟캐스트다. 언젠가 외로울 때 혼술하며 들어보고 싶다. 집에 가듯 술집에 간다는 김혜경을 보며 인생 참 재미있게 사는구나여겼다. 내친김에 시시알콜을 켰더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대낮에 들으니 적응이 되지 않았다. 술 마시며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금요일을 애타게 기다린다. 바로 술의 시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평일이 끝나는 금요일 이른 저녁부터 어떤 안주에 어떤 술을 마실까 생각하며 즐거워한다. 소주 약간을 맥주컵에 붓고, 맥주를 3분의 1 정도만 채운 소맥 첫 잔은 짜릿하다. 소맥 서너 잔을 마신 후 소주를 주로 마시는데 금요일을 그리워하는 기분을 알까. 맥주, 소주, 위스키, 브랜디, 와인 등 주종을 가리지 않고 즐기는 술꾼들의 파티는 금요일 오후부터 시작이다.

 

 

#아무튼술집 #김혜경 #제철소 ##책추천 #문학 #에세이 #에세이추천 #한국문학 #한국에세이 #아무튼시리즈 ##아무튼시리즈44 #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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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주정뱅이 #권여선 #창비




언젠가부터 이 소설이 자꾸 내게 말을 거는 듯했다. 어디를 가든 따라오는 무엇처럼 내 시선에 띄었다. 제목이 주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읽지 않고는 못 배길 그런 책 말이다. 책을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가 구매했다. 책탑의 아래쪽에 있다가 연휴에 슬쩍 올라온 책이기도 하다. 드디어 권여선 작가의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처음엔 장편소설인 줄 알았다. 책을 펼치고 주정뱅이들의 삶을 말하는 단편임을 알았다. 7편의 단편에서 각자의 삶을 이루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인간의 내면과 그 이면에 있는 감정들은 결코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흔셋의 나이에 결혼식장에서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 수환과 영경이 주인공인 봄밤을 보자. 사업 실패와 이혼, 신용불량자인 수환, 교사였던 영경은 이혼 후 양육권을 가졌으나 남편과 시어머니가 짜고 아이를 데리고 이민 가버린 상황에 맞닥뜨린 후 중증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다. 류머티즘 환자인 수환이 입원한 요양원에 아파트를 정리해 입주금을 내고 영경이 들어왔다. 타인의 고통을 제대로 알기란 어렵다. 고통을 참아가며 영경의 음주 외출을 배웅하는 수환을 바라보며 어떤 상황이 와도 상대방을 향한 감정은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한다. 수환이 죽은 후 알코올성 치매로 다시 요양원에 입원한 영경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게 차라리 잘된 일일 지도 몰랐다. 수환과 영경을 지켜보며 먹먹해졌다. 삶의 바닥까지 내려간 사람이 서로 의지하고 헌신하는 모습에서 무심한 마음을 지녔던 지난날을 돌아보았다.



 

이모라는 작품 또한 봄밤과 비슷한 양상을 띠는 소설이다. 남편에게 큰이모와 외삼촌이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가 일주일에 한 번, 월요일 오후 큰이모를 만나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듣는 내용이다. 평생 직장생활하며 가족을 부양했던 이모는 시외삼촌이 도박 사고를 칠 때마다 도와주었다. 자유롭게 삶을 살고자 했던 이모는 편지 한 장을 써놓고 사라졌다. 췌장암 선고를 받고 투병 중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누군가에게 지난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위로받고 싶은지도 몰랐다.



 

어쩌면 기억이란 매번 말과 시간을 통과할 때마다 살금살금 움직이고 자리를 바꾸도록 구성되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106페이지, 이모중에서)

 



제목처럼, 작품의 주인공은 주로 술을 마신다. 슬픔과 고통을 잊기 위해, 즐거움 혹은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고 말하지만, 술을 멀리하는 사람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고통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다가 알코올 중독이 되는 사람은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일 수 있다. 소설 역광의 주인공도 그런 인물에 가깝다. 신인 작가로 예술인 숙소에 입주했다. 좌담회 때문에 외출했다 돌아와 문을 열고 들어가다가 공용 발코니에 누군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숙소로 들어가 커피잔에 소주를 부어 마시는 모습에서 알코올 중독자일 거로 짐작되었다. 예술인 숙소에 위현이란 작가가 입주하고 그와 술을 마시며 그가 공용 발코니에 있었던 사람이었다는 걸 알았다. ‘매초 매초 알코올의 메시아가 들어오는 게 느껴집니다라고 말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글이 안 써지면 술에 의지해 글을 써보려는 작가의 고통과 절망이 느껴졌다. 제목 역광처럼 비친 그림자에서 상상 속 인물의 흔적을 찾으려는 작가를 비춘 것 같았다.

 



곧 헤어질 부부와 이별 여행을 떠나는 삼인행에서는 그들이 무슨 이유로 헤어지는지 짐작할 수 있고, 박사 과정을 수료한 여성과 헬스트레이너가 만나 헤어지는 이야기인 은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사랑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임을 알게 한다. 물론 이면의 진실은 나중에 드러나지만 말이다. 반듯한 청년으로 보였던 사람이 내뱉는 말투에서 실망하지 않기란 어려운 법이다. 서로 다른 층위에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제목처럼 느껴졌다. 실내화 한켤레는 고등학교 시절 이후 오랜만에 만난 세 명의 친구들이 다시 만나 하룻밤을 보내며 과거 헤어진 이유를 찾는다. 관계라는 것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누구 하나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며 모두의 노력으로 관계가 이어지는 것이다. 다시 만나도 다시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 같은 것이다.



 

권여선 작가의 이름은 익숙하나 작품은 처음이었다. 삶을 관통하는 주제와 내면의 깊이가 묻어난 인물들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다. 계속 읽고 싶은 작가였다. 권여선 작가를 제대로 알게 한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안녕주정뱅이 #권여선 #창비 ##책추천 #문학 #소설 #소설추천 #한국소설 #한국문학 #단편소설 #단편소설추천 #동인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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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창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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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창 #구병모 #문학동네

 



타인과 눈을 마주치거나 몸이 닿았을 때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다는 작품은 꽤 있었다. 하지만 베인 상처에 손을 대면 그 사람의 마음을 읽는 주인공은 처음이었다. 피가 나는 상처에 손을 넣으면 세균이 묻는 건 당연하고 서로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보통 사람의 경우 베인 상처에 손을 댈 일이 없으므로 자기에게 그러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정확하게 인지하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나쁜 일에 이용하려는 사람이 나타날 테고, 그 사람은 위험에 처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상처 읽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인물 중 하나이며, 다른 한 사람은 상처 읽는 사람보다 나이가 많은 사십 대의 여성으로 아가씨의 독서 선생님이다. 저택에 갇혀 있는 아가씨와 함께 책을 읽고 책 이야기를 하는 선생님이라는 설정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이름이 없다. 두 여성 화자 외에 그들의 대상이 되는 나쁜 남자 문오언이라는 이름뿐이다. 이 이름조차 외국 이름처럼 보인다. 오언은 아가씨에게 상처를 읽게 하는 남자다. 이십 대의 상처 읽는 아가씨와 아가씨의 독서 선생님이 소설을 이끌어가고, 그들이 쓰는 말투에서 화자를 분별할 수 있다. 아가씨가 어떻게 상처를 읽게 되었는지 선생님에게 말하기 시작한다. 갇혀 지내다시피 해서 다정함에 기대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게 아닐까. 물론 선생님은 아가씨의 마음을 얻기 위해 나름의 방법을 취하긴 했다. 아가씨는 독서 선생님에게, 독서 선생님은 다른 존재에게 말하는 장면에서 사건의 본질을 파악해야 했다.





 

마음을 읽는 일은 고통이 따른다. 아가씨 앞에서 몸에 상처를 내 피를 흘리며 마음을 읽어보라고 한다면 알고 싶지 않은 일까지 몰려오지 않겠나. 마음을 읽는 사람과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 그를 구하고자 하는 사람이 주축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과 동시에 끊임없이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이다. 자기의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건 인간의 본성일 수도 있겠다. 소설을 읽으며 상처를 헤집어 그 마음을 읽게 하는 나쁜 남자가 도리어 자기의 마음을 읽어달라는 장면에서 의문이 들었다. 이 남자는 어떤 마음인가. 자기의 내면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의 마음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보스에게 처음 면접 보러 간 날에 어떤 장면을 보았다. 거구의 남자에게 상처를 입히고, 그 상처를 헤집어 아가씨에게 남자의 마음을 읽게 했다. 싫은 내색을 하지만 별수 없이 그 남자를 읽어 보스에게 전해주는 아가씨를 보았음에도 입주 독서 교사로 일하게 되었다. 남편의 죽음, 시부모님의 죽음 뒤 빚을 갚고 집이 필요했다는 핑계를 대면서 눌러앉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진작에 도망가고 말았을 것이다. 아니면, 신고를 했겠지. 목적이 있었을 거라고 유추하게 되었다.



 

고전 문학 특히 셰익스피어 작품의 인용 구절이 많다. 상처를 헤집어 마음을 읽는 부분에서 베니스의 상인은 피할 수 없는 주제다. 친구를 위해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리고, 빚을 갚지 않으면 심장 부근 1파운드의 살을 베는 조건을 내걸었던 이야기다. 포샤의 현명한 재판으로 기억하는 소설 말이다.

 



네가 읽은 것에 대해 생각하면 돼. 좋고 싫고 같은 것 말고 생각을 하라고. 자기 나름대로의 해석과 판단과 응용. 작가는 왜 인물의 감정을 안 보여주고 인물이 바라보는 풍경만 실컷 펼쳐놓고 지나가버릴까 하는 것. 우리가 지금 여기 있는 건 이 장면이 슬프다든지 이 서술이 불쾌하다는 호불호 차원의 감상을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슬픔이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그것을 둘러싼 배경을 분석하고 그 염오가 발휘하는 효과는 과연 무엇인지를 다각도로 생각하기 위해서야…… (61~62페이지)



 

책을 읽는다는 것. 타인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 우리는 책을 읽으며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려 애쓰고, 문학 작품 속에서 우리의 삶을 대신 경험하며 그 의미를 파악하려 질문을 건넨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이해하려는 과정 또한 중요하다. 타인의 마음을 읽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상대방의 마음을 알지 못해 생기는 고단함. 때로 그 감정은 이별을 동반하는 수도 있다. 내 마음 같지 않다고 하는 것도 타인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상대방이 내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기란 도통 어려운 일이다. 작가는 독자의 예상과 전혀 다른 인물을 창조했다. 구병모 작가의 매력을 다시 한번 느꼈던 작품이었다. 많은 독자가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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