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꽃이 피었습니다 - 아이에게 읽어주다 위로받은 그림책
박세리.이동미 지음 / 이야기공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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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면 서로의 암묵적인 합의가 필요하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개인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을 것, 각자의 사생활을 존중할 것, 눈치를 장착할 것, 적어도 이 세 가지를 염두해 둔다면 인간관계의 기본은 갖춘 셈이다. 기본을 지키지 못해 벌어지는 문제들이 허다하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곰씨가 느낀 감정은 자괴감이었을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요"라는 말 한 마디를 미룬 대가는 컸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은 분명히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관계가 깊어지면서 피로감이 생긴다면 용기를 내어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전달할 필요도 있다. 상대방에게 관계의 안전거리를 알려주는 세심함은 건강한 관계의 출발선이다.

pp.27~29 [적당한 거리], [곰씨의 의자]

나는 사소하고 자잘한 감정싸움을 시작으로 결혼의 실상을 체감했다. 그러면 결혼과 동시에 고구마 줄기처럼 딸려오는 양가 가족과 겪는 감정의 결들은 어떨까? 말해 무엇하리. 결혼이 장엄한 여정인 이유다. 한명의 사소한 습관을 맞추는 것도 이처럼 비생산적인 시간을 거치는데 가치관은 오죽할까? 결혼이 멜로에서 서스펜스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이다.

p.33

가족이 된다는 것은 '상대방의 은어를 읽을 줄 안다'는 의미다. 상대방의 은어란, 같은 환경에서 오랜 시간을 공유한 구성원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특수어를 말한다.

p.39 [두 사람], [바람의 우아니]

K-직장인의 입장에서 사토신의 그림책 <뭐 어때!>의 적당씨는 이름처럼 적당히 사는 사람처럽 보였다. 비상사태에 대하는 태도가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

나와 아이에게 이런 상황이 닥쳤다면 분명히 "어떡해"로 시작해 온갖 투덜거림으로 시간을 채웠을 것이다.

이후 아이와 나는 한동안 당황스럽거나 해내지 못한 작고 소소한 일들 앞에서 "뭐 어때!"를 외쳤다.

pp.80~81 [에드와르도 세상에서 가장 못된 아이], [뭐 어때!]

"언니는 아이를 향한 믿음이 조금도 없어? 아이 스스로 필요할 때 방법을 찾아낼 거라는 믿음 말이야. 그러다가 힘에 부치면 도움을 청하겠지. 그때 아이에게 도움을 주는 게 어떨까? 언니!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고 건강해. 믿어줘. 언니 아이를...."

p.145 [이까짓 거!], [엄마랑 나는 항상 만나]

평소 어수룩한 행동으로 맹추라 놀림 당하는 암거위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피튜니아. 어느 날 풀밭에서 책 한 권을 발견한 그녀는 목장 주인의 말이 떠오른다.

"책을 지니고 있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지혜롭다."

그날 이후, 그녀는 책을 날개 밑에 품고 다니며 애지중지한다. 날개에 품고 다녀도 읽지 않고서야 지식을 습득할 수 없지만, 피튜니아는 자신이 지혜로워진 줄 알고 목까지 점점 늘여빼고 다니며 으스댄다.

무지와 무식을 기반으로 하는 신념이 더 무서운 법이다.

pp.212~213 [피튜니아, 공부를 시작하다]

박세리, 이동미, <그림책 꽃이 피었습니다> 中

+) 이 책은 '아이에게 읽어주다 위로받은 그림책'이라는 부제로 책의 내용을 충분히 상상하게 만든다. 그림책을 읽고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해온 두 작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작가가 각각 한 권 혹은 두 권의 그림책을 읽으며 때로는 자신의 인생에, 때로는 자신의 가족과 아이에, 그리고 또 때로는 일반적인 우리 모두에 그림책 속 주인공들의 모습을 이입해본다.

그들의 상황에 공감하기도 하고, 그들의 모습을 응원하기도 하며, 그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그들의 입장이 되거나 그들이 우리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수많은 역할을 갖고 있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많은 부분을 깨닫는다.

두 작가의 글에서 발견한 공통점은 '어른'과 '엄마' 그리고 '마흔'과 '더 나은 나'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에는 어른으로서, 엄마로서 수없이 고민하는 우리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글, 마흔이라는 두번째 사춘기를 거치며 끝없이 흔들리는 우리의 손을 잡아주는 글, 그렇게 더 나은 나의 모습을 다짐하며 한 걸음 나아가는 용기를 보여주는 글 등이 담겨 있다.

이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그림책을 여러 권 읽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 그 수많은 그림책의 내용이 짐작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림책이 가득 꽂힌 곳을 찾아 마음껏 그림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동화와 동시가 철학적이라고 느낀 적이 많은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림책이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지 알게 되었다. 그림책에 대한 흥미가, 이 책의 제목처럼 내 마음에 꽃이 피지 않았나 싶다.

읽는 내내 설레고 행복했다.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이 맞지만,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도 맞다. 이런 그림책들을 읽다보면 아이와 함께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행복해지지 않을까.

책은 읽는 사람마다, 읽는 사람의 상황마다 공감되는 부분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곱씹어 읽어도 괜찮을 듯 하다. 읽을 때마다 마음과 눈길이 가는 지점이 달라져서 마음이 가벼워질 듯 하다.

모처럼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책을 읽은 듯 하다. 그림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따뜻한 위로와 공감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권해본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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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당뇨 : 당뇨식사법 - 전4권 - 당뇨관리 코칭북 쉬운당뇨
닥터다이어리 지음 / 닥터다이어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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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매일 식사 기록하기

식사 기록은 여러분이 섭취한 음식이 혈당의 변화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는 과정입니다.

식사의 시간, 메뉴, 양 등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여기에 식후 혈당을 측정하면, 여러분이 특별히 조심해야 하는 음식을 찾을 수 있고 그 음식의 양을 조절할 수 있는 노하우가 생깁니다.

p.18

ㅡ 당지수

쌀밥=70, 보리밥=35, 찹쌀밥=66

찐 감자=94, 찐 고구마=71, 찐 호박=52

도토리묵=72, 메밀묵=66, 청포묵=55

p.27

ㅡ 저당지수 밥상

음식을 가급적 원재료 그대로 먹는다면 당지수를 낮춘 밥상을 꾸밀 수 있습니다.

밥은 쌀밥보다는 잡곡밥을 선택하고, 채소 반찬의 섭취를 늘리면 저당지수 밥상을 완성할 수 있어요.

과일은 주스 형태보다는 껍질째 생과일로 섭취하고,

식품의 당류 파악이 어려울 때에는 영양성분표를 확인한다면, 저당지수 간식을 선택할 수 있어요!

p.30 [1권]

ㅡ 육해공 단백질 먹기

더 간강하게 양질의 단백질을 섭취하고자 한다면, 다양한 종류의 단백질을 골고루 섭취해야 합니다.

육류, 생선, 해산물, 가금류, 난류 등이 대표적인 동물성 단백질 식품인데요.

이러한 육해공 단백질은 기름기가 적은 부위를 섭취하는 것이 더 건강한 선택입니다.

또한 두부, 병아리콩, 검은콩 등의 식물성 단백질도 함께 섭취하는 것이 좋은데요.

p.18

ㅡ 대체 설탕으로 단맛 내기

대체 설탕은 설탕처럼 단맛을 내지만 혈당이 오르지 않습니다.

시중에 파는 0kcal 음료나 무설탕 제품은 나한과, 스테비아, 알룰로스와 같은 대체 설탕을 사용했어요.

하지만 대체 설탕 섭취 시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과잉 섭취 시 복통 및 설사를 유발하기 때문에, 1회 적정 섭취량 정도만 섭취해야 해요!

p.30 [2권]

ㅡ 저혈당 간식 챙기기

저혈당이 올 때는 당지수가 높은 간식을 먹어야 합니다.

저혈당 때문에 어지럽고, 식은땀이 나면 혈당을 빨리 올려줘야 해요.

이때 15g 정도의 당질을 먹어야 합니다.

(예 : 젤리 3~5개, 사탕 3~5알, 주스 1/2잔, 요구르트 1개반, 콜라 1/2잔 등)

p.20 [3권]

ㅡ 일상 속 천천히 먹기

식사할 때 대화를 즐기며 먹기 / 스트레스 받는 일들 모두 잊기 / 의식적으로 천천히 먹기 / 식사 시간 20분 타이머 맞추기 / 식사 시간의 휴식을 누리기 / 한 입 먹을 때 20번 이상 씹기 / 혼자가 아닌 여럿이서 같이 먹기 / 천천히 식사를 하는 사람의 속도에 맞춰 먹기 / 채소, 단백질 반찬 골고루 먹기 / 젓가락으로 먹기 등등

p.23 [4권]

닥터다이어리, <당뇨관리 코칭북 쉬운 당뇨 1권~4권> 中

+) 이 책은 당뇨병 진단을 받았거나 진단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반인에 비해 당수치가 높은 사람들이 읽으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총 4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공책 크기로 각각 70쪽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그림과 도표 등을 활용하고 있어서 읽는데 지루함이 없고 재미있다.

당뇨 진단을 받은 사람들은 식단이 굉장히 중요하다.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힘든 일도 없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건강한 식단을 유지하고, 먹고 싶은 것을 건강하게 조금씩 먹을 수 있는 방법들을 제안한다. 대체 식재료를 권해주고, 조리방법을 당뇨 관리에 맞게 가르쳐주며, 적당한 섭취량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저자는 건강한 식습관 형성을 위해서 '평가하기-조언받기-목표설정하기-도움받기-미션도전하기' 등의 단계를 설정하여 설명한다. 현재 자신의 건강 습관을 평가하고, 문제점이 있다면 개선방법을 찾고, 하나씩 건강 습관 목표를 세워 지켜가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 책은 다이어리 형식이라 꾸준히 실천 습관을 체크해서 스스로 확인해볼 수 있기에 도전할 의욕이 생긴다고 느낀다. 저자는 당뇨 식사 커리큘럼으로 4주 챌린지를 제안하고 있다. 어려운 내용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읽고 배우면 4주 뒤에는 당뇨인들을 위한 건강한 식습관의 틀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당수치가 높아서 고민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겠지만, 일반인들이 읽어도 유익한 것 같다. 건강한 식단은 병이 생기기 전에 먼저 예방하는 것이 우선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건강한 식습관에 대해 유익한 지식을 이해하기 쉽게 알게 되어서 반가웠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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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 아저씨의 개 책마중 문고
세실 가뇽 지음, 이정주 옮김, 린느 프랑송 그림 / 어린이작가정신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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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 씨의 개가 죽었어요."

난 그 자리에서 뒤돌아 섰어요. 눈 깜짝할 사이에 슬픔이 밀려왔어요!

한번은 토비와 함께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던 아저씨는 토비에게 이야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나도 그랬어요. 진짜로 있었던 일이나 지어낸 이야기나 베란다에서 들은 이야기를 내 고양이 푸푸피두에게 들려주었지요.

푸푸피두는 내 이야기를 듣다가 아는 사람의 이름이 나오면 안다는 듯이 방긋 웃었지요.

엄마와 아줌마가 말한 대로 토비가 죽고 없으니 이제 아저씨는 아무와도 이야기할 수 없을 거예요. 먼 나라에서 파벨 아저씨를 기다리고 있을 어린 딸도 무척 보고 싶을 테고요.

pp.13~17

하지만 내가 태어난 뒤로 푸푸피두는 나를 가장 좋아했어요. 어떻게 보면 고양이가 나를 선택한 거라고 할 수 있어요. 틀림없어요. 왜냐고 묻지 마세요. 그건 나도 모르니까요.

p.23

푸푸피두가 열병에 걸려 죽은 뒤, 그동안 푸푸피두가 내 마음속에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했는지 새삼 깨달았어요.

더욱 마음이 아팠던 건 푸푸피두를 더는 보지 못한다는 게 아니라 내 사랑이 이제 쓸모없다는 거였어요. 마음이 텅 빈 것 같았어요.

지금 파벨 아저씨도 그때의 나와 같은 마음일 거예요.

pp.29~31

처음에 느꼈던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변하더니, 절대로 녹지 않을 딱딱한 공이 되었어요.

p.34

하지만 분명한 게 있어요. 앞으로 누군가의 개가 죽었다는 말을 듣게 되면 조심할 거예요. 진짜 개가 죽은 게 아니라 나쁜 일이 생겼다는 뜻일 수도 있으니까요.

p.62

세실 가뇽, <파벨 아저씨의 개> 中

+) 이 책은 외국인 요리사 파벨 아저씨와 그의 개 토비의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과 자기의 고양이 푸푸피두의 모습을 생각하는 아홉살 아이의 시선을 담고 있다. 아이는 현재 아저씨 곁에서 친구이자 가족인 토비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며 함께 슬퍼한다.

자기가 사랑하던 고양이 푸푸피두가 죽었을 때 얼마나 슬펐는지 떠올리며 아저씨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그리고 아저씨에게 위로가 될 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고 고민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푸푸피두의 모습을, 사진이 없어도 그 모습을 떠올려 그릴 수 있는 푸푸피두의 그림을 그려 선물하기로 결심한다.

이 책에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마음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고 그 슬픔을 함께 나누고 싶은 쥐스틴이 등장한다. 이 아이는 아저씨가 외국인인 것도, 아저씨가 기르는 동물이 자기가 좋아한 고양이가 아니라 개라는 것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오직 아저씨가 사랑하는 토비를 잃었고, 그 슬픔이 얼마나 크고 오래갈 지 알고 있기 때문에 위로해주고 싶은 것만 생각한다. 이런 쥐스틴의 모습을 보면서 어른들이 갖고 있는 편견과 고정관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알게 모르게 내재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이 부끄러웠다. 책을 읽으면서 쥐스틴처럼 그들도 우리의 이웃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다.

또 이제 개와 고양이를 기르는 것은 더이상 동물을 키우는 개념이 아니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아이의 말처럼 고양이가 그를 사랑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토비 또한 그와 함께 살아가기로 선택한 것이다. 아저씨와 쥐스틴과 말이다. 우리에게 가족이란 무엇인지, 개와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삶이란 무엇인지 알려주는 책이었다.

고양이가 죽었을 때 무척 슬펐던 아이의 감정이 너무 잘 이해되는 작품이다. 그 마음이 얼마나 크고 단단한 공으로 가슴에 남는 지 아는 아이가, 아저씨의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고 그를 배려하는 모습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 책은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이들 모두 읽어보아도 좋을 것 같다. 또 아이들이 읽는다면 누군가를 배려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게 되지 않나 싶다. 어른들에게는 쥐스틴을 보며 자기 마음의 깊은 곳을 돌아볼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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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행성서비스센터, 정상 영업합니다 네오픽션 ON시리즈 4
곽재식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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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연구원 중에 자주 지각한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냐, 왜 천문관의 청소비용을 이렇게 많이 썼느냐 등을 따지면서 연구원들이 무능하고 나태하며 사악하다고 지적하는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은하교통연합에 관한 이야기나 우주 공간의 현재 상황을 묻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거기에 모인 사람 중에 소행성이 어떻게 생겼는지,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들도 없어 보였다.

"우리가 보냈던 소행성 위험 안내 자료를 결국 열어보지 않은 채로 거절하겠다는 연락이 왔어요."

"자기들도 어쩔 수 없대요. 규정이 있는데 어기면 혹시 문제 생겼을 때 자기들이 처벌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pp.18~19 [철통 행성]

"제가 붙잡혀서 갇혀 사는 게 아니라, 로봇들을 이용하고 활용하면서 사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어때요? 아니, 애초에 저런 고성능 로봇들이 왜 이쪽 은하계에 퍼져서 살고 있을까요? 제가 알기로는 옛날에 고성능 로봇들이랑 같이 이쪽으로 건너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자기는 놀고 로봇들이 일해서 자기를 먹여 살리도록 프로그램 해놓았다고 해요. 그게 이 지역의 역사라고요."

pp.68~69 [양육 행성]

"당연히 정상적인 일은 아니겠지. 그러니까 우리 회사 같은데도 일감이 떨어진 것이고. 어쩌겠어? 회사 차려서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어떻게 먹고 살겠어? 21세기 한국에서 내려오는 사업에 관한 명언이 있잖아. '돈을 번다는 것은, 남이 하기 싫은 일을 내가 하고 그 때문에 돈을 받는 것이다.' 그 말이 맞아."

p.77 [의미 행성]

"그렇지만 선생님을 구조하지 않고 그 세균을 살려두면, 먼 훗날 온 우주의 모든 생명체가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진정한 행복을 얻으며 수천조의 가치가 되는 돈을 계속 벌어들이면서 그 막대한 돈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에게 굉장한 기회를 줄 수 있을 겁니다. 과연 선생님 목숨 하나를 살리기 위해 그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할까요?"

"모르겠고요. 만약에 저한테 구조 우주선을 한 보내주면 제가 여기서 살균 스프레이를 뿌려서 그 세균들 다 없애버릴 겁니다. 알아서 하세요. 저는 이제 통신을 끊고 기다릴 겁니다."

pp.104~105 [생명 행성]

곽재식, <은하행성 서비스센터, 정상 영업합니다> 中

+) 이 책은 우주의 여러 행성을 방문하여 갖가지 행정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작소설집이다. 12개의 행성마다 그 행성의 존재 이유에 맞게 때로는 로봇이, 또 때로는 사람이 살아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은하행성 서비스센터' 직원들이 해결하는 일을 담고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누군가는 문제로 보는 현상을 누군가는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전하는 해결책이 그들에게는 올바른 해결 방법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래도 은하행성서비스센터 직원들은 맡은 바 업무에 충실히 일한다. 실패할 확률이 높은 일의 해결을 시도하는 일일지라도 말이다.

12편의 연작 소설은 독립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지금과는 조금 먼 세계인 우주 행성의 모습들을 풀어냈지만, 미래 공학이 발전한다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지 않나 싶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들은 저자의 엉뚱하고 신선한 상상력이 발휘된 결과라고 느낀다.

물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은하행성에서 융통성없이 진행되는 행정 절차를 보며 현재 우리 상황의 모습과 꼭 닮아서 씁쓸하기도 했다.

작가의 위트 있는 문장으로 유쾌함을 느끼는 순간도 있었고, 미래의 일임에도 개연성이 높아서 안타깝거나 씁쓸하게 느끼는 순간도 있었다. 간만에 막연하지 않은, SF소설들을 읽어본 듯 하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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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푸른 고래 요나 - 제12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김명주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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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자기만 생각하고 엄마 아빠 모두 언니만 생각한다. 나도 언니만 생각한다. 나는 나를 언제 생각할까. 언니가 나를 생각해주면 좋겠다.

언니는 프로기사가 되어야 하니까. 언니가 나를 생각하면 바둑을 잘 두지 못하겠지. 내가 연습생이 된다면 언니도 나를 생각하겠지.

p.58

너는 바다를 배운다. 너는 땅을 배운다.

너는 고래를 배운다. 너는 인간을 배운다.

요나는 깊은 바다로 들어갔다. 암흑의 물속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나왔다.

나는 바다 아래를 보여준다. 나의 고향을 보여준다.

p.219

엄마의 늦된 깨달음과 무관하게 요나는 자신의 습성을 찾아갔다. 고래이면서 인간이고, 고래가 아니면서 인간이 아닌 요나는 바다와 땅의 두 세계를 자신만의 습성대로 정렬시키고 있었다. 고래를 대하듯 인간을 대하고, 인간을 대하듯 고래를 대하며, 땅의 습성으로 바다를 살아가고, 바다의 습성으로 땅을 살아가는...... 별개의 고래인간이 되어 있었다.

p.301

아무리 정이 깊다고 해도 당사자의 고질적인 불행은 누구도 구제할 수는 없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의 십자가를 같이 짊어지는 고생에 떠밀렸듯이 갑절의 불행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p.323

그리움이 살아가는 이유라고 말했어요. 일흔을 바라보는 황혼이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는 이유가 찾아가지 못할 어머니의 고향 성주 땅과 만나지 못할 막내아들을 오늘의 삶에서 그리워하기 위함이라고요.

그리움이 남은 삶의 자기 일이라고 말했어요. 다시 만날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삶을 하루하루 쌓아간다면서요.

p.389

김명주, <검푸른 고래 요나> 中

+) 이 책은 혼불문학상 수상작으로 한국 기원 연구생 출신으로 아이돌 스타를 거쳐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지내는 강주미, 그리고 고래인간의 비밀을 간직한 고등학생 최요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주미 중심의 이야기이다. 주미 동생 혜미의 불행한 사고로 바둑 프로기사를 생각하던 주미의 목표는 혜미의 꿈이었던 아이돌로 바뀐다.

1부에서는 연습생으로 오디션에 참가하며 사람들과의 소통 문제를 겪는 주미의 모습과, 아픈 가족사에 대한 당사자와 타인의 시선 차이, 그리고 아이돌처럼 주목 받는 사람들이 겪는 고충 등으로 구성된다.

2부는 요나 엄마 최구희의 시선으로 이어진다. 이 부분은 요나를 잉태하게 된 사건과 고래인간 요나의 성장과정을 이야기한다. 고래인간인 요나가 고래로서의 정체성을 찾아 깊은 바다에서 동류의 고래들과 함께 생활하기도 하고,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 사회와 사람을 관찰하듯 바라보는 요나의 모습이 제시된다.

3부는 고래와 인간 그 어느 쪽도 아닌 고래인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에게 쫓기는 요나와 요나 주변인물들의 모습이 속도감 있게 그려진다. 이를 통해 인간의 잔인한 면모를 제시하고,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려는 고래인간의 선한 본성을 담아낸다.

이 소설은 꽤 긴 분량의 장편소설로 각 부에 따라 소설의 갈래가 다른 느낌을 받는다. 고등학생들의 성장기와 첫사랑을 담은 청춘로맨스물에서, 고래인간이 등장하게 된 사회적 사건과 환경 문제를 담은 환경소설 혹은 판타지소설에서, 고래인간을 실험하기 위한 조직적인 움직임을 다룬 스릴러 혹은 액션물까지 이어진다.

이 소설은 환경문제, 화려한 대중문화의 이중적인 모습, 국가적 사건의 은폐 문제 등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담고 있는 작품이었다. 고래에 대해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기에 고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보면 더 흥미롭지 않을까 싶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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