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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 따위 넣어둬 - 365일 퇴직을 생각하는 선생님들께
장정희 지음 / 꿈의지도 / 2025년 11월
평점 :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나는 어차피 삶을 견디는 것, 버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스트레스가 나쁜 일에서만 생기는 게 아니다. 좋은 일에도 긴장을 일으킨다. 그러기에 우리의 일상은 크고 작은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다. 누구나 견디며 살아간다면, 억지로 버티느냐, 기꺼이 버티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왕이면 기꺼이 버티며 살아가자는 거다.
숨구멍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겐 피아노, 요리, 독서가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겐 식구들 잠든 밤에 마시는 차 한 잔의 고요가 될 수도 있다.
p.26
나는 머릿속이 멍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것이 없을 때는 걷는 편이야. 1박 2일로 걷기도 하지. 하루 일곱 시간도 여덟 시간도 걸어. 물론 혼자 걷지. 구례, 고창, 순천, 해남, 순창, 광주 천변을 따라 영산강까지 가본 적도 있어.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절뚝이며 걷는 동안 내 안의 모든 에너지와 물기가 다 빠져나가는 게 중요해. 학대에 가까울 만큼 완전 연소를 시키는 거야. 집에 도착할 때는 쓰러질 정도가 되도록.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면 비로소 내 안에 새 물이 찰랑찰랑 차오르는 것을 느껴.
p.42
등급을 매기는 구도에서는 누구 하나는 꼴찌가 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문제는 노력을 인정받기 어렵다. 학점과 아르바이트와 자격증과 어학 공부에 죽을 둥 살 둥 매달려도 모두가 목표를 달성할 수는 없다. 부족한 일자리로 인해 취업하지 못한 청년들에게 '노력 부족'이라고 할 것인가. 자영업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느끼는 고통은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 시스템의 문제 또는 모순된 사회 구조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기에 슬픔은 나만의 슬픔이 아니라 우리들의 슬픔이 된다. 우리가 서로의 슬픔을 공유하고 손을 맞잡아야 하는 이유다.
p.81
"우리의 내면에도 뜸 들이는 시간이 필요해요. 혼자만의 고요함 속에서 사람들과 지내는 동안 부풀어 올랐던 온갖 감정들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들여다보는 시간 말이에요. 고독은 이처럼 우리에게 삶을 돌아보고 성찰하게 만들어주는 시간이죠. 그러니 여러분,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말아요. 고독은 우리를 안으로 익어가게 해 주는, 내적으로 성숙하게 만들어주는 시간이니까요."
pp.94~95
"쌤, 새로운 삶을 위해서 과거 인연을 끊으면 많이 외로울까요?"
잠시 할 말을 잃고 있던 내가 겨우 입을 열었다.
"새로운 삶은 또 다른 인연을 데려오기도 하니까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네가 만들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이 그 시작이니까."
p.102
그렇다. 나는 아이에게 진 게 아니었다. 용서를 받은 거였다. 용서 받는 마음이 그렇게나 아픈 줄 그때 처음 알았다.
p.117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그를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어. 처지를 바꿔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거야. 아빠도 아빠의 자리에서, 오빠도, 새엄마도, 할머니도, 제각각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 어딘가 아쉽고 불만스러운 점도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바람(욕심)으로 생각하니까 그런 것일지도 몰라.
p.120
"내가 글을 써보겠다고 생각하고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떨쳐내지 못한 콤플렉스 중의 하나는, 재능도 없는 데다 살아온 삶 또한 지극히 평범했기에 고통이라는 재산도 없다는 사실이었어. 그래서 늘 작가로서 자격 미달이라고 생각했지."
"네 불행한 삶은 너의 잘못이 아니야. 네가 아픔을 겪는다면 그건 너를 둘러싼 세계의 시스템과 어른들의 잘못이다.
게다가 글쓰기의 가장 큰 힘은 글 쓰는 사람 자신을 먼저 치유하고 구원한다고 믿어. 그것이 독자의 공감으로 이어지지."
pp.221~222
장정희, <존경 따위 넣어둬> 中
+) 이 책의 소개 글을 보면 '대한민국 교사의 비망록'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이와 같이 이 책은 퇴직한 교사가 40년 동안 국어 선생님으로서 살아온 삶과, 작가로서의 삶 그리고 한 가정의 아내로서의 삶도 담겨 있다.
정확히는 다양한 역할의 삶을 살면서 저자가 느끼는 고민과 복잡한 감정 등을 실은 책이다. 에세이집임에도 방대한 분량이 인상적이었는데, 천천히 읽다 보면 저자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살았는가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성실하고 열정적인 선생님들이 요즘 학교에 많다고 생각하니 든든하면서도, 그들이 겪을 내적 고민과 그들이 감당해야 할 상처가 이해되어 안쓰러운 마음도 깊었다.
교사로 산다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학생으로 사는 것도 참 피곤한 일이다. 우리 사회는 아이들에게 '기본' 혹은 '근본'이라는 개념 하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그런 것들이 정말 살면서 필요하다면 중요한 것만 선택해 깊이 있게, 아이들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하도록 시간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본인들의 기준으로 교육과정을 개정하고 개정하며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이렇게 경쟁 사회는 어렸을 때부터 시작되면서 어른이 되어서도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쳐야 옳은 것일까. 저자를 비롯한 수많은 교사들의 마음이 이해되는 지점이다.
스트레스로 쓰러졌던 저자는 자기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걷기'를 선택한다. 한없이 걸음으로써 자기 안의 것들을 감당하려고 애쓰는 저자를 보며 단단한 사람이면서, 단단한 선생님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은 선생님인 저자가 어떤 방식으로 수업을 했는지, 수업을 하며 아이들과 어떻게 교류했는지, 특히 문예반 수업으로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등을 담고 있다.
또 글쓰기 수업을 통해 아이들의 글과 생각을 만나며 스스로도 정화하고, 아이들은 글쓰기를 통해 정신적 그리고 정서적으로 한층 성장하게 됨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소설 및 영화 그리고 에세이를 선정해 아이들과 교류하며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며 나누는지 제시한다.
한 권의 에세이집에서 중수필과 경수필 모두를 만날 수 있다. 사회적으로 고민해 볼만한 것들과 일상에서 나누었으면 좋겠는 순수한 모습 등을 다양한 글에서 느낄 수 있다.
그만큼 알찬 에세이집이었고, 솔직한 교사의 글을 읽으며 공감과 고민을 함께 했던 시간이었다. 아이들과 생활하는 많은 이들에게 따라 걸어도 좋을 발자취가 될 글이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