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 여름이 긴 것은 수박을 많이 먹으라는 뜻이다 띵 시리즈 28
쩡찌 지음 / 세미콜론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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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여름이긴것은수박을많이먹으라는뜻이다 #쩡찌

#과일 #띵시리즈

밤 골목의 소리가 풍성하게 무르익고, 서먹한 냄새를 무심결에 좇지. 어둠에 젖어 검은 잎사귀들. 윤곽은 무성해 바로 옆까지 다가온 것 같아. 어두컴컴한 아스팔트. 낮의 뜨거움이 끈질긴 권유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수박이 맛있어진다. 이것은 둥근 여름의 홀케이크 이야기이다. _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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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에서 눈 위를 걷는 방법이란, 귤을 까먹는 것이었다. 귤의 꼭지에 엄지를 세워 넣고 천천히 밀면 귤의 속살과 껍질이 벌어지며 꼭 눈 위를 걷는 소리가 났다. 소복하게 살짝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 깨끗하고 조용하게, 하지만 분명히 촘촘한 조직을 가르는 소리. 눌러서 만지는 소리. 어루만지면서 다가오는 소리. 겨울방학. 서울의 할아버지 댁에서 걸었던 그 눈길의 소리였다. _158~159p.

<땅콩일기> 의 쩡찌작가, 띵 시리즈에서 과일로 에세이를 출간했다. 제목이 이렇게나 길 수 있을까? 싶은 <과일 : 여름이 긴 것은 수박을 많이 먹으라는 뜻이다>라는 제목의 첫 산문집.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과일, 저자의 과일 산문집에는 가족, 사랑, 계절, 주변과 사람의 이야기가 흐르며 개인의 삶도 과일을 애정하는 만큼이나 깊어져간다. 과일을 애정하는 본인을 오랑우탄이라 칭하면서 과일에 대한 애정과 찬사를 아끼지 않는 글들은 읽다 보면 문득 어떤 과일이라도 먹으며 읽어야 할 것만 같다. 개인적으로 사계절 중 그나마 여름을 애정하는 편인데, 계절과일인 복숭아와 포도, 참외를 애정하기 때문이랄까? 복숭아는 식사 대신 복숭아로 끼니를 때워도 좋을 정도라 여름이 가기 전 한 개의 복숭아라도 더 먹으려고 하기 때문에 저자의 과일에 대한 애정이 에세이들이 더 공감 갔는지도 모르겠다. 과일에 대한 주제만으로도 한 권의 책을 꽉꽉 눌러 담은 글은, 뜨겁고도 지치게 하는 긴긴 여름, 잠시나마 더위를 잊게 할 달고 시원한 과일들 앞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을 것이다. (내일은 커다란 수박을 한 통 사야지! ㅎㅎ)

흠집과는 자주 '못난이 과일'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판매되었다. 못났지만 맛있어요. 나는 그게 싫었다. 맛있지 않아도 돼. 그냥 네 맛대로 있어. 상처는 못난 것과 다르다. 못났다고 한다면 못난 대로 살아가도 돼. 그것은 내가 증명한다. 때로 살아 있는 일 자체가 나의 증명이 된다. 상처에 관한 한은, 역시 그랬다. 나는 증명하고 있었다. 잘 놀라고 상처받으면서. 후회와 자책을 반복하면서. 약간만 배우고 많이 잊으면서 나는 살아 있었다. 결과 (結果)는 열매를 맺는다는 말. 나는 지금도 상처받는다. 상처는 때로 작아지고 영원처럼 보존되기도 한다. 그런 상처를 입은 채로 살아 있다. 그래도 돼. 그렇게 살아가면 돼. _59p.

메로나와 멜론이 같은 맛인 줄 알았어? 그걸 꼭 먹어봐야 알아? 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꼭 당해봐야 안다. 겪어야만 알아. 겪어도 잘 모를 때가 많아. 비참도 사랑도 나는 전부 당하고야 알았다. _106~107p.

날씨 인사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업무로 알게 된 상대에게도 건네기 쉽지만 과일 인사는 대상 범위가 꽤 좁다. 일단 상대가 과일을 즐기는지, 혹은 알레르기가 있지는 않은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올해 첫 수박 드셨어요?"라고 인사를 건넬 수는 없다. 처음 만난 상대에게 "올해 첫 딸기 드셨어요?"인사를 한다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니 과일 인사를 할 수 있는 상대란, 그 자체로 나름의 친밀과 유대가 있는 관계로 한정된다.

애초에 과일 인사에는 친밀과 사랑, 그리고 염려가 있다. 과일 잘 먹고 있니. 식사 외에 과일을 챙길 수 있는 여유가 있니. 계절이 주는 선물을 제철에 누릴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여유가. 계절을 느끼고 있니. 느낄 수 있니. 나무와 풀의 열매를 먹으며 너도 그렇게 지상에 뿌리박고 잘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_189~190p.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책추천 #에세이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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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우 오사카·교토·고베·나라 - 2026년 최신판, 완벽 분권 follow 팔로우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
제이민 지음 / 트래블라이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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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우오사카교토 #고베 #나라

#도서협찬

여행 좀 다녔다 하는 사람도, 처음 여행하는 사람도 가까운 나라, 하지만 심심하지 않고 도심이었으면 좋겠다~ 하면 떠오르는 곳이 일본, 그중에서도 오사카! 개인적으로 도쿄는 2~3번 여행 다녀왔지만 오사카는 난이도가 있다고 생각돼서 미루게 되었던 여행지였는데 최근 자꾸 관심이가 찾아봤던 여행지였다. 오사카, 교토, 고베, 나라와 함께 엮어 한 권의 책으로 하지만 분권이 가능해 책을 나누어 들고 다닐 수 있다면? 일단 여행을 계획하는 단계부터 걱정이 많은 파워 J 지만 그렇기에 더 많이 알아보고 준비하게 된다. sns 정말 많은 유용한 꿀팁들과 여행 동선을 알려주고 있지만 여행 준비는 일단 딱! 내 맘에 쏙 드는 여행서 준비가 먼저! 여행은 떠나기 전 계획단계가 제일 즐겁다 하지 않던가?

■ 1권 버킷 리스트 & 플랜북

■ 2권 오사카·고베·히메지성 실전 가이드북

■ 3권 교토·우지·나라·오하라 실전 가이드북

간사이 전 지역을 한 권에 담는다면 좀 무겁지 않을까? 여행 목적지에 맞춰 필요에 따라 나누어 들고 다닐 수 있어 여행이 한결 가벼워지고 계획은 더욱 디테일 해질 것이다. 8월 오사카 여행을 준비 중인 조카가 한창 여행 계획 세우기에 첫 일본 여행의 목적을 물어보니 쇼핑, 먹거리라고 신나게 친구들과 계획을 세우는 중이라고 한다. 오사카! 천하의 부엌이라 불릴 만큼 먹거리도 다양하니 하루에 5끼 정도는 먹어줘야 하지 않을까? 가이드북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맛집들은 사진 소개만으로 그치지 않고 직관적인 여행 동선 설계까지 해주고 있어 정해진 일정 내에서 조금 더 알찬 여행 계획을 세울 수 있게 한다. 무엇보다 QR, IC카드, 패스까지 바뀐 오사카 교통도 사진과 캡션으로 상세하게 표시되어 여행 초보자도 길 찾기 걱정 없이 이동할 수 있게 안내한다.

저자가 직접 걸으며 확인한 구글맵에도 없는 디테일까지 담은 상세지도 65장도 수록되어 여행 동선에 딱 맞춘 최적 루트, 주요 명소 인근 역 정보, 맛집, 쇼핑 특화거리 등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입국 서류, 숙소 예약, 데이터 유심등 출발 전 꼭 알아야 할 준비물과 계절별 날씨, 옷차림, 일본 생활 상식, 긴급상황 대처 등 현실 정보도 알차게 안내하고 있어 처음 여행하는 이들도 여행을 준비하는데 전혀 어려움 없이 즐기며 여행하게 될 것 같다. 블로그, sns 등 정말 많은 정보를 검색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요즘이지만, 책에 수록된 사진과 설명들이 상세하고 정보도 자세한 편이라 여행하는 곳의 역사와 현재를 제대로 알고 여행해 보고 싶은 이들이라면 여행서 한 권쯤 제대로 준비해 여행해 보는 걸 추천하고 싶다.

#트래블라이크 #제이민 #일본여행 #오사카여행 #교토여행 #오사카 #교토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오사카가이드북 #book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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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의 보름
R. C. 셰리프 지음, 백지민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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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의보름 #도서협찬

#독파 #RC셰리프

그녀는 둘리치의 집을 떠날 때부터 휴가가 끝나기 전에 무언가 굉장한 일이 일어날 거라고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족들이 클래펌 환승역에서 함께 서서 기차를 기다렸을 적에, 기차가 호샴에서 빠져나갈 때 그들이 함께 앉아서 샌드위치를 먹었을 적에, 그들이 보그너의 길거리를 통과해서 시뷰로 다 함께 걸어갔을 적에, 거듭 또 거듭 그녀는 이 휴가가 마지막일 거라고, 그녀가 아버지와 어머니, 딕과 어니와 다시는 결코 이렇게 하지 못하리라고 느꼈다. 슬프고도, 다소 아쉬운 감정이었고, 지금에서야 그녀는 그 의미를 이해했다. 근사한 시절이었다, 보그너에서의 이 휴가들은. 하나 그런 시절들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었다. 그런 시절들이 해를 거듭하며 계속되면서, 죽어가는 어린 시절의 불씨에 미약하게나마 부채질을 시도할 수는 결코 없었다._384~385p.

시간이 흘러, 그리워지는 시절들이 있다. 그때는 이 순간들이 반복되는 게 조금은 지겨웠고 나만의 시간이, 공간이 절실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조금은 짧다고 느껴졌던 여름방학이면 어김없이 온 가족이 함께 어디론가 떠나야 했던 '여름휴가' 어릴 땐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길에 올랐고 이번 휴가지는 어디일까?로 늘 설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구월의 보름>의 스티븐슨 가족의 연례 휴가를 떠날 준비하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스티븐스 부부의 신혼여행지였던 보그너 레지스. 이후 매년 더 낡아가는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며 자녀들과 함께 휴가를 보낸다. 이들 가족이 떠나는 스무 번째, 2주간의 여름휴가. 정말 슴슴하게도 어떠한 사건이나 반전도 없고, 그 흔한 가족사에 대한 비밀도 없이 온전히 평범하고도 소소한 일상은 '재미있다!'라는 감상은 없지만 자꾸 다음 페이지를, 다음 이야기를 넘기게 된다. 한 울타리에 사는 가족들이 저마다의 색으로 엮어가는 이야기들은 아름다운 색실로 만들어낸 태피스트리 같은 사랑스러운 소설이다.

휴가를 떠난 사람은 상황만 조금 달랐어도 자신이 되었을지도 몰랐던 사람, 자신이 되었을 수도 있었던 사람이 된다. 모든 이는 휴가 중에 동등하다. 모두가 비용이나 건축 기술일랑 고려하지 않고 저마다의 성을 꿈꿀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토록 섬세히 직조된 꿈들은 숭배하듯 보살펴야만 하고 그다음 주의 투박한 빛으로부터는 떨어뜨려 놓아야만 한다_35p.

한여름에 햇빛은, 옥외에서 보낸 긴 하루의 끝으로 갈수록 거의 짐덩이가 되는 수가 있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까지 서쪽 하늘에 고집스레 매달려 있는 그 창백한 백열광은 사람을 거의 분개하게 만들고, 커튼을 쳐본들 침실은 완전히 깜깜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구월의 잠식해 오는 밤들은 낮의 전경에 새로운 장면을 더해준다. 악단의 음악은 광채를 뿜는 보석이 있는 왕관에서 흘러오는 듯싶고, 웅얼거리는 목소리와 해변 산책로를 따라가는 고무신들의 부드러운 타박거림, 유원지의 꼬마전구들과 바닷속 별들의 반짝임은 낮의 요란한 기상에 부드러운 낭만을 가져다준다._197p.

그는 자기 직장이 창피했고, 옛 학교가 창피했는데, 직장과 학교는 아버지 인생의 자랑스러운 업적들이었다. 그는 불충했다. 그 점이 그가 불행한 까닭의 핵심이었다. 고독한 외톨이가 되지 않으려면 그는 마음속에서 비밀리에 경멸했던 것을, 아류이며 딱히 좋은 게 아니라고 알았던 것을 평생토록 자랑스러워하는 행세를 해야만 했다.

그것이 충성의 의미였을까? 모든 타고난 자부심을 익사시켜 버리고, 그가 이바지하도록 정해진 그 애처롭고 소소한 기준을 우러러볼 수 있는 수준으로까지 자신을 으스러뜨리는 것이? 더욱 자랑스러운 기준이 그의 것이 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을 그가 의심의 여지없이 알았는데도 말이다?_258p.

#백지민옮김 #다산북스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소설추천 #책추천 #book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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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든 꽃에 눈물을 1~2 세트 - 전2권 - 태하&해수 포토카드 2종 + '범태하' 일러스트 엽서 3종 + '민철&해수' 스티커 사진 1종 + 이모티콘 스티커 1종 + 작가 친필 사인 인쇄본
개 지음 / 네이버웹툰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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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든꽃에눈물을 #네이버시리즈

#개

태하 ; 불우하다고 해서 꽃조차 사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요.

해수 ' 느릿느릿 낮게 흘러나온 그 말이 온통 무채색인 세상에

단 하나의 색처럼 피었다.

궁상맞은 내 방식대로 그를 타박하려 했던,

나의 가난한 편견이 어쩐지 부끄러웠다. _10화

_

태하 ; 상처투성이의 너는 첫눈을 모르고,

누군가의 등만 바라보다가

계절을 놓치고, 청춘을 놓치고_15화

정말 우연히도, 그림체에 끌려 입문하게 된 웹툰. (연재작은 건드리는 거 아니지만, 정말 어쩔 수 없었음...) 매주 금요일을 기다리는 이유가 이 웹툰 때문인 분들이 아주~ 많으신 걸로 알고 있다. 웹툰 보면서 책까지 구입하긴 처음이라~ '개'라는 작가님의 첫 작품이라는데 원작 소설이 없어서 기다리는 일주일이 더~~~ 애타는 1인. 그림체도 예쁘지만 중간중간 감정 표현들이 너무 좋아서 적어둔 부분들도 꽤 된다. 지금도 열심히 연재 중인데 민철, 해수, 태하.. 어찌 풀리려나, 태하가 해주에게 집착하는 데에 과거에 뭔가가 있는 것 같은 복선이 꽤 길게 이어지고 있어서 이제 오픈 좀~ 하는 조바심도 든다. 최근 들어 해수 버리고 집 나가버린 민철이 불쌍해지기 시작하는 건 쌤통이다 싶으면서도 살짝 안쓰럽네. (아마도 태하의 큰 그림...)

몇 화까지 이어질지, 책은 몇 권이나 출간될지 모르겠으나~ 소장 가치 너무나 있음.. ^^

※25.7.4.기준 네이버시리즈 총 58화 연재중이고 52화까지 무료로 볼 수 있답니다. (전 소장하며 읽고있음..ㅎㅎ)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만화 #네이버시리즈 #19금웹툰 #책추천 #연재작품 #네이버시리즈연재중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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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 뷔페
류즈위 지음, 김이삭 옮김 / 민음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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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뷔페 #도서협찬

#류즈위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만 했다.

우리는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눈앞에 있는 남자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지 않을지 반드시 알아내야 했고, 이들이 할 일과 하지 않을 일을 고려해야 했다. 어쩌면 그 모든 일이 순간의 선택으로 결정되는 일에 불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건 우리의 안전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많은 걸 고려하면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살 수 있지만, 대신 그날만큼은 안전하게 살 수 있었다.

아니, 물론 그들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니었다. 그들 중 대다수는 아주 좋은 사람들이니까. 여성을 강간하지도, 성희롱하지도 않았다. 그건 나도 알았다. 문제는 그들 중 누가 그러하고 누가 그러하지 않은지를 알 수 없다는 거였다. _48p. #항아는응당후회하리라

_

하수구를 지나 화장실로 들어갈 때, 자기가 페미니즘을 위험한 강이라고 여겼던 게 돌연 떠올랐다. 페미니즘을 껴안든 실천하든, 심지어는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여성은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렸다.._120p. #강가모래섬에서

타이완 최고의 페미니즘 작가 류즈위 단편집 『여신 뷔페』 '여신 뷔페'는 여성이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골라 먹는다는 뜻의 페미니즘 백래시 표현인 '여권 뷔페'의 변형어라고 한다. 남성들의 특권은 당연시되고, 여성들의 특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왜 '여권 뷔페'로 폄하되는가?

늦은 밤 남성 택시 기사의 말과 행동을 경계하고, 동창회에서 나를 성폭행한 선배와 마주쳤을 때 트라우마로 인해 가져본 적 없는 '딸'을 지키려는 처절함, 어린 자신이 사촌 오빠에게 강간당했던 현실이 지금 내 조카에게 일어날까 봐 미친 듯 달려가는 이모의 심정, 사회에선 남녀의 사회적 동등을 이야기하지만 내면에선 자신의 노화와 연인에게 버림받고 싶지 않은 비참한 마음을... 8편의 단편은 언어폭력, 출산과 양육의 책임, 고부간의 갈등, 신체 자기 결정권, 가정폭력등 여성에게만 채워진 '보이지 않는 족쇄'는 동양권인 우리의 사회와 너무도 닮아 있어 아프면서도 소름 끼칠 정도였다. (마음속에선 대환장..)

사건이, 폭력이 일어날 조짐을 미리 예상했어야 했다고? 빌미를 주었기 때문이라고? 네가 조심하지 않아서, 당해도 싸다고... 가끔은 가해자인 남성보다 피해자인 여성에게 향하는 매서운 말과 행동이 그들을, 우리를 더 아프게 했던 건 아닐까?

친절이 폭력이 되고, 아는 사람이 무서우니 조심하라고, 또 조심해야한다고 여자아이들을 단속해야하는 사회. 아프고 무서운 사건사고가 너무 많아서 조심 시키는게, 조심해야하는게 최선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이 사회가 아프기만 하다.

밑줄긋고 싶은 문장도,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도, 다 알았으면 싶은 이야기도 많았던 단편집. 남성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다 같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소설이었다.

성평등이라는 건 '어떤 사람들'에게만 해당해서는 안 됩니다. 설사 그 어떤 사람들이 제 주변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요. 당연히 '어떤 나라들'에게만 해당해서도 안 됩니다. 설사 그 나라가 내 나라라고 할지라도요.(중략) 성평등은 겉으로 보기에 여성을 돕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장 강력한 적인 '가부장제 문화'로부터 다양한 성별과 성적 지향을 가진 이들을 구해 내는 겁니다. 전통적인 사회 문화에 깊이 박힌 여성 혐오는 우리가 어떻게 보일지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스스로 제한하는지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점에 관해서만큼은 남녀 모두가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략) 비슷한 상황을 마주했는데도 이를 잊게 되었다면, 혹은 아직은 그렇게 할 수 없는 거라면, 그래도 괜찮습니다. 어쨌든 인류 사회에 수천 년이나 심어진 독소인걸요.

포기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다음에 안 되면 그다음에 하면 되는걸요. 우리 계속 함께 노력해요. _ #작가의말 류즈위

우리에게는 언론의 자유도 있지. 그리고 나는 그냥 농담한 거잖아. 이제 이런 농담도 못 하는 건가? 아니, 친구도 가만히 있는데 자네가 왜 화를 내? 내가 자네가 강간당할 거라고 말한 것도 아니고, 어, 자네를 강간하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예를 든 거잖아. 예쁘다는 뜻으로 한 말이라고. 그걸 이해 못 해? 칭찬한 거니까 나한테 고마워해야지. 농담도 못 알아듣고. 예쁘다고 칭찬을 해줘도 알아든지를 못해요. 이러면 곤란하지."_28p. #항아는응당후회하리라

리즈는 절망한 얼굴로 언하오를 보았다. 역시 남자친구도 자기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다. 이런 일은 부끄러운 것도 수치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섹스라는 두 글자를 말하기가 왜 이렇게 어려울까?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부끄럽지도 더럽지도 않은 일이지만 즈펑이 자기 동생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알려 줄 수 있을까. 설사 시늉만 하는 거라 할지라도 말이다. _164p. #리치사용설명서

이 '동의 없는 성관계'에 대해 아테나는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 오늘까지도 그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음주 뒤 분위기가 무르익었던 그날 밤, 그녀의 거절은 충분히 단호했을까. 얼마나 단호해야 충분한 걸까. 그날 밤의 자신이 정말로 동의하지 않았던 거라면, 연애, 결혼, 출산, 이민이라는, 자신이 그 뒤로 밟아 온 정상적인 노선들은 다 뭐가 되는 걸까. _222~223p. #여신뷔페

산후 우울증이라는 것도 성폭력이나 성희롱 혹은 차별처럼 말하지만 않으면 없던 일이 되었다. _225p. #여신뷔페

어쩌면 그녀는 그 집에서 ‘영원히 충분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 집에 돌아와 올케를 보면서 가장 절망했던 것일 수도 있었다. 올케를 ‘영원히 충분하지 못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아껴 주던 엄마였기 때문에. 늘 그녀를 지켜 주고 지지해 주던 엄마였기 때문에. 이 점은 ‘영원히’를 더 멀리 밀어냈다. 며느리라는 신분을 시시포스처럼 만들어 버렸다. _270p. #크리스틴

#민음사 #김이삭 옮김 #소설 #타이완소설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소설추천 #책추천 #book #metoo #도서추천 #페미니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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