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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 뷔페
류즈위 지음, 김이삭 옮김 / 민음사 / 2025년 6월
평점 :

#여신뷔페 #도서협찬
#류즈위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만 했다.
우리는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눈앞에 있는 남자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지 않을지 반드시 알아내야 했고, 이들이 할 일과 하지 않을 일을 고려해야 했다. 어쩌면 그 모든 일이 순간의 선택으로 결정되는 일에 불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건 우리의 안전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많은 걸 고려하면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살 수 있지만, 대신 그날만큼은 안전하게 살 수 있었다.
아니, 물론 그들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니었다. 그들 중 대다수는 아주 좋은 사람들이니까. 여성을 강간하지도, 성희롱하지도 않았다. 그건 나도 알았다. 문제는 그들 중 누가 그러하고 누가 그러하지 않은지를 알 수 없다는 거였다. _48p. #항아는응당후회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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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구를 지나 화장실로 들어갈 때, 자기가 페미니즘을 위험한 강이라고 여겼던 게 돌연 떠올랐다. 페미니즘을 껴안든 실천하든, 심지어는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여성은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렸다.._120p. #강가모래섬에서
타이완 최고의 페미니즘 작가 류즈위 단편집 『여신 뷔페』 '여신 뷔페'는 여성이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골라 먹는다는 뜻의 페미니즘 백래시 표현인 '여권 뷔페'의 변형어라고 한다. 남성들의 특권은 당연시되고, 여성들의 특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왜 '여권 뷔페'로 폄하되는가?
늦은 밤 남성 택시 기사의 말과 행동을 경계하고, 동창회에서 나를 성폭행한 선배와 마주쳤을 때 트라우마로 인해 가져본 적 없는 '딸'을 지키려는 처절함, 어린 자신이 사촌 오빠에게 강간당했던 현실이 지금 내 조카에게 일어날까 봐 미친 듯 달려가는 이모의 심정, 사회에선 남녀의 사회적 동등을 이야기하지만 내면에선 자신의 노화와 연인에게 버림받고 싶지 않은 비참한 마음을... 8편의 단편은 언어폭력, 출산과 양육의 책임, 고부간의 갈등, 신체 자기 결정권, 가정폭력등 여성에게만 채워진 '보이지 않는 족쇄'는 동양권인 우리의 사회와 너무도 닮아 있어 아프면서도 소름 끼칠 정도였다. (마음속에선 대환장..)
사건이, 폭력이 일어날 조짐을 미리 예상했어야 했다고? 빌미를 주었기 때문이라고? 네가 조심하지 않아서, 당해도 싸다고... 가끔은 가해자인 남성보다 피해자인 여성에게 향하는 매서운 말과 행동이 그들을, 우리를 더 아프게 했던 건 아닐까?
친절이 폭력이 되고, 아는 사람이 무서우니 조심하라고, 또 조심해야한다고 여자아이들을 단속해야하는 사회. 아프고 무서운 사건사고가 너무 많아서 조심 시키는게, 조심해야하는게 최선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이 사회가 아프기만 하다.
밑줄긋고 싶은 문장도,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도, 다 알았으면 싶은 이야기도 많았던 단편집. 남성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다 같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소설이었다.
성평등이라는 건 '어떤 사람들'에게만 해당해서는 안 됩니다. 설사 그 어떤 사람들이 제 주변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요. 당연히 '어떤 나라들'에게만 해당해서도 안 됩니다. 설사 그 나라가 내 나라라고 할지라도요.(중략) 성평등은 겉으로 보기에 여성을 돕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장 강력한 적인 '가부장제 문화'로부터 다양한 성별과 성적 지향을 가진 이들을 구해 내는 겁니다. 전통적인 사회 문화에 깊이 박힌 여성 혐오는 우리가 어떻게 보일지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스스로 제한하는지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점에 관해서만큼은 남녀 모두가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략) 비슷한 상황을 마주했는데도 이를 잊게 되었다면, 혹은 아직은 그렇게 할 수 없는 거라면, 그래도 괜찮습니다. 어쨌든 인류 사회에 수천 년이나 심어진 독소인걸요.
포기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다음에 안 되면 그다음에 하면 되는걸요. 우리 계속 함께 노력해요. _ #작가의말 류즈위
우리에게는 언론의 자유도 있지. 그리고 나는 그냥 농담한 거잖아. 이제 이런 농담도 못 하는 건가? 아니, 친구도 가만히 있는데 자네가 왜 화를 내? 내가 자네가 강간당할 거라고 말한 것도 아니고, 어, 자네를 강간하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예를 든 거잖아. 예쁘다는 뜻으로 한 말이라고. 그걸 이해 못 해? 칭찬한 거니까 나한테 고마워해야지. 농담도 못 알아듣고. 예쁘다고 칭찬을 해줘도 알아든지를 못해요. 이러면 곤란하지."_28p. #항아는응당후회하리라
리즈는 절망한 얼굴로 언하오를 보았다. 역시 남자친구도 자기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다. 이런 일은 부끄러운 것도 수치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섹스라는 두 글자를 말하기가 왜 이렇게 어려울까?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부끄럽지도 더럽지도 않은 일이지만 즈펑이 자기 동생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알려 줄 수 있을까. 설사 시늉만 하는 거라 할지라도 말이다. _164p. #리치사용설명서
이 '동의 없는 성관계'에 대해 아테나는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 오늘까지도 그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음주 뒤 분위기가 무르익었던 그날 밤, 그녀의 거절은 충분히 단호했을까. 얼마나 단호해야 충분한 걸까. 그날 밤의 자신이 정말로 동의하지 않았던 거라면, 연애, 결혼, 출산, 이민이라는, 자신이 그 뒤로 밟아 온 정상적인 노선들은 다 뭐가 되는 걸까. _222~223p. #여신뷔페
산후 우울증이라는 것도 성폭력이나 성희롱 혹은 차별처럼 말하지만 않으면 없던 일이 되었다. _225p. #여신뷔페
어쩌면 그녀는 그 집에서 ‘영원히 충분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 집에 돌아와 올케를 보면서 가장 절망했던 것일 수도 있었다. 올케를 ‘영원히 충분하지 못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아껴 주던 엄마였기 때문에. 늘 그녀를 지켜 주고 지지해 주던 엄마였기 때문에. 이 점은 ‘영원히’를 더 멀리 밀어냈다. 며느리라는 신분을 시시포스처럼 만들어 버렸다. _270p. #크리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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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