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사생활 - 업무일지가 이렇게 솔직해도 괜찮을까?
고우리 지음 / 미디어샘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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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권의 책을 낸 나는 여러 편집자를 거쳤다. 사소한 불평을 자주 늘어놓고 타인의 지적에 유독 민감한 내가 언제나 굽신거리며 시키는 대로 군소리 없이 따르는 존재가 있으니 그가 바로 편집자다.

 

내가 한 일을 지적하며 다시 하라고 시키면 내 잘못을 제쳐두고 우선 화부터 낼 준비를 하지만, 편집자가 짧은 머리말을 네 번째 다시 쓰라고 해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편집자가 무슨 일을 시키면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나에게 편집자는 작가 위의 작가다.

 

나에게 편집자는 글쓰기 선생님이며 어머니 같은 존재다. 그만큼 작가는 편집자로부터 훈육(?)도 받지만 보살핌도 받기 마련이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많은 저자들의 공통적인 생각이라고 믿는다.

어머니라는 단어가 여러 가지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편집자는 작가에게 다양한 역할을 선사하는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존재다. 굳이 한 마디로 규정하자면 '영원한 내 편'이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우리나라에 등록된 출판사가 10개에 육박한다던데 의외로 이 바닥이 좁아서 두어 다리만 거치면 '모두 다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고우리 편집자가 쓴 <편집자의 사생활>을 만나기 불과 며칠 전까지 나는 모 출판사에 나온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을 아껴가면서 읽었는데 알고 보니 이 책의 편집자가 고우리 선생이었다.

 

대작이지만 번역이 유려하고 거슬리는 부분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고우리 선생이 유능한 편집자였다는 것을 실감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편집자의 사생활>을 펼쳤다. 많은 작가들이 공감할 텐데 출판계에 이상한 사장은 있어도 이상한 편집자는 거의 없다. 내가 만났던 많은 편집자들은 내가 쓴 엉성한 글을 예리하게 지적하며 수정을 요구했는데 자괴감이 들어서 한 번은 '그렇게 글을 잘 쓰시는데 직접 책을 내보는 것은 어떠냐?'고 진지하게 물은 적도 있었다. 물론 '우리는 읽을 줄만 알지 쓸 줄은 모른다'라는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편집자의 사생활>을 읽다 보니 편집자가 '읽을 줄만 아는 것'은 아니라는 확신하게 된다. 고우리 선생의 글을 읽다 보면 주변 배경에 대한 묘사가 세밀하며 생동감이 넘치는 에밀 졸라의 글이 떠오른다.

 

편집자라고 출판에 대한 거시적인 문제를 고상하게 풀어나가지 않고 마치 드라마 대본처럼 구어체가 넘치지만, 맥락이 잘 이어지고 독자들이 마치 글쓴이와 함께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호기심을 가질 만한 출판과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아울러 양념처럼 들어 있는 '업무 일지' 코너는 내가 너무 재미나게 읽었던 '열린책들' 홍지웅 사장이 쓴 출판 이야기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좀 더 재미난 현실판'으로 읽힌다.

 

그래서 에밀 졸라의 글은 아껴가면서 읽게 되지만 고우리 작가의 글은 나도 모르게 한 번 앉은 자리에서 허망하게 다 읽고 말았다. 이건 뭐 아껴 읽겠다는 다짐조차 할 겨를을 주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만큼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고 잘 읽힌다.


그런데 웬걸? 퇴사하고 나서부터 SNS를 무지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열심히 하게 '됐다'. 무슨 전략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심심했다.


첫 번째 회사에서는 물론이고 두 번째 회사에서고 세 번째 회사에서고 연봉'협상'이란 걸 해본 적이 없다. 연봉이란 언제나 '정해지는' 것이지 '협상'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올해 당신 연봉은 얼마일세. , , 감사합니다. 넙죽!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생각한 유일한 아쉬움. 나는 왜 고우리 편집자에게 출간 제의를 받지 못했는가! 새삼 장 그리니에의 <>에 헌정한 알베르 카뮈의 추천사가 생각난다. 고우리라는 유능하고 눈 밝은 편집자와 함께 작업했고 작업을 할 이름 모를 작가들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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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4-05 1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 보면 고 편집자님 연락하실 것 같은데요? ㅎㅎ
맞아요. 편집자는 작가위의 작가.
편집자님 말만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길텐데 왜 말을 안 듣겠습니까?
근데 왜 작가와 편집자는 견원지간으로 보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책과 통의동에서…읽어보고 싶네요.^^

박균호 2023-04-05 10:44   좋아요 1 | URL
네 출판이야기인데 은근 재미나더라구요. 두꺼운 책인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혀요.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 !!

stella.K 2023-04-05 10:49   좋아요 2 | URL
앗, 근데 또. 책 내셨나 봅니다.
서재 대문에…!
축하드립니다. ^^

박균호 2023-04-05 12:07   좋아요 2 | URL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

얄라알라 2023-04-05 12:46   좋아요 2 | URL
저도 stella K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고우리 편집자님의 러브콜을 받으실지 모르는 박균호 작가님^^

2023-04-09 2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09 2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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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 ~겁나, ~겁나게 라는 말이 서너번 나오는 경우도 있다. 번역자가 대체 왜 겁나라는 표현에 빠졌는지 모르겠지만 300쪽 소설을 매쪽마다 겁나 겁나게를 넣어놨는데 짜증이 솟구친다. 번역자라면 같은 영어 단어라도 상황에 따라 다른 표현을 쓸 연구를 좀 해야 하지 않나 싶다. 본인은 겁나라는 표현을 매번 쓰면서 지겹지도 않았나. 


우리의 ~

우아


라는 표현도 무한 반복된다. 정말이지 번역때문에 책 읽기가 고통스러운 것은 이 책이 처음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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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이 나왔습니다. 서울대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 20권을 소개하는 책인데요. 읽어보니 확실히 젊은 피는 구시대의 관습과 가치관을 멀리하고 진보적이고 약자를 배려하는 마인드가 강하더군요. 기성세대의 걱정과는 달리 우리 장래가 밝다고 생각되더군요. 그리고 기성세대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약자에 대한 무배려, 패배 의식, 부정적인 관점을 젊은 세대는 멀리하려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저자로서 저는 이 책이 수험생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는 기성세대에게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가져 봅니다. 20권을 통해서 젊은 친구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윤곽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이 어떤 모습이 될지도 가늠할 수 있다고 감히 생각합니다. 


물론 새로운 생각이라고 해서 반드시 바른 것만은 아니어서 각 책에 대한 약간의 비판적인 생각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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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3-28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신간 알림 받았어요.
새 책 출간 축하드립니다.
좋은하루되세요.^^

박균호 2023-03-28 11:25   좋아요 1 | URL
네 서니데이님 오랜 만이네요 ^^
여러모로 감사드리며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딸의 기억
류주연 지음 / 채륜서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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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력과 콘텐츠가 모두 좋은 글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굳이 하나를 고르라면 콘텐츠라고 생각했었다. 문장력이란 내용을 담는 그릇에 지나지 않으며 문장력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내용이 독특하고 공감을 준다면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기 마련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주 가끔, 좋은 내용에 탁월한 문장력이 갖춰진다면 독자에게 전해지는 감동과 공감이 더해질 뿐만 아니라 서투른 문장력 때문에 아직 전달되지 못한 글쓴이의 진심이 오롯이 독자에게 전달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책을 만날 때가 있다. 


류주연 작가의 <딸의 기억>이 그런 책이다. <딸의 기억>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지 오래되지 않은 저자의 가족과 고향 이야기, 어린 시절, 학창 시절, 취업 준비 시절의 발버둥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무엇보다 가난에 시달리며 고생만 한 저자의 어머니가 암에 걸렸다는 비보를 접하는 것을 시작으로 어머니의 투병기도 이 책의 근간에 자리 잡는다. 부모님이 큰 병에 걸리고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는 것은 매우 특이한 경우는 아니다. 그런데도 <딸의 기억>은 저자의 탁월한 문장력 덕분에 저자 개인의 발버둥이 우리 모두의 발버둥이며, 그녀의 어머니 암 투병이 우리 모두 어머니의 아픔으로 다가온다. 


식탁 한구석 아주 자그마한 그릇에 당신이 좋아하는 반찬을 따로 담는 것만으로 자기주장을 하던 엄마가 취향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낯선 일이었다. 


나 역시 류주연 작가처럼 시골 출신으로 도시로 나가 대학을 다니고 갑자기 큰 병을 앓게 된 어머니를 둔 사람이다. 그리고 가장 사랑받았던 외아들이었지만 어머니에게 다정다감하지 못했던 원죄가 있는 사람이다. 류주연 작가가 암투병하는 어머니를 위해서 마늘장아찌 담그는 방법을 연구한 것처럼 나도 어머니가 반신불수가 되고서야 어머니를 위해서 뭔가를 하기 시작했었다. 손을 잡아드리고, 휠체어에 앉은 어머니와 함께 저녁노을을 구경하고 간식을 떠먹이고, 목욕을 시켜드리고, 대소변을 받아주었다. 


암 환자을 간병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고되다. <딸의 기억>은 분명 읽기에 유쾌하고 웃음을 자아내는 내용은 아니다. 그렇다고 저자가 걱정하는 것처럼 어두운 내용도 결코 아니다. 어쨌든, 자신에게 주어진 난관을 이겨 내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의 로망인 사서가 된 성공스토리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딸의 기억>을 읽다 보면 저자가 많은 책을 읽고 자신의 것으로 체득한 흔적이 역력하다. 


어머니의 투병 이야기는 큰 줄기로 흐르는 한편 자신의 고향 집, 어린 시절, 그리고 무엇보다 남녀 공용 샤워실이 있는 고시원 생활, 너무 배가 고파서 손님이 먹다 남긴 라면 국물을 마신 이야기 등이 곁가지로 어우러져 있다. 그래서 <딸의 기억>은 마치 촘촘히 잘 설계된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감동과 공감을 준다. 


만약 이문열 작가가 요즘 시대에 태어나 <젊은 날의 청춘>을 쓴다면 <딸의 기억>과 같은 책을 쓰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만큼 <딸의 기억>은 한 사람의 가난했던 청춘을 넘어서 요즘 세대가 겪는 난관과 극복을 대표하는 우리 시대의 기록으로 읽힌다. 그래서 이 책을 덮을 때쯤이면 누구나 류주연 작가에게 행복만이 이어지고 어머니께서 하루빨리 건강을 되찾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딸의 기억>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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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균과 사람 - 세균에 이름을 남긴 과학자들
고관수 지음 / 사람의무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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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에 출간되어 저자 아베 코노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모래의 여자>라는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주인공은 잿빛 일상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모래땅으로 희귀 곤충채집을 떠난다. 그러나 그는 원치 않게 모랫구멍에서 평생 모래를 퍼내야 하는 운명에 빠진다. 처음에는 온갖 방법을 사용해서 탈출을 시도했지만 결국 자신과 함께 모래를 퍼내야 하는 여인과의 동거와 적응을 통해서 탈출할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고 모랫구멍에 감금되는 것을 선택하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생명체가 발붙일 수 없을 만큼 끊임없이 유동하는 모래 위에서 생존할 수 있는 곤충이라면 그에 걸맞은 강한 적응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며, 강한 적응력은 곧 많은 변종이 있음을 뜻한다는 것을 주인공은 알고 있었다. 그는 새로운 곤충을 찾아 곤충 도감에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남기기 위해 모래땅으로 스스로 찾아 들어갔다. 그러나 주인공은 곤충 도감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영광은커녕 죽을 때까지 모래를 위로 퍼 올려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황금 같은 휴가를 모래땅에서 기꺼이 허비할 만큼 과학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것은 이토록 영광스러운 것이다.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고관수 선생이 쓴 첫 책 <세균과 사람>은 동물에게만 한정되었던 ‘학명 짓기’ 사냥이 세균에게도 적용되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신종 세균을 발견하고 언젠가는 자신이 발견한 세균의 중요성을 밝혀지기를 기대한 학자 즉 세균학 영웅 들의 노력과 성과 그리고 숨은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세균과 사람>'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지하철에서 편하게 읽을 수 있을 만큼 쉬운 책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문가를 위한 어렵기만 한 책은 아닌 것이 저자가 친절하게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봄 직한 ‘유명한’ 세균을 주로 다뤘고 새로운 세균을 둘러싼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많아서 교양과 책을 읽는 즐거움을 고루 갖춘 책이다. 

‘자신이 이름 붙인 세균에 감염되어 죽다’, ‘ 순한 양으로 생각했는데 호랑이였다’, ‘ 경성 제국 대학 총장이 발견한 세균’, ‘ 시골의사에서 세균학의 황금시대를 연 영웅으로’, ‘파트퇴르의 이름을 가질 뻔했던 세균’ 등 이 책의 소제목만 훑어보기만 해도 의과대학에서 강의하는 학자라기보다는 세균에 대해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의 면모가 더 도드라진다. 아울러 ‘읽고 쓰다’라는 동사의 주어로 삼아도 전혀 무리가 없을 만큼 저자 고관수 선생은 내가 알기로 웬만한 사람은 흉내도 낼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분야의 많은 책을 읽고 독후감을 남긴다. 따라서 세균학에 대한 강의보다는 세균학을 독자와 함께 읽어나간다는 의도를 가지고 이 책을 쓴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세균학이라기보다는 세균 열전(列傳)이라고 해도 무방한 책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세균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지만, 특히 내 이목을 끝 것은 ‘장질부사’였다. 나이 지긋한 사람은 장질부사라고 불렀던 이 말은 장티푸스를 가리키는 말이다. 상록수의 저자 심훈, 고종의 후궁 엄귀비, 동양화가 김기창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장티푸스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걸리면 약도 없다고 해서 ‘염병’이라고 불렀던 그 병이다. 장티푸스와 관련한 세균학자들의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전염병과 관련해서 역사상 가장 큰 비난을 받은 사람 중의 한명인 ‘장티푸스 메리’라는 인물 이야기가 놀랍다. 

10대의 나이로 미국 부잣집에서 요리사로 일했던 그녀는 건강한 겉보기와는 달리 장 속에서는 장티푸스균이 살고 있었다. 장 속의 장티푸스는 소변이나 대변을 거쳐 그녀의 손으로 이동했고 다시 그녀가 만든 요리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녀는 결국 당시 전염병 퇴치사로 불렸던 뉴욕시 보건 당국에 의해서 추적되었고 강제로 입원당했다. 3년간의 강제 입원을 마치고 요리와 관련된 일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사회로 나왔다. 그러나 결국 생활고를 못 이기고 몰래 요리사로 취업하기에 이른다. 그녀가 일하는 직장에서 장티푸스 환자가 나왔고 다시 체포된 그녀는 1938년에 다시 병원에 수감되어 죽을 때까지 23년간 바깥세상을 구경하지 못했다. 

메리 맬런이라는 본명 대신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인’으로 지목당하고 ‘장티푸스 메리’라는 오명으로 기억되는 그녀는 사실 유일한 보균자가 아니었다. 말하자면 그녀는 장티푸스 창궐이라는 비상사태에 대한 책임을 질 ‘본보기’였던 것이다. 특히 이민 여성이라는 사회적 약자 신분은 그녀에게 ‘악녀’라는 오명을 뒤집어씌우기 편리한 존재로 만들었다. 말하자면 현대판 마녀사냥인 셈이다. 

세균 이야기을 하는데 페스트가 빠질 수 없다. 많은 사람 들이 페스트가 쥐를 통해서 인간에게 전달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정확히는 쥐에 기생하는 벼룩에서 전달되는 질병이다. 어쨌든 페스트균 발견이라는 전쟁에 참전한 일본인 기타자토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기타자토에 대한 일본인의 평가는 그가 2024년 새로이 발행되는 1,000엔짜리 지폐의 인물 주인공이라는 사실만으로 가늠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점은 우리나라는 1397년에 태어난 세종대왕부터 1545년에 태어난 충무공 이순신까지 겨우 150년 사이에 조선의 유교 질서 속에서 살아간 인물 들만 화폐의 인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분들도 훌륭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지폐에 실릴만한 위대한 과학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방증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거듭 말하게 되지만 <세균과 사람>은 굳이 세균에 관한 책이라기보다는 세균을 통해서 본 인간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흥미롭게 이야기하는 교양서로도 충분히 읽힐 수 있다. 저자는 많은 책을 읽는 만큼 많은 다양한 독자의 기호에 맞는 요소를 이 책의 곳곳에 배치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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