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거의 은퇴하다시피 했지만, 한때 나는 ‘일단 읽으면 도저히 책을 안 사고는 배기지 못하는’ 서평을 쓰려고 애썼다. 내 글솜씨가 수려하지도 않고, 나 자신이 유명 인사도 아니기에 그런 서평을 쓰기 위해 내 나름의 방법이 있었다. 그 방법이라는 게 별거 있나. 우선 작가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더라도 내 십 년지기, 이십 년지기라 여긴다. 즉, 작가에 대한 애정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이 책이 정말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다. 작가에 대한 애정과 그 책의 성공을 바라는 간절함, 이 두 가지가 내가 서평을 쓸 때 늘 염두에 두는 마음이다.
스피드건 수치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야구를 향한 투수의 열정과 간절함처럼, 서평가에게도 글솜씨를 초월한 책에 대한 마음이 있다.
오늘, 나에 대한 애정과 내 책에 대한 간절함이 담긴 서평을 보았다. 내가 아는 가장 열정적인 독서가,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고관수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서평이다. 새로 조성한 가족묘 잔디에 물을 주고 오는 길이었다.
출판계와 작가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서평은, 뜨거운 날씨에 잔디에 뿌려진 한 줄기 물처럼 출판계와 작가에게 더할 나위 없는 밑거름이자 격려가 된다. 정말 고마운 서평이다.
이하 고관수 선생 서평>
나는 박균호라는 작가를 좀 안다.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이란 책을 통해 알게 된 이후로 오프라인으로는 딱 한 차례 만나봤지만, 책을 통해 나름 여러 차례 교류한 사이다. 박균호 선생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 딴에는 가깝다고 여긴다. 그래서 이번에 새로 낸 책을 읽고 쓰는 이 글이 찬사 일변도일 것이라 예측할지 모르겠다. …… 그렇다! 난 이 책에 사심 가득 담아 이 책이 왜 읽을 만한 책인지를 굳건히 설득하려 한다. 다만 그 이유가 단순히 작가를 알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만큼은 분명히 해두고 싶다.
소개하고 있는 책 서른일곱 권(물론 곁들이고 있는 책은 이보다 훨씬 많다) 가운데 내가 읽은 책은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이 책을 맨먼저 언급하는 것은 좀 우쭐대고 싶어서다), 미셀 우엘벡의 《소립자》를 비롯해 열 권 남짓. 작가로 치면 그래도 꽤 된다. 전시륜이나 강창래, 안우광, 민병산과 같은 지금도 낯설게 여겨지는 우리나라 작가 말고는 쇼펜하우어, 스티븐 크라센 정도의 외국 작가 말고는 그래도 한 권 이상은 접한 작가의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정도면 나도 박균호 선생의 책을 읽을 자격이 된다고 손을 들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런데 책은 그냥 읽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란 것을 이 책의 서른일곱 꼭지의 글을 읽으면 서른일곱 차례 깨닫는다. 박균호 선생은 내가 읽은 책에서는 내가 읽지 못한 것을 읽고 있고, 내가 읽은 작가의 책에서는 내가 읽은 책을 넘어선 통찰을 더불어 내놓고 있다. 왜 난 왜 이 소설을 이렇게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지? 정도는 대수롭다. 읽은 것은 분명함에도 전혀 기억에 없는 내용이 불쑥불쑥 나타나 곤혹스럽다.
하지만 내게 그런 곤혹스러움을 주는 것은 내게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점이기도 하다. 나는 그렇게 그 책을 두 번 읽은 것과 같은 효과를 주니까 말이다. 애초에 내가 읽었던 것에 보태어 남이 읽은 느낌을 그대로 얹어 나는 그 책을 보다 깊고 넓게 알게 되었다. 이건 《이런 고민, 이런 책》 한 권을 읽었다고 기록할 게 아니라 이러저런 책을 모조리 한 차례 더 읽었다는 기록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게 한다.
나와 박균호 선생이 책을 대하는 태도는 좀 다르다(박균호 선생이 책 수집가라는 면을 제외하고도). 박균호 선생은 소설가 김영하의 말을 빌어 “사놓은 책 가운데 책을 읽는 것”이라고 하고 있지만, 나는 철저히 읽기 위해 책을 사고, 빌린다. 그러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비록 그 독서의 깊이가 어찌 되었든 일단은 읽을 책이란 얘기다. 읽지 않은 채 읽히기만을 기다리는 책은 거의 없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나는 읽었던 책을 좀처럼 다시 읽지 않는다. 이 행태가 나도 싫어서 언제부턴가는 일부러 한 달에 한 권은 읽었던 책을 읽자고 다짐을 하고 지켰던 적도 있다(그것도 지금은 그런 다짐을 져버렸다). 물론 다른 목적 때문에 책의 부분을 다시 읽거나, 혹은 가끔 전편을 다 읽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책을 좋아하고, 어딜 가는 책이 내 가방 속에 들어있지 않거나 손에 들려 있지 않으면 불안해 마지않는 점만큼은 ‘똑같다’!
이 책에는 이전 책에서 아직은 고등학생, 대학생이던 박균호 선생의 따님이 어엿한 사회인으로 등장한다(어느 회사에 다니는지 알고는 있지만 책에서도 밝히지 않고 있으니 나도 밝힐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박균호 선생의 카톡 프로필 사진도 차지하고 있는 그 딸은 박균호 선생 가족의 이음매 같은 역할을 하고, 또 반성적 사고의 매개가 되고, 또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를 알게 하는 존재다. 그런 모습을 읽고, 지켜보는 것은 이 책을 읽는 재미이고, 또 내 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 소소한(?) 재미는 글 꼭지마다 달고 있는 ‘소소한 한마디’라는 글귀다. 이 글귀는 그 글 꼭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 삶의 지혜, 혹은 그게 아니더라도 생활의 팁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그게 그 글에서 다르고 있는 소설에 대한 비평 등에서 이야기하는 거창한 것들이 아니란 점이 흥미롭고 웃음지게 한다. 이를테면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보탠 ‘소소한 한마디’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성공하려면 잘 먹고 충분한 잠을 자라.”다. 이런 식의 교훈을 도출해내는 과정도 재미있다. 글을 중간쯤 읽으면 이번 글의 ‘소소한 한마디’는 과연 무엇일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어디서 《돈키호테》를 읽고 이런 교훈을 얻으라는 글을 읽을 수 있겠는가? 바로 박균호 선생의 글에서다!
나는 고전을 많이 읽지 않았었다. 최근에 고전을 좀 읽게 된 계기를 제공한 지분의 팔구 할은 박균호 선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에서도 반드시 읽고야 말겠다고 다짐을 하게 되는 책들이 몇 권 더 생겼다. 그래도 이쯤이면 나는 박균호 선생의 꽤 충실한 독자의 축에는 끼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