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는 부제목 ‘교구 소년의 성장’을 봐서도 잘 알 수 있듯이 구빈원에서 태어나자마자 고아가 된 올리버가 자신을 학대하는 구빈원 관리와 일하던 장의사로부터 도망쳐 런던에 도착해서 우여곡절 끝에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건강을 회복하고 교육받으며 신체적 정신적으로 성숙하는 내용을 다루는 성장 소설이다. ‘올리버 트위스트’는 올리버 자신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범죄행위에 가담하였으며, 그를 둘러싼 많은 범죄자의 생활이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으므로 범죄 소설로 읽힐 수도 있다.

‘올리버 트위스트’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실존 인물을 모델로 기반하였으며 범죄 행각 또한 자료에 근거한다. 대략적인 줄거리 정도가 허구일 뿐이지 소설 대부분을 차지하는 배경 묘사를 포함한 대부분의 서술은 모두 사실에 근거한 자료를 토대로 한 것이다. 많은 런던 시민은 야심한 시간이나 새벽에 자료를 모으기 위해서 런던의 뒷골목을 배회하는 디킨스를 목격할 수 있었다. 그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함으로써 하층민에 대한 배려와 지원 정책을 영국 사회에 요구한 것이다. 작가 개인의 상상력에 기반한 묘사보다 역사적 사실은 훨씬 더 큰 설득력과 공감을 얻기 마련이다.

오늘날 독자들은 런던의 소매치기들이 왜 그토록 자주 손수건을 훔치는지 의아할지도 모른다. 코 묻은 손수건이 무슨 가치가 있어서 훈련까지 해가면서 손수건에 탐닉하는지 현대 독자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런 손수건 소매치기 또한 찰스 디킨스가 얼마나 사실에 집착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18~19세기 영국 사회의 신사와 숙녀들에게 손수건은 요즘처럼 값싼 물건이 아니라 대부분 비단 소재의 수공예로 만든 아름답고 정교한 수를 놓은 제법 비싼 필수품이었다. 당시 런던 시민에게 손수건은 요즘으로 치면 스마트폰과 같은 기능을 수행했다. 이를테면 손수건을 건네주는 것은 미안하다는 뜻이었으며, 손수건을 접은 것은 상대에게 말을 하라는 표시였고, 손수건을 자기 어깨 위에 걸치는 것은 상대에게 자신을 따라오라는 신호였다.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것을 꺼렸던 빅토리아 시대 여성들은 손수건을 통해서 자기 의사를 표현했다. 말하자면 당시 여성들에게 손수건은 스마트폰으로 보내는 문자메시지였다. 또 아무래도 지갑이나 다른 귀중품보다 신경을 덜 썼기 때문에 다른 물건보다 위험부담이 없이 쉽게 훔칠 수 있기도 했다. 한 마디로 당시 영국에서 손수건은 훔치기 쉬웠고, 훔치고 나서 숨기기도 쉬웠으며 팔기도 쉬운 물건이었다. 작고 가벼우며 비싼데다 추적하기 어려운 손수건 소매치기는 얼마나 매력적인 사업이었겠는가?

고전은 과거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므로 읽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고전소설 속 세밀한 지식을 파헤치는 재미도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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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걸리버 여행기를 모르는 독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300쪽이 넘는 이 소설 완역본의 독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걸리버 여행기가 출간되었을 때 이 책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갈렸다.

 

굉장히 새롭고 괴이한 소설이어서 독자들에게 즐거움과 놀라움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는 호평도 있었다. 정치, 교육, 윤리 종교, 법률 제도가 저지른 수많은 오류와 부정에 대한 풍자라는 칭찬도 있었다. 반대로 이 소설을 비판한 사람들은 저자인 조너선 스위프트를 인간 혐오로 가득 찬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말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돌아온 걸리버가 인간에게 거부감을 느낀 나머지 가족을 내팽겨두고 말과 함께 생활한다는 설정이 그렇다. 18세기 유럽은 르네상스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인간 존엄성에 대한 자각이 이제 막 깨어나려는 시대였다. 이런 시대에 인간의 존엄성과 지적 능력을 의심한 걸리버 여행기는 비난을 살 수밖에 없었다.

 

스위프트가 인간을 혐오한다는 비판은 그에게는 가혹하리만큼 억울한 일이었다. 스위프트는 평생 가난한 이웃을 구제하려고 애썼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수입 중 일부를 떼어 가난한 자를 돕는 기금을 조성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수입을 생활비, 빈민 구제비, 자신이 죽은 후 자선을 위한 기금으로 삼등분하는 등 계획적이고 실천적인 빈민 구제에 나섰다.

 

스위프트가 평생 적립한 기금으로 그의 사후 더블린에 성 패트릭 병원이 건립되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가 웬만한 부자보다 더 열심히 빈민 구제에 앞장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스위프트는 인간을 혐오하기는커녕 고통받는 민중들이 노예와 같은 삶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살기를 염원했던 인물이었다.

 

걸리버 여행기에서 인간 혐오라고 오해할 수 있는 내용들은 인간을 혐오하고자 함이 아니었고, 당시 부패한 권력과 사회를 비판하고 풍자한 것이다. 스위프트는 걸리버 여행기곳곳에, 인간에 대한 분노와 미움을 담고 있지만 그가 소설을 통해서 추구한 것은 인간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이지 인간 혐오가 아니다. 소설가이자 신학자이기도 했던 스위프트는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지도자로도 활동했다.

 

그는 1724‘M. B. 드래피어라는 필명으로 영국의 아일랜드 식민지 지배 정책을 비판하는 공개편지를 발표했다. 그러자 영국 정부는 ‘M. B. 드래피어의 정체를 제보하는 자에게 3백 파운드를 지급한다는 현상문을 내걸었다. ‘M. B. 드래피어의 정체가 스위프트임을 대다수 아일랜드 사람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스위프트를 당국에 신고하지 않았다. 평소 가난한 자와 약한 자를 위해서 헌신한 스위프트는 아일랜드 국가 영웅으로 존경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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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2024-03-12 2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실을 잊고 그 시대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경험은 우리가 고전소설을 읽을 때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다˝라는 말로 유혹하는 세이렌의 음성(^^)을 듣습니다. 수고하셨고, 잘 읽도록 하겠습니다.

박균호 2024-03-13 04:27   좋아요 1 | URL
아...다섯님 정말 감사합니다 !!!

호시우행 2024-03-12 2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걸리버가 인간 혐오를 추구한 소설은 결코 아니지요.

박균호 2024-03-13 04:27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읽어보니 그렇더라구요 ^^
 

누가 봐도 해맑은 졸업 사진인데 알고 보면 슬픈 사진이다. 부모가 참석하지 않고 친척도 형제자매도 없이 혼자 참석한 졸업식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아내가 치료 중이라 무남독녀 졸업식에 가지 못했다. 나 혼자만이라도 가고 싶었는데 그러면 더 슬플 것이라는 게 딸아이의 만류에 그러질 못했다. 딸아이 졸업식 사진을 볼 때마다 내가 슬픈 이유다. 해맑게 웃고 있어서 더 슬프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제 갓 입사한 신입사원 졸업식에 팀원분들이 와주셨다. 모두 각자의 카메라를 별도로 준비해 와서 딸아이를 마치 자신들의 막냇동생이나 된 듯이 학교 굿즈를 사주고 꽃다발도 안겨주셨다. 내가 평생 몸담은 공직사회에는 없는 문화다. 참으로 따뜻하고 고마운 분들이다.

 

1%의 시청률에 매일 희비가 오가고 더 높은 연봉을 찾아 이직을 밥 먹듯이 하는 방송국이 이토록 따뜻한 면이 있는 곳이었다니. 한 선배가 딸아이에게 밥을 사주면서 너도 후배가 들어오면 잘 해준다고 하면 된다고 하셨단다. 요즘 공직사회는 그야말로 각자도생의 정글이다. 정년이 보장된 안정된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이상할 정도로 오직 본인과 본인의 업무만 챙기는 문화가 팽배하다. 내가 불편하지 않고 다치지 않는 것이 최우선이다.

 

공공기관이 예전에도 그랬던 것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운전 면허시험을 보러 갈 때 온 선생님들이 간절히 내 합격을 기원하고 내 전화를 기다렸다고 한다. 매일 나를 운전면허학원에 데려다 주시기도 했다. 이제 다시 올 수 없는 추억일 뿐이다. 나도 후배들에게 잘 해줘야 할텐데 괜한 엉뚱한 화가 될지 두려워 주저하게 된다.


딸아이와 단둘이서 독서토론회를 한달에 한 번 하기로 했다. 과연 딸아이가 결혼하기전에 세계문학필독서 50를 다 마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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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3-05 1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고, 정말 마음이 짠하셨겠어요. 그래도 저렇게 밝게 웃고 있으니 보기 좋네요. 따님 졸업 축하드려요.
책 너무 잘 읽고있습니다. 따님과 한 달에 한 번 독서토론 그것도 결혼하기 전. 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그러면 두 분께 다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가끔 실황중계 부탁드립니다. ^^
근데 학교 굿즈가 있었군요.
저 땐 상상도 못 하던건데...

박균호 2024-03-05 10:24   좋아요 2 | URL
감사해요. 야망은 큰데 실천이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워낙 공사다망한 따님분이라..ㅎㅎ
 
세균에서 생명을 보다 - 생물학의 미래를 보여준 세균학의 결정적 연구들
고관수 지음 / 계단 / 2024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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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균에서 생명을 보다>를 쓴 고관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내가 아는 가장 전방위적인 독서가이며 서평가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매일이다시피 서평을 남긴다는 사실이다. 웬만한 사람들이 다른 일은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책만 읽는다고 해도 흉내 내기 힘든 성과다. 연구와 실험으로 정신 없이 바쁠 텐데 어떻게 이토록 많은 책을 읽고 서평을 남길 수 있는지 의아스러웠다. 그런데 그의 작가 소개를 읽고 나니 이해가 되더라. 고관수 선생은 과학자와 교양인이 서로 멀지 않은 거리에 있어야 하고, 또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과학자의 길을 걸으면서 연구도 열심히 하지만 과학 교양을 비롯해 소설, 인문,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며 생각의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러니까 고관수 선생의 방대한 독서와 독후활동은 본업인 연구의 일환일 것이다. 나는 전형적인 문과 남자로서 평소 과학은 어렵고 머리가 좋은 사람만의 영역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저 천재 과학자들이 만든 문명의 이기를 온전히 사용하기도 바쁜데 그 원리와 배경을 알아서 뭘 한 것인가라는 생각도 했었다. 한마디로 과학과 인문 교양은 별개라고 여겼는데 <세균에서 생명을 보다>를 읽다 보니 과학과 교양은 예나 지금이나 한 몸이었고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스물여덟 번째 생일을 맞아 아내가 선물로 사준 현미경과 박편제작기를 밑천으로 피부가 까맣게 썩어가면서 사망하는 탄저병의 원인이 세균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서 고분분투한 젊고 무명이었던 과학자 로베르트 코흐의 연구 서사도 흥미롭지만, 탄저병의 흔적을 구약성서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내용이 더 신기했다. 여러 학자는 구약성경에서 모세가 히브리인을 이끌고 떠난 후 이집트에서 일어난 10가지 재앙 중 말, , , 낙타, 소에 질병을 일으킨 다섯 번째 전염병이 바로 탄저병이라고 생각한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탄저병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고, 기원전 700년경에 쓰였다고 하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기원전 70년에서 19년에 살았던 베르길리우스의 시(아마도 <사물의 본서에 관하여>에도 탄저병이 묘사되어 있다고 한다. <일리아드>와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는 서양 문명의 시작이며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고전인 것을 고려하면 세균학이니 생물학이니 하는 것 모두가 인류 문명과 함께 시작되었고 함께 살아왔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세균에서 생명을 보다>의 또 다른 미덕이다.

 

<세균에서 생명을 보다>를 펼친 것은 그 재미나는 이문열 <삼국지>를 완독한 직후였다. 가장 확실한 수포자이며 과알못인 나는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일종의 질투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세균학을 이야기하면서 이문열 <삼국지>보다 더 한 긴장감과 여운 그리고 감동을 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분명히 과학책은 그저 지식 전달에 충실한 따분한 책인데 <세균에서 생명을 보다>에 등장하는 과학자의 연구 인생을 접하다 보면 마치 <돈키호테>의 서사를 떠올리게 된다.

 

자신의 연구 결과로 위궤양이 세균에 의해서 발병된다는 것을 확신한 마셜은 논문을 발표하고도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 자신이 자신의 이론을 증명할 동물 모델이 되기로 결심한다. 마셜은 위내시경으로 자기 위에 헬리코박터균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다음 위궤양 환자로부터 추출하고 배양한 헬리코박터균이 다량 들어있는 물을 마셨다. 자신의 예상과 달리 헬리코박터균의 효과는 가혹했고 빨랐다. 5일 만에 현기증과 구토가 나면서 전형적인 위궤양 환자가 되었다. 그리고서는 헬리코박터균이 위궤양의 원인인 것을 증명해 냈다고 의기양양하게 선언하기에 이른다. 물론 마셜의 신화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사람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엄격한 기준을 충족시켜야 하며 특히 연구자 본인이나 실험에 직접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실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마셜은 허락을 구하는 것보다 용서를 구하기가 더 쉽다라고 농을 쳤다.

 

나는 신이 생명체를 창조했다고 믿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깊은 산중에 섬처럼 자리 잡은 작은 물웅덩이에 다양한 종류의 물고기가 서식하는 것을 보고 그 믿음이 잠시 흔들린 경험이 있는 과알못이기도 하다. 대체 그 물고기들이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으면 어디서 왔다는 말인가? 그러나 1822년 즉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보다 한 해 뒤에 태어난 파스퇴르는 미생물이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지에 관한 질문을 던졌고 스스로 그 해답을 찾았다.

 

파스퇴르는 백조의 목처럼 생긴 s자 형 장치 즉 무균 상태를 유지하면서도 공기는 통할 수 있게 만든 도구를 활용해서 외부의 먼지나 입자들이 들어가지 못하면 새로운 생명체가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생물은 생물로부터 나온다는 진리를 파스퇴르의 우직한 연구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그보다 파스퇴르의 실험에는 상당한 행운이 깃들었다는 자세한 이야기도 이문열 <삼국지>만큼이나 흥미롭다.

 

고관수 선생의 말처럼 과학에서 신화는 대중의 관심을 중요한 발견에 불러 모으는데 꽤 쓸모 있는 수단이며 무언가를 강하게 각인시키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동화가 필요한 것처럼 과학자에게도 신화가 필요하다. <세균에서 생명을 보다>는 과학의 신화적 요소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해서 가장 재미나게 세균학을 알려주는 저작임이 분명하다. 독자가 과알못이든 과학자 지망생이든 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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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3 1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24-03-03 12:06   좋아요 0 | URL
https://in.naver.com/kwansooko/challenge/keyword/174218271526624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4-03-03 1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24-03-03 15:33   좋아요 0 | URL
아이고 정말 고맙습니다 !!!!
 


독자들은 위대한 작가가 남긴 명작을 읽고 감동과 공감을 느끼면서 위대한 유산을 남긴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렇다면 작가들은 얼굴도 알지 못하는 수많은 독자들의 즐거움을 위해 글을 썼을까? 그렇지는 않다.

 

버지니아 울프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우울한 어린 시절의 고통과 트라우마를 글쓰기로 치유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불후의 명작 <레 미제라블>은 작가 빅토르 위고의 고향인 프랑스가 아니라 영국령 건지섬에서 그의 망명 생활 중에 탄생했다. 빅토르 위고는 나폴레옹 3세라는 절대 권력에 대항하다가 유배되었는데 민중이 존중받고 주인이 되는 세상에 대한 그의 염원을 <레 미제라블>에 담았다.

 

평생 자신의 동성애를 숨겨야 했던 토마스 만은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비밀스러운 성향을 간접적으로나마 표출함으로써 그나마 숨을 쉬고 살아갈 수 있었다. 단 두 번의 만남으로 베아트리체를 깊이 사랑한 단테는 <신곡>으로 그녀를 천국에서 다시 만났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신을 도와주었던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하고 자신을 배신했던 사람을 지옥의 가장 밑바닥까지 보냄으로써 개인적인 슬픔을 치유했다.

 

괴테도 이루지 못한 사랑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썼고 그로 인해 아픔을 잊고 새출발을 하였다. 제인 오스틴은 어떤가? 그녀는 여성이 수동적이고 남성의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러야했던 당대의 숨 막히는 남성 중심적 가치관에서 벗어난 주체적인 여성상을 <오만과 편견>에 담음으로써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소설 속에서나마 펼쳐 보였다. 작가들에게 글쓰기는 아픈 기억을 치유해 준 일종의 치료제였다.

 

그렇다. 글쓰기는 위대한 작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일종의 치유제다. 과거의 아픈 기억과 경험을 내버려두면 심리적 불안을 거쳐 우울증으로 발전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치유하지 못한 상처를 글로 표현하면 자신의 상처를 똑바로 응시하면서 그 아픔의 깊이를 가늠하고 나아가 그 상처를 스스로 극복하는 힘을 기르게 된다. 숨기고 싶은 상처를 글로 표현하는 것은 분명 고통스럽지만, 그 이상의 긍정적 효과가 크기에 수많은 작가들이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의 상처를 표현하고 드러낸다.

 

우리가 읽는 것은 이런 위대한 작가들의 내밀한 자기 고백이자 극복의 과정이다. 큰 보상을 지불하지 않고도 이들이 남긴 이 거룩한 유산을 내것으로 만들 수 있다니, 이것만큼 어마어마한 재산이 또 있을까? 게다가 그 유산을 내것으로 만드는 과정에는 재미와 감동까지 겹친다. 고전소설은 지루하고 재미없고 어렵다는 편견만 버린다면 누구든 고전소설이 우리에게 건네는 이 유산을 소유한다. 일종의 특권을 누리는 셈이다.

 

이 책을 읽은 모든 독자들이 이 50권의 책을 통해 문학을 이해하고, 좀 더 깊고 넓은 문학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훌쩍 성장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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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4-02-29 22: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박균호 작가님!!!!! 와 귀하고 귀한 글, 두그두그...어서 읽어보겠습니다! 출간 축하드립니다.

표지가 ˝필독서 50˝과 느낌 넘 잘 맞네요. 많은 분들이 읽으시기를!

박균호 2024-02-29 2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네 고맙습니다 !!

호시우행 2024-03-01 06: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글입니다.

박균호 2024-03-01 08:04   좋아요 0 | URL
호시우행님 정말 고맙습니다.

호시우행 2024-03-01 0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행복한 독서생활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