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 기쁨의 기억 - 한국인의 미의식
강영희 지음 / 일빛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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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왜 품절일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사봤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출간된지 오래된 책도 아니고....가끔 다른 서점에서는 구할 수 있는 책들이 알라딘에서는 품절일 때가 있다. 아니 좀 많다. 이유가 뭘까?

표지의 자물쇠가 근사한 책, 책을 펼쳐서 날개부분을 펼치면 '어 이게 뭐야' 저자 소개에 한 예쁘장한 여자아이가 한옥의 문을 빼꼼히 나서면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멋있다. 저자 사진으로 어릴 때의 자신의 사진을 내다니... 그런데 책을 읽어가다보면 이 사진을 낸게 단순히 편집상의 문제는 아니었다는게 밝혀진다. 저자는 자신의 미의식의 원천을 어릴적 한옥이었던 외가에서 형성된것으로 파악한다. 그의 한국적인 미적 심상의 원형말이다. 한국인의 미의식-취향이 어떤 것일까를 탐구하는 주제에 아주 걸맞는 사진이다. 저자의 생각이었을까? 아니면 편집자의 생각이었을까 어쨌든 성공적이면서 기발한 생각이다.

책의 시작은 백남준을 예로 들면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흔하디 흔한 조금은 식상한 논조로 시작된다. 그러나 글의 전개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던건 식민지시대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의 한국의 미 인식을 논박하는 2부이다. 한국미술사에서 야나기 무네요시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어쩌면 오늘날에도 한국인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한국적 미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은 거의 그의 손에서 창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백의 민족의 이미지, 한과 애상의 미로서의 한국미술의 이미지같은 것 말이다. 물론 학계에서는 이러한 야나기의 미술관을 논박한바가 많았지만 그것이 일반적인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깊게 뿌리박은 관념을 완전히 바꿔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무엇보다 야나기는 일제 식민지시대 한국인에 대해 동정적이었던 일본인, 그리고 한국미술의 가치를 부각시켜 주었던 일본인으로 기억되고 있고 더구나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1984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한민국 보관(寶冠) 문화훈장까지 받은 사람이다. 

저자는 야나기의 한국미에 대한 인식이 철저한 일본인의 미의식에 기준하여 이루어진것임을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이었음을 논리적으로 비판한다.

"흔히 무의식의 미, 무작위의 미, 무기교의 미로 표현되는 야나기의 한국 예술론의 핵심은 일본인의 미의식을 한국인의 미의식에 덮어씌우면서 그것을 미의식에 미달하는 무의식으로 격하시킨 것이다."(본문 63쪽)

"미의식에도 위계질서가 적용되며, 일본인에게는 윗자리의 미의식이, 한국인에게는 아랫자리의 무의식이라는 '저마다의 알맞은 위치'가 주어진다. ...이같은 미의식의 위계질서는 한국의 미를 '타력의 미'로, 일본의 미를 '자력의 미'로 규정하는 논리를 통해 체계적인 틀거리를 갖춘다. ... 나아가 이들은 위계질서에 의해 서로 다른 위치와 역할을 부여받은 다음 하나의 체계로 통합된다"(본문 67쪽)

결국 야나기의 미의식은 정치적 식민주의의 문화적 변용에 다름아니었음을 설파하며 그가 일본인의 눈으로 파악한 한국미가 결국 허구임을 맹렬히 논파하고 있다. 문화의식에 있어 식민주의의 잔재가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에서 한단계 발전하여 이제야 제대로 청산되는 느낌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통해 저자는 그렇다면 한국인의 미의식이란건 뭘까를 3부에서 본격적으로 얘기하고 있다. 밖으로 보이는 형(形)이 아니라 그 너머의 상(象)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 따라서 형태미를 넘어서는 정신미의 추구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서 모든 논의를 출발한다. 그속에서 흔히 말하는 고졸미가 발휘되며 해학과 신명역시 마찬가지로 파악될수 있음을 설파하고 있다. 이의 입증을 위해 저자는 박수근과 한국의 각종 미술품들과 민속, 음식, 한국인의 색감, 현대미술까지를 종횡무진 누비며 논의를 전개한다. 하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2부에서 보였던 만큼의 훌륭한 논리성을 갖추고 있지는 못한 느낌이다. 이걸 느낌이라고 하는건 딱히 뭐라고 반박할 말은 없지만 뭔가 지나치게 강박적이지 않나 하는 혐의이다. 하나의 준거틀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모든 것을 맞춰나가려 애쓰는 모습같은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책은 2부의 글만으로도 한국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알라딘의 품절 두글자도 지워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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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 현대사
김성보, 기광서, 이신철 지음, 역사문제연구소 기획 / 웅진지식하우스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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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린 시절의 풍경들 몇가지

1. 초등학교 운동장 웅변대회 - 잔뜩 폼잡고 조례대에 올라간 꼬마 연사가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허공으로 휘두르며 '공산당을 때려잡자'고 외친다. 말들은 다 엄청 원색적이고 초등학교생에게서 나올 수 없는 과격함으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아무도 과격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열심히 박수치는 나!(와 멋있다. 나도 하고싶다. 이런생각을 하며 동경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는 나)

2. 초등학교 교과서 - 무슨과목인지는 기억 안난다. 아마도 도덕책이었으리라. 포스터가 하나 그려져 있다. 시커먼 악마로 묘사된 북한 공산당. 그 아래에서 검은 실루엣으로 표현된 쇠고랑 차고 쟁기들고 삽들고 일터로 끌려가는 북한 사람들. 다들 삐적 말랐다. 그리고 설명 글들(같은 책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북한 사람들은 자유도 없이 매일 강제노동에 시달리고(천리마 운동이랬다) 엄마들은 아이를 탁아소에 빼앗기고 일을 해야 된다는 둥...

3. 악몽 - 밤에 악몽을 꾸게 되면 꼭 북한 공산당이 쳐들어오는 꿈이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대학 때 만난 내 친구는 닭을 무지 무서워했는데 악몽 중에 가장 무서웠던 것이 북한공산당이 굉장히 살찐 닭을 뒤뚱뒤뚱 앞세우면서 쳐들어왔던 꿈이래나 뭐래나

나는 가끔 현대사 부분 수업할 때 이 이야기들을 써먹는다. 그러면 거의 교실은 코미디 분위기다. 아이들은 내가 뻥치는줄 안다. 전혀 이해를 못한다.  참 그랬다. 코미디같은 일들을 하고 그런 속에 살면서도 그게 코미디인줄 몰랐다.

이런 나에게 대학시절 북한도 사람이 사는 땅이라는 사실을 알게된건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곳을 한번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생각조차 해본적이 없기에....

이후 2000년 6월의 남북정상회담까지 참 많이도 변해왔다. 요즘이야 더 이상 북한을 옛날의 내가 아니 우리가 봤던 식으로 보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그렇다고 감정적인 반감이 모두 없어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잠재적인 적으로 북한을 꼽는 사람들도 많이 남아있고, 아니면 북한을 못살아 나를 괴롭히는 불쌍한 친척 보듯이 보는 사람들은 더 많고...그래도 여러 부문에서 교류도 많이 이루어지고 여행기들도 나오고 세상이 참 많이 변하긴 했다. 하지만 감정적이고 동정적인 북한론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이성적으로 북한을 볼 수 있게 하는 시도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있다 하더라도 연구서나 논문들이어서 학생들이나 비전공자가 볼 수 있는 글들은 거의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아니면 있는데 내가 몰랐거나)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몇가지 결점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높은 점수를 줄 수 밖에 없다. 1945년 이후 북한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쉽게 잘 정리해놓았다.

북한 정권의 성립과정과 한국전쟁 이후 김일성의 권력독점과정, 폐허위의 복구과정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인력동원을 위한 수많은 운동들(대표적인게 천리마운동) 주체사상이 나오게 된 배경과 확립되어 가는 과정, 그리고 최근의 경제 위기의 원인들 등이 잘 정리되어 있다.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북한의 여러가지 모습들 -대표적인게 아마도 북한의 권력승계과정이나 북한 사람들의 수령숭배같은 것일 것이다. 그것이 옳다 그르다를 받아들이는건 개인의 몫이지만 적어도 그걸 무조건 우리의 관점에 비추어 비웃을 것이 아니라 그들 나름의 역사속에서 이해해 볼 수 있는 단초도 제공하고 있다. 감정적인 북한에 대한 동정론이나 통일론 아니면 반대의 적대론 모두 이제는 지양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이성적으로 통일문제에 접근해가는 실마리를 던져주고 있기에 그 출판 자체가 큰 의의를 가진다고 본다.

몇가지  단점들 - 서술 자체가 굉장히 교과서적이다. 요즘은 학교 교과서도 칼라판이다. 책이 편집이나 서술형태나 모두 꼭 교과서 같다. 고등학교 북한사 교과서라고 하면 될까? 책은 쉽기는 하지만 별로 재미있지는 않다. 나와 비슷한 어린시절의 경험을 공유한 세대라면 궁금증 하나만으로도 재미있게 볼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세대에게는 어쩔지 잘 모르겠다. 두번째 단점은 단점이라기 보다는 한계인데 그 파란만장했던 50년의 역사를 책 한권에 다 담으려다 보니 지나치게 개괄적이다. 모든 궁금증을 다 풀수는 당연히 없고 좀 더 설명이 필요한 것 같은데 싶은 대목들이 많다. 앞으로 한 세권쯤으로 늘려서 재출판할 의사는 없는지....(책이 잘 안팔릴려나...) 세번 째, 참 너무도 조심스럽게 서술했다. 북한사 자체가 워낙 민감한 부분이다 보니 저자들이 조심 조심 또 조심한 면이 많이 느껴진다. 명확한 관점의 제시나 논쟁의 여지가 있는 부분들에 대한 해석 같은건 이 책에서 기대할 부분은 아닌 것 같다.(하기야 국보법의 망령에서 누군들 자유로우랴?)

단점들을 썼지만 이 책에서 단점들이 그리 중요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시도만으로도 높은 점수를 줄 수 있기에... 지금 근현대사를 공부하는 고등학생들이나 나와 같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요즘의 풍경하나 - 아직도 학교는 국민의례 참 열심히 한다. 국기에 대한 맹세도...이건 예나 지금이나 참 안 변했다. 가끔 국민의례가 끝난 후 아이들에게 묻는다. "야 너 진짜 조국을 위해 목숨바쳐 충성할거냐?" 아이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다. "안할건데요, 싫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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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5-03-15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이신가 봅니다.
"안할건데요, 싫은데요"가 무지 맘에 드는군요. ㅎㅎ
 

  오늘 주문한 책이 도착했다.  열하일기 3권. 상자를 여는 순간 '헉"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두껍다니.... 도대체 이걸 왜 주문했다냐? 알라딘 행사 땜시 사긴 했는데 부록 빼고 원문만 세권 모두 500페이지다. 올 3월은 유난히도 바빠서 요즈음은 직장 마치고 집에 오면 완전 녹초다. 집에 와도 올들어 퇴근이 많이 늦어지게 된 옆지기 때문에 아이들은 온통 내 차지다. 두 딸내미 밥먹이고 놀아주고 씻기고 나면 시계는 거의 10시를 육박하고 결국 아이들 재우면서 나도 같이 잠들어 버리니 책이라곤 한 줄도 못읽는 날이 태반인데....3월 들면서 시작한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 현대사'는 진도가 안 나가진다. 그런데 이 열하일기를 도대체 언제 읽냐고...

책장속에 폭 박혀 있는 주인을 기다리는 책들속에 열하 일기도 추가!!!(불쌍한 놈) 3월이 가고 나면 좀 나아질거야 꼭 나아질거야 올해는 꼭 주인 원망 안하게 그동안 사 뒀던 시리즈 책들을 읽어줘야지

올해의 목표 -  미학 오디세이 3권,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5권, 한국현대사 산책 15권, 열하일기 3권

너희들의 임무는 책장 장식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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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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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대학시절에 "나이는 짤짤이 해서 따는 것이 아니야"라는 농담을 자주 했었다. 주로 어린 나이의 또래들끼리 모여 한두살 더 어린 후배들한테 술 사주면서 하는 소리였지만... 이 책을 보면서 한동안 잊었던 그 농담을 다시 생각해냈다. 우와 나이는 진짜 짤짤이해서 따는게 아니야.

나이 먹는다는게 우리 사회에선 별로 자랑스런일이 못‰쨈? 대부분 그 단어는 몇가지의 욕들과 붙어 다닌다. 온 사회가 미친 듯이 더 젊어보이게 더 어려보이게로 질주하고 있는듯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가끔 인생의 깊이에서 우러나온 무게있는 말이나 글들을 보면 새삼스럽게 신선하고 나도 이렇게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나이든다는 것을 정말로 삶에대한 관계에 대한 통찰의 깊이가 깊어지는 것으로 느끼고 싶다.

이 소설은 연애소설이다. 하지만 모든 연애소설들의 규칙들을 일거에 부숴버린다. 누구에게나 가슴아련할 첫사랑에 대해 말하면서도 전혀 낭만적이지도 지고지순하지도않다. 오히려 인간이란 얼마나 자기 중심적인가가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하지만 그것이 낯설지 않다. 죽고 못살것 같던 잠시의 시간을 벗어나면 우리를 짓누르는 건 생활의 무게이고 그 즈음에서 연애를 하는 모든 인간들의 계산기가 움직인다. 소설속의 나 역시 자신의 삶을 빛내주던 첫사랑을 버리고 안정된 삶을 선택, 은행원과 결혼한다. -그 첫사랑에 대한 묘사에서조차도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소설을 보던 나부터 '에고 이런 인간과 결혼하면 고생길이 훤하다.'라고 생각했으니까... 안정을 찾아 한 결혼은 역시 지나칠정도로 안정적이었고 그 안정감에 지리멸렬하던 중 다시 자신의 생활에 윤활유가 되어 줄 첫사랑과 다시 만나고 그 모든 과정이 자기 중심적으로 합리화된다. 그 남자에게 닥친 불행마저도 자신의 입장에 맞춰 재해석되고...

이 소설을 읽는건 쉽지않다. 인간의 너무나도 적나라한 감정을 대하면서 이것이 나의 모습과 겹치면서 참 부담스럽게 힘겹게 책장을 넘기게 된다. 아마도 사랑의 환상을 갖고 있었을 20대에 이 책을 읽었다면 나는 책을 던져버렸으리라... 그리고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뭐 이리 웃기는 할머니가 다있어!" 하지만 난 아줌마다. 이쯤되니 사랑은 더 이상 환상이 아니라는 것, 생활속으로 들어온 사랑은 오히려 구질구질하게 느껴질 때가 더 많다는 것 정도까지는 인정이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아직은 나의 모든것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마지막 나의 구질구질함을 숨겨둔다고나 할까?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다 말하지는 못한다. 아니 안한다. 아니 아예 인정하지 않는다는게 더 정확할까? 자신의 내면속에서조차도 자신을 속이는게 인간이 아닐까? 박완서씨 정도의 삶을 살면 나도 저렇게 나라는 인간의 추한면조차도 당당하게 내보일수 있게 될까?  인간의 마지막 안쪽의 감정까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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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토끼 2005-11-09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말씀대로- 저는 읽다가 이 책을 덮어버렸는데요 아직 읽을 마음이 생기지 않네요. 이런 후기들을 쭉 읽어봐도..
 
측천무후 - 상
샨 사 지음, 이상해 옮김 / 현대문학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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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말하지 않더라도 인류의 역사는 남성이 주도한 역사였다. 아니 그런 것처럼 보인다. 그런 속에서 여성 통치자는 극소수일 수 밖에 없고 그 희소성으로 인해서 그들은 항상 소설의 주인공들이 된다. 그런 여성 통치자들 중에서도 자신의 왕국을 스스로 창출해 낸 사람은 아마도 측천무후, 하나 뿐일 것이다. 얼마나 드라미틱한 인생일까? 그 존재 만으로도 여성독자들을 끌어들일수 있지 않을까

측천무후는 중국 당 태종의 후궁으로 들어갔다가 간택되지 못하고 그 아들 당 고종의 황후가 된다. 그리고 남편이 죽자 아들들을 물리치고 스스로 여황제에 올라 국호를 '주'로 고치고 16년동안 중국을 다스린다. 그녀가 죽은 이후 왕위에 오른 그녀의 아들은 다시 국호를 당으로 고치고.... (이 시기는 우리 역사에서는 고구려가 안시성에서 당 태종의 군대를 물리치고, 결국 당 고종대에 신라와 연합한 당군은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바로 그 시기에 속한다)

소설은 일인칭 독백의 형태로 측전무후의 탄생에서 부터 죽음 이후시기까지를 모두 다루고 있다. 일인칭이라는 시점의 선택은 소설적 흥미를 돋우는 역할을 한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측전무후의 내면을 탐색한다. 평민출신으로 당건국에 공헌하여 출세한 아버지 밑에서 행복하던 시절, 아버지의 죽음으로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시절, 궁에 들어가 있는 듯 없는 듯 만명의 여자중의 하나일 뿐이던 시절, 드디어 권력에 진입해 권력을 장악하고 결국 쓸쓸한 죽음을 맞기 까지 측전무후의 내면을 섬세하게 따라가고 있다. 세상의 중심인 남자들을 물리치고 세상의 최고봉에 선 여자, 그 여자의 내면은 어떨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할법한 나 역시도 궁금할 수 밖에 없는 시점의 선택, 이 책은 아마도 상업적으로 성공할 듯이 보인다.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이 한국에까지 번역된걸 보면 아마도 그러리라.)

하지만 그럼으로써 이 책은 역사소설이 아니다. 이 책에서 역사는 그저 주인공을 돋보이게 할 배경의 역할밖에는...(그것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 너무나도 감상적인 문체속에서 측천무후라는 역사적 인물은 실종되고 권력의 정점을 향해 꿈을 키우는 그저 한 여자가 있을 뿐이다. (하긴 저자가 역사소설을 표방한 것도 아닌데 이런 얘기는 좀 그렇군...쩝...) 그렇다면 측천무후라는 한 인간의 내면을 정말로 잘 따라잡기는 한걸까? 글쎄 별로 아니다. 책속에 묘사된 측천무후는 그저 그런 한 여자일 뿐이다. 그녀의 이름을 측천무후가 아니라 완전히 허구의 인물이나 아니면 그저 평범한 한 여자로 바꿔쳐도 소설의 내용이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측천무후는 그저 상업성을 위한 소재정도에 지나지 않는게 아닐까?

사족 하나 - 이 책을 중국인들이 읽으면 어떻게 생각할까? 글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의 저자가 중국인인것 같은데 겉만 그런것 같다는 생각. 서구인들의 입맛에 맞춰 보여지는 중국. 그들의 오리엔탈리즘적인 환상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구도하에서 계산되어 쓰여졌다는 혐의가 계속 드는 건 왜일까?  아마도 이런 요소가 또한 상업성과 결부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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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사회의적 2006-07-11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환상에 대해 조금 공감합니다. 그리고 측천무후가 아닌 다른 인물을 대입시켜도 별로 읽기에는 부담이 없을 듯한 소설로 보임.. 역사소설이 아니다라는 점에 상당한 공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