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읽기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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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를 만난다는 것이다.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다른 나가 만들어진다. 작가는 이 주제를 끊임없이 변주한다. 이로써 인간과 삶의 본질에 닿기를 바람이다. 그러나 소설에서 몰입을 가져왔던 작가의 집요한 문장의 변주가 에세이에서는 때때로 몰입을 방해한다. 끌려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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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5-08-26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끌려가는 기분!
그거 뭔지 알 것 같아요.ㅋㅋㅋ
문장들이 참 멋지고 근사해서 필사하고 싶어질 때도 있는데 돌아서면 기억이 없네요?
책을 펼쳐 읽으면 전혀 새롭게 다가오는 문장들. 그런데 새로워서 다시 들여다 보게 되는 문장들이긴 합니다.
이승우표 문장 속에 한없이 허우적 대다가 흠뻑 젖어서 나오는 그런 기분이 들 때도 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기분이 좋긴 합니다만.^^˝

바람돌이 2025-08-26 21:45   좋아요 1 | URL
마지막 저의 끌려가는 기분은 칭찬 아니예요. 작가가 너무 집요해서 좀 세뇌되는 기분이랄까? ㅎㅎ 저는 에세이보다는 소설이 훨씬 좋네요
앞으로 소설을 계속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책읽는나무 2025-08-26 21:55   좋아요 1 | URL
별 네 개에서 이미 칭찬이 아니심을..ㅋㅋㅋ
저도 아직 읽지 않은 소설들이 넘 많아서 짬짬이 한 권씩 한 권씩 읽어나가려구요. 연속해서 많이 읽으면 문장 속에 갇혀 허우적 대다보니 스토리를 잊게 되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정신 바짝 차리고 읽어야겠죠.
읽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망고 2025-08-26 22:19   좋아요 2 | URL
오 전 한권도 읽은게 없는데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이승우 작가

바람돌이 2025-08-26 22:30   좋아요 2 | URL
망고님 저는 소설을 먼저 읽으실 것을 권합니다. ㅎㅎ

망고 2025-08-26 22:35   좋아요 2 | URL
네😆 먼저 소설을 읽어 보겠습니다

단발머리 2025-08-27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소설은 두권 정도 읽었는데, 에세이를 먼저 읽었거든요. 이승우 작가는... 그래서 제게는 이 책도 좋을 것 같습니다만 ㅎㅎ
바람돌이님의 감상을 기억해 두겠습니다^^ 사실 이 책이 출간된 것도 몰랐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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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들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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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는 가장 쉽고 위험한 방법은 이해할 수 있는 것만 이해하는 것이다. 가장 쉽지만, 이것은 사실은 이해가 아니라 오해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이해하지 않는 것보다 위험하다. -21쪽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표제작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기에 오해하고 그래서 서로를 모르는 사람들, 또는 모르는 사람이 앎의 순간으로 들어오는 그 찰나의 이야기이다.


<모르는 사람>

  이 세상은 견디는 것이다라고 아버지가 말한다. 듣고 있는 아들은 그 의미를 알아듣기 힘들다. 그러나 아버지의 실종 이후 그 의미를 어렴풋이 깨달아가는 듯하다. 아버지는 삶의 모멸감으로부터 견뎌야 했구나라는 짐작이다. 그런 결론이 나온 건 아버지의 실종에 대한 어머니의 폭력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태도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삶에 대한 자기 중심적인 태도는 점점 아들의 삶에 대한 압박으로 전이된다. 그러나 불현듯 전해진 아버지의 부고, 그리고 사진 속에서 행복해 보이는 아버지의 모습, 전혀 다른 삶을 내내 꿈꾸었던 아버지의 고백은 어머니 역시 아버지의 삶의 공간에서 배제되는 모멸감을 느끼고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모두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가족이라는 테두리가 서로를 안다는 전제가 될 수 없음이고, 밖에서 보이는 모습이 다가 아니라는 평범한 진실에 맞닿는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서로 닿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배제함으로써 서로에게 모멸감을 안긴다. 그럼에도 헤어지지 못한다. 그래서 가족은 가장 큰 족쇄이자 슬픔이 된다. 그런데 웃기는 건 그 속에도 사랑이 있다는거다. 그것이 자기 연민이든 착각이든 어쨌든 사랑이다. 사랑이 없다면 괴로울 이유도 없으니 말이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무덤을 보러 비행기 표를 끊는 것은 결국 사랑이다.


<복숭아 향기>

  또 사랑이다. 단 한순간의 연민이 삶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아도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다. 내 옆의 사람이 그런 선택을 한다면 온갖 욕을 퍼부으며 말리고 말릴 일이지만 자기 스스로도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다. 연민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자. 타인에 대한 연민은 그에게서 나를 보는 것으로 비롯된다. 나에 대한 연민이 타인을 통과하며 동질화 되는 것이다. 얼핏 이해되지 않을 이 과정을 작가는 같은 문장을 여러가지 다른 뜻으로 변주하면서 반복을 시도한다. 예를 들면 복숭아에 대한 문장이다.


그 순간 딱히 좋아하는 과일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인데, 딱히 좋아하는 과일이 있는데도 떠오르지 않았다면 문제일 수 있지만, 딱히 좋아하는 과일이 없으므로 이상하다고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상한 것은 딱히 좋아하는 과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런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대답을 사전에 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대답이 같았다는 것이다.... -42쪽



이렇게 계속 복숭아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면 어느덧 복숭아라는 대답에 뭔가 필연성이 있지 않나 싶어져 버린다. 이런 문장은 M시에 대해서도 계속되며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결국 문장들이 그렃게 부딪히며 독자를 이해와 인정의 자리로 데려다 놓는 것이다. 인정할 수 없어도 불합리해도 이해는 할 수 있는 자리가 여기 있다고.... 그것도 사랑 아니겠냐고....이는 <윔블던, 김태호>에서 다시 반복된다. 화자가 자식이 섬망병자이자 금치산자로 치부해버리는 노인의 청을 들어주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야기다. 그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자리를 우리는 또 모르는 사람들을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강의>

  주식이니 투자니 하다 빚의 수렁에 빠지는 사람의 이야기는 흔하디 흔하다. 너무 흔해서 소설이든 영화든 주 소재로 써먹지도 못한다. 그저 없으면 심심한 지나가는 소재로나 소비된다. 작가는 이 흔한 소재를 정면으로 다룬다. 제목처럼 일장 연설을 강의라는 제목처럼 끝도 없이 늘어놓는다. 그 중 모르는 얘기는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이 장황한 대사가 독자를 빨아들이는 것은 숨도 쉬지 못할 만큼 구구절절이 반복되는 문장의 힘이다. 반복이지만 반복이 아니다. 같은 말을 문장의 표현을 달리하면서 점점 점증하는, 아니 수렁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적어도 이 단편집 안에서 작가의 문장의 특징이 가장 잘 보이는 작품이다. 


  단편 <찰스>와 <넘어가지 않습니다>는 같은 상황에 대한 다른 이야기이다. 모르는 사람을 대하는 우리들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모른다는 것은 두려움을 유발하고, 그래서 알기 위해서 질문을 던지는 것은 책임을 유발한다.  찰스의 김철수는 자신이 감당해야 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질문하기와 대답하기를 멈춘다. <넘어가지 않습니다>의 화자인 나는 모른다는 벽을 절박하게 두드리는 남자에게 결국 문을 열고 질문과 앎의 공간으로 그를 맞이한다. 우리는 사실 모르는 사람에 대해 늘 저 2가지 태도 사이에서 망설인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사실상 닥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질문을 그만두고 개입과 책임을 그만두었을 때 우리는 김철수가 그러듯이 오래도록 씁쓸한 자책감에 시달릴 것이다. 누구도 완성된 존재로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모르는 사람에 대한 질문과 책임, 문을 여는 그 행위가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것은 분명하기에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드는 소설의 질문이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신의 말을 듣다>에 나오는 문장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네가 그 물건을 훔치지 않았다는 걸 안다. 그리고 다른 것도 안다. 네가 했는데 드러나지 않아서 감춰져 있는, 크고 작은 아주 많은 것들을 안다. -203쪽


  그러나 작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구원을 제시하기도 한다. 과거의 죄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고 덮을 수는 없지만, 지금의 나의 행동이 미래의 나를 만든다는 것으로.... 때로 그러한 구원이 폭력적으로 억압되었을 때,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없을 때,  <안정한 하루>의 장필수씨와 장철수 형제처럼 사람은 서로의 일을 모른척 함으로써, 즉 의도적으로 서로의 상처를 모르는 사람으로 살아감으로써 바깥으로의 감각을 닫아버린 채 살아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언젠가는 모르는 사람을 나의 세상으로 끌어들인다. 


 이승우 작가의 에세이집  <고요한 읽기> 서문에서 작가는 말한다.


책을 읽을 때 독자가 실제로 읽는 것은 책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뜻입니다 (고요한 읽기 6쪽)


이승우 작가의 <모르는 사람들>을 읽으면서 내가 읽은 것이 책이 아니라 내 자신이라는 생각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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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5-08-26 2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너무 멋집니다.
역시 믿고 읽는 바람돌이 님의 리뷰.^^
리뷰를 읽어 내려 가면서 나는 과연 이 책을 제대로 읽었던 것일까? 의혹이 드네요.ㅋㅋ
너무나 새로운 내용들이 많고 바람돌이 님의 해석이 정갈하면서도 날카로워 기회가 되면 재독을 해야겠단 생각이 듭니다.
이승우 작가님의 글은 인간의 내면 속을 과연 어디까지 파헤칠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곤 하더군요.

마지막 문장 특히 맘에 들어요.
아, 저런 문장이 있었던가!
멋지다!
그리 되었답니다.ㅋㅋㅋ
때려죽일 이놈의 기억력.ㅋㅋㅋ

바람돌이 2025-08-26 21:43   좋아요 1 | URL
칭찬 감사합니다. 칭찬 먹고 크는 바람돌이. ㅎㅎ
소설이 정말 좋았습니다. 이 한권으로 이승우 작가님 팬이 되었네요. 모두 좋은 책을 소개해주신 나무님 덕분입니다. 마지막 문장은 에세이집 서문에 나오는 문장인데 이 문장이 소설의 주제와 맞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돌아서면 잊어버리지만 첵을 읽으며 느꼈던 서늘함은 남잖아요. 늘 그런 것 같아요.

희선 2025-08-27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해할 수 있는 것만 이해할 때가 많은 듯하네요 이해하기 어려운 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나을지, 아예 모르는 척하는 게 나을지... 책을 보면 자기 자신을 생각하기도 하네요 그럴 때가 많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그러려다 말 때가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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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우리돌의 들녘 - 국외독립운동 이야기 : 러시아, 네덜란드 편 뭉우리돌 2
김동우 지음 / 수오서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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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감사하다는 마음이 전부일 때가 있다. 책을 읽으며 되짚는 독립운동가들의 삶이 그렇고, 잊혀진 삶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그렇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진행하는 작가님이 부디 다음 프로젝에는 제발 국가의 지원이 있기를. 그를 위해 제발 지금 뉴라이트 독립기념관장부터 갈아치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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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우리돌의 바다 - 국외독립운동 이야기 :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 편 뭉우리돌 1
김동우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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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시절 독립을 염원하며 싸웠던 분들께 왜 그리 간절했냐고 다른 삶이 없지는 않았잖냐고 묻고싶기도 했다. 그 답을 찾은듯하다. 그저 독립 외에 생각할 수 없는 시대였다고, 그래서 어디서든 뭐라도 해야 했다고... 그 마음에 국가가 보답할 길을 이 책이 부디 열어주었기를. 작가님께는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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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땅
김숨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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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달린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카자흐스탄까지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이름도 낯선 땅을 한 달여에 걸처 달린다. 기차는 화물차다. 짐을 싣는 화물칸 수십 개를 달고 끝없는 시베리아를 거쳐 바이칼호를 거쳐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으로... 어떤 열차는 바이칼호에서 궤도를 이탈하고 푸르디 푸른 바이칼호로 추락한다. 화물칸이 부서지고 추락한다. 그러나 추락하는 것은 화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화물차가 나르고 있는 것은 화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호수에 빠진 사람들은 그대로 얼어붙는다. 죽었나? 아니 저렇게 생생한데.... 죽었으니 저 찬 물에서 못나오지. 죽은 이들은 조선인들이다. 기차에 탄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인 듯 해 두렵다. 외면하고 싶다. 바이칼호에 담긴 죽음이 사고인지 학살인지도 알 수 없다. 이 길의 끝에 기다리는 것이 죽음일지도.....아무것도 모른다. 그래서 더 두렵다. 차라리 달리는 기차에서 저 끝도 없는 벌판으로 뛰어내릴까? 


  책을 덮고 가만히 생각한다.

  여기는 3평 남짓의 기차 화물칸. 그나마 천장에 하나 뚫려 있던 작은 환기창마저 막아버려 사방이 꽉 막힌 어두운 곳. 낮인지 밤인지 구분도 안 가는 어둑한 공간에 들리는 것은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 뿐. 화물칸 중간에 가로로 칸막이를 쳐 이 층 공간을 만들어 짐짝처럼 꽉꽉 채워진 30 여 명의 사람들. 이 여정이 언제 끝날지 어디로 가는지 새로 가는 곳에 무엇이 기다리는지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막막함과 불안. 이 이야기는 그 숨 막히는 절망과 눈물에 대한 진혼곡이다.



  

  김숨 작가가 그리는 이 풍경은 1937년 스탈린의 소련 정부에 의해 연해주에 살던 17만여명의 조선인들이 7,500km 떨어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지역으로 집단  강제 이주를 당했을 때이다. 1937년은 중일 전쟁이 일어나고 소련은 일본의 침략에 대한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을 때다. 이를 빌미로 소련은 조선인이 일본인과 외모의 구별이 안되고 일본인 첩자 노릇을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정말로 이 이유였으랴. 당시의 소련은 세계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이를 위해 스탈린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단결을 강조한 시대이다. 필연적으로 이런 강박은 비판과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독재로 이어지고, 소련 내 수많은 민족의 자치 요구를 구성원의  평등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 소련  체제에 대한 저항과 분열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가 소련 내 수많은 소수 민족들의 분리와 이동이다. 19세기 중반부터 먹고 살기 위해 두만강을 넘어 연해주에 정착했던 조선인들이 이렇게 순식간에 삶의 터전을 빼앗기게 된 것이다. 그렇게 강제 이송당한 사람 중에는 독립군 홍범도 장군도 있었다.


 이 역사적 설명 만으로도 당대 조선인들의 그 아득한 절망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역사적 설명은 빈 구멍이 숭숭 뚫린 단순화일 뿐이다. 17만 여명이란 숫자는 숫자일 뿐이다. 17만이란 숫자에는 17만 개의 고통과 분노와 눈물이 있다. 역사 기록은 그 눈물을 온전히 살리지 못한다. 역사 기록은 그 눈물과 고통을 하나하나 품지 못한다. 그래서 과거의 고통은 뭉뜽거려져 역사 기록에 박제 되고 그리고 잊힌다.


  그 뚫린 자리에 문학이 들어선다. 한 명, 한 명, 그리고 또 한 명.... 17만 개의 이름이 있다. 금실, 따냐, 요셉, 미치카, 소덕, 아나똘리, 허우재.....그리고 이름조차 얻지 못하고 엄마 품에서 죽어야 했던 아기..... 이름을 부르고 그 하나 하나의 생의 기쁨과 눈물과 분노의 이야기들을 때 살아있는 한 인간의 서사가 내 안으로 들어온다. 


  김숨 작가의 <떠도는 땅>은 그 열차에 탔던 이들 한 명 한 명을 위한 진혼의 노래다. 먹고 살기 위해 떠났던 한 번의 길 떠남이 내내 부유하는 삶으로 이어질 지 누가 알았을까? 컴컴한 화물칸 속 추위와 굶주림과 숨 막히는 체취와 오물의 냄새 속에서 모두가 그 신산한 삶을 읊조린다. 굳이 누가 들으라는 것도 아니고 답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뿐이다.


"어르신, 고향 떠나온 뒤로 내내 떠돌며 살지 않으셨어요?"

"그야 그랬지.... 땅이 떠도는 것인지, 내가 떠도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떠돌았지....."  -183쪽


그래서 어린 미치카의 질문이 가슴을 때린다.

"엄마, 우린 들개가 되는건가요?"

'엄마, 나도 인간이에요?"


내가 우리가 너의 이야기를 듣고 있어. 기억할게. 잊지 않을게. 그러니 너는 들개가 되는 게 아니야. 인간이어서 인간의 노래를 부르는거야. 잊히지 않고 박제 되지 않는 인간의 삶이 여기 이 기억에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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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5-08-20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지도에서 눈으로만 쫓아가도 그렇게도 머나먼 길을.... 김숨 작가가 진짜 힘든 작업을 해냈네요.
힘없는 나라의 국민들이, 혹은 이상한 사람들의 지배 아래 사는 사람들의 삶이 다 그렇게 고될테지만, 그 곳에 살았고 정착한 분들의 후손들은 아직도 조선을 그리워하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요.

바람돌이 2025-08-20 14:46   좋아요 1 | URL
벌써 90여년이니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죠. 이 책에 김숨작가님 서문이나 후기가 없어요. 읽고 나니 왜 없는지 그 마음이 느껴지더라구요. 무언가 말을 보태기 힘든 마음이 느껴졌어요

건수하 2025-08-20 1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 저 이 책 이번주 책모임 책인데! (아직 못 읽었어요)
읽고 이 글 읽으러 오겠습니다 ^^

바람돌이 2025-08-20 18:04   좋아요 1 | URL
오 이런 우연이.... 책모임에서는 더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을거같아요
건수하님 리뷰를 기다립니다

잉크냄새 2025-08-20 2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고려인들의 국적 회복 관련 글을 읽다 그들을 당시 국가를 버린 배신자로 평가한 어떤 미친 이의 댓글에 분노했던 일이 기억나네요. 아픈 역사를 공유하는 같은 민족에 대해서도 공감 능력이 제로인데 난민에 대해서는 얼마나 잔인할지 두려운 일입니다.

바람돌이 2025-08-20 21:27   좋아요 0 | URL
하 그런 미친 의견도 있단 말입니까? 하기야 요즘 뉴라이트를 비롯한 극우들이 말하는걸 들어보면 있고도 님겠지요. 그런 생각을 하는건 어찌하지 못하더라도 감히 그런 말을 공공에서 할수 없도록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너무 아쉽습니다.

책읽는나무 2025-08-20 2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 보는 거야>(제목이 기억 안 나 방금 찾아봤어요.^^) 책이 생각납니다.
그 책을 쓰게 된 어떤 심경 그리고 과정을 듣고 책을 읽었는데 짧은 산문시처럼 쓰여진 글귀 속에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소설을 써 나갔을지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아마 이 책도 그러하겠단 생각이 드네요.
그 후, 저희 동네 도서관 한 곳에 시민들의 힘을 모아 고 김복동 할머님을 기리기 위한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고, 며칠 전 광복절 기념으로 그 도서관 간판 옆에 김복동 평화의 도서관이라고 작은 현판을 붙이는 기념식이 열렸더군요. 곧 그곳 도서관 이름도 <김복동 평화 도서관>으로 바꿀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었어요. 저는 이 일이 어쩌면 작가님의 힘이 컸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숨 작가님 떠올리니 문득 우리 동네에서 일어났었던 이 일이 떠올랐고,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놓쳤던 소설들도 떠오릅니다.

이번 소설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야 될 책이로군요. 지도를 보면서 그 시절 어떻게 그 먼 거리를 옮겨 갔을지…마음이 무겁네요.ㅜ.ㅜ

바람돌이 2025-08-21 16:29   좋아요 1 | URL
저도 몰랐는데 그곳이 김복동할머님 고향이네요. 살아계실 때 소녀상이나 평화의 도서관을 보셨더라면 좋으셔ㅛ을텐데 안타까워요. 오랜 세월 힘들게 싸우셨는데말이죠.

그래도 도서관을 드나드는 시민들과 아이들이 할머님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겠다싶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숨작가님 참 글을 장 쓰시더라구요. 말씀하신 책이랑 다른 책들도 읽어야 할 작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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