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 1 - 충격과 공포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5
김태권 지음 / 길찾기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십자군 이야기 하면 누구나 떠오르는 것은 중고등학교 시절 달달 외웠던 십자군 전쟁의 원인 - 이름도 외우기 힘든 셀주크 투르크의 예루살렘 정복과 그들에 의한 기독교 순례단 박해. 학교 시험에 단골로 출제되는 문제였고 언제나 정답으로 간주되던 것이다. 우리의 교과서가 얼마나 서구중심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며, 또한 지금도 일부 몰지각한 출판사의 교과서들에는 버젓이 실려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다행히 요즘은 이슬람 관련서적들이 꽤 많이 나와 이런 오해를 바로잡는 계기들을 만들고 있지만 그것이 아직도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함으로 해서 이런 이슬람에 대한 또한 서구에 대한 오해를 뒤엎지 못하고 있는 것 역시 현실이다.

이런면에서 누구나가 쉽게 알수있게 만화의 형식을 빌려 십자군 전쟁을 재조명하는 저자의 노력은 정말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첫번째 미덕은 쉽게 읽힌다는 것이다. 쉽다는 말이 내용이 가볍다는 의미로 얘기되어지는 것은 전혀 아니다. 십자군의 그 복잡다단한 이해관계와 얽히고 설킨 이해관계들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나가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두번째 미덕 - 이 만화를 그림에 있어 그가 얼마나 많은 자료들을 섭렵했는지 책을 조금만 펼쳐들면 누구나가 알 수 있다. 역사적 근거를 바로 찾아내기 위한 이러한 노력이 그에게 역사적으로 올바른 시각을 갖게 해주었으리라.. 나는 균형잡힌 시각 또는 객관적 시각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아니 객관적 시각이란 말속에 포함된 진실을 파묻는 경향들, 너도 틀렸고 나도 틀렸다로 애매모호한 양비론을 뿌리면서 결국은 역사의 승자의 손을 들어주는 그런 함정이 싫다. 물론 모든 역사적 사실을 옳으냐 그르냐로 칼로 무 자르듯 양단할 수 없는 건 사실이지만 그가 어떤 입장에 서느냐에 따라 누가 더 옳으냐는 항상 존재한다. 십자군 전쟁 역시 누가 더 옳은지 분명히 파악할 수 있는 전쟁이다. 침략군과 방어군중 누가 더 옳은 것인가? 정답이 분명한 것 아닐까? 이슬람의 입장에서 십자군은 분명히 침략군이었고 그것도 난폭하고 잔혹하기가 그 전의 역사에 비길데가 없는 그런 침략군이었다. 1차 십자군 당시 참전한 한 십자군 병사의 증언에는 그들이 예루살렘이 입성하여 복사뼈가지 피에 잠길정도로 무자비하게 예루살렘에서 학살을 자행하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에 반해 후에 예루살렘을 탈환한 이슬람의 술탄 살라딘의 기독교도에 대한 조치는 종교적 관용이 무엇인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세번째 미덕 -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미덕이다. 우리가 역사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배우지 못하고 있는가를 분명히  제시하고있다. 천년전의 전쟁과 오늘날의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전쟁과 광기의 역사가 어떻게 되풀이 되고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참으로 쉽게 연결지을수 없었을 터인데도 그의 종횡무진 날아다니기에는 억지로 연결지은 흔적이 보이지 않으며 지금 우리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를 뼈아프게 전하고 있다. 저자의 역사인식의 내공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하겠다.

상당히 심각한 리뷰가 되고 말았지만 책 내용의 심각성에 비해 이 책은 만화다. 만화의 생명은 재미라고 난 꿋꿋하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만화의 생명력 역시 이 책은 꿋꿋하게 간직하고 있다. 재밌다. 당연히 2권이 기다려지는데 언제쯤이나......

또 하나의 부록- 이 책을 읽고나면 읽어야 될 책이 또는 읽고싶은 책이 무지하게 많아진다는 부작용을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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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5-05-03 0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만화도 봐야지 생각만 하고 있는데...

바람돌이 2005-05-03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손에 잡으면 순식간입니다요

아영엄마 2005-05-08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보관함에 담아 두고 있답니다. 그나저나 2권은 언제 나올까나~

바람돌이 2005-05-08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게 궁금해요. 2권 기다리다 읽을려면 결국 목빠질 것 같아 기다리다 지쳐서 읽은 책.
옛날에 북해의 별이란 만화 생각나네요. 고등학교 때부터 6권인가 나온거 읽기 시작했는데 늘 목빠지게 기다리다가 대학 가서야 완결되었던 것....독자를 기만하는 작가 각성해야 함다
 

어젯밤의 과음으로 완전히 녹초가 된 오늘... 하루 종일 헤롱헤롱 헤매다가 오후 되니 죽을 지경이다. 거기다 감기몸살끼까지....오늘은 엄마한테 부탁해 아이들마저 친정에 둘다 그대로 맡겨두고 집으로 그냥 왔다. 아파트 관리실에서 찾은 택배에 이 책이 들어있다.

일단 흐느적거리는 몸을 아무데나 누이고 책날개에 저자소개부터 봤다. 전력이 대체로 맘에 드는 편.... 이런 책은 어떤 사람이 썼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아무리 잘 쓰도 나하고 관점이 너무 다르면 읽기가 너무 힘들어지기 때문.... 최소한의 논쟁의 접점이라도 있어야 책읽기가 고행이 되지 않는다.

발문을 김지하씨가 썼다. 발문 한번 거창하다. 미학의 東道東器論을 열었다. 민중 문화한국의 정수리를 겨냥하고 있다. 민족통일의 길을 구체적으로 열고 있다. 등등..... 책 한권이 이런 거창한 역할을 다할 수 있으려나...

차례를 보니 엄청나게 방대하다. 시대와 공간을 가로지르며 여기저기 질주하고 있다.

내용 모르겠다. 아직 안봤으니.... 도판들은 대부분이 익숙한 것들이라 일단 부담이 좀 줄어든 편...

애고 피곤해 내일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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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4-29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독하시길^^

바람돌이 2005-04-30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

비로그인 2005-04-30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받았답니다^^

클리오 2005-04-30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단 어떻게 선정되나요? 보니까 기본 마일리지도 있고 그래야 되던뎅...

바람돌이 2005-04-30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거 없어요 무조건 선착순이예요.
저는 하루에 한번씩 알라딘 편집부 서재에 들어가요. 메인화면에 알라딘 편집부 서재 바로가기 메뉴가 있잖아요. 주로 오전 9시쯤에 페이퍼가 뜨더라구요. 그러면 그 다음은 선착순으로 댓글달아서 신청하면 되요. 주소랑 이름이랑 쓸때는 서재주인만보기로 해서요... 근데 마감이 너무 빨라요. 저처럼 공짜에 눈독들이는 알라디너들이 많기 때문이겠죠...

바람돌이 2005-04-30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숍님의 서평 기대되네요. 즐겁게 읽자구요. 룰루랄라~~~

책읽는나무 2005-05-01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언제 또 서평단 책이 나왔더랬어요?
저것도 부지런해야만 얻을 수 있나봐요!
전 한 권 받아보았더랬는데..그걸로도 만족합니다..^^

2005-05-01 0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5-03 0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5-05-03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님 서운암이예요 지난주 간게 서운암 야생화 전시에 갔다가 자장암까지 가서 퍼져 앉아 논거구요. 근데 야생화는 아직 이르더라구요. 굳이 그 기간이 아니더라도 산책로를 따라 도는 거니까 아무때나 가도 될 것 같아요.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씀 정답인 것 같아요. 제일 옆에 있는걸 제일 모를때가 참 많죠

비로그인 2005-05-03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홍~ 서평단 도서.. 정신없는 와중에도 서평 올렸어요. 아이구.. 공짜책이라고 좋아라했는데 역시..세상에 공짜는 없어요...(--!!)

바람돌이 2005-05-03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빨리도 읽으셨네요. 저는 지금 겨우 1장 읽고 2장 들어가는데...
생각보다 진도가 안나가네요

책읽는나무 2005-05-06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제가 님의 답글을 일찍 볼껄 그랬나봅니다.
어제 자장암을 찾아 엄청 올라갔었거든요!....길이 안보여 다시 내려와 경비아저씨한테 물어보니 전시회는 벌써 끝났다고 하시면서 서운암이라고 하시더라구요..
우리는 김밥을 먹으면서 "서운암도 모르고 좀 서운하네~~~"농담을 하구선..다 먹고 일어서 서운암을 찾아 가려는데....김밥 먹는 사이 서운암의 이름을 잊어버려 한참을 생각했다는~~~~ㅠ.ㅠ
겨우 서운하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 겨우 찾아갔었습니다..ㅋㅋㅋ
나중에 가을에 한 번 더 가볼까? 생각중이에요..^^
 
최순덕 성령충만기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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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슈퍼스타즈의 팬클럽 이후로 오랫만에 소설을 읽으면서 푸하하 웃었다. 이 책에 실려있는 8편 중 '백미러 사나이'와 '최순덕 성령 충만기'에서이다. 성석제 이후 다시 만나는 이야기꾼이다.

이기호 그에겐 소설가, 작가 이런 명칭보다는 이야기꾼이란 말이 딱 어울릴 것 같다. 옛적 동네에 하나쯤은 있던 유난히 말을 맛나게 하는 이야기꾼, 같은 농담이라도 내가 하면 썰렁한데 그가 하면 배를 잡고 웃게 되는 그런 이야기꾼 말이다.

이 소설집은 독특하다. 각 이야기 마다 형식도 다 다르다. 보통의 소설의 형식을 벗어나 그가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형식을 찾아낸 것 같다. 첫 이야기 '버니'는 랩, 햄릿 포에버는 취조문의 형식, 최순덕 성령 충만기는 불경스럽게도(?) 성경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이야기들이 이런 새로운 형식들을 통해 이야기의 재미에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 그런 새로운 형식을 보는 재미도 쏠쏠...

하지만 웃기고 재미있기만 한 건 아니다. 웃음속에 묻어나는 연민과 눈물이 이 신인작가의 세상을 보는 눈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는걸 알려준다. 진지하기 보다는 시니컬하다고나 할까? 그러나 그 시니컬함이 대책없고 못말리는 낭만주의자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이 시니컬함이 어디로 갈지는 아직 미지수다. 아직은 세상에 그저 세상이 이지경이다라고 툭 던져놓은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의 그의 행보가 더 궁금해지게 만든다. 그의 차기작은 어떤 모습을 띠고 내게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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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4-29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작품 보면서 많이 키득키득거렸지요..기대되는 작가임에 틀림없습니다~!

바람돌이 2005-04-29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책을 읽는데 비솝님도 한 몫 하셨죠.... 근데 도서관에서 빌려봐서리 땡스투랑은 상관이 없었지만.... 읽고 리뷰를 쓰는데 비숍님이랑 몇분들 땜이 기가 팍 죽어서리, 그리고 더할 말이 없는 것 같아 짧은 리뷰가 되고 말았답니다.

비로그인 2005-05-01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그런 '몫'을 했었다니.. 말만 들어도 리뷰 쓴 보람이 있네요^^;; 서로 리뷰 쓰고 보는 것이 참 좋죠? 저도 바람돌이님 리뷰 보고 책을 다시 펼쳐보았답니다^^ 표현하신대로 정말 재미가 쏠쏠해요^^;;

바람돌이 2005-05-01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똑같은 얘기를 아 이사람은 이렇게 보는구나 라는 재미가 쏠솔해요
 
폭스 이블 블랙 캣(Black Cat) 5
미네트 월터스 지음, 권성환 옮김 / 영림카디널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내가 추리소설을 읽을 때 기대하는 것

첫째, 기막힌 반전

둘째, 범죄자와 탐정 내지는 형사등등의 치열한 머리싸움과 추리구조, 또는 ?고 ?기는 자의 심리 대결

셋째, 인간 내면에 깊숙하게 숨어있는 인간 본연의 악마성에 대한 예리한 관찰과 묘사  등

물론 이 세가지를 다 갖추면 최고겠지만 세상에 최고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이 중 한가지만 제대로 갖추면 무조건 좋다고 말한다.

이 책은 참 여러 사람이 최고의 추리 소설이라고 칭찬하고 또 권장해서 나름대로 기대를 많이 가지고 읽은 글인데 세상 사람들의 취향은 참 다양하다는 걸 다시 확인하게 해준 책이다. 위의 세가지 중 어느것 하나도 제대로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 없이 셋 다 어정쩡하다. 꼭 비비다만 비빔밥이라고나 할까? 고추장이 여기 저기 뭉쳐 있어 어떤 곳은 지나치게 맵고 어떤 곳은 싱겁고 어디를 먹어도 맛없는....

폭스이블이란 주인공은 (주인공이 맞나?) 지나치게 천박, 잔인하게 그려졌으나 그가 왜 그런 모습을 가지게 되는지에 대한 개연성은 전혀 없고... 원래부터 악인인것 같다.

범인은 정말로 의외의 사람이나 반전의 놀라움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그리 머리를 쓰야 할만큼의 추리 과정도 보이지 않고... 등장 인물의 개성도 별로... 그냥 밋밋하고

그나마 시골마을과 사람들의 어두운 비밀 운운에 기대를 걸었지만 모두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정도의 비밀과 어두움.

문제는 결국 이 책의 내용이 지나치게 현실적인게 아닌가 싶다.   다른 내가 좋아하는 추리소설 -그나마 내가 읽은 건 아가사 크리스티 약간과 홈즈, 그리고 소년탐정 김전일정도지만-과는 다르게 이 책은 만화적인 요소가 전혀 없다.  진짜 실제로 일어나서 오늘 저녁 9시 뉴스에 나올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이 책을 읽고 내가 알게 된 것 - 나는 좀 만화적인 상상력과 반전이 풍부한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는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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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4-25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리소설에 반전없으면 아주 '낭패'지요..;;

바람돌이 2005-04-25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오늘도 새로운 분이 나의 서재에....
안녕하세요 비숍님! 저의 글에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 너무 너무 기분 좋아요. 아직 애같아서 그런가 어쨋든 누군가가 관심을 가져주니 이리 좋은걸....
님의 이름은 여기 저기서 본것 같은데 또 가봐야될 서재가 하나 늘었군요.
만나서 반가워요

79ers 2005-05-26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극적인 재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전형적인 추리물하곤 좀 거리가 있는 것만은 사실이겠지요.
전 무척 재미있게 봤거든요. :).

바람돌이 2005-05-26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9ers님 전 추리물은 잘 몰라요. 그리 많이 읽는 편이 아니라서....
그래서 그런지 남들이 말하는 전형적인 추리물이 좋더라구요.
만나서 반가워요

파란여우 2005-06-07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들 다 좋다고 하는 일에 내가 아니면 아니거야!! 라고 외치는 님,
저와 유사한데가 많으셔서 기쁩니다.^^
 

우리 반 왕따 Y군, 며칠전 온 교무실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날 Y군이 조례가 끝나도록 안왔기에 오면 교무실로 보내라 하고 왔는데 잠시 뒤 교무실로 찾아온 Y에게 " 왜 지각했냐" 한마디 했다. 그 때 다른 아이를 좀 나무란 뒤라서 내 목소리가 별로 정겹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순간 온 교무실이 시끌벅적하도록  "왜요 뭐요 아씨 짜증나."등을 연발하는 아이를 보고 나는 망연자실.... 이게 무슨 일인가? 일단 아이를 진정시키려고 팔을 잡는데 엄청난 힘으로 뿌리치면서 나를 칠려고 했다. 그 순간 교무실의 분개한 선생님들 다 일어나고 나는 아이와 선생님들 둘 다를 진정시켜야 하는 미칠 것 같은 순간. 어쨌든 아직은 이성이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라서 겨우 아이를 달래서 진정시켰다. 나중에 집에 전화걸어 알아본 결과 좀 안좋은 일이 있었단다.

그리고 오늘 갑자기 조례를 하고 있는데 Y군이 성큼성큼 나오더니 비닐봉지에 든 뭔가를 쑥 내민다.

 "이게 뭐냐"

"몰라요 아빠가 갖다주라던데요" 열어보니 티셔츠다.

"이게 뭐니"

"선생님 입으세요"

순간 적응이 안되는데 일단은 좀 과장해서 진짜 고맙다를 연발하고 교무실에 와서 아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말씀이 Y군이 전부터 계속해서 우리 선생님 옷 사줘야 된다고 아빠를 졸랐단다.(내가 그렇게 옷을 못입고 다녔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딴에는 그 날 일이 좀 미안했던가 싶기도 하다. 그 이후로 말도 잘 듣고 살살거리고 내앞에서 웃기도 잘하고 있으니...

교사로 학부모한테 뭔가를 받는건 액수에 상관없이 - 아니 액수가 크면 클수록 부담스럽다. 대부분은 돌려보내지만 이런 선물은 도저히 돌려보낼 수가 없다. 돌려보내는게 오히려 아이의 마음에 상처가 될 수도 있기에... 또 한편으로는 아이의 마음이 기특하기도 하고...

그런데 참 문제가 생겼다. 옷을 선물받았으니 학교에 입고가야 하는데 이 옷이 도저히 나로서는 소화가 안된다는 것이다. 옷이 안좋은 건 아니다. 꽤 돈을 줬음직 한데 문제는 첫째 색깔 황토색, 일명 똥색이다. 내가 절대로 소화못하는 색이다. 거기다가 완전 40대 아저씨들이 즐겨입는 스타일. 여기까진 감수할 수 있으나 더 큰 문제는 티셔츠의 천이 너무 얇다보니 몸에 착 달라붙는다는 거다. 몸매가 받쳐주면 어떻게 커버가 되겠으나 나의 똥똥한 몸매로는 몸의 선, 특히 똥배의 선이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거다. (으악~~~~)

그럼에도 눈물을 머금고 나는 내일 이 옷을 입고 가야 하리... 게다가 잊어먹지 않게 몇번은 더 입고 가야하리... 에구 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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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2005-04-20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 그런 티셔츠면 차라리 보통 날보다 소풍이나, 체육대회를 이용하심이... 기분 전환도 되구요... ^^;; (그래도 고가의 옷이라 고민하지 않아도 되서 다행입니다. 제목을 보고 그걸 걱정했거던요...)

울보 2005-04-21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아이의 마음이 너무 이뻐요..
그옷을 걱정하는 님도 ......

로드무비 2005-04-21 0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똥색 티셔츠.
그거 소화하기 진짜 어려운데......
실례지만 너무 재밌어요.
(그 녀석 참! 아이들 가르치다보면 난감한 상황이 많겠군요.)

바람돌이 2005-04-21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입고 학교에 왔슴다. 아침 조례 시간에 아그들 앞에서 패션쇼 한판 하고... 아이들 있는대로 웃으면서 섹시하다 해주고.... 헤헤~~~

책읽는나무 2005-04-21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님도 선생님이시로군요!..몰랐습니다.^^
그 옷 한번 보고 싶군요!..^^
선물해준 그아이의 좋아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소화하기 힘든 옷이라도 어쩌겠습니까!...아이가 좋아하고 님을 잘 따라준다면 옷값보다 더한 값으로 보상받는게 아니겠습니까!..^^

2005-04-22 1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5-04-22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님 맞아요. 그래서 오늘 이틀 달아서 용감하게 입고 왔답니다. 한동안은 안 입어도 되겠지 하면서.... 앞으로 잘 따라줄지 어떨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