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깥은 여름 - 김애란 | 간밤에 읽은 책, 오늘 새벽엔 이 문장이 남았다
바깥은 여름
저자 김애란
문학동네
2017-06-28
소설 > 한국소설
바깥은 여름인데, 마음은 아직 봄도 겨울도 아닌 채로 머물러 있다.
■ 책 속 밑줄
자정 넘어 아내가 도배를 하자 했다.
ㅡ지금?
ㅡ응.
지난달 어머니가 잠시 집에 다녀갔다. 두 사람 다 경황이 없을 테니 당분간 살림을 맡아주겠다는 명분이었다. 짐을 푼 첫날부터 어머니는 집안 곳곳을 의욕적으로 쓸고 닦았다. …… 아내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종종 무기력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한동안 집이 생겼다는 사실에 꽤 얼떨떨했다. 명의만 내 것일뿐 여전히 내 집이 아닌데도 그랬다. 이십여 년간 셋방을 부유하다 이제 막 어딘가 가늘고 연한 뿌리를 내린 기분, 씨앗에서 갓 돋은 뿌리 한 올이 땅속 어둠을 뚫고 나갈 때 주위에 퍼지는 미열과 탄식이 내 몸안에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내는 집 꾸미는 데 반년 이상 공을 들였다. 이사 후 틈나는 대로 '좁은 집 셀프 인테리어'나 '가구 리폼', 'DIY' 정보를 살피며 실행에 옮겼다. 전부터 '정착'에 대한 욕구는 나보다 아내가 더 강했다.
지난봄, 우리는 영우를 잃었다. 영우는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 치여 그 자리서 숨졌다. 오십이 개월. 봄이랄까 여름이란 걸, 가을 또는 겨울이란 걸 다섯 번도 채 보지 못하고였다.
아이들은 정말 크는 게 아까울 정도로 빨리 자랐다. 그리고 그런 걸 마주한 때라야 비로소 나는 계절이 하는 일과 시간이 맡은 몫을 알 수 있었다. 3월이 하는 일과 7월이 해낸 일을 알 수 있었다. 5월 또는 9월이라도 마찬가지였다.
말을 안 해도 외롭고, 말을 하면 더 외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는 자기 삶의 대부분을 온통 말을 그리워하는 데 썼다.
그럴 땐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 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 나왔다.
위안이 된 건 아니었다. 이해받는 느낌이 들었다거나 감동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시리로부터 당시 내 주위 인간들에게선 찾을 수 없던 한 가지 특별한 자질을 발견했는데, 그건 다름아닌 ‘예의’였다.
슬픔이란 게 참 묘했다. 다른 감정들과 다르게,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 끌림의 이유
김애란 작가의 단편집 『바깥은 여름』은 상실 이후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품어냅니다.
죽음, 이별, 침묵이라는 주제 아래 놓인 일곱 편의 단편들을 보며, 소설이라 할지라도 분명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삶의 어두운 골목을 비출 때마다 저자는 누구보다 일상의 언어로 마음의 풍경을 포착했는데 사실 이런 부분에서 작가의 글솜씨에 감탄했습니다.
그녀의 문장은 상처를 조명하기보다 상처 곁에 오래 머물러 주는 문장들이 가득했습니다.
■ 간밤의 단상
마지막 단편을 덮고 난 후, 한참 동안 조용히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음, 그저 이해 받았다는 감각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깥은 여름』은 상실을 다루지만 그 감정이 결코 무겁게만 다가오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슬픔, 묻지 못한 질문들 그리고 끝내 말하지 못한 감정들.
이 모든 것들이 고요한 언어로 서술되어서인지 오히려 마음은 덜 외로워졌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이 책이 극복이나 희망이라는 익숙한 단어로 상처를 덮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대신 슬픔의 시간을 함께 나누며 우리가 흔히 지나쳐 온 감정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합니다.
책 속 등장인물들의 삶은 그야말로 불완전하고 서툴기만 합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상실을 딛고 살아가는 방식이 아닐까요.
지금 만약 자신이 외롭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누군가를 아주 깊이 사랑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건넴의 대상
마음의 슬픔을 조용히 꺼내고 싶은 분
상실 이후의 감정들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분
괜찮다는 말보다 내가 곁에 있다는 말이 더 필요한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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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