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클라베

저자 로버트 해리스

알에이치코리아(RHK)

2025-02-27

원제 : Conclave

소설 > 영미소설

소설 > 세계문학 > 영국문학




당신은 인간의 마음을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신의 뜻은 결코 속이지 못합니다.




■ 책 속 밑줄


로멜리 추기경은 새벽 2시 직전 검사성성을 떠난 뒤, 바티칸 수도원을 지나 황급히 교황 침실로 향했다.

마음속으로는 계속 기도했다. 오, 주여, 성하께서는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반면에 주님을 향한 제 봉사는 이제 명을 다하였나이다. 저는 잊혔으되 성하는 여전히 사랑받고 계시오니, 주여 그를 구하시고 대신 이 죄인을 데려가소서.



지난 번 만났을 때, 교황에게 자신의 위기를 고해하고, 로마를 떠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수석추기경 자리를 내놓고 수도회로 돌아가고 싶었다. 벌써 일흔 다섯, 은퇴할 나이가 아닌가. 하지만 교황을 그를 크게 나무랐다. 사실 의외의 반응이었다. "누군가는 목자로 선택받고 누군가는 목장을 관리해야 하오. 당신 임무는 목사도 아니고 목자도 아니요, 바로 관리자요. 난들 쉬운 줄 아오? 나한테는 당신이 필요하오. 자, 걱정하지 맙시다. 늘 그렇듯, 주님께서 다시 추기경을 찾을 터이니."



후일 로멜리는 이때를 돌아보며, 바로 그 순간 교황위 승계 전쟁이 시작됐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세 추기경 모두 선거인단 내에 지지파가 있었다. 벨리니는 그레고리오 대학 총장과 밀라노 대주교를 역임했으며, 아주 오래전부터 진보주의자들의 위대한 지적 희망이었다. 트람블레이는 교황청 사도궁무처장과 인류복음화성 장관을 동시에 맡고 있기에 제3 세계와 관련해 후보 자격이 있었다.



더욱이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보았듯이, 추기경단 단장으로서 선거관리 임무가 자신에게 떨어지리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솔직히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몇 년 전 전립선암 진단을 받았기에, 비록 지금은 완치됐다고 믿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교황보다 먼저 세상을 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로는 오로지 임시방편으로만 여기고 살았으며, 실제로 사임까지 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이런 난감한 상황에 콘클라베를 조직하게 된 것이다.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채,

오직 기도와 사유, 그리고 인간의 본성 안에서

누가 교황이 되어야 하는지를 두고 격렬한 침묵의 시간이 흐른다.



"무슨 일이죠?"

"교황 성하와의 마지막 면담 얘기 좀 하고 싶어서요."

"그게 어땠는데요?"

"듣기로는 어려웠다면서요?"

트람블레이가 기억하기 쉽지 않다는 듯 이마를 문지르고 인상을 찌푸렸다.

"아뇨, 내 기억으로는 아닙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은 얘기가 있습니다. 추기경한테 모든 공직에서 사임하라고 요구하셨다더군요."

그 말에 트람블레이는 오히려 표정이 밝아졌다.

"아하! 그 헛소리? 보지니아크 대주교죠?"

"그 점은 밝힐 수 없습니다."



믿음과 권력, 성스러움과 인간성 사이.

콘클라베는 그 모든 모순과 충돌을 품고 있었다.



■ 끌림의 이유


『콘클라베』는 폐쇄적이고 신성한 교황 선출이라는 의식을 날카로운 심리 묘사로 풀어낸 소설입니다.

실제 교황 선출의 전통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단순한 종교 소설이 아닌 인간이라는 존재의 이면과 권력의 본질에 대한 탐구입니다.

투표를 시작할 때 당황한 기색을 내보이던 유력 후보들은 숭고하고 귀한 자리에 오르고자 어느새 세력을 모으기 시작하죠.

믿음의 이름 아래 벌어지는 선택과 회의!

절대 권위를 부여받는 순간,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소설 전반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 과정을 읽다보면 선택과 책임감, 믿음 그리고 양심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느끼게 됩니다.



■ 간밤의 단상


우리는 종종 권력이라 하면 정치나 권위부터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느꼈습니다.

권력은 아주 조용하게, 가장 성스러운 옷을 입고 찾아온다는 것을요.

어쩌면 교황이란 자리는 가장 성스럽고 숭고한 위치지만 책임감과 희생 또한 그 누구보다 막중합니다.

소설에서는 교황이라는 상징을 두긴 했지만 인간의 내면에 있는 판단과 망설임 그리고 진실 앞의 침묵에 주목해야 합니다.


한 사람의 결정이 한 시대의 윤리와 미래를 바꾸었던 그 순간, 고요한 긴장 속에서 저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믿음은 언제나 고요한 선택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 안에는 두려움뿐만 아니라 갈등과 계산도 함께 있으니까요.

소설 속 누군가의 입을 빌려 건넨 이 말이 오래 남습니다.

"진실은 늘 신의 편에 서 있으나 인간은 언제나 그러하지 않다."



■ 건넴의 대상


권력, 믿음, 침묵이라는 키워드에 호기심을 느끼는 분

종교나 제도 안에서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읽고 싶은 분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순간이 있다면 공감(♥)과 댓글로 나눠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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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주의자의 조용한 우울 - 스스로 만든 비현실적 목표 앞에서 날마다 무너지는 당신에게
엘리자베트 카도슈 외 지음, 이연주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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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정보


완벽주의자의 조용한 우울

저자 엘리자베트 카도슈, 안 드 몽타를로

21세기북스

2025-05-14

원제 : Le Syndrome d'imposture

인문학 > 심리학/정신분석학 > 교양 심리학





■  책 소개


『완벽주의자의 조용한 우울』은 겉으로는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조용히 무너지고 있는 사람들의 심리적 초상을 그린 책입니다.

임상심리학자 엘리자베트 카도슈는 이 책에서 좋아 보여서 더 위험한 우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고, 늘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기 자신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한 내면의 고립이 있습니다.

그 조용한 무너짐을 어떻게 마주하고 회복할 수 있을지, 이 책은 부드럽고도 단단한 언어로 함께 걸어줍니다.





■  문장으로 건네는 사유


프랑스 백과사전인 라루스사전에 실린 정의를 살펴보면 자신감이란 "자신이 지닌 가치를 느끼고 인식하고 그로부터 어떤 확신을 끌어내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도 이와 비슷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두 가지 기준으로 매우 간단하게 특징지을 수 있다. 하나는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느끼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역량과 재능, 효율성을 진심으로 믿는가'이다.


자신감은 스스로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적절한 정도의 대담함으로 무장한 채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위험과 상처를 감수하게 만들고 그를 통해 가장 중요한 것, 살아 있다는 감정을 느끼게 한다. 즉, 가능성을 믿고 노력하게 해준다. 자신감이 중요한 이유는 좀 더 평온한 방식으로 삶과 타인, 세상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자신감이 있다면 우리의 계획과 도전, 선택뿐만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여러 상황에 차분하고 유동적인 힘으로 대처할 수 있다.



안정된 가정과 달리, 정서적 거리감과 일관성이 부족한 부모로부터 위로가 되지 않는 반응을 받은 아이는 이해받지 못하거나 거부당한 느낌을 받게 되고,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정신적 표상으로 인해 자신과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게 된다. 추후 성공을 위한 경쟁,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이 욕구는 충족됐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라진다),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한 노력 같은 행동들은 성장 초기 단계에서 충분한 인정을 받지 못한 결과인 경우가 많다.



자신감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없지만 절대적일 수도 없고, 삶의 모든 면에서 균등하게 적용될 수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뭐가 되었든 중요한 것은 완벽함을 꿈꾸거나 이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는 데 집중하는 동시에 인생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을 만큼 유연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타인의 무거운 시선은 우리를 연약하게 만들고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도록 만들어 트라우마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은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동시에 망가뜨리기도 한다. 단 한 명의 시선만으로 그렇게 된다. 타인이 우리에게 내리는 평가의 무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위협처럼 서서히 우리를 짓누른다.



완벽에 대한 강박과 스스로 사기꾼 같다는 느낌은 직업적 맥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적인 영역에까지 침투해 커플 사이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당신이 그 자리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그 운명적인 순간이 올까 봐 중요한 만남이나 승진, 갑자기 주목받는 역할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도 매우 빠르게 위험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  책 속 메시지


엘리자베트 카도슈는 이 책에서 완벽주의자형 우울이라는 개념을 통해 보이지 않는 고통과 내면의 침묵을 설명합니다.


완벽주의자는 늘 잘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수하지 않으려 애쓰고 남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조심하며 늘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기 마음은 점점 이해받지 못하고, 말해지지 못한 감정으로 쌓여갑니다.

결국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비난하며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속은 조용히 무너져내립니다.


책은 말합니다, 당신이 약해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참았기 때문이라고.

그 말은 위로를 넘어 이제는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선언이기도 했습니다.



■  하나의 감상


새벽녘, 마지막 책장을 덮고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든 걸까?'

이 책은 그 질문에 조용히 하지만 정확하게 이름을 붙여준 책이었습니다.

우울은 꼭 눈물로 터지지 않아도 충분히 절박할 수 있다는 것, 침묵 속에서도 고통은 깊어질 수 있다는 것.

책은 그 진실을 아주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때때로 너무 조용해서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슬픔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조용하다고 해서 괜찮은 건 아니죠.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책은 그런 고요한 아픔에 부드럽고도 정확한 언어로 다가갑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차분하고 설득력 있게 건네주는 문장들.

그 문장들 덕분에 제 안의 단단했던 죄책감이 조금씩 풀어지는 걸 느꼈습니다.


늘 괜찮은 사람이고 싶었습니다.

실수 없이 흐트러지지 않게 무엇이든 잘 해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결국 제 자신을 옥죄고 있었다는 것을, 그렇게 조용히 무너져내리고 있었다는 것을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우울이라는 단어를 외면하며 살다가 크게 무너지고 나서야 비로소 나 자신을 돌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우울은 그만 멈춰도 된다는, 이제는 나를 바라봐도 된다는 조용한 신호일지 모릅니다.

기대와 평가를 잠시 내려놓고 나를 있는 그대로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 연습의 시작이 곧 나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용기입니다.


이 책은 제게 말 없는 위로였고 말이 되지 못한 눈물이었습니다.

소리 내 울지도 못했던 이들에게, 이 책이 고요하지만 깊은 치유로 닿기를 바랍니다.

진심으로, 이 책을 건네고 싶습니다.



■  건넴의 대상


늘 괜찮은 척하며 버텨온 분

혼자 있을 때 유난히 무너지는 분

실수하면 안 되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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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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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저자 이병률

문학과지성사

2024-04-24

시 > 한국시




끝까지 사랑하려면, 끝까지 알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책 속 밑줄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시들어 죽어가는 식물 앞에서 주책맞게도 배고파한 적

기차역에서 울어본 적

이 감정은 병이어서 조롱받는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대수인가 싶었던 적

매일매일 햇살이 짧고 당신이 부족했던 적

이렇게 어디까지 좋아도 될까 싶어 자격을 떠올렸던 적

한 사람을 모방하고 열렬히 동의했던 적

나를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 만들고

내가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조차 상실한 적

마침내 당신과 떠나간 그곳에 먼저 도착해 있을

영원을 붙잡았던 적



■ 끌림의 이유


사랑이 끝난 뒤에도 남는 감정들에 대해 말하는 책입니다.

또한 끝났다고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이 어떻게 사람 안에 머물러 있는지를 조용히 풀어냅니다.

이병률 작가 특유의 리듬감 있는 문장들이 진부함 없이 감정의 섬세한 결을 지켜냅니다.

분명 시집인데, 읽는 내내 어떤 페이지는 편지 같고 어떤 문장은 마치 오래된 일기 같았습니다.

이 책은 사랑을 끝낸 사람에게도,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에게도 필요한 언어를 건넵니다.



■ 간밤의 단상


사랑이 끝났다는 말은 감정이 사라졌다는 뜻일까요.

어쩌면 끝났다는 건 그 감정을 데리고 살아가는 법을 천천히 배워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병률의 시는 그저 감성적인 사랑 이야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사랑을 바라보는 깊이, 사람을 대하는 거리감 그리고 사랑 안에서 우리가 배워가는 감정의 태도들을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건넵니다.


말하지 못하고 결국 놓친 사람부터 진심이었지만 끝내 헤어졌던 사람까지 문득문득 떠오릅니다.

이 시집은 그런 감정들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흘러가고 어떻게 나를 만들고 있는지를 가만히 바라보게 해줍니다.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지나간 사랑이 여전히 마음 한편에 남아 있는 사람에게도 이 책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남겨진 조용한 따뜻함이 되어줄 것입니다.



■ 건넴의 대상


이병률의 문체를 좋아하는 분

사랑의 감정을 말로 옮기기 어려운 분

누군가를 여전히 마음속에 품고 있는 분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순간이 있다면 공감(♥)으로 나눠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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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무성해지는 것들 _셋




글을 쓰며 길을 잃다


우리는 언제 길을 잃는 걸까요.

길을 잃는 일이 꼭 불행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순간, 우리는 진정으로 자신을 마주하는 법을 배워갑니다.

어릴 적부터 책을 읽고 글을 써온 저는 그런 시간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그때마다 불안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또 쓰며 내가 누구인지,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를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들이 때때로 저를 불안하게 하고 낯선 길로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그 불안 속에서도 글을 쓰는 일은 마치 침묵 속에서 비추어지는 빛처럼 다가왔습니다.

그 빛은 책 속 인물들이 건넨 한마디처럼, 제 마음 깊은 곳을 조용히 흔들어주었습니다.

글을 쓴다는 일은 단순히 생각을 정리하는 것을 넘어 제 존재를 기록하고 그 안에서 저를 다시 찾는 여정이었습니다.



불안 속에서 마주한 진심


글을 쓴다는 것은 길을 잃는 것과 꼭 닮았습니다.

간혹 무엇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를 만큼 흐릿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제 안에서 이런 질문을 꺼내듭니다.

"이 글이 정말 내가 쓰고 싶은 글일까?"

"내 감정은 정확히 담기고 있는 걸까?"


그 질문들 안에서 저는 하나의 진실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라는 사실을요.

길을 잃는 순간은 결국 제 내면 깊은 진심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신호라는 것을요.

그 불확실하고 흔들리는 시간은 오히려 감정과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해주는 귀한 과정이었습니다.



마음의 소리와 다시 만나다


길을 잃고 헤매던 시간 속에서, 저는 결국 제가 정말 쓰고 싶었던 이야기를 찾아냈습니다.

그 이야기는 때론 눈물처럼, 때로는 잔잔한 웃음처럼 제 안에서 울림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순간들 속에서 저는 제 마음의 소리와 진심을 마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글쓰기를 멈출 수 없습니다.

쓰는 일은 저를 잊지 않게 해주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두 개의 나침반, 책과 글쓰기


책을 읽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얻었고 글을 쓰며 길을 걸어가는 힘을 얻었습니다.

책 속 문장들이 마음에 들어와 하루를 머물다 갈 때, 저는 다시 펜을 들고 조용히 저를 써 내려갑니다.


글을 쓰는 일은 단순한 표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세상과 연결되기 위한 방식이자 제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조심스럽게 건네는 일입니다.

제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닿아 마음을 흔든다면 그건 제가 진심으로 누군가의 마음에 말을 건넸다는 뜻이기도 하니깐요.

책과 글쓰기는 저에게 두 개의 나침반입니다.

책은 제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글은 제가 가고자 하는 길을 분명히 그려줍니다.

이 두 가지는 제 삶을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축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끝없는 질문 끝에서 피어나는 나


길을 잃고 방황할 때마다, 저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왜 글을 쓸까?"

그 질문 자체가 제 자신을 혼란스럽게 만들곤 하지만 그 물음 덕분에 다시 글을 쓰는 이유를 찾게 됩니다.

저를 모른 채 쓴 글은 공허하게 느껴졌고 저를 이해하며 쓴 글은 자연스럽게 진정성을 가졌습니다.

그 차이는 작지만 그 울림은 아주 큽니다.

글쓰기는 제게 자기 성찰의 시간이자 내면을 세상에 조용히 비추는 작업입니다.

감정과 생각을 글이라는 그릇에 담아내며, 저는 제 존재를 확인하고 그 안에서 자랍니다.



글을 쓰며 길을 잃다


길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제 곁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 속에서도 저는 저를 다시 찾는 법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길을 잃고 다시 길을 찾는 반복 속에서 저는 진정으로 원하는 방향을 조금씩 발견해갑니다.

중요한 건 길을 잃었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 길을 다시 찾기 위해 기울인 제 마음과 용기라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앞으로도 계속 길을 잃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 위에서 글을 쓰며, 또 다른 저를 마주할 것입니다.

그 여정의 끝에서 저는 조금 더 온전한 제 자신으로 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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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저자 유시민

웅진지식하우스

2025-04-30

인문학 > 교양 인문학

인문학 > 책읽기

에세이 > 독서에세이




삶은 늘 모호하고 불완전하며, 그래서 질문하는 자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 책 속 밑줄


고등학생 시절, 공부가 잘되지 않으면 문고판 책이 많았던 아버지의 서가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책이나 뽑아 뒤적이는 버릇이 있었다. 마음이 끌리는 책이 있으면 기분 전환이 될 때까지 읽다가 덮어두곤 했다. 이렇게 띄엄띄엄 읽었던 채들 가운데 몇몇은 지금도 제목과 내용이 대충 떠오른다.



"아무리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인간은 악한 수단을 사용한 데 따르는 정신적 고통을 벗어나지 못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죄를 지으면 벌을 면하지 못하는 게 삶의 이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다른 맥락에서 볼 수도 있다.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악한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 따지는 것은, 악한 수단으로 선한 목적을 이룰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나는 이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당성 여부를 따지기 전에, 악한 수단으로는 선한 목적을 절대 이루지 못한다고 믿는다.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리영희 선생은 말한다. 진실, 진리, 끝없는 성찰, 그리고 인식과 삶을 일치시키려는 신념과 지조. 진리를 위해 고난을 감수하는 용기. 지식인은 이런 것들과 더불어 산다.



다시 『인구론』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우리 모두는 갖가지 편견과 고정관념을 지니고 산다. 이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한 모든 종류의 통념이 논리적·경험적으로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일일이 시험하고 검토할 수 없는 일이기에,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관념과 사고방식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나는 맬서스와 얼마나 다른가. 내가 옳다고 믿는 것, 내 신념을 받치고 있는 수많은 통념들 가운데 그릇된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없을 것인가?



어쩌면 일제강점기 때 누군가 일본어로 번역한 것이, 사는 게 노엽고 슬펐던 조선 민중의 마음을 울렸는지도 모른다. 푸시킨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썼든, 누군가의 시가 다른 시대 다른 민족에게 큰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차르의 학정과 일제의 압제는 똑같이 '힘든 날'이며 '슬픈 현재'였다. 우리의 선조들은 푸시킨의 시에서 큰 위안과 격려를 받았던 듯하다.



흔히들 보수가 물질적 이익과 세속적 출세를 탐낸다고 하지만 진짜 보수주의자는 이익이 아니라 가치를 탐한다. 진짜 보수주의자는 다른 누군가와 싸우는 전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면에 정체성의 닻을 내린다. 타인을 비난하기에 앞서 자신을 성찰한다. 누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도 실의에 빠지지 않으며 깊은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빛난다.



나는 젊은 시절에 다윈을 읽지 않았다. 『인구론』을 읽지 않고도 인구법칙을 안다고 믿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종의 기원』을 읽지 않았지만 진화론을 안다고 생각했다. 다윈은 토머스 맬서스나 허버트 스펜서처럼 ‘불쾌한 이름’들과 함께 등장하곤 했기 때문에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않았다. 나는 빈곤을 정당화하고 빈민 구제를 비난한 맬서스를 미워했고, 적자생존이라는 개념으로 사회적 강자를 편든 스펜서를 싫어했다. 그들이 펼친 ‘사회진화론’ 또는 ‘사회다윈주의’가 부자와 강자를 예찬하고 불평등을 합리화하는 천박한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했다. 진화론이 올바른 생물학 이론이기는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나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다윈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게 없었다.



'근본적 변화'는 아름다운 꿈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에 이르지 못하는 부분적·점진적인 개선을 아름답지 않거나 의미 없다고 비난할 일은 아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누구도 변화를 일으키려고 도전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근본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자를 대통령으로 뽑은 이후 화나고 아프고 어이없는 일들을 견디고 이겨낸 이들에게, 계엄의 밤 국회에서 계엄군을 막아섰던 시민들에게, 남태령의 기적을 만든 젊은이들에게, 눈보라를 맞으며 헌법재판소 앞에서 밤을 지새웠던 남녀노소에게, 무한히 큰 감사의 마음을 얹어 그 말을 전하고 싶다.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이 오늘 우리를 본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대들은 인간의 모든 자랑스러운 것의 근원을 보여주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해도 됩니다.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 끌림의 이유


『청춘의 독서』는 한 사람의 사유와 성장의 기록을 따라가며 독서가 인생에 어떤 결을 남기는지 보여주는 에세이입니다.

유시민 작가가 읽었던 15권의 책에서 가져온 질문과 통찰은 독서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보다 생생하게 느끼게 해줍니다.

책을 읽는다는 건 단지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구성해나가는 일임을 알려주는 책이었습니다.



■ 간밤의 단상


나는 지금, 어떤 질문을 품고 살아가고 있을까?


책장을 넘기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춘의 독서』를 읽으며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질문하는 자만이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질문은 정답을 향하는 화살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조금씩 정돈해나가는 나침반일 수도 있다는 것을요.

질문을 품는 태도 자체가 이미 하나의 방향성이 되어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젊은 날의 독서 기록이 아닙니다.

지금 어디쯤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책이라는 타인의 사유를 빌려 자기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해주는 일종의 독서 지도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예전 판본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지만 이번에 출간된 특별증보판까지 함께 하나의 책장에 나란히 꽂아두었습니다.

특히 새롭게 추가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은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더욱 분명하게 다가왔습니다.


질문은 때로 버겁지만 그 질문 없이 살아가는 삶은 너무 납작해질지도 모릅니다.

조용한 새벽녘, 문장 하나에 기대어 제 안의 물음을 다시 꺼내 들고 싶어졌습니다.



■ 건넴의 대상


삶의 방향을 고민하고 있는 모든 세대의 청춘

책을 삶에 더 깊게 연결해보고 싶은 분

나의 삶에 어떤 책이 남았는지를 다시 생각해보고 싶은 분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순간이 있다면 공감(♥)과 댓글로 나눠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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