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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 - 우리가 몰랐던 원자과학자들의 개인적 역사
로베르트 융크 지음, 이충호 옮김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23년 9월
평점 :

■ 책 정보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
저자 로베르트 융크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2023-09-06
원제 : Heller als tausend Sonnen (1956년)
과학 > 과학의 이해 > 과학사
역사 > 테마로 보는 역사 > 과학/기술사

■ 책 소개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은 20세기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이고 논쟁적인 무기인 핵폭탄의 탄생과 그 이면을 기록한 논픽션입니다.
나치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 시도부터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들의 내면적 갈등 그리고 히로시마에 떨어진 첫 핵무기까지!
이 책은 단지 과학의 발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의 윤리와 인간 존재의 책임을 근본적으로 묻습니다.
참고로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이라는 제목은 바가바드 기타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핵실험의 섬광을 묘사한 동시에 인간이 만든 절대적 힘의 아이러니를 드러냈다고 합니다.
■ 문장으로 건네는 사유
제1차 세계 대전 마지막 해에 원자 연구로 이미 명성이 자자했던 어니스트 러더퍼드가 영국에서 열린 전문가 위원회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 적 작수함에 대처하는 새 방어 체계에 관해 조언을 하는 자리였다. 개성 강한 뉴질랜드 출신의 이 과학자는 이 일로 비난을 받자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이렇게 반박했다.
"좀 부드럽게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전 인공적인 원자 분해 가능성을 시사하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정말로 가능하다면, 이것은 전쟁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전쟁은 러더퍼드의 작업실에도 난폭하게 침입했다. 러더퍼드는 자신을 아버지처럼 존경하던 조수들과 학생들을 자신의 '아이들'이라고 불렀는데, 그들은 거의 다 군에 징집되었다. 동료 사이에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헨리 모즐리는 1915년에 다르다넬스해협에서 벌어진 전투 도중 전사했다. 러더퍼드가 원자실험에 사용한 라듐의 공급원(라듐은 우라늄이 주성분인 피치블렌드 광물에 극소량 포함돼 있다-옮긴이)은 모두 압수되고 말았다. 운명의 장난이랄까, 그게 '적국의 재산'이었기 때문이다.
원자 세계가 제기한 흥미로운 질문 가운데에는 편지만으로는 만족스럽게 답할 수 없는 게 많았다. 바야흐로 학회와 회의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보어는 자신의 연구 결과에 관해 괴팅겐에서 일주일 동안 강연하겠다고 발표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모든 물리학자들이 강연을 들으려고 온갖 불편을 감수해가며 그곳까지 왔다. 심지어 전쟁 전에는 물리학 연구를 전혀 하지 않았거나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실험만 하던 나라에서도 흐임로운 실험 소식과 결과가 날아왔다. 인도와 미국, 혁명이 일어난 러시아도 과학정보 교환을 위해 노력했다. 이 기간에 서구 과학자들과 가장 열성적으로 접촉한 나라는 소련이었다.
마이트너와 프리슈가 한의 발견과 그것이 물리학에서 지니는 중대한 의미에 관한 소식을 터뜨렸을 때, 처음에 원자물리학자들은 대체로 당혹스러운 반응을 나타냈다. 프리슈가 스웨덴에서 코펜하겐으로 돌아와 한의 연구와 자신이 이모와 나눈 대화를 이야기하자, 보어는 자기 이마를 쳤다.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그렇게 오랫동안 그것을 알아채지 못할 수 있었단 말인가!"라고 외쳤다.
유명한 과학자들 중에도 나치스에 의해 투옥되거나 추방된 사람들이 많았다. 대표적인 예로는 프랑스 물리학자 조르주 브뤼아(Georges Bruhat)를 들 수 있다. 제자 클로드 루셀(Claude Roussel) 이 격추당한 비행기에서 탈출한 미국인 파일럿들을 고등사범학교 부근에 숨겨준 일이 있었다. 게슈타포가 루셀을 의심하자, 브뤼아는 제자를 배신하길 거부하고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는 처벌을 받았다. 그곳에서 그는 동료 수감자들에게 천문학을 계속 강의하다가 결국 기아로 숨지고 말았다.
프랑스군을 위해 작동 속도가 특별히 빠른 기관총을 발명한 알자스 출신의 프랑스 물리학자 페르낭 홀벡(Fernand Holweck) 은 훨씬 가혹한 운명을 맞이했다. 그는 발명의 비밀을 실토하라고 강요하던 게슈타포의 고문을 받다가 결국 숨지고 말았다.
그런데 갑자기 스크루드라이버가 손에서 미끄러지면서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두 반구는 너무 가까이 접근해 우라늄은 임계 상태에 이르렀다. 방 전체가 순간적으로 눈부시게 파르스름한 섬광으로 가득 찼다. 이 순간에 슬로틴은 몸을 피해 자신을 구하는 대신에 양 손으로 두 반구를 잡아떼 연쇄 반응을 멈췄다. 이 행동으로 그는 그 방에 있던 나머지 7명의 목숨을 구했다. 자신은 과도한 방사선에 노출된 효과를 피할 수 없다는 걸 즉각 알았다. 하지만 그는 자제력을 조금도 잃지 않았다. 동료들에게 그 재난이 일어난 순간에 있었던 곳으로 되돌아가 서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칠판에 그들의 상대적 위치를 정확하게 그렸는데, 이들 각자가 방사선에 노출된 정도를 의사들이 확인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1947년부터 서방 과학자들이 살아간 환경은 점점 더 억압적으로 변해갔다. 서방 세계 정치 권력의 중심지인 워싱턴이 사용한 새로운 방법들은 런던과 파리의 정신적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평이 좋지 않은 과학자들은 충성 위원회들의 조사를 받았고, 여권을 빼앗기고 일터에서 쫓겨났다. 과학계 사람들 사이의 우정은 불신과 두려움의 중압감에 못 이겨 무너져내렸다. 수십 년 동안 지속돼온 과학자들 사이의 서신 왕래도 끝났다. 서방 세계의 연구소들에서조차 이전에전체주의 국가에서만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은 국가의 도청을 경계하여 불안에 떨며 서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 책 속 메시지
로베르트 융크는 과학을 신화처럼 미화하지 않습니다.
그는 철저히 인간 중심의 시선에서 기술과 과학의 그림자를 추적하였습니다.
과거 과학자들은 핵폭탄을 만드는데 성공했지만 사실 그 기술이 어떻게 사용될지는 그들의 손을 떠나 있었습니다.
융크는 그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단절, 무력함, 윤리적 부채감을 기록하였습니다.
인간들은 자기 자신보다 큰 것을 만들어냈지만 결국 그 앞에서는 모든 이들이 무력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괴물이 된 창조물 앞에서 프랑켄슈타인이 느꼈을 감정처럼 말이죠.
■ 하나의 감상
이 책을 덮고 가장 오래 남았던 감정은 두려움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훨씬 깊고 오래 가라앉는 묵직한 슬픔이었습니다.
천재들이 머리를 맞대고 완성해낸 그 눈부신 기술이 결국 수많은 생명을 지우는 데 쓰였다는 사실 앞에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만들어도 되는가에 대한 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오래 머물렀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보다 큰 것을 만든다."
하지만 그 위대한 창조의 끝에는 정작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작은 인간이 서 있었습니다.
과학은 진보했지만 윤리는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그 기술을 어떻게, 무엇을 위해, 어디에 쓸지를 결정하는 건 결국 우리, 인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은 그런 진실을 직면하게 합니다.
기술의 찬란함 뒤에 놓인 사람들의 고통, 빛보다 먼저 불타버린 삶들을 조용히 되짚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역사서가 아닙니다.
지식보다 윤리를, 성과보다 책임을 먼저 돌아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두 번 다시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가 질문을 멈추지 않게 하는 책입니다.
■ 건넴의 대상
과학의 윤리와 한계를 성찰하고 싶은 분
원자폭탄에 대한 역사적 이해가 필요한 분
인간이라는 존재의 결정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알고 싶은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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