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 - 우리가 몰랐던 원자과학자들의 개인적 역사
로베르트 융크 지음, 이충호 옮김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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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정보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

저자 로베르트 융크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2023-09-06

원제 : Heller als tausend Sonnen (1956년)

과학 > 과학의 이해 > 과학사

역사 > 테마로 보는 역사 > 과학/기술사





■ 책 소개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은 20세기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이고 논쟁적인 무기인 핵폭탄의 탄생과 그 이면을 기록한 논픽션입니다.

나치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 시도부터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들의 내면적 갈등 그리고 히로시마에 떨어진 첫 핵무기까지!

이 책은 단지 과학의 발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의 윤리와 인간 존재의 책임을 근본적으로 묻습니다.

참고로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이라는 제목은 바가바드 기타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핵실험의 섬광을 묘사한 동시에 인간이 만든 절대적 힘의 아이러니를 드러냈다고 합니다.



■ 문장으로 건네는 사유


제1차 세계 대전 마지막 해에 원자 연구로 이미 명성이 자자했던 어니스트 러더퍼드가 영국에서 열린 전문가 위원회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 적 작수함에 대처하는 새 방어 체계에 관해 조언을 하는 자리였다. 개성 강한 뉴질랜드 출신의 이 과학자는 이 일로 비난을 받자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이렇게 반박했다.

"좀 부드럽게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전 인공적인 원자 분해 가능성을 시사하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정말로 가능하다면, 이것은 전쟁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전쟁은 러더퍼드의 작업실에도 난폭하게 침입했다. 러더퍼드는 자신을 아버지처럼 존경하던 조수들과 학생들을 자신의 '아이들'이라고 불렀는데, 그들은 거의 다 군에 징집되었다. 동료 사이에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헨리 모즐리는 1915년에 다르다넬스해협에서 벌어진 전투 도중 전사했다. 러더퍼드가 원자실험에 사용한 라듐의 공급원(라듐은 우라늄이 주성분인 피치블렌드 광물에 극소량 포함돼 있다-옮긴이)은 모두 압수되고 말았다. 운명의 장난이랄까, 그게 '적국의 재산'이었기 때문이다.



원자 세계가 제기한 흥미로운 질문 가운데에는 편지만으로는 만족스럽게 답할 수 없는 게 많았다. 바야흐로 학회와 회의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보어는 자신의 연구 결과에 관해 괴팅겐에서 일주일 동안 강연하겠다고 발표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모든 물리학자들이 강연을 들으려고 온갖 불편을 감수해가며 그곳까지 왔다. 심지어 전쟁 전에는 물리학 연구를 전혀 하지 않았거나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실험만 하던 나라에서도 흐임로운 실험 소식과 결과가 날아왔다. 인도와 미국, 혁명이 일어난 러시아도 과학정보 교환을 위해 노력했다. 이 기간에 서구 과학자들과 가장 열성적으로 접촉한 나라는 소련이었다.



마이트너와 프리슈가 한의 발견과 그것이 물리학에서 지니는 중대한 의미에 관한 소식을 터뜨렸을 때, 처음에 원자물리학자들은 대체로 당혹스러운 반응을 나타냈다. 프리슈가 스웨덴에서 코펜하겐으로 돌아와 한의 연구와 자신이 이모와 나눈 대화를 이야기하자, 보어는 자기 이마를 쳤다.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그렇게 오랫동안 그것을 알아채지 못할 수 있었단 말인가!"라고 외쳤다.



유명한 과학자들 중에도 나치스에 의해 투옥되거나 추방된 사람들이 많았다. 대표적인 예로는 프랑스 물리학자 조르주 브뤼아(Georges Bruhat)를 들 수 있다. 제자 클로드 루셀(Claude Roussel) 이 격추당한 비행기에서 탈출한 미국인 파일럿들을 고등사범학교 부근에 숨겨준 일이 있었다. 게슈타포가 루셀을 의심하자, 브뤼아는 제자를 배신하길 거부하고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는 처벌을 받았다. 그곳에서 그는 동료 수감자들에게 천문학을 계속 강의하다가 결국 기아로 숨지고 말았다.

프랑스군을 위해 작동 속도가 특별히 빠른 기관총을 발명한 알자스 출신의 프랑스 물리학자 페르낭 홀벡(Fernand Holweck) 은 훨씬 가혹한 운명을 맞이했다. 그는 발명의 비밀을 실토하라고 강요하던 게슈타포의 고문을 받다가 결국 숨지고 말았다.



그런데 갑자기 스크루드라이버가 손에서 미끄러지면서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두 반구는 너무 가까이 접근해 우라늄은 임계 상태에 이르렀다. 방 전체가 순간적으로 눈부시게 파르스름한 섬광으로 가득 찼다. 이 순간에 슬로틴은 몸을 피해 자신을 구하는 대신에 양 손으로 두 반구를 잡아떼 연쇄 반응을 멈췄다. 이 행동으로 그는 그 방에 있던 나머지 7명의 목숨을 구했다. 자신은 과도한 방사선에 노출된 효과를 피할 수 없다는 걸 즉각 알았다. 하지만 그는 자제력을 조금도 잃지 않았다. 동료들에게 그 재난이 일어난 순간에 있었던 곳으로 되돌아가 서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칠판에 그들의 상대적 위치를 정확하게 그렸는데, 이들 각자가 방사선에 노출된 정도를 의사들이 확인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1947년부터 서방 과학자들이 살아간 환경은 점점 더 억압적으로 변해갔다. 서방 세계 정치 권력의 중심지인 워싱턴이 사용한 새로운 방법들은 런던과 파리의 정신적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평이 좋지 않은 과학자들은 충성 위원회들의 조사를 받았고, 여권을 빼앗기고 일터에서 쫓겨났다. 과학계 사람들 사이의 우정은 불신과 두려움의 중압감에 못 이겨 무너져내렸다. 수십 년 동안 지속돼온 과학자들 사이의 서신 왕래도 끝났다. 서방 세계의 연구소들에서조차 이전에전체주의 국가에서만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은 국가의 도청을 경계하여 불안에 떨며 서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 책 속 메시지


로베르트 융크는 과학을 신화처럼 미화하지 않습니다.

그는 철저히 인간 중심의 시선에서 기술과 과학의 그림자를 추적하였습니다.

과거 과학자들은 핵폭탄을 만드는데 성공했지만 사실 그 기술이 어떻게 사용될지는 그들의 손을 떠나 있었습니다.

융크는 그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단절, 무력함, 윤리적 부채감을 기록하였습니다.

인간들은 자기 자신보다 큰 것을 만들어냈지만 결국 그 앞에서는 모든 이들이 무력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괴물이 된 창조물 앞에서 프랑켄슈타인이 느꼈을 감정처럼 말이죠.



■ 하나의 감상


이 책을 덮고 가장 오래 남았던 감정은 두려움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훨씬 깊고 오래 가라앉는 묵직한 슬픔이었습니다.

천재들이 머리를 맞대고 완성해낸 그 눈부신 기술이 결국 수많은 생명을 지우는 데 쓰였다는 사실 앞에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만들어도 되는가에 대한 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오래 머물렀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보다 큰 것을 만든다."

하지만 그 위대한 창조의 끝에는 정작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작은 인간이 서 있었습니다.

과학은 진보했지만 윤리는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그 기술을 어떻게, 무엇을 위해, 어디에 쓸지를 결정하는 건 결국 우리, 인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천 개의 태양보다 밝은』은 그런 진실을 직면하게 합니다.

기술의 찬란함 뒤에 놓인 사람들의 고통, 빛보다 먼저 불타버린 삶들을 조용히 되짚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역사서가 아닙니다.

지식보다 윤리를, 성과보다 책임을 먼저 돌아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두 번 다시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가 질문을 멈추지 않게 하는 책입니다.



■ 건넴의 대상


과학의 윤리와 한계를 성찰하고 싶은 분

원자폭탄에 대한 역사적 이해가 필요한 분

인간이라는 존재의 결정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알고 싶은 분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순간이 있다면 공감(♥)과 댓글로 나눠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단단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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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고기

저자 조창인

산지

2024-02-20

소설 > 한국소설




아비는 자식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었다. 단 하나, 너를 낳아주었다는 것만이 자랑이었다.




■ 책 속 밑줄


아빠는 멍텅구리입니다.

나는 지금 멍텅구리 아빠를 보고 있답니다.

창밖에는 비가 옵니다. 부슬부슬, 비는 아침부터 내렸지요. 지금은 저녁이고요.

아빠는 소아병동 뒤뜰 나무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의자는 푹 젖어 있을 겁니다. 아빠도 의자만큼 푹 젖어 있겠고요.

아빠에겐 우산이 없습니다. 우산이야 구내매점에서 살 수 있을텐데, 왜 저러고 있을까요. 비는 또 왜 그치지 않는지요.



난 백혈병에 걸렸습니다. 아빠는 무슨 병인지 말해주지 않았어요. 단 한번도. 앞으로도 그럴 게 뻔해요. 우리 병실에는 온통 백혈병과, 백혈병 사촌인 재활불량성빈혈 환자들만 있어요. 알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된답니다. 백혈병이 얼마나 끔찍한 병인지도요. 나는 키가 작은 편예요. 백혈병에 걸린 2년 동안 다른 애들은 쑥쑥 자랐지만 나는 그대로랍니다. 백혈병이 내 키를 나무 기둥에 쾅쾅 못 박아둔 거죠. 또 백혈병은 심술쟁이 고양이 톰 같아요. 나는 새앙쥐 제리 꼴이고요. 아무리 도망쳐도 끈질기게 쫓아오는 고양이 톰처럼 나를 못살게 굴지요.



그 모든 것이 착각이었을까. 한순간의 신기루, 꺼져가는 촛불의 마지막 휘황찬란한 발광, 혹은 운명의 심판자가 던져준 값싼 위로나 최후의 동정이었을까. 아버지의 과도한 욕망이 빚은 참혹한 결과였을까.

그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서서 굳게 잠긴 중환자실 철문을 노려보고 또 노려보았다. 다시는 찾지 않겠노라 다짐했던 병원에, 그것도 응급실을 거쳐 중환자실에 아이를 입원시킨 직후였다. 병원을 벗어난 지 꼭 36일 만이었다. 고작 거기까지였다.



입안에 가득 침이 고입니다. 꼴깍꼴깍, 침을 삼키고 아빠의 말을 기다립니다. 이번만큼은 아빠도 화를 낼 줄 알았어요. 엄마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예요. 아빠는 멍한 눈으로 날 바라볼 뿐이에요. 아휴, 내 입에서 저절로 한숨이 새어나옵니다.

내가 아픈 게 왜 아빠 탓이죠? 답답해요. 아빠는 마치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가만히 있으면 어쩌자는 건지 도대체 모르겠어요.



산다는 것은 고통과 직면하는 일이기도 하다. 안다. 알고 있다. 그렇다고 고통이 무리지어 올 것까지는 없다. 기어코 맞닥뜨려야 할 고통이라면 차례라도 지켜야 옳다. 죽음이 고통의 끝이라면, 적어도 어느 하나는 해결되어야 마땅하다. 죽음은 진작 손을 내밀면 잡힐 듯 가까이 있었다. 아이가 투병을 시작한 이래 줄곧 그러했다. 아이의 위태로운 행보에 동행할 수밖에 없는 삶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희망이 아이를 감싸고 있다. 아이는 희망의 이름으로 소생하는 중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그는 살아야 할 분명한 이유와 마주한 셈이다. 그러나, 아이와 무관하게 죽을 거란다. 아이가 자신을 남겨두고 홀로 가버릴까 늘 서럽고 무서웠다. 이젠 아이를 남겨두고 그 혼자 가야 한단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아빠뿐이고, 아빠가 사랑하는 사람도 나뿐이죠.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언제까지나 함께 있어야 한다고 말한 건 바로 아빠예요. 그렇게 중요한 걸 왜 까먹은 걸까요. 내가 없어지면 아빠는 어떻게 될까요. 아빠 말대로 속이 시원할까요. 자꾸만 가시고기가 생각납니다. 새끼가시고기들이 떠난 뒤 돌 틈에 머리를 박고 죽어가는 아빠가시고기 말예요. 내가 없어지면 아빠는 슬프고 또 슬퍼서, 정말로 아빠가시고기처럼 될지도 몰라요. 만일 내가 엄마를 따라 가게 된대도 아빠가 쪼금만 슬퍼했으면 좋겠어요. 우린 언젠가 다시 만날 테니까요.



아들아, 그 동안 네가 이렇게 아팠구나. 아빠는 몰랐다. 네가 아프다면 아픈 줄만 알았지, 그 고통의 깊이가 어디까지인지 알지 못했다. 아들아, 네가 이다지도 크나큰 고통 속에서 그 허다한 날들을 보냈구나. 아들아, 가녀린 몸으로 그 높은 고통의 산들을 어떻게, 무슨 수로 다 넘어왔니. 아들아, 미안하다. 아빠는 미처 몰랐다. 아프면 그냥 대신 하고픈 마음이었는데, 그 마음조차 네가 겪었을 고통 앞에서는 한없이 초라한 것이었구나.



■ 끌림의 이유


백혈병에 걸린 아들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살아가는 아버지는 이름, 자존심도 심지어 목숨까지도 조용히 내려놓습니다.

『가시고기』는 슬픔을 말하지 않고 사랑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말로 감정을 설득하지 않고 부성애라는 존재 자체만으로 독자들의 가슴을 울리게 합니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동적인 이야기, 그 중심에는 슬픔보다 훨씬 더 깊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한 질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 간밤의 단상


부모의 사랑이라는 말을 글로 옮기려 할 때면 마음이 자꾸 머뭇거리게 됩니다.

그건 너무 많이 들은 말이면서도 막상 꺼내려 하면 쉽게 닿지 않는 감정이니까요.


『가시고기』는 제게 세 번이나 다른 시선으로 다가온 책입니다.

마냥 여리기만 했던 10대였을 때, 혼란스럽고 불안정했던 20대였을 때 그리고 삶의 무게를 체감하는 30대가 된 지금.

같은 이야기인데도 시간이 흐를수록 아버지의 뒷모습이 다르게 보입니다.

사랑이란 감정이 아니라 움직임이라는 것을 이 책은 말 없이 보여줍니다.

무언가를 주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끝내 말하지 못하는 마음은 가시고기라는 비유보다 더 깊고 고요하게 다가옵니다.

이름 없이 사라졌지만, 끝내 아들의 이름만을 마음속으로 불렀던 그 장면은 아버지라는 존재가 얼마나 묵묵한 희생으로 이루어졌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어쩌면 『가시고기』는 단순히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에 수없이 존재하는 이름 모를 사랑, 기록되지 않은 헌신, 침묵 속의 존재감을 기리는 책인지도 모릅니다.


책장의 마지막을 덮고 나면, 우리는 자연스레 누군가의 얼굴을 오래도록 떠올릴 것입니다.

아마 그건, 사랑을 말하지 못해 더욱 간절했던 어떤 이름이지 않을까요.



■ 건넴의 대상


감동적인 부성애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고 싶은 분

부모와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싶은 분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내려놓은 적 있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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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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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무성해지는 것들 _다섯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에 대하여



어떤 감정은 설명하기보다 오래 바라보아야 이해됩니다.

특히 좋아한다는 감정이 그렇습니다.

처음엔 뜨겁고 곧 익숙해지다 어느 순간 잊힌 듯 조용히 남지요.


책을 그렇게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활자를 따라가는 재미였고 조금 지나니 문장 하나에 눈물이 고이고 이제는 책이 있어야 내가 나다워집니다.


무언가를 오래도록 좋아하는 사람은 세상의 흔들림에 쉽게 부서지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내면의 방이 있으니까요.


너무 쉽게 식어버리는 요즘, 저는 좋아하는 일을 오래 좋아하고 싶습니다.

지루하더라도 반복되더라도, 그 안에 제 진심만 담겨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하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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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름, 완주

저자 김금희

무제

2025-05-08

소설 > 한국소설




그럼 서로 마주보고만 있으면 되겠네. 그러라고 여름이 있는 거네.




■ 책 속 밑줄


손열매가 처음으로 성대모사 한 사람은 스탠리 입키스였다. 그는 짐 캐리가 연기한 영화 「마스크」의 주인공으로 고대의 나무 가면을 쓰면 평소와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한다. 히어로라면 히어로의 일종으로 분류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포장하기에 두꺼운 초록 버터크림의 그 얼굴은 토네이도처럼 무질서를 몰고 와 현실을 엉망으로 만든다. 우리가 알던 세계는 전혀 다른 것이 된다. 그러니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진실된 것.



평면의 존재를 입체적으로 오려 내는 영혼의 가위질처럼, 진흙 덩어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다는 신의 숨결처럼, 보글보글 끓어올라 장독대 안을 푹 익히는 유산균처럼 손열매는 자기 안의 무언가를 '발생'시키기 시작했다. 그간 한 번도 경험 못 한 고도의 집중력이라 코끝까지 시큰해졌고 하늘 끝까지 날아오를 듯했다.



보령에서 올라와 오랫동안, 대학을 졸업하면, 서른이 되면, 경력이 차면, 듬직한 안정으로 나아가리라 믿었지만 이상하게 삶은 매번 흔들렸다. 마치 우는 사람의 어깨처럼.



열매는 자괴감이 들었다. 호흡을 더 고르자 드디어 생각마저 날아갔다. 버글거리던 것들이 사라지고 서 있다는 느낌만 남았다. 옆에는 과잉 흑담즙으로 고생하는 우울한 어저귀와 슬픔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맹렬히 저항하는 문제 학생이 서 있고 봄은 그냥 봄일 뿐이다. 그런 그들을 감싸며 마치 눈보라처럼 수양버들 씨앗이 날았다.



함께 수미 얼굴을 보고 있던 열매는 얼마 전 동창들이 야유하듯 전한 말을 근황 소식으로 바꾸어 들려주었다. 여의도에서 본 사람이 있는 걸 보면 어디 직장을 구했는지도 모르겠다고. 순간 얼굴에 안도의 빛이 흘러갔지만 수미 엄마는 표정을 감췄다. 기쁨이나 즐거움, 안도와 낙관 같은 것 대신 신산함, 피로감, 불안, 불편, 침묵이 더 안전하게 느껴지는 사람처럼 재빨리.



느린 템포의 음악이 흐른다. 고독과 상실, 순수의 근원에 대한 염원, 무력감과 나약함 속에서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호혜적 사랑, 그 시절 신해철의 음악에는 그런 여린 신념들이 들어 있었다.



뭔가를 기다리는 간절함이 마음을 차게 쓸고 갔다. 뭔가 다른 것, 완평을 찾아간 그 봄처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진실된 것. 완주 나무도 없고 숲의 친교도 느껴지지 않는 이 도시에도 가끔은 그런 기적이 일어나도 되지 않을까.



외로움, 후회, 책임감, 소진, 그리고 다시 살아가는 일.

모두가 여름 속에서 말없이 자신의 계절을 통과한다.



■ 끌림의 이유


『첫 여름, 완주』는 상처를 드러내지도 감정을 과장하지도 않습니다.

무너짐과 회복을 말없이 함께 있는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풍경과 사람들을 통해 보여줍니다.

완주라는 장소는 삶의 속도를 바꾸는 장치이며 등장인물들의 모든 감정은 말보다 시선과 조용함 속에서 드러납니다.


듣는 소설이라는 형식이 만들어낸 독특함 덕분에 이야기는 더 따뜻하고 느긋하게 진행되며 말보단 리듬으로 우리를 위로해주는 소설입니다.

『첫 여름, 완주』는 잠시 멈추었지만 결국 끝까지 걸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결국 모든 사람에겐 각자의 여름이 필요하다는 것을, 즉 함께 있으되 침묵이 가능한 관계가 얼마나 따뜻한지 잘 보여줍니다.



■ 간밤의 단상


누군가와 아무 말 없이 시간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자 커다란 위로인 거 같습니다.

우린 종종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야만 치유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가만히 곁에 있어주는 침묵에서 더 큰 온기를 느끼기도 합니다.

읽는 내내, 묵인이 아닌 수용이란 감정이 자주 떠올랐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마음, 서로를 급하게 이해하려 하지 않는 관계 그리고 내 속도를 기다려주는 사람들.

그런 여름을, 그런 완주를 누군가 내게도 건네줄 수 있을까?

아니,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 질문이 머릿속에서 맴맴 돌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감정은 사실 조용한 회복입니다.

폭발하거나 울부짖는 대신, 그저 스스로와 타인의 말 없는 연대를 통해 다시 일어서는 일이 제겐 꼭 맞다고 할까요.

『첫 여름, 완주』는 그런 회복의 과정을 마을이라는 작은 세계 속에 담아냈습니다.

누구도 정답을 말하지 않고 누구도 구원자가 되지 않지만, 모두가 서로의 마음 옆에 조용히 앉아 있는 방식만으로도 위로가 되죠.

살다 보면 말하고 싶지 않은 날이 있는데 그럴 땐 슬픈 이야기조차 꺼려집니다.

이 책은 아무 말 없이 따스한 햇빛이 비춰주는 테이블에 앉아 그저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로가 되는 시간과도 같은, 여름날의 속삭임처럼 느껴졌습니다.

무언가를 극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조금 멈춘 채 숨만 쉬어도 괜찮다고.

말보다 조용한 사람이 세상을 완주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고요한 소설 속에서 저는 제 삶의 불시착을 잠시 안아주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 건넴의 대상


조용히 마음을 회복하고 싶은 분

말 없이 있어주는 관계에 위로를 받는 분

김금희 작가 특유의 정서적 호흡을 좋아하는 분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남은 문장이나 순간이 있다면 공감(♥)과 댓글로 나눠주세요.

당신의 감상이 더해지면 이 공간은 조금 더 깊고 따뜻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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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추얼은 그런 어둠의 순간, 또는 어둠의 세월에서 우리를 이끌어내는 빛이 될 수 있다. 통과의례는 우리를 변화시킨다. 다른 누구 또는 다른 무엇이 되고자 하는 우리 내면의 근본적이고 영속적인 욕구가 충족될 수 있게 해준다. 스스로에게 그리고 세상에, 우리가 진정 어떤 사람인지를 각인시킬 수 있게 해준다.


– 『어떻게 이 삶을 사랑할 것인가』, 마이클 노턴






■ 하나의 사유


리추얼은 단순히 반복되는 습관이 아닙니다.

삶이 무너지는 듯한 순간, 마음 어딘가에서 길을 잃을 때 리추얼은 그것을 붙드는 작은 닻이 됩니다.

마이클 노턴은 말합니다, 리추얼은 삶의 어둠을 통과하는 하나의 빛이며 우리를 다시 나답게 회복시키는 의식이라고.


가끔 우리는 매일 똑같은 하루를 살아가는 것 같아 지치곤 합니다.

하지만 눈 떠서 커피를 내리고 책 한 장을 펼치고 저녁 무렵 일기를 쓰는 그 작은 반복들이 우리를 다시 나로 되돌려줍니다.

그건 하루의 형식을 만드는 일이자 삶의 방향을 세우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소한 행동들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죠.

"나는 지금 누구로 살아가고 있는가?"


삶은 크고 거창한 계기로만 변하지 않습니다.

매일 나를 붙잡는 리추얼 하나가 어쩌면 우리 삶 전체를 조금씩 바꾸고 있어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도 조그마한 리추얼 하나씩 꼭 만들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문장을 떠올리게 되는 사람이 있나요?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 이 글을 조용히 건네주세요.

문장 하나가 누군가의 오늘을 다르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다음 주엔 조금 더 따뜻하고 단단한 한 문장으로 다시 찾아올게요.

당신의 일요일에 이 조용한 사유가 잔잔히 머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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