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죠? 왜 이 노트를 읽으면 안 된다는 겁니까?" "……오니까." "네?" "그것이 엿보러 오니까……."

세상에 기담과 괴담을 좋아하는 이는 많다. 무서운, 불가사의하고 기분 나쁜, 오싹하고 섬뜩한,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너무나도 기묘한 그런 이야기를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중에서는 너무 좋아한 나머지 직접 괴이담을 수집하기 시작한 인물도 있다. 유명한 사례로는 중국 청나라 전기에 기록된 포송령(蒲松齡)의 《요재지이(聊齋志異)》나, 일본 에도시대에 정리된 네기시 야스모리(根岸衛)의 《미미부쿠로(耳囊)》 등이 있을 것이다.

포송령은 산동 지방의 문인으로, 소년기부터 수재로 이름났었지만 장성한 뒤에는 관직시험에 몇 번이나 낙방했으며, 그 좌절한 마음이 《요재지이》로 결실을 맺었다고 이야기되고 있다. 통행본으로 전 16권, 445편으로 이루어진 이 책에는 수많은 판본이 존재하고 있다.

네기시 야스모리는 고케닌카부(御家人株 ; 무사의 신분. 에도 시대에는 궁핍해진 무사가 신분을 파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며 표면적으로는 구입자를 양자로 들이는 형태로 권리를 넘겼다_역주)를 사서 네기시 가의 양자가 되어 그 집안의 장자권을 상속함과 동시에 두각을 나타낸 막부의 신하로, 재정을 담당하는 칸조부교나 행정 사법을 담당하는 미나미마치부교 등을 역임했다. 사도 섬을 다스리는 사도부교 시절부터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써서 남긴 것이 전 10권에 1천 편에 이르는 《미미부쿠로》다.

양자를 비교해가며 읽은 경우, 전자보다는 후자에서 실제로 피부에 와 닿는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국가나 시대나 문화의 차이가 아니라, 담겨 있는 이야기가 지닌 일상성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이 책의 단서는 아직 내가 간사이 지방에 머무르며 편집자 일을 하던 시절, 모 기획을 위해 몇 번이나 만나서 의논했던 ○○대학 부속 T초등학교 교사인 토쿠라 시게루(利倉成留)에게 들은 이야기다. 그 남자와는 나이도 엇비슷하고 독서 취향도 유사해서 마음이 맞은 덕분인지 금방 친해졌다. 일 이야기를 하는 사이사이에 잡담을 하는 일도 많았고, 따라서 괴담이 화제에 오를 때까지 그리 많은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토쿠라 시게루는 쇼와시대(일본의 연호 중 하나로 1926년부터 1989년까지를 말한다_역주)가 얼마 남지 않은—나중에 생각해보고 안 것이지만—학생 시절의 어느 해 여름, M지방의 임대 별장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에 무서운 체험을 했다고 한다. 아르바이트 동료들과 함께 정말 오싹한 사건에 휘말리고 말았던 것이다.

"‘제거할 필요가 있는 나무뿌리’란 뜻의 노조키네를 베면, ‘엿보는 나무의 아이’란 뜻의 노조키네란 괴물이 나온다……. 그런 얘깁니까?"

"네. 다만 괴물이라고 해도 그것이 못된 사람에게 앙화를 내리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그냥 나타날 뿐이고, 특별히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씀이죠?"

"베어서는 안 되는 나무인 ‘노조키네’를 벤 자는 이윽고 누군가의 시선을 받는 듯한 기분을 느낍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그래도 누군가에게 주시당하고 있다는 감각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하루 종일, 언제 어디서나 그것의 시선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은 정신이 나가버린다……라는 모양입니다."

"안 보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노조키네에서 파생되었다고 여겨지는 것에 노조키메가 있다’라는 문장입니다."

"그 노트의 내용은, 절대 읽지 않는 게 좋을 거요."

처음에는 ‘내가 아이자와에게 직접 노트를 받았기 때문에 나구모가 기분이 상한 건가’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그의 어조가 미묘했다.

"어째서죠? 왜 이 노트를 읽으면 안 된다는 겁니까?"

"……오니까."

"네?"

"그것이 엿보러 오니까……."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도 전에 팔뚝에 소름이 쫘악 돋았다. 다음 순간, 나는 5년 전에 있었던 기묘한 사건의 진상을 알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 의도했던 민속학적인 조사기록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 될 것 같지만, 이번 체험을 글로 써서 남겨두기로 한다.’

아이자와 소이치가 쓴 그 첫 문장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이미 완전히 빠져들어 있었다. 그대로 끝까지, 단숨에 독파해버렸다.

다만 읽어나가는 중에 어떤 우연을 깨달았을 때에는 정말로 깜짝 놀랐다.

‘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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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에 휩쓸려 굴종하지 않기 위해 현재의 조건을 바꿔나가려는 싸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인간의 존엄에 걸맞은 사회·경제적 조건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싸움, 이런 싸움은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보편 복지에 대한 요구와도 유사한 맥락일 겁니다.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톨스토이는 "바로 옆의 사람이다"라고 답했습니다.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은 언제냐?" 이 질문에 대한 톨스토이의 답은 이미 알고 계시지요? "바로 지금이다"입니다.

굴종하지 않으면서 이런 존재들을 보듬기 위한 집단적인 연대를 고민하자. 제가 만약 프랑스에서 20년을 살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그냥 한국에 남아 있었더라면 무너졌을 가능성이 높은 저에게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물론 MB정권 아래에서 집회시위의 자유라든지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 등 여러 자유들이 훼손당하고 있는데, 물론 이에 맞서 싸워나가야 하겠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자유는 바로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의 자유입니다.

유보하되 포기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은 시간과 함께 성숙합니다. 따라서 의지를 갖고 끝없이 긴장을 유지하면, 시간과 함께 자아를 실현하면서 생존이 담보될 수 있는 길이
열리며, 아무리 엄중한 사회라 하더라도 그런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을 절대로 배제할 수 없다는 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유보하되 포기하지 말자. 죽는 순간까지.

홍세화  학교 선배든 인생 선배든 또는 형이든 누나든 아니면 부모님이든 간에, 그래도 선배 잘못 만나서 세상 보는 눈을 뜨게 된 이런 분들이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한 민중의 표상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함께 힘을 합쳤으면 좋겠고요.
내일 지구가 망할지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에 빗대 말하자면, 미래의 불확실성을 오늘의 불성실에 대한 핑계로 삼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톨스토이의 말처럼 나에게 소중한 사람에게 성실하고, 또 두말할 것도 없이 스스로에게 성실했으면 좋겠습니다. 소유물을 갖고 남과 비교하지 말고,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성숙했는지, 그리고 나의 인간관계가 오늘보다 내일 더 성숙할지, 즉 존재와 관계의 성숙을 목표로 하는 비교만 남겨뒀으면 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유배된 혹은 유배되었던 청춘끼리 공유했으면 좋겠네요.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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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인간의 존엄성에 맞는 ‘몸 자리’라는 화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몸 자리에 관심을 갖습니다. 결국은 나와 내 가족, 내 아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인간의 존엄성에 맞는 몸 자리를 향유할 수 있느냐, 이게 가장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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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흔히 쓰는 직함은 ‘〈르몽드 티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인’. ‘똘레랑스(관용)’의 미덕과 힘을 한국에 소개한 전직 ‘파리의 택시운전사’. 인터뷰 특강과 인연이 깊은 인기 강연자다. 늘 진지한 이야기만 골라서 하는데 팬이 많다. 홍세화는 ‘자기 형성의 자유’를 거듭 강조했다. "생존은 자아실현을 위한 조건에 지나지 않는다"며, 자아실현과 먹고사는 문제로 갈등할 경우 "(생존을 위해 자아실현을) 유보하되 포기하지 말자"고 당부했다. 홍세화는 자신의 인생에 영향을 끼친 책으로 『전태일 평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공산당 선언』 등을 들었다.

"행복은 적금을 들 수 없다. 예치했다가 나중에 찾는 게 아니다. 내일 할 일은 내일 하시라.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과거는 수정하지 못하고 미래는 통제할 수 없다. 오로지 현재 내 태도만을 자신의 의지로정한다. 자신의 욕망을 알고, 언제 행복할지 알겠다면 그냥 하시라. 이유를 달지 말고,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생각해보니 희망이란 본시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거였다. 이는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시 땅 위엔 길이 없다. 다니는 사람이 많다보면 거기가 곧 길이 되는 것이다."

그래, 일단 걷자. 내가 걸은 만큼만 내 인생이다. 좌절 금지!

1975년에 개봉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여기서 ‘뻐꾸기 둥지’란 무엇을 가리키는 걸까요? 바로 정신병원의 속어라고 합니다. 감옥에 있던 주인공이 자유를 누리고 싶어 정신병원으로 옮겨 가지만 그곳에서 자유를 더 억압받고, 이에 분노한 주인공이 정신병원에 입원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탈을 도모한다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홍세화  다 같이 낙인찍히면 되지요. 답은 간단하다고 봅니다.

불안에 굴종하지 않으면서 집단적 연대를 고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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