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승전》이란 표제 아래 붙어 있는 ‘향토와 민속’이라는 소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일본 각지에 남아 있는 기이한 풍습, 전설, 민화 등을 모아 놓은 것으로, 집필자도 소수의 유명인 외에는 대개 무명의 투고자로 이루어져 있다.
문장은 유치해도 사실의 진귀함과 흥미로움에 신선한 재미가 넘치고 또한 배우는 것도 적지 않다고 한다.
쇼와(昭和) 28년(1953년) 9월호에 게재된 글로, 제목은 ‘귀수촌 공놀이 노래에 관하여’라고 되어 있고 지금은 그 지방에서도 거의 잊혀 가는 공놀이 노래를 흥미롭게 고증해 놓은 글이다. 필자는 다타라 호안이란 이름인데 이 잡지만으로는 다타라 호안이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없다. 분명 투고한 글일 것이다.
귀수촌 공놀이 노래
집 뒤뜰에 참새가 세 마리 앉아 한 마리 참새가 말하기를 우리네 처소의 주군님 사냥 좋아해, 술 좋아해, 여자 좋아해 그중 제일은 여자라네. 여자답고 어여쁜 술잔 집 아가씨. 어여쁘지만 술고래인 술잔 집 아가씨. 잔1)으로 어림잡아 깔때기로 마시고 아침부터 밤까지 종일 술에 절어 그래도 모자란다며 퇴짜 맞았네. 퇴짜 맞았네.
1) 잔(되): 원래는 액체나 곡물의 분량을 잴 때 썼던 방형 혹은 원통형 용기였으나 언젠가부터 축하 자리에서 술을 나누는 잔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두 번째 참새가 말하기를 우리네 처소의 주군님 사냥 좋아해, 술 좋아해, 여자 좋아해. 그중 제일은 여자라네. 여자답고 어여쁜 저울 집 아가씨. 어여쁘지만 구두쇠인 저울 집 아가씨 요 금화 저 은화를 저울에 달아서는 종일 감정하느라 밤낮이 저물고 잠잘 틈도 없다며 퇴짜 맞았네. 퇴짜 맞았네.
세 번째 참새가 말하기를 우리네 처소의 주군님 사냥 좋아해, 술 좋아해, 여자 좋아해 그중 제일은 여자라네. 여자답고 어여쁜 자물쇠 집 아가씨. 어여쁘지만 돌계집인2) 자물쇠 집 아가씨. 돌계집 아가씨 자물쇠 고장 났네. 자물쇠 고장 나면 열쇠가 안 맞지. 열쇠가 안 맞는다 퇴짜 맞았네. 퇴짜 맞았네.
잠시 끝이 났습니다.
어여쁘지만 돌계집인(器量よしじゃが小町でござる): 고마치(小町)는 헤이안 시대의 가인이자 절세미인이었던 오노노 고마치(小野小町)에서 따온 말로 ‘이름 높은 미인’을 일컫는 표현이다. 하지만 ‘어여쁘지만 이름 높다’는 의미라면 ‘어여쁘지만’ 뒤에 부정적 표현이 들어간 1연, 2연의 형식과 어울리지 않는다. 덧붙여 속설에 따르면 실존 인물인 오노노 고마치는 아름다웠지만 여성의 기능을 상실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열쇠와 자물쇠가 각각 남녀 성기를 상징한 단어라는 견해에 따라 小町라는 표현을 ‘(여성의 기능을 상실한) 돌계집’으로 번역했다는 사실을 밝혀둔다.
여기서 귀수촌이라는 곳을 지도에서 조사해 보자.
그곳은 효고(兵庫) 현과 오카야마(岡山) 현의 경계에 걸쳐 있고 세토(瀨戶) 내해 해안선에서 불과 7리가 채 못 되는 거리이지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이른바 주된 교통망에서 벗어난, 말 그대로 산간분지이다. 지도에서 보면 지형이든 교통이든 당연히 효고 현에 편입되어야 마땅한데, 구 막부 시대 지배지의 영향으로 오카야마 현에 편입되어 있는 게 특이하다.
그 때문에 범죄가 일어날 경우 수사상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것이었다. 본고장인 오카야마 현 경찰로부터는 지형 등의 관계로 따돌림을 당하고, 교통이 편리한 효고 현측에서는 관할 밖의 일이라며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경향이 있어, 이제부터 이야기하려는 사건 수사의 경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아니할 수 없다.
무감(武鑑): 무가(武家) 연감. 에도 시대에 무가의성명·계보·거성(居城)·봉록·가문 (家紋), 주된 가신의 성명 등을 기록한 책.
야나기노마(柳間)와 초산타이후(朝散大夫): 야나기노마는 도자마다이묘(外樣大名), 즉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에 도쿠가와 지배 체재에 편입된 다이묘를 가리키는 말. 초산타이후는 종5품 이하의 관직명을 통칭하는 말. 즉, 야나기노마 초산다이후를 간단히 풀어 설명하면 ‘종 5품 이하의 다이묘’가 된다.
귀수촌의 공놀이 노래는 이 이토 스케유키의 비행을 노래한 것이니, 공놀이 노래 각 구절의 마무리 부분에서 ‘퇴짜 맞았네, 퇴짜 맞았네.’라고 반복되는 부분은 사실은 ‘살해되었네, 살해되었네.’란 말을 되풀이하는 의미란 것이 다타라 호안 씨의 의견이었다.
긴다이치 코스케가 이소카와(磯川) 경부의 소개장을 지닌 채 이 지방에 드물게 남은 인력거로 센닌토게(仙人峠)6)를 넘어 귀수촌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쇼와 30년 7월 하순의 일로, 물론 그 무렵 긴다이치 코스케는 거기 남아 있는 공놀이 노래에 대해서는 꿈에도 몰랐다.
긴다이치 코스케는 그 정양지로 이곳저곳 생각해 본 끝에 결국 오카야마 현에서 고르기로 결심했다. 그의 데뷔 사건이라 할 수 있는 ‘혼진 살인 사건’ 이래 ‘옥문도’ ‘팔묘촌’ 등 어쩐 일인지 그는 오카야마 현과 인연이 깊어, 어느새 이 지방의 인정과 풍속에 호의를 품게 된 모양이다. 원래 손님을 잘 대접하는 이 지방 사람들의 기질이 그로서는 왠지 모르게 따뜻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어딘가 이 근처에 좋은 곳 없을까요. 많이 불편한 곳이 좋습니다. 외부와의 교섭이 완전히 차단되어 있는, 인가에서 떨어진 깊은 산에 사는 것 같은 느낌의 시골말이에요."
"귀수촌(鬼首村), 아오이케 리카(靑池リカ) 님."
"긴다이치 씨는 시골 농촌에 대해 비교적 잘 아시겠지만, 어느 마을에 가도 그 땅에서 유난히 세력을 지닌 사람이 있지요. 한데 그 세력가한테는 항상 대항 세력이 있어서……. 뭐, 예를 들면 옥문도의 기토 본가와 분가, 팔묘촌의 동쪽집과 서쪽집 같은 거 말이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