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나 고통, 두려움 없이 항의하거나 설교하는 대신 글을 쓰는 한 여성이 있었다.” _ 버지니아 울프
“여성의 자존감이 제인 오스틴의 발명품이라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_ 가디언
“햄릿이 영문학의 첫 번째 아들이라면, 엘리자베스 베넷은 가장 사랑스러운 딸이다.” _ 로라 제이콥스

작가를 말하다, 제인 오스틴 Jane Austen
제인 오스틴(1775~1817)은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영국 문학가로 인정받는다. 오스틴은 『이성과 감성』, 『오만과 편견』, 『맨스필드 파크』, 『에마』, 『설득』, 『노생거 사원』, 이 6편의 소설로 200년 동안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은 위력적인 작가다.

스티븐턴 교구 목사의 딸로 태어난 오스틴은 8세 때부터 3년간 기숙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뒤 줄곧 집에서 책을 읽으며 독학했다. 12세 때부터 시와 단편 소설, 희곡을 쓰기 시작해, 20세에는 장편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사망한 뒤 셋집과 친척 집을 옮겨 다니다 오빠의 집이었던 초턴에 정착한 뒤 창작에 전념했다. 오스틴은 평생 독신으로 지냈으며, 1817년 42세의 나이에 병으로 사망했다.
오스틴은 세밀한 관찰과 비판적인 시선으로 물질 만능주의와 허위의식을 풍자하면서 개인의 도덕의식을 끈질기게 탐구했다. 프랑스 혁명과 미국 독립 전쟁, 영국과 프랑스 와의 빈번한 전쟁 등으로 어수선하던 시대에 한적한 시골을 배경으로 청춘 남녀의 연애와 결혼을 그린 오스틴의 작품은 역사의식과 사회 인식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오스틴 생전에 발표된 작품들은 비교적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사후에는 찰스 디킨스와 조지 엘리엇 등 빅토리아 시대 작가들에게 가려서 크게 인정받지는 못했다. 오스틴이 재평가받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다.
20세기 후반에는 수백만 독자들을 몰고 다니며, 영화, 연극, 드라마 등 대중적인 문학 작품으로 자리잡았다. 오스틴의 작품들은 영국 소설의 전통을 세운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작품을 말하다, Pride and Prejudice
『오만과 편견』은 오스틴 스스로도 “너무 가볍고 밝고 반짝여서 그늘이 필요하다.”고 말할 정도로 경쾌한 작품이다. 오스틴이 살던 시대, 결혼을 생각하는 여성들이 마주하는 여러 현실의 문제와 사랑 이라는 복잡다단한 주제를 다양한 시선으로 꿰뚫는 소설이다. 오스 틴의 작품 중 독자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소설은 18세기 말 런던 근교의 한적한 시골에 사는 베넷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다. 속물적인 어머니와 무심한 아버지,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딸들의 결혼을 둘러싼 사건이 펼쳐진다. 오스틴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날선 유머 감각, 조롱하는 듯 비판적이고 섬세한 인물 묘사가 돋보인다.
생기 넘치고 당찬 둘째 딸 엘리자베스와 부유한 집안 출신의 다아 시는 서로를 향한 편견과 오해로 혼란스러운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고, 결국 두 사람은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하며 서로를 향한 사랑을 이루어 간다.
이 작품 역시 역사의식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지만, 오히려 오스 틴이 그리는 작품 속 시골 사교계는 작가가 속해 있던 시대, 작가가 몸담고 있던 폐쇄적인 사회를 그대로 비춘다. 오스틴은 인물이 품은 속물근성과 배타적인 우월감 등을 세밀한 풍자로 보여 준다.
다아시의 오만과 엘리자베스의 편견. 엘리자베스의 오만과 다아시의 편견. 오만에 사로 잡히고 편견으로 가득한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엘리 자베스가 볼썽사납지 않고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던지는 질문이 지금 우리에게 여전히 유의미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를 말하다
1. 오스틴의 비혼
결혼을 적극적으로 고려한 때도 있었지만, 오스틴은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오스틴은 21세 때 훗날 아일랜드 대법관이 된 톰 레프토이와 사귀다 헤어졌다.
남자 쪽 집안의 반대로 청혼이 무산되었다고 한다.
27세에는 넓은 토지를 상속받을 남자의 청혼을 받은 다음 날, 결정을 번복했다. 파혼의 이유는 오스틴이 조카딸에게 보낸 편지에서 엿볼 수 있는데, 오스틴은 “사랑 없이 결혼하기보다는 무엇이든 다른 것을 선택 하고 견뎌야 한다.”고 썼다.
2. 오스틴의 유머 감각
오스틴은 계약을 맺고도 원고 출간을 계속 미루는 출판사에 특유의 유머 감각을 동원해 항의했 다고 한다. 출판사에 보낸 편지 마지막에 ‘Mrs. Ashton Dennis’라고 서명한 것이다. 이 서명의 첫자를 연결해 보면 ‘MAD’. 오스틴은 자신이 화가 나 있다는 메시 지를 재치 있게 전한 끝에 작품의 판권을 다시 사들여 다른 곳에서 출판했다고 한다.
3. 오스틴의 이름
오스틴은 비밀스러운 작가였다. 사생활을 잘 드러내지 않았고, 무엇보다 자신의 작품을 익명으로 발표했 다. 흥미로운 점은 오스틴의 이름을 숨기고 작품을 발표했지만, 다들 작가가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 다는 사실이다. 문체의 여신으로 불리는 오스틴 특유의 묘사와 풍자를 어떻게 몰라볼 수 있을까. 이름을 감추어도 작가의 스타일은 남는다.

오만과 편견 : 세계문학그림책
제인 오스틴 원작 · 윤솜 저자(글) · 신진호 그림/만화

몽블랑
Great Writers Edition Fountain Pen
Jane Austen
닙에 새겨진 오스틴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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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의 대답은 그저 "아!"였다. 필요한 모든 것을 전부 담은 "아!"였다. 그가 하는 말에 집중하고 그 진실을 전적으로 믿는 반응이었다. 그녀는 군중을 헤치고 지나가는 장군에게 깊은 관심과 강렬한 존경심을 느끼며 몰래 혼잣말을 했다. ‘온 가족이 얼마나 잘생겼는지!’

11시 즈음 주의 깊게 내다보던 캐서린은 창문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포착했다. "이런! 비 오겠네." 아주 낙담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삼십 분에 캐서린이 모두 포기하고 더 이상 개일 거라고 우기지 않자 하늘이 저절로 개기 시작했다. 한 줄기 햇살마저 비쳐서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 주변을 돌아봤다. 구름이 흩어지고 있었고, 창가로 달려간 그녀는 반색했다. 십 분만 더 있으면 분명 화창한 오후가 열리고 "언젠가 비가 그치겠지"라던 앨런 부인이 옳았음이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캐서린이 친구들의 방문을 기다려도 되는지, 틸니 양이 길을 나서기에는 비가 너무 많이 온 게 아닌지는 좀 두고 볼 일이다.

쏘오프는 말에게 뭐라고 중얼거렸고, 그녀는 깨진 약속, 무너진 기둥, 사륜마차, 눈을 속이는 양탄자, 틸니 남매, 성안의 비밀스러운 문 등을 차례차례 떠올렸다. 아게일 빌딩을 통과할 때 그의 짝이 말을 걸어와 정신을 차렸다. "저 아가씨가 지나가면서 당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던데, 누구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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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세계문학그림책
윤솜 지음, 신진호 그림, 제인 오스틴 원작 / 고래의숲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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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나 고통, 두려움 없이 항의하거나 설교하는 대신 글을 쓰는 한 여성이 있었다.” _ 버지니아 울프
“여성의 자존감이 제인 오스틴의 발명품이라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_ 가디언
“햄릿이 영문학의 첫 번째 아들이라면, 엘리자베스 베넷은 가장 사랑스러운 딸이다.” _ 로라 제이콥스

작가를 말하다, 제인 오스틴 Jane Austen
제인 오스틴(1775~1817)은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영국 문학가로 인정받는다. 오스틴은 『이성과 감성』, 『오만과 편견』, 『맨스필드 파크』, 『에마』, 『설득』, 『노생거 사원』, 이 6편의 소설로 200년 동안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은 위력적인 작가다.

스티븐턴 교구 목사의 딸로 태어난 오스틴은 8세 때부터 3년간 기숙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뒤 줄곧 집에서 책을 읽으며 독학했다. 12세 때부터 시와 단편 소설, 희곡을 쓰기 시작해, 20세에는 장편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사망한 뒤 셋집과 친척 집을 옮겨 다니다 오빠의 집이었던 초턴에 정착한 뒤 창작에 전념했다. 오스틴은 평생 독신으로 지냈으며, 1817년 42세의 나이에 병으로 사망했다.
오스틴은 세밀한 관찰과 비판적인 시선으로 물질 만능주의와 허위의식을 풍자하면서 개인의 도덕의식을 끈질기게 탐구했다. 프랑스 혁명과 미국 독립 전쟁, 영국과 프랑스 와의 빈번한 전쟁 등으로 어수선하던 시대에 한적한 시골을 배경으로 청춘 남녀의 연애와 결혼을 그린 오스틴의 작품은 역사의식과 사회 인식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오스틴 생전에 발표된 작품들은 비교적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사후에는 찰스 디킨스와 조지 엘리엇 등 빅토리아 시대 작가들에게 가려서 크게 인정받지는 못했다. 오스틴이 재평가받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다.
20세기 후반에는 수백만 독자들을 몰고 다니며, 영화, 연극, 드라마 등 대중적인 문학 작품으로 자리잡았다. 오스틴의 작품들은 영국 소설의 전통을 세운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작품을 말하다, Pride and Prejudice
『오만과 편견』은 오스틴 스스로도 “너무 가볍고 밝고 반짝여서 그늘이 필요하다.”고 말할 정도로 경쾌한 작품이다. 오스틴이 살던 시대, 결혼을 생각하는 여성들이 마주하는 여러 현실의 문제와 사랑 이라는 복잡다단한 주제를 다양한 시선으로 꿰뚫는 소설이다. 오스 틴의 작품 중 독자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소설은 18세기 말 런던 근교의 한적한 시골에 사는 베넷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다. 속물적인 어머니와 무심한 아버지,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딸들의 결혼을 둘러싼 사건이 펼쳐진다. 오스틴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날선 유머 감각, 조롱하는 듯 비판적이고 섬세한 인물 묘사가 돋보인다.
생기 넘치고 당찬 둘째 딸 엘리자베스와 부유한 집안 출신의 다아 시는 서로를 향한 편견과 오해로 혼란스러운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고, 결국 두 사람은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하며 서로를 향한 사랑을 이루어 간다.
이 작품 역시 역사의식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지만, 오히려 오스 틴이 그리는 작품 속 시골 사교계는 작가가 속해 있던 시대, 작가가 몸담고 있던 폐쇄적인 사회를 그대로 비춘다. 오스틴은 인물이 품은 속물근성과 배타적인 우월감 등을 세밀한 풍자로 보여 준다.
다아시의 오만과 엘리자베스의 편견. 엘리자베스의 오만과 다아시의 편견. 오만에 사로 잡히고 편견으로 가득한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엘리 자베스가 볼썽사납지 않고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던지는 질문이 지금 우리에게 여전히 유의미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를 말하다
1. 오스틴의 비혼
결혼을 적극적으로 고려한 때도 있었지만, 오스틴은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오스틴은 21세 때 훗날 아일랜드 대법관이 된 톰 레프토이와 사귀다 헤어졌다.
남자 쪽 집안의 반대로 청혼이 무산되었다고 한다.
27세에는 넓은 토지를 상속받을 남자의 청혼을 받은 다음 날, 결정을 번복했다. 파혼의 이유는 오스틴이 조카딸에게 보낸 편지에서 엿볼 수 있는데, 오스틴은 “사랑 없이 결혼하기보다는 무엇이든 다른 것을 선택 하고 견뎌야 한다.”고 썼다.
2. 오스틴의 유머 감각
오스틴은 계약을 맺고도 원고 출간을 계속 미루는 출판사에 특유의 유머 감각을 동원해 항의했 다고 한다. 출판사에 보낸 편지 마지막에 ‘Mrs. Ashton Dennis’라고 서명한 것이다. 이 서명의 첫자를 연결해 보면 ‘MAD’. 오스틴은 자신이 화가 나 있다는 메시 지를 재치 있게 전한 끝에 작품의 판권을 다시 사들여 다른 곳에서 출판했다고 한다.
3. 오스틴의 이름
오스틴은 비밀스러운 작가였다. 사생활을 잘 드러내지 않았고, 무엇보다 자신의 작품을 익명으로 발표했 다. 흥미로운 점은 오스틴의 이름을 숨기고 작품을 발표했지만, 다들 작가가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 다는 사실이다. 문체의 여신으로 불리는 오스틴 특유의 묘사와 풍자를 어떻게 몰라볼 수 있을까. 이름을 감추어도 작가의 스타일은 남는다.

오만과 편견 : 세계문학그림책
제인 오스틴 원작 · 윤솜 저자(글) · 신진호 그림/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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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과 오만은 이따금 같은 말로 쓰이지만 서로 달라.
오만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지만,
허영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해 주기 바라느냐의 문제니까.

빙리와 함께 무도회장에 나타난 그의 친구 다아시는 젊고 부유한 신사였다.
춤을 권하는 빙리에게 다아시는 점잖게 대꾸했다.
"여기 숙녀들은 괜찮은 편이지만, 내가 관심 가질 만큼 아름답지는 않아."
엘리자베스는 다아시를 오만하고 예의 없는 사람으로 판단하고는 솔직하고 유쾌한 응수로 그를 대했다.
다아시는 생기 있는 엘리자베스에게 매력을 느꼈다.

집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다아시 집안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던 장교 위컴은 매력적인 첫인상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그는 방탕하고 무절제한 사람이었다.
위컴은 엘리자베스에게 다아시가 위선적이고 탐욕스러운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위컴의 거짓말은 다아시를 향한 엘리자베스의 편견을 더욱 두텁게 쌓아 올렸다.

엘리자베스 앞으로 뜻밖의 편지가 도착했다.
다아시로부터 온 편지였다.
다아시는 엘리자베스를 통해 자신이 얼마나 오만하게 살았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터놓았다.
다아시는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인정하며, 위컴이 엘리자베스에게 들려준 사건의 진실과 빙리와 제인의 일에 대한 사과를 전했다.
다아시의 진심에 엘리자베스는 마음이 흔들렸다.

제인과 빙리는 다시 가까워졌다.
빙리는 제인에게 청혼하고, 제인은 행복해했다.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에 대해 품었던 자신의 편견이 부끄러웠다.
동시에 다아시에 대한 사랑을 깨달았다.
하지만 한 번 청혼을 거절당한 남자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엘리자베스는 당당하게 거절했다.
"저 자신의 뜻에 따라 저와 상관없는 사람의 의견에 휘둘리지 않겠습니다.
저는 제 행복을 위해 행동하겠습니다."

다아시의 말에 엘리자베스는 발랄하게 대꾸했다.
"확실한 건 당신은 저한테서 좋은 점을 하나도 못 찾았다는 거네요.
하지만 사랑에 빠지면 그런 건 문제 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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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애
소설가
1907년 황해도 송화 출생, 1944년 사망
일제강점기 하층민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대표적인 여성 작가이다.
주요 작품으로 <부자>, <채전>, <지하촌>, <축구전>, <원고료 이백 원> 등의 단편소설과 《어머니와 딸》, 《소금》, 《인간 문제》 등의 장편소설이 있다.

계용묵
소설가, 조선일보 출판부에서 근무
출판사 <수선사> 창립
본명은 하태용(河泰鏞)
1904년 평북 선천 출생, 1961년 사망
작품세계에 적극적이지 못한 방관자적인 자세가 그의 문학적 특징이자 한계라 할 수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대표작인 <백치 아다다>를 비롯해 <청춘도>, <신기루>, <유앵기>, <별을 헨다> 등의 단편소설과 한 권의 수필집 《상아탑(象牙塔)》이 있다.

김남천
소설가, 문학비평가
본명은 효식(孝植)
1911년 평남 성천 출생, 1953년 북한에서 숙청
일본 유학 시절인 1929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 동경지회에 가입하였고, 1931년 제1차 카프 검거 때 기소되어 2년간 투옥되기도 했으며, 1947년 월북하여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과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서기장을 역임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공장신문>, <소년행>, <남매>, <처를 때리고> 등의 단편소설과 《대하》, 《사랑의 수족관》 등의 장편소설이 있다.

김유정
소설가
1908년 서울 출생, 1937년 폐결핵으로 요절
주요 작품으로는 데뷔작인 <소낙비>를 비롯해 <노다지>, <봄봄>, <동백꽃>, <따라지>, <만무방> 등의 단편소설이 있다.

노자영
시인, 수필가
호는 춘성(春城)
1898년 황해도 장연 출생, 1940년 폐병으로 사망
1919년 8월 《매일신보》에 <월하의 몽>, 11월 <파몽>, <낙목>의 시가 연이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처녀의 화환》, 《내 혼이 불탈 때》, 《백공작》 등의 시집과 《청춘의 광야》, 《사랑의 불꽃 : 연애서간집》, 《나의 화환-문예미문서간집》 등의 문집, 그리고 《무한애의 금상》 등의 소설집 등이 있다.

노천명
한국의 대표 여류시인
1912년 황해도 장연군 출생, 1957년 재생불능성 뇌빈혈로 사망
본명은 노기선이나 어릴 때 홍역을 앓아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천명(天命)‘으로 개명하였다.
진명보통학교,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이화여자전문학교 재학 시절인 1932년 《신동아》에 <밤의 찬미>, <단상> 등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친일 시를 쓰는 등 그녀의 문학 인생에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그녀는 짧은 생애 동안 다수의 시를 남겼으며, 특히 대표 작품인 <사슴>은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널리 애송되고 있다.

방정환
아동문학가
호는 소파(小波)
1899년 서울 출생, 1931년 신장염으로 사망
1922년 5월 1일 ‘어린이날’을 제정하였고, 1923년 3월 한국 최초 순수 아동 잡지 《어린이》를 창간하였으며, 1928년 ‘세계아동예술전람회’를 개최하는 등 어린이를 위해 평생을 바쳤다.
주요 작품으로는 <귀먹은 집오리>, <동생을 찾아서>, <까치옷>, <만년 사쓰>, <양초 도깨비>, <사랑의 선물> 등이 있다.

심훈
영화인, 소설가, 독립운동가
본명은 심대섭
호는 해풍(海風)
1901년 서울 출생, 1936년 장티푸스로 사망
대표작으로 농촌 계몽소설 《상록수》를 꼽는다.
그 밖에 <독백>, <그날이 오면> 등의 시와 《영원의 미소》, 《직녀성》 등의 장편소설, 그리고 <황공의 최후> 등의 단편소설이 있다.

이병각
시인, 기자
1910년 경북 영양 출생, 1941년 결핵으로 사망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가 해체된 1935년 무렵부터 타계할 때까지 6년 동안 다수의 시, 수필, 소설, 평론 등을 남겼다.
주요 작품으로는 <연모>,  <소녀> 등의 시가 있다.

채만식
기자, 소설가, 극작가
호는 백릉(白菱), 채옹(采翁)
1902년 전북 옥구군 출생, 1950년 폐결핵으로 사망
역사적, 사회적인 상황을 신랄하게 비판한 풍자적인 작품을 주로 쓴 사실주의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레디메이드 인생>, <치숙>, <미스터 방> 등의 단편소설과 《탁류》, 《태평천하》 등의 장편소설이 있다.
그는 광복 이후에 자전적 소설인 <민족의 죄인>을 발표하여 자신의 친일 행적을 인정하고 반성하였으며,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채만식을 일제시대 친일 행위자로 결정하였다.

최서해
소설가
본명은 학송(鶴松)
호는 서해(曙海)
1901년 함북 성진 출생, 1932년에 32세의 나이에 요절
신경향파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처녀작인 <토혈>, 데뷔작인 <고국>을 비롯해 주요 작품으로는 <탈출기>, <박돌의 죽음>, <홍염> 등의 단편소설과 유일한 장편 소설인 《호외 시대》가 있으며, 어릴 적부터 가난했던 삶은 그의 문학에 근간을 이룬다.

허민
시인, 소설가
본명은 허종(許宗)
1914년 경상남도 사천 출생, 1943년 29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
1936년 12월 《매일신보》 공모에 단편소설 <구룡산(九龍山)>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율화촌(栗花村)>, <해수도(海水圖)>, <봄과 님이>, <아픈 다리> 등의 시가 있으며, <사장(射場)>, <어산금(魚山琴)>, <석이(石茸)> 등의 단편소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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