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역사 - 소리로 말하고 함께 어울리다
로버트 필립 지음, 이석호 옮김 / 소소의책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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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류에게 음악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다. 지금 우리가 듣는 음악의 형태는 아니더라도 음악이라는 것은 인류와 함께 했다. 음악이란 누군가의 노래이거나 악기로 듣기 좋은 소리를 내는 것이다. 가락과 화음, 화성, 리듬, 박자를 만든 결과가 음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여러 사람이 들어서 좋은 소리가 음악이고 엄마의 배 속에서 들었던 흥얼거리는 소리도 아기에겐 음악이 될 수 있다. 공동 행위로서 오랜 세월에 걸쳐 가장 널리 퍼진 음악의 사례는 종교 제례에서 찾을 수 있다. 여러 고대 문화권은 어디에서나 소리와 진동이 편재한다고 믿었고 진동이 에너지의 원천이 되어 궁극적으로 음악으로 나온다고 믿었다. 어떤 사회에서든 종교와 춤, 음악이 공동체 사회의 우선적 표현으로 가능한다. 현대 사회를 비롯한 많은 사회적 집단은 청중을 앞에 두고 연주하는 음악에, 개별 음악가의 자질에 강한 방점을 찍는다. 악기는 수천 년간 존재해왔고 우리 모두에게 목소리가 있는 마당에 악기는 우리가 지금처럼 다양한 범위의 소리를 낼 수 있게 했다.

흔히 음악이라고 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음악에 몸을 흔들어 춤을 춘다. 선사시대 유적에서 발견된 그림과 새긴 무늬에서 인류가 음악 활동을 했다는 증거가 있다. 다수가 춤추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고 사냥 장면과 함께 사람들이 손을 잡고 줄지어 춤을 추는 장면이 많다. 피리나 나팔, 현악기와 같은 악기들을 사용해 음악을 연주했다. 현악기는 아주 옛날부터 본격적인 음악 연주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음악은 종교 제의와 왕족의 의식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담당했다. 이집트에서는 연주 수준별로 남녀 직업 악사가 고루 포진되어 있었고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이들은 종교 사원 음악가들이었다. 사원 음악가들은 사원이 모시는 신을 받드는 일에 전념했고 일부는 사제나 여사제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았다. 15세기가 되면서 음악 역시 진화를 멈추지 않았고 음악가의 위상 또한 바뀌었다. 이탈리아는 작곡가를 각별히 대접하고 모시려 했고 교황 직속 합창단에 발탁되기도 한다. <음악의 역사>에서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 음악의 세계를 통해 음악이 우리의 생활을 어떻게 풍족하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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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 - 자기 한계를 넘어선 열정과 호기심
이종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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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예전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노트를 본 적이 있다. 화가라고 많이 알려져있는 다빈치지만 다빈치는 ‘팔방미인’이라 불릴정도로 다재다능한 천재였다. 발명에도 뛰어난 재능을 가진 다빈치의 노트엔 과학자의 노트 같기도 하고 발명가의 노트 같기도 했다. 아마 다빈치가 살았던 시대가 과학의 시대로 접어들기 시작하던 때로 예술의 세계도 변화가 오기 시작했고 예술과 과학을 접목시키게 된 것이다. 과학이 모든 분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게 된다. 지금까지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라는 작품은 가장 뛰어난 미술품 중에 하나이고 전 세계 관광객들이 모나리자를 보러 루브르 미술관에 긴 줄을 서고 있다. 그런 다빈치는 자기소개서에 ‘그림도 그릴 줄 안다’라고 썼다고 한다. 천재적인 화가가 자신 그림‘도’ 그릴 줄 안다라고 한 것은 다빈치는 화가보다는 과학자로 불리길 원했기 때문이란다. 화가로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었지만 왜 과학자가 되고 싶었을까? 현대인들은 다빈치의 그림을 흉내만 낼 수 있어도 뛰어난 화가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현대에 와서 다빈치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천재 가운데 한 명인 다빈치의 어릴 적 행동을 보면 전형적인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로 진단한다. 대부분 주의 산만, 과잉 행동, 충동 조절의 어려움을 나타내고 다빈치 역시 주위의 어른들을 붙잡고 납득할 만한 답을 얻을 때까지 계속 질문한다. 그럼에도 다빈치는 어릴 때부터 회화, 조각, 음악, 산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다빈치의 실용적인 태도와 날카로운 호기심, 독립정신은 당시 사람들이 믿고 있는 많은 이론에 회의를 품게 만들었다. 다빈치는 불합리한 이론을 접할 때마다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논리적인 사고와 실험에 근거해서 모순점을 일일이 지적했다. 다빈치는 19세기 말부터 더욱 주목을 받으면서 그의 과학적인 업적이 조명되기 시작했고 23권의 노트에는 다빈치가 얼마나 걸출한 천재인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왼손잡이라는 장애물을 없애기 위해 모든 글을 거꾸로 썼고 그 글을 거울에 비춰 보아야 똑바로 보인다. 이런 발상도 다빈치가 천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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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밤에 쓴 일기 난중야록 2 - 이순신 탄생 480주년 만에 공개되는 7년 전쟁의 비록
조강태 지음 / 스타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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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순신'은 대한민국이 좋아하는 위인에 언제나 꼽히는 인물이다. 그런 이순신은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등 우리는 현대에도 다양한 이순신을 만날 수 있다.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만 보더라도 이순신은 나라와 백성만을 위하는 인물로 그려지곤 한다. 그러나 이순신이 남긴 '난중일기'의 일기를 읽어보면 완성형, 육각형의 완벽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일기이기 때문에 더욱 인간적이고 거북선에서 왜구를 물리치는 강한 모습의 아닌 이순신을 만나게 된다. <이순신 밤에 쓴 일기 난중야록 2>은 소설의 주인공으로 재탄생한 이순신을 만날 수 있다. 임금 앞에서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 모습이 아니라 자신을 보필하는 관비인 임단을 생각하는 마음에서는 전쟁을 앞둔 장군의 모습과는 다르다. <이순신 밤에 쓴 일기 난중야록 2>에 등장하는 또 한 명의 주인공은 임단이다. 임단은 관아에 소속된 노비로 순신과 장기를 두기도 하고 그림에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 관비가 되었지만 임단을 절대로 노비로만 볼 수 없다. 그런 임단을 알아본 것도 순신이다.



이순신은 바다를 지키며 전쟁을 치르는 동안 임금은 궁을 두고 도망을 간다. 궁을 떠나면서 아들 세자에게 대리임금을 시킨다. 어찌보면 아들을 방패막이로 내세운 것이기도 하다. 그런 임금의 마음을 충신들이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대리임금의 임무를 세자는 너무 잘 수행했고, 신하들이 대리임금을 더 따르는 것 같다는 소문이 돈다. 그러자 지방에서 관직을 가진 동료들이 세자를 만나러 한양으로 갔다 돌아온다. 이런 장면을 보면 현대의 공무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줄서기에 임단은 뛰어난 통찰력을 보이고 이순신에게 조언도 한다. 임단은 조선시대 자신의 이름을 남길 수 없는 여성들과는 달리 난중야록의 기록으로 이름이 남아 있다. 임단의 엄청난 활약과 함께 이순신에게 큰 힘이 되었던 백성이었다. <이순신 밤에 쓴 일기 난중야록 2>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탄생된 소설이지만 임단과 이순신의 이야기는 실존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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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의 비밀, 그때 그 사람 명화의, 그때 그 사람
성수영 지음 / 한경arte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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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함께 읽는 화가의 인생과 예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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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의 비밀, 그때 그 사람 명화의, 그때 그 사람
성수영 지음 / 한경arte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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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림에 대해 잘 모르지만 몇몇 화가의 이름은 알고 있다. 앙리 마티스, 바실리 칸딘스키, 피에트 몬드리안, 가쓰시카 호쿠사이, 마리 로랑생, 수잔 발라동, 제임스 휘슬러, 호아킨 소로야, 페르디난트 호들러, 토머스 로런스, 에두아르 뷔야르 등 다른 책에서 본 적이 있는 화가들의 이름이다. 많은 화가들이 그림 만큼이나 인생 또한 각양각색으로 살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기도 했다. 그런 화가의 인생 이야기도 재밌다.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평생 라이벌이었던 앙리 마티스는 생전 고향에서 '멍청이, 바보'로 불리기도 했다. 마티스는 세계적인 거장으로 인정받았지만 고향에서는 인정받지 못한 실패자였다. 마티스가 죽고 난 뒤 고향엔 마티스 루트가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마을 사람들은 '마티스 하우스'를 만들어 마티스를 자랑스러워했고 작품에서 감동과 사랑을 느꼈다.


로마의 중견 화가의 첫째 딸로 태어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19세에 로마 법정에 서게 된다. 아버지의 공방에 놀러오던 친구인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고소했기 때문이다. 법정에 선 가해자는 아르테미시아가 먼저 유혹했다며 악랄한 전략을 펼친다. 피렌체로 이사간 아르테미시아는 유명 화가로 성공하고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았고 남성의 전유물인 예술가 협회에 최초의 여성 회원으로 가입한다. 아르테미시아는 삶에 대한 기록은 드라마 여자 주인공 같기도 하다.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아르테미시아는 귀족과 연인으로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예술가로 더욱 인기를 얻는다. 남편과 별거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중견 화가였던 아버지의 명성을 넘어선 화가가 된다. 아르테미시아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라는 작품을 보면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끔찍한 장면이 묘사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의 디테일을 아르테미시아가 자신을 성폭행한 가해자에게 복수하는 그림으로 생각되게 한다. <명화의 비밀, 그때 그 사람>은 화가의 작품과 그 화가가 살았던 시대의 역사 이야기까지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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