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젠 - 김남숙 소설
김남숙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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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숙 작가의 [아이젠]을 읽었다. 첫 소설집으로 ‘아이젠’, ‘파수’, ‘제수’, ‘캐치볼’, ‘자두’, ‘염소와 나’, ‘귀’, ‘이상한 소설’ 의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범상치 않은 스토리의 전개는 쉽사리 몰입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화자가 어떤 사람일지 쉽게 그려지지 않으며 또한 그 화자와 긴밀한 접촉을 맺고 있는 대상도 진짜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추상적인 모습을 묘사한 것인지 불분명하게 다가온다. 마치 고구마 한덩이를 삼킨 것처럼 대체 그래서 이 사람들은 뭐하는 사람들이고 어떻게 살아가는 것인지 도통 종잡을 수 없는 안개 속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런데 그렇게 제 각각의 다른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는 단편이 마치 하나의 뚜렷한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징검다리를 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안개 속의 인물처럼 희미하게 보이는 미지의 인물들이 사실은 내 주위에 있는 누군가의 평범한 얼굴이었지만, 그 별볼일 없는 얼굴들에 관심을 갖지 않는 평소의 습관대로 이게 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이게 뭐 얘기가 될 만한 것인가? 평가부터 내린 것이다. 그렇게 주목받지 못할 삶을 살아온 수많은 이들의 발자국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여겨져서는 결코 안 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저자의 단편들이 반복되어 나오는 병신같은 존재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귀를 기울이면 생각지도 못한 나는 감히 상상조차 못할 사연들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이 우주에 두 번 다시 없을 단 하나의 존재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그래서 그런지 작가의 말을 한 번 더 들여다 보게 된다. 

“진짜 재미없는 소설 같아서 짜증나는 삼촌. 의사의 말로는 심장이 터져서 죽었다는데,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심장이 무슨 풍선쯤 되는 줄 알았다. 그럼 왜 진즉에 내가 원했을 때 펑, 하고 터져 버리지 못했을까. 나는 그 이후로 이런 어쩔 수 없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려고 애썼다.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울고불고 무릎으로 걷는다 해도 바뀌지 않는 일들이 세상엔 많으니까. 그가 죽어도 괜찮다는 말을 일기에도 수없이 적었는데 막상 그가 진짜로 죽었을 때, 나는 수건으로 눈물을 너무 닦아서 얼굴이 헐어버릴 때까지 울었다. 그 이후 날이 따듯하고 평온한 주말이면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생겼다. 그런 이상한 불안감 때문에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하는 것에도 실패하고 이별하는 것에도 실패했다. 잘 되지 않았으니까.(3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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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외국어 - 모든 나라에는 철수와 영희가 있다 아무튼 시리즈 12
조지영 지음 / 위고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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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영 님의 [아무튼, 외국어]를 읽었다. 아무튼 시리즈 12번째 책이다. 저자는 외국어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 아닌 직장생활을 십년 넘게 하고 있다고 말하며 외국어 배우기는 하나의 취미이자 소일거리가 되어버렸다고 말한다. 불문과를 졸업했기에 당연히 프랑스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독일어, 스페인어, 일본어, 중국어를 공부하며 알게 된 에피소드와 그 나라 말로 출간된 책들이나 작가의 이야기를 소소히 전해준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 외국어에 대한 로망이 없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학창 시절에 의무적으로 6년 동안 영어로 꽤나 스트레스를 받아봤기에 모국어가 아닌 다른 나라 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저절로 부럽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가끔 3개국어 이상을 하는 능력자들을 볼때면 경외심마저 드는 현상도 보인다. 
언젠가 강의 도중에 인격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보에티우스의 정의를 칠판에 적고 읽은 적이 있었다. “Persona est individua substantia rationalis naturae.” 아마도 학생들은 처음 들어보는 라틴어 발음에 순간 ‘와’라는 탄성을 내뱉기에 갑자기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마치 외국어 능력자가 된 듯한 착각마저 ㅋㅋ 
막상 유학시절을 떠올려 보면 매일매일이 외국어와의 전장에 나가는 군인같은 마음이었다. 제대로 된 무기를 탑재하지 못했으니 항상 조바심이 나고 상대방의 말을 못 알아듣고 딴소리를 할까봐 신경이 곤두서있어 방에 들어오면 녹초가 되는 기분이었다. 자국민이 아닌 외국 사람이 한 번에 못 알아듣거나 이해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때는 그게 그렇게 자존심이 상하고 행여나 말싸움을 할 때 제대로 맞받아치지 못한 것을 뒤늦게 후회하며 울화통이 치밀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여기서도 하지 못했던 할아버지 신부님과의 단둘이 떠난 소풍같은 경험은 어쩌면 온전히 다 알아듣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했기에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서로의 의사소통이 완전히 가능하다가 하더라도 마음이 닫혀 있다면 그리고 심지어 마음을 숨기려 한다면 그것은 영원히 통하지 못할 또 다른 외국어를 말하고 있는 셈일테니까 말이다.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이, 모르는 말에 대한 쓸데없는 동경이 때때로 한국어로 가득 찬 지루한 일상의 마라톤을 버티게 해준다(73)는 저자의 말처럼, 외국어 공부는 내가 알지 못하는 틀렸다고 생각하는 누군가를 그저 나와 다른 사람으로 이해하는 기회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다. 

“여느 때처럼, 늦지 않게 부지런히 출근하고 등교하려는 평범하고 착한 사람들이 난데 없는 살의에 묵숨과 가족과 영혼과 일상을 잃게 되는 그 촘촘한 과정이 현미경처럼 그려진다. 하루키가 그때 그 시각, 지하철에 타고 있었던 사람들을 굳이 수소문해서, 어렵게 찾아가 힘든 이야기를 청하고 글을 쓴 이유라면, 세상의 모든 비극과 슬픔은 모두 하나 하나 개별적이고 구체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죽지 않고 살아남았으나 주변의 질시에 위축된 사람들, ‘언제까지 아픈 척을 할 셈이냐’라는 공공연한 적의들 앞에서 두 번 상처를 입는 사람들, ‘힘을 내서 살지 않고 그렇게 엄살이라니 나약해빠졌다’라는 비난들에 일터를 떠나간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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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 2020 소설 보다
김혜진.장류진.한정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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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봄 2020]을 읽었다. 문지에서 분기마다 출간하는 이번 모음집에는 김혜진 작가의 “3구역, 1구역”, 장류진 작가의 “펀펀 페스티벌”, 한정현 작가의 “오늘의 일기예보” 이렇게 3편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다. 김혜진 작가는 [9번의 일]에서 드러난 계층간의 갈등에 다시 한 번 주목한 모습이다. 마치 프랑스 파리가 구역으로 계층간의 이동과 구별을 보여주듯이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사는 곳도 점차 커다란 인공 다리를 만들어 내가 사는 곳과 너가 사는 곳을 구분지어 계급을 만들고 그 정당함을 뻔뻔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화자인 ‘나’는 ‘너’가 보여준 길 고양이를 돌보는 착한 마음과 기꺼이 자신이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중성화 수술을 시키고자 하는 너그러운 마음에 끌리다가도, 불현듯 ‘너’가 가진 부유함이나 7살이나 어린데도 불구하고 약삭빠른 모습으로 일을 처리하는 모습이 살얼음처럼 이어진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리고자 하는 욕구도 치밀어 오른다. 재개발을 시도하는 여러 지역에서 쉽사리 한 마음이 되지 못하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서로의 이기적인 모습에서 깊은 마음의 상처만 얻게되는 반복된 상황도 그저 세입자에 불과한 ‘나’는 온전히 투신하지 못한 채 ‘너’가 말하는데로 끌려가기만 할 뿐이다. 
장류진 작가는 역시나 이번 단편에서도 가독성 높은 글을 보여준다. 주인공 유지원은 세명은행에 신입사원모집에 응시하여 1, 2차 합격 그리고 마지막으로 3차 합숙 면접을 앞두고 있다. 합숙 면접에서는 2박 3일동안 간단한 강연과 교육을 듣고, 조를 짜서 마지막 날 밤 열리는 ‘펀펀 페스티벌’에서 면접관들에게 선보일 공연을 보이는 것이다. 지원은 과거 교회에서 밴드 보컬을 했던 경험을 살려 밴드 조에 지원을 하게 된다. 그곳에 가서 보니 대형 기획사 연습생이자 슈퍼스타 K에도 나왔었던, 지원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너무나도 자주봐서 알던 사람처럼 느껴졌던 이찬휘가 있었다. 지원은 이찬휘와 더블 보컬이 되어 공연을 준비하지만 자신이 선망해왔던 이찬휘의 이기적인 모습에 실망을 느낀다. 이찬휘가 키보드와 갈등을 겪을 때 중재하는 역할을 하지만, 되려 이찬휘는 지원의 노래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면박을 준다. 무대를 마치고 에프터 파티에서 그들에게 다가온 면접관에게 이찬휘는 입에 발린 말을 하며 점수를 땄고 결국 그는 최종 입사 했지만 지원은 떨어지고 만다. 

“그 순간 죽고 싶을 정도로 수치스러운 건 이찬휘가 내 어깨에 함부로 손을 댔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아직 그 손이 그렇게까지는 싫게 느껴지지 않는 건 나 자신이었다. 젠장, 어떡하지? 아직도 너무..... 잘 생겼어. 분명히 말하지만 이찬휘에게는 일말의 감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상형의 반대말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있다면 이찬휘는 이제 그것에 가까웠다. 이찬휘 같은 태도, 이찬휘 같은 표정, 이찬휘 같은 말투, 이찬휘 같은 취향, 한마디로 이찬휘 같은 바이브. 모두 내가 꺼리는 것들이었고 사람을 판단할 때 절대적으로 피하는 기준 같은 게 되었다. 나는 이제 이찬휘의 모든 것이 소름 끼치도록 싫었다. 다만 저 애의 얼굴과 몸, 그 껍데기만 빼고, 그건 아직까진, 아무리 봐도 싫어지지가 않았다. 그걸 싫어하지 못하는 나 자신만 자꾸 싫어질 뿐. 나는 누구에겐지 모르게 다급히 변명했다. 껍데기일 뿐이지만 이런 껍데기는 귀하다고. 좀처럼 쉽게 볼 수 없다고.... 그리고 다시 어딘지 모를 반대편을 향해 외쳤다. 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난 정말 쓰레기야. 난 육신의 노예야. 제발 누가 날 좀 말려.(8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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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방콕 - 방콕은 또 한 번 이겼고, 우리는 방콕에 간다 아무튼 시리즈 11
김병운 지음 / 제철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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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운 작가의 아무튼 시리즈 11번째로 [아무튼, 방콕]을 읽었다. 부제는 "방콕은 또 한 번 이겼고, 우리는 방콕에 간다" 김병운 작가의 신작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를 읽고 푹 빠져 내처 다른 작품에는 뭐가 있나 찾아보니 아무튼 시지가 있었다. 역시나 [아무튼, 방콕] 또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앞으로의 작품이 몹시 기대된다. 이야기의 시작은 저자가 생애 처음 미국 서부를 여행하려고 준비하다가 어떤 기대나 설레임 보다는 미국 여행에 대한 부담과 여러가지 조건들로 인해 망설임과 갈등에 휩싸이다 그만 미국 여행을 취소하는데서부터 시작된다. 스스로 말하길 여행을 함에 있어 첫째 비교 기준을 방콕에 두게 되니 방콕이 지닌 효율성과 여유와 즐거움을 견줄 곳을 찾기 어려운 것이다. 나는 아직 방콕을 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이번 책을 읽으며 조만간 방콕을 꼭 한 번 가봐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여행기를 볼때마다 이 나라는, 이 도시는 꼭 가야지라고 다짐을 하면서도 언제 그랬냐는듯이 뭘 또 그렇게 먼데까지라고 자기합리화를 하지만 말이다. 저자의 방콕 여행이 항상 즐겁고 만족스러웠던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애인과의 동반이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여전히 방콕을 가보지 않아서 저자가 설명하는 거리와 주요 장소의 언급이 눈에 확 들어오지는 않지만 그가 왜 그렇게 방콕을 사랑하게 되었는지는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팁을 얻게 되었는데, 방콕을 가게 된다면 호텔을 잘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여러 관광지를 쉴세 없이 돌돌아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맛있는 음식과 괜찮은 카페 그리고 새로운 거리를 산책하며 낯선 공기를 마시는 것에 열렬히 공감한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장소가 있다면 잠시 머물며 멍을 때리거나 들고간 책을 읽는 것, 꽤나 기대되는 코스이다. 


"하지만 잠시 후 캐리어를 꺼내주겠다며 차에서 내린 노인을 똑바로 마주하니, 내 생각이 너무 순진했구나 싶어서 면구스러워진다. 나무껍질 같은 주름으로 뒤덮인 얼굴과 무거운 것을 짊어진 듯한 구부정한 자세는 노인의 고단함이라는 게 고작 몇 푼으로 무마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것을 일러준다. 그러니까 이건 오랜 세월 성실하게 쌓아 올린 견고하고 육중한 철옹성 같은 피곤이다. 노인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내게 감사를 표하고, 나는 갑자기 내 여독이 좀 부끄럽고 겸연쩍어서 적당히 고개를 숙인다.(21)"

"내가 이렇게까지 겨울을 싫어하는 건 원체 추위에 취약한 체질을 타고 났기 때문이다. 사상의학의 체질 분류에 따르면 나는 '소음인'인데, 몸이 차고 신경이 예민하고 소화 장애가 있다는 소음인의 특징을 이보다 더 확실히 증명해 보일 수 있는 몸뚱어리가 있을까 싶은 그런 몸뚱어리가 바로 내 몸뚱어리다.(60)"

"나는 잠시 숨을 멈추고 애인의 얼굴을 천천히 눈에 담는다. 머리는 잔뜩 헝클어져 있고, 피부는 푸석푸석하고, 눈가에는 눈곱이, 입가에는 음식 양념이 묻어 있지만, 그러니까 이보다 더 꾀죄죄할 수가 없고 이보다 더 생활적일 수가 없지만, 바로 이 장면을 만나려고 내가 방콕에 온 게 아닐까 싶다. 나는 환한 빛이 마음 한쪽을 간질이는 것 같은 지금 이 순간을 아주 오래도록 기억하리라 예감하면서 다시 젓가락을 집어 든다.(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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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 오늘의 젊은 작가 26
김병운 지음 / 민음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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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운 작가의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를 읽었다.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26번째 작품이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을 보이는 이번 작품은 읽는 내내 엄청난 몰입감과 독특한 구성으로 소설 속에 풍덩 빠지게 만드는 강렬한 매력을 뿜뿜 보여준다. 1장과 2장의 구성이 다른데, 1장에서는 공상표이자 강은성의 주변 인물들이 중심으로 나온다. 강은성의 엄마와 누나, 그리고 엄마의 예전 애인까지. 강은성은 꽤나 유명한 감독에게 생애 첫 작품의 주인공으로 선택되어 탄탄대로의 배우가 된다. 배우로서의 가명을 공상표로 택하고 강은성의 엄마인 김미승은 결국 강은성의 누나 강은진과 함께 1인 기획사를 설립하여 아들에게 모든 것을 집중한다. 그런데 강은성은 점점 이상한 행동을 보이며 가출을 감행하고 급기야 엄마가 자신을 찾아내면 또 다른 곳으로 숨어드는 행동을 반복한다. 그러다 누나와의 저녁 식사에서 강은성은 자신이 게이라고 고백한다. 이미 어릴때부터 지켜봐왔던 강은성의 행동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눈치챈 은진은 애써 외면하려 한다. 1장에서 나온 강은성의 모습은 당장이라도 커밍아웃을 할 것 같은 기세였는데, 2장에서부터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강은성에게는 나름의 다른 이유가 있었다. 2장에는 강은성의 연인 김영우 감독이 나온다. 은성은 대학에서 우연히 선배였던 김영우 감독의 단편 영화에 출연하는 계기로 안면을 트게 된다. 이후 개인적인 자리에서 김영우 감독은 은성이 게이 아니냐고 묻는 물음에 정색을 하며 부정하지만 결국 김영우 감독의 구애와 같은 집요한 물음에 끌려가는 듯한 좋은 감정을 느끼며 자신은 게이라고 고백한다. 이후 그들은 연인이 되어 서로의 가장 아픈 상처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강은성이 왜 마마보이처럼 엄마의 말을 따르며 살아야만 하는지, 그리고 김영우는 가족들로부터 아웃팅 당해 의절하게 된 사연을 들려준다. 그리고 보통의 연인들처럼 사랑을 주고 받지만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 영화를 만들고 나서 큰 갈등이 생겨난다. 실제로 영화에서 영화감독과 주연배우의 사랑이 담긴 퀴어물인데, 영화를 다 찍고보니 강은성은 누가봐도 자신이 게이라는 것을 알게 될까 두려워 영화를 엎어달라고 부탁한다. 강은성을 사랑한 김영우는 만일 이 영화를 엎는다면 자신과는 끝이라고 말하지만 결국 강은성은 그의 연인과의 이별을 택한다. 시간이 흐른 후 타지에서 촬영중인 강은성은 김영우가 평소 그들만의 성지처럼 생각한 클럽에서 불이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친 기사를 접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그곳에 김영우가 있었다는 소식또한. 
2장에서는 그 방화사건으로 죽게된 이들을 기리며 만든 다큐멘터리 제작자와 강은성의 인터뷰 내용과 교차하며 김영우와 강은성의 만남이 마치 시퀀스의 여러 장면처럼 펼쳐진다. 그래서 그런지 인터뷰에 응한 강은성이 사랑하는 형과의 추억을 되새겨보는 영화의 한 장편이 눈앞에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이제는 단순히 게이나 레즈비언의 대한 선입견과 그 높은 벽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퀴어를 넘어서 LGBT 곧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젠더를 거론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 삶에 대한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고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서른 해 가까이 살면서 그가 분명히 알게 된 것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아무리 밝고 긍정적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제 몫의 어둠과 그들이 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꼭꼭 숨겨 두어서 자신조차도 그 모양과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마음의 우물을 누군가에게 열어 보이다는 건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었다.(169-170)”
“나라는 사람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는 문제요. ‘진짜 나’는 숨기고 억누른 채 ‘꾸며진 나’로만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했던 문제요. 제가 연기를 아주 얕봤던 거죠. 아무리 보잘것 없는 캐릭터라도 ‘진짜 나’를 보여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건데, 나를 전부 내어 주지 않고는 그 캐릭터에 다가갈 수 없는 건데 나는 ‘꾸며진 나’로도 충분히 괜찮을 거라고 자만하면서 요행을 바랐던 거죠. 
내 연기가 나와 겉돌면서 형편없이 무너져 내리는 걸 보니까 그제야 알겠더라고요. 연기는 애초에 ‘꾸며진 나’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아니, 어떻게 한다고 해도 그건 진짜아 아닐뿐더러 어느 누구의 마음에도 가닿지 못한다는 걸.(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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