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스윙 - 울고 싶은 마음이 들면 스윙을 떠올린다 아무튼 시리즈 31
김선영 지음 / 위고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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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님의 [아무튼, 스윙]을 읽었다. 아무튼 시리즈 31번째 책이다. 춤에 대해 문외한인 관계로 스윙이라니, 정말 아무튼 시리즈에 걸맞는 소재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현재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대학교 입학 후 우연한 계기로 스윙을 배우게 되었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후 다시 스윙에 빠져들게 된 경위를 맛깔나게 전해준다. 그녀가 10년간 스윙을 놓을 수 밖에 없었던 그 보편적이면서도 너무나도 개별적으로는 특별한 상황들은 스윙이라는 춤이 결코 특별한 사람들만 좋아할 수 있는 부류의 취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스윙을 즐기는 저자의 삶 뿐만 아니라, 런던과 미국에서까지 스윙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부러울 뿐이다. 

뭔가를 새롭게 배우는 것이 쉽지 않고, 아니 낯선 사람들과 함께 배운다는 것 자체를 그리 즐기지 않다보니 새로운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 지난한 과정들이 상상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되는 반복된 패턴으로 인해 삶의 반경이 너무나도 좁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춤이라면 그저 학창시절 캠프파이어를 하다가 포크 댄스 스텝을 밟아본 정도, 또는 한 잔 걸치고 노래방에서 정신줄을 살짝 놓았던 몇 번의 기억들을 제외하고는 섣불리 넘 볼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작년 가을에 나답지 않게 청년 축제에 직장인 밴드로 찬조 출연하자는 후배의 달콤한 속삭임에 덥썩 넘어갔다. 처음 그 제안을 받았을 때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막상 밴드 연습을 하면서부터 엄청난 심리적 부담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처음 밴드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러보니 이게 노래방에서 부르는 거랑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점점 주눅이 들어 때려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오랜만에 잡은 악기 연습에 매진하는 후배들을 보니 내가 그들의 노력을 망칠까 하는 두려움도 점점 커져갔다. 드디어 디데이 우리 밴드의 차례가 되었고,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마음을 부여잡고 그래도 열심히 연습한 덕분인지 큰 삑사리 없이 공연을 마무리했다. 생각보다 호응이 좋아서 ‘아 이맛에 가수들이 공연을 하는구나’라는 희열을 느끼기도 했지만, 나중에 공연영상을 들어보니 손발이 오그라들고 모니터 스피커의 소리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음정이 몹시 불안한게 느껴졌다. 뭐 아무튼 그때 첫 번째 곡은 조용한 노래로, 두 번째 곡은 조금 신나는 ‘딜레마’라는 생활성가를 불렀는데 역시나 청년들이 다 아는 노래인지라 후렴구에서는 멋진 떼창을 해주었다. 공연을 마치고 축제를 주관했던 후배가 내게 와서 이런 말을 전했다. 청년들이 하는 말이 이렇게 신나는 노래를 한 치의 미동도 없이 끝까지 부르는 사람은 처음봤다고 말이다. 그게 나의 컨셉이었다고 둘러댔지만 귓등으로 듣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도 나름 발박자는 맞췄는데... 쩝~~

“그때까지 내가 무언가를 그렇게 은밀하고 대범하게 결정한 적이 없었다. 공간 시간에 노래방에 갈지 빵집에 갈지, 학교 모임이 끝나고 밥을 먹을지 술을 먹을지, 친구를 만나 홍대에 갈지 압구정에 갈지를 정할 때 한 번도 단호하지 못했다. 나는 엠티에 가고 싶은데 나 말고 또 누가 갈까, 난 여길 가고 싶은데 친구는 다른 델 가고 싶으면 어쩌지, 내가 먼저 내 의견을 말해도 될까 주저하느라 별것도 아닌 일들이 늘 조심스러웠다.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면서 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런 태도가 배려나 양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줄만 알았지 그게 미덕이 되지는 않는다는 걸 그때는 몰랐기에 내가 원하지 않는 것들을 억지로 하면서 살았(고, 아직도 조금은 그렇)다.(24-25)”
“사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감정과 마음들이 활자의 힘을 빌려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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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조지아에 뭐가 있는데요?
권호영 지음 / 푸른향기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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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영 님의 [Georgia 대체 조지아에 뭐가 있는데요?]를 읽었다. 우리에겐 ‘그루지아’로 더 잘 알려진 나라로, 예전 소비에트연방 곧 소련해체 이후 독립한 나라 중의 하나이다. 지도를 찾아보니 정말 유럽도 아닌, 아시아도 아닌 경계상에 위치한 나라였다. 여행기를 읽으며 아마 교통이나 여러 숙박시설 등이 더욱 발전한다면 엄청난 여행객이 몰릴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친절히 소개한 비용은 유럽 어느나라보다 훨씬 저렴하여 효율적인 여행을 할 수 있겠구나란 예상과 더불어 생각보다 여러가지 면에서 불편한 점들은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기는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서부터 시작하여 카즈베기, 시그나기, 메스티아를 소개한다. 사실 다 처음 들어보는 지명이고 전혀 접해보지 못한 낯선 느낌이 많이 들었지만, 프롤로그에서 “스위스 사람들이 산을 감상하러 오고, 프랑스 사람들이 와인 마시러 오는 곳, 이탈리아 사람들이 음식을 맛보러 오고, 스페인 사람들이 춤을 보러 온다는 곳(5)”으로 소개될 만큼 충분히 매력적이 곳으로 그려진다. 

특히나 ‘시그나기’에 대한 내용에서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노래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 옛적 그림 그리는 일을 업으로 삼은 프랑스인이 조지아의 작은 마을 시그나기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조지아에 놀러온 이웃 나라 러시아 여인에게 한눈에 반하고 만다. 그녀의 마음을 얻고 싶었던 프랑스 화가는 자신의 재산을 탈탈 털어 그녀에게 바칠 장미꽃 백만 송이를 준비했는데... 과연 그녀는 그의 사랑을 받아 주었을까? 이루지 못한 그의 사랑을 담아낸 도시, 시그나기. ‘백만 송이 장미’라는 노래를 만든 러시아, 그리고 우리나라 역시 그 노래를 리메이크했으니... 이야기를 들려준 조지아 친구 바초와 러시아 친구 사샤와 다냐, 그리고 한국인인 나와 제이는 ‘우리들이 이렇게 만난 건 운명인 거야.’를 외쳤다.(137)”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곳에서 만들어진 전설이 노래가 되고 그 멜로디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추억이 되어버리는 인연의 고리를 앞으로도 모른척 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조지아는 남한보다 작은 나라임에도 기차를 타면 상당히 긴 시간을 탈 각오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주그디디 열차는 주간이든 야간이든 6시간에서 9시간은 타고 이동해야 하는 말로만 들어도 피로가 엄습해오는 조금은 열악한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이렇게 묘사한다. “‘기차’라는 탈것이 주는 희미한 낭만에 대하여 -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는설렘,. 내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몇 걸음. 다른 여행자들의 어깨와 배낭에 닿은 시선. 창밖의 풍경을 담겠다는 의지. 사소한 시간의 흐름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기차여행을 떠난다.(155)”

책을 덮으며 당장이라도 캐리어를 열고 짐을 꾸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현실은 항공사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예약해 놓은 비행을 취소하며 쓴 입맛을 다실 수 밖에 없는. 누구에게 하소연 할 수도 없는 그냥 그렇게 벌어진 일에 대하여 수긍하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게 때로 삶이라는 걸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도 말도 안되는 일을 겪으면서도 묵묵히 견뎌온 수많은 이들의 일상을 안다고만 말했을 뿐 진짜로는 모른척 하고 싶었던 날들이 왠지 모르게 조지아의 풍광을 사진으로나마 감상하며 떠올랐다. 어쩌면 그게 여행의 힘이고 직접 가보지 않아도 알아야만 하는 진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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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공장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79
이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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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작가의 [카페, 공장]을 읽었다. 표지 그림이 아기자기한 4명의 소녀들이 시골 마을에서 우연한 계기로 방치된 공장터에서 카페를 만들어가는 이야기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카페공화국이다. 지도앱을 켜고 주변 음식점을 찾아보려고 검색을 하면 음식점 만큼이나 카페가 뜬다. 이제는 식후 커피 한잔이 공식이 되어버린지 오래이고, 심지어 밥값보다 더 비싼 커피값을 지불하면서도 분위기와 맛이 좋은 곳에서 서슴없이 지갑을 열게 된다. 특히나 스타벅스의 인기는 엄청나서 요즘 서머 프리퀀시 적립을 하면 받을 수 있는 레디백을 얻기 위해 아침부터 개장하는 스타벅스를 순례한다는 얘기를 들을때에는 나도 이제라도 스티커를 모아볼까라는 호기심을 발동시킨다. 2007년까지만 해도 인천에는 스타벅스가 부평역 앞에 하나 밖에 없었다. 어느 주일날 저녁미사를 마치고 후배와 함께 차 한 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그 스벅 2층에서 만났다. 그때에도 빈자리가 별로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는데, 그 당시는 공부하거나 책을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수다를 떨거나 데이트를 하는 장소였다. 당시 즐겨 마시던 차이 티 라테를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니 남자 둘이 있는 자리는 우리 밖에 없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무슨 남자 둘이 커피를 마시러 왔지 라는 시선처럼 여겨져 후딱 마시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때는 커피 맛이 뭔지도 몰라서 매번 다른 걸 마시곤 했는데, 이듬해 커피의 본고장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조금씩 커피에 길들여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에스프레소’라고 주문을 해야 하는 커피는 이탈리아에서는 그냥 ‘카페’라고 주문한다. 그 카페를 처음 마시면 더럽게 쓴 맛에 인상이 구겨지고 심지어 심장이 벌렁거리기까지 한다. 아니 대체 이런걸 왜 매일 그것도 하루에 몇 번씩이나 마시는건가 의아해하던 나는 얼마 후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카푸치노와 카페를 즐기기 시작했다. 배가 고파서 꼬르네또(크로와상) 빵과 아침을 먹기 위해,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수없이 Bar(이탈리아에서는 카페를 보통 바라고 부른다)를 들락날락 거렸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신기하게도 다시 커피를 마시지 않게 되었다. 그냥 간혹 카페를 가게 되면 이런 저런 처음 보는 음료들을 테스트하거나 추억의 차이 티 라떼를 마시곤 했다. 그리고 본당이 아닌 사무실 근무를 시작하면서 드립 커피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사무실 직원들과 티타임을 하며 회의를 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그리고 당시 허영만 작가의 [커피 한 잔 할까요?] 만화책에 심취하면서 각종 드립 커피를 위해 기구들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더운물을 뜸뿍 머금은 커피 가루가 막 구워진 머핀처럼 둥그스름하게 부풀어 올랐다. 이른바 ‘커피빵’이었다. 커피빵은 물의 온도와 물 붓는 방식, 원두의 숙성도와 분쇄 입자 크기 등이 잘 맞아 떨어질 때 일어나는 현상으로, 커피빵이 생겨나면 제일 맛있는 커피가 내려진다는 속설이 마니아들 사이에서 상식으로 통했다. 커피빵과 커피의 맛은 별 상관이 없다는 과학적 반론도 있었지만 정이는 그저 원두가 동그랗게 부풀어 오르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흡족했다.(88)”
나도 아침마다 직원들을 위한 커피를 내리면서 원두를 전동 그라인더로 갈고 천천히 물을 내려 커피빵이 잘 만들어지는 날이면 뭔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보온병에 커피를 담아 사무실로 가서 함께 데워진 찻잔에 커피를 나누고 마시며 안부인사를 건네는 아침은 무엇인가 서로에게 활력을 주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정이, 영진, 민서, 나혜 이렇게 4명의 시골소녀가 도시에 대한 막연한 동경에서 시작된 카페, 공장은 어이없이 문을 닫게 되지만, 그로 인해 그들은 소중한 꿈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카페에 쓰는 돈이 아깝다 여겨질 때도 있지만, 그곳에서 누군가를 만나게 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이야기를 전하며 나누었던 무엇인가가 있기에, 그리고 그 카페에 머물며 정성스레 준비된 음료를 마시는 순간만큼은 ‘내가 이렇게 대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이구나’라는 사실 하나로 충분한 보상을 받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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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지나가다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3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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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 작가의 [여름을 지나가다]를 읽었다. 2015년에 발표된 작품이지만 민음사의 오늘의 작가 총서 33번째 작품으로 재판되었다. 작년에 발표된 [단순한 진심]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니 [여름을 지나가다]에서 보여준 보편적 삶의 필수적 요소들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낼 수 있는지 좀 더 면밀히 들여다 보고 있다. 주인공 민은 종우와의 결혼을 앞두고 모든 게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회계사의 일을 그만두고 얼떨결에 들어간 공인중개사에서 잠깐 동안 일을 돕는 알바를 하게 된다. 그렇게 집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누군가의 집으로 안내하며 민에게는 새로운 패턴이 생겼다. 집을 보여준다는 명목하게 알게 된 디지털 도어 비번과 복사된 열쇠를 통해 집을 내놓은 이의 삶을 30분간 살아내는 것이다. 민은 폐업된 가구점에 잠시 동안 머물며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 받고자 눈물을 흘리곤 했다. 민이 다녀간 후 가구점에는 수호가 들어온다. 수호는 가구점을 운영하던 아버지의 아들이다. 빚더미에 앉은 수호 아버지로 인해 수호까지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수호는 대학도 휴학 한 채 닫혀버린 미래의 암울함 속에서 우연히 쇼핑센터 옥상에서 운영하는 놀이동산의 피에로 알바를 하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오랜시간 묵묵히 버텨온 연주라는 실장을 만나게 되고 수호는 피시방에서 훔친 박선우의 신분증으로 신분을 갈음한다. 수호는 연주와 놀이동산에서 열심히 일하지만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잔혹한 현실을 회피하고자 아버지의 가구점을 방문한다. 민이 다녀간 사실을 알게 되고 수호는 그녀가 누구일까 궁금해 하던 차에 수호는 연주의 부탁으로 지갑을 가져다 주는 길에 현금인출기를 보게 되고 연주의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100만원을 인출하고 만다. 
민이 종우와 결혼을 앞두고 있을 때에 함께 일하던 C사는 구조조정을 위해 조작된 보고서를 만들게 되고 종우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민에게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고백한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해고된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민과 그럴 수 없다는 종우! 결국 민은 믿을만한 동료에게 그 사실을 말하게 되고 종우는 회사의 압박을 받으며 갖고 있는 모든 증거를 빼앗기고 만다. 종우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아마도 어쩌면 아니 분명 종우와 비슷한 상황을 목도한다면 그리고 며칠 후면 결혼이라는 큰 일을 앞두고 있고, 함께 살 집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면 그런 상황 속에서도 억울하게 해고된 이들을 위해서 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것을 알고도 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아니 종우의 선택은 진실을 말하게 된다면 잘못된 것을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단순한 진심을 믿었기 때문이었을까? 시궁창 속으로 자신의 삶이 내던져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미 내딛기로 한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던 것일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현실적은 이유로 단순한 진심에 온전히 자신을 맡기지 못한 채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일까? 여름을 지나가면 무엇인가 열정적으로 타오른 나의 지나간 시간 덕분에 맹맹한 열매꼬투리라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건만, 여름이 지나고 나서 남겨진 건 땀에 쩔어 흥근해진 옷들을 수없이 빨아댄 덕분에 너덜너덜해진 옷자락 뿐이라면 너무나 허망하리라. 그럼에도 민과 종우와 수호와 연주는 헤진 옷자락을 붙잡고 여름의 끝자락에서 어떻게 될지 모를 미래의 불안감을 한고도 단순한 진심이 보여준 길을 굳건히 걸어간다. 그래서 그들은 분명 열매를 수확한 것이리라. 

“생의 시작은 어머니의 뜨거운 숨결로 보호 받지만 그 끝에서는 철저하게 혼자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마치 하나의 불가해한 기호처럼 민의 여린 심장에 각인되어 갔다.(8)”
“가난은 갑자기 쌀이 떨어지거나 전기가 나가는 식의 상투적인 장면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작고 구체적으로, 저마다 다른 형태로, 그러나 비참함을 느끼게 할 만큼은 충분히 강렬하게 일상과 일상의 틈새로 날카롭게 스며드는 것이다.(39)”
“한 발만 잘못 디디면 계획에도 없던 다른 종류의 삶으로 빨려 들어가는 허약한 지점들이 우리의 인생에는 생각보다 많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51)”
“알 수 없는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 종우의 어머니가 고독하게, 노동하듯, 한평생 쌓아 온 견고한 기억의 구조물을 꽉 쥔 주먹으로 부수고 또 부수는 장면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154)”
“아이가 어른이 되고 어른은 노인이 되는 동안 결핍은 보완되고 상처는 치유되는 것, 혹은 삶이란 둥근 테두리 안에서 부드럽게 합쳐지고 공평하게 섞이는 것이므로 아픈 것도 없고 억울할 것도 없는 것, 그런 환상이 가능할까.(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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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 오늘의 젊은 작가 27
은모든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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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모든 작가의 [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를 읽었다. 오늘의 젊은작가 27번째 작품이다. 작가의 데뷔작인 [애주가의 결심]을 너무 재미있게 보았기에 이번 작품에 거는 기대가 컸다. 주인공 경진은 직장에 들어가지 않고 과외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엄마가 보기에는 맘에 들지 않고 안정된 직장을 다녔으면 하는데 경진은 오히려 그런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엄마집에 간지 2년이나 지나버렸다. 이야기는 경진이 과외하는 해미라는 소녀의 잠적으로부터 시작된다. 오랜만에 맞이한 3일간의 휴가를 좀비처럼 집에서 보내고 싶었지만, 결혼을 앞둔 절친 은주의 방문으로 전혀 다른 양상으로 휴가는 흘러간다. 은주는 남친과의 갈등으로 미리 예약해 둔 호텔을 대신 경진과 함께 가게 된다. 경진은 은주덕에 호텔에서 여유롭게 하룻밤을 보내는 도중 남산 자락을 산책하다 어떤 부녀와 마주치게 된다. 엄마, 아빠, 딸도 함께 한 서울 나들이였지만, 딸이 자유시간을 달라고 하며 의문의 남자를 개인적으로 만나고 오겠다고 아빠에게 털어놓게 되고 엄마는 절대 허락할 수 없다며 대판 싸우게 되어 이렇게 엄마와 따로 떨어지게 된 것이다. 경진의 부녀의 사연을 듣고 즉흥적으로 전주에 사는 엄마에게 내려갈 기차표를 예약하게 된다. [애주가의 결심]에서 주된 무대는 망원동의 깔쌈한 술집들이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전주 여행을 가고 싶게 만드는 여러 장소가 나온다. 은모든 작가의 작품은 이야기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핫플레이스를 적절히 매치하여 독자로 하여금 나도 그곳에 가서 뭔가를 먹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경진은 전주를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도 여러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자신에게 은밀한 자기만의 이야기를 해주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2년만에 만난 엄마는 경진이 예전에 알던 엄마가 아니었다. 위염을 앓으면서도 믹스커피만을 마시던 엄마가 핸드드립을 정성스럽게 내려주며 ‘예가체프 같은 산미는 어떠니?’라고 묻는 엄청난 변화를 보여준다. 엄마는 딸 경진과 함께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며 2년 전 경진에게 표독스러운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해준다. 엄마의 우울증은 별것 아닌 손가락 수술을 하러 입원했을 때 만났던 어떤 할머니의 급작스러운 변화 때문이었다. 경진은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엄마의 변화를 반가워하며 내년에는 언니와 함께 꼭 해외여행을 가자고 권한다. 서울로 돌아가는 날 경진은 고등학교 동창 웅이의 연락을 받게 되고, 그와 만나 전주 향교를 돌아 가맥을 하며 동창들의 근황을 전해듣는다. 특히나 경진의 첫사랑이었던 현수의 전혀 몰랐던 과거를 알게 되고 서울로 돌아와 목욕탕에 들러 새신사에게 맛사지를 받으며 그녀의 딸이 사고로 죽게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경진은 2박 3일 동안 엄마에게, 친구에게, 그리고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마음 속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마도 그녀의 삶이 한뼘쯤은 커지지 않았을까 싶다. 

“허망함을 깔고, 걱정을 베고, 서러움을 덮고 누운 것 같은 날들이 속절없이 이어졌다.(107)”
“향교의 유생들은 여러분처럼 공부하는 학생이라고 했지. 학생들이 벌레가 안 생기는 은행나무처럼 건전하게 자라서 바른 사람이 되라는 의미로 은행나무를 심은 거야. 은행나무의 꽃말인 장수, 장엄, 진혼, 정숙의 의미.(11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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