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싸이월드 - 내가 그의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일촌이 되었다 아무튼 시리즈 42
박선희 지음 / 제철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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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기자의 [아무튼, 싸이월드]를 읽었다. 부제는 “내가 그의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일촌이 되었다”이다. 아무튼 시리즈 42번째 책이다. 어학원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가 혹시 페이스북을 하느냐고 물었을 때(알고는 있었지만 딱히 가입할 이유를 찾지 못했던 당시의 나는), 나에겐 싸이월드가 있는데 그런 걸 할 필요가 있나 라는 말을 표현할 자신이 없어서 당장 가입하고 너와 친구가 되겠다는 말을 하고도 지금까지 페이스북은 그저 눈팅 대상일 뿐이다. 유학 시절에는 정말로 싸이월드를 열심히 했다. 쓸쓸함과 외로움을 보상받기라도 하듯이 고국의 청년들에게 로망의 대상이 될 법한 그림같은 정경들을 뒤로 한 사진과 더불어 몇몇은 지금봐도 잘 썼다는 생각이 드는 글과 대부분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갬성 가득한 글을 올리곤 했다. 이어지는 댓글 중에 대놓고 말하지는 않아도 이게 무슨 배부른 투정이냐고 반격을 가는 이들을 위해 다음에 올린 사진은 한 층 업그레이드 된 염장질을 위한 장소를 물색해봐야겠다는 전투력 상승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인스타그램은 PC에서 볼 수는 있지만 작성은 불가능하다. 철저히 스마트폰 OS에 최적화된 플랫폼이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을 즐기는 세대는 주저리 주저리 자신의 감정 상태를 늘어놓지 않는다. 그저 밈과 같이 짧은 사진과 영상을 이어붙이고 함께 한 누군가를 태그하여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와 나눈 흔적은 원한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한 개인의 역사의 기록이자 추억을 되새며 보는 시간을 갖도록 만든 싸이월드에 열광했던 세대에게는 무척이나 낯설고 기이한 형태이다. 아니 그렇게 금방 없어질 것을 뭐하러 기록하냐고 반문한다는 것 자체가 아재가 되었다는 것이겠지. 

사실 세대차이라는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에 새로울 것도 없고 그저 나 또한 나이를 먹는 유한한 육체를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되는데, 문제는 그 변화의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특히나 그 변화의 속도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변화라면 어느 정도 따라가 볼만도 할 텐데, 알 수 없는 가상의 세계 속에 범람하는 신조어의 생성과 소멸은 우리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구렁텅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젊고 팔팔했던 20대 초반에 나이 드신 분들을 보며 ‘대체 저분들은 무슨 낙으로 살까? 사는 게 과연 재미 있을까’란 막대먹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들의 어깨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너무 가혹해보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면 사는 게 재미없을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나 자신이 기성세대가 되어보니 오히려 어릴때는 알지 못했던 인생의 재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당연히 예전과도 같은 왕성한 호기심과 새로운 것을 찾고자 하는 열의는 줄어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나이든 사람들의 하루가 무의미하고 지루하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어린 학생들을 보면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기특함과 예쁨이 다가왔고, 어르신들을 보면 주름진 손과 얼굴에 담긴 그들의 역사가 궁금해지곤 했다. 앞으로 어떤 새로운 플랫폼이 나와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뛰어넘는 새로운 가상 세계를 만들어낼지 모르겠지만, 싸이월드든 페이스북이든 인스타그램이든 카카오스토리든 결국은 사람이 사람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갈망에서 비롯된 것이고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매 순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유례없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모두가 두려워하며 우왕좌왕할 때 더 고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 있었다.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을 때, 젊은 사람들은 앱을 다운받아서 실시간으로 재고를 확인해 주문을 넣었다. 핫딜이 뜰 때 알람을 설정해놓고 온라인에서 클릭 한두 번으로 결제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궂은 날씨에도 약국 앞에 길게 줄을 섰다. 재난 지원금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공인인증서로 신분을 확인한 후에 몇 가지만 써넣으면 되는 온라인 신청은 간단해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은행이나 주민센터로 몰려갔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그때 북새통을 이룬 곳으로 향했다. 누구나 다 하는 줄 알았던 인터넷 뱅킹, 온라인 접수가 누군에게는 높은 장벽이었다. 
회사에선 광화문 사옥 앞 유리 진열장에 그날 발행된 신문을 걸어둔다. 지나가던 어르신들이 뒷짐을 지고 서서 골똘히 보기도 하고, 광화문 지하보도 인근을 떠도는 노숙인들 중 일부가 읽기도 한다. 인터넷으로 뉴스가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시대에 누가 종이 신문을 보냐고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사옥 앞에 한 장씩 걸린 신문이 세상을 접하는 거의 유일한 통로가 되고, 창이 될 수도 있었다. (108-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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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과 가죽의 시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4
구병모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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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작가의 [바늘과 가죽의 시]를 읽었다. 몇년 전 보았던 '미스터 션샤인' 드라마의 김희성 역을 맡은 변요한 배우가 유진 초이에게도, 고애신에게도, 구동매에게도 같은 말을 반복하곤 했다. "나는 무용한 것들을 사랑하오. 봄, 꽃 달." 실용주의, 유용성이 우세함은 심지어 가상 세계에서 만들어낸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인물을 집중 조명하여 실의에 빠진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허세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런데 봄날의 바람에 떨어지는 꽃잎이라니, 달무리에 취해 쉼없이 걷는 밤산보라니 이런 것들로 우리 삶이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한다면 그건 드라마의 희성 역이 부잣집 도련님이라는 설정으로 더욱 더 현실감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그 배우가 내뱉는 무용한 것들에 대한 사랑은 왠지 모르게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들려왔고, 어쩌면 우리가 하는 모든 노력은 무용한 것들을 직접 마주하고 싶은 열정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동화의, 기담에서 유사한 이야기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요정처럼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던 얀과 미아는 어느 순간 인간의 몸을 입고 늙지도 죽지도 않는 영생이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어진 일은 다름 아닌 인간의 발을 감싸는 구두를 만드는 일이다. 수제화를 만드는 전문 용어들의 범람으로 간간히 검색을 통하느라 이야기의 진행이 더디기는 했지만, 얀이 이안의 이름으로 최후의 1인이 되어 명품 구두 가겪의 구두를 만드는 모습은 영생을 가진 이안의 신비로움에 현실감을 더해주었다. 


안이 미아를 다시 마주하기 전까지 안은 그저 전통을 고수하는 고집스러운 수제화를 만드는 장인이려니 생각되지만, 미아가 결혼을 앞둔 상태로 유진을 데리고 오자 안과 미아의 과거가 그려진다. 드라마 '도깨비'의 김신 처럼 저주인지 축복인지 주변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운명을 갖게 된 이안은 10년에서 15년간 사람들과의 인연을 맺다가 소리없이 사라지거나 이주를 통해 유한한 인간과의 이별을 맞게 된다. 이안이 공방에서 연 교실의 수강생으로 만난 시인의 어머니가 이안이 오래 전 사랑의 고백을 듣고도 떠나야 했던 여인임을 기억해내는 모습은 못내 가슴아프게 그려진다. 


"그녀 역시 그의 얼굴만 희미하게 남았을 뿐 이름은 알지 못하더라도, 이제는 안이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으니 괜찮다. 이 생에서 두 번을 만난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녀의 사라져가는 시간을, 닳아져가는 삶을 마지막까지 지켜보아주어야 한다는. 물을 머금어본 적 없이 방치되어 말라비틀어진 씨앗 같은 기억에, 이제라도 솜을 깔고 현재를 분무해주어야 한다는. 그 행위가 비록 무용하더라도, 씨앗을 간직해온 사람에게 보일 수 있는 유일한 예의인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망각과 기억 사이에 난 미로 같은 길들을 따라 육신의 출구를 향해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배웅하는 일이, 자신의 몫인 것만 같다.(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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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수록 산책 - 걷다 보면 모레쯤의 나는 괜찮을 테니까
도대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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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작가의 [그럴수록 산책]을 읽었다. 부제는 “걷다 보면 모레쯤의 나는 괜찮을 테니까”이다. 오래전 신문의 한 귀퉁이에서 연재하던 네 컷 만화처럼 도대체 작가 특유의 몽실몽실한 캐릭터가 주인공이 되어 숲길을 산책하며 얻게된 소소한 깨달음을 전해준다. 네 컷의 만화는 주인공이 걷고 마주하는 동물과 식물과 사람들을 함께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지만 그래도 뭔가 더 채워졌으면 하는 아쉬움을 저자의 솔직 담백한 글로 보충해준다.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것처럼 지나쳐왔을 세상이 미물들을 유심히 관찰하며 그들에게 특별한 존재로서의 권위를 부여한 이야기들은 산책이 주는 신비로운 치유의 힘을 증명해주는 것만 같다. 

걷기 하면 [걷는 사람 , 하정우]를 통해서 이 정도는 걸어줘야 어디 가서도 ‘나 좀 걷습니다’라고 말할 것 같은, 그런데 그렇게는 도저히 걸을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도대체 작가의 책을 통해 나 같은 사람도 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저도 좀 걷습니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Ambulare’는 ‘산책하다’는 뜻의 라틴어 동사이다. 라틴어를 공부할 때 무한반복을 통해서 쉽게 입에 붙지 않고 잘 외워지지 않던 수많은 동사들 중에서도 유독 ‘산책하다’라는 단어는 단번에 머릿속에 박혔다. 아마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학교 교정을 수없이 거닐면서 그나마 감금된 생활을 견딜 수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주 소소한 이야기까지 쉼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보장된 시간이 바로 산책시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혼자 걷는 시간이 많은 요즘은 그토록 지겹게만 느껴졌던 진입로의 반복된 길이 그리워지곤 한다. 별것 아닌 이야기에도 금방 웃을 수 있었고, 같은 일에 분개하고 슬퍼하고 아쉬워했던 지금 나의 상태를 감출 필요도 괜찮은 척할 필요도 없었던 산책길이 그리워지곤 한다. 

“그러고보니 그립다며 꼽은 곳들이 오히려 가장 힘들었던 시기들에 이었군요. 참 아이러니합니다. 그때의 저는 그 시간들이 이렇게 그리워질 줄 몰랐습니다. 몇 년 후의 저는 현재의 어떤 장소와 순간들을 그리워하게 될까요? 미리 알 수 있다면 더 자주 찾아가고, 더 많이 추억을 쌓아놓으련만 말이죠.(93)” 

“동네 어느 집에서 담장 높이 허수아비를 달아놓았습니다. 도심 주택가의 허수아비는 흔치 않아서 이런저런 상상을 했는데, ‘뭐지, 주술적 의미라도 있는걸까?’ 알고 보니 바로 옆에 감나무가 있더라고요. 허수아비는 무언가를 지키려고 세우는거란 사실을 깜빡했습니다. 사람의 허세도 허수아비 같은 게 아닐까요? 진자 내가 아닌 다른 모습을 허수아비처럼 내세우는 것이죠. 요란한 허수아비를 내세우는 사람일수록 자기를 지키지 못할까봐 두려운 건지도요.(102-103)”

“호기심이 생긴 저는 꿩에 대해서 찾아보았는데, ‘먹을 것을 찾아 산 아래로 내려왔다가도 오후 네 시가 되면 숲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꿩들 나름대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 어쩐지 귀엽기도 했고요. 일하다가 과로하는 건가 싶을 때면 ‘꿩도 오후 네 시면 쉬는데...’ 생각하며 꿩 핑계를 대고 쉬기도 했답니다. 인간이 오후 네 시면 일을 접고 쉬기는 힘든 노릇이지만, 그래도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는 꿩을 떠올려보세요! 먹을 것을 찾다가 ‘오후 네 시네? 돌아가자!’ 하고 총총걸음으로 숲으로 돌아가는 꿩 무리를 상상하다 보며 귀여운 마음과 함께 나도 좀 쉬자는 생각이 들 테니까요.(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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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즙 배달원 강정민
김현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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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작가의 [녹즙 배달원 강정민]을 읽었다. 제목만 보고 강정민이라는 젊은 청년이 녹즙 배달을 하며 겪는 삶의 노고와 성장을 그린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런데 막상 첫 시작은 주인공 정민이 얼마나 술을 사랑하는 지에 대한 이야기와 알콩중독자로 불릴 만큼 술을 마시게 된 연유에 대한 내용이 언급된다. 


"모든 사람에게는 결핍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갓난애 때부터 갖고 있다. 처음에 그것은 조그만 구멍이지만, 나이가 들고 세상을 알게 될수록 점차 커지고, 그렇게 되면 찬 바람이 몰아칠 때 너무 시리기 때문에 모두 그것을 막을 무언가를 바삐 구하러 다니게 된다.(11)"


정민은 알코올 중독자 혹은 알코올의존증을 치료받기 위해 외래진료를 다니고 있다. 담당의 선생님을 만나 상담을 하는 과정 속에 그녀가 왜 그렇게 술을 마시게 되었는지에 대한 사연이 하나 둘 씩 펼쳐진다. 웹툰 작가가 되고 싶었던 정민은 교수님의 추천으로 게임 스타트업 회사에 취직하게 되고 그곳에서 원치 않는 그림을 그리게 된다. 19금 자료를 가져다 주며 섹시한 표현을 강요당하는 시간은 정민이 영혼을 조금씩 갉아먹게 된다. 그러던 중 회식 중에 성추행을 당하며 홧김에 술병을 휘둘러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정민은 "술을 끊고 싶다, 그렇지만 두렵다. 술을 끊으면 도대체 무슨 낙으로 산단 말인가. 끊고 싶으면서도 끊고 싶지 않다. 끊고 싶다. 그렇지만 끊고 싶지 않다.(41)"는 양가감정을 느끼며 재취업을 준비하는 도중 녹즙 배달을 하게 된다. 


보통 여사님이라고 불리는 중년 쯤 되는 여성들의 일로 여겨진 건강음료 배달일에 젊은 아가씨가 뛰어들었으니 정민은 녹즙을 배달하는 도중 여기 저기서 '젊은 사람이 왜 이런 일을 하느냐?', '제대로 된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등등 주제넘은 소리를 듣게 된다. 또한 녹즙 배달이 단순히 신청한 사람에게 배달만 하는 간단한 일이 아니라, 새로운 고객을 유치해야 하고 경쟁사이 다른 녹즙 배달원 여사님과 유제품 음료 여사님의 눈치를 봐야 하는 고난이도의 사회생활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주인공이 30대 초반 여성이기에 겪어야만 했던 차별과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그려져 왕왕 얼굴이 화끈거렸다. 읽는 내내 나도 어디선가 이런 꼰대짓을 하지 않았을까? 겉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내 생각이 차별을 당연시해왔던 사고에 익숙한 것은 아닐까? 란 자성을 하게 된다. 


특히나 정민의 술친구 민주가 겪게 되는 데이트 폭력은 물리적 힘이 약할 수 밖에 없는 여성들이 겪는 최악의 일이 아닐까 싶어, 지금의 젊은이들이 남초니, 여초니, 한남이니, 여혐이니 하는 말들이 생겨난 단초가 된듯 하다. 30대 여성이 취업 면접에서 애인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어 없어도 곧 생기면 결혼도 하고 아이가 생길 것이 아니냐는 말을 하며 업무상의 단절을 우려하는 기색을 표하기에 그럴일은 없다고 결혼도 아이도 낳을 생각이 없다는 정민의 답에 지금같은 저출산 시대에 비혼이나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가르치려하는 면접관의 이중적인 잣대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실마리 조차 찾기 힘들어진다. 


그럼에도 정민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준희의 등장은 영원히 메워지지 않을 것 같은 구멍을 막을 수 있다는 희망을 선사한다. 그리고 준희의 헌신과 관심으로 정민은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 2리터 짜리 와인병을 과감하게 박살낼 수 있게 된다. 


<"사람들 다 비둘기 싫어하지 않아요? 먹이 준다고 막 뭐가 그럴 수도 있는데."

할머니는 한 번 과자를 뿌리며 느긋하게 대답했다. 

"다 살겠다고 그러는데, 얼마나 이뻐. 살겠다고 하는 것들은 다 이뻐...."

이후로도 나는 사는 게 팍팍하다고 생각이 들 때면 그때 과자를 뿌리던 할머니 모습을 생각했다. 살겠다는 것들은 다 이뻐. 물론 잘 살겠다고 악에 바친 사람들은 무섭지만 그저 살겠다는 것들은 이쁘다. 그리고 이제 함부로 비둘기가 징그럽다고 말하지 않는다. 누가 그럴 자격이 있단 말인가. 살겠다고 하는 것들끼리.(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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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화가들 - 살면서 한 번은 꼭 들어야 할 아주 특별한 미술 수업
정우철 지음 / 나무의철학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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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철 도슨트의 [내가 사랑한 화가들]을 읽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불꽃같은 삶을 살다가 명화들을 남기고 떠난 화가들의 삶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마르크 샤갈, 앙리 마티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알폰스 무하, 프리다 칼로, 구스타프 클림트, 툴루즈 로트레크, 케테 콜비츠, 폴 고갱, 베르나르 뷔페, 에곤 실레 등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그리고 그림만 봐도 누구의 작품인지 알려진 화가들이 어떻게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와 그들의 사랑 이야기와 생의 마지막 모습도 그려진다. 생전에 유명세를 얻고 그림이 잘 팔려 생활고를 겪지 않은 화가도 있지만 대부분 그들이 살아 있을 때에는 시대를 앞서간 화풍으로 인해 비평가들의 신랄한 비판을 받고 비참한 생활을 한 작가들도 많았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현재의 대중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낯선 예술 작품을 선보이는 창조적인 이들은 대부분 외면당하기 일쑤이다. 사람들은 음악과 미술과 책 등에서 기존의 틀을 벗어난 시도를 선보이는 새로움을 원하지만 막상 그렇게 몹시도 낯설고 익숙하지 않고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것과 마주하게 되면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지금 내가 느끼는 불편함은 무조건 나쁜 것이라 간주하여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활용하며 난도질을 서슴치 않곤 한다. 그런데 시간이 점점 흐르게 되면 그 낯선 것들이 주는 신선함에 사람들은 매료되어 열광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만약 이 화가들이 시대의 요청에 부합하는 그림만 그리며 편안한 일상을 살아가고자 했다면 아마도 지금 어디에서도 그의 이름을 들어보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이들이 생전에 그림을 그리며 불과 100년 후에 자신의 그림이 이렇게 엄청난 가격으로 매매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 그런데 한 가지 불만스러운 것은 오래된 고전들을 작품에 대한 저작권도 자유로워져 다양한 출판사와 다른 번역가의 출판도 가능하고 원하기만 한다며 불후의 명작들을 누구나 손쉽게 집에서 읽을 수 있는 데 반해, 미술 작품들은 미술관처럼 공공 전시가 되는 작품들을 제외한 개인 소장한 작품들은 어쩌면 그 소장가가 죽을 때까지 세상에 공개되지 않기도 한다. 분명 명화를 그린 화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져 화가가 전하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을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책으로 프린팅된 흐릿한 화질로나마 명화를 접할 수 있고 화가들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 아닌가 싶다. 특히나 모딜라이니가 열네 살의 연하 잔과 사랑에 빠진 이야기는 감동을 더해 준다. 모딜리아니가 잔의 초상을 그릴 때에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한다.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그때 당신의 눈동자를 그리겠다고(78)”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파리로 돌아온 모딜리아니가 그린 <잔 에뷔테른의 초상>에는 예전의 작품들과는 달리 눈동자가 선명하다. 이 작품을 보고 잔은 너무나 행복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83)” 

또한 동프로이센에서 태어난 판화가 케테 콜비츠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 유화가 아닌 판화를 선택하여 대량 생산을 하고 대중들이 미술을 쉽게 접하도록 한다. 콜비츠는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판화로 만들고 전쟁의 비극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투사가 된다. 콜비치의 아들 그리고 손자가 전쟁에 참여하여 죽게 되는 비참한 일을 겪게 되고 나치에 맞서 평생을 투쟁하게 된다. 
“만약 그냐가 살아 있어서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과 그 밖의 다양한 사회문제를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한다면, 우리는 그녀의 작품 앞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의지를 다질 수 있을까요?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감상이 존재하겠지만 ‘자신의 삶과 재능으로 그저 개인의 만족만 추구해도 괜찮은 걸까?’ 라는 한 가지 질문만큼은 모두가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질문에 이미 힌트를 주었던 콜비치의 말로 모범 답안을 대신해볼까 합니다. ‘나는 이 시대에 보호받을 수 없는 사람들, 정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한 가닥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싶다.’(209-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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