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호로 역 광시곡 마호로 역 시리즈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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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시온의 [마호로 역 광시곡]을 읽었다. 마호로 시리즈 세 번째이자 마지막 이야기이다. 일본에서는 2006년, 2009년, 2013년 이렇게 몇 년의 간격을 두고 출간되었기에 어쩌면 다다와 교텐의 사연이 가물가물 해질 무렵 다시금 마호로 역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말 번역본은 시리즈 세 권이 한 번에 출판되었기에 다다와 교텐 이외의 등장인물도 어렵지 않게 떠올리며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시리즈는 여러 개의 에피소드가 나열된 구조를 이루고 있다면 이번 마지막 시리즈는 그동안의 등장 인물들의 사연을 한 번에 아우르며 기나긴 이야기가 펼쳐진다.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함에도 마지막 권은 전 편들보다 더 큰 감동을 선사해주었다. 특히나 다다와 교텐의 투닥거리면서도 몇 년간 쌓아온 정은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며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준다. 


다다 심부름집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마호로 역 인근에 사는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의 의뢰를 받아 근근히 연명해가고 있다. 쿄텐은 어느덧 마호로 주민들에게 다다 심부름집의 조수로 알려졌지만 여전히 제멋대로 일터를 벗어나거나 한가롭게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해서 다다의 속을 애태운다. 그렇게 일상을 이어가던 차에 쿄텐이 정자만 기증해서 태어난 딸 하루의 엄마 나기코는 다다에게 아이를 한 달 반 동안만 맡아줄 것을 부탁한다. 이미 전편에서 쿄텐이 어린 아이에게 이상반응을 보이는 것을 알게 된 다다는 그것만큼은 할 수 없다고 완강히 거절하지만 나기코 또한 물러서지 않고 하루를 꼭 맡아달라고 한다. 동성 커플인 나기코는 미국으로 한 달 반 동안 연수를 다녀올 예정이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삶을 위해서 하루와의 이별을 감내하고자 한다. 사실 이 부분은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 설정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단지 나기코가 자신의 경력을 쌓기 위한 선택이라기 보다는 비록 부부관계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생물학적 아버지에 해당되는 쿄텐이 딸 하루와 친분을 쌓기를 바라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우여곡절 끝에 하루를 맡게 된 다다는 하루를 보면서 예전에 떠나보낸 자신의 아들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혹시나 이번에도 하루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자신은 더 이상 살아 있을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앞서지만 하루와 보내는 일상은 하루가 오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소소한 행복감이 밀려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쿄텐 또한 다다가 하루를 맡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겁하며 루루와 하이시의 집으로 피신하지만 이내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고 하루가 자신의 생물학적 딸임을 알게 된다. 그래도 쿄텐은 다다처럼 하루를 살뜰히 보살피지 못한다. 쿄텐이 하루와의 친분을 쌓아가고 다다는 전편에 등장했던 미망인 아사코와의 관계도 조금씩 진전을 보인다. 다다와 쿄텐의 일상의 오선지에  하루가 변화를 이끌어내는 단조의 역할을 했다면, HHFA라는 이름의 ‘가정과 건강식품협회’의 등장은 다다와 쿄텐의 삶을 광시곡의 정점으로 치닫게 만든다. 무농약 채소의 중요성을 홍보하며 외식이 가능한 식당의 영업도 방해하는 무리는 어이없게도 밤에 몰래 농약을 뿌리며 채소를 길러왔다. 이들 단체의 본거지는 사이비 종교 단체에서 비롯되었으며 여기에 속한 부모들은 때로는 자녀들이 강제로 밭일을 하게 만드는 학대를 일삼곤 한다. 어이없게도 오카야마파의 보스의 손녀가 학교에서 그 채소를 사용한 음식을 먹는다는 사실 때문에 야쿠자는 뒷골목 양아치 호시에게 HHFA가 홍보를 그만두도록 만들라는 지시를 내린다. 호시는 다다에게 거부하지 못할 의뢰를 맡기게 되고 HHFA와의 갈등은 로터리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절정에 달하게 된다. 자신들의 홍보 활동이 저지되자 흥분한 단체원 중의 하나가 낫을 휘둘러 하루가 위험에 처하게 되자 쿄텐은 2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똑같은 손가락이 잘리는 위험천만한 일을 당하면서도 하루를 지켜낸다. 그리고 쿄텐이 아이를 싫어했던 이유가 바로 사이비 종교 단체와 관련된 부모의 학대에서 비롯되었고 그로 인해 고등학교 내내 말 없는 학생으로 지냈던 사연이 밝혀진다. 


쿄텐이 다다와 아사코의 관계가 발전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병원에서 도망쳐 사라진 몇 개월의 시간은 다다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주었다. 미국에서 돌아온 엄마 나기코와 집으로 돌아간 하루의 빈자리와 더불어 쿄텐의 부재는 다다에게 아들을 잃은 죄책감에서 벗어나 행복을 누릴 수 있음을 환기시킨다. 어이 없게도 다다와 연인이 될지도 모를 아사코의 집에서 몰래 머물던 쿄텐은 새해를 맞이하기 직전에 다다의 사무실로 돌아오게 되고 다다는 그가 쿄텐과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서 구원받았음을 깨닫게 된다. 다다와 아사코의 관계가 어느 정도 진전되었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다다와 쿄텐이 산타할아버지와 루돌프 대행 의뢰를 받아 완수하는 마지막 장면은 우리 삶에서 행복이란 정말 별 개 아니라는 만고의 진리를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소설이다. 


“이 세상이 광기로 넘칠 리가 없다. 사랑과 신뢰가 어째선지 때로 사람을 속이기도 하고 타인을 상처 입히는 흉기가 될 때도 있는, 잔혹하고 웃긴 사실이 존재할 뿐이다. 그 사실만으로 사랑과 신뢰 전부를 부정하고, 세상을 조소하고 자기 속에 있는 선과 미를 추구하는 마음을 봉인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박힌 흉기를 빼내어 한 번 더 자신의 상처를 도려내는 거나 마찬가지다.(257-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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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강의 이름 모를 여인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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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뮈소의 [센 강의 이름 모를 여인]을 읽었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기욤 뮈소의 신작이 출간되었는데, 2021년 말에는 신작 소식이 없어서 궁금하던 차에 새해를 시작하며 새로운 소설을 마주하게 되었다. 원작도 작년에 출판되었는데 1년도 안 되어 번역본인 우리말로 출판되는 걸 보니 우리 나라에서 기욤 뮈소의 인기는 꽤 대단하고 한류 덕분인지 종종 우리 나라가 언급되곤 하는데 이번 작품에도 제주 귤차가 나와서 반가웠다. 출시 예고 내용에 항공기 사고로 사망한 여인이 센 강에서 알몸으로 발견되었다는 내용을 보고 이번에는 어떤 판타지 요소가 들어가 있을까 기대가 되었다. [종이 여자]를 계기로 기욤 뮈소의 전작을 거의 다 본 것 같은데 그의 소설에는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판타지가 자주 삽입되어 소재로 사용되곤 했다. 그런데 이번 소설에서는 센 강에서 발견된 알몸의 여인은 사망한 여인이 되살아나거나 도플 갱어도 아닌 너무나도 사실적인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특이했다. 


어떤 연유인지 알 수 없지만 이번 작품은 강제 휴직 위기에 처한 록산 몽크레스티앙 경감과 그의 상사인 소르비에 대장과의 대화로 시작된다. 록산은 상궤를 벗어나는 사건들을 담당하는 부서로 좌천당해 그곳에서 전임자였던 마르크 바타유라는 강력계 형사가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음을 알게 된다. 록산이 새로 부임한 곳인 기이한 사건들을 담당하는 부서이기에 센 강에서 알몸으로 발견된 여인이라는 소재는 앞뒤가 맞아 떨어지는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부서가 더 이상 제대로 된 역할을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센 강에서 발견된 여인은 경찰 간호실에서 빈틈으로 노리고 도망치게 된다. 그리고 그 여인이 차고 있던 레조낭스 시계는 엄청난 고가이며 원래 주인이 마르크 바타유 형사의 아들인 라파엘 바타유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 사건에 흥미를 갖게 된 록산은 다시 재기할 수 있는 기회라 여기며 비공식적인 수사를 이어간다. 센 강에서 발견된 여인의 머리카락과 소변으로 DNA 검사를 의뢰하게 되고 놀랍게도 그 여인은 이미 1년 전에 항공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피아니스트 밀레나 베르그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죽은 사람이 되살아 난 것일까? 아니면 시신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일까? 록산은 수사를 통해 밀레나 베르그만이 사망한 것이 확실하며 그녀와 라파엘이 연인 관계였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렇다면 라파엘이 숨기고 있는 비밀은 무엇일까? 

이번 작품은 특이하게도 추리의 묘미를 더하기 위해서인지 등장 인물의 사진을 넣었다. 사건과 관련된 인물의 신문 기사에 나온 밀레나의 사진은 19세기 프랑스에서 죽은 여인의 얼굴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데스 마스크를 떠서 집에 걸어두었다고 전해지는 이야기를 더욱 그럴듯하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록산의 추리와 수사가 지속되는 동안 마르크의 딸이자 라파엘의 여동생인 베라가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은 한 사람의 잘못과 실수가 나비효과가 되어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켰는지 보여주었다. 라파엘은 평소와는 다르게 일찍 집에 돌아와 엄마가 바람피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고, 가족을 지키기 위한 생각으로 상대방인 치과의사 남자에게 협박문이 담긴 편지를 보낸다. 누군가 자신들의 불륜을 알게되었다는 사실에 혼비백산한 라파엘의 엄마는 어린 딸 베라는 차에 태우고 유치원에 내려주지 않은 채 뜨거운 태양아래에 방치하여 죽게 만든다. 이후 마르크와 라파엘이 어떻게 삶을 견뎌냈을까? 라파엘은 아버지 마르크가 폐암에 걸리고도 항암 치료를 받지 않으려 하자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 여인은 아버지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인 밀레나라는 거짓말을 덧붙인다. 아버지가 치료를 받고 삶의 의지가 생겨나자 라파엘은 연극 배우를 통해 밀레나의 대역 연기를 부탁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밀레나의 동성 애인이었던 연주가는 라파엘의 거짓말 때문에 자동차로 카페를 들이받아 무고한 희생자가 나오게 된다. 

서서히 범인의 윤곽이 드러나게 되고 록산은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이들의 악한 의도가 마지막 희생 제물로 라파엘을 선택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야기는 열린 결말로 맺어졌기에 혹시 다음 작품이 아직 생사가 결정되지 않은 라파엘과 마르크와 갸랑스 드 카라덱의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은 아닐까 기대된다. 총을 맞기 전까지 이미 세상을 떠난 여동생 베라와 대화하는 라파엘의 심리적인 불안 상태는 독자들을 마음 아프게 하며, 나의 작은 실수와 잘못들이 누군가에게 큰 상처와 아픔을 준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해 준다. 후편이 나온다면 라파엘이 베라를 잃은 아픔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본다. 

“아버지가 가끔 슬픔의 심연 속으로 깊숙이 침잠하는 게 오히려 삶을 지키는 안전판이 되어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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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호로 역 번지 없는 땅 마호로 역 시리즈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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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시온의 [마호로 역 번지 없는 땅]을 읽었다. 마호로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이다. 일본에서 출판된 년도를 살펴보니 2009년이라고 나오는데, 첫 번째 이야기 이후 3년이 지난 후에야 두 번째 이야기가 펼쳐지고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특히 마지막 부분에 교텐의 갑작스러운 광기어린 행동이 궁금증을 자아내며 그의 과거에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란 생각에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그 모든 비밀과 사연이 드러날 것인지 기대가 된다. 주인공이 다다 게이스케와 쿄텐 하루히코인 것은 변함없지만 새로운 에피소드가 펼쳐지면서 첫 번째 시리즈에 나왔던 인물들이 다시 등장하며 마치 점선으로 그들의 인생이 얽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 아직 야쿠자라고는 할 수 없는 사탕 장수 호시는 이번 편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난폭한 장면을 그려냈다. 마호로 시리즈는 다다 심부름집이라는 평범하고 소시민적인 삶을 살아가는 아이를 잃은 경험이 있는 평범한 남자의 삶을 그려내는 것 같이 시작하지만, 막상 그 안에서 호시와 같은 인물을 맞닥뜨리게 되면 피가 낭자한 잔인한 일이 발생되는 하드보일드함을 갑작스럽게 그려내는 특징이 있다. 


아무튼 전편에서는 호시는 그냥 못돼 처먹은 양아치에 불과한지 알았는데, 엄마와 만나서 조금씩 드러나는 그의 모습은 좋은 대학을 들어간 모범생이라는 양면의 모습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 권에서 호시가 약 장수의 길에 들어선 이유가 드러날까? 또한 유라 라는 꼬맹이도 또 다시 등장하는데 쿄텐과의 어이없는 하루가 호시의 난폭함과는 정반대의 명랑함을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이번 편에서 꽤나 큰 비중으로 나오는 소네다 할머니는 치매 증세가 완화되어 산책을 나간 길에 다다와 쿄텐에게 자신의 러브스토리를 들려준다. 1945년이 우리나라에 광복을 가져왔다면 일본은 패전국이 되어 한동안 전후의 어려운 상황이 소네다 할머니의 이야기에 담겨 있었다. 소네다 할머니의 삼각관계에 해당되는 남자는 야쿠자로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정혼한 남자가 패전 후에도 돌아오지 않자 야쿠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와의 밀회를 즐기던 와중에 정혼한 남자가 돌아와 곤란한 상황들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일본 소설을 읽을 때마다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나라의 조폭에 해당되는 야쿠자의 존재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때로는 공권력을 가진 경찰도 그들을 어쩌지 못한다는 정황이다. 이탈리아에서 마피아를 인정하듯이 일본에서도 야쿠자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치안이 유지되지 않는 것일까? 어찌되었든 야쿠자인 소네다 할머니의 남자를 로맨틱하게 그려내는 저자의 의도는 조금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두 번째 시리즈의 막바지에 이르러 다다에게 새로운 사랑이 싹트는 만남이 생긴다. 죽은 자의 집을 정리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방문한 빌라는 살던 사람의 개인적 일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기이한 수집품만이 가득했다. 집 정리를 부탁한 사람과 죽은 사람은 어떤 관계일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고 의뢰자가 연락이 되지 않아 쿄텐은 호시에게 정체를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하고 집 정리를 의뢰한 사람은 마호로의 거대한 식당 체인업 주인임을 알게 된다. 가시와기 아사코는 아버지뻘의 나이의 남자와 결혼하며 지내다 남편이 죽기 2년 전에 갑자기 집을 나가서 지내고 싶다고 하기에 바람이라도 난 줄 알았지만 남편은 갑작스럽게 아무런 말도 없이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다. 다다와 쿄텐과 집정리를 하던 아사코는 그제서야 남편의 죽음을 인식하며 울음을 터트리고 슬플을 토로하게 된다. 다다는 아사코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며 그 안에서 다시금 사랑이 생겨나는 것은 아닐까 의아해 하고 쿄텐의 다다의 감정을 눈치채고 다다와 아사코를 연결해주려고 그녀가 운영하는 식당을 애써 방문한다. 세 번째 시리즈에서는 다다의 사랑이 이루어질까? 


"<남자 둘과 여자 하나의 삼각관계는 남자 하나와 여자 둘의 삼각관계에 비해 알 만하잖아. 전자가 결론을 빨리 내리기 쉽지. 어느 남자를 고르는 게 득인지 여자는 바로 판단해서 결정하고, 남자 둘은 서로 눈짓하다 적당한 시점에서 한쪽이 발을 빼지. 내 여자를 그 녀석에게 양보했다고 생각하면, 발을 때도 남자의 자존심은 상처 입지 않으니까.> 

쿄텐은 끄덕거렸다. 정말로 알아들었나, 이 인간, 하고 다다는 생각했다. 

<그런데 후자는 어때, 질질 끄는 일이 많지. 남자는 혼자 정하지 못하고 여자는 절대 결탁하지 않기 때문이야. 남자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할 때까지, 상대 여자가 항복하고 물러날 때까지, 조용히 치열하게 싸우지.>(124)"


"시시한 고집 싸움으로 소중한 것을 간과하고 있다. 그러나 어쩌면 나도 비슷할지 모른다. 오카 부인은 생각했다. 이미 남편과는 너무나도 오랜 세월 함께 시간을 보낸 탓에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부부라는 사실조차도 무뎌졌다. 하지마 마음속에 있는 등불 같은 것은 꺼지지 않는다. 남녀나 부부나 가족이란 말을 넘어서 그저 뭔지 모르게 소중하다는 느낌. 저온이지만 끈질기게 지속되는, 조용한 기도와 비슷한 경지. 

포기와 타성과 사명감과 아주 약간의 따스함. 소소하게 매일 일하고 자기 역할을 다할 때의 심정과 같은 느낌으로 가늘게 맺어져 있다. 그런 관계를 한마디로 표현할 말은 없다. 없어서 당혹스럽다. '아내와 남편'으로 끝내고 안온하게 지내는 남편에게 짜증 난다. 그러나 같이 있는 것을 그만두고 싶지는 않다. 

그 이유를 사랑이라고 한다면 아주 간단하지만.(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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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 칸타빌레 - '가다' 없는 청년의 '간지' 폭발 노가다 판 이야기
송주홍 지음 / 시대의창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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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홍 님의 [노가다 칸타빌레]를 읽었다. 부제는 "'가다'없는 청년의 '간지' 폭발 노가다 판 이야기"이다. 일드이자 일본만화인 '노다메 칸타빌레'를 오마주하여 얼핏 노가다를 노다메로 봐서 다시 한 번 눈길을 끄는 작전이 성공한 듯한 제목은 원작인 클래식과 변주곡인 노가다와의 엄청난 간극이 표면상으로 느껴짐에도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지금까지 내가 몇 번의 클래식 공연보다 훨씬 더 극적으로 다가왔다. Cantabile는 원래 이태리어로 '음악적인, 노래같은, 부드럽게 움직이는' 뜻을 가진 단어다. '노가다'라는 거친 활동이 우리를 감동에 젖어들게 만드는 칸타빌레의 결과물을 가져오는 것은 어쩌면 매일 매일 먹고 살기 위한 일환으로 선택한 노동을 성실히 임한 이들 덕분에 편안함 주거지가 생긴 것을 뜻함이 아닐까. 


저자의 책에서도 수없이 나오는 노동 현장의 단어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쓰던 말이 그대로 차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별히 노가다를 해보지 않은 사람도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은 노가다의 대표적인 용어들을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언젠가 일제의 잔재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노동 현장에서 일본어로 된 용어들을 쓰지 말자는 말을 들었었는데, 저자의 글을 보니 아마 지금까지 써온 용어들이 우리말로 대체되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카페에서 계피가루 말고 시나몬을 뿌려달라는 어이없는 상황을 진짜로 겪은 적이 있다. 요즘 오트 라떼가 유행이라 한 번은 카페 라떼를 주문하면서 우유를 귀리 우유로 바꿔달라고 했다. 그러자 점원이 못 알아들은 듯이 네? 라고 반문하기에 다시 귀리라고 해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오트 밀크요. 라고 하자 네 알겠습니다라는 대답이. 그러니 삽질 좀 해봤다는 남자들 사이에서도 '아시바'가 뭔지는 알아도 그게 우리말로 '비계'인지는 모르는 경우가 왕왕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마치 내가 건설현장에서 쌍욕을 들어가며 어리바리 행동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국 어디를 가도 아파트 건설 현장을 볼 수 있다. 이전까지는 대체 저 많은 아파트에는 누가 살게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자면, 이제는 아 저 많은 아파트 건설현장에 오늘 내가 읽은 노가다꾼들이 일하고 있겠구나 라는 감탄이 밀려왔다. 세상사 쉬운 일이 어디이겠느냐만은 매일 책상에 앉아서 뱃살만 키우는 입장에서 새벽부터 고된 노동을 하는 이들에게 나는 얼마나 우스워보일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특히나 저자가 기자에서 콘텐츠 기획자로도 일한 경력이 있는데, 오히려 노가다를 시작하면서 불면증과 우울증이 사라지고 격한 노동 후에 꿀잠에 빠지는 내용은 인간이 땀을 흘려 일하는 것이 신성하다는 옛말을 떠올리게 했다. 


공사판일을 막일이라고 폄하하는 표현들이 많았는데 막상 저자가 소개하는 노가다 현장의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안에서 어느 직업군 못지 않은 질서와 요령이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특히나 요즘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상당수 건설 현장에 투입된다고 하니, 저자가 건설 노조 편에서 강력히 주장한 내용 '불법 다단계 하도급' 시스템이 하루 빨리 개선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얼마전에 사고로 희생된 분들과도 같은 비극적인 일이 사라지지 않을까. 지난해 읽었던 이혁진 작가의 [관리자들]에서 공기를 당기기 위해 제대로 된 절차를 밟지 않고 공사를 강행하다가 결국 희생자가 발생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저자가 지적한 것과 마찬가지로 겉으로 보여지는 안전 대책 만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음은 정확한 지적이라고 생각된다. 


"<몇 시간이고 책상에 앉아 고작 몇 줄을 쓰는 그 지지부진한 시간이 나를 살아 있는 사람으로 살게 했다>라는 최은영 소설가의 말에, <어! 나랑 똑같네. 하하>하고 감탄하는 사람이 될 순 없었겠지. 노가다 판에서 흙먼지 뒤집어쓰면서도 <아, 오늘 컨디션 좋은데? 힘이 넘치는데?> 하면서 농담하는 사람이 되진 않았겠지. 친구들 만나서 <야, 나는 낮에는 집을 짓고, 밤에는 글을 짓는 살마이야. 라임 죽이지 않냐?>라면서 낄낄거리는 놈이 될 순 없었겠지.(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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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년
이희주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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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주 작가의 [성소년]을 읽었다. 제목과 표지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범상치 않은 기운은 뭔가 예기치 않는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해준다. 스토킹의 비극적 집착의 끝을 보여준 ‘미저리’라는 영화 덕분에 최애를 자기만의 것으로 만드려는 욕구가 얼마나 어리석고 이기적인 선택인지 이미 우리는 충분히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보여준 요셉이라는 아이돌에 대한 안나, 미희, 나미의 광적인 집착은 이미 그들에게 결핍되어 오래 축적된 내적 공허함이 구체적 사랑으로 드러날 때의 광기를 드라마틱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영화와는 또 다른 묘미와 긴장감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요셉에 대한 광기로 인해 어이없게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을 두 명이나 죽이게 되었음에도 과연 그들을 파괴적으로 만들어간 과거의 상처와 결핍들이 무엇인지 산장에서의 대화를 통해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사랑에는 다양한 모습이 담겨 있다. 특히나 요즘처럼 트로트가 대세인 시대에는 예전처럼 누구누구의 팬이 된다는 것은 단지 유년기 시절의 학생들에게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중년의 누군가도, 노년의 누군가도 열성적인 팬이 되어 조공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최애에게 열과 성의를 다해 집중한다. 최애를 가져보지 않은 사람은 그렇게 광팬이 된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뭐하러 그들에게 선물을 보내고 굿즈를 사고 비싼 콘서트를 몇 번씩이나 가느냐고 쓸데없는 짓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들에게 왜 그렇게 최애를 좋아하고 비싼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아끼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이런 대답을 한다. ‘최애가 나에게 살아가는 힘을 주기 때문이라고’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있는 사람들도 비슷한 대답을 하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최애를 통해서 얻게 되는 만족감과 기쁨은 가족이나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통해서 얻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행복인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공리주의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이 그런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애에 대한 욕구가 선을 넘게 되면 이 소설과 같은 사태가 생겨날 수 있다. 안나는 이미 남편과의 유학 생활 중에 무료한 나날을 위로받기 위해 몸을 파는 미소년과 관계를 맺게 된다. 자신의 피를 끓어오르게 만드는 젊은 육체에 대한 탐닉은 돌아와서도 멈추지 않는다. TV를 통해서 본 요셉의 춤추는 모습은 유럽에서 만났던 미소년과 오버랩되어 요셉의 공연장을 맴돌게 만든다. 그곳에서 미희와 나미를 만나게 되고 그들은 요셉을 자기들만의 최애로 만들기 위해 납치 계획을 세운다. 아주 오래전에는 권력과 부를 가진 이들이 여러 명의 아내를 둘 수 있었다. 그렇지 않는 사람도 첩이라는 이름으로 아내를 둘 이상 두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겉으로 보여지는 것에 대한 윤리적 기준이 높아져 첩을 두는 사람은 거의 보기 힘들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갑자기 신의의 삶을 살게 된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폴리아모리라는 원래 폴리가미(일부다처제)에서 파생된 여러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는 연애 형태가 조금씩 유행처럼 번져 나가고 있다. 


결혼에 대한 거부감은 비혼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게 되었고 비혼이라고 해서 사랑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며, 이성간의 사랑 뿐만 아니라 동성 간의 사랑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젠더 의식이 확대되어 폴리아모리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사랑의 속성 중에 우리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특징 중의 하나가 사랑하는 대상을 독점하고 싶은 욕구와 그 대상의 내밀함을 차지하고 싶은 욕구가 상당히 강력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바람피는 사람을 윤리적으로 비난하고 나와의 친밀함으로 만들어진 속내를 또 다른 타인에게 내어줄 수 있다는 사실은 엄청난 질투와 시기를 유발시킨다. 그런데 폴리아모리에서는 그런 질투와 시기를 용인할 수 있다는 쿨함을 보여준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이런 내밀함의 욕구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종종 발생되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다른 친구와 가까이 지내는 모습을 보고 이유없이 짜증이 나기도 한다. 


다시 소설로 돌아와서 요셉을 함께 납치하여 산장에서 한달 동안 먹이고 씻기고 돌보며 최애를 독점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지만 결국 그 산장을 찾은 주인 할아버지의 손자에 대한 우발적인 살인과 그 손자를 찾기 위해 온 친구들이 차를 훔쳐 돌다가 경찰에 적발되어 차주를 찾으러 온 경찰을 또 다시 죽이게 되는 비극적 결말을 가져온다. 하지만 뒤에 이어지는 더욱 충격적인 결말은 이미 요셉이 기획사의 시나리오로 살인 연극이 실제로 죽음에 이르게 된 후 요셉의 시신을 발견한 세 명의 여자가 요셉의 시신을 돌보며 환각 상태에 머물러 있었음이 밝혀진다. 최애의 부재에 이르러 미희와 나미가 스스로의 삶을 마감하려는 모습은 결국 요셉이 없이는 그들이 살 이유가 없다는 안타까운 결말을 보여준다. 이들의 집착과 광기는 정말로 사랑이었을까?


“괜찮은 인생이란, 광고에서처럼 매일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행복이 늘어서는 거였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의 행복은 메마른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과 같아서, 눈알이 아프도록 혀를 내밀고 지켜본 끝에야 간신히 한 방울을 맛볼 수 있었다. 엄마는 그 갑갑한 기다림을 참지 못했다. 그렇다고 순리가 이끄는대로 천천히 말라죽어가는 것도 견디지 못해서, 차라리 화끈하게 혀에 불을 지르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런 인간형은 미희와 길거리를 전전한 여자애들 중에도 있었다. 물론 정말 오갈 데 없는 애들도 있었지만 사정이 괜찮은 애들도 많았다. 멀쩡한 애들이 단 몇 초 지나가는 요셉을 보기 위해 길바닥에 쪼그리고 있었다. 맨바닥에서 자고, 수풀에 들어가 오줌을 누고, 서로 맞고 때리면서 요셉의 주위를 얼쩡거렸다. 그들은 열 길 물속보다 여러운 한 길 사람 속을 알고 싶어했다. 그게 사랑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들이 지루해 미칠 것 같던 순간에 요셉이 눈앞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자신을 쏟아붓는 것만큼 괜찮은 자극도 없었다.(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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