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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는 맛 - 먹고 사는 일에 누구보다 진심인 작가들의 일상 속 음식 이야기 ㅣ 요즘 사는 맛 1
김겨울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2월
평점 :
[요즘 사는 맛]을 읽었다. 부제는 “먹고 사는 일에 누구보다 진심인 작가들의 일상 속 음식 이야기”이다. 김겨울 “접시 안에는 행복이 있지”, 김현민 “시절과 함께 통과하는 맛”, 김혼비 “자기만의 맛의 방식”, 디에디트 “좋은 사람과 함께 먹는다면”, 박서련 “의식의 흐름의 흐름”, 박정민 “밥 한술에 행복, 또 한술에 극락”, 손현 “누군가가 누군가를 먹이는 일”, 요조 “먹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은 대로”, 임진아 “‘나’라는 손님을 대접하는 중입니다”, 천선란 “오늘의 한 끼를 신중하게 고르는 마음”, 최민석 “소문호의 먹고 사는 이야기”, 핫펠트 “맛은 늘 가까이에 있어” 라는 소주제로 저자들의 다양한 먹거리에 얽힌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릴때부터 먹을 것으로 꽤나 스트레스를 받고 살아와서 그런지 저자들의 글감에 적절히 공감이 가며, 나이들수록 먹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지지만 그만큼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특히나 ‘배달의 민족’을 비롯한 여러 개의 배달 매니저업이 상승 곡선을 이루며 우리나라는 가히 배달이 안되는 음식이 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코로나 시국에는 배달의 의존도가 더욱 상승하여 어마어마한 일회용 쓰레기를 양산해 내었고 더불어 음쓰의 대란과 과도한 양의 조미료를 섭취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얼마나 TV프로그램 중 톡파원 25시에서 프랑스에 있는 현지인이 미쉘링 레스토랑에서도 배달을 해 준다며 기본적인 코스 요리를 주문했는데, 음식값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배달비가 무려 2만원이 넘는 것으로 영수증에 찍혀 있었다. 우리나라 배달 어플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2천원에서 3천원 정도 인 것 같은데 파리를 생각한다면 천원 더 오른다고 불평하면 안 될 것만 같다.
벌써 제작년이 되어버린 안식년을 지내면서 먹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되었다. 삼시세끼를 내 손으로 차려 먹다보니 물리기도 하고 하루 종일 차리고 먹고 정리하고 반복된 일상이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을 질리게 만들었다. 대체 엄마들은 어떻게 그 많은 식구들을 먹이고 살림까지 하신건지 나는 다른 건 다 해도 그건 도저히 못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며 집안일을 하고 식구들의 입에 밥을 먹이는 일이 얼마나 숭고한 것인지 절실히 깨달았다. 이렇게 밥을 차려 먹는 것에 질렸을 정도면 가끔 배달앱을 통해 세상의 모든 음식을 맛보는 시도를 해볼만도 한데, 1년 동안 한 번도 배달앱으로 주문한 적이 없다. 혼자 사는데도 각종 택배박스로 인해 가뜩이나 좁은 현관이 신발을 벗어둘 틈도 없어지기에 하루에도 몇 번씩 분리수거장을 왔다리 갔다리 하다보니 음식물 쓰레기의 대량 유출과 더불어 각종 플라스틱 그릇까지 양산될 생각에 아예 배달앱에 가입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한 결심 덕분에 요리실력이 출중해졌다면 정말 귀감으로 삼을 결말이겠지만, 배달앱을 사용하지 않는 것과는 무관하게 여전히 음식 만들기에는 잼뱅이다.
저자들이 대부분 글을 쓰는 것을 주된 업으로 삼기에 그런지 모르겠지만, 정규직의 직장인들과는 다르게 대부분 프리랜서이기에 먹는 것에 대한 어떤 강박이나 규칙성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아서 좋았다. 건강을 생각한다면 규칙적인 식사 시간과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을 당연시 생각하고 때로는 강요당해 온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건데, 그렇게 철저히 식습관을 유지한다고 해도 강력한 스트레스 한 방에 모든 균형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경험을 하고 나면, 내가 이럴려고 그동안 그렇게 열심히 세끼를 챙겨 먹었나 하는 무력함이 밀려온다. 어쩌면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 몸에 좋다는 생각 때문에 때로는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는 것이 오히려 몸에 독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과도한 당분섭취이든, 채소를 경멸하는 고기 매니아든, 완전한 비건을 결심한 채식주의자든 스스로가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먹는 일이라면 안그래도 내 몸을 호시탐탐 노리는 스트레스를 이겨낼 에너지가 어디에서든 생겨날 수 있지 않을까?
“한 입 두 입 계속 먹을 때마다 몸속을 세차게 흐르는 뜨겁고 진한 국물에 심장에 박혀 있던 비난의 가시들이 뽑혀 나가는 것 같았다. 마음의 틈새마다 눌어붙어 있던 자괴와 절망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국물이 흘러들어오면 눈물이 흘러나가며 내 눈에 옮아 있던 날 선 눈빛들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쁜 것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J의 사리곰탕면이 새겨 넣은 메시지는 이랬다. ‘너는 누군가가 이틀을 꼬박 바쳐 요리한 음식을 기꺼이 내어줄 정도로 소중한 존재야. 잊지 마.’-김혼비 편(69)”
“그렇게 짧은 비건생활을 거쳐 느슨한 채식생활로 돌아왔더니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 찾아왔다. 그것은 감사함이었다. 무슨 종교도 아니고 뜬금없이 웬 감사함이냐 싶은데 정말 그런 기분이 우르르 몰려왔다. 비건 놀이를 하며 먹지 못했던 하나하나의 익숙한 식재료가 그렇게 새롭고 감사할 수가 없었다. 생선도, 계란 프라이도, 된장찌개에 들어간 바지락도 너무 맛있어서, 먹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버터 범벅 크루아상이 내 입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이 말도 안 되게 감격스러웠다.(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