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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노운
이진 지음 / 해냄 / 2022년 5월
평점 :
이진 작가의 [언노운(unknown)]을 읽었다. 몇년 전 무한도전에서 남극에 가지 않고도 펭귄을 볼 수 있다는곳으로 칠레의 푼타 아레나스라는 곳을 방문해 그곳에서 라면집을 하시는 분을 만난 장면이 떠오른다. 남극은 연구원이 되어서 지원하지 않는다면 아예 가볼 수 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강해서 그런지 그나마 펭귄을 직접 볼 수 있는 푼타 아레나스라는 곳의 이름이 잊히지 않는 것 같다. 판다, 코알라처럼 펭귄은 생긴 것 자체가반칙이라고 할 정도로 귀엽다. 세상에 너무나도 귀여운 동물들을 사람들 손을 타 멸종될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처럼 개체수가 많지 않고 좀처럼 쉽게 볼 수 없다. 소설의 시작은 이렇게 귀여운 동물 중의 하나인 펭귄으로부터 시작된다. 주인공 우현이 초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본 펭귄 다큐멘터리를 떠올리며 무리와 이탈되혼자 엉뚱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외톨이 펭귄이 흡사 자신과 비슷하다는..
차별금지법에 대한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많은 상황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자 하는 내용이 담겨 있겠지만 차별금지법에 내포된 가장 핫한 이슈 중의 하나는 당연히 성소수자에 대한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자는 내용이다. 어릴 때에는 성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는 이들의 이야기가 아주 먼 나라의 사정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서유럽 사회가 성적으로 너무 개방되어 있다보니 그런 일이 자주 생겨나는 것은 아닐까란 안이한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커밍아웃으로 당당히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힌 사람들을 나오고 그들이 어떤 병에걸린 이들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성향을 인식하고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싶지 않아 용기를 낸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점점 의문이 쌓여갔다. 도대체 이러한 현상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이러한 문제는 비단 현대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사에 지속적으로 유지된 현상임에도 과거에는 감히 목소리를 낼 수 없었기에 현대에 이르러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성적 고민을 안고 있는 이들에게, 비단 청소년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모든 사람에게 성은 공개적으로 나누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운 주제이다. 부모님과 형제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도 성에대한 심각한 고민은 나누기 힘들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하나의 성을 갖고 태어날 수 밖에 없는 존재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물학적 성을 자신의 성정체성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생물학적 성과 성정체성의 다름을느낀 이들은 이미 이 사회가 적응하고 받아들여온 성별을 거부할 수 없어 두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성에대한 고민은 누구에게도 쉽게 나눌 수 없는 중대한 문제이기에 더욱 감출 수 밖에 없고 나이를 불문하고 성에대한 이야기를 꺼려하는 이들은 어설픈 농담과 치기어린 훈수로 성에 대한 고민을 한낱 가십거리로 만들어버린다. 이러한 문화적 유치함을 우리는 어릴때부터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깊이 감춘다. 얘기해봐야 나만 바보가 되거나 이상한 사람이 될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소설의 주인공 우현이 그랬듯이, 우현의 엄마 영주가 그랬듯이 얘기해봤자 ‘그러니 뭐하러 일하러 갔어? 혹은 그러니 뭐하러 너 자신을 밝혔니?’라는 대답을 들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 사회가 너무 비정하고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들의 공동체 같지만, 의식의 전환은 그렇게 빠른 시간에 이루어지지 않기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소설의 말미에 우현이 우발적으로 자신이 퀴어임을 밝혔을 때 밥을 먹던 아빠가 ‘퀴어’가 뭐냐고 딸에게 묻는 장면처럼, 그 누구도 자신의 자녀가, 자신의 형제가, 자신의 부모가 성소수자라는 고백을 듣게 된다면 놀라지 않을 자신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서 퀴퍼에 가려고 지도 어플을 켠 엄마 영주처럼 남일이 아니라 내 자식의 일처럼 바라본다면 조금씩이라도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내 생각에 고등학생 특유의 자신감은 성별 이분법의 간단한 기반 위에 쌓아 올려지는 것이다. 성별 이분법은 사람의 성별을 여성과 남성 두 가지로만 구분하는 것을 뜻한다. 쉽게 예를 들어보자면 ‘파란색은 남자 색깔, 핑크색은 여자 색깔’ 이라는 고정관념이 대표적인 성별 이분법적 사고방식이다. 어디 그뿐일까? ‘짧은머리 남자, 긴 머리 여자’, ‘울지 않는 남자, 툭하면 우는 여자’ …. 성별 이분법이 지배하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 그러니까 절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은 세상에 벌어지는 수많은 일을 남자 아니면 여자라는 단어로 무 자르듯 설명해 낸다.(12)”
“사람의 마음이 라디오 전파처럼 고유한 주파수를 지니고 있다면 나의 주파수는 박시우 같은 인싸들하고는완전히 다른 종류일 것이다. 내가 발신하는 신호는 돌고래의 초음파가 인간에게 들리지 않는 것처럼 다른 아이들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특별하고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다른 아이들은 이해 못 한다. 양 갈래머리 아저씨처럼 놀림거리로나 삼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래서 나는 입을 다문다. 나의 소중한 것들을 비웃음거리로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입을 닫고 내 존재를 지운 채 사는 것이 힘들지는 않다. 워낙 어릴 때부터 그렇게 지내와서 익숙하니까. 하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교실의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은 채로 집에 갈 때, 재미있지도 웃기지도 않은 걸 억지로 재미있는 척하려고 노력하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면, 외롭다. 슬프거나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 짬도 없을 만큼 크고 무거운 외로움이나를 집어삼킨다.(49)”
“‘당신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단지 그런 사실을 알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무지개가 아닌 지예는 이해할 수 있을까?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존재, 애매함과 망설임 그 자체가 바로 나라는 것을, 이렇게 넓고 복잡한 세상을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개의 창으로만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그런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할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있다면 얼마나좋을까? 그런 능력을 어디서 배울 수 있는 걸까? 그리 생각하자 문득 내 앞에 앉아 있는 지예가 오늘 전시장에서 만난 어른들보다 더 낯설고 먼 사람처럼 느껴지고, 가슴속에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97-98)”
“피와 살을 나누고 내 목숨과도 주저 없이 맞바꿀 수 있는 단 하나뿐인 존재일지라도, 그 아이는 어쩔 수 없는 타인이다. 타인에게서 자기 존재를 찾으려 드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공허한 짓이라는 것도 안다. 다 아는데도, 알면서도.(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