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쿠다 사진관
허태연 지음 / 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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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연 작가의 [하쿠다 사진관]을 읽었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여운 때문인지 읽는 내내 후속편을 보는 듯한 감상에 빠져버렸다. 우리나라 어느 지방 사투리도 자세히 들으면 그들이 하고자 하는 말을 대충 알아들 수 있지만, 제주 방언만은 마치 해독기와 번역이 필요한 외국어처럼 들린다. 대체 같은 나라에서 그리고 우리나라가 그렇게 큰 땅덩어리도 아닌데, 단지 바다 건너에 있는 섬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까지 큰 격차가 느껴지는 방언이 생겨난 것일까 항상 신기했다. 그래서 그런지 제주 사투리는 다른 어느 지방보다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3년째 견디는 중에 제주에 갈때마다 우리나라에 제주도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매번 감사의 마음을 갖곤 했었다.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도 해녀들의 이야기가 나와서 막연하게 생각했던 해녀들의 물질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고, 올해 제주로 연수를 갔다가 우도로 가는 선착장 근처에 있는 오래된 해녀 탈의실을 개조하여 공연과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해녀의 부엌’이라는 프로그램을 관람할 수 있었다. 연극하는 청년들이 현지의 해녀분들과 함께 해녀들의 삶을 그린 연극을 공연하고 이후에 해녀분들이 채취한 해산물을 직접 맛볼 수 있는 특색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연극 배우들은 실제 상군해녀가 겪은 슬픈 이야기를 형상화했고, 연극이 끝나고 실제 이야기의 주인공인 80세가 넘은 고령의 해녀 분의 인터뷰 시간이 이어졌다. 지금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해녀복은 고무로 된 전신슈트이지만, 70년대 이전에는 박물관에서 본 듯한 하얀 저고리와 검은 반바지를 입고 차가운 바닷물에 입수를 했다고 한다. 소설에서도 주인공 제비가 한 겨울에 대왕물꾸럭마을 축제의 사자가 되어 고무슈트가 아닌 옛날 해녀복을 알몸에 입고 차가운 바다에 들어가야 하다는 사실에 기겁을 하지만, 목포 할망의 말처럼 생존을 위해서 해녀들은 살을 에는 듯한 추위를 견디며 물질을 해야만 했다. 


사실 도시에서는 신선하고 맛이 좋은 문어를 맛보기가 쉽지 않다. 값이 비싸기도 하거니와 잘못하면 질긴 문어를 먹게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되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주에 가면 돌문어와 대왕문어를 맛볼 수 있다. 심지어 문어가 들어간 해물라면을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먹을 수도 있다. ‘해녀의 부엌’에서 해녀들이 바로 채취한 뿔소라 회를 먹노라니 아무런 잠수장비 없이 그저 숙련된 다이빙으로 전복하나, 소라하나 이렇게 거둬들여 가족들의 생계를 이어갔다는 할머니 해녀의 말씀이 마음으로 느껴졌다. 그들의 프리 다이빙 실력은 숙련된 다이버들도 흉내낼 수 없는 숨비소리를 만들어냈고 그러한 독특한 호흡법으로 오랜 시간 물 속에서 해산물을 채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제비는 나중에 그의 슬픈 사연이 드러나지만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받고 미혼모가 되어 아이를 입양기관에 맡긴 상처를 갖고 있다. 기댈 가족조차 없이 새로운 삶을 기약하기 위해 떠나온 제주 여행을 끝마치는 날 바닷가에서 핸드폰을 물에 떨어뜨려 길을 헤매다 ‘하쿠다 사진관’에까지 이르게 된다. 제비가 사진관 주인 석영과 만나 그곳에서 직원으로 채용되어 목포 할망의 집에 하숙하게 되는 과정은 조금은 작위적이지만, 이어지는 이야기를 위한 어쩔 수 없는 플롯이라고 가정한다면 실제로도 그러한 우연이 우리 삶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지 않을까 동의하게 된다. 하쿠다 사진관을 중심으로 연제비, 이석영, 고양희 그리고 양희의 아들 효재, 목포 할망과 대왕물꾸럭 마을 사람들까지 모두가 쉽게 말하지 못할 내면의 상처를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단언을 실천하는 것처럼 가슴속에 묻어둔 슬픔을 내색하지 않고 등장인물 모두가 씩씩하게 주어진 운명을 헤치며 나아가고 있다. 


제비가 석영의 사진관에서 일하며 홍보 활동을 열심히 해서 조금씩 고객들이 늘어나고 사진관을 방문한 이들의 에피소드가 펼쳐지며 이야기는 점점 흥미진진해진다. 특히나 제비와 석영이 콤비를 이루어 의뢰자들이 원하는 컨셉으로 하루종일 사진을 찍고 사진관에서 식사를 하며 그날 찍은 사진을 관람하는 코스는 꽤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싶다면 그리고 여행지에서 그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이 아닐까. 소설의 말미에 대왕물꾸러마을의 평안을 위해 사자의 역할을 맡게된 제비가 물숨을 들어마시는 고통을 감내하며 대왕물꾸럭을 바다속으로 인도하는 장면은 입양보낸 밤톨이를 위한 극한의 인내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기에 무척 감동스러웠다. 그리고 사자로서의 임무를 완수한 제비에게 목포 할망이 건네 한 마디, “기여. 혼 번 사자는 영원한 괸당이주. 이녁은 앞으로 어떵살코저들지 말라.(그래. 한 번 사자는 영원한 괸당이야. 너는 앞으로 어떻게 살까 걱정하지 마.)” 기댈 가족 하나 없는 제비에게 이 말처럼 든든한 말이 또 있을까? 괸당이라는 혈연과 지연으로 얽히지 않은 이들을 매몰차게 외면하는 배타적인 공동체의 모습에서 나온 것 같지만, 목포 할망의 말에서 인간이 인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결국 마음과 마음이 통할 때 세상의 모든 장애물이 무너져 내릴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제비야, 어떤 사람들은 돈과 예술이 별개라고 생각해.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돈과 바꿀 수 있는 것만 진짜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사람의 생명 다음으로 중요한 게 돈이니까. 그런 돈하고 바꿀 가치가 있어야만 예술이 되는거야. 비쌀수록 더 가치가 있는 거고.(142)”


“만일 물꾸럭 신이 있어 사람에게 길흉을 가져온다면, 그리고 네가 잠수에 실패해 액운을 당한다면, 그때 너는 후회할 거야. ‘아 물에 들어갔어야 했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해냈어야 했는데,’ 그런 다음 울겠지. 지금처럼 서럽게. 하지만 네가 잠수에 성공한다면, 언젠가 네게 액운이 닥쳐도 후회하진 않을 거야. 그러니까 수영을 배워. 살아보니 그렇더라. 뭔가를 위해 무슨 일을 하다 보면, 계속 하다 보면, 그게 언젠가 너를 구하는 거야.(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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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대하여 - 박상영 연작소설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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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 작가의 [믿음에 대하여]를 읽었다. 연작 소설로 ‘요즘 애들’, ‘보름 이후의 사랑’, ‘우리가 되는 순간’, ‘믿음에 대하여’ 이렇게 4편이 수록되어 있다. 각 단편마다 화자인 주인공의 이름이 표기되어 누군가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연작소설을 읽을 때마다 특히 박상영 작가의 소설은 대부분 연작소설집으로 묶여 나오기에 매번 놀라게 되는 점이 있는데, 바로 각 단편의 주인공들의 시선으로 읽을 때와 그 주인공들이 다른 단편에서 상대방이나 주변 인물로 나올 때의 시선이 너무나도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시선으로 소설이 진행될 때에는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감정에 단숨에 몰입되어 모든 정황이 주인공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가 이렇게 고난을 겪고 난처하게 된 것은 주인공의 탓이라기 보다는 세상이, 그리고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 때문이 아닐까라라는 어느덧 주인공의 가족이나 부모가 된 것처럼 그의 편을 들게 된다. 하지만 이어지는 또 다른 단편에서 등장한 전편의 주인공은 새로운 단편의 주인공의 시선에서 바라보았을 때 허점이나 모순이 너무나도 많은 인물이다. 그가 주인공일 때에는 모든게 납득이 되던 상황들이 새로운 주인공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어쩌면 모든 문제의 원인은 전편의 주인공 때문이 아닐까란 막연한 추측에 다다르게 한다. 


소설 속에서는 이렇게 자신의 주관적 입장이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좀 더 객관적으로 사건과 정황을 살펴볼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생각이 자주 든다. 내가 봤을 때 저 사람은 정말 이상한데, 저 이상한 사람에게도 친한 사람이 있고 심지어 사람들이 그 이상한 사람을 칭찬하고 좋아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일들이 반복될 때면 혹시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닐까란 생각마저 든다. 만일 내가 판단하는 것처럼 저 사람은 괜찮은 사람, 이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라는 결론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면 내가 혹평한 누군가는 죽을 때까지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가며 온갖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나의 시선과 판단이 절대로 옳을 수가 없고 나의 호불호가 누군가에게는 정반대의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것은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나를 몹시도 좋아해주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의 소설을 읽을 때면 이렇게 다양한 시선으로 주인공들의 삶을 바라보며 편견과 선입견에 휘말려온 시간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나라 퀴어 문학의 대표 주자 중의 한 명인 저자의 소설에는 언제나 게이 동성 커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번 연작 소설에는 김남준, 고찬호, 유한영과 황은채, 임철우 이들의 팍팍한 직장생활 분투기와 더불어 ‘요즘 애들’이라는 시대적 반복어가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설의 심장부를 가로지르는 사건은 실제로 제작년 팬데믹 초기에 발생한 ‘이태원 발 코로나 확진자의 거짓말’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사실 그 일이 뉴스를 통해 보도되었을 당시만 해도 확진자의 동선 거짓말로 인해 무고한 학원생들의 집단 확진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말도 안될 정도로 확진자의 수가 적었음에도 생소한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이 증폭되었던 터라 확진자의 동선은 개개인의 동의 없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사생활 침해 및 인권 유린에 대한 위험성이 조심스럽게 대두되던 때였다. 하지만 인권이고 사생활이고 간에 사람 목숨 살리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우리나라 사회에서 확진자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고 모든 언론들의 집중포화로 그 학원강사를 이미 만신창이를 만들어버렸다. 시간이 흐른 후에 그가 거짓말을 했던 이유는 성소수자임이 드러날까 두려웠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그가 성소수자임이 밝혀지자 소설에 나온 것처럼 이태원 클럽이 마치 온갖 더러운 것들의 온상인양 비아냥거리고 혐오하는 이들이 이때다 싶은 듯이 그들을 짓밟는 거친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평가절하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실제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 검증할 필요도 없이 그냥 느낌대로 그럴 것이라는 가정을 부풀리고 상상하여 팩트로 단정짓듯이 자신있게 말하면, 그 말을 들은 누군가가 거기에 자신의 생각을 더 보태어 비난의 대상을 더욱 형편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 사람은 마주한적도 없는 이들의 입에서 온갖 더러운 것들이 묻어난 씹던 껌처럼 되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반대로 누군가를 칭찬하고 추앙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은 누군가에 대한 호감어린 말을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칭찬은 재미없고 루즈하며 뭔가 이유가 있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대체 뭘 받아먹었길래 라는 의구심어린 눈빛으로 칭찬하는 사람을 겸연쩍게 만든다. 그래서 험담보다 칭찬을 할 때 더욱 신경이 쓰인다. 팬데믹으로 인해 전지구적인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이 겪는 불편함은 생활고를 겪거나 성소수자처럼 동선이 드러나기를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걸린 사활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재난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 상황을 이겨내기 위한 해결의 절차는 가진 것이 없는 이들과 소수자의 수준에서 맞춰지기 보다는 있는 자들의 머리속에서 그려낸 것으로 결정될 때가 많다. 가진 것이 많을 때에는 그것을 놓치고 싶지 않아 시선이 좁아질 수 밖에 없다. 저자의 연작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다양한 시선은 그래서 지금처럼 예민하고 날카로운 시대에 더더욱 시의적절하지 않았나싶다. 


“서른한 살, 벌써 네번째 신입 사원이 된 나는 스물세 살에 잡지사에 들어와 내 나이 무렵에 이미 팔년 차 직장인이었던 배서정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나도 모르는 새 내 삶에 옮겨붙은 어떤 안간힘의 궤적을 말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배서정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만큼 배서정 역시 자신의 방식으로 나와 황은채를, 요즘 애들이라고 이름 붙여진 불가해의 영역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사실을. 어떤 종류의 이해는 실패하고 나서야 비로서, 삶의 자세로 남기도 한다. 내게는 그 시절이 그랬다.(62)”


“모든 게 서럽고 원망스러웠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누군가의 탓을 하는 시대에 나는 누구를, 무엇을 원망해야 할지 몰랐다. 하루에 십수 명이 확진될 땐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야단하며 확진자 동선을 낱낱이 공개하고 술집 영업을 제한하더니 이제는 하루에 몇십만 명이 걸려도 아무런 통제도 하지 않는 정부를? 이태원 상권이 싸그리 몰락한 이 판국에도 단 한 푼도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임대료를 받아 챙기는 건물주를? 아니면 딱 요맘때 이태원을 헤집었던, 기남시 55번 환자를? 최초로 한국에 이 병을 들여온 사람을? 아니면 어머니가 그토록 믿는 신을 탓해야 하나? 아무것도 믿지 않는 나는 도통 무엇을 탓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저 나 자신의 탓으로 돌이기로, 이 모든 것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나 자신을 비난하기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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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브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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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평 작가의 [튜브]를 읽었다. 어릴때 물놀이를 갔다가 죽을 뻔한 기억이 있다. 그것도 실외 수영장에서 말이다.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구조의 수영장이었는데, 아마도 좁은 공간에 애, 어른을 한 번에 수용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초등학생의 어린 나이에 어울리는 높이였던 수영장이 몇 발자국 내밀자 갑자기 몸 전체가 물속으로 빠져들었다. 당황해서 물을 연거푸 마시고 팔을 휘적거리다 누군가의 머리를 누르고 간신히 물 위로 머리를 내밀려는 찰나 다시 몸이 가라앉아 순간적으로 이렇게 허무하게 인생을 마감하는구나라는 찰나의 생각이 스치는 순간, 누군가 내 몸을 들어올렸고 살아났다는 기쁨도 잠시 먹을 물을 토해내느라 컥컥대며 더는 수영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이 멍하니 앉아 있던 일이 있었다. 사실 어릴 때 이렇게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일을 겪으면 상당수가 트라우마가 생겨 물을 가까지 하려 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다시 물놀이를 즐기게 되었고, 바다에서도 수영장에서도 수영을 잘해보려 더 애쓰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 끈기의 부족으로 수영강습을 받다가 그만둬 마스터하지 못한 것은 불쑥 불쑥 솟아나는 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핑계를 만들어낸다. 


수영이야 뭐 안하면 그만이지만, 우리 삶에는 수영처럼 하다가 만 일들이 꽤나 많다. 워낙에 뭘 배우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사교육에 대한 알러지 때문인지 새로운 것을 꾸준히 배워서 일정한 수준에 오른 적이 없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아예 시작을 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무언가를 꾸준히 성실하게 잘 해낸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누군가가 농담삼아 한 말이 내 실제의 본 모습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은 바로 ‘끈기만 더 있었어도 대학로에 갔을텐데’라는 사실 가능성에 제로에 가까운 농담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주 얼토당토 없는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도대체 어디서 그런 일이 시작된건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지만, 지금의 나도 가끔 믿기지 않지만 분명한 사실은 내가 연극의 주인공을 했다는 것이다. 한 반에 50명이나 되는 아이들 중에서 평소에는 별로 까불지도 튀지도 않았던 내가 ‘스크루지 영감’을 맡아 꽤 길었던 대사를 어렵지 않게 외우고 나중에는 선생님의 권유로 앵콜공연까지하는 기염을 토하는 연기를 했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는 한 번도 연기 비슷한 것을 해 본적이 없다. 그래서 나의 평소 언행을 보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끈기만 있었어도 대학로에 갔을텐데’라는 말은 어쩌면 내 마음이 원하는 소리에 진작 귀를 기울였다면 실제로 이뤄졌을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찌되었든 우리에게는 다양한 재능과 관심이 있고 천부적으로 타고나는 것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일은 스스로의 선택과 기나긴 노력이 이어진 시간으로 판가름된다. 소설의 주인공 김성곤 안드레아는 그냥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패한 가장이다. 아내 란희와 결혼해 아영을 낳을때까지만 해도 그의 삶은 순탄했다. 하지만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연이어 사업에 실패하자 김성곤의 영혼은 점점 피폐해져갔고 차마 해서는 안되는 말을 아내에게 내뱉으며 루저가 되어갔다. 사업 실패와 아내와의 갈등, 늘어난 빚을 안고 별거 생활을 시작한 김성곤은 한강 다리 위에서 자살 시도를 하다가 낮과는 다르게 차가운 기운에 그만 삶을 놓아버릴 용기마저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된다. 그리고 그가 2년 전에 시도했던 자살 시도의 순간으로 돌아가 무용한 2년의 시간을 보낸 과정이 펼쳐진다. 그가 우연한 계기로 허리를 곧추세우며 자세를 바꾸는 시도를 통해 지푸라기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되고 행운처럼 다가온 교통사고는 거대한 상업자본과 손을 잡고 비상하게 된다. 하지만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행운의 요소들은 다 소진되어버리고 다시금 불행의 기운이 스멀스멀 김성곤을 원래의 있던 자리로 돌이켜놓는다. 결국 김성곤은 절대 변하지 않은 루저에 불과한 것인지 자포자기 할 무렵 김성곤의 지푸라기 프로젝트는 쓸모없는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낸다. 


진짜로 인생에서 성공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완전히 알지 못한다. 성곤의 어릴적 성당 친구 규팔의 모든 것이 다 변한 것 같은데도 뭔지 알 수 없는 기시감을 느끼게 만든 것은 여전하다는 내용에서, 모든 것은 결국 사고 파는 과정이라는 성곤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규팔의 생각으로 인해 김성곤은 사회적 성공을 이루지 못한 것은 아닐까. 피자가게 사장과 직원의 관계에서 오피스텔을 공유하는 전사장과 초보 유투버인 성곤과 진석의 재회는 지푸라기에 잔뜩 부풀어 올라 튜브처럼 물 위로 자신들을 떠오르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황당한 희망조차도 진심을 다해 응원하게 만든다. 이들이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장면은 우리는 모두 응원받을 자격이, 가치가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오늘 본 란희의 얼굴엔 아무런 감정이 남아 있지 않았다. 커다란 체에 좋은 것들, 그러니까 즐거움, 애정, 행복 같은 걸 탁탁 거르고 다시 한번 분노와 슬픔을 툭툭 걸러낸다. 마지막으로 온갖 앙금과 미련과 애증이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모든 감정을 시간의 태양 아래에 말린다. 그러고 나서 남은 흔적 같은 게 아까 자신을 바라본 란희의 얼굴에서 본 표정이었다. 그 체의 역할을, 란희에게서 그 모든 것을 앗아간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김성곤 안드레아 자신이었다.(133)”


“세상에 던져졌으니 당연하지요. 태어나길 원하지도 않았는데 좁은 배 속에 꼼짝없이 갇혀 있다가 갑자기 발가벗겨진 채로 세상에 던져졌잖아요. 인간은 탄생부터가 외롭고 불안한 거예요. 그러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슨 수로 알겠어요.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일단 쥐어보는 거지요. 쥐었던 게 운 좋게 잘 풀리기도 하고, 이건 아닌데 싶지만 쥐었던 걸 놓을 용기는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꼭 쥐고 있기도 하죠. 그러다가 누군가가 그걸 빼앗아 가면 다시 세상에 던져진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불안해하는 겁니다. 손에 잡히는 것도, 의지할 데도 없이 발가벗겨진 채로 버둥거리고 있으니까. 다들 그러고 삽니다.(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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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책장 2022-09-12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제코루 2022-09-12 13:48   좋아요 0 | URL
축하 인사를 받고 뿜뿜해지네요. 감사합니다
 
오늘도 디지털 노마드로 삽니다 - 우리의 배낭처럼 가뿐하고 자유롭게
김미나 지음, 박문규 사진 / 상상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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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나 박문규 부부의 [오늘도 디지털 노마드로 삽니다]를 읽었다. 부제는 "우리의 배낭처럼 가뿐하고 자유롭게"이다. '유목민'이라는 단어는 우리나라에서는 조금은 낯설게 다가온다. 오래전부터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사회가 형성되었기에 유목인에 대한 첫인상은 떠돌이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과연 그렇게 사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막연함이 드는 가장 큰 이유는 유목민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에 '디지털'이라는 단어까지 붙으니 생소함을 넘어 새로운 인류의 삶이 펼쳐지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저자의 책을 읽으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고 있으며 이미 보고 함께 지내왔음에도 그렇게 인식하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다. 


터키 여행을 시작할 때 처음으로 밤 12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탔다. 같이 간 동료들은 밤 비행기라 술 한 잔 하고 푹 자면 된다고 했지만, 평소라면 이미 잠들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눈이 말똥말똥하며 한숨도 자지 못했다. 10시간 이상의 비행으로 그리고 거의 밤을 샌 격이라 피곤이 몰려오고 있었는데, 이스탄불 공항에서 바로 국내선을 타고 카파도키아로 갈 예정이었던 터라 두 시간을 대기해야 했다. 현지 시간으로 새벽에 도착했으니 아침을 먹으면 금방 시간이 갈 줄 알았는데 설상가상으로 3시간이 연착되었다. 카페에서 5시간을 대기하는데 정말 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낮시간대 비행기를 타고 왔다면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았을텐데 밤을 세고 5시간을 대기하고 국내선을 2시간 타고 당카파도키아에 도착해서 당일 일정을 수행했다. 저녁 무렵 첫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호텔식 저녁식사를 하는데 눈이 저절로 감겨왔다. 거의 36시간을 자지 않고 깨어 있었더니 밥을 먹다 식당 바닥에서도 잘 기세였다. 그때 이스탄불의 공항의 카페에서 대기할 때 꽤 많은 디지털 노마드들을 보았다. 나처럼 연착된 김에 어쩔 수 없이 죽 때리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공항에서 노숙을 했던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무려 8년 동안 여행을 하며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고 있는 부부의 체험담을 읽으며 예전 기억이 떠오름과 동시에 디지털 노마드는 내가 죽을 것 처럼 힘들었던 공항에서의 대기 시간들도 사랑하지 않으면 안되는 삶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몸으로 배낭을 짊어지고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과 함께 불편한 자리에서 장시간 대기하며 때로는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안정적이고 평범한 삶이라고 말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선택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아니 생각하지 않고도 그냥 흐름에 몸을 맡기다보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아이를 낳고 제 집 장만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수순이다. 이 중에 하나만 다른 길로 가려고 해도 부모님이나 지인들은 당장 무슨 큰일이 날 것처럼 만류하려 든다. 그러한 시선이 부담스럽고 두려워 상당수의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이나 전혀 생각보지 않았던 샛길의 삶을 과감히 선택하지 못한다. 사실 우리 삶에는 수많은 길이 있다. 죄를 짓거나 타인에게 해를 가하거나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행동이 아니라면 각자가 선택하는 삶의 길에 옳고 그름은 판단할 수 없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는 길은 이미 걸어본 사람들이 많지 않기에 예상치 못한 어려움과 장애물들이 도사리고 있다. 


저자의 삶의 선택은 어찌보면 현대 사회의 선구자와 같은 길이 아니었을까 싶다. 처음부터 전문 여행가로의 삶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하다보니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과감히 자신의 온 삶을 새로운 길에 투신할 수 있었던 용기 덕에 이렇게 디지털 노마드의 신세계를 많은 이들에게 열어줄 수 있었던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삶이 안정되어 갈수록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 어려워진다. 일상히 무미건조해지고 나른하게 느껴져 분위기를 전환하고 싶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예전보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게으름 때문인 것 같다. 일상은 여전히 성실하게 살아가지만 내 마음에 원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는 점점 게을러 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육체적 노화의 시간은 거스를 수 없지만 마음의 노화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처럼 거꾸로 흐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마음의 게으름을 타파하기 위한 도전들을 미루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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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레슨 인 케미스트리 1~2 - 전2권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보니 가머스의 [레슨 인 케미스트리(LESSONS In CHEMISTRY)] 1-2를 읽었다. 1950년대의 미국 사회의 한 가운데에 서서 엘리자베스의 고군분투하는 삶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불과 100년도 안된 과거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편협한 시각으로 관계를 맺어왔는지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전쟁을 치뤘고 나라가 반토막이 난 후 피폐해진 국민의 삶은 오로지 경제적 재건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야말로 혼란과 수습의 반복된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배고픔의 극복이라는 가장 큰 화두는 어쩌면 당시 미국의 엘리제베스와 같은 여성들이 겪었던 불평등과 수모의 시간을 아예 저 밑바닥에 감춰두고 감히 인권과 차별에 대한 말 조차 꺼내지 못하게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어릴 때 자주 들었던 말 중의 하나가 "그거 한다고 밥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였다. 배고픔과 경제적 상황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은 다 쓸데없는 짓이었고, 행여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또는 인간다운 삶을 위해 선택하는 행동들은 다 부질없는 허황된 짓으로 여겨졌다. 어쩌면 익명의 엘리자베스 조트와도 같은 인물이 1cm씩 우리사회가 변화될 수 있도록 자신을 희생해 온 것은 아닐까?


새학기가 되면 소설 속의 선생님이 매드에게 가계도를 제출하는 과제를 내준 것처럼, 족들의 신상에 대한 내용을 적어내라며 규격화된 서류를 나줘주곤 했다. 당시에는 아무 생각없이 왜 해마다 똑같은 내용을 적어서 내야 하는지 귀찮은 일로만 여겼었는데, 개인신상정보가 가득 담긴 그 서류는 학생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부모와 가족들의 교육, 경제 수준을 한 눈에 알아보기 위한 심각한 침해행위였다는 생각이 든다. 행여나 부모님 중의 한 분이 돌아가시거나, 이혼했거나, 미혼모, 미혼부의 자녀일 경우에는 매번 부모님이 신상에 대한 내용을 적을 때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하지만 그런 가정의 상황을 가정조차 해보지 않은 대다수의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대수롭지 않게 소수의 쓰라린 아픔을 헤아리기 보다 정상적인 가족의 구성이라는 잣대를 일방적으로 들이대곤 해왔다. 


소설의 주인공 엘리자베스와 그의 영혼의 단짝인 캘빈의 어머니 에이버리 파커는 미혼모이다. 엘리자베스는 당시에는 통용되지 않던 동거의 삶을 선택하고 갑작스럽게 캘빈이 사망한 후 매드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캘빈의 어머니 에이버리 또한 17살의 풋사랑으로 아이를 갖게 되고 저명하고 부자였던 부모는 명예가 실추될 까 두려워 에이버리의 아이가 사산되었다며 진실을 감추게 된다. 매드가 가계도의 과제를 억지로 해내며 서서히 드러나는 캘빈의 과거는 엘리자베스가 당시의 억압된 여성들의 해방을 위한 기폭제 같은 말과 행동으로 정점에 달하게 되고, 엘리자베스와 캘빈 주위의 돈과 자기 밖에 모르는 팔염치한 인물들의 몰락도 함께 그려진다. 특히 엘리자베스가 박사과정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성폭력을 휘둘렀던 교수나 엘리자베스의 연구물을 가로채 자신의 업적으로 삼은 도나티 교수, 그리고 캘빈이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며 기부금을 받으려 혈안이 된 주교와 같은 인물들은 혈압을 상승시키는 분노를 자아내게 했으며, 이런 극악무도한 인물이 실제 우리 사회의 도처에서 호위호식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이 엘리자베스의 상황을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오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미혼모가 된 엘리자베스가 갓난아기를 키우는 데에 좌절할까봐 염려하며 친구와 동반자가 되어준 해리엇, 조트가 첫 방송부터 전형적인 흐름을 따르지 않고 상관에게 불호령이 떨어질 만한 진행을 했음에도 끝임없이 조트를 지원하고 지켜준 월터 파인PD, 캘빈과 펜팔 친구였으며 캘빈의 편지와 죽음으로 인해 신과 과학에 대한 물음을 갖게 된 후 캘빈의 딸 매드의 다정한 친구가 되어준 웨이클리 목사는 악행을 저지르고도 뻔뻔하고 염치 조차 없는 이들에게서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인간이 가진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준다. 또한 비록 헤이스팅스 연구소에서 온갖 추잡한 소문을 만들어 조트를 곤경에 처하게 만들고 결국 해고되도록 일조한 프래스크는 조트가 자신과 같은 강간을 당하는 억울한 일로 박사학위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조트가 윌슨 변호사와 에이버리를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조력자가 된다. 이렇게 상반된 인물들이 조트와 매드의 삶을 줄다리기 하는 동안 빠질 수 없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캘빈이 사고로 죽는 원인이 된 실패한 폭탄 탐지견 여섯시-삼십 분이다. 이 개의 독특한 이름은 소설이 진행되는 내내 마치 인간과는 직접적인 소통이 불가하더라도 조트와 매드를 지켜주는 파수꾼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조트와 매드가 위협적인 상황에 처하더라도 여섯시-삼십 분의 존재는 든든하고 믿음직스럽다. 


평소 과학에 관심이 없는 독자라 할지라도 '요리는 화학입니다'라는 엘리자베스 조트의 말과 '6시 저녁 식사'라는 요리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나오는 화학식들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실제로 이런 방송이 인기를 끌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조트의 파격적인 시도는 분명 거대한 나비효과를 가져왔을거라고 생각된다. 어찌보면 시대마다 이렇게 전형적으로 용납되는 행태들을 과감히 깨부수고 튀는 행동들을 거침없이 해온 이들을 통해서 우리사회는 변화해온 것이다. 조트의 프로그램을 통해서 아이 다섯을 가진 엄마가 의사가 되고자 공부를 시작하는 것과 같은 예들은 단지 소설 속의 가공할 만한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시도해야 할 자기 자신을 찾는 길임을 알려준다. 


또한 조트와 캘빈의 달콤한 시기에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조정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생소한 운동에 해당되는 조정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되었고, 이야기게 조정이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등장하는 이유는 바로 보트가 뒤집어져서 수영을 못하는 조트가 조정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처럼 조트의 삶을 무너뜨리기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다가온 불운한 일들을 겪었음에도 삶이 지속되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기 위함이다. 조트와 캘빈과 매드가 살아온 시대와견주어 지금은 꽤나 많은 변화가 생기고 나아진 것 같음에도,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조트와 같은 이유로 힘겨워하고 고통에 늪에 빠진 이들이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저자는 분명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조트의 조력자와 같은 역할을 포기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엘리자베스는 평생 이런 감정을 느끼며 살아왔다. 자신이 이룬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동에 다라 규정되는 삶을 이어온 것이다. 과거 그녀는 방화범의 자식, 남편을 갈아치우는 여자의 딸, 목매달아 죽은 동성애자의 동생 아니면 호색한으로 유명한 교수 밑에 있던 대학원생일 뿐이었다. 지금은 유명한 화학자의 여자친구가 되었다. 오롯이 엘리자베스 조트로 받아들여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1권 85)"


"부모가 되는 일은 공부하지 않은 영역의 시험을 치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매일 들었다. 너무나 어려워서 주눅이 드는데 선택지도 없는 주관식이 대부분이다. 때로 그녀는 담에 흠뻑 젖은 채로 잠에서 깨어난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지 모를 인물이 빈 아기 바구니를 들고서 권위적으로 <우리가 당신의 최근 부모 수행 능력을 평가한 결과,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해고입니다.>라고 통보하는 꿈이었다.(1권 268-269)"


"제가 경험한 바로는 아내와 어머니, 여자로 살아가는 데 드는 희생과 노고를 알아주지 않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음, 저는 그 희생과 노고를 잘 알아요. 우리가 함께 30분을 보낸 뒤에는 그럴 가치가 있는 결과물을 얻게 될 겁니다. 눈에  확 띄는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저녁 식사를 만들 겁니다. 참 중요한 것이죠.(2권 16)"


"반면 '6시 저녁 식사'는 인간의 공통적인 화학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 시청자들이 이제껏 배워온 사회 규범, 즉 '남자는 이렇게 여자는 저렇다' 식의 케케묵은 관념에 저도 모르게 얽매여 있더라도, 우리 방송은 문화적 단일성을 넘어서 생각하도록 격려해주는 겁니다. 분별력을 갖추고 과학자처럼 생각하라고 말입니다.(2권 105)"


"자신에 대한 의심이 들 때마다,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이것만 기억하십시오. 용기는 변화의 뿌리라는 말을요. 화학적으로 우리는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그러니 내일 아침 일어나면 다짐하십시오. 무엇도 나 자신을 막을 수 없다고. 내가 뭘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더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 규정하지 말자고. 누구도 더는 성별이나 인종, 경제적 수준이나 종교 같은 쓸모없는 범주로 나를 분류하게 두지 말자고. 여러분의 재능을 잠재우지 마십시오. 숙녀분들. 여러분의 미래를 직접 그려보십시오. 오늘 집에 가시면 본인이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시작하십시오.(2권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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