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대하여 - 박상영 연작소설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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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 작가의 [믿음에 대하여]를 읽었다. 연작 소설로 ‘요즘 애들’, ‘보름 이후의 사랑’, ‘우리가 되는 순간’, ‘믿음에 대하여’ 이렇게 4편이 수록되어 있다. 각 단편마다 화자인 주인공의 이름이 표기되어 누군가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연작소설을 읽을 때마다 특히 박상영 작가의 소설은 대부분 연작소설집으로 묶여 나오기에 매번 놀라게 되는 점이 있는데, 바로 각 단편의 주인공들의 시선으로 읽을 때와 그 주인공들이 다른 단편에서 상대방이나 주변 인물로 나올 때의 시선이 너무나도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시선으로 소설이 진행될 때에는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감정에 단숨에 몰입되어 모든 정황이 주인공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가 이렇게 고난을 겪고 난처하게 된 것은 주인공의 탓이라기 보다는 세상이, 그리고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 때문이 아닐까라라는 어느덧 주인공의 가족이나 부모가 된 것처럼 그의 편을 들게 된다. 하지만 이어지는 또 다른 단편에서 등장한 전편의 주인공은 새로운 단편의 주인공의 시선에서 바라보았을 때 허점이나 모순이 너무나도 많은 인물이다. 그가 주인공일 때에는 모든게 납득이 되던 상황들이 새로운 주인공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어쩌면 모든 문제의 원인은 전편의 주인공 때문이 아닐까란 막연한 추측에 다다르게 한다. 


소설 속에서는 이렇게 자신의 주관적 입장이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좀 더 객관적으로 사건과 정황을 살펴볼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생각이 자주 든다. 내가 봤을 때 저 사람은 정말 이상한데, 저 이상한 사람에게도 친한 사람이 있고 심지어 사람들이 그 이상한 사람을 칭찬하고 좋아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일들이 반복될 때면 혹시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닐까란 생각마저 든다. 만일 내가 판단하는 것처럼 저 사람은 괜찮은 사람, 이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라는 결론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면 내가 혹평한 누군가는 죽을 때까지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가며 온갖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나의 시선과 판단이 절대로 옳을 수가 없고 나의 호불호가 누군가에게는 정반대의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것은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나를 몹시도 좋아해주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의 소설을 읽을 때면 이렇게 다양한 시선으로 주인공들의 삶을 바라보며 편견과 선입견에 휘말려온 시간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나라 퀴어 문학의 대표 주자 중의 한 명인 저자의 소설에는 언제나 게이 동성 커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번 연작 소설에는 김남준, 고찬호, 유한영과 황은채, 임철우 이들의 팍팍한 직장생활 분투기와 더불어 ‘요즘 애들’이라는 시대적 반복어가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설의 심장부를 가로지르는 사건은 실제로 제작년 팬데믹 초기에 발생한 ‘이태원 발 코로나 확진자의 거짓말’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사실 그 일이 뉴스를 통해 보도되었을 당시만 해도 확진자의 동선 거짓말로 인해 무고한 학원생들의 집단 확진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말도 안될 정도로 확진자의 수가 적었음에도 생소한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이 증폭되었던 터라 확진자의 동선은 개개인의 동의 없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사생활 침해 및 인권 유린에 대한 위험성이 조심스럽게 대두되던 때였다. 하지만 인권이고 사생활이고 간에 사람 목숨 살리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우리나라 사회에서 확진자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고 모든 언론들의 집중포화로 그 학원강사를 이미 만신창이를 만들어버렸다. 시간이 흐른 후에 그가 거짓말을 했던 이유는 성소수자임이 드러날까 두려웠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그가 성소수자임이 밝혀지자 소설에 나온 것처럼 이태원 클럽이 마치 온갖 더러운 것들의 온상인양 비아냥거리고 혐오하는 이들이 이때다 싶은 듯이 그들을 짓밟는 거친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평가절하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실제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 검증할 필요도 없이 그냥 느낌대로 그럴 것이라는 가정을 부풀리고 상상하여 팩트로 단정짓듯이 자신있게 말하면, 그 말을 들은 누군가가 거기에 자신의 생각을 더 보태어 비난의 대상을 더욱 형편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 사람은 마주한적도 없는 이들의 입에서 온갖 더러운 것들이 묻어난 씹던 껌처럼 되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반대로 누군가를 칭찬하고 추앙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은 누군가에 대한 호감어린 말을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칭찬은 재미없고 루즈하며 뭔가 이유가 있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대체 뭘 받아먹었길래 라는 의구심어린 눈빛으로 칭찬하는 사람을 겸연쩍게 만든다. 그래서 험담보다 칭찬을 할 때 더욱 신경이 쓰인다. 팬데믹으로 인해 전지구적인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이 겪는 불편함은 생활고를 겪거나 성소수자처럼 동선이 드러나기를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걸린 사활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재난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 상황을 이겨내기 위한 해결의 절차는 가진 것이 없는 이들과 소수자의 수준에서 맞춰지기 보다는 있는 자들의 머리속에서 그려낸 것으로 결정될 때가 많다. 가진 것이 많을 때에는 그것을 놓치고 싶지 않아 시선이 좁아질 수 밖에 없다. 저자의 연작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다양한 시선은 그래서 지금처럼 예민하고 날카로운 시대에 더더욱 시의적절하지 않았나싶다. 


“서른한 살, 벌써 네번째 신입 사원이 된 나는 스물세 살에 잡지사에 들어와 내 나이 무렵에 이미 팔년 차 직장인이었던 배서정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나도 모르는 새 내 삶에 옮겨붙은 어떤 안간힘의 궤적을 말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배서정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만큼 배서정 역시 자신의 방식으로 나와 황은채를, 요즘 애들이라고 이름 붙여진 불가해의 영역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사실을. 어떤 종류의 이해는 실패하고 나서야 비로서, 삶의 자세로 남기도 한다. 내게는 그 시절이 그랬다.(62)”


“모든 게 서럽고 원망스러웠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누군가의 탓을 하는 시대에 나는 누구를, 무엇을 원망해야 할지 몰랐다. 하루에 십수 명이 확진될 땐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야단하며 확진자 동선을 낱낱이 공개하고 술집 영업을 제한하더니 이제는 하루에 몇십만 명이 걸려도 아무런 통제도 하지 않는 정부를? 이태원 상권이 싸그리 몰락한 이 판국에도 단 한 푼도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임대료를 받아 챙기는 건물주를? 아니면 딱 요맘때 이태원을 헤집었던, 기남시 55번 환자를? 최초로 한국에 이 병을 들여온 사람을? 아니면 어머니가 그토록 믿는 신을 탓해야 하나? 아무것도 믿지 않는 나는 도통 무엇을 탓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저 나 자신의 탓으로 돌이기로, 이 모든 것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나 자신을 비난하기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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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브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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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평 작가의 [튜브]를 읽었다. 어릴때 물놀이를 갔다가 죽을 뻔한 기억이 있다. 그것도 실외 수영장에서 말이다.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구조의 수영장이었는데, 아마도 좁은 공간에 애, 어른을 한 번에 수용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초등학생의 어린 나이에 어울리는 높이였던 수영장이 몇 발자국 내밀자 갑자기 몸 전체가 물속으로 빠져들었다. 당황해서 물을 연거푸 마시고 팔을 휘적거리다 누군가의 머리를 누르고 간신히 물 위로 머리를 내밀려는 찰나 다시 몸이 가라앉아 순간적으로 이렇게 허무하게 인생을 마감하는구나라는 찰나의 생각이 스치는 순간, 누군가 내 몸을 들어올렸고 살아났다는 기쁨도 잠시 먹을 물을 토해내느라 컥컥대며 더는 수영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이 멍하니 앉아 있던 일이 있었다. 사실 어릴 때 이렇게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일을 겪으면 상당수가 트라우마가 생겨 물을 가까지 하려 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다시 물놀이를 즐기게 되었고, 바다에서도 수영장에서도 수영을 잘해보려 더 애쓰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 끈기의 부족으로 수영강습을 받다가 그만둬 마스터하지 못한 것은 불쑥 불쑥 솟아나는 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핑계를 만들어낸다. 


수영이야 뭐 안하면 그만이지만, 우리 삶에는 수영처럼 하다가 만 일들이 꽤나 많다. 워낙에 뭘 배우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사교육에 대한 알러지 때문인지 새로운 것을 꾸준히 배워서 일정한 수준에 오른 적이 없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아예 시작을 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무언가를 꾸준히 성실하게 잘 해낸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누군가가 농담삼아 한 말이 내 실제의 본 모습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은 바로 ‘끈기만 더 있었어도 대학로에 갔을텐데’라는 사실 가능성에 제로에 가까운 농담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주 얼토당토 없는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도대체 어디서 그런 일이 시작된건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지만, 지금의 나도 가끔 믿기지 않지만 분명한 사실은 내가 연극의 주인공을 했다는 것이다. 한 반에 50명이나 되는 아이들 중에서 평소에는 별로 까불지도 튀지도 않았던 내가 ‘스크루지 영감’을 맡아 꽤 길었던 대사를 어렵지 않게 외우고 나중에는 선생님의 권유로 앵콜공연까지하는 기염을 토하는 연기를 했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는 한 번도 연기 비슷한 것을 해 본적이 없다. 그래서 나의 평소 언행을 보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끈기만 있었어도 대학로에 갔을텐데’라는 말은 어쩌면 내 마음이 원하는 소리에 진작 귀를 기울였다면 실제로 이뤄졌을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찌되었든 우리에게는 다양한 재능과 관심이 있고 천부적으로 타고나는 것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일은 스스로의 선택과 기나긴 노력이 이어진 시간으로 판가름된다. 소설의 주인공 김성곤 안드레아는 그냥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패한 가장이다. 아내 란희와 결혼해 아영을 낳을때까지만 해도 그의 삶은 순탄했다. 하지만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연이어 사업에 실패하자 김성곤의 영혼은 점점 피폐해져갔고 차마 해서는 안되는 말을 아내에게 내뱉으며 루저가 되어갔다. 사업 실패와 아내와의 갈등, 늘어난 빚을 안고 별거 생활을 시작한 김성곤은 한강 다리 위에서 자살 시도를 하다가 낮과는 다르게 차가운 기운에 그만 삶을 놓아버릴 용기마저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된다. 그리고 그가 2년 전에 시도했던 자살 시도의 순간으로 돌아가 무용한 2년의 시간을 보낸 과정이 펼쳐진다. 그가 우연한 계기로 허리를 곧추세우며 자세를 바꾸는 시도를 통해 지푸라기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되고 행운처럼 다가온 교통사고는 거대한 상업자본과 손을 잡고 비상하게 된다. 하지만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행운의 요소들은 다 소진되어버리고 다시금 불행의 기운이 스멀스멀 김성곤을 원래의 있던 자리로 돌이켜놓는다. 결국 김성곤은 절대 변하지 않은 루저에 불과한 것인지 자포자기 할 무렵 김성곤의 지푸라기 프로젝트는 쓸모없는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낸다. 


진짜로 인생에서 성공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완전히 알지 못한다. 성곤의 어릴적 성당 친구 규팔의 모든 것이 다 변한 것 같은데도 뭔지 알 수 없는 기시감을 느끼게 만든 것은 여전하다는 내용에서, 모든 것은 결국 사고 파는 과정이라는 성곤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규팔의 생각으로 인해 김성곤은 사회적 성공을 이루지 못한 것은 아닐까. 피자가게 사장과 직원의 관계에서 오피스텔을 공유하는 전사장과 초보 유투버인 성곤과 진석의 재회는 지푸라기에 잔뜩 부풀어 올라 튜브처럼 물 위로 자신들을 떠오르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황당한 희망조차도 진심을 다해 응원하게 만든다. 이들이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장면은 우리는 모두 응원받을 자격이, 가치가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오늘 본 란희의 얼굴엔 아무런 감정이 남아 있지 않았다. 커다란 체에 좋은 것들, 그러니까 즐거움, 애정, 행복 같은 걸 탁탁 거르고 다시 한번 분노와 슬픔을 툭툭 걸러낸다. 마지막으로 온갖 앙금과 미련과 애증이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모든 감정을 시간의 태양 아래에 말린다. 그러고 나서 남은 흔적 같은 게 아까 자신을 바라본 란희의 얼굴에서 본 표정이었다. 그 체의 역할을, 란희에게서 그 모든 것을 앗아간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김성곤 안드레아 자신이었다.(133)”


“세상에 던져졌으니 당연하지요. 태어나길 원하지도 않았는데 좁은 배 속에 꼼짝없이 갇혀 있다가 갑자기 발가벗겨진 채로 세상에 던져졌잖아요. 인간은 탄생부터가 외롭고 불안한 거예요. 그러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슨 수로 알겠어요.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일단 쥐어보는 거지요. 쥐었던 게 운 좋게 잘 풀리기도 하고, 이건 아닌데 싶지만 쥐었던 걸 놓을 용기는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꼭 쥐고 있기도 하죠. 그러다가 누군가가 그걸 빼앗아 가면 다시 세상에 던져진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불안해하는 겁니다. 손에 잡히는 것도, 의지할 데도 없이 발가벗겨진 채로 버둥거리고 있으니까. 다들 그러고 삽니다.(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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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책장 2022-09-12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제코루 2022-09-12 13:48   좋아요 0 | URL
축하 인사를 받고 뿜뿜해지네요. 감사합니다
 
오늘도 디지털 노마드로 삽니다 - 우리의 배낭처럼 가뿐하고 자유롭게
김미나 지음, 박문규 사진 / 상상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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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나 박문규 부부의 [오늘도 디지털 노마드로 삽니다]를 읽었다. 부제는 "우리의 배낭처럼 가뿐하고 자유롭게"이다. '유목민'이라는 단어는 우리나라에서는 조금은 낯설게 다가온다. 오래전부터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사회가 형성되었기에 유목인에 대한 첫인상은 떠돌이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과연 그렇게 사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막연함이 드는 가장 큰 이유는 유목민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에 '디지털'이라는 단어까지 붙으니 생소함을 넘어 새로운 인류의 삶이 펼쳐지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저자의 책을 읽으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고 있으며 이미 보고 함께 지내왔음에도 그렇게 인식하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다. 


터키 여행을 시작할 때 처음으로 밤 12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탔다. 같이 간 동료들은 밤 비행기라 술 한 잔 하고 푹 자면 된다고 했지만, 평소라면 이미 잠들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눈이 말똥말똥하며 한숨도 자지 못했다. 10시간 이상의 비행으로 그리고 거의 밤을 샌 격이라 피곤이 몰려오고 있었는데, 이스탄불 공항에서 바로 국내선을 타고 카파도키아로 갈 예정이었던 터라 두 시간을 대기해야 했다. 현지 시간으로 새벽에 도착했으니 아침을 먹으면 금방 시간이 갈 줄 알았는데 설상가상으로 3시간이 연착되었다. 카페에서 5시간을 대기하는데 정말 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낮시간대 비행기를 타고 왔다면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았을텐데 밤을 세고 5시간을 대기하고 국내선을 2시간 타고 당카파도키아에 도착해서 당일 일정을 수행했다. 저녁 무렵 첫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호텔식 저녁식사를 하는데 눈이 저절로 감겨왔다. 거의 36시간을 자지 않고 깨어 있었더니 밥을 먹다 식당 바닥에서도 잘 기세였다. 그때 이스탄불의 공항의 카페에서 대기할 때 꽤 많은 디지털 노마드들을 보았다. 나처럼 연착된 김에 어쩔 수 없이 죽 때리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공항에서 노숙을 했던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무려 8년 동안 여행을 하며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고 있는 부부의 체험담을 읽으며 예전 기억이 떠오름과 동시에 디지털 노마드는 내가 죽을 것 처럼 힘들었던 공항에서의 대기 시간들도 사랑하지 않으면 안되는 삶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몸으로 배낭을 짊어지고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과 함께 불편한 자리에서 장시간 대기하며 때로는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안정적이고 평범한 삶이라고 말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선택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아니 생각하지 않고도 그냥 흐름에 몸을 맡기다보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아이를 낳고 제 집 장만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수순이다. 이 중에 하나만 다른 길로 가려고 해도 부모님이나 지인들은 당장 무슨 큰일이 날 것처럼 만류하려 든다. 그러한 시선이 부담스럽고 두려워 상당수의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이나 전혀 생각보지 않았던 샛길의 삶을 과감히 선택하지 못한다. 사실 우리 삶에는 수많은 길이 있다. 죄를 짓거나 타인에게 해를 가하거나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행동이 아니라면 각자가 선택하는 삶의 길에 옳고 그름은 판단할 수 없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는 길은 이미 걸어본 사람들이 많지 않기에 예상치 못한 어려움과 장애물들이 도사리고 있다. 


저자의 삶의 선택은 어찌보면 현대 사회의 선구자와 같은 길이 아니었을까 싶다. 처음부터 전문 여행가로의 삶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하다보니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과감히 자신의 온 삶을 새로운 길에 투신할 수 있었던 용기 덕에 이렇게 디지털 노마드의 신세계를 많은 이들에게 열어줄 수 있었던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삶이 안정되어 갈수록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 어려워진다. 일상히 무미건조해지고 나른하게 느껴져 분위기를 전환하고 싶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예전보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게으름 때문인 것 같다. 일상은 여전히 성실하게 살아가지만 내 마음에 원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는 점점 게을러 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육체적 노화의 시간은 거스를 수 없지만 마음의 노화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처럼 거꾸로 흐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마음의 게으름을 타파하기 위한 도전들을 미루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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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레슨 인 케미스트리 1~2 - 전2권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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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 가머스의 [레슨 인 케미스트리(LESSONS In CHEMISTRY)] 1-2를 읽었다. 1950년대의 미국 사회의 한 가운데에 서서 엘리자베스의 고군분투하는 삶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불과 100년도 안된 과거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편협한 시각으로 관계를 맺어왔는지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전쟁을 치뤘고 나라가 반토막이 난 후 피폐해진 국민의 삶은 오로지 경제적 재건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야말로 혼란과 수습의 반복된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배고픔의 극복이라는 가장 큰 화두는 어쩌면 당시 미국의 엘리제베스와 같은 여성들이 겪었던 불평등과 수모의 시간을 아예 저 밑바닥에 감춰두고 감히 인권과 차별에 대한 말 조차 꺼내지 못하게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어릴 때 자주 들었던 말 중의 하나가 "그거 한다고 밥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였다. 배고픔과 경제적 상황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은 다 쓸데없는 짓이었고, 행여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또는 인간다운 삶을 위해 선택하는 행동들은 다 부질없는 허황된 짓으로 여겨졌다. 어쩌면 익명의 엘리자베스 조트와도 같은 인물이 1cm씩 우리사회가 변화될 수 있도록 자신을 희생해 온 것은 아닐까?


새학기가 되면 소설 속의 선생님이 매드에게 가계도를 제출하는 과제를 내준 것처럼, 족들의 신상에 대한 내용을 적어내라며 규격화된 서류를 나줘주곤 했다. 당시에는 아무 생각없이 왜 해마다 똑같은 내용을 적어서 내야 하는지 귀찮은 일로만 여겼었는데, 개인신상정보가 가득 담긴 그 서류는 학생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부모와 가족들의 교육, 경제 수준을 한 눈에 알아보기 위한 심각한 침해행위였다는 생각이 든다. 행여나 부모님 중의 한 분이 돌아가시거나, 이혼했거나, 미혼모, 미혼부의 자녀일 경우에는 매번 부모님이 신상에 대한 내용을 적을 때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하지만 그런 가정의 상황을 가정조차 해보지 않은 대다수의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대수롭지 않게 소수의 쓰라린 아픔을 헤아리기 보다 정상적인 가족의 구성이라는 잣대를 일방적으로 들이대곤 해왔다. 


소설의 주인공 엘리자베스와 그의 영혼의 단짝인 캘빈의 어머니 에이버리 파커는 미혼모이다. 엘리자베스는 당시에는 통용되지 않던 동거의 삶을 선택하고 갑작스럽게 캘빈이 사망한 후 매드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캘빈의 어머니 에이버리 또한 17살의 풋사랑으로 아이를 갖게 되고 저명하고 부자였던 부모는 명예가 실추될 까 두려워 에이버리의 아이가 사산되었다며 진실을 감추게 된다. 매드가 가계도의 과제를 억지로 해내며 서서히 드러나는 캘빈의 과거는 엘리자베스가 당시의 억압된 여성들의 해방을 위한 기폭제 같은 말과 행동으로 정점에 달하게 되고, 엘리자베스와 캘빈 주위의 돈과 자기 밖에 모르는 팔염치한 인물들의 몰락도 함께 그려진다. 특히 엘리자베스가 박사과정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성폭력을 휘둘렀던 교수나 엘리자베스의 연구물을 가로채 자신의 업적으로 삼은 도나티 교수, 그리고 캘빈이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며 기부금을 받으려 혈안이 된 주교와 같은 인물들은 혈압을 상승시키는 분노를 자아내게 했으며, 이런 극악무도한 인물이 실제 우리 사회의 도처에서 호위호식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이 엘리자베스의 상황을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오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미혼모가 된 엘리자베스가 갓난아기를 키우는 데에 좌절할까봐 염려하며 친구와 동반자가 되어준 해리엇, 조트가 첫 방송부터 전형적인 흐름을 따르지 않고 상관에게 불호령이 떨어질 만한 진행을 했음에도 끝임없이 조트를 지원하고 지켜준 월터 파인PD, 캘빈과 펜팔 친구였으며 캘빈의 편지와 죽음으로 인해 신과 과학에 대한 물음을 갖게 된 후 캘빈의 딸 매드의 다정한 친구가 되어준 웨이클리 목사는 악행을 저지르고도 뻔뻔하고 염치 조차 없는 이들에게서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인간이 가진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준다. 또한 비록 헤이스팅스 연구소에서 온갖 추잡한 소문을 만들어 조트를 곤경에 처하게 만들고 결국 해고되도록 일조한 프래스크는 조트가 자신과 같은 강간을 당하는 억울한 일로 박사학위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조트가 윌슨 변호사와 에이버리를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조력자가 된다. 이렇게 상반된 인물들이 조트와 매드의 삶을 줄다리기 하는 동안 빠질 수 없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캘빈이 사고로 죽는 원인이 된 실패한 폭탄 탐지견 여섯시-삼십 분이다. 이 개의 독특한 이름은 소설이 진행되는 내내 마치 인간과는 직접적인 소통이 불가하더라도 조트와 매드를 지켜주는 파수꾼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조트와 매드가 위협적인 상황에 처하더라도 여섯시-삼십 분의 존재는 든든하고 믿음직스럽다. 


평소 과학에 관심이 없는 독자라 할지라도 '요리는 화학입니다'라는 엘리자베스 조트의 말과 '6시 저녁 식사'라는 요리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나오는 화학식들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실제로 이런 방송이 인기를 끌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조트의 파격적인 시도는 분명 거대한 나비효과를 가져왔을거라고 생각된다. 어찌보면 시대마다 이렇게 전형적으로 용납되는 행태들을 과감히 깨부수고 튀는 행동들을 거침없이 해온 이들을 통해서 우리사회는 변화해온 것이다. 조트의 프로그램을 통해서 아이 다섯을 가진 엄마가 의사가 되고자 공부를 시작하는 것과 같은 예들은 단지 소설 속의 가공할 만한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시도해야 할 자기 자신을 찾는 길임을 알려준다. 


또한 조트와 캘빈의 달콤한 시기에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조정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생소한 운동에 해당되는 조정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되었고, 이야기게 조정이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등장하는 이유는 바로 보트가 뒤집어져서 수영을 못하는 조트가 조정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처럼 조트의 삶을 무너뜨리기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다가온 불운한 일들을 겪었음에도 삶이 지속되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기 위함이다. 조트와 캘빈과 매드가 살아온 시대와견주어 지금은 꽤나 많은 변화가 생기고 나아진 것 같음에도,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조트와 같은 이유로 힘겨워하고 고통에 늪에 빠진 이들이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저자는 분명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조트의 조력자와 같은 역할을 포기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엘리자베스는 평생 이런 감정을 느끼며 살아왔다. 자신이 이룬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동에 다라 규정되는 삶을 이어온 것이다. 과거 그녀는 방화범의 자식, 남편을 갈아치우는 여자의 딸, 목매달아 죽은 동성애자의 동생 아니면 호색한으로 유명한 교수 밑에 있던 대학원생일 뿐이었다. 지금은 유명한 화학자의 여자친구가 되었다. 오롯이 엘리자베스 조트로 받아들여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1권 85)"


"부모가 되는 일은 공부하지 않은 영역의 시험을 치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매일 들었다. 너무나 어려워서 주눅이 드는데 선택지도 없는 주관식이 대부분이다. 때로 그녀는 담에 흠뻑 젖은 채로 잠에서 깨어난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지 모를 인물이 빈 아기 바구니를 들고서 권위적으로 <우리가 당신의 최근 부모 수행 능력을 평가한 결과,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해고입니다.>라고 통보하는 꿈이었다.(1권 268-269)"


"제가 경험한 바로는 아내와 어머니, 여자로 살아가는 데 드는 희생과 노고를 알아주지 않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음, 저는 그 희생과 노고를 잘 알아요. 우리가 함께 30분을 보낸 뒤에는 그럴 가치가 있는 결과물을 얻게 될 겁니다. 눈에  확 띄는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저녁 식사를 만들 겁니다. 참 중요한 것이죠.(2권 16)"


"반면 '6시 저녁 식사'는 인간의 공통적인 화학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 시청자들이 이제껏 배워온 사회 규범, 즉 '남자는 이렇게 여자는 저렇다' 식의 케케묵은 관념에 저도 모르게 얽매여 있더라도, 우리 방송은 문화적 단일성을 넘어서 생각하도록 격려해주는 겁니다. 분별력을 갖추고 과학자처럼 생각하라고 말입니다.(2권 105)"


"자신에 대한 의심이 들 때마다,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이것만 기억하십시오. 용기는 변화의 뿌리라는 말을요. 화학적으로 우리는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그러니 내일 아침 일어나면 다짐하십시오. 무엇도 나 자신을 막을 수 없다고. 내가 뭘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더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 규정하지 말자고. 누구도 더는 성별이나 인종, 경제적 수준이나 종교 같은 쓸모없는 범주로 나를 분류하게 두지 말자고. 여러분의 재능을 잠재우지 마십시오. 숙녀분들. 여러분의 미래를 직접 그려보십시오. 오늘 집에 가시면 본인이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시작하십시오.(2권 236)"


#레슨인케미스트리 #리뷰 #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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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베이비 - 제2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성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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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봉 작가의 [카지노 베이비]를 읽었다. 제2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다. 소설의 배경은 지음이라는 공간을 토대로 지장산, 지장천, 말고개재, 소잡는골, 도롱이못, 범바위골, 안경 다리 등의 장소가 나온다. 탄광촌이었던 마을이 폐광이 되고 카지노가 들어서면서 완전히 다른 형태의 마을로 탈바꿈되어버린다. 소설 속에서는 카지노의 이름이 그냥 ‘LAND’라고만 나오는데, 소설을 읽는 누구나 우리나라의 유일한 카지노인 강원도 정선에 있는 카지노를 연상하게 된다. 특히 지음은 사북 탄광촌을 연상시키며 오래전 친구를 보러 사북에 갔던 때가 떠오른다. 내가 1년에 한 번 정도 사북을 방문했을 때에는 탄광의 거의 다 문을 닫을 무렵이자 카지노가 시작된 때이다. 친구가 사북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해주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대충 건성으로 들어서인지 그 때 당시 사북의 정황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오랜시간 기차를 타고 사북에 가곤 했지만, 사북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었고 그저 친구가 거기 살아서, 친구와 만나 친구네 집에서 하룻밤 자고 오는 게 전부였기 때문일 것이다. 철이없던 학생시기라 그랬는지, 강원도는 놀러갈 때만 가는 곳이라 생각해서 그랬는지 폐광 이후 쇠락해가는 곳에 카지노가 들어서 경제가 활성화 된다는 터무니없는 논리를 그냥 속편하게 믿어버리기로 결심한 것은 아니었을까?


카지노의 천국인 마카오에 갔을 때 머물던 호텔의 1층에서 누구나 손쉽게 슬롯머신을 당겨볼 수 있었다. 재수가 좋아야 음료수 한 잔 값을 벌수 있을까 말까한 몇 번의 배팅을 제외하고 진짜 카지노 게임처럼 보이는 테이블을 기웃거리며 구경하곤 했다. 대체 게임 방법을 알아야 한 번 앉아서 해보던지 말던지 할텐데, 엄두가 안나 그냥 지나치곤 했다. 하지만 실제 도박에 중독된 사람들의 경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한 사람을 완전히 망가뜨리게 된다. 소설의 제목인 카지노 베이비도 결국은 도박에 미친 부부가 갓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번갈아 가며 카지노에 머물다 여자는 자살하고 남자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아이만 전당포에 남게 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올림픽 다방에서 월드컵 전당포를 운영하게 된 동여사와 그의 딸, 아들은 전당포에 남겨진 아이 하늘의 엄마와 삼촌이 되어주고 동여사는 하늘에게 동이라는 성을 붙여준다. 하지만 하늘은 버려진 아이였기에 제대로 된 절차를 밟을 수 없어 학교에 다니지 못한다. 소설은 하늘의 입장에서 아직 어린 아이에 불과한 시선으로 할머니의 전당포와 카지노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사실 하늘은 자신이 어떻게 전당포에 맡겨지게 되었는지, 친부모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기억나지 않지만 환영처럼 펼쳐진 어렴풋한 장면들을 끄집어 내려 애쓴다. 하늘의 삼촌은 건실한 청년으로 물 배달 일을 하다가 카지노의 단맛에 사로잡혀 가산을 탕진하고 “지음이 흔들린다! 랜드가 무너진다!”라는 약간은 맛이 간 사람으로 나온다. 하지만 하늘 삼촌의 말은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복선이 되고 미친 사람이 넋두리처럼 혼자 내뱉는 말이 카지노의 마지막이 되버린다. 


이미 깊은 탄광이었던 곳에 카지노가 세워지다보니 충분히 개연성이 있어보이는 가설로 텅 빈 땅에 많은 비가 내리거나 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지반이 약해져 싱크홀과 함께 랜드는 무너져 버린다. 저자의 말에서 이미 우리나라에서 발생된 거대한 재난을 연상시키는 랜드의 붕괴는 물신주의로 절차와 규범을 무시하며 이득을 취하려 했던 비참한 결말을 가져온다. 하지만 랜드의 붕괴로 인해 빚어진 댓가는 모두 지음 마을 사람들에게 돌아가고 그들은 삶의 터전을 잃게 된다.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다가 전당포에 물건을 맡기고 밤이면 슬립 시티에서 잠만 자고 가는 것으로 어느 정도의 순환 경제가 이루어지던 지음은 랜드의 붕괴와 더불어 모든 것이 멈춰버린다. 하늘은 용사장과의 내기로 카지노에 몰래 들어가 자신의 신원에 대한 실마리를 찾고 싶어하지만, 바로 그날 랜드는 붕괴되고 하늘은 천신만고 끝에 다리만 골절된 채 구조된다. 하늘을 찾기 위해 사흘밤낮 분투한 동여사는 하늘의 구조와 더불어 실신하고 하늘과 함께 입원한 병실에서 동여사가 지금까지 살아온 비운의 사건들과 하늘이 어떻게 전당포에 오게 되었는지 들려준다. 하늘을 구하느라 힘을 소진한 동여사는 결국 생을 마감하고 딸과 아들에게 남긴 유언의 내용을 변호사가 전해준다. 장례를 마치고 딸과 하늘은 동여사가 남긴 땅을 찾으로 지장산으로 올라간다. 그들이 발견한 땅은 아직 카지노가  개발되지 않는 땅의 한 가운데 그야말로 알박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하늘과 딸과 아들은 동여사 남긴 땅의 의미를 되새기고 하늘은 자신에게 앞으로 벌어질 일을 과감히 마주하기 위해 열심히 마을을 향해 내달린다. 


“이미 넌 네가 누군지 알고 있어. 다른 사람들이 네가 어떤 사람이라고 말한다고 네가 진짜 그렇지는 않다는 거다.(43)”


“나쁜 예감이란 한 번도 비를 쏟아본 적 없는 생각의 먹구름이다.(141)”


“아이들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기억한다. 누군가 인상을 쓴다든지 소리를 지른다든지 욕을 한다든지 마음속으로 깊이 미워 한다든지. 그런 기억들은 가슴 깊은 곳에 저장된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어쩌면 어른이 되고 나서까지도 남아 있다.(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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